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15장 격전대결(激戰對決)

오늘의 쉼터 2013. 12. 11. 22:39

정협지(情俠誌) 3권


제 15장 격전대결(激戰對決)


앵무주 섬의 결투.

 

 감욱형은 그 이상 무엇을 헤아리고 돌볼 겨를도 없이 선뜻 몸을 솟구쳐

넒은 마당으로 내달아 온갖 힘을 두 팔에 모아서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서는

곧장 풍풍에게 습격해 들었다.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 영감은 감욱형의 행동이 경망하다 싶어

가로막아버릴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몸을 날리고 손을 쓰며 내닫는 감욱형의 동작은 전광석화 같이 빨라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탁창가도 방곤 영감도 어쩔 수 없이 한 옆으로 비겨서서 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도리밖에 없었다.

풍풍이란 놈은 북쪽 무림에서 상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기북인마 풍천의

조카뻘이 되는 만큼 무술이 어지간히 놀라운 놈이었다.

특히 손아귀 힘이 무섭게 세서 무림의 둣골목에서는 이놈을 적수로 삼고

덤빌만한 인물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대력귀수(大力鬼手)라는 별명으로 이놈을 불렸다.

이놈의 무지무지한 손에 한 번 스치거나 손아귀 속에 들어가버리면

십중팔구 목숨을 건지기 어려웠다.

감욱형의 아버지 감영장으로 말하자면.

본래. 무술에 있어서도 대력귀수 풍풍을 당해내지 못하는 위인인데다가

풍풍에게 암암리에 기습을 당하고 말았으니.

졸지에 이놈의 힘을 막아낼 수도 없이 옴짝달싹 못하고 해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대력귀수 풍풍은 자기에게 덤벼더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느끼자.

몸을 약간 움츠러뜨려 뒤로 물러서는 척하면서 순간적으로 두 손을 날쌔게 써서는

억센 바람을 일어켜 가지고 습격해 들어오는 상대방의 손바람을 막아냈다.

' 흐음. 요건 또 뭐냐? 나이 어린 계집아이가 당돌하고 방정맞게 이 마당엘 뛰어 들다니 !'

풍풍이자세히 보니.

이 긴장된 싸움터에 대담무쌍하게 뛰어든 것은 나이도 얼마 돼 보이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아닌가.

' 네깐 년이 재간을 지녔으면 얼마나 대단하겠느냐 !'

풍풍은 애초부터 감욱형을 멸시해 버렸다.

그러나 이편과 저편의 손바람이 한 번 맞닥뜨렸을 때 풍풍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흐음 ! 어린 년이 제법인데 ........

손바람도 어지간히 센편이고 ...........

그만하기에 덤벼들었겠지만 ............. '

그렇다고 대력귀수 풍풍이 감욱형을 대단한 존제로 알고 겁을 먹은 것은 아니다.

풍풍은 즉각 이런 판단을 내렸다.

' 제아무리 무술이 놀라운 년이라 할지라도

계집아이의 몸으로 싸우면 얼마나 싸울 수 있겠느냐!

싸움을 좀 오래 끌기만 하면 저절로 힘에 부쳐서 지쳐 자빠지고 말 테지.'

풍풍은 재빠르게 상대의 형세를 살피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작전을 결정했다.

슬슬 구슬리고 지분거리며 감욱형의 힘을 소모시켜버리면 문제없다는 작전이다.

감욱형과 대결하고 서서 대력귀수 풍풍은 상대방을 자세히 관찰했다.

감욱형의 만면에는 비분강개하면서도 초조하며.

또 한편으로는 억제하기 어려운 극도의 분노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를 암살한 원수.

이놈을 만나기를 평생 소원으로 삼고 오늘까지 보복의 기회만 기다리고 있았던 감욱형이다.

그 안색이 평범할 리 없었다.

풍풍도 선뜻 그것을 알아차렸다.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웬만한 사이면 이 마당에 감히 여자의 몸으로 뛰어들 리 만무할 것이다.

반드시 감영장의 혈육이거나 친척임에 틀림없어리라고 생각한 풍풍은 새삼스럽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방을 노려봤다.

그러나 풍풍은 전볍을 달리할 생각은 없었다.

역시 시간만 질질 끌면 이 젊은 아가씨는 마침내 힘에 부치고 풀이 죽어

할딱할딱 맥을 못출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서 손을 대더라도 이런 아가씨 하나쯤을

굴복시키기는 여반장(如反掌)같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욱형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감욱형은 두 손으로 손바람을 일어키더니

아주 짤은 순간 다소 몸을 멈칫하는 척했으나 .

상대에게 한 치도 틈을 주지 않고 오른손을 흘쩍 높이 쳐들었다.

등에 메고 있던 녹악검을 뽑아 든 것이다.

감욱형은 보검 녹악검의 칼자루로 온갖 힘을 집중시켜서는 마침내 천강검 검술을 전개했다.

매섭고 날카롭고 앙칼진 공세로 대력귀수 풍풍에게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감욱형의 무술은 풍풍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너무나 컸다.

그런데도 때가 때인지라 감욱형은 치밀어 오르는 원한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칼에 상대를 무찔러버릴 기세로 쳐들어간 것이다.

비분강개. 원한. 분노. 보복.

이런 무형적인 힘이 이 마당에 대담하게 뛰어든 감욱형에게 정신적 격려를 준 것은 사실이었다.

자연 감욱형이 온갖 힘을 칼자루로 집중시켜 검술을 전개했을 때.

그 앙칼지고 매서운 자세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감욱형은 칼을 뽑아 든 채 상대에게 가까이 대들었다.

대뜸 추운언월십이식(追雲偃月十二式)의 검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손에 잡은 녹악검을 앞으로 당기듯 더 한층 힘을 주어 바싹 움켜쥐자

서슬이 시퍼런 칼날은 별안간 맹렬한 바람소리를 일어키며

쉭 ! 쉭 !  풍풍을 향해 정면으로 매섭게 습격해 들어갔다.

대력귀수 풍풍은 감욱형이 돌연 검법을 바꿔 숭양파의 절예(絶藝)라는

천강검 검법 중에서 추운언월십이식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비록 감욱형의 무술이 놀라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지나치게 소흘히 대할 상대는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감욱형은 천강검 검법 12단 가운데 한 단인 월용강유(月湧江流)의 검술을 재빠르게 전개했다.

뾰족한 칼끝에서 쉭쉭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새파랗고 싸늘한 검광이 사방으로 발산되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넓게 퍼져나가는 매서운 검광 속에 파묻힌 채 칼끝은 곧장 풍풍의 인후를

겨누고 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왼쪽 손가락 두 개를 높이 쳐들어서 풍풍의 오른쪽 겨드랑 밑을 노리고 쳐들어갔다.

이 한 단의 검법은 무쌍한 변화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설사 상대가 좌우 어느 편으로 몸을 피해보려 한다 해도 절대로 감욱형의 검광의 테두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설 수 있는냐 하면 그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뒤로 주춤주춤 몸을 빼는 기색만 보이면 감욱형은 몸을 따르는 그림자처럼 

비호같이 육박해 들어가서 다음 한 단의 검술인 홍소우제(虹銷雨霽)의 묘기를 전개해.

검광은 춤을 추듯 점점 더 넓고 둥근 광막(光幕)을 펼쳐 4. 50척 거리 안의 물체라면 모조리

그 매섭고 싸늘한 검광 속으로 집어삼켜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검술이 성공하는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칼을 쓰는 사람의

실력 여하가 결정 짓는 것이다 .

만일에 칼을 쓰는 사람의 검술이 무르익어서 오묘 불가사이한 조화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면 상대는 어느 쪽으로든 몸을 피할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홍소우제라는 검술은 몸을 공중에 솟구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팔다리를 움츠러뜨리고

보검을 머리위에서 빙글빙글 돌려가며 상대에게 대항해 들어올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기묘한 술법이다.

머리위에서 춤을 추듯 눈부시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칼끝은 다시 일종의 불가사이한

부력을 생기게 해주는 것이니.

이 부력이 생긴 다음에는 몸에 간직하고 있는 온갖 진기를 뽑아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그대로 허공에 뜬 채 꽤 오랫동안 버티고 떨어지지 않는 기기묘묘한 검술이다.

이렇게 됐을 때에는 상대방의 몸뚱어리는 송두리째 칼을 쓰는 사람의 발아래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어떤 동작을 해보려고 아무리 허우적거려본들 허사가 된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이 비호같이 내리칠 것이며 또 상대의 제일 약한 점을 공격하게

될 것이므로 막아낼 도리도 없고 옴짝달싹 못하고 칼 쓰는 사람의 손아귀 속에 말려들어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력귀수 풍풍도 극도로 긴장했다.

죽느냐  사느냐 판가름을 하는 순간이다.

감욱형은 월용강유의 술법을 전개하고 손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풍풍을 노려보고만 서 있더니

이윽고 그도 비호같이 몸을 날려 대적하기 시작했다.

대력귀수 풍풍이 제아무리 나이 어린 소녀 감욱형의 무술을 얕잡아보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대적하고 싸우는 마당이다.

그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편으로 막아내며 한편으로 감욱형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포착하려고 우선 온갖 신경을 두 눈으로 집중했다.

유감이지만 그가 판단하기에 감욱형의 칼 쓰는 품은 놀랄 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몸에지니고 있는 힘이나 기운으로 말해도 일개 여자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니

대단한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 흐음 ! 당돌한 계집에 같으니 ......

그만한 힘을 가지고 감히 나를 대적해 보겠다구 방정맞게 이 마당에 뛰어들다니 .......'

풍풍은 어느 정도 파악하기는 했지만 .

그렇다고 결코 소흘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숭양파와 회양방이 대결하고 있는 이 마당에서 만인의 시선을 집중시켜 놓고.

만일에 털끝만한 실수라도저질러서 나이 어린 소녀에게 창피라도 당하게 되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대력귀수 풍풍과 감욱형 사이에는 치열한 공방전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일진일퇴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양쪽이 똑같이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육박해 들어가지만 그럴 때마다

또한 양쪽의 방어도 똑같이 절묘한 재간을 보였다.

이러는 동안에 풍풍은 자신감과 더불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자신감이란.

감욱형의 무술이 확실히 자기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바에야 숭양파와 회양방이 대결하고 있는 이 긴박한 마당에서

한 번 신바람 나게 그리고 멋들어지게 자신의 무술이 얼마나 뛰어나고

놀라운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해 보이자는 결심이었다.

이런 자신감과 결심이 생긴 풍풍은 별안간 엉뚱한 생각을 품고 돌연

지금까지의 작전을 바뀌었다.

감욱형이 월용강유의 검술을 쓰고 나서 잇따라 홍소우제의 검술을 쓰리라는 것을

예측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감욱형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똑바로 파악했는지라.

대뜸 가슴을 움츠려뜨리고 전신을 구불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니요.

그렇다고 몸을 뒤로 주춤하지도 않으면서 그와는 전혀 반대로 앞으로

곧장 화살처럼 몸을 던지며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본래 대력귀수 풍풍이란 놈은 강호에서 손이 맵고 마음씨가 악독하기로 유명한 놈일뿐더러.

여색을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놈이었다.

감욱형과 생사를 판가름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면서도.

풍풍의 무서운 눈초리는 한시도 감욱형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분의 감정이 불붙듯이 타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천하에 드문 미모였다.

깊은 산 속의 조용하고 맑게 가라앉아 있는 호수같이 매력이 넘치는 감욱형의 눈동자.

요염하리만큼 애교가 넘쳐 흐르는 감욱형의 얼굴을 대력귀수 풍풍은 칼끝이 화살처럼

쏘아 들어오는 무서운 찰나 속에서도 놓치려 들지 않았다.

더구나 몸을 쓰고 손을 쓰며 덤벼드는 순간에 감욱형의 나긋나긋하면서도 토실토실하고

탐스러워 보이는 육체 버들가지같이 하느적거리는 감욱형의 부드럽고 간드러진 허리의

선에서 풍풍은 감칠맛 나는 음식을 노려보듯 엉큼한 식욕을 참을 수 없었다.

북쪽 천지에서는 명성이 제법 높다는 풍풍이.

다년간 보아오고 접해오고 지분거려본 여자란

거의 전부가 얌전한 양가의 부녀자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강호에서 음탕하기로 유명한 탕부가 아니면 요사스럽고 흉악하고 발랄하게

정력이 넘쳐 흐르는 여장부 같은 여자들 뿐이었다.

어찌 감욱형같이 구슬 방울처럼 맑고 귀엽게 생긴 아가씨를 대해볼 수 있었으랴.

' 흥! 저렇게 예쁘게 생긴 계집아이가 명랑하게 무술의 재간까지 몸에 지니고 있다니 ......

계집치고는 묘한 물건인데 ......... '

사람이란 본성을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풍풍은 이렇게 감욱형을 처음 대하는 순간부터 엉큼스럽고 시커먼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풍풍은 생사를 판가름하는 이 싸움 판에서도 이 궁리 저 궁리 혼자 생각이 많았다.

' 어째든 오늘은 일대 결투가 벌어질 날이다.

내 한번 자진해서 내달아 감영장을 살해한 사람이라 선언을 해버린 이상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숭양파 놈들은 나를 호락호락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

금모사왕 오빈기는 조금 전에 그의 아들 팔조독경이 숭양파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듣더니 당장에 그 흉흉하던 기염이 폭싹 죽어버리지 않았나 !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우물쭈물 망설인 것이었을까?' 

풍풍은 금모사왕의 돌변하는 태도로 보아서 그가 마침내는 그의 귀중한 외아들의 생사를

위해서 자기를 대신 숭양파에 넘겨버리는 것도 사양치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어차피 이럴 바에야 사나이답게 내가 자진해 나가서 판가름을 해버리는 것이

놈들에게 비실비실 잡혀가거나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런 비장한 결심을 하고 선뜻 이 자리에 뛰어 내달은 풍풍이었다.

사실 감영장을 살해한 것은 금모사왕의 의사(意思)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풍풍의 엉둥한 욕심도 없지 않았다.

물 위에 떠가는 배를 뒤에서 좀 밀어주는 척 인정을 베풀어 주어서.

회양방을 위한 설욕에 가담하는 체 했지만 사실인즉 감영장의 제물을 노린

야심만만한 소행이었다.

남의 일을 좀 거들어 주는 체하고.

그뒤에 숨어서 자기의 야망을 채워보자는 엉둥한 속셈이 시킨 노릇이었다.

대력귀수 풍풍은 치열하게 덤벼드는 감욱형의 공세를 슬쩍슬쩍 막아내면서.

한편으로 숭양파와 회양방 양편 진영의 정세를 다시 한 번 똑똑히 관찰해 봤다.

숭양파 쪽을 보자니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이 감욱형의 신변 가까이 

버티고 서 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똑같이 침통하기 이를데 없어며 날카로운 안광이 한시도 쉴새없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모여 서 있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하나하나가

똑같이 비분에 넘치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자기의 일거일동을 쏘아보고 있지 않은가 !

'흐음. 이렇게 되고 보면 나는 이 숭양파 놈들의 공적이 되어버렸구나!

오늘 이 마당에서 이 아가씨를 물리쳐버리지 못한다면 ?

나는 아마 홍택호에서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풍풍은 다시 회양방 쪽을 슬쩍 살펴보았다.

금모사왕도 풍풍의 신변 가까운 곳에 버티고 서 있기는 하지만 .

그의 표정에서는 왜 그런지 그다지 긴장된 빛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단지 그 한쪽밖에 없는 외눈이 쉴새없이 두리번두리번 꿈쩍꿈쩍 구르고 있으며

흉흉한 안광을 발산하고 있는 품이 무슨 엉뚱한 궁리를 따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더군다나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회양방의 수많은 인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태연하고 한가해 보이며 어느 한 놈도 풍풍을 위해서

근심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 아아. 이놈들은 어지간이 지독한 놈들이구나!

남의 일같이 태연히 구경들만 하고 있다니 .......... '

대력귀수 풍풍의 간담은 서늘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누가 때문에 감영장을 살해했는데 저놈들은 저렇게 남의 일같이 여기고 있다니!'

금모사왕이 사례를 톡톡히 한다는 바람에 욕심이 동해서 이번 결투에 참가하겠다고 

성낙해 버린 자기 소행의 어리석음이 뉘우쳐졌다.

풍풍은 이 순간에야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양방 쪽에서 초청해 왔다는 소위 고수라는 위인들 가운데는 단 한 놈도 강호의 의리니

의협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고 위태로운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놈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한 놈도 빼놓지 않고 제 잇속을 채워보자는 생각뿐이다.

' 흥 ! 이놈들 모조리 형편없는 놈들뿐이구나.

이번 싸움에서 설사 회양방이 숭양차를 거꾸러뜨린다손 치더라도 .

그 뒤에는 또 한 번 회양방 네 놈들끼리

그이상의 처참한 싸움을 벌이고 서로 잡아먹겠다고 물고 뜯고 할 모양이로구나 !'

여기까지 정세를 판단한 풍풍은 점점 더 눈앞에 확실하게 내다보이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 내가 일개 나이 어린 계집아이를 상대로 싸움을 해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요.

자신 만만한 일이다 ! 하지만 ..........

숭양파에는 고수 축에 드는 놈들이 얼마든지 버티고 있으니.

이놈들이 호락호락 물러날 리 없고 ........

이놈들을 한 놈 한 놈 모조리 때려눕힌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

또 금모사왕이란 자가 변괴가 생겨서 슬쩍 마음이 변하기만 하면 나 하나쯤은

희생시키고라도 그의 아들 팔조독경과 바꾸려 들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이렇게 여러 모로 이 궁리 저 궁리 해보았을 때.

대력귀수 풍풍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엉큼스럽고 악독한 계교가 떠올랐다.

' 벌집을 일어켜 숭양파와 회양방 양쪽에 큰 싸움을 붙여놓는다면 ?

그리고 그 싸움이 좀체로 끝장이 나지 못하게 된다면 ............

어쨌든 싸움만 붙여놓는다면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때에는 내 몸 하나쯤은 쉽사리 이 혼란한 틈을 타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력귀수 풍풍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혼자 작정을 하고 .

별안간에 여태까지 쓰던 장법을 바꿔버렸다.

마침 감욱형이 월용강유의 검술을 전개하고 공격해 들어오는 판인지라

잠시나마 눈앞에 어떤공간이 생겼다.

풍풍은 이 공간을 묘하게 표착해.

갑작기 두 어깨를 움츠려뜨리고 몸을 살짝 구부리더니

마치 생쥐가 불쑥 앞으로 대들듯이 감욱형의 가슴팍을 향해 육박해 들어갔다.

다음 순간 풍풍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왼쪽 팔을 흘쩍 쳐들었다.

그리고는 가운뎃손가락 두 개를 꼿꼿이 세우더니

비호같이 날쌘 동작으로 칼을 잡고있는 감욱형의 오른쪽 발목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입이찢어져라 음침한 너털웃음을 첬다.

일부러 목청을 뽑아 가지고 악을 섰다.

" 여어. 방주님! 내 어여쁜 아가씨 하나 얻어 드릴 테니 .......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악을 쓰는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풍풍은 또다시 오른쪽손가락 다섯 개를 쇠갈구리처럼

벌리더니 곧장 감욱형의 젓가슴을 행해 할퀼 듯이 움켜잡을 듯이 육박해 들어갔다.

감욱형은 막 월용강유 검술을 전개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앞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풍풍의 날쌘 동작을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너무나도

뜻밖이었고 또 워낙 힘에 부치는 데다가 이런 경험도 일찍이 해본 일이 없는지라.

어떻게 막아내야 좋을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이 별안간 무슨 흉칙스런 일일까?'

풍풍의 왼쪽 손이 대드는 것을 느끼고 얼핏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급히 몸을 뒤로 빼려 했을때는 이미 그를 만한 여유가 없었다.

 오른쪽 손에 칼을 잡고 있다는 감각이 있을 뿐.

풍풍에게 음켜잡힌 발목은 저리고 아파 꼼짝을 할 수없었다.

뎅그렁 !

마침내 감욱형이 잡고 있던 보검 녹악검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발끝에 있는 힘을 다 모아서 더 버티고 서보려 했으나 그때는 벌써 대력귀수 풍풍의 쇠갈귀 같은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가 전광석화같이 빠른 기세로 젓가슴을 움켜잡으려 육박해 들어왔다.

감욱형은 다시 두 다리에 힘을 주어서 그 자리에서 붕 떠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있는 힘은 이미 모두 소모되고 말았다.

다시 기운을 더 차려볼 수 없었다.

풍풍이 무서운 기세로 신변가까이 육박해 들어와 있으니 .

오른쪽 발목을 잡은 풍풍의 손가락을 아무리 뿌리쳐보려고 애써도.

이미 당황하고 놀라운 정신으로 몸을 피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쇠갈귀같이 험악한 다섯 손가락으로 감욱형의 젓가슴을 할퀴고 움켜잡고 더듬고 제멋대로

젊은 아가씨에게 모욕을 가하는 풍풍.

그 징글맞고 음충스러운 너틀웃음 소리.

그 경박하고 악독하고 엉큼스러운 광태.

감욱형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한데 엉클어져서 얼굴이 온통 불이 타오르듯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결국은 아무리 애를 써봐도 풍풍의 쇠갈퀴 같은 다섯 손가락을 막아내거나 피할

도리가 없었다.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 영감은 풍풍과 감욱형 두 사람의 신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앗!"

"앗! 저런 죽일 놈이 ..........."

이 해괴망칙한 광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던 탁창가와 방곤 영감은

똑같이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렸다.

노기 충천했다.

두 주먹이 와들와들 떨렸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몸을 흘쩍 날렸다.

질풍과 같이 빠른 속도로 두 줄기 화살처럼 쌍쌍이 대력귀수 풍풍을 노리고 습격해 들어갔다.

대력귀수 풍풍의 이런 음충맞고 징글맞고 해괴망측한 짓은 일부러 숭양파의 사람들의 약을

올리자는 계획적인 광태(狂態) 임을 회양방 편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강호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몸을 움직여 대결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남자 쪽에서 상대 여자의 흉부나 하복부를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호 땅의 무술의 전통과 규칙이었고 만일에 이 규칙을 어기는 비루한 남자가

있다면 그는 강호에서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은 물론 무림의전체적인 책망과

징벌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이런 비루한 짖을 풍풍은 잘 알면서도 거침없이 해버린 것이다.

무림의 전통과 규칙을 무시하는 이런 음충맞은 광태는.

그 피해자인 여자 편에서는 더욱기막히는 일이다.

남자에게 흉부나 하복부를 공격당한 여자는 이것을 평생의 수치요.

대욕(大辱)으로 여기며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면 당장에 제 손으로 목을 찔러 자신의

깨끗함을 온 천하에 밝히려 드는 것이다.

감욱형으로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순결한 아가씨다.

또 강호에서 이름이 높다는 종파의 제자이다.

만일에 이와 같이 수많은 무림의 인물들이 버티고 서 있는 마당에서 .

대력귀수 풍풍의 다섯 손가락에 완전히 가슴팍을 공격당하고 처녀의 생명 같은 젓가슴이

그놈의 놀림감이 된다면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회양방 편에서도 금모사왕 오빈기와 그 밖의 두서넛 귀신 두목 같은 놈들은

대력귀수 풍풍의 이런 광태가 어떤 엉뚱하고 짖궂은 배짱에서 나오는 소행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나머지 여러 방도들은 대력귀수 풍풍의 이런 앙큼스런 장난이 도리어 회양방을

대표해서 자행하는 짓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해 여기저기서 거칠고 수선스런 아우성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 잘한다 ! "

" 근사하다 ! "

" 토실토실하고 말랑말랑한 젖퉁이를 맛있게 주물러 터뜨려봐라 ! "

폭풍우같이 일어나는 모욕적인 아우성 속에서 감욱형은 극도의 수치와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굉음이 들리는 것 같았고 눈 속에서 무수한 금빛 별들이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두 다리를 움직여서 쓰러질 듯하면서도 용케몸을 피할 수있었다.

수치와 분노로 뭉쳐진 극도의 자극이 가슴팍을 찌르는 듯했으나 그제서야 대력귀수 풍풍의

쇠갈퀴 같은 무서운 다섯 손가락이 가슴팍을 흘쩍 스치고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찰나.

감욱형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 영감 둘이서 전력을 다해 구원하고자 달려갔지만 .

워낙 거리가 멀찍히 떨어져 있던 터인지라 안타깝게도 한 걸음 뒤처지고 만 것이다.

대력귀수 풍풍이 쇠갈퀴 같은 다섯 손가락을 벌려서 감욱형의 젖가슴을 움켜잡아 제멋대로

휘둘려보려는 찰나에 난데없이 뒤통수로부터 두줄기 무서운 손바람이 습격해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키! 이게 무슨 바람이냐? 어지간히 지독하구나 ! 만만치 않겠는걸.'

대력귀수 풍풍은 그 손바람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

그대로 손을 멈추기는 싫었다.

' 요 앙큼스럽고 귀여운 계집아이가 이미 내 손아귀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거리에 있는데.

아무리 네놈들의 손바람이 세다 해도 ..........

해보려던 장난은 하고야 말지 .........

이대로 물러설 줄 아느냐 ! '

대력귀수 풍풍은 남몰래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다섯 손가락을 쇠갈퀴처럼 벌려 가지고 왈칵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주춤하고 뒤로

몸을 피하는 감욱형의 신변 가까이 또 한 번 육박해 들어간 것이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대력귀수 풍풍.

그리고 감욱형.

그기 날아드는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 영감.

그들이 각각 움직이는 동작은 똑같이 번갯불처럼 빨랐다.

감욱형도 졸도하기 직전까지는 온갖 힘을 다해서 몸을 뒤로 빼는 품이 여간 빠르고

날쌔지 않았다.

바로 이 찰나에 탁창가와 방곤 영감의 맹렬한 손바람이 무섭게 습격해 들어갔는지라.

대력귀수 풍풍도 마침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다섯 손가락을 쓰는 품이 다소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감욱형을 위해서는 실로 다행스럽기 이를 데 없는 아슬아슬한 찰나였다.

감욱형의 젖가슴을 지분거리던 풍풍의 쇠갈퀴 같은 다섯 손가락이 슬쩍 젖가슴을 스치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만일에 감욱형이 이만큼이라도 몸을 뒤로 빼지 못하고 탁창가와 방곤 영감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몸을 날렸다면 감욱형의 탐스러운 젖가슴은 정통으로 풍풍이란 놈에게 움켜잡혀서

여자로서 기막힌 모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감욱형이 갑자기 졸도해 쓰러졌을 때 대력귀수 풍풍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때 탁창가와 방곤 영감의 무서운 손바람이 이미 그에게 털끝만한 여유도 주지 않고

등들미로부터 습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돌연 회양방 편에서도 두 줄기 그림자가 비호같이 사람의 틈을 헤치고 날아왔다.

몸이 땅을 디디고 서기도 전에 그들도 똑같이 억센 손바람을 일어켜 탁창가와 방곤 영감의

손바람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이 마당에 뛰어든 자는 바로 해남인마와 운몽 노인이었다.

대력귀수 풍풍을 습격해 들어가는 탁창가와 방곤 영감의 손바람과. 그들 두 놈의 손바람이

맞닥뜨리는 순간 양쪽에서 똑같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이틈을 타서 대력귀수는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 으흠. 분하다! 괘심한 계집아이 같으니 ........

이렇게 맥없이나가자빠지고 말다니 .........

그런데 놈들이 등들미로부터 .........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구나 ! '

풍풍이 씨근거리며 숨을 돌리고 있을 때 .

양쪽의 네 사람은 땅을 확실히 디디고 서서 각자의 위치를 든든히 잡고 대결태세를 갖추었다.

바로 이때 저편으로부터 금모사왕 오빈기가 비호같이 날아들었다.

양쪽에서 네 사람이 대결하고 서 있는 이 긴장된 장면으로 날아든 금모사왕 오빈기는

외눈을 무섭게 두리번거려 대력귀수 풍풍을 아래 위로 훓어보더니.

다시 탁창가와 방곤 영감의 얼굴을 핥기라도 하듯 노려보고나서 .

침중하고 거만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태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할 작정이냐?

우리는 이 기회에 아주 깨끗이 판가름을 내버릴 용의가 있다 !

우선 네 놈들은 내 아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냐?

그 말부터 먼저 똑똑히 듣고 싶다 !"

오빈기는 말을 마치더니 심히 괴상한 행동을 두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한 번은 그 외눈을 무섭게 굴려 대력귀수 풍풍의 아래위를 잡아먹을 듯이 훓어보고.

그다음에는 다시 처음과 같이 탁창가와 방곤 영감을 쏘아보았다.

' 감영장을 살해한 하수자를 이미 네 놈들 앞에 세워놓았으니.

억울한 짓을 한 놈이 어떤 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숭양파 네 놈들은 이제 응당 이 대력귀수 풍풍이란 놈과 묵은 셈을 따져서 끝장을 

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 !'

금모사왕 오빈기는 이러한 의사를 눈초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탁창가는 이미 금모사왕에게 쾌히 선언한 바 있었다.

감욱형의 아버지 감영장을 살해한 하수자만 내놓는 다면 당장에

그의 아들 팔조독경 을 석방해 주겠다고 명백히 약속했다.

이제 금모사왕의 태도가 비록 대력귀수 풍풍을 희생의 재물로 바치겠다는 설명은 없다 하지만.

그의 무서운 눈초리는 분명히 그런 의사를 쵸명하고 있는 것이다.

철장단심 탁창가와 건곤취객 방곤 영감도 물론 금모사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의사를 충분히 알아차렸다.

애당초 금모사왕이 두말없이 하수자인 대력귀수 풍풍을 내주기만 했다면 탁창가는

되도록 회양방과의 대규모의 결투를 피해보리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과 더불어 치열한 결투를 감행한다면 승패를 떠나 양쪽이 무수한 사상자를 내야 한다는

것이 눈앞에 훤히 내다보이는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런 이상 탁창가와 방곤 영감이 이대로 비실비실 물러설 수는

없게 되었을 뿐더러 이싸움터에 운집해 있는 숭양파와 수많은 제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그대로 가라앉을 리 없었다.

노기가 충천하는 요란스런 함성이 숭양파의 진영 이 틈 저 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 저런 죽일 놈 !"

" 당장 저놈의 목을 베자 !"

" 천하에 비루하고 음흉한 놈 !"

" 여자의 젖가슴을 공격하는 짐승 같은 놈을 그대로 두다니 !"

" 죽여라 !"

" 당장에 죽여 없애자 !"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이 그들의 격분한 기세는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회양방과 더불어 생사를 결판내지 않고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감욱형은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서 대력귀수 풍풍에게 평생을 두고도 씻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다.

비록 아무 데도 상처를 입지는 안았다 하지만 .

강호 무림의 전통이나 규칙으로 따지자면 .

티없는 구슬같이 깨끗하고 얼음장처럼 깔끔한 일개 처녀의 몸이 색마(色魔)로 유명한

대력귀수 풍풍 같은 놈에게 경박하기 짝이 없는 광태를 당했다는 것은 어떠한 불치의

부상을 입은 것보다도 그 정신적인 상처가 말할 수없을 만큼 큰 것이다.

어찌 숭양파의 여러 문하생들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이런 모욕적인 광태를

그대로 수수방관할 수 있을 것이랴.

여러 남여 동문생들과 오라버니뻘 되는 친구들이 졸도해서 쓰러져 있는

감욱형의 신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 이것봐 ! 욱형이. 정신을 차려야지 ! "

" 이렇게 맥없이 쓰러져서야 ........"

" 어디 다친 곳도 없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요 ! "

" 욱형 언니! 저 악마 같은 자식은 우리들이 없애버리고 말테니 아무 걱정말고 눈을 좀 떠바요!"

제가끔 한마디씩 위로와 격분에 찬 말들을 하면서 감욱형의 어깨를 흔들고 얼굴을 쓰다듬고

가슴을 문질러주고 야단들을 했지만 충격과 자극을 너무나 심하게 받은 감욱형은 좀처럼

눈을 떠볼 만한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때. 여러 젊은 친구들의 틈을 헤치고 위엄 있게 나타난 것은 대선배 낭월대사 였다.

" 애들아! 저리 비켜라! 어디보자 ...... 흐음.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다 .

저편으로 떼메고  가서 숨을 돌리도록 방법을 강구해 보자 ! "

낭월대사의 말대로 여러 남여 문하생들과 사형들은 감욱형을 떠메고 싸움터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으로 옮겨놓았다.

낭월대사가 주물러주고 구급약을 먹이고 해서 감욱형은 얼마 안 되어 다시 숨을 돌리고

소생할 수 있었다.

 

아들 문제를 제일 먼저 제시하고 나선 금모사왕 오빈기의 말이 끝나자.

철장단심 탁창가는 잠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한 파의 대표로서 흔들림 없는 위엄을 보이며 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강호 무림의 전통이나 규칙으로 따쳐볼 때.

그대의 아들은 이미 도의를 무시하고 비급한 소행을 저지른 자이다.

그 놈은 우리 벽송관을 야간에 도습(盜襲)하지 않았느냐?

이런 비급하고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감행한자 우리가 붙잡았으니

마땅히 우리가 징벌을 내리고 처치해 버렸어야 할 것이다!

허나. 나는 일찍이 만천하에 떳떳이 성명한 바 있었다.

우리 숭양파는 까닭없이 남과 더불어 분쟁을 일어키기를 원치 않는다고 ........ "

탁창가가 일단 여기서 말을 중단하자 금모사왕 오빈기의 표정은 몹시 침통했다.

'놈들은 내 아들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

금모사왕은 말없이 탁창가를 노려보며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더 한층 음성을 높여 준엄한 어조로 말을 계솟했다.

 

"우리들 전대의 원한이니 원수니 하는 것은 이미 끝난지 오래다!

서로 찌르고 죽이고  ........

이런 처참한 살육의 행동을 사실 나는 원치 않는다.

이런 인간적으로 가장 처참한 화를 언제까지고 질질 끌고 내려가서 죄 없는 후배들까지

해롭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 방금 추태를 부린 이 풍(馮)모란  자로 말하자면 나의 아웃뻘되는 감영장의 원수일뿐더러

비열하고 추잡한 소행으로 강호 무림의 전통과 규칙을 제멋대로 무시하는 행동을 자행하고 

말았으니 그 죄 용서할 수 없다!

이제 우리와 그대 쌍방은 역시 본래 약속한 바대로 무술 실력으로 승부를 결정하여 

양대에 걸쳐 내려오는 온갖 원한과 원수를 깨끗이 해결하고 청산하기로 하자.

만일 그대가 다소라도 뉘우치는 바 있어서 무기를 옥백(玉帛)으로 바꾸어 평화로 해결하고

싶은 의사가 있다든지 혹은 그대의 아들이 안전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단지 한가지

요구 조건에 쾌히 응하라!

그것은 다른 조건이 아니다!

그대의 회양방의 사령기(使令旗). 해골이찍혀 있는 깃발 고루령을 우리편에 바치고.

이제 부터는 두 번 다시 강호 땅에서 어떠한 무술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다.

이 조건만 쾌히 응낙한다면 나는 당장에 그대의 아들을 석방하도록 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쌍방이 다 같이 지난날의 원수나 원한을 이 이상 추궁하지 않키로 하는 것이

어떠냐?

그리고 또 한가지 있다!

이 풍풍이란 자는 반드시 우리편으로 데리고 가서 적당히 처리해야겠다는 것이다! "

 

탁창가는 말을마치고 엄숙한 표정으로 위엄있게 버티고 서서 금모사왕 오빈기를

뚫어지도록 응시했다.

' 이놈이 무엇이라 대답을 할 것인가?'

탁창가만이 대답을 기다리며 오빈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로 숭양파와 회양방 양쪽 진영의 무수한 시선들이 오빈기의 입으로 집중되어서

그가 과연 뭐라고 대꾸할 것인가만을 응시하고 있는 극도로 긴장된 순간이었다.

탁창가로 말하자면 일파의 종주요.

대표자로서 결코 아무렇게나 경솔히 발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또 탁창가는 풍체가 근엄하게 생긴 사람이요.

함부로 실없는 말이나 얌체 없이 가혹한 말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신중히 고려한 끝에 이런 조건을 상대방에 제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탁창가가 제시한 요구 조건을 듣자.

금모사왕 오빈기는 마음속으로 망설이기만 할 뿐 큰 입을 꾹 다문 채 목석같이 말이 없었다.

' 아들만을 살리느냐? 그러기 위해서 회양방 최후의 순간을 만들고 비굴한 타협을 하느냐?'

그의 심중이 괴롭지 않을 리 없었다.

이런 긴장된 찰나에 옆에 서 있는 대력귀수 풍풍의 무섭게 날카로운 시선이 금모사왕의

얼굴을 번갯불처럼 훑었다.

' 흐음. 이놈의 태도야 말로 비급하구나 !

적어도 한 방의 방주란 놈이 왜 선뜻 대답을 못하고 .........

이놈이 정말 딴 속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 '

대력귀수 풍풍은 망설이기만 하고 입을 벌리지 못하는 금모사왕 오빈기의 태도에 마음속으로

여간 격분한 게 아니었다.

' 이놈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분명히 숭양파와 더불어 굴욕적인 타협을 하고 제 아들만 무사히

살려내자는 엉뚱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풍풍은 이런 결정적인 판단을 내리자.

한바탕 교활하고 음충맞은 웃음을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 에헤헤 .........헤헤헤........."

마음을 든든히 먹고 금모사왕 오빈기에게 공격의 화살을 던졌다.

" 오 방주님 ! 저 늙은 들창코 녀석의 말을 몇 마디 들어시더니 결정하기시기가 어려워졌단

말씀이오?

무엇을 그다지 망설이시고 쩔쩔매실 일이 있단 말씀이오?

나는 무슨 일이나 선선히 또 깨끗이 해치우는 놈이오!

그러니까. 놈들이 재간을 부려서 내 손바람을 이긴다면 나는 놈들의 처분대로 따라가는 것뿐이오.

오 방주님! 당신네 방의 해골 고루령기를 바치시고 당신네들의 두 대에 걸쳐 내려오는

원한과 원수를 해결하시겠다니 ..........

나 하나 때문에 무림의 다른 여러 고수님들까지 창피를 당하게 하시지는 마시오!"

말을 마친 대력귀수 풍풍은 또 한 번 음침스럽게 냉소했다.

" 헤헤헤..........에헤헤.......... "

그가 하는 말은 겉으로는 자신이 희생하기를 원한다는 것 같고.

그래서 금모사왕 오빈기의 입장을 살려주겠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암암리에 오빈기를 경멸하는 말이요.

한 대 후려갈기는 것도 같은 엉큼스런 말이기도 했다.

금모사왕 오빈기로 말하자면 무림의 수많은 고수급 인물들이 총동원되어

모여들다시피 하여 양편 진영에서 버티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마당에서

 어찌 이렇게 만만히 머리 숙이고 패배를 선언해서 숭양파에게 굴복할 수 있을 것이랴!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외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의 생명이 남아나지 못할까 그것을 제일

초조하게 근심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한 가지 비밀 계획을 마음속에 은밀히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바늘 끝으로 모질게 찌르듯이 날카로운 대력귀수 풍풍의 말을 듣고도

벌컥 화를 내지 않았다.

' 탁창가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것인가?'

입을 꾹 다물고 목석같이 버티고 서서 무서운 표정으로 이것만을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금모사왕 오빈기의 외눈이 번쩍하고 시퍼런 광체를 발했다.

그리고는 탁창가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좋다 ! 잘 알아들었다 ! 우리는 역시 본래의 약속대로 무술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기로 하자 !"

위엄 있게 외치는 금모사왕 오빈기의 이 한 마디 말은 회양방의 비장한 결의를 표명하는

선언이었다.

넓은 싸움터 이편 저편이 똑같이 무섭고 침통한 침묵 속에 잠겨서 숨소리 하나도 들을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 기어코 싸워야 하느냐?'

' 암. 싸워야 한다 !'

'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이 .......... '

무수한 사람들의 표정은 똑같았다.

그리고 꽉 다물고 있는 입들은 이런 똑같은 말들을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긴장된 눈초리로

상대편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금모사왕 오빈기는 언성을 더 한층 높였다.

그리고는 천지가 진동하도록 허세를 부리는 거칠고 엉큼스런 웃음을 제멋대로 터뜨려서

자기편의 기세라도 올려보려 했다.

" 핫! 핫! 핫!  하하하........... "

무수한 시선이 또다시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의 일거일동이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금모사왕 오빈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 한마디만 더 들어라 ! 만일에 너희들이 이번싸움에 패할 때엔.

에헤헤 ...........에헤헤........ 너희들 숭양파는 어찌할 작정이냐?"

 

이 말을 듣자

철장단심 탁창가는 너무나 의외인 오빈기의 물음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탁창가는 얼굴빛을 위엄 있게 바로 잡으며 조금도 흔들림 없는

언성으로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는 역시 비장한 결의와 각오를 했다는 위풍당당한 태도였다.

 

"으음.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라 했으니

우리는 우리가 패했을 경우도 물론 각오하고 있다!

그때에는 그대의 아들을 당장에 석방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

또한 우리 숭양파의 진산지보(鎭山至寶)인 『숭양비급』이 챗을 선선히

두 손에 높이 받들어 무릎 꿇어 그대에게 바칠 것이다 !"

 

탁창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몸에 걸치고 있던 학창의 속으로 탓창가는

어깨 위에 비스듬이 누런 빛 비단 띠를 매고 있었다.

그 누런 비단 띠에 묶인 조그마한 상자 한 개를

그는 잔등 한복판에 아무도 모르게 짊어지고 있었다.

언뜻 보아 폭이나 길이가 불과 반 자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상자였지만.

그섯은 아주 소중하게 좀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엾도록 단단히 묶어져 있었다.

철장단심 탁창가는 통쾌한 대답과 또한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솔찍히드러내는

대장주다운 태도를 보여주었다.

싸움터의 이편 저편 진영에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의미에서 더 무겁고 싸늘하고

긴장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양쪽의 수많은 사람들은 똑같이 긴장된 가운데서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탁창가의 잔등에 메어져 있는 누런 비단 띠로 묶어진 조그마한 상자만을 응시하며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금모사왕 오빈기는 철장단심 탓창가의 대담한 태도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통쾌하게 선언하는 말이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고심참담.

오로지 이 무술의 지보라는 책자『숭양비급』때문에 온갖 고난을 참아왔으며.

또한 그것 때문에 이렇게 큰 싸움이 벌어지려는 판이 아닌가!

이제 그것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또 탁창가는 싸움에 패하면 선선히 이 보물을 바치겠다고 하지 않는가!

금모사왕 오빈기는 날듯이 빠른 동작으로 선뜻 두어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한쪽밖에 없는 팔을 길게 뻗어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일어켜 세우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선언을 했다.

"좋다! 회양방과 숭양파는 두 대에 걸쳐 내려오는 모든 원수와 원한. 생사와 승패를

이것으로 끝장 내기로 하자!

삼가 우리방의 사령기인 고루령기를 내걸고 맹세하는 바이다!"

철장단심 탁창가도 앞으로 두어 발자국 나섰다.

오른쪽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어 꼿꼿이 세우며 .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으로 선언을 했다.

" 음. 좋다! 우리편도 각오와 결심이 되어 있다.!

쌍방은 오늘의 결투로써 쌓였던 일체의 원한과 원수를 깨끗이 해결하고 청산하기로.

우리 숭양파는 삼가 『숭양비급』을 내걸고 이에 맹세하는 바이다!"

양쪽의 비장한 태도가 결정되자 탁창가와 오빈기 두 사람은 꼿꼿이 펼쳐든

손바닥을 마주첬다.

" 탁!"

손바닥과 손바닥이 두 개의 벽이 맞부딪히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맞닥뜨리는 순간.

두 사람은 또한 똑같이 뒷걸음을 쳐서 후퇴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서 둘이 똑같이 한 파와한 방의 대표자이자 두령의 위엄을

갖추고 서서히 각자의 진영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다.

양쪽이 똑같이 선전 포고가 끝난 것이다.

결투로서밖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마지막 결론에 도달한

그들은 마침내 어떤 무서운 희생도 불구하고 실력의 대결로

다년간 적대시 하던 원한을 풀어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대결하고 서 있는 두 진영 사이를 말없이 흘려갔다.

이윽고 숭양파 편에서 한 사람이 먼저 걸어나왔다.

그는 바로 건곤취객 방곤 영감이었다.

방곤 영감은 싸움터 넓은 광장 한복판에까지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

회양방 편으로 얼굴을 향하고 자기 위치를 정하고 떡 버티고 서더니.

굵직하고 점잖은 음성으로 위엄 있게 호통을 첬다.

" 숭양파 문하의 제이대 제자 방곤이다.

우리아우뻘 되는 감영장을 위하여 일장을 보답함으로써 강호에서

사람답지 않은 패류들을 청소해 버릴 작정이다!

이놈. 풍풍!

네 놈이 아직도 죽지않고 용기가 남았다면 어디 덤벼보아라!"

건곤취객 방곤 영감의 말이 끝나자

대력귀수 풍풍은 몸을 약간 꿈틀 움직이 더니

두 어깨를 으쓱으쓱 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 에헤헤...... 에헤헤.......... "

풍풍은 아직도 그 기세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한바탕 냉소하는 웃음소리를 교활하고 음충맞게 터뜨리고 나서야

입을 삐쭉삐쭉 하며 대답했다.

" 에헤헤 ..... 에헤헤 ....... 이 서방님께선 당초부터 네 따위 후배는 모른다.

친구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호통을 쳤으면 마땅히 무술을 보여서 싸울 것이지.

주둥아리만 나불거려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냐 ! "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방곤 영감은 이놈이 싸움터로 비실비실 걸어 나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이 사람같지 않은 놈을 상대해서 긴 말을 주고 받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말할 것 없이 다짜고짜로 몸을 다소 구부정하는 체하고 그대로 두 손을 높이 쳐들어서

그가 일찍이 강호를 주름자고 휩쓸던 유명한 손바람 유룡취선장(遊龍醉仙掌)의 술법을

전개해 풍풍에게 공격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대력귀수 풍풍도 뽐내거나 거드름만 피우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도 당장에. 삼십육로(三十六路)를 거침없이 휘두러기로 유명한 억센 손의 힘을 가지고

방곤 영감의 손바람의 술법과 대결하고자 했다.

두 사람으로 말하자면. 똑같이 강호의 넓은 땅에서 상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들이다.

서로 손을 휘둘러. 지지 않으려고 각자의 재간과 술법과 실력을 다하여대결하기 시작하니.

그 형세는 극도로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몸을 쓰는 법. 발을 떼는 법. 전진. 후퇴. 공격. 수비. """"""""""""""""""

모던 점에서 양쪽이 똑같이 비호같이 빨랐고 전광석화 같아 보는 사람을 황홀케 했다.

쉭 쉭!

휙 휙!

어느 편에서도 한번 손바닥을 움직이기만 하면 간담이 서늘하도록 무서운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일진일퇴.

싸움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수없이 넘겨 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20여 차의 육박전과

공방전을 똑같이 되풀이 했건만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이때. 홍택호 수면에는 아침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수면을 스치고 부는 바람이 거칠어지며 잔잔하던 물결이 어지럽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어지러워지는 호수의 수면 위로 황금빛 태양 광선이 싸우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조용히 깔리고 있을 무렵 감욱형은 커다란 바윗돌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감욱형은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같이 번쩍 두 눈을 떴다.

맑은 정신이 들기는 했으나 .

역시 어리둥절 힘없는 시선으로 앞을 자세히 살피며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자신이 홍택호 호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점.

큼직한 바윗돌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지점은 바로 숭양파의 진영이 열을 짓고 늘어선 배후가 되는 곳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과히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야 속에 전개되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서 무수한 인물들이

꿈틀거리는 광경이 감욱형에게는 아직도 꿈속에서 보는 풍물들만 같이 흐릿하게 바라다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숨길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생생한 현실이 아닌가.

무수한 문하의 젊은 제자들이 총동원이 되어서 오라버니들 아우들 할 것 없이 모조리

싸움터 넓은 마당 변두리에 옹기종기 몰려들어 사람으로 담을 쌓아놓은 것같이.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대력귀수 풍풍을 둘러싸고 그들의 긴장된 싸움을 극도의 흥분속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어찌 이 또렷한 광경이 꿈일 수 있을 것이랴.

감욱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아래로 푹 수그렸다.

' 이게 무슨 창피한 꼬락서니냐?

 처녀의 몸으로 평생을 두고도 씻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으니 ........... '

바로 몇 분 전에 눈앞에 전개되었던 끔찍한 장변이 번갯불처럼 .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감욱형은 가슴속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의 감정을 어찌해야 좋을지.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머리를 이쪽 저쪽으로 움직이며 사방을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그 큰 바윗돌 주변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와락! 하고 젊은 아가씨의 가슴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감정의 불덩어리.

얽히고 설킨 갖가지 감정들이 일시에 머리를 들고 심장을 두드리며 내닫는 것같이.

이 순결한 소녀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따듯하고 평화로운 가정에 태어나 고이고이 자라난 아리따은 아가씨.

강호의 풍운은 이 순결한 아가씨에겐 너무나 큰 변화였고 너무나 빨랐고.

너무나 돌발적이었다.

걷잡을 새도 없이 눈부시게 흘러가버린 1년이라는 짤은 세월이

이 아가씨를 전혀 딴사람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집도 없어지고 .

어버이도 친척도 없고.

넓은 천지에 단 한 사람도 돌봐줄 이 조차 없는 외롭고 쓸쓸한 신세.

' 내가 마침내 이 꼴이 되다니?'

바윗돌이 부서질 것 같은 한숨에 싸여서

감욱형의 탐스러운 두 볼에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늙으신 아버님은 악독한 놈의 손에 걸려 암살을 당하셨다. .......

아버님을 살해한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

그 원수는 갚아드리지도 못하고 도리어 근놈에게

일평생을 두고 씻지 못할 더러운 모욕을 당하다니..........

일가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고 ...........

있다면 오직 한 사람 오라버니같이 자라난 악중악이 있을 뿐인데.

그 역시 이제는 반교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행방조차 알 수 없으니 ........'

감욱형은 두 볼 위로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을 씻을 생각도 없이.

처량한 자기 신세를 생각하며 완전히 넋이빠진 사람같이.

찬란한 아침 햇살이 깔리기 시작하는 홍택호 호반의 먼 하늘만을 바라다보며

바윗돌 위에 누워 있었다.

망망한 인해(人海).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무변대한 바다 위에 티검불처럼 떨어져서.

물결 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고 떠내려가고 있는 한 장의 낙엽 같은 신세.

' 나를 돌봐주고 구원해 줄 사람은 어디 있다는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

돌연 머릿속을 번갯불처럼 스치는 한 개의 환영이 있었다.

노영탄.

이 청년이야말로 감욱형과 동병상련.

갖가지의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환난을 같이 겪어온 유일한 친구가 아닌가!

감욱형은 마침내 노영탄을 생각한 것이다.

' 그는 이곳으로 와야 할 사람인데  ............

이곳으로 오기로 돼 있는 사람이 어째서 여태까지 소식이 없을까?'

이 넓은 강호에서 감욱형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단 한나의 존재.

노영탄이 구세주처럼 이 자리에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감욱형의 바람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을 달리해 봤을 때.

그 청년이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난다손 치더라도 .

나는 무슨 면목으로 그를 대면할 수 있을 것인가.

평생의 모욕을 당하게 된 이번 봉변이 비록 내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결국은 내 자신의 무술 실력이 너무나 떨어졌기 때문이었으니 .......'

감욱형은 눈물 어린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아랫입술을 야무지게 깨물었다.

혼자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비장한 결심을 단단히 하는 모양이었다.

살며시 몸을 돌이켜서 큰 바윗돌 위에서 일어섰다.

다만 하나. 보검 녹악검만이 아직도 감욱형의 신변을 따라단니며 한옆에 처량하게

놓여져 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녹악검을 집어들었다.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녹악검을 얼굴 가까이 쳐들어 한동안 말없이 노려만 보고 있었다.

다음순간.

바윗돌 위에서 홱 몸을 돌려 뛰어내린 감욱형은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

갈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캄캄한 숲 속으로 살금살금 줄달음질쳐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감욱형은 갈대 숲으로 달음질쳐 들어가면서.

우선 이 조그마한 섬의 지형을 똑똑히 파악했다.

동쪽과 서쪽 양편으로는 두 군데나 호수 수면에서 우뚝솟아 있는 자그마한 섬이 있었다.

이 두 개의 섬들은 온통 삐죽삐죽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울뚱불뚱한 바윗돌들과

칼로 깍아 세운 듯이 무시무시한 절벽들로 이루어져서 험준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감욱형은 마침내 어리석으면서도 앙칼진 결심을 한 것이다.

살금살금 이섬의 바윗돌 꼭데기로 기어 올라가서 .

거기서호수 속으로 몸을 던져버릴 결심이었다.

나이 어린 처녀로서 아직도 구만 리 같이 창창한 여생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청춘.

모든 원한도 원수도 미움도 .

그리고 어떤 사랑도 그리움도 ...........

일체를 이 호수 속에 매장하여.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에게 받은 모욕과 수치와 거기서 생기는 온갖 번뇌마저 깨끗이

씼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감욱형은 낮이 밤같이 어두운 갈대 숲속에서 다시 조그마한 섬을 향해 살금살금

아무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편 호반에서는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대력귀수 풍풍의 싸움이 치열함을

점점 더해갈 뿐이어서 숭양파와 회양방 양쪽의 수많은 사람들은 거기에만 정신을 팔고

극도로 긴장해 있는 판인지라.

슬쩍 행적을 감추어버린 감욱형의 행방에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대력귀수 풍풍은 또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2.30여 차나

그들의 온갖 실력을 다해서 자웅을 가려보고자 대결했다.

그러나 역시 일진일퇴.

일공일방만을 거듭할 뿐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무술 실력을 비교해보자면.

방곤 영감의 재간이나 힘은 풍풍을 당할 수 없었다.

단지 방곤 영감은 몸을 재빠르게 쓰고 피하기를 잘하는 잔재주가 풍풍보다 나을 정도였다.

싸움은 필연적으로 각자의 장점과 장점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풍풍의 손을 쓰는 품은 한번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놀라운 수법과 재간을 발휘했다.

이 무서운 장법으로 방곤영감을 맹렬히 공격해 들어가지만 .

그를 때마다 방곤 영감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광석화같이 빠르고 날쌔게 몸을 써서

풍풍의 손바람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틈이 벌어질 때마다 이편에서도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 풍풍을 어찌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 갑자기 숭양파의 진영으로 부터 또 하 사람이 뛰어나왔다.

흘쩍.방곤 영감과 풍풍 사이를 가로막고 날아 두=ㅡㄹ기가 무섭게 고함을 질렀다.

"방곤 아우님! 잠시 동안 몸을 쉬시오 ! 이따위 놈쯤은 내가대신 해치울 터이니 ........ "

고함소리가 그쳤나 싶은 찰나 .

벌써 괴상한 바람 소리가 몇 번인가 연거푸 들려왔다.

쏴아! 쏴아!

파악! 파악!

그 바람 소리는 실로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대력귀수 풍풍을 양편으로 헤쳐놓고 .

그 중간으로 난데없이 달려든  이 인물은 열손가락을 교묘하게 움직일 때마다 .

이렇게 무서운 바람소리를 내면서 풍풍에게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방곤  영감은 손가락을 한 번 움직여서 바람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는 비록

그얼굴을 똑똑히 볼 수는 없었지만 벌써 그것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상강조수(湘江釣수)라는 인물이었다.

풍풍은 이 급박한 정세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껄껄껄

한바탕 웃음을 미친 사람같이 터뜨렸다.

" 으흐흐 ........ 흐흐흐! "

그리고 나서는 조소에 가득 찬 말투로 경망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소리로

자못 기고만장하게  목청을 높여 지껄였다.

" 아하하 .......핫핫!  강호에서 그래도 이름깨나 떨치고 있다는 숭양파가

여러 놈들이 돌려가며 덤벼들다니 ..........

본래부터 비급하게도 차륜전법(車輪戰法)을 써서 사람을 골탕 먹이는

하잘것없는 놈들이었구나! "

이말을 듣자.

상강조수 영감은 가볍게 코웃음을 한 번 쳤다 .

그리고는 침착하고도 준엄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 흥! 네 이놈! 감히 처녀의 가슴을 건드리다니 .

  너 같은 놈이야 말로 만악의 음적(淫賊) 이다 ! "

또한 우리 숭양파의 공적(公敵)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숭양파의 제자치고 네 놈이 싸움터에서 뻐져나가려 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망상이다! "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허세를 부리고 감욱형의 가슴까지 습격하여 젖가슴을

움켜잡으려고 음충맞은 장난질을 치던 대력귀수 풍풍도 이말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제딴에는 당할 사람이 드물다는 두 손의 힘도 이제는 어지간히 빠져나갈 때였다.

그저 씨근벌떡 두 눈을 크게 뜨고 상강조수 영감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상강조수 영감은 걷잡을 새 없이 두 손을 계속 움직였다.

손가락을 뻗을 때마다 일어나는 무서운 바람 소리 .

그것은 은쟁지(銀爭指)라고 일컫는 영감만의 독특한 술법이다 .

그리고 이 독특한 손바람의 술법은 곧장 대력귀수 풍풍의급소만을 찾아서

맹렬히 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상강조수란 영감은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 .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날씬하게 생겼으며 강호에서 오래 전부터 쟁쟁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로 숭양 사로(四老) 가운데 한몫 끼는 거물급 무인이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재간인 은쟁지라는 술법은 숭양파 문중에서

연마한 것이 아니고 어떤 서쪽 이인(異人)에게서 배운 재간이었다.

상강조수 영감의 은쟁지란 장법은 보통 손바람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열 손가락을 한번 꼿꼿이 세워서 휘두러기만 하면

그열손가락이 저마다 한 줄기씩 억센 바람을 내뿜었다.

쏴악!쏴악!

파악!파악!

이런 괴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열 손가락에서 회오리 바람처럼 맹렬히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바람은 아무런 방향으로나 함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것은 오직 상대방의 급소인 혈도만을 노리고 정확한 방향을 찾아서 습격해

들어가는 놀라운 손바람이었다.

이 역시 어떤 공간과 떨어진 거리를 두고도 상대방의 급소를 간단히 눌러버리는 

절묘한 재간에 드는 술법인데.

이런 술법 가운데서도 은쟁지의 손바람은 으뜸가는 무서운 재간이었다.

상강조수 영감은 한 옆에 서서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대력귀수 풍풍이

일진일퇴를 벌이며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하는 긴장된 장면을 누구보다도 

예리한 관찰력으로 주시해 보고 있었다.

마침내 상강조수 영감은 가장 정확하고도 결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풍풍의 손바람의 힘이 상당히 중후하고 억세서.

방곤 영감이 비록 날쌔고 빠르기는 하지만 힘이 부치는 잔재주만 가지고는

비록 그것을 막아내서 약싹빠른 수세로 버텨 나갈 수는 있지만 .

좀처럼 공세를 취할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삼강조수 영감은 곰곰 생각했다.

' 흐음 . 풍풍이란 놈도 어지간한 손바람을 가진 놈인데.

시간을 오래 끌다가는 이편에 불리할 뿐!

방비만 해 가지고는 좀처럼 저놈을 때려 눕히지는 못하겠다.

어디. 네 놈의 손바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

한번 나의은쟁지의 술법과 견주어보자!'

이리하여 상강조수 영감은 자신만만하게 숭양파 진영의 행열에서

싸움터로 몸을 날려 방곤영감의 싸움을 대신 맡은 것이었다.

과연 삼강조수영감이 나타나자.

대력귀수 풍풍은 점점 당황해서 몸둘 바를 모르며 허둥지둥 겁을 집어먹는 것이었다.

그의 손바람이나 억센 손힘을 아무리 뽑아내보아도 상강조수 영감의 열 손가락이

줄기줄기 무섭게 뽐어내는 거센 손바람을 막아낼 자신이 없어기 때문이었다.

' 야아! 이건 어디서 세상에 뛰어나온 괴상한 영감이냐!

하나도 아니고 열 손가락이 모조리 날뛰니  ..........

이거 자칫하다가는 큰코다치겠는 걸!'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상강조수  영감의 열 손가락의 무서운 바람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과 같이 대력귀수 풍풍의 손바람을 꿰뚫고 그대로 몸뚱아리로

육박해 들어가니 풍풍은 가슴이 뜨끔하고 풀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당황한 가운데서도 풍풍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극도로 긴장된 정신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애썼다.

' 이놈의 늙은이를 섣불리 지분거렸다가는 안 되겠는 걸!

내 자신이나 꿋꿋이 버텨보는 수밖에 ......... '

대력귀수 풍풍은 암암리에 온갖 힘을 한 군데 중심점으로 모으면서

여태까지의 장법을 거두어들여서 그범위를 축소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벌려놓았던 장법을 그대로 끌고 가다가는 힘이 분산되어

도저히 상강조수 영감의 손바람을 막아낼 수 없을 뿐더러.

자기 자신조차 버텨 나가지도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풍풍은 그래도 꿋꿋하게 자기 체력의 중심점을 찾았다.

자기 몸을 지키기에 급급해 전력을 다해서 수세를 취할 뿐.

감히 손바람으로 섣불리 상대방을 건드리거나 집적거릴 생각은 단념해 버렸다.

상강조수 영감은 추호라도 시간을 끌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어떤 틈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영감은 풍풍이란 놈의 기세가 수거러져서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함부로

날뛰던 고세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알아채자.

이편에서 그놈의 능청맞은 작전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몸을 움직이고 손을 쓰는 품이 점점 더 날쌔고 민첩해졌다.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몸을 꿈틀거려 상대방을 칭칭 감아 가지고 놀림감을 만들듯

상강조수 영감의 무서운 위력은 풍풍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사방에서 포위해 버렸다.

열 손가락이 더 한층 무섭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한번 꼿꼿이 뻗어 나갈 빼마다 은쟁지 술법의 위력은 절정에 달해서

여태까지의 바람 소리와는 딴판으로 마치 쇠줄을 퉁기는 것 같은 매서운 소리가 

사방을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팽팽!

쨍쨍!

' 이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손가락에서 무서운 쇠소리가 들리니 .........

정말 만만치 않은 늙은이인데 .......... ' 

풍풍은 상강조수 영감의 손가락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서운 쇠소리로 변하는 것을

듣자 겁을 집어 먹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빌어먹을! 이왕 이 지경이 된 바에야 ........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 '

그러나 손가락에서 일어나는 소리만이 무섭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열 손가락이 제가끔  내뿜는 바람의 힘도 무시무시하게 억세어지는 것이다.

풍풍도 전신의 힘이란 힘은 모조리 손바닥으로 모아 가지고 상강조수 영감의 공세를

막아보려 했으나 그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

상강조수 영감의 열 손가락에서 저마다 뿜어져 나오는 거센  바람의 힘은 .

어떤 한 군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열 개로 분산 되어 열 군데 급소인 혈도를 노리고 습격해 들어오니

여기에는 대력귀수 풍풍도 도무지 막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 안 되겠는 걸! 이건 요지부동인데  .......

한두 군데로 덤벼들어야 막아내보기라도 하지 ........'

풍풍은 점점 수세가 수거러졌다.

싸움의 대세는 이미 결정된 것 같은데도 .

대력귀수 풍풍은 어지간히 버티었다.

그러나 불과 10여 차를 상강조수 영감과 대결했을 때

풍풍은 마침내 더 견딜수 없다는 패세를 감출 수 없었다.

몸에 지니고 있는 온갖 힘을 너무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

이마 위에는 벌써 땀방울이 구슬처럼 주렁주렁 매달렸고 .

발을 떼어놓고 몸을 움직이는 품도 확실히 힘이 빠졌고 느려 보였다.

이 꼬락서니를 보자 .

상강조수 영감은 자못 통쾌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호기 있게 웃어젖히며 호통을 쳤다.

" 아하하 ........ 핫! 핫!  이놈아 !  이마에 땀이나 좀 씻고 서서히 덤벼보는 것이 어떠냐?

헐떡거리는 품이 흡사 혓바닥을 빼물고 할닥할딱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개새끼 꼬락서니

같구나!  하 하 하  .......핫 핫 !

고걸 가지구 기진맥진 하는 놈이  ..........

감히 천하에 무서운 사람이 없는 줄 알고 .........

못된 짖을 함부로 하고 .........

약한 여자를 욕보이 다니 ........

이놈! 어디 더 해볼 용기가 있느냐?"

상강조수 영감은 풍풍과는 딴판으로 점점 더 태연자약 바윗돌같이 추호도 흔들림 없었으니

확실히 승산은 그에게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풍풍은 갑작스레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의 중심점이 들떠버렸다.

그리고 초조하고 당황한 심경 속에서 오직  금모사왕 오빈기만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 저런 죽일 놈! 내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꼼짝 않고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니!

아무나 한 놈이라도 내보내서 나를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 '

 바로 이런 찰나에 이상하게도 한 개의 틈이 벌어졌다.

힐끗! 풍풍이 앞을 바라다봤을 때.

상강조수 영감은 걸음걸이가 다소 느려지면서 몸을 한편으로 구부정하게 굽히고.

마치 머리를 저편으로돌려 무엇을 돌아다보는 것 같은 뜻밖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상강조수 영감은 한편으로 틈을 드러내지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옳지!  바로  이 틈이로구나 ! '

풍풍의 머리속을 스치는 번개 같은 생각이 있었다.

그는 마음 속에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야말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절호의 틈이요. 기회요. 간극이었기 때문이다.

풍풍은 경각을 지체하지 않고 오른쪽 팔에 있는 힘을 주어 땅에 버티다가 .

흘쩍 전신을 약싹빠르게 날렸다.

손바닥으로 전력을 집중해 가지고 곧장 상강조수 영감의 흐트러진 틈을 노리고

육박해 들어갔다.

풍풍은 몹시 흥분해있었다 .

또한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떤 공간을 두고 적을 노리는 것보다는 일격의 육박전으로 상강조수 영감의

벌어진 틈을 직접 들어치면 결판이 나리라는 생각이었다.

' 손으로 곧장 들이치면 이 늙은 것은 당장에 뻗으리라!

가볍게 슬쩍 건드리기만 한다 해도 반드시 몸에 중상을 입고야 말 것이다!

설사. 나의 육박해 들어가는 손이 실수를 한다손 치더라도 한번 늙은 것의

몸에 맞닥뜨리기만 하면 최소한 놈의 몸 속에 지니고 있는 내공의 힘이라도 

꺾어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

대력귀수 풍풍은 이런 판단을 내리고 상강조수 영감의 허탈한 틈을 직접 손으로

찌르려고 육박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찌 상상할 수 있었으랴!

풍풍은 완전히 오산을 한 것이었다.

그가 완강한 힘을 손바닥에 모아서 빠르게 육박해 들어갔을 때.

손이 채 상강조수 영감의 몸을 들이치기도 전에 영감은 뜻밖에도 갑작스레 몸을 

꿈틀하고 질풍같이 날려 2.30척 높이나 되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상강조수 영감은 몸이 허공으로 둥둥 뜬 채로 이번에는 여태까지의 

공격의형세를 돌변해서 머리 아래로 다리 위로 닥치는 데로 두 팔을 한꺼번에 

휘둘러 은쟁지술법 가운데서도 제일 무서운 봉황난점두라는 절묘한 재간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손가락에서 일어나는 소리도 이번에는 쇠소리 정도가 아니었다.

땅! 땅!

무서운 쇠망치로 쇠를 두들기는 것 같은 놀랍고무시무시한 소리가 

열 손가락 에서 터져 나와서 듣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화살은 더욱 날카롭고 무서웠다.

그 무서운 손바람의 열 개의 화살들은 바람을 꿰뚫고 열 갈래로 분산되어서

곧장 풍풍의 상반신의 급소인 혈도를 겨누고 내리꽂혔다.

'앗차! 이건 내가 되려 늙은 놈에게 속았구나 ! '

그제야 풍풍은 자기가 어리석게도 상강조수 영감의 수에 넘어갔으며.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몸을 피해보려고 힘을 썼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오싹 !

싸늘한 바람이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순간.

풀썩 !

풍풍은 그대로 땅 위에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풍풍은 기절하거나 졸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상 지탱해 나갈 힘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순간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었다.

물론 궁여지책이긴 했으나 풍풍은 이런 재간도 한 가지쯤은 남다른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슬쩍 땅 위에 쓰러지는 척하고 그 틈을 타서 그의 독특한 피신법인

취지십팔곤(就地十八滾) 의 술법을 써서 상강조수 영감의 무시무시한

손바람의 화살을 피해 뺑소니를 쳐버리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상강조수 영감이풍풍에게 도망칠 만한 틈을 줄 리가 있으랴.

영감은 허리에 힘을 써 한번 떡 버티는 척하더니 .전광석화같이 빠른 기세로

전신을 아래로 내려앉히며 고함을 질렀다.

" 받아라 ! 이놈아! 어디이걸 한번 받아봐라! "

상겅조수 영감은 결정적인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모양이었다.

두 손바닥을 또 한 번 흘쩍 뒤집는 품이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빨랐다.

손가락마디에서 터져 나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영 줄기로 뻗어나는 손바람의 힘이 대력귀수 풍풍의 급소인

혈도를 직통으로 쏘아 들어갔다.

"이놈아 게 섰거라 ! 

이 넓은 강호에서 네놈 외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까불다니........

그것은 내가 받으마!

늙은 것이 주책없이 이 마당이 어딘줄 알고서 감히 ........ "

우렁찬 음성과 함께 회양방의 진영으로부터 한 놈이 흘쩍 튀어나왔다.

그놈 역시 상당히 날카롭고 매서운 바람 소리를 일어키더니

곧장 상강조수 영감에게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상강조수 영감은 이 뜻하지 않은 광경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의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침 땅 위에 내려앉은 바로 그 찰나였는지라.

여전히 손바람을 휘두러고 손가락을 엎치락뒤치락해서 풍풍을 추격할 뿐 .

저편에서 달려드는 다른 놈이 누군지를 돌볼 만한 여유도 없이 .

단지 황망히 왼손 손바닥을 재빠르게 휘둘러서 그쪽의 공격을 막아낼 뿐이었다.

숭양파 진영에서는 큰소리치며 내닫는 위인이 누구인지 알 수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홍의화상 우람부루 바로 그였다.

기고만장하여 거만스럽게 내닫는 우람부루를 보자 숭양파 진영에서는

송운상인(松雲上人)이 두 주먹을 움켜쥐며 당장에 내달아 싸워볼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때 송운상인의 한쪽 팔목을 덥석 잡으며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산둥 서하산(棲下山)의 철기사라고 일컫는 운천고(雲天高) 란 사람이었다.

철기사 운천고는 송운상인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 흥!  저놈이 바로 연해에 살고 있는 홍의화상 우람부루란 놈이오.

듣건데두 팔에 굉장히악독한 재간을 지니고있어서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추악한 잔꾀가 대단하다 하오.

송운 동지가 섣불리 놈을 대적할 일이 아니오!

내가 대강 그놈의 재간을 막아내고 제압해 버릴 방법을 알고 있으니 내게 맡기시오.

내 잠시 동안 대신 수고해 보리다! "

철기사 운천고는 말을마치자 무섭게 흘쩍 비호같이 몸을 날려 싸움터로 달려들었다.

그가 한쪽 팔을 높이 쳐들어 한 번 호기있게 휘두르니.

열두알의 쇠골패짝 같은 철기자(鐵棋子)란 무기가 마치한 송이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듯

쫙 퍼지면서 호의화상의 머리 위를 둘러싸버리는 것이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도 불시에 습격해 들어오는 쇠골패짝들 때문에 주춤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철기사 운천고는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오늘 결투는 어디까지나 숭양파와 회양방 쌍방의 사사로운 일이다!

그대와 나는 본래가 다 같이 친구의 입장에서 있는 몸으로 여기 팔을 걷고

내달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인데 하물며 그대는 출가한 중의 몸으로 무엇 때문에

함부로 이 어지러운 판에 거만스럽게 뛰어드는 거냐?

당장에 손을떼고이 자리에서 물러나 방관하고 있는 편이 그대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 "

철기사 운천고의 호통 소리를 듣자 홍의화상 우람부루도 지지않겠다는 듯

그 괴상한 음성으로 한바탕 껄껄대고 징글맞게 웃어젗혔다.

" 헤헤헤 ........ 헤헤 .........

오래 전부터 중원 땅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다고 들어왔는데 ..........

과연 틀림없는 말이었구나 !

이 부처님은 옛날부터 철기사 운천고란 놀라운 이름을 잘 알아모시고 있었다.

마침 잘 됐다 !

이번 기회에 서로 대면을 할 수 있게됐으니 ......... "

말을 마치자.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두 손을 흘쩍 높이 쳐들더니.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 머리 위로 포위해 들어오는 열두알의 쇠골패짝 같은

철기사 무기를 쳐부수어버렸다.

그 열두 알의 쇠골패짝 같은 것들은 마침내 홍의화상의 손바람을 맞고 사면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철기사 운천고는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끝끝내 권고를 듣지 않고 거만스럽게

덤벼드는 꼴을 보자.

그 이상 중언부언 떠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두 손바닥을 획 하고 이리저리  교차시켜 휘두러더니

다짜고짜로 홍의황을 향해 쳐들어갈 뿐이었다.

한쪽으로 물러 서 있던 대력귀수 풍풍은 이때서야 자기를 구원해 주러 내닫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얼핏 알아차렸다.

상강조수 영감의 공세가 누구러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이틈을 놓쳐서는 .......... '

풍풍은 남들이 긴장해 있는 이 틈을 교묘하게 똟고 몸을 피해보려고 들먹들먹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효과도 없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상강조수 영감이 그가 도망칠 수있도록 털끝만한 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감은 조금도 피로한 기색없이 여전히 성큼성큼 육박해 들어오며.

손가락의 힘도 덜하기는커녕 추호도흔들림 없이 화살처럼 쏘아 들어오는 것이었다.

풍풍은 몸을 옆으로 뽑아 가지고 껑충 뛰어서 그 자리를떠볼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

상강조수 영감의 손가락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바람이.

마침내풍풍은 온 몸뚱어리가 흔들흔들 맥이 탁 풀리는 것을 깨달랐을 뿐이었다.

아찔!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는 이미 세 군데나 급소의 혈도를 찔리고 말았다.

" 우으으 ........ 으으 ..........."

외마디 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대력귀수 풍풍은 땅 위에 졸도해 버렸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대력귀수 풍풍도 .

이제는 쭘틀거릴 만한 힘도 없이 완전히 땅 위에 나동 그라지고 말았다.

상강조수 영감은 당장에 몸을 굽히더니

풍풍을 덥석 움켜잡아 끌어 일어켜 숭양파 진영으로 질질 끌고 갔다.

경각을 지체하지 않고 여러 젊은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풍풍을 포승으로 꽁꽁 묶어버렸다.

이렇게 되니 싸움터 넓은 마당에는 홍의화상 우람부루와 철기사 운천고 단둘이서만

한덩어리가 되어서 엎치락뒤치락 일진일퇴를 되풀이 하면서 싸우게 되었다.

" 야 ! 저런 괴심한 놈들봐라 !  생사람을 막 묶어버리다니 ! "

" 저놈을 그냥 두고 보다니 ! "

" 늙은 놈을 도로  이리 잡아내서 당장에 처치해 버리자 ! "

회양방 진영에서는 웅성웅성 별집을 쑤셔놓은 것같이 요란스런 고함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하나 둘을 가지고는 감당해 내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소위 호, 표 ,웅, 상, 사대타주라고 일컫는 뱃사공 녀석들이

일시에 우르르 행렬을 박차고 뛰쳐나와서 싸움터 한복판에 우뚝 버티고 섰다.

이광경을 보자

숭양파 진영에서도 그대로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이편에서도 역시 네 명의 젊은 제자들이 당장에 뛰어 내달았다.

하나는 감영장의 제자인 하삭신조(河朔神조).

또 하나는 낭월대사의 제자인 원법(源法).

나머지 두 사람은 송운상인 의 제자 백문(白文)과  백무(白武) 형제들이었다.

이 여덟 명의 인물들이 한데 어울려서 일대 격투가 벌어졌으니

싸움터의 광경은 갈수록 가관이 아닐 수 없었고 .

그만큼 규모가 커져가며 치열해지고 말았다.

 

한편 . 금모사왕 오빈기는 그가 청해온 몇 사람의 고수급 인물들

해남인마. 운몽노인. 기경객. 장백산 땅딸보 형제.

그리고 새로 가담하여 달려왔다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마귀의 두목 같은

흑지상인(黑池上人) 고비(古非)까지 합쳐 가지고 와글와글 쑤군쑤군 .

즉각에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놈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서 탁창가의 몸에 지니고 있는

『숭양비급』을 단숨에 강탈해 버리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이렇게 긴장된 순간에도 금모사왕 오빈기는

그의 아들을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한 가지 이것 때문에.

이 여러 마귀 두목같은 위인들은 피차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심하고 도무지 의견이 쉽사리

합치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다 같이 한 가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없이『숭양비급』을 수중에넣어보고 싶다는

저마다의 속셈이었다.

그들은 쑤군쑤군 꽤 오랫동안 서로 상의하고 나서야 한 가지

작전 계획을 세웠다.

 

 

<다음 16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