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18장 자살원수(刺殺怨讐)

오늘의 쉼터 2013. 12. 13. 10:23

정협지(情俠誌) 4권


제 18장 자살원수(刺殺怨讐)

 

금모사왕의 최후

 

 노영탄이 온갖 정신을 한 곳에만  쏫고 황홀한 기쁨에 도취해서

그 글자와 도형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괴상하고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르르! 쿵쾅!

그와 동시에 무수히 부서진 돌덩이들이 굴 위로부터 아래로 허물어져 떨어지는 것이었다.

뒤를 이어서 . 또다시 무서운 굉음이 이어졌다.

쏴! 쏴!

그 굉음도 굴 위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힐끗 머리를 쳐든 노영탄은 .

한 줄기 거센물줄기가 흉흉한 기세로 동굴 안으로 뻗쳐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쏴! 와! 우르렁.

천둥 소리같이 연발되는 무서운 굉음을 내면서 조수처럼 뻗쳐 들어오는 물줄기.

노영탄은 워낙 창졸간에 닥쳐드는 변고인지라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눈을 한번 깜짝하면 그사이에물줄기의 흉흉한 기세는 마치 폭포가 내리솓듯이

무섭게 밀려들었다.

눈앞으로 밀려드는 물줄기의 기세는 점점 더 사납고 급하게 노도처럼 불어가며

아가리를 벌린 범처럼 앞으로 덤버들 뿐이었다.

노영탄은 대경질색 했다.

동굴 벽 위의 글자나 도형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동굴 안으로 밀려드는 물줄기가 삽시간에 급해지고 사나워지는 것을 보자.

노영탄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급히 발을 뽑아위로 펄쩍 뛰었다.

그 굴길은 본래가 높은 곳을 향해서 비스듬히 올라가도록 뚫려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아래로 밀려드는 물줄기의 기세는 유남히 빠르고 거세었다.

노영탄은 그 지점이 동굴 입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닥쳐드는 정세가 너무나 급박하고 긴장되는지라.

높은 지점이 어떠한 곳인지 .

그런 것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이 덮어놓고 기운을 모아 높은 곳으로 

몸을 뛰어 올려본 것이다.

이 위기일발의 찰나에 노영탄은 있는 힘을 다해서 전신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시 땅 위에 내려섰을 때에는 10여 장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몸이 다시 아래로 내려섰을 때 발길에 채이는 것은 역시 물줄기였다.

노영탄은 다시 숨을 돌리고 기운을 모아 또 한번 높이 솟구쳐 올랐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러기를 여러 너댓 번 노영탄은 이미 처음 있던 곳에서

5. 60장이나 멍찌감치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다.

올라갈수록 지형은 점점 더 높아지기만 했다.

공기가 갑작스레 맑고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했빛도 전보다는 훨씬 밝아졌다.

노영탄은 이미 동굴 입구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까지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

또 한번 있는 힘을 다해서 껑충! 더높은 곳으로 뛰어올랐다.

막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을 때.

와르르!

갑자기동굴 벽이 허물어져서 내려앉는 무서운 굉음이 들려왔다.

다음 순간 .

맹렬한 기세로 굽이쳐 들어오는 거센 물결은 바로 노영탄의 머리 꼭대기로 감돌며

휩쓸기 시작했다.

노영탄은 몸이 물에 젖는 것을 돌볼 겨를도없이 여전히 기운을 모아서

또 한번 위로 뚫고 올랐다.

전신에 섬뜩한 차가운 감각이 있었으며.

어떤 거창한 압력이 전신을 내리누르고 압박해 들어왔다.

그러나 노영탄은 허리에 힘을 써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면서 두손을 좌우 양편으로 벌려

마치 칼로 치듯 물결을 끊어버렸다. 

밖으로부터 콸콸 ! 콸콸 !

용솟음치며 밀려드는 거센 호수의 물줄기에도 굴하지않고 노영탄은 물결을 헤치고.

꿰뚫고 앞으로만 돌진해 나갔다.

별안간 눈앞이 번쩍 하고 환해지는 찰나.

정신을 차려보니.

노영탄의 몸은 이미 호수의 수면 위에까지 뛰쳐나오고 있었다.

또 한번 껑충!

노영탄은 단숨에 몸을 날려 호반 언덕 위에 내려섰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 동굴의 입구가 호반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야트막한 언덕은 온통 진흙 투성이었는데 .

이미 화약의 폭발로 말미암아 허물어지고 흐트려진 모양이었다.

언덕은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그 중간으로 한 줄기 널따란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언덕의 갈라진 틈을 따라서.

호수의 흉흉한 물줄기는 거침없이 쏠려 들어가고 있었다.

노영탄이 동굴에서 간신히 뛰쳐나온 바로 그 찰나에.

호수의 사나운 물줄기는 동굴을 완전히 휩쓸어버렸으며.

흉흉한 기세로 곧장 동굴 안을 향해서 쏠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정세를 똑바로 판단하게 된 노영탄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 하마트면 .......... '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 흐음. 이것은 반드시 어떤 놈이 나보다 먼저 앞장을 서서 이 동굴을 빠져나왔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동굴에서 동굴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화약으로 이 야트막한 언덕을 폭파시키고

호수의 물줄기를 그리로 끌어들여서 굴길을 완전히 물 속에 파묻어버리자는 흉계였을 것이다.

그놈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런 악독하고 잔인한 흉계를 꾸미고 있었을 것이다!

제 뒤를 쫓아올 사람이 있든 없든 간에 하여튼 이 동굴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물 속에 파묻어버릴 계교를 궁리해 낸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어떤 잔인무도한 놈의 소행이냐? '

노영탄은 그것이 금모사왕 오빈기의 소행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퍼뜩 머리를 쳐들고 사방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호반 일대에는 죽음 같은 적막이 감돌고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도 찿아낼 수 없었다.

노영탄은 다시 머리를 숙여 그 동굴의 입구가 있던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다 보았다.

호수의 줄기찬 물결은 이미 동굴 입구를 흔적도 찾아볼 수 없도록 온통 막아버렸다.

조수처럼 밀리는 거센 물줄기는 여전히 동굴 안으로 곤두박질을 치듯 쏠려 들어갈 뿐이다.

' 저 동굴 속의 굴길이 제아무리 길다 해도 불과 몇 시간만 경과되면 형체도 없이

호수의 물줄기에 파묻혀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 어떤 사람도 호수 밑바닥에 이렇게 신비스러운 굴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더군다나 이 세상에 희귀한 전각문이나 도형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태까지의 경과를 돌이켜뵜을 때 .

노영탄은 아슬아슬하고 소름 끼치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 형언키 어려운 기쁨이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갑자기 얼굴을 스치고 시원스럽게 지나쳐 갔다.

노영탄은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이 새로운 정신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가  굴길을 더듬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오로지 감욱형의 행방을

수색해 보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티끌만한 종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망망한 천지에 이 아리따운 아가씨는 도대체 어느 곳에 가 있다는 건가!

붉은 해는 이미 서녘으로 떨어지고 땅거미가 점점 닥쳐오기 시작했다.

노영탄은 새삼스럽게 사방을 유심히 휘둘러보았다.

지금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곳이 역시 홍택호 호반이라는 것은 알 수 있으나.

대체 어느 방향으로 비교적 가까운 길이 되어 있는지는 분간할 도리가 없었다.

무심코 먼 곳을 바라다보았다.

몇 줄기 담담한 연기.

저녁밥을 짖는 연기가 굴뚝으로 퍼져 올라와 하늘 높이 휘날리고 있었다.

노영탄은 반드시 사람이 사는 집들이 근쳐에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반나절 이상이나 달려오고보니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노영탄은 이궁리 저궁리 해본 끝에 걸음을 빨리해서 연기가 퍼져오 르는

인가를 향해 달려갔다.

' 우선 아무 데나 뛰어 들어가서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고서 ...........'

날이 저물어오니 우선 고픈 배와 잠자리나 해결해 놓고 나서 차근차근 다음 행동을

개시할 작정이었다.

연기나는 마을로 가까이 들어섰을 때.

노영탄은 그것이 몇 집 안 되는 어부들이 거처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몇칸 안 되는 야트막한 초가집 앞으로는 텅 빈 공지가 한 군데 있었는데.

거기에는 대나무 가지 몇 개를 걸쳐 놓고 그 위에 너뎃 폭의 그물을 펼쳐서 말리고 있었으며

그밖에도 대나무 가지 위에는 두름으로 엮어서 말리는 물고기들이 꽤 많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노영탄은 남달리 뛰어난 재간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초가집 앞까지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안의 동정을 살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심히 괴상한 일은 노영탄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들어가고 있는데도.

그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나 사람의 음성이 통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정경이 아주 괴상하고 특이했다.

노영탄의 생각에는 불을 때는 연기가 퍼져 나오고 있는 이상 그것은 반드시 사람이

살고 있어서 저녘밥을 짖고 있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기색을 찾아낼 수 없었다.

사람의 말소리나 떠드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쓸쓸하고 조용한 적막만이 그 너댓 채의 초가집을 휩싸고 있을 뿐이었다.

' 흐음? 몹시 수상쩍은 집들인데! 정신을 바짝차리고 덤벼들지 않았다가는 또 무슨 일이 ........ '

노영탄은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그 초가집을 정면으로 향하고

걸어갈 생각을 단념해 버렸다.

살짝 담장에 자신의 모습을 교묘히 감추어서 경신법의 재간을 부려 길 옆으로 있는

대나무 숲을 끼고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그 초가집의 후면으로 돌아 들어갔다.

중간에 있는 초가집 한 채의 후면까지 돌아들어갔을 때.

그 집 안에서는 심히 가느다랗고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나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도대체 뭣하는 놈들일까?'

노영탄은 선뜻 그 초가집 주변의 형세를 사방으로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어떤 놈들이 무슨 짖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탐지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노영탄이 땅을 디디고 서 있는 지점은 온통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숲 속이었다.

그 대나무 숲은 몇 채의 초가집들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

초가집과 대나무 숲과의 거리는 6. 7장쯤이나 되어 보일 만큼 상당히 먼 거리였다.

노영탄이 방금 바라보았던 그 초가집 앞마당 빈터에는 고기잡이 거물이며 그밖에 잡동사니

물건들이 되는대로 나둥그라져 있었다.

초가집 뒤로도 자그마한 빈터가 있기는 했으나 그곳은 텅 빈 채로 아무것도 없었다.

태양은 이미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고 서녘 하늘에는 한 줄기 저녘 놀이 비칠 뿐.

등잔에 불을 켜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노영탄은 일단 결심을 한 이상 . 경각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몸을 쭈그리고 땅에 엎드리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려는 찰나.

그대로 두 발에 힘을 주어서 껑충 뛰어올랐다.

단숨에 그 초가집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다.

동작이 빠르고 가볍기가 마치 화살 같았다.

노영탄은 초가집 꼭대기로 올라간 다음 잠시 동안 정세를 살피며 몸을 쉬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노영탄은 또다시 다음 행동으로 옮길 결심을 했다.

그 초가집 꼭대기는 짚으로 이영을 틀어서 덮은 것이다.

비록 기왓장을 씌운 집만큼 견고하지늠 못했지만 .

사람하나쯤 올라서는 것은 거뜬히 지탱하고  견딜만 했다.

또 한 층 한 층 제법 두둑하게 이영이 쌓아올려져 있었지만 .

만일에 힘을 들여 그것을 벗겨서 헤친다면 곧 아래 집안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노영탄은 한동안 머리를 짜서 생각하다가 문득 등에 메고 있는 금서 보검을 뽑아 들었다.

칼끝을 가볍게 눌러서 살짝살짝 짚을 헤치고 이영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지붕 이영을 어지간히 깊이 벗겨 들어갔을 때 갑자기 그 아래 집 안으로부터 번쩍하고

불빛이 비쳤다.

지푸라기 틈으로 새어 올라오는 몇 줄기 광선을 보면. 아래 집 안에서 어떤 사람이

등잔에 불을 켠 모양이었다.

노영탄은  놀랍고 기뻤다.

일각을 지체하지 않고 더욱 칼끝을 재빨리 눌러서 더 깊이 이영을 헤쳐 들어갔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이미 그 초가집 지붕 꼭대기에는 한 줄기 좁디좁은 틈이 벌어지고

말았다.

노영탄은 급히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그 벌어진 틈에들이막고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 아니. 이놈들이 ........ '

노영탄의 놀라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도록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아래 집 안에는 아주 간단하고 허술한 세간살이가 흩어져 있었다.

방 안 가운데에는 네모진 큼직한 상이 한 개 놓여 있었으며.

그 상 위에는 몇 접시의 안주와 반찬과 또 몇 그릇의 밥이 차려져 있었다.

또 다른 구석으로는 기름등잔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대여섯 사람이 되는 대로

쓰러져서 나둥그라져 있었다.

그중에는 어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

' 흐음. 괴상한 놈들인데 ......... '

그 정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모두 한집안 식구들 같았다.

그들의 옷차림새를 보면 틀림없이 이 집 안에 살고 있는 식구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때 그중의 두 사람이 상에 마주 앉아서 그 위에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마시고 하려는

판이었다.

노영탄은 그 두 사람을 똑바로 내려다 보았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바로 노영탄이 종적을 찾고자 애쓰던 금모사왕 오빈기와 그의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었다.

지붕 틈으로 이런 광경을 내려다보던 노영탄은 극도로 흥분했으며.

동시에 까닭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의혹에 사로잡혔다.

그가 금모사왕 오빈기의 종적을 찾고자 애쓰며 여기까지 무작정 달려든 큰 목적은 금모사왕이

감욱형을 납치해 달아났으리라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초가집 안에서는 오빈기 부자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바닥에 쓰러져 나자빠져 있는 몇 사람 가운데서도

감욱형의 모습은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러면 감욱형은 오빈기에게 납치당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 아가씨는 어째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대체 어디로 가 있다는 것인가? '

노영탄은 마음속의 의혹을 풀 길이 없었고 또한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다 금모사왕 오빈기 부자를 놓아두고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는 없었다.

최소한 놈들에게서 어떤 실마리라도 잡아내야만 되기 때문이었다.

얼마동안 꼼짝도 않고 아래만 노려보고 있던 노영탄은 매서운 눈초리를 한번 찡긋하더니

다음 행동을 결심한 모양이었다.

두 손바닥으로 초가집 지붕 꼭대기를 누르는가 하는 찰나에 .

쏴 하는 요란 스런 바람소리와 함께 노영탄은 흘쩍 몸을 날려서 초가집 앞에 있는

빈터로 향했다.

허공에서 표현히 내려서는 노영탄의 동작은 빠르기가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내려앉는 것

같아서며 일부러 요란스런 바람소리까지 일어켜 보인 것이었다.

과연 노영탄이 선뜻땅 위에 내려서는 찰나에 집 안의 등잔불 빛은 깜박하더니 그대로 꺼져버렸다.

그리고는 그 뒤를 이어서 난데없이 일어나는 요란스런 소리.

와르르! 쿵쾅!

그 초가집 앞에 달려 있던 두 틀의 들창 문짝이 별안간 어떤 억센 힘을 이기지 못해서 

저절로 떨어져 땅 위로 딩구는 것이었다.

초가집 안으로부터는 몇 줄기의 싸늘한 광선이 별처럼 튀면서 밖으로 내다보일 뿐이었다.

노영탄은 옴짝달싹하지 않고 한 자리에 버티고 섰다.

두 어깨가 한번 들먹했다.

그와 동시에 두 손바닥이 억센 바람을 일으키더니 곧장 앞으로 습격해 나갔다.

앞으로 뻗쳐나오던 몇 줄기의 싸늘한 광선도 즉각에 노영탄의 손바람에 가로막혀서 

맥을 못 추고 그대로 땅바닥으로 수그러지며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두 손의 힘을 다소 늦추고 있을 때.

홀연 나지막한 음성으로 조심조심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친구. 그대는 어느편 사람이지 ?"

그 뒤를 이어서 집 안으로 부터 번갯불처럼 뛰어서 내닫는 두 사람의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또 하나는 왼쪽으로 갈라서서 노영탄을 맞으며 우뚝 서는 것이었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노영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으면서도 집안에서 뛰쳐나온 두 인물이 바로

금모사왕 오빈기 부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빈기 부자 편에서는 밝은 곳에서 갑자기 캄캄한 곳으로 뛰쳐나왔는지라

한동안  어리둥절해서 앞에 밤길을 가는 사람 같은 한 인물이 서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노영탄이라는 것은 선뜻 알아낼 수 없었다.

오빈기 부자는 다 같이 과거에 노영탄과 맞닥뜨려본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오빈기는 말하자면 노영탄에 대한 인상이 뚜렷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노영탄이 그와 맞닥 뜨려 싸웠을 때에는 복면을 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팔조독경 오백평은 노영탄에 대한 인상을 매우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노영탄은 오빈기가 묻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입을 열어 무슨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 흥 ! '

몇 번인지 똑같은 콧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바로 이때 팔조독경 오백평은 그들 앞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전일에 금사보 회양방의 본거지를

뒤집어엎을 듯이 소란스럽게 만들어 놓은 노영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즉시 아버지 오빈기의 귓전에다 대고 몇 마디를 쑥덕거렸다.

오빈기의 얼굴빛이 별안간에 창백해 졌다.

노영탄을 한번 힐끗 노려보더니 무서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 친구 . 그대는 이 오빈기 하고  도대체 무슨 풀지 못할 숙원이 있기에 이다지 여러 차례

나와 겨루어보겠다고 덤벼드는 건가 ? "

노영탄은 그제서야 거침없이 대답을 했다.

" 풀지 못할  숙원? 그런 것은 나에게는 없다 !

단지 내놈들의 소행이 음침하고 악독하고 비열하기 이를 데 없어서 .........

너희들 부자 같은 나쁜 놈들을 무림에 그대로 살려두고없애버리지 않는다면 .

영원히 태평한 세월을 볼 수 없겠기 때문이다 ! "

오빈기는 노영탄의 이 말을 듣더니.

나지막하면서도 음흉한 목소리로 마치 짐승같이 한바탕 으러렁댔다.

" 으흐흐으!  이. 이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 으흐흐흐으으 ! "

전신을 꿈틀하고 움직이는 찰나

오빈기는 재빠른 걸음으로 선뜻앞으로 나서며 손바닥을 펼쳐서 쳐들더니.

오른쪽 팔을 불쑥 내뻗었다.

다짜고짜로 노영탄에게 곧장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도 서섬치 않고 무기를 뽑아 들었다.

팔조독경 독기를 뿌려서 노영탄의 머리께를 겨누고 휘감아 버리려고 했다

노영탄은 그들 부자가 동시에 협공 태세로 덤벼더는 것을 보자.

비록 마음속에 그다지 두려움은 없었다 해도 한편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영탄은 손을 날쌔게 뒤집어서 금서 보검을 뽑아 들었다 두 발로는 땅을 꿋꿋이 디디고 서서

왼손으로 손바람을 일어켜 금모사왕 오빈기의 손바람을 막아냈다 .

전번에 회양방의 본거지인 금사보에서 노영탄이 일찍이금모사왕과 손바람을

겨누어보았을 때 벌써 오빈기의 손바람의 힘이 노영탄 보다는 떨어진다는 것이 드러났었다.

이제 오빈기는 눈앞에 무서운 대적(大敵)과 대결하게 됐는지라 .

몸에 지니고 있는 온갖 힘을 뽐냈을 뿐만 아니라 .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감히 두번 다시 이 무서운 적수를 호락호락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의 방비를 단단히 하고 덤벼든 판이었다.

그러나 사실인즉. 지난번에 싸웠을 때.

금모사왕은 노영탄의 놀라운 무술을 정말로 알지는 못했었다.

또 자기 자신도 강호에서 이름께나 떨치고 있는 인물이라고 자처했기 때문에 그다지 경계하는

마음도없었으며. 손바람을 한번 쓰는 데도 전심전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노영탄의 손바람의 무서운 힘을 거의 막아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모사왕 오빈기는 경계심을 단단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 흠. 여기서 이놈에게 또다시 걸리다니 ! 정말 운이 나쁜 판이다 !

여기서 우물쭈물 시간을 끌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테니 .........

우선 이놈을 빨리 처치해 버리고 이자리를 시급히 떠야만 ........ '

이렇게 조급한 마음이 든 금모사왕 오빈기는 그 혼자만이 독특하게 연구해 낸

감산장(憾山掌)이라는 술법을 쓰는 한편 전력을 기울려서 노영탄에게 매렬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또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까지 옆에서 거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팔조독경이라는 독기를 함부로 뿌리고 날뛰며. 노영탄이 틈만보이면

진격해 들어가려고 노리고 있다.

그들 부자는 똑같이 노영탄에 대한 마음이 골수에 사무쳐 있었다.

둘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살기등등해서 노영탄의 급소만 찌르려고 노리고 덤벼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노영탄을 사지(死地)에 몰아 넣고야 말겠다는 흉흉한 기세였다.

미친듯.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덤벼드는 부자의 위력은 실로 어느 때보다도

사납고 무서운 것이었다.

하나는 휙휙!

매서운 바람소리를 내며 손바람으로 쳐들어오고.

또 하나는 팔조독경 독기를 휘날리는 협공의 태세는 그 기세가 천지를 뒤집어엎을 듯 .

광풍노도와 같이 무시무시했다.

이 광경을 보자.

노영탄은 더 한층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극도로 긴장시켰다.

' 흥. 네놈들 둘쯤이야 . 함께 덤벼든들 .........

그러나 이놈들을 한시바삐 때려눕혀야. 감욱형의 행방을 추궁해 볼 수 있겠는데 ......... '

노영탄 역시 이 싸움을 빨리 끝장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뜸 건곤혼원검(乾坤混元劒)의 술법을 써서 그들을 대항했다.

일 대 이.

지극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지만 노영탄은 서슴치 않고 행동을 개시했다.

건곤혼원검 술법의 원칙이 되는 팔괘의 방위를 정확하게 지키면서.

동방 위치를 힘있게 디디는가 하면 흘쩍 비호같이 동남간방(東南間方)의 위치인

손지(巽地)를 빙글빙글 돌고 ........

그야말로 바람과 뇌성이 한데 어우러져서 진동할 듯했다.

노영탄은 손에 잡은 보검 금서 금을 어느 때보다도 힘을 들여서 바싹 죄어 잡았다.

당장에 보검에서는 길길이 뻗쳐나는 무서운 광체가 춤을 추는 듯 퍼져 나가서

둥글고 넓은 광막(光幕)을 펼쳐놓은 것처럼 세 사람의 몸을 완전히 그 속에 집어삼켜 버리듯

휩싸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왼손으로는 쉴세없이 억센 바람을 일어켜서 맹렬히 공격해 들어갔다.

손바람으로 들이치고 보검으로 찌르며 금모사왕 오빈기 부자의 급소인 혈도만 노리고

추호도 틈을 보이지 않으며 육박해 들어갔다.

금모사왕 오빈기를 말하면 깊은 산 속에 혼자 파묻혀서 20년 동안이나 온갖 고생을 하며

무술을 연마한 자다.

그 결과 얻어낸 것이 감산장이라는 독특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의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는 감히 적수가 되어서 싸울 만한 인물이 그리 많지 못했고

그가 산 속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이후.

이술법을 정말로 써본 것은 불과 몇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이런 ! 이놈이 검술로 한몫 보자는 거지 ! 과연 어지간한 놈이로구나 ! '

눈 앞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노영탄의 칼 쓰는 품이 날카롭고 매섭고 빈 틈이 없었으므로

금모사왕 오빈기는 극도의 분노 속에서도 가슴이 뜨끔하고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손에다가 전신의 힘을 모았다.

한번 또 한번 손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그것은 마치 미친 회오리바람처럼

노한 파도처럼 노영탄이 칼을 쓰는 어떤 틈만 노리고 무섭고 억세게 쳐들어갔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아버지보다 더 교활하고 음충맞고 악독한 놈이다.

그는 아버지의 손바람이 노영탄의 공격을 어지간히 막아내고 있는 것을 보자

적이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노영탄의 무술이 비범하다는 사실을

똑똑히 경험해 보았는지라 감히 우쭐거리고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지는 못하고 .

비급하게도 노영탄의 등들미로 돌아 들어가서 도습해 볼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영탄은 눈으로 네 갈래 길을 동시에 내다볼 수 있고.

귀로 팔방의 음향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재간을 지니고 있다.

금모사왕 오빈기 부자가 하나는 앞에서 또 하나는 뒤에서 맹렬한 공세를취하고 덤버드는

것을 보자.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으며 마음을 더욱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 으응! 이놈을 당장에 ......... '

금모사왕 오빈기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하나밖에 없는 외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사람을 산 채로 집어삼킬 듯한 광채로

노영탄을 노리며 한 걸음 가까이 육박해 들어왔다.

오빈기는 어느 때보다도 억센 힘을 모아 오른손으로 손바람을 일어켜 쳐들어갔다.

그것은 마치거대한 바윗돌 위에서 내리 문질러버리며 떨어지는 것 같은

무서운 압력을 가지고 노영탄을 향해 육박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무래도 아비 놈을 먼저 해치워야만 되겠다.'

도둑을 때려눕히려면 우선 그 두목을 먼저 거꾸러뜨려야 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생각한 노영탄은.

먼저 오빈기부터 처치해 버리고 나서 다시 아들 오백평을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이리하여 노영탄은 최대한의 힘을 전신에 불러일어켜서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섬이 없이 꿋꿋이 버티고 서서 오빈기의 손바람을 거뜬히 막아냈다.

뿐만 아니라 .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그 손바람을 뚫고 들어가면서 선뜻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두 개를 재빠르게 놀려.

오빈기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 급소인 혈도를 질풍같이 찔렸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의 보검을 더 한층 빠르고 매섭게 놀려 곧장 오빈기의 목구멍을 겨누며

찔러 들어갔다.

두 손을 한꺼번에 쓰는 노영탄의 동협(同夾)의 공세는 실로 추호도 흔들림이 없어면서도

빠르고 또한 변화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만일에 오빈기가 이에 대쳐하는 재간이 단 1초만이라도

느리거나 더디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치명상을 입고 나자빠져야 하는 위기일발의 찰나였다.

그러나 과연 오빈기는 어찌 됐든 출중하고 비범한 무술 솜씨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힐끗 ! 노영탄의 두 손이 각각 나누어져서  두 갈래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리자.

오빈기는 선뜻 자기 자신이 뻗쳐보낸 손바람을 다시 헤아릴 겨를도 없이 그대로 대경질색하여 .

공격을 계속할 염두를 낼 수 없었다. 

대뜸 손을 거두어 들이고 몸을 뒤로 뽑는 것이었다.

동시에 번갯불처럼 빠른 동작으로 몸을 구부정하게 굽혀 왼쪽으로 꿈틀 !

찔러 들어오는 노영탄의 왼손을 그대로 살짝 피해 버렸다.

그리고는 경각을 지체하지 않고 금모사완 오빈기는 두 손을 흘쩍 위로높이 쳐들었다.

그리하여 두 손에서 한꺼번에 일어나는 무서운 손바람의 힘으로 마침내 노영탄의

오른손에서 찔러들어오는 검세(劒勢)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한편 오빈기는 두 발로 땅을 쿵 하고 구르는 순간 껑충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공방전의 이 짤은 틈을 이용하여 금모사왕 오빈기는 선뜻 그의 허리에 차고 있던

금사편(金獅鞭)이라는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금사편 채찍을 뽑아 든 금모사왕 오빈기에게 노영탄은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점점 더까까이 육박해 들어갔다.

오빈기는 채찍을쥔 손을 흘쩍뒤집더니 후들후들 떨었다.

솨 !

채찍에서 발사되는 한 줄기 무서운 금빛 광선이 이런 소리까지 내면서

곧장 노영탄의 가슴팍을 향하여 쏘아 들어갔다.

다음 순간. 팍 !

그 금사편 채찍에서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음향이 일어났다.

오빈기가 채찍을 다시 거두어들여 가지고 손아귀에 힘을 더 주어서 갑자기

채찍을 홱 뿌리는 바람에 일어나는 소리였다.

채찍 끝의 날카롭고 뽀쪽한 고리는 마치 구멍에서 불쑥 뛰어내닫는 구렁이의 모습과도 같이

매섭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채찍 끝은 . 이번에는 곧장 노영탄의 얼굴을 정면으로 겨누며 휘둘러 들어갔다.

점점 눈앞으로 다가드는 체찍끝을 노려보면서도 노영탄은 추호도 겁내는 빛이 없이

몸을 꼿꼿히 버티면서 여전히 앞으로만 육박해 들어갔다.

한 손에 잔뜩 움켜잡은 보검 금서검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러며 채찍을 막아내는 데에만 

전력을 기울리는가 하는 순간 노영탄의 날카로운 칼 끝은 주춤하고 멈추어지는 듯 하더니.

그 눈 깜짝하는 찰나에 채찍끝을 보기 좋게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빈기는 이런 형세가 도리어 자기 편에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노영탄의 칼 끝이 금사편 채찍 끝을 선뜻 처버리는 것을 보자 금모사왕 오빈기는 마음 속으로 

또하나 다른 전법을 궁리하면서 은근히 기뻐했다.

있는 힘을 다해 채찍을 휘둘러서 노영탄의 보검을 한번 휘감아버리기만 한다면 .

그때에는 훽 뒤로 낚아채는 동시에 다시 힘을 써서 앞으로 급히 돌격해 들어간다면

재아무리 칼을 잘 쓰는 노영탄도 몸을피해 볼 겨를도 없이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서

상처를 입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야 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오빈기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노영탄의 금서검이 금(金)도 깍고 옥(玉)도 잘라버리며.

털끝만한 물체라도 두 동강 내버릴 수 있는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과연오빈기는 자기의 채찍 끝이 노영탄의 칼끝에 가까이 육박해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팔에다 온갖 힘을 주어서 획 금사편 채찍을 앞으로 내뿌렸다.

그리고 노영탄의 칼 끝이  매섭게 육박해 들어오는 것도 피하려 들지 않으며 .

손을 비호같이 날쌔게 휘둘러서 금서검의 칼날에 채찍을 칭칭 감아버리고 말았다.

' 이놈 ! 그 따위 섣부른 재간을 부려서 감히 내 칼을 피하겠다고 ? '

노영탄은 씽긋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띨 뿐이었다.

노영탄은 금모사왕 오빈기의 금사편 채찍이 칼날에 칭칭 감기는 것을 보자

오빈기가 어떤 재간을 부리려는 것인지 .

그의 심중을 꿰뚫듯이 들여다본 것이다.

' 이놈 ! 어디 한번 이 칼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보아라 ! '

노영탄은 칼 든 손에 힘을주어 획 뒤로 뽑는 척하더니 그대로 내리 치면서 깍아버렸다.

버석 !

그다지 크지도 않은 소리가 한번 들렸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금사편 채찍은 두 동강이 나서 보기 좋게 잘라져버린 것이었다.

" 아하하..........하하 ........... "

노영탄은 통쾌하게 한바탕 웃어젖혔다.

" 이놈 ! 그 따위 섣부른 잔꾀를 가지고는 ......... "

마치 제자에게 검술이라도 가르치고 있는 듯 태연자약한 태도로 여전히 계속해서

금서검을 맹렬하게 휘두러면서 곧장 앞으로 육박해 들어갈 뿐이었다.

번쩍 ! 번쩍!

칼날이 종횡무진으로 움직여질 때마다 무지개같이 찬란하게 발사되는 광체는

천지를 뒤엎을 것만 같았다.

' 이쿠 ! 이거 큰일인데 ......... 이놈의 칼 쓰는 품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데 ! '

금모사왕 오빈기는 금사편 채찍이 가볍게 두 동강 나는 것을 보자.

눈앞이 아찔할 만큼 겁을 집어먹고 대경질색했다.

잘라진 채찍을 그대로 잡고 앞으로 쳐들어가려고 했을 때에는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오빈기는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고수의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이러한 타격쯤으로 그대로 굴복하고 주저 앉아버릴 그는 아니었다.

이렇게 당황하고 긴장한 순간에도 오빈기는 손 안에 남아 있는 한 동강의 금사편 채찍을

다시한번 힘껏 움켜잡았다.

반 동강이 난 채찍을 마치 짧은 창이라도 쓰듯이 손을 날쌔게 뽑아서 여전히

노영탄의 가슴을 겨누고 비호같이 찌러며 육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노영탄은 반 동강의 채찍이 눈앞으로 다가드는 것을 깨닫자.

칼날을 가볍게 휘둘러서  그것을 거침없이 막아냈다.

' 안 되겠는걸 ! 이것만 가지고는 ........ '

오빈기는 대세가 기울어져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채자.

별안간에 엉뚱한 행동을 개시했다.

땅 위에서 껑충 높이 뛰더니 자리를 바꾸어 한 옆으로 비켜서서 다시 버티는 것이었다.

' 이놈 ! 비겁하게 자리를 뜨다니 ! '

노영탄은 이 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몸을 꿈틀하는 순간 방향을 바꾸어 오빈기를 추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 쏴 하는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어디선지 난데없이 억세고 모진

바람이 노영탄의 둥들미로부터 습격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 그대로 앞으로 쳐들어갈까 ?  뒤로 물러설까 ? '

노영탄은 주춤하고 동작을 멈추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땅 위에 엎드리듯 날쌘 동작으로 몸을 살짝 굽히면서

그대로  비호같이 앞으로 찔러 들어갔다.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을 꿈틀하고 고개를 전광석화같이 힐끗 돌려서 뒤를 돌아다봤다.

비급하게도 등들미로부터 습격해 들어오고 있는 것은 오백평의 악독한 무기 팔조독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백평으로 말하자면 .

과거에 노영탄과 대결했던 뼈저린 체험이 있었다.

노영탄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다. 

팔조독경 정도의 무기를 가지고는 감히 두 번 다시는 노영탄과 대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것을 헤아리고만 있을 수 없을 만큼 사태가 급박해진 것이다.

' 이쿠 . 이거  큰일인데 ! 아버님이 저렇게 끌려 나가다가는 ........... '

바로 눈앞의 아버지 오빈기의 위급한 정세를 보면서. 그대로 만 있을 수는 없었다.

' 모르겠다. 하여간 한번 독기라도 써서 덤벼들어보자. '

이리하여 오백평은 최후의 발악같이 앞으로 불쑥 나서면서

노영탄의 등들미를 습격해 드러간 것이다.

이 위기일발의 긴장된 순간에 노영탄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에 호수 밑 동굴 속을 뚫고 나갈 때 동굴 벽 위에 새겨져 있던 도형이 퍼뜩

머릿 속에 떠올랐다.

거기에서 배워둔 네가지의 술법 ...........

' 그 네 가지 의 술법은 손이나 칼에나 다 같이 응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네가지의 술법은 얼마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

이번 기회에 한번 시험해 보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랴 !'

노영탄의 심지나 성격은 중후했다.

무슨 일에나 내정하고 침착했으며 소흘히 지나쳐버리는 것도 없었고 .

티끌만한 일에도 차근차근히 궁리해 보는 청년이었다.

비록 칠흑같이 어두운 그 동굴 속에서 지극히 짧은 동안에 들여다본 도형에 불과 했지만

이미 그 속에 간직되어 있는 여러가지 오묘한 술법을 터득했으며.

그 동굴 벽에 새겨져 있던 글씨며 도형이 한 자 한 획도 빠지지 않고 머릿속에

훤히 기억되어 있었다.

새로운 술법을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한 노영탄은 여전히 건곤혼원검의 술법을 바꾸지 않으며

팔괘의 방위를 또박또박 디디면서 대항하다가 별안간에 자세를 바꾸어서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던 그 도형대로 제일 첫째 술법을 시험해 봤다.

그것은 바로 난상봉저라는 술법이었다.

동굴벽에 새겨져 있던 도형과 방식대로 .

또 거기 주해로 씌어져 있던 글자대로 칼을 휘두러고 몸을 써보니.

과연 노영탄의 총명한 터득력은 넉넉히 몇 놈이라도 대적할 만 했다.

노영탄은 두 발로 땅을 한번 구르는 순간 그대로 높직하게 솟구쳐 올랐다.

몸이 허공에 경쾌하게 떴다.

두 손을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하고 두 팔과 어깨를 시원스럽게 활짝 편 뒤.

두 발을 약간 움츠러뜨리며 쳐들고 양가슴을 턱 내밀며 숨을 크게 쉬었다.

마치 봉황이 두 날개를 펼치듯 난(鸞) 새가  하늘을 경쾌하게 나는듯 바로 팔조독경 오백평의

머리 위 공간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과연 노영탄이 이런 술법을 시험해보자 .

오백평은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져서 어쩔줄 모르고 당황했다.

노영탄의 재간이 어느 파의 특기인지 그것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

또 다음 순간에는 어떠한 신출귀몰한 동작을 할는지 통 상상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얼이 다 빠진 사람같이 어리둥절해서 허공에 떠올라 있는 노영탄을 쳐다볼 뿐이었다.

' 비상한 재간을 가진 놈이구나 ! 저놈이 대체 어쩔 작정일까 ?'

오백평이 이렇게 급을 집어먹으면서.

다시 몸을 홱 뒤집으면서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노영탄을 바라보자니.

한 줄기의 괴상하고 억센 힘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자기의 머리를 겨누고 맹렬히 습격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오백평은 몸을 피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를 만한 겨를이 없었다.

또 어떤 방향으로 어덯게 피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오백평은 얼떨결에 손 안에 잡고 있던 무기를 정신없이 쳐들어서 허공을 들이치며

그것으로써 자신을 방비하려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오백평을 제멋대로 몸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에 든 금서 보검을 쏴악 하고 아래로 휘두르더니 그대로 오백평의 두 팔을 겨누고

무섭게 내리쳤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바람을 일어켜서 곧장 오백평의 머리와 얼굴을 노리고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머릿속에 기억해둔 그 술법의 도형을 더듬으며 그의 터득의 힘만을 가지고

첫째 술법인 난상봉저를 한번 시험해 본 데 불과 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이 놀라운 술법의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가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노영탄은

손이 내키는데로 몸이움직이는 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둘째 술법인 용비어조를 계속해서 시험해 보았다.

순식간에 두 번이나 술법을 바꾸는 노영탄의 무서운 재간을 보자.

오백평은 눈앞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겁을 집어먹엇을 뿐만 아니라.

한편에서 와락 덤벼들어서 협공의 태세를 취하고자 하던 금모사왕 오빈기까지도

극도로 당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도대체 이 세상에 무슨 저렇게 놀라운 재간을 부리는 놈이 있단 말이냐 ! '

금모사왕 오빈기는 당황하고 긴장된 순간에도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노영탄이 부리고 있는 재간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재간인지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무림에서 제딴에는 제법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오빈기도.

일찍이 이런 재간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빈기 부자들만이 알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재간을 부리고 있는 노영탄 자신이 생각해 봐도 신기하고  오묘하고 괴상하기 짝이없는

일이었다.

두 번째 술법을 시작했을 때. 

노영탄은 손과 발이 자유자제로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여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이 일찍이 경험해 본일이 없을 정도로 경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영탄은 단지 기어하고 있는 그 도형을 따라서 동작을 했을 뿐인데 .

이렇게도 빈틈없이 들어맞을 줄은 몰랐다.

마치 손한번 다리 한번 움직이고 떼어놓는 것이 그 도형의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어떤 무형적인 위대한 힘이 가르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실인즉.

노영탄의 무술이 무르익을 대로 무러익었고 오묘 불가사이한 조화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인 노영탄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해어부를 따라서 5년 간이나 무술을 배우는 동안에 .

남해어부가 지니고 있는 정화(淨化)와 진전(進展)이란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노영탄의 것이 되고말았으니.

그것은 순수히 내재적인 체력과정신력을 기초로 삼고 연마된 무서운 술법이였다.

그리고 남해어부의 건곤혼원장이나 건곤혼원검이 이런 내재적 체력과 정신력의 결정임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본래 천품과 자질을 지닌 몸이 5년 동안이나 무술을 연마했고 .

거기다 또 새롭고놀라운 술법을 여러가지 터득했으나 .

오빈기 부자쯤이 일시에덤버들기로 무엇이 두려울 것이랴 !

본래 노영탄이 동굴 벽에서 발견한 문자와 도형은 바로 저『숭양비급』의 작자

즉 북송의 어떤 이인이라는 사람이 새긴 것이었다.

이 이인이란 사람은 무술에 관한 비급 한 부를 저술해 놓은 다음에.

허술한 점을 좀더 보충해 놓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연구하고

정진하며 불철주야. 인고단련하여 마침내 그 네 가지 의 오묘한 술법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그러나 이 이인은 그 네 가지의 오묘한 술법을 창조해 놓았을 때 .

그의 수명이 다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가 은거해 있던 동굴 속에서 최고도의 내재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오로지 손끈에다

집중시켜서 그 도형과 문자를 깊이깊이 새겼던 것이다.

그러나 문자를 새기고 났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고.

억지로 도형을 새기고 있을 때에는 머릿속까지 산만해질 지경이어서.

최후에 간신히 도형을 새겨놓고는 성명이나 연월일을 다시 새길기력이 없어.

그대로 서쪽 방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동굴 벽에 새겨져 있던 네 가지 무예의 술법은『숭양비급』과 더불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서로 장단을 맞추어서 합쳐저야만 완벽하고 놀라운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숭양비급』이 없다 할지라도. 단지 그 네 가지 술법만 가지고도 감히 어떤 인물도

대적하고 덤비기 어려울 만한 절세의 탁월한 무술을 연마할 수는 없지만.

역시 그것만 가지고는 내재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아울러 연마할 수 있는 묘법이 부족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숭양비급』만을 가지고 그 네 가지 술법을 모른다해도 물론 최고도의

내재적인 힘의 무술을 연마할 수는 있다.

심지어 얼굴에 늙은 빛을 드러내지 않는 술법이라든지 .

땅 위를 날아다닐 수 있는 술법이라든지 .

혹은 손가락을 한번 펴기만 하면 바람을 일어킨다든지 ..............

그런 오묘한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역시 어느 한쪽만을 가지고는 무술에 있어서 아쉽고 부족한 것을 완전히 면할 수는 없다.

그 네 가지 술법이나.『숭양비급』이나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결국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상대방을 패하게 하고야 만다든지.

혹은 술법을 한번만 쓰면 적을 그대로 물리쳐버릴 수 있다든지.

그런 경지에까지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양자가 서로 융합하고 장단이 맞는 다음에야 비로소 가히 천하무적이랄 수 있는

불가사의한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노영탄의 무술 실력으로 말하자면 .

오직한 사람 . 그의 스승인 남해어부 상관학을 제외하고는 강호 천지가 비록 넓다 하더라도

가히 그에게 대적할 만한 인물이 없을 정도였다.

노영탄의 내재적인 체력이나 정신력의 연마는 아직도『숭양비급』이란 것을 연구해 보지도

못했고 그것을 터득하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이미 그가 지니고 있는 재간만으로도 무술의 불가사의한 조화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네 가지 도형과 문자를 한번 보았을 때부터 그것을 완전히 터득했으며.

이제 와서 자유자제로 거침없이 그 술법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술법인 용비어조를 썼을 때.

노영탄의 전신은 또다시 별안간에 껑충 땅 위에서 높이 솟구쳐 올랐다.

허공에서 네 활개를 자유자재로 쭉 폈다 .

마치 오백평의 몸둥아리를 송두리째 고스란히 그 네 활개의 테두리안으로 몰아넣어서

가두어 버릴 것만 같다.

오백펴은 일찍이 벽송관에서 노영탄의 무서운 무술 앞에 톡톡히 혼이 난 바 있었다.

그의 건곤혼원검의 무서운 위력이 어떻다는 것을 느구보다 톡톡히 체험해 봤다.

그런데 이제 노영탄이 또다시 건곤혼원검 뿐만 아니라 일찍이 이 세상에서 보도 듣도  못한

절묘한 무술로 덤벼드니 오백평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이놈이 대체 어떤 놈이기에 ? '

팔조독경 오백평은 극도로 당황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몸둘 곳을 알 수 없었고 다리와 팔을 어떻게 놀려야 될지 .

그저 어떤 무서운 압력이 전신을 내리누르는 듯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기는 싫었다.

마지막 발악을 해보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손에 잡고 있는 무기 즉 팔조독경을 불쑥 하늘을 향해 찌르고 휘두르고 하면서

그로써 노영탄의 공격의 테두리 속으로부터 탈출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발악에 불과했다.

노영탄의 몸을 쓰는품은 빠르기가 전광석화와 같아서 털끝만큼도 벗어날 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오른손에 든 보검 금서검이 찌르고 달려들 뿐만 아니라.

노영탄의 왼손마저 별안간에 매섭고 사나운 바람을 일어켜 오백평의 등들미로부터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이 세번째 술법을 써볼 기회도 없이 오백평은 벌써 두 다리가 흔들흔들하고 눈앞이

아찔아찔하여 노영탄이 무슨 술법을 어떻게 바꾸어가면서 쓰고 덤벼드는지.

그것조차 분간해 낼 수 없었다.

팽 !

오백평은 단지 전신이 움츠러들 듯 매섭게 소름 끼치는 소리를 한번 귓전에 들었을 뿐.

노영탄의 손바람에 보기 좋게 한번 맞아버리고 만 것이다.

비칠비칠대며 몇 발자국인지 간신히 앞뒤로 주춤거리다가 별안간 두 다리에 맥이 탁 풀리며

휘청거렸다.

철썩! 쾅!

오백평의 전신은 마치 한 개의 장작개비가 간단히 쓰러지듯 그다지 요란치도 않은 소리를

내면서 벌컥 뒤로 나자빠져서 땅 위에 딩굴고 말았다.

오백평은 그래도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쳤다.

이를 악물고 몸을 다시 일어켰다.

그러나 바로 이때 노영탄이 질풍같이 달려들더니

번쩍하고 왼손을 번개처럼 휘두르는가 하는 순간 가운데 손가락 두개를 꼿꼿이 세우더니

오백평의급소를 간단히 쿡 찔러버리는 것이었다.

간신히 일어서 보려던 두 다리가 그대로 도로 주저앉아버리며 아찔  정신을 잃고 

졸도해 버리는 오백평.

노영탄이 몸을 채 이편으로 돌리기도 전에 난데없이 등들미로부터 처참하면서도 무섭고

미친 사람의 음성같이 저주에 가득 찬 소리가 울부짖듯이 들려왔다.

" 네. 이놈 ! 내 너와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 테다 ! "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금모사왕 오빈기 였다.

당장에 튀어나올 것만 같이 시뻘겋게 충혈이 된 부리부리한 눈

고함을 지러느라고 호랑이 아가리같이 무섭게 벌려져서 으르렁대는 큰 입.

그는 손을 엎치락뒤치락 휘둘러서 매렬한 손바람을 일어키며.

노영탄의 등들미를 노리고 직통으로 화살같이 쏘아 들어갔다.

' 으흠. 이번에는 애비놈마저 혼이 나봐라 ! '

노영탄은 태연자약했다.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을 쓰러뜨리는 순간.

노영탄은 벌써 그의 배후에서 아버지 금모사왕 오빈기의 습격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더 한층 여유작작하게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초조하게 굴 것이 조금도 없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홱 !

몸을 그쪽으로 돌리는 동시에.

허리에다 힘을 주어 꿋꿋이 버티면서 여전히 그 네 가지의 술법으로 오빈기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금모사왕 오빈기는 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간신히 구출해 낸 외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노영탄에게 급소를 찔리고 깩 소리도 못하고 졸도해 버리다니 ..........

바로 눈앞에 뻗어버린 채 장작개비처럼 나둥그러져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

분하고 원통하고 저주스럽고 .........

그의 심정은 이루 형언하기도 어려웠다. 

그뿐이랴. 자신이 유일한 무기로 든든히 믿고있던 금사편 채찍까지 두 동강으로

잘라져버리고 말았으니.

길(吉)한 결과보다는 흉(凶)한 결과가 더 많은 오늘 밤.

그러나 그는 미리부터 이것을 내다보았으며 거기에 대한 단단한 각오와 결심이 있었다.

오빈기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외눈을 무섭게 굴렸다.

이제야말로 전신에 있는 힘을 다해서 죽느냐. 사느냐.

판가름을 해야만 될 때요.

설사 노영탄을 이겨낼 만한 자신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차피 이리 된 바에야.

이편에서 둘이 다 죽더라도 저놈 하나라도 그대로 살려두지는 않겠다는 비장하고도 악독한

결심을 한 것이다.

' 좋다 ! 내가 죽는 것은 좋다 ! 그러나 내가 죽게 된다면 네놈도 나와같이 함께 죽어야만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라 ! '

오빈기는 이렇게 악독한 부르짖음을 자기 가슴속에서 불길같이 활활 태우며 덤벼드는

판이었다.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드는 판이니 .

오빈기의 날뛰는 품이나 항거하는 위력은 실로 사납고 놀라운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노영탄이 그 네 가지 술법을 차근차근 .

그리고 가장 정확하고 자신만만하게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제아무리 힘이 억세고 사납고 악독하다는 금모사왕 오빈기도 헛되이 죽을 힘을 다해서

대항할 뿐 노영탄의 몸이 어느 면적과 어느 공간 속을 뛰고 날고 하는지 그 형체조차

똑바로 잡아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건 헛수고인데! 단지 내 몸이라도 피해볼 구멍이 있다면 ....... '

오빈기는 아무리 최후의 발악을 해봐도 감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놀라움과 당황한 심정에 사로잡혀서 노영탄과 이 이상 대적하고 싸울 수 없다는

자신을 깨달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쳐버릴 구멍만 찾게 되었다.

노영탄이 난봉상저와 용비어조의 두 가지 술법을 써보고 나서 .

또다시 세 번째를 쓰려는 바로 그 찰나에 금모사왕 오빈기는 손바닥을 흘쩍 뒤집는 척하더니

몸을 위로 뛰거나 앞으로 내밀지 않고 별안간에 성큼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분명히 쥐구멍을 찾고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노영탄은 재빨리 알아챘다.

'이놈! 달아날 궁리를 하다니 ........

네가 네놈을 놓쳐?

그러게 호락호락 달아나진 못하리라 ! '

노영탄이 오빈기를 재멋대로 달아나게 내버려둘 리 만무했다.

노영탄은 몸을 주춤하고 고의로 동작을 멈추는 척하더니.

그틈을타서 암암리에 보다 더 억센 힘을 움직일 준비를 갖추었다.

오빈기가 몸을 꿈틀하고 방향을 바꾸어서 발을 떼어놓으려는 찰나.

노영탄은 털끝만한 여유도 주지 않으면서  세 번째 술법을 전개했다.

이순간 몸이 또다시 허공에떴다.

민첩하고 빠르기가 전광석화와 같이 오빈기의 등들미로 날아들어 맹렬한 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 이. 비급한 놈아! 어디 그렇게 만만히달아날 수 있을 줄 아느냐?  핫핫핫 ! "

오빈기는 뒤통수에서 노영탄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억센 바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동작이 이다지도 화살같이 빠르리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다시 몸을 돌려위치를 바꾸어서 상대방을 대적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해서 좌우 양편으로 몸을사리고 피해 보자니 역시 상대방이 어느 지점의 허공에

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위기일발.

오빈기는 무작정 껑충 뛰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불끈 솟구쳐서 오빈기역시 2.3장 높이나 되는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어찌 상상했으랴 !

노영탄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채로 여전히 앞을 향하고 습격해 들어올 줄이야.

오빈기는 저절로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서 도리어 노영탄과의 거리를 가까이 해준 데 불과했다.

노영탄의 보검 금서검이 번쩍하고 휘둘러졌다.

새파란 칼날이 번득이는 서릿발처럼 매서운 광체를 뿜었고 동시에 한 줄기 핏줄이 뻗어 나왔다.

" 어이구 !  아아악 ! " 

금모사왕 오빈기의 처참하고 침통한 비명이었다.

오빈기의 몸뚱어리는 마치 줄이 끈어진 연과도 같이 3장이나 되는 허공으로 둥실 뜨더니

그대로 땅 위에 곤두박질치면서 졸도해 버리고 말았다.

두 발의 복사뼈에 칼을 맞고 땅 위에 나둥그러져버린 오빈기.

그기서 철철 샘솟듯 흘러나오는 시뻘건피를 노영탄은 허고에 뜬 체로 확인하고 있었다.

" 진실로 가엾고 불상한 일리다 !  네놈의 소행이 그다지 악독하고 잔인하지만 않았던들

이렇게 처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을 .............. "

노영탄의 혼잣말이었다.

금모사왕 오빈기가 땅 위에 나자빠져버리는 참혹한 광경을 눈앞에 보면서

노영탄은 한편 통쾌하기 이를 데 없는 심정이었으나 .

또 한편으로는 딱하고 가엾고 불상한 생각을 금치 못했다.

강호에서 온갖 악독한 짖을 도맡아 해오던 이들.

그들이 마탕히 받아야만 될 하늘이 주는 최후의 벌이라고 할지라도.

노영탄은 이들 부자의 처참한 최후를 볼 때.

공허한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죽은듯이 나자빠져 있던 오빈기가 땅 위에서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수닭과도 같이 갑자기 후두둑 맹렬히 발버둥질을 쳐서 몸을 뒤집어보려고 애썼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한번 땅 위에서 펄쩍 뛰어봤다

그리고 갈라지고 떨리는 음성으로 최후의 비명을 질렸다.

" 우후후후 ........저. 저놈한테 ....... 내 ..내가 ....... 내가 ....... 우후후후후......... "

그러나 그 이상 더 말을 못하고 다음 순간 그대로 다시 땅 위에 풀썩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얼굴에서 굵다란 콩알 크기의 커다란 땀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모래와 흙을 물들이며 퍼져 나가는 시뻘건 피.

그의 두 다리는 온통 흙투성이요.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한 인간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허우적거리는 애타는 모습 .

그것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노영탄의 얼굴도 심각하고 비장했다.

금모사왕 오빈기가 비록 강호 무림에 있어서 그 소행이 만악지도배로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마귀두목 같은 존재에 불과 했었다할지라도

역시 한 인간의 최후란 슬픈 것이요.

가엾은 것이었다.

노영탄은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가 조용히 떴다.

아무리 가엾게 생각해도 오빈기의 부상당한 정도는

이미 어떤 방법으로도 소생시킬 수 없을 지경이었다.

노영탄은 정중하게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오빈기의 옆에 무릅을 꿇고 앉아 왼쪽팔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는 식지로 오빈기의 사혈 위를 가볍게 조용히 찔렀다.

여태까지 꿈틀거리던 오빈기의 전신은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

지극히 편안하게 잠드는 사람같이 눈을 스르르 감고 숨을 거둬버렸다.

노영탄은 뻗어던 팔을 다시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 악독한 놈이 마탕히 받아야 할 천벌이기는 하지만 ........... '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중대한 생각을 하면서 꽤 오래동안 땅 위에 꿇어앉은 채로 묵묵히 있었다.

' 강호 천지에서 금모사왕 오빈기가 없어졌으니 .

이제부터는 과연 무림이 안온하고 편안할 수 있을 것인가? '

악독하고 잔인무도한 적을 통쾌하게 물리쳤다고 하지만 노영탄의 마음속은 편안할 리 없었다.

이궁리 저궁리 곰곰 생각에 젖어면서 보검 금서검을 칼집에 도로 꽂았다.

그리고는 팔조독경 오백평의 신변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그의 급소인 혈도를 몇 번인지 가볍게 두들겼다.

오백평이 천천히 힘없는 눈을 다시 뜨기를 기다려서 노영탄은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 숭양파의 그 감씨댁 아가씨를 납치해다가 어디다 두었느냐?

바른대로 말해라 !  추호라도 숨기거나 거짓이 있다면 네놈마져 ........ "

눈을 스르르 뜬 오백평은 몽롱한 시선으로 노영탄을 쳐다봤다.

여전히 땅 위에서 간신히 꼼지락거리더니.

노영탄의 말을 듣자.

그저 묵묵히 머리를 옆으로 흔들어 보일 뿐이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서 있는 노영탄은 초조한 마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갑자기 오백평에게로 달려들어서 두 어깨를 흔들며 더 큰 음성으로 추궁했다.

"빨리말해라 ! 사실대로 빨리 말해라 !  네놈은 그 아가씨가 어디 있는지 알 것 아니냐?

분명히 네놈들이 그 아가씨를 납치해 간 것이지.  어서 말해라 ! "

두 어깨가 맹렬히 흔들리는 바람에 오백평은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가느다란 음성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 우리는 그 아가씨를 납치한 일이 없소 !

우리는 그 아가씨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보지도 못했소 !

우리는 ....... 우리는 .  정말로 .......... 그런짓은 .......... "

죽을 힘을 다해서 겨우 이렇게 대답하는 오백평의 몰골을 보자.

이미 기진맥진해서 그 이상 몸을 지탱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노영탄이 비록 칠팔부 정도의 억센 힘을 쓴 데 불과하다지만 .

그것이 오백평의 급소를 정통으로 찔렀으니 어찌 감히 견딜 수 있을 것이랴.

인사불성이 돼가는 힘없는 음성으로 간신히 몇 마디를 하는 품이 결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놈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 그 아가씨는?

감욱형은 어떻게 되어서 실종이 되고 만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인걸 ! '

곰곰 생각하면서.

노영탄이 다시머리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에는 오백평은 이미 그대로 두 번째

혼절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 '

노영탄은 어쩔 수 없이 오백평의 사혈을 조용히 찔러 편안히 눈을 감도록 해주었다.

일장의 치열한 싸움도 끝났다.

정말 사생결단이 끝나고 말았다.

호반의 황벽한 마을은 또다시 죽음 같은 적막을 회복했다.

노영탄은 땅 위에 뒹굴어버린 두 시신을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서 있었다.

묵묵히 생각한 끝에. 다시 시체 앞으로 가까이 걸어가서 .

오빈기의 시체를 끌어다가 아들 오백평의 시체와 나란히 뉘였다.

노영탄이 두 시체를 한자리에 나란히 눕히기 위해서 오빈기의 시체를 건드렸을 때

뜻밖에도 오빈기의 몸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비단에 수를 놓아서 만든 조그마한 가죽 주머니였다.

노영탄은 얼른 그것을 집었다.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비단 주머니 속에는 무엇인지 조이장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노영탄은 호기심을 금치 못하며 그 주머니를 벌리고  그속에 들어 있는 종이장을 꺼내 봤다.

그것은 한 장의 엷은 누런 빛깔의 비단 종이였다.

장방형으로 모나게 접혀 있었다.

그것을 펼쳐보니 뜻밖에도 두 자 사방이나 됨직한 널찍한 종이장이었다.

그 종이장 위에는 온통 깨알같은 부호가 찍혀져 있었는데.

마치 한 장의 지도와 같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지점이 명백히 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영탄은 아무리 들여다 보고 또 보고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종이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노영탄은 다시 주머니속에 손을 넣어서 더듬어보았다.

주머니 밑바닥에서 뚤뚤말린 종이 한 줌이 손에 잡혔다.

' 흐음? 이건 또 무엇이냐?'

노영탄은 점점 더 호기심을 품고 그 뚤뚤만 종이를 급히 펼쳐보았다.

무엇인가 글씨가 씌어 있었다.

희미한 별빛에 비춰가며 있는 시력을 다해서 한 자 한 자 자세히 더듬어보자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무림의 처참한 싸움은 불가피한 형세로다.

인간의 생사에는 명(命)이란 것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하나 몇 백년 후에야

이런 싸움이 저절로 연기처럼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리라.

숭양파와 회양방은 병존키 어렵다 하나 이는 오로지 명예와 이해관계를 위하여

벌어진 싸움이니 진실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함을 이 자리에 교훈해 두노니

나의 이말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라.

이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지도는 나의 딸 자심에게 무려주고자 하는 바이니.

이것으로써 평생을 편안히 살도록 하고 두번 다시  어려운 강호에 발을 들여놓지

말지어다.

                                                    <개세천왕 연약파가 남기는 유언>

 

그 글을 다 보고 난 노영탄은 한편 놀랍고 한편 한없이 기뻐기도 했다.

천만 뜻밖에 개세천왕 연약파의 유서와 지도를 발견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유서에 적혀 있듯이 지도만 가지면 평생을 편안히 살 수 있다 하니.

그것은 반드시 어떤 보물을 감춰둔 지점을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노영탄은 기쁨을 금치 못한 것이다.

' 한시바삐 연자심을 찾아서 이것을 전한다면 그 아가씨는 얼마나 기뻐할까 ! '

노영탄은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놓고 젊은 정열과 흥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노영탄의 심정에는 형언할 수 없도록 미묘한 바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마음은 송두리째 감욱형에게 쏠려 있었다.

그밖의 어떤 사람에게도 특별한 관심이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한빙선자 연자심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머릿속 깊이 새겨진 또렸한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처음 이 아가씨를 회안에서 만났을 때 노영탄은 한빙선자 연자심을 감욱형으로 잘못 보았다.

그때 노영탄은 모든 정신을 미칠 듯이 이 아가씨의 신상에만 집중했었다.

5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연연한 심정과 그리움에 불타는 그의 두 눈동자는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연자심의 얼굴을 태워버릴 듯이 쏘아보고만 있었다.

한편 한빙선자 연자심은 그에게 조금도 쌀쌀맞거나 매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뜻밖에도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해 주기까지 했었다.

처음으로 이 아가씨와 서로 말이 오고가고 했을 때 .

무엇인지 원한에 가득 차 있는 듯 하면서도 깊고 그윽하며 처량하리만큼 애틋하면서도

맑고 깨끗하던 얼굴과 태도 그 순간부터 깊이깊이 머릿속에 뿌리박힌 연자심의 인상

노영탄은 좀체로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사람을 잘못보았으며 연자심은 감욱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는 했었다.

그는 5년 동안이나 주야로 그리워하며 속태우던 아가씨가 연자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젊은 청춘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보드라운 인정이란 컬날과는 같을 수 없었다.

무술의 경우 한번 탁 쳐버리면 끝장이 나듯이 그렇게 일도양단에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노영탄은 새로운 것을 보면 옛일을 잊어버리는 그런 위인은 아니었다.

' 그런데 무슨 까닭에 ? '

그는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노영탄은 언제나 한빙선자 연자심에게는 일종의 부끄러움과 미안한 생각을 품고있다.

그러나 감욱형은 자리를 같이하는 순간마다 언제나 감욱형의 아리따운 용모를 바라보면.

또 하나 다른 그림자가 그를 괴롭히며 눈 앞에 떠올라 사라지지않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한빙선자 연자심의 모습이였다.

무슨 힘이 무엇 때문에 그로 하여금 이렇게 시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노영탄은 몇 번이나 자문자답해 보았는지 모른다.

' 내가 한빙선자 연자심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천만에 ! 그럴 리가 없다 !

이렇게 스스로 부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연자심의 그림자를

깨끗이 지워버릴 수 없는 노영탄이었다.

노영탄은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해보았었다.

' 한빙선자 연자심이 악중악과 좋아진다면 다행한 일이 아닐까? '

그러나 이렇한 생각을 할 때마다 .

그와는 정반대의 심정이 똑같은  정도로 노영탄의 머릿속을 따라단녔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면서도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이상야릇한 심정이........

이런 두 가지 모순된 심정은 그것이 비록 수습하기 어려운 엄중한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노영탄의 가슴속에는 이미 한가지의 부담을 형성하고 있었다. 

감욱형과 한빙선자 연자심은 그 얼굴이판에 박은 듯이 서로 닮았으며 풍기는 인상 역시

둘 다 똑같은 속된 점이 없이 맑고 깨끗하다지만 두 아가씨의 정신이나 태도에는

완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감욱형은 어렸을 적부터 어버이의 총애 속에서 자라난 아가씨였다.

부족한 것을 모르는 편하고 아름답고 쾌락한 환경 속에서 장성했다.

그만큼 이 아가씨는 천진하고 순결하고 남에게 굴하려 들지 않는 꼬자꼬장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편 연자심은 그와는 반대로 어렸을 적부터 온갖 봉변과 기화(奇禍) 속에서 자라났으며

강호천지 갖가지 인물들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장성했다.

이 아가씨를 사랑해 주거나 감사주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도리어 이 아가씨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 뿐이었다.

이렇한 환경 속애서 자라났으면서도 연자심은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났으나 진흙에 물들지 않는

한 송이의 아리땁고 깨끗한 연꽃과도 같이 혼탁한 세파 속에 휩쓸리지 않는 깔끔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산전수전 쓴맛 단맞을 골고루 겪어본 이 아가씨의 성격은 자연 온순하고 부드러웠다.

노영탄은 감욱형의 얼굴을 대하기만 하면 저 숭양표국의 옛날 정경을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었다.

처량하고 가련하고 얼굴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자기 자신의 바보 같던 그때 모습.

악중악에게 조롱을 당하고 놀림감이 되었던 그때의 광경 .......

이런 것들을 회상할 때마다 .

노영탄은 언젠고 감욱형의 앞에 나서면 이 아가씨에게 일종의 은혜를느끼고 거기 보답해야겠다는

심정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이제 비록 노영탄은 무술을 연마하여 절예를 몸에 지닌 당당한 청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감욱형에 대해서는 무엇인지 모르게 순종해야 하고 비위를 거슬릴 수 없다는 의무적인

심정을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 감욱형의 머릿속에는 자나깨나 악중악이라는 청년의 그림자가 서려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은 이런 엄연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악중악에 대한 감욱형의 감정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둘 사이의 감정 역시 .

마치 한빙선자 연자심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똑같이 무엇인지 모르게 무형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점이 있다는 것도 노영탄은 명백히 알고 있었다.

또 다시 다른 각도에서 연자심이란 아가씨를 생각해 볼 때.

노영탄은 자기의 처지나 신세가 그녀와 몹시 비슷하다는 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파에 시달려 왔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영탄이 한빙선자 연자심을 대하게 될 때는 감욱형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일종의 자비심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노영탄이 소년 시절에 감욱형이란 아가씨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으며 또 일체 다른 어떤 아가씨와도 접촉해 본 일이 없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욱형의 그림자가 머릿속 깊이 새겨져 있으면서도  그것은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에 노영탄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바와 사실이 꼭 들어맞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와서는 감욱형을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한빙선자 연자심 역시 넓은 천지 어느 곳에 흘러가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비록 망망한 인해(人海)에 중생(衆生)이 총총히 떠돌고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때의 노영탄은 마치 혈혈단신 의탁할 곳도 없이 무변대한 창공을 닥치는 대로 헤매고 있는

한 마리의 짝 잃은 외기러기 같은 자기 자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산란하고 복잡한 심정 속에서도 노영탄은 오빈기의 신변에서 굴러나온 종이장을 잔뜩 움켜쥐고

한동안 실신한 사람같이 어떤 한 가지 생각에만 젖어 있었다.

싸늘하고 시원한 호수의 바람이 한바탕 획 하고 그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그제서야 노영탄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같이 깜짝 놀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두움과 죽음 같은 적막이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은 급히 허리춤에서 자그마한 오자병(烏瓷甁) 하나를 꺼냈다.

투껑을 열어 그속에 들어 있는 소골화니로(銷骨化尼露) 몇 방울을 금모사왕 오빈기의 시체에다

떨어뜨려주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오빈기 부자의 시체는걸쭉한 오수(汚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노영탄은 그 오자병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고  몸을 돌려 초가집을 향해 걸어갔다.

대뜸 문을 밀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는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칠흑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었다.

노영탄은 있는 시력을 다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희미한 공간으로 아직도 기름등잔이 그대로 상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영탄은 부싯돌을 찾아서 가까스로 등잔에 불을 켰다.

안방에 나둥그러져 있는 여러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 보았다.

도합 여섯 명이었는데 모조리 혼수혈에 찔려 졸도해 있었다.

노영탄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서 막힌 혈도를 풀어주고 깨어나게 해주었다.

그 여섯 명은 과연 고기잡이의 한집안 식구들이었다.

하나하나 똑같이 몇 번인가 기침을 쿨룩쿨룩 하더니

슬며시 정신이 들면서 몸을 꿈틀거리고 눈을 떴다.

그들 한집안 식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여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들은 난데없이 그들 옆에 나타나 있는 노영탄을 흘끗 쳐다보더니.

부들부들 떨면서도 알 수 없는 사실에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 핫핫핫 ! ....... "

노영탄은 그 광경을 보자.

우선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 여러분 !  이제는 놀라시거나 겁내실 일은 없소 !

여러분들을 이 꼬락서니를 만들고 괴롭힌 놈들은 벌써 소생이 모조리 때려눕혀서 쫓아버렸으니까.

떼를 쓰는 것 같지만 밥이나 한 끼 얻어먹었으면 좋겠는데 ....... 어떻겠소 ? "

그 여섯 명 식구 가운데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바로 남편과 아내 같았으며.

나머지 네 식구는 그들의 아들들인 모양이었다.

딸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만일에딸아이가 그 틈에 끼여 있었다면 저 악독한 팔조독경 오백평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욕을 당하고야 말았을 것이 뻔한 일이었다.

딸아이가 없었다는 것은 이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그들 부부는 노영탄의 말을 듣더니 그저 구세주가 나타나서 천만다행이라는 듯

몸을 일어켜 허리를 굽실굽실대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감격해서 말했다.

" 누구신지도 알 수 없는 젊으신 분께서 저희들의 목숨을 건저주신 은혜.

어찌 다시 눈을 감기 전에야 잊어버리겠습니까 !

저희들이모셔야할 귀중하신 손님께서 떼를 쓴다고 하시는 말씀은 천부당만부당하십니다.

태산 같은 구명의 은혜를 어찌 다 보답하겠습니까 ! "

한편. 노파와 아들들은 다시 살아난 감격에 몸둘 바를 모르며 허둥지둥 .

오빈기 부자가 여태까지 마시고 먹고 하느라고 어지럽게 흩어진 상 위의 국그릇이며

반찬. 안주 접시를 급히 치워버리고 다시새로 음식을 차리느라고 분주히 굴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밥과 반찬이 상 위에 가득히 차려졌다.

늙은이와 큰 아들 둘이서는 노영탄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공손히 식사 시중을 들고 있었다.

노영탄은 그제서야 피로를 풀면서 한 젓갈 두 젓갈 음식을 집으면서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 대관절 여기가 무슨 고장이요?  어디쯤 되는 지점이요? "

" 여기는 홍택호 남쪽 기슭에 있는 금가진이라는 조그만 어촌입니다.

사양까지는 백 수십 리 길이 족히 됩니다. "

" 고맙소 !  이처럼 후대해 주시니 .......... "

노영탄은 간단히 인사말을 남기고 총총히자리를 떴다.

자신이 당도해 있는 지점이 어디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곧장 회안부 쪽으로 달려갈 작정을 했다.

 

<다음은 필사추적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