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12장 연연불망(戀戀不忘)

오늘의 쉼터 2013. 12. 8. 16:33

정협지(情俠誌) 3권
제 12장 연연불망(戀戀不忘)

 

어두 밤의 대결

 

감욱형과 악중악은 남매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둘은 어려서 부터 같이 자라난 사이인지라.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오누이 같은 친밀한 감정이 싹텄다.

그러나 악중악은 어릴 때 부터 고집이 세고 성격이 완강했으며.

까닭없이 뽐내고 으스데기를 즐기고.

웬만한 사람은 사람으로 알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불손했다.

감욱형도 어렸을 때에는 악중악을 어려워도 했고 무서워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품이 달라졌다.

감욱형은 타고난 천품이 극히 순진하고 온순했지만.

한편 남에게 까닭없이 굽히기 싫어하는 앙칼진 성깔이 있었다.

감욱형은 도리에 맞고 자기 분수를 분간할 줄 아는 사람 앞에서는 온순했지만.

그렇지않은 사람 앞에서는 추호도 자신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약하고 불행한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인자하게 대했다.

그와 반대로 감욱형은 남을 깔보거나 까닭없이 업신여기는 사람일수록 절대로

머리숙이기를 싫어하는 꼿꼿한 성미가 있었다.

이렇게 각각 두드러지게 다른 소년과 소녀의 성품도 세월을 먹었다.

그들이 언제나 어린아이인 것은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감욱형은 악중악에 대해서 어찌됐든 같이 자라난 오라버니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일종의 서먹서먹한 감정을 버리지 못했다.

악중악은 숭양파의 영도자요 대표자 격인 후계자로 뽑히자.

바로 숭산에 들어가 무술의 재간을 연마해야 했다.

5년 동안에 겨우 두 번 산에서 내려온 악중악.

감욱형과 얼굴을 대해볼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으면 도리어 서로 궁금하고 그리워지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천지간에 변화무상한 조화란 것은 항시 인간을 희롱하기 마련이다.

5년후.

감욱형이 가장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 뜻하지 않은 사람의 구함을 받게 되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예전에 감욱형이 구해준 일이 있던 노영탄.

바로 그 소년이었으나. 솔찍히 말하자면 그 때는 이미 감욱형의 기역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리다시피한 사람이었다.

금사보에서 탈출한 뒤. 먼길을 동행하여 흉허물없이 이야기를 해보았고 .

홍택호로 배를 저어 들어가 오매천녀의 적화주에 이르러 아침 저녁으로 한 곳에서

사귀어보게 되었다.

노영탄에 대한 옛날의 인상은. 또다시 감욱형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또하나의 새로운 노영탄이라는 청년의 그림자가 더욱 깊이깊이 감욱형의 가슴속에

뿌리를 박게 된 것이었다.

노영탄은 얼굴 모습이나 몸집까지 악중악과 흡사하게 닮았으나 그의 성격이나 기질은

악중악과 판이하게 달랐다.

노영탄은 공손하고 겸허하고. 깨끗하고........

영원히 온순하고 중후한 성품을 지니고 살아갈 청년만 같았다.

감욱형은 노영탄과 한 곳에서 짧은 동안이나마 같이 머무러는 사이에.

노영탄이 그 외모에 있어서 악중악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 악중악이라는 오라버니 같은 존재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자신도 왜 그런지 똑똑히 까닭을 알 수 없으면서도 .

노영탄과 악중악의 너무나 대조적인 성격과 기질을 비교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노영탄이라는 한 청년의 그림자는 감욱형의 마음을 온통 송두리째 점령해 버리고만 것이다.

노영탄은 일찍이 숭양표국 뒤뜰에서 악중악에게 모욕을 당했고 창피한 꼴을 당했었다.

감욱형과 악중악의 사이를 노영탄도 똑똑히 알고있다.

그러나 노영탄은 감욱형과 단둘이서만 있을 때에는 절대로 악중악이라는 존재를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악중악에게 모욕을 당했던 과거지사 같은 것을 건드리기도 싫어했다.

감욱형이 악중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노영탄은 씽긋하고 담담히 웃어버릴 뿐이었다.

노영탄의 이런 대범한 태도는 감욱형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호감을 더욱 두텁게만 했다.

감욱형은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로 돌라와서 숭양파의 대표자 탁창가에게 악중악의

형편을 보고하면서 곧 대표자를 쫒아서 다시 회양지구로 갈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악중악의 신변을 걱정했고 더군다나 그보다 몇 배나 더 노영탄의 종적을 알 길이 없어

마음을 놓지 못했었다.

그러나 대표자 탁창가는 끝끝내 감욱형을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감욱형의 실망과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표자 탁창가가 떠나간 뒤에  고봉상인에게 솔찍한 심정을 고백해 봤다.

그리고 빨리 적화주로 되돌아가서 소식을 탐지해 보고 싶다고 애원했다.

고봉상인 낙이산은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요연선독장을 맞고 부상을 당한 뒤.

요행이 악중악에게 구함을 받아 간신히 천암사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낭월대사는 견식이 넓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의학과 병리에도 정통한 사람이었다.

대사가 재빠르게 손을 써서 응급치료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대문에 .

불과 며칠 동안의 휴양으로 고봉상인 노인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용연선독장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독특하고 괴상한 독소여서

특수한 해독제를 쓰지 않고는 상처를 고치기가 심히 어려웠다.

생명을 간신히 건지기는 했으나 이런 특수한 해독제를 손쉽게 구할 길이 없어서 .

고봉상인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천암사 안에 자리잡고 누워서 조용히

휴양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저는 꼭 한 번 그곳엘 가보아야 되겠어요!"

감욱형은 몇 번이고 고봉상인에게 애원했다.

감욱형이 하도 성화같이 졸라대고 자세한 사정과 형편을 설명하는지라.

고봉상인 낙이산도 말릴 도리가 없었다.

감욱형의 꼿꼿하고 앙칼진 성깔에 한 번 하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아 버린다면 

모르게라도 빠져나가고야  말리라는 것을 낙이산 노인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또 감욱형이 하는 말을 이모저모로 생각해 보자니.

그때 벌써 노영탄이라는 청년에 대해서 .

그의 행방과 생사를 걱정한다는 단순한 구실 이외에 정에 끌리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상당히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을 낙이산 노인도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낙이산 노인은 마침내 감욱형이 가고 싶다는 길을 허락했다.

그러나 신신당부하는 바가 있었다.

" 너의 사정이  정 그렇다면 내 굳이 막으려들지는 않지만 ...............

모든 행동에 있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 대표 탁창가 아저씨가 이미 회양지구로 달려간 뒤이니.

그 곳에서 회양방 놈들이 이에 대비하고자 고수라는 놈들을 무수히 몰아다 놓고 있을 것이다.

눈이 뒤집힌 놈들은 남자고 여자고 헤아릴 겨를도 없이 미쳐 날뛸 것이다.

너는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길을 돌아서 가도록 해라!

그래야만 아무런 봉변도 당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 

낙이산 노인이 이렇게 쾌히 승락해 주자.

감욱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즉시로 행장을 수습해 가지고 말 위에 올라 질풍과 같이 일로 홍택호를 향해서 달려갔던 것이다.

이런것이.

천만뜻밖에도 서주까지 왔을 때 .

악중악을 만나게 됐으며 동시에 공교롭게도 독응구붕 영감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사태는 급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감욱형도 마침내 구붕 영감을 따라서 숭산으로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숭산까지 돌아오는 도중에도. 감욱형이 연연불망(戀戀不忘).

안타깝게 알고 싶은 것은 노영탄의 행방이나  소식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방곤 영감이 노영탄에 관한 말을 묻자 .

가슴속 깊이 서리어 있던 근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몇 마디를 덧붙혀서.

이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수 없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건곤취객. 어양검사. 독응구붕 세 사람은 감욱형의 말을 듣더니.

일제히 이상한 눈초리로 새삼스럽게 감욱형의 아래위를 유심히 훓어보았다.

노영탄이란 청년에 대한 이 아가씨의 관심이란 것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

세 영감은 눈치 빠르게 알아 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방글방글 웃었다.

" 흐음 ! 그래서 ?"

" 허허허 ..... 그다지 대담한 청년이라면 그러함도 ........"

그중에서도 익살맞기로 유명한 건곤취객 방곤은 두 눈을 두리번거리며.

히죽히죽 웃어가며 반은 안심하라는 듯. 또 절반은 놀리는 듯. 이죽이죽 말을 꺼냈다.

" 이 아가씨야! 그다지 근심 걱정할 것은 없단말이다.

뭣을 이맛살을 찌푸려가며 애가 타서 야단이냐?

그노가라는 청년도 남해어부의 수제자라니 무슨 실수가 있겠는냐.

너의 오빠 악중악은 이미 위험한 지경에서 구출됐다니 더군다나 문제가 없을 것이고 .

안심하란 말이야!

모두들 별고 없을 것이니 ........

하 하 하 .........

그년 참. 뭘 그렇게 ?

가슴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모양이구나 ! 

핫! 핫! 핫! "

이 말을 듣자.

감욱형은 다소 안심이 되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

한편 부끄러움을 참을 길이 없었다.

두 볼이 당장에 빨갛게 타올랐다.

귀엽게 생긴 입술을 쫑긋쫑긋.......... 그냥 우물쭈물거리기만 했다.

어양검사가 또다시 감욱형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천암사에 남아 있었지 않았느냐?

어떻게 해서 혼자서 서주에 갔었더란 말이냐?"

그제서야 감욱형도 부끄럼을 무릅쓰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솔찍히 설명해야만 했다.

"저는 그 노영탄이란 청년과 미리 약속한 바가 있었어요.

제가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로 가서 대표 아저씨에게 보고를 마친 다음에는 .

곧 적화주로 돌아와서 만나기로요.

그런데 도중에서 악중악 오빠를 만나게 돼서 알아봤더니.

노영탄이란  그분의 행방을 모른다지 않아요.

악중악 오빠도 적화주에서 오는 길이라 하니 .

노영탄이란 분이 적화주로 가지 못한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저씨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또 대표 아저씨도 벌써 그쪽으로 달려 가셨다니

대단한 변고야 없으려니 하고 마음이 적이 놓이기는 하지만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원명 원량 두 관동 아이들은 향화 도인을 시켜서

저녁상을 차려놓고 부르러 나왔다.

" 시장들 하실 터인데 안으로 들어가셔서 .......... 식사 준비가 다 되었사옵니다 !"

네 사람은 잠시 동안 이야기를 그치고 자리에 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건곤취객 방곤과 어양검사. 독응구붕 세 영감들이 상의한 끝에.

세 사람이 교대해 가면서 밤을 지키기로 하고 감욱형은 여자의 몸으로 경험도 부족하다 해서.

야경의 임무를 맡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서 쉬도록 했다.

 

밤이 어지간이 깊었다.

벽송관의 휘황찬란하던 등불도 꺼진지 오래다.

깊고 높은 숭산 꼭대기는 온통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동서 지척을 분간키 어렵게 한없이 널버러진 이 어둠 속에서는 무슨 바람에 맞부딧쳐서

울부짖는 소나무 가지의 요란한 음향이 있을 뿐.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밤 공기만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때로. 올빼미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심산계곡의 칠흑같은 정숙을 깨뜨리며 밤 공기를

더욱 처량하게 했다.

이때.

쏴 쏴 쏴

어디선지 괴상한 음향이 들려왔다.

이 깊은 밤중에.

난데없이 들려오는 괴상한 음향은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 깊숙히 뚫린 꾸불꾸불한 길에서

회오리 바람처럼 매섭게 일어났다.

마치 집을 찾아 숲 속을 헤매는 밤새와도 같이.

여섯 줄기의 시커먼 그림자가 그 괴상한 음향을 내며 어둠 속을 헤쳤다.

높이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또다시 땅바닥을 쓸 듯이 얕게 가라앉아 가면서

행동이 빠르기가 흡사 공중에 나는 새와 같았다.

전광석화와 같이 날쎈 재주를 부리면서도 숨소리 한 번 내는 법이 없이.

단숨에 하늘높이 솟구쳐올라 일직선으로 비호같이 달려가는 품이 .

벽송관을 향해서 습격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여섯 줄기의 시커먼 그림자는 바로 여섯 명의 장정들.

똑같이 검정 색깔 무장으로 몸을 가볍고 야무지게 차렸으며.

시켜먼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였다.

앞장을 선 건장한 체구의 장정은 얼굴빛이 거무칙칙하고 푸르팅팅한 데다가

두 눈이 무서운 광체를 발사하며 나이는 오십 전후 .

나머지 다섯 몀의 장정들은 뚱뚱한놈. 가날픈놈.......

그 체구들이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똑같이 흉칙스럽고 악독하고 교활한 빛이 넘쳐흐른다.

이 여섯 명의 장정들이야말로.

바로 회양방의 금모사왕이 초청해 온 인물들이다.

앞장을 선 자는 그 이름을 호법문(胡法文)이라 하며.

강호넓은 천지에서 흔히 새염군(賽閻軍)이라 일컫는다.

복건성(福建省). 절강성(浙江省) 일대의 산 속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나머지 다섯 명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금모사왕의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었다.

그 밖의 또 한 자는 활무상(活無常) 조구중(祖久中)이라고 일컫는 인물이며.

그 다음이 음산쌍호(陰山雙虎)라고 일컫는 복인(卜仁) 복의(卜義) 형제

또 한 자는 초산활귀(焦山活鬼)라 일컫는 맹성(孟成)이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다같이 깊은 산속 험악한 골짜기에서 나쁜 짓을 하고 사는 데는

첫째 둘째를 다투는 굴지의 인물들로서.

그 손 쓰는 품이 맵고 독하고 잔인하며 배짱이 엉큼하기로도 한몫을 단단히 보는 위인들이었다.

비록 무예계에 있어서 두각을 내고 명성을 떨친 인물은 못된다 하지만 .

또한 어느 모로 보나. 절대로 호락호락 다룰 수 없는 마귀같은 존제들이다.

금모사왕은 오랫동안 가지가지 방법과 수단을 써가며 백방으로 손을 뻗쳐서 이런 위인들을

회양방으로 매수해 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금모사왕은 이번에 비장한 결심을 하고 숭양파와 더불어 이월 초이튿날을 기해서

일대 결투를 하기로 선언했고 약속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은 아버지에게 한 가지의 묘한 계교를 제시했다.

그것은 적의 본거지가 비어 있는 틈을 놓치지 말고 그 혀를 찌르자는 비급한 작전이었다.

금모사왕의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건의한 작전이란 것은 숭양파의 대표자가

모든 노소 제자를 거느리고 홍택호로 이동해 오는 기회를 노리자는 것이다.

그때에는 숭산 벽송관은 텅 빈어 무방비지대가  될 것이니.

만일에 이 기회를 교묘히 노려 고수급의 인물을 몇 명 파견해서 한바탕 뒤집어놓는다면 .

비단수양파 전체의 인심이나 사기를 극도로 불안하게 자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혹은 이 천재일후의 기회에 저 무예계에서 최대의 보물이라는 『숭양비급』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금모사왕도 이런 건의와 작전에 대해서 여간만 기특히 여기고 찬성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 다섯 명의 장정들을 초청해다가 숭산으로 파견하기로 결정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술의 재간이나 실력이 결코 약한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깊은 산 솟에 은거해 실력을 배양한 뒤에 내닫는 늙은 마귀들 같은

인물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손색이 많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금모사왕은 자기편 인물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철장단심 닥창가와 숭양사로라는

숭양파의 인물둘이 절대로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동시에 숭양파에서 무수한 정통파의 고명한 인물들을 초청해 놓았다는 소문도 상세히 듣고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

 금모사왕은 이런 인물들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소흘히 생각할 수는 없었다.

비록 대단한 인물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좀처럼 처해오기 어려운 다섯 명의 마귀같은 위인들을.

정면 투쟁이 아닌 이번 일에 전적으로 소모시킬려는 생각은 없다.

그러나 며칠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역시 이 다섯명의 장정들을 파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다섯 명의 장정들은 깊숙한 산골짜기에 숨어서 백성의 가옥을 습격하고 .

그 재물을 약탈하는데 비상한 재간을 지니고 살아온 위인들이므로 이런 일에는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 초산활귀 명성이란 자는 기기묘묘한 재간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입김으로 바람을 뽑아내면 향긋한 바람 속에 자욱한 연기로 연막을 치고 .

그 속에서 독기를 뿜는 괴상하고 악독한 무기를 쓸 줄 아는 무시무시한 작자였다.

이러한 점을 여러모로 심사숙고 끝에 . 금모사왕은 이들 다섯 명을 벽송관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점을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금모사왕은 혼자서 이 궁리 저 궁리 한 끝에 이 다섯 명의 장정녀석들이 만일『숭양비급』을

손에 넣게 되었을 경우에는 만만히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우환을 생각하고 금모사왕은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을 딸려 보내기로 했다.

금모사왕이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을 딸려 보낸 것은 표면으로는 이 다섯 명의 장정들을

도와주고 그 들의 투지를 고무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숭양비급』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나 않을까 해서 그것을 감시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여섯 명의 장정들은 아주 유유히 거들먹거리면서 자못 통쾌한 기분으로 목적지에 도달한

셈이었다.

'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리에 달려온 길이니. 우리들의 행동을 귀신인들 알 수 있으랴.'

' 더군다나 . 숭양파에서야 깜깜 소식이겠지.'

이들은 이렇게 자신만만했으며 감쪽같이 벽송관의 허를 찌를 수 있으리라고만 생각했다.

숭양파에서도 이미 이런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을 파견해서 벽송관에 배치해 놓고 .

그 곳을 방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한나절이 기울 무렵에 팔조독경 오백평 일행 여섯 명은 숭산 산기슭에 다다랐다.

산악지대에 땅거미가 짙게 깔릴 때까지 그들은 산기슭 깊숙한 곳에 숨어서 푹 쉬었다.

날이 완전히 저물어서 어둑어둑해졌을 때부터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장정들은 산길에 익숙하지 못한 탓으로 초경이넘었을 때까지

이 길 저 길을 더듬어 돌아단니다가  가까스로 벽송관 앞에까지 찾아든 것이다.

여섯 명의 장수들이 몸을 어둠속에 감추고 비호같이 앞으로 달려들어갈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들미에 있던 큼직한 소나무 가지위에 난데없이 또 하나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

하고 번갯불이 일어나듯이 형체를 나타냈다.

이 괴상한 사람의 그림자는 몸을 쓰는 동작이 빠르고 날쎈 품이 신출귀몰.

숨소리 한 번 내는 법도 없고 또 땅위로 내려앉으려는 기색도 없었다.

소나무가지 맨 꼭데기에서 가지를 밟아가며 몸을 솟구치기도 하고 옆으로 날기도하면서

어둠속에 형체를 감추고 여섯 명의 장정 뒤를 쫒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떼어놓고 . 앞으로 더 다가들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으면서 앞서가는 자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그 뒤를 바싹 따라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 여섯 명의 장정들은 벽송관 뜨락을 막고있는 높은 담 밑에 다다랐다.

그들은 주춤하고 잠시 동안 행동을 멈추더니 .

한편 시커먼 어둠 속에서 숨어 서서 쑤군쑤군  잘 들리지도 않는 가느다란 음성으로

무엇인지 서로 의논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여섯 명의 장정들은 홱 ! 하고 몸을 돌이키는가 하는 찰나에 비호같이 몸을 날리더니.

네 방향으로 갈라섰다.

사면으로 흩어져서 제각기 쥐새끼가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듯이 벽송관으로 아무도 모르게

침범해 들어가자는 작전인 모양이었다.

" 아니꼬운 놈들 ! 네놈들이 어찌겠다는 거냐?  헤 헤 헤 ........."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선지 이떻게 냉소하는 가느다란 음성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그것은 여섯 명의 장정들의 뒤를 따르고 있던 그 괴상한 그림자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음성이 었다.

이때. 그 괴상한 그림자는 벽송관 담에서 아직도 십여 간쯤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가지 위에 숨어 있었다.

그는 몸을 한 번 가볍게 꿈틀하더니.

허공으로 부터 바람처럼 내려앉았다.

두 팔을 후들후들 가볍게 떨고 있었다.

몸이 또다시 바람처럼 가볍게 땅 위에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넓은 창공에서 구름을 박차고 화살처럼 날아가는  한마리의 매와도 같이 벽송관의 담을

향해서 곧장 날아 들어갔다.

그는 단숨에 벽송관높은 담 위에 우뚝 내려서더니 다시 한편 발을 가볍게 굴렸다.

몸을 다소 구부정하게 굽히는가 하는 찰나에 그는 또다시 몸을 바람처럼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손살같이 벽송관의 정전 건물 지붕 꼭대기로 날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벽송관정전 지붕 꼭대기에 자리잡자 그 괴상한 그림자는 배를 착 깔고 엎드려서 몸을 감취버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매서운 눈초리는 아래를 향하고 샅샅이 뒤지기라도 할

듯이 더듬어 내려갔다.

정전은 벽송관 안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서 제일 높게 솟아 있는 건물로 이 지붕 꼭대기

제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살펴보면 벽송관의 정전이 한 군데도 빠짐없이 손에잡힐 듯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여섯 명의 장정들의 시커먼 그림자는 이미 벽송관 안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살짝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명이 모조리 어디론지 종적을 감춰버렸다.

지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그 괴상한 사나이는 눈 아래에서 여섯 명의 장정들이

온 데 간 데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을 보자.

다소 당황하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흥? 이놈들이 이렇게 날쌔게 어디로 숨어버리다니?'

그 괴상한 사나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매서운 안광이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반짝거렸다.

바로 이 순간.

그가 머리를 뒤로 홱 돌려봤을 때.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번쩍! 하고 눈 앞을 스치듯이 꿈틀거리더니

한 군데 소루(小樓) 앞에 몸을 쪼그리고 숨어드는 것을 힐끗!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괴상한 사나이는 그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른편 손바닥으로 지붕 꼭대기 기왓장을 한 번 꾹 누르더니 

허리에다 힘을 주고 딱 버티었다.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슬쩍 지붕 꼭대기를 기듯이 다른 한 군데 건물의

지붕 꼭대기로 단숨에 옮겨 앉았다.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들이 몸을 쭈거리고 숨어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지점까지

접근해 들어간 것이다.

그 괴상한 사나이는 꼼짝달싹하는 기색도 없었다.

숨소리 한 번 내는 것 같지 않았다.

단지. 날카롭고 매서운 눈초리가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거리며

어떤 초점 하나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커먼 두 줄기 그림자가 소루 앞에 쭈거리고 서서 무슨 짓을 하는가?

그것만을 놓치지 않으려고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 아아 ! 이런 괘심한 놈들이. 마침내 이 따위 비루한 짓을. "

한참동안이나 두 그림자의 일거일동을 노려보고 있던 괴상한 사나이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칼끝같이 위로 치올라간 눈썹이 어둠 속에서도 바르르 떨리면서 비쭉하고 경련을 일어키는

품이 두 그림자의 행동을 그대로 볼 수 없어 몹시 흥분하는 기색이었다.

두줄기의 시커먼 그림자는 바로 찰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이었다.

이 두 놈은 그 소루 등창 아래 한참동안이나 쭈거리고 섰더니.

몸에서 한 개의 학의 주둥아리 같이 생긴 자그마한 주전자를 꺼냈다.

한 놈은 그 주전자의 주둥아리를 창 틈으로 디밀고  또 한 놈은 주전자에다 입을 대고 있는

힘을 다해서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순식간에 안개같이 뽀얗고 하얀 연기가 그 주전자 주둥아리로 부터 방안으로 자욱하게 퍼져

들어갔다.

이런 괴상한 짖은 무술의 재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악날한 장난이다.

강호 넓은 천지에서도 가장 비열한 놈들. 깡패나 망나니 같은 너절한 놈들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치사스런 장난이다.

인가 근처로 돌아다니면 남의 집 닭이나 도둑질해 먹는 놈.

혹은 남의 집 개나 사냥질하러 돌아다니는 놈.

그렇지도 않으면 유부녀나 꾀어내고. 처녀나 겁탈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도둑치고도 가장 비열한 도둑놈들이나 곧잘 쓰는 수법이다.

구수한 향기가 나는 연기속에 일종의 마취제를 섞어서 그것으로 상대방을 정복하고

목적을 달성하자는 괴상망측한 장난이다.

팔조독경 오백평이 마침내 이따위 비열하고 악독한 수법을 쓴다는데.

그 지붕 꼭대기에 숨어 있는 사나이는 의분을 참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안개같은 연기가 방안으로 퍼져 들어가는 것을 내려다보던 그 괴상한 사나이는 

몹시 초조한 음성으로 되뇌였다.

"저런 죽일 놈들이 ! 저 방에 누가 있을까? 

그 아가씨가 저 방안에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

괴상한 사나이가 지붕 꼭대기에서 막 몸을 움직여 행동을 개시하려는 찰나에.

" 아하하하 ....... 아하하 ....... "

어디선지 난데없이 깔 깔 깔 깔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통쾌한 웃음소리가 밤 공기를 흔들며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집이 떠나갈 듯 .

깊은 밤중에 칠흑같이 어둠속을 진동하며 듣는 사람의 귓전을 무섭게 자극했다.

분명히 웃고 있는 사람은 전신에 축적되어 있는 내공의 온갖 힘을 불러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과연.다음 순간에 그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딱 그쳤다.

뒤를 이어서 무섭게 호통을 치는 서리발같은 음성이 있었다.

" 네 이놈들 ! 당돌하고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비도들아 !

감히 우리 벽송관엘 침범해서 비루하고 괴상망측한 잔꾀를 부리려 들다니........."

호통을 치는 무서운 음성을 듣자.

그제야 팔조독경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경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퍼뜩 느꼈다.

두 놈은 몸을 꿈틀하고 움직여 몇 걸음인지 뒤로 움직였다.

그러나 두 놈의 발이 미처 땅위에 자리잡고 서기도 전에.

"우지끈 ! 와르르......."

그 들창에서는 천지를 진동할 듯 요란스런 음향이 들리더니.

어떤 억센 힘에 몰려서 바람속에 휘감기듯 문짝이 당장에 땅 위에 날아 떨어지며 .

뒤쫓아 앙칼진 여자의 음성이 매섭게 들렸다.

" 이 비루한 도둑놈들 ! 그대로 둘 줄 아느냐 !"

창문이 떨어져서 활짝 열린 창 안으로 부터 밖으로 내닫는 것은 무수한 별빛같은 방울 방울.

그 방울이 날카로운 광체를 발산하면서 방 안에서 화살같이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서운 광체는 곧장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을 향하고 쏘아 들어갔다.

경각을 지체치 않고 시커먼 그림자가 전광석화와 같이 번쩍하고 어디선지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그림자였다.

이사람의 그림자는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의 앞에 우뚝 서면서 육박해 들어가려 했다.

때를 같이하여 저편에서도 또 다른 한 사람이 불쑥 뛰어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두 손을 높이 쳐들어 손바람을 일어키더니.

양편으로 갈라서서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에게 곧장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 흐음 ? 만만치 않는데 ........'

'이렇게 경계가 심할 줄이야 !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큰일나겠는데 !'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벽송관의 경비가 자못 엄중하다는 것을 느끼자.

당황했으며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 어떻게 한다 ?'

두 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동안 망서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놈이 무엇을 생각할 만한 여유도 주지않고. 양편으로 갈라진  두 줄기 사람의

그림자는 양쪽에서 협공의 태세를 취하며 억센 손바람으로 각각 두 놈을 향하고 들어갔다.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허둥지둥 땅 위에 든든히 발을 붙이지도 못한 체로

똑같이 손바람을 일어켜서 상대편의 공격을 다소나마 막아냈다.

양편의 기세가. 지극히 짤은 순간이었지만 수거러지고 느려지는 틈을 타서

팔조독경 오백평은 있는 힘을 다해서 휘바람을 불었다.

" 휘익!"

자기 편에게 경계하라는 암호였다. 

팔조독경 오백평의 휘바람 소리는 밤공기를 무섭게 흔들고 심산의 칠흑같은

암흑 속으로 울려 퍼젔건만. 아무도 이 신호를 듣고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회답의 신호조차 없었다.

일당 여섯 명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이라도 휘바람 소리를 들었으면 이편으로 달려오게

마련이었고 못 오면 알아 듣기라도 했다는 회답의 휘바람 소리라도 있어야 한다.

' 이상한 일이다! 우리편은 모두 어디가서 뭘하고 있는 것일까?'

팔조독경 오백평이 어찌된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을 때.

별안간 어디선지 한마디의 처참하고 무서운 비명소리가 밤 공기를 처량하게 진동시키며 들려왔다.

" 아야야야 ....... 이쿠 ! "

오장육부가 금방 끊어져 달아나는 것 같이 애절한 비명소리였다.

이 무서운 비명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또 다시 똑 같은 비명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 으헉....... 이쿠 ! "

그 비명의 소리는 처참하고 애절함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골이 송연하게 할 지경이었다.

연거푸 두 번이나 들려온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에 가슴이 메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들은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 두 사람만은 아니었다.

이장면에 뛰어 내닫는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도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라움을 금치못할 지경이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건곤취객 방곤과 감욱형이었다.

때마침. 방곤 영감은 야경 차례였는지라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가 막 벽송관 대전 뒤에 있는 좁은 뜨락에 까지 왔을 때 무심코 머리를 흘쩍 쳐들어보니.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바로 감욱형의 침실 들창 밑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 이키 ! 이게 뭐냐 ? 이게 무슨  괴상한 놈들의 그림자냐?'

방곤 영감은 깜짝 놀라서 고함을 질러볼까 했다.

그러나 이 수상찍은 놈들이 꿈틀거리는 위태로운 순간에 덮어놓고 고함을 질러서 

풀속에 잠든 뱀들을 모조리 건드려놓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심히 불리하다는 생각이 퍼뜩!

방곤 영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선. 상대방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곤영감은 고함을 질러서 놈들을 선불리 건들게 될 것을 단념하고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서 어양검사 단목심곡과 독응구붕 두 영감을 깨워 일어킨 것이다.

한편 감욱형은 따로 떨어져 있는 저의 침실에서 여러가지 생각에 골몰하여.

자리에 누웠으면서도 엎치락 뒤치락 했을 뿐.

오래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키고자 애쓰고 있었다.

바로 이때 . 들창 문풍지 틈에서 무엇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누워있던 감욱형은 정신을 바싹 차렸다.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문풍지 틈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과연. 밖으로 부터 무엇인지 문풍지 틈으로 찌르고 있는 놈이 있다는 사실을 재빨르게 알아차렸다.

'누구냐! 이 깊은 밤중에 괴상한 장난질을 치는 놈들이?'

감욱형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살금살금 몸을 일어켜서 침상 아래로 내려섰다.

더 한층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문풍지 틈을 주의해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문풍지 틈으로 부터 마치 학의 주둥아리 같이 생긴 뽀족하고 기다란 아가리 한 줄기가

살금살금 방안으로 뻗쳐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흠! 이것이 바로 구수한 향기 속에다 마취약을 섞어서 뿜어댄다는 .......

바로  그 따위 장난질이구나 !"

감욱형은 퍼뜩 !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예전부터 이 따위 비루하고 악독한 장난질을 치는 놈들도 있다는 사실을 윗사람에게 대강 

이야기로만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회양방 놈들이 침범해 온 것이로구나!'

감욱형은 대경질색. 또한 치밀어 오르는 불같은 본노를 참을 수 없었다. 

선뜻 손수건을 꺼내서 입과 코를 싸매서 가렸다 .

함편. 보검 한 자루를 등 뒤에 든든이 꽂아서 짊어지고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은정(亮銀釘)이란 

잘디잔 무기를 한 웅큼 잔뜩 움켜쥐었다.

양은정이란 뾰족한 못이나 송곳 끝같이 생긴 가늘고 잘디잔 쇠붙이들이었다.

감욱형이 . 어떻게 손을 쓰기 시작할까 !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침. 방곤 영감이 밖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욱형아 ! 잠이 들었느냐 ? 일어나거라 ! 정신을 차려라 !"

"예 ! 걱정마세요 ! 잘 알고 있어요 !"

감욱형은 경각을 다투어야만 될 때라고 생각하자.

비호같이 손을 놀려서 단숨에 들창문짝을 밖으로 냉동댕이쳐 버렸다.

연거푸 팔을 신바람 나게 휘둘렸다.

송곳끝 같이 잘디잔 양은정을 밖으로 힘껏 뿌린 것이다.

비가 쏟아지듯 . 꽃잎이 바람에 날리듯. 야은정 뾰족한 못들이 창 밖으로 흩어지는 틈을 타서 

감욱형은 두 발을 한 번 쿵! 하고 구르기가 무섭게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때를 같이하여 방곤 영감은 양편으로 갈라섰다.

방곤 영감은 곧장 팔조독경 오백평에게 공격을 가했으며 감욱형도 경각을 지체치 않고

두 팔을 높이 쳐들어손바람을 일어켜 초산활귀 맹성을 향하여 쳐들어갔다.

방곤 영감의 공격도 어지간히 억센 것이었지만  감욱형의 손바람 역시 여자의 손바람치고는

매섭고 앙칼지게 육박해 들어갔다.

한 번. 또 한 번.

방곤 영감과 감욱형이  공격을 거듭해 들어가는 기세는 정말 무섭게 놀라운 바 있었다.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이런 놀라운 방비가 텅 비었을 벽송관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이쿠 ! 이건 잘못 걸렸나 보다 !'

'이건. 아닌데 ....... 섣불리 다루다가는 만만치 안겧는걸 !'

두 놈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너무나 창졸간에 벌어진 놀라운 사태인지라 .

두 놈은 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발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그저 허둥지둥.

이러는 판에 두 번씩이나 연거푸 처참하고 애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가 없을 터인데?'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그 간장이 끊어질 것 같은 처참한 비명소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처음에는 그래도 자기네들의 귀를 의심했었다.

' 그럴 리가 없다?'

' 그렇게 쉽사리 넘어갈 리가 .....?'

그러나 두 번째 비명소리가 그들의 귓전에 소름끼치도록 울려왔을 때.

그들은 그 비명소리가 자기네들 편의 음산쌍호라 일컫는 복씨형제들의 음성이라는 것을

부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복씨네 형제들이 대항할 수 없는 무서운 상대자들을 만나서 목숨을 빼앗기고

넘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지러는 죽음의 비명소리였다.

팔조독경 오백평과 초산활귀 맹성은 점점 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점점 더 급이 나고 당황하고 용기가 나질 않았다.

' 숭양파 놈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방비를 하고있을 줄이야 ?'

' 무술의 재간도 이만 저만한 놈들이 아닌 모양인데 .........'

' 음산쌍호 복씨네 형제들이 찍 소리 못하고 쓰러질 정도라면 ?'

' 상대방의 무술의 재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더 말할 나위도 없는 ..........'

팔조독경 오백평은 정세가 아무래도 만만치 않고 몹시 불리하다는 것을 퍼뜩! 느겼다.

" 쉬익 !"

" 쉬익 !"

생각을 달리해야겠다고 결심한 팔조독경 오백평은 또다시  입에다 있는 힘을 다 모아서

연거푸 두 번 내뿜었다.

그리고 일변 당황한 음성으로 초산활귀 맹성에게 말을 던졌다.

" 바람이 너무 세다 ! 안 되겠어 ! 빠져나가는 수밖에 ......."

팔조독경 오백평은 민첩하고 눈치가 빨라 좀체 남에게 지지 않는다.

정세가 자기네 편에 몹시 불리하여 오늘밤에는 도저히 뜻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자.

당장에 몸을 빠져나갈 궁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저편에서 휘바람 소리의 대답이 있었다.

" 쉬익 ! "

" 쉬익 ! "

이편에서 보낸 것과 꼭 같이 두 번을 연거푸 .

그러나 저편에서 불어 오는 휘바람 소리의 대답은 점점 더 팔조독경 오백평을 당황하게만 했다.

그것은 저편에서도 상대방에게 가로막혀서 쉽사리 몸을 뛰쳐나갈 수 없다는 암호의 휘바람이기

때문이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게 됐다.

구여지책으로 두 손을 흘쩍 높이쳐들더니 등 뒤에 지니고 있던 두 자루의 사어자(沙漁刺)라는 

쇠갈퀴 무기를 뽑아들었다.

있는 힘을 모조리 모아 그 무기를 휘두르며 건곤취객 방곤에게로 육박해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두 팔을 꾸부정하게 안으로 감았다가 온갖 기운을 다 모아 가지고 전광석화 같이

펼쳤다.

" 쉬익 !"

요란스런 음향과 함께.

팔조독경 오백평은 모진 손바람을 일어켜서 건곤취객 방곤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날뛰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팔조독경 오백평은 이미 더 싸우고 싶은 용기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불리한 장면에서 몸을 빼내 도망칠려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두 손을 한꺼번에 써서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 본 것이다.

팔조독경 오백평의 무술의 실력이나 재간으로 말하자면 본래가 결코 약한 축에 들지는 않았다.

그가 위급한 정세에 대처하여 한 번 필사적이요.

발악적으로 실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닌게 아니라. 

건곤취객 방곤 영감도 처음에는 그의 이런 발악적인 공격을 막아내기 힘들 것만 같았다.

전광석화 같이 무서운 음향을 내면서 팔조독경 오백평의 두 손에서 일어나는 두 줄기

억센 손바람은 건곤취객 방곤 영감을 좌우 양편으로 습격해 들어갔으며.

그와 동시에 두 줄기 새카맣게 매서운 광채가 한 줄기는 위로 화살 같이 날카롭고 빠르게

쏘아 들어갔다.

그러나 한편. 건곤취객 방곤 영감은 적어도 숭양사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무술의 재간은 이미 불가사의한 조화의 경지에 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필사적이요. 발악적인 공격이라 할지라도 건곤취객 방곤 영감은

비호같이 몸을 날려 그 정도의 공격쯤은 무난히 피할 수 있었다.

방곤 영감은 잠시동안 몸을 다소 구부정하게 쭈거리는 듯 하더니.

그대로 왼편 팔에 힘을 모아 땅을 꾹 밟으면서 두 팔을 동시에 앞으로 홱 뿌리첬다.

그리고는 또다시 전신을 오른손으로 쭈거려서 날쌔게 뽑아내는가 하는 찰나에 .

두 손을 앞으로 재빠르게 내뽑아서 억센 바람을 일어켜 팔조독경 오백평의 손바람을 막아냈다.

이 눈에서 불이 튈 것 같이 긴장된 공방전의 순간에.

팔조독경 오백평은 초산활귀 맹성이  어찌 되었는지.

그것을 헤아릴만한 겨를도 없었다.

남을 돌보기 전에 자신이 도망칠 구멍을 찾기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됐다. 

건곤취객 방곤 영감이 수세를 취하여 몸이 다소 뒤로 물러서는 듯.

기세가 수거러지는 듯한 틈을 보이자.팔조독경 오백평은 바로 이때라고 생각했다.

이 틈을 놓치면 빠져나갈 기회가 없다고 단정했다.

홱 ! 몸을 비호같이 돌이켜 방향을 바꾸어 가지고 두 다리에 온갖 힘을 모아서

땅을 쿵 힘있게 한 번 구른 다음에 그대로 땅 위에 솟구쳐 올라 뺑소니를 치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뜻했으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질 줄이야.

팔조독경 오백평이 막 껑충 땅 위에서 몸을 솟구쳐 가지고 앞으로 슬쩍 피해버리려고 했을 때.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어나 그저 눈앞이 별안간 아찔!

하고 어질어질해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이키 ! 이건 또 뭐냐 ? 이놈은 또 뭐라는 놈이냐 ?"

팔조독경 오백평은 얼이 다 빠진 사람같이 옴짝달싹도 못하고 바보처럼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건너편 지붕 꼭대기로 부터 날아 내려오는 한 사람의 그림자였다.

그 몸을 날리는 품이 팔조독경 오백평의 눈을 가지고는 똑똑히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고 보니. 손을 써서 바람을 일어켜 본다든가 해볼 겨를도 없었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단지 한마디 점잖게 호통을 치는 그 사람의 음성을 들었을 뿐이다.

" 내가 내려간다 ! 꼼짝말고 게 있거라 ! 네이놈 !  너를 놓칠 줄 아느냐 !"

그와 동시에 팔조독경 오백평은 무엇인지 무섭게 억센 힘이 별안간 머리 위로 부터

뒤집어 씌우듯이 내리누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땅 위로는 단 한 치도 솟구쳐 오를 수가 없었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죽을 힘을 다해서 가까스로 숨을 돌이키기로 했다.

그제야 앞을 똑똑히 내다볼 수 있었다.

 

지붕 꼭대기에서 날아든 사람은 바로.

'앗! 이놈이? 바로 얼마 전의 그놈이 아닌가 ?'

팔조독경 오백평은 대경질색.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발에 간신히 힘을 주어서 버티고 서 있을 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얼마 전에 대담무상하게도 회양방의 아성인 금사보에 단신으로 침입해서

종횡무진으로 제멋대로 무술의 재간을 뽐내고 휘두르고 하던 노영탄인 줄이야.

저편에서는 약한 여자를 뒤로 세우기 위해서 건곤취객 방곤 영감이 감욱형을 대신해서 들어섰다.

감욱형은 싸움의 테두리 속에서 멀찌가니 물러나 가고 있었다.

이 긴장된 공기 속에서 뒷걸음을 쳐서싸움의 테두리속에서 잠시 물러나려던 감욱형은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난데없이 이 장면에 날아든 인물이 누구인지를 똑바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쳐들어 앞을 바라본 감욱형.

' 앗! 노영탄! '

놀라움과 기쁨.

또한 가슴에 북바쳐 오르는 오매불망하던 그리움.

감욱형은 가슴이 꽉 막혀버리는 것만 같았다.

말을 잊은 채 한동안 그저 두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딱 벌린 채.

뚫어지도록 앞에 나타난 노영탄을 바라다보던 감욱형은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열고

숨찬 음성으로 한마디했다.

" 노공자! 당신. 당신께서는 어떻게 ? 지금 이곳엘 ?"

이 말을 듣고도 노영탄은 선뜻 대답이 없었다.

그저 만면의 미소를 띠고 빙그레 웃어 보일 뿐.

힐끗 고개를 저편으로 돌이키더니 팔조독경 오백평을 노려보며 통쾌하게 한바탕 웃어 젖혔다.

" 아하하하 ......... 핫! 핫! 이놈을 또 여기서 만날 줄이야 ......."

노영탄은 그제야 선뜻 이편으로 고개를 다시 돌이키더니  감욱형에게 간단히 몇 마디를 했다.

"할말은 태산갔소 !

그러나 이놈을 먼저 처치해 버리고 나서.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합시다!"

노영탄은 갑자기 음성을 높이더니 서슬이 시퍼런 말투로 팔조독경 오백평에게

추상같이 호령을 했다.

" 네 이놈 ! 내 말을 명심해서 들어봐라 !

본래. 네 놈의 천한 생명 하나만은 살려주려 했으나 ...........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정정당당히 싸우지 못하고 악독한 수단 방법으로 암암리에

남을 괴롭히려는 놈들을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다 !

네 이놈 !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서 그따위 강호천지에서 깡패나 망나니 같은 놈들이

항용 쓰는 더러운 냄새와 연기 따위를 가지고서 사람을 마취시켜 정신을 빼앗고자 하느냐 !"

" .......... "

팔조독경 오백평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얼이 다 빠져서 두눈을 끔쩍끔쩍하며 듣고만 있을 뿐.

노영탄의 음성은 더 한층 높고 준엄해졌다.

" 네 놈의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

이런 악독한 짓을 하는데 무슨 까닭이 있다면 토쾌하게 말해 봐라 !

그 이유 여하에 따라서는 용서해 줄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

하지만. 나는 네 놈의 소행을 이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

네 놈은 이따위 비열하고 잔인하고 악독한 수단과 방법으로 허다한 여자들을 괴롭혀 왔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까닭없이 약한 여자를 괴롭히려고  날뛰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좋다 ! 오늘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

나는 네 놈들 같은. 구더기같이 썩어빠진 놈들을 강호 넓은 천지에서 깨끗이 쓸어 버려야겠다 !"

" ........... "

팔조독경 오백평은 그대로 묵묵부답.

당황하기  이를 데 없는 눈초리로 노영탄의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다 보고 서 있을 뿐이다.

" 네 이놈 ! 왜 말이 없느냐 ?

사내 대장부로 태어났으면 .쓰다. 달다.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게 아니냐 이놈 !

네 놈은 입이 없는 놈이냐 ?"

노영탄은 말을 마치자 . 성큼! 성큼! 너댓 걸음 앞으로 썩 나섰다. 

불똥이라도 튈 듯한 눈초리로 팔조독경 오백평의 얼굴을 가까이 노려보며 또 한 번 호통을 쳤다.

" 이놈! 어서 말해 봐라! 네 놈들의 비루한 소행에 무슨 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떳뗫이 말해보란

말이다!"

그래도 묵묵히 서 있는 팔조독경 오백평.

그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도저히 노영탄을 상대로 하고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지난 날의 경험에 비추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 앉아서 항복을 할 팔조독경 오백평은 아니었다.

그는 이를 뿌드득 ! 갈았다.

안간힘을 쓰면서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어차피 이리 된 바에야.

피해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런 바에야.

그도 역시 남아대장부다.

마치 당장에 쓰러져 땅 위에 나뒹구는 짐승이 그래도 마지막으로 푸더득 거리고 발부둥을 치듯이.

그 역시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 보자는 결심인 모양이었다.

" 괘심한 놈! 핫! 핫! 핫! "

팔조독경 오백평도 마침내 입을 열고 징글맞은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 선뜻 허리춤에서 그의 독특한 무기인 팔조독경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몇 번인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나중에느 이를 악물더니

그대로 굴복할 수 없다는 듯 있는 힘을 다해서 호통을 치는 것이다.

" 요놈 ! 어린 녀석이 함부로 까부는 법이 아니다! 설사 내가 네 녀석에게 패하는 날이 있다 해도.

네 녀석은 언젠고 우리 아버님의 손에서 빠져 달아나지는 못할 게다!"

노영탄은 이 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땅을 디디고 점잖게  서 있을 뿐.

추호도 흐트러지는 기색이 없다.

이윽고 . 노영탄은 껄껄껄껄 어처구니 없다는 냉소를 터뜨렸다.

" 핫 ! 핫 ! 핫 !  가소로운 일이로다! 그것이 이유란 말이냐 ?

하 하 하  .......하하하 ....... 네 놈은 또 애비의 힘을 믿고 있다는 거지 ?

네 놈들의 회양방은 몇 십 년 전 옛날과 같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다시 연출해서.

멸망하고야 말 날이 멀지 않다는 사실이 눈앞에 역력히 보이고 있거늘 .........

네 놈은 그것도 모르고 네 아비의 힘만 믿고 있다니 ...........?

천하에 비급한 놈이로다 !

네 아비는 보건데 죽어서 묻힐 만한 땅조차 없는 가엾은 위인이다 !"

" 이놈 ! 무엇이 어째 ?  발칙한 놈 함부로 주둥아리를 ..........."

팔조독경 오백평은 또 한 번 이를 뿌드득 갈더니 미쳐서 으르렁대듯 고함을 질렀다.

마침내 팔조독경 오백평은 독특하고 잔인한 무기 팔조독경을 있는 힘을 다해서 휘두르며

노영탄에게 덤버들기 시작했다.

" 이놈 이번에도 네 놈이 넘어가지 않을 테냐 !"

팔조독경 오백평은 얼마전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

그것이 지극히 자신없는 허세에 지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이렇게 위테롭기 짝이 없는 발악을 해 보는 것이다.

" 흠! 또  그 따위 술법을가지고 나한테 덤벼들겠다는 거냐?"

노영탄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섰을 뿐.

냉정하고 유유하고 안온하며. 한편 눈도 깜짝하지 않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털끝만큼도

흐트러짐이 없이 부동의 자세로 버티고 섰을 뿐이다.

그러나 마침내 오백평의 독기로 이루어진 무기는 노영탄에게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 비루한 놈 ! 괘씸한놈 !"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는가 하는 찰나에 노영탄은 갑자기 슬쩍 허리를 다소 꾸부리는 듯 하더니.

발을 날쌔게 옆으로 빼어 그 독기를 살짝 피해버고 말았다.

그와 똑같은 찰나. 노영탄은 왼손을 싹! 하고 앞으로 밀더니

억센 손바람을 일어켜 곧장 오백평의 가슴팍과 복부를 겨누고 습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바른편 손가락 두 개를 꼿꼿이 일어켜 세워 팔조독경 오백평의 머리 뒤통수의 급소인

옥침혈(玉枕穴)을 전광석화 같이 노리면서 육박해 들어갔다.

오백평은 점점 더 당황해졌고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무기라고는 단 한 가지도 들지 않고  빈손만 가지고도 능히 대적하는 노영탄을 보니.

그의 손쓰는 법이 얼마나 무섭게 연마되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기다  또 급소를 겨누고 찌르는 데 정통한 품을 보니.

도무지 감당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여기서. 팔조독경 오백평은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써야 겠나는 생각이 퍼득 머리에 떠올랐다.

별안간. 손 기운을 거주어 들이는 체하고 몸을 날쎄게 옆으로 쓰어질 듯이 뽑아내 가지고

노영탄의 손 바람이 미치는 테두리 안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손에 자고 있던 팔조독경 무기도 허리춤에 있던 제자리에다 도로 집어넣어 버렸다.

여테까지 쓰던 수법을 완전히 버리고 껑충 한 번 허공으로 뛰더니 시커먼 광체를 발사해서

그것으로 제 몸을 가리고 상대방의 공세를 막아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오백평은 빈손으로 덤벼드는 상대방을 대적하고 싸우다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신변 가까이

접근해 들어오게 했다가는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어리라는 점을 똑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만일에 상대방이 자기의 신변 가까이 접근해들어 온다면. 웬만한 무기를 손에잡고 있다해도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될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주체하기 어려운

짐이 될 뿐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팔조독경 오백평이 변술을 쓰려면 일정한 거리를 띄어 놓고 멀찌가니 떨어져서

상대방에 대적해 보는 수법에 불과했다.

즉.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커먼 광체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그 속에서 팔조독경의 독기를 쓴다면. 자신의 위치를 보호할 수 있을것은 물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멀찍히 밀어 놓음으로써 노영탄으로 하여금 습격해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노영탄은 벌써 그 따위 술법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 어림도 없는 놈 ! 그 따위 섣부른 수작을 해 가지고 될 줄 알고 ?'

' 이놈 ! 어디 또 한 번 혼이 나보겠느냐 !'

노영탄은 혼자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띠었다.

다음순간. 몸쓰는 품을 완전히 달리했다.

마침내 여테까지의 자세를 버리고 저 무서운 건곤혼원장의 수법을 쓰기 시작했다.

발로는 팔괘의 방위를 정확하게 밟아가며. 오백평을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면서

한편 쉴새없이 가볍게 손바람을 일어켜 오백평이 광체를 발사하고 있는 울타리를 향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처음 잠시 동안은 노영탄이 몸을 쓰고 발을 떼어놓는 모습을 옆에 있는 사람들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노영탄의 정체가 어느 허공. 어느 지점에 떠 있는지

그것조차 분간해 낼 수가 없게 됐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노영탄의 몸을 쓰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

마치 그의 몸은 수천 수만 개로  변하는 듯.

무수한 노영탄의 모습이 오백평을 포위하고 쉴새없이 돌아가며 때때로 손바람을 일어켜

지분지분 건드려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오백평은 도저히 견디어 낼 자신이 없게 됐다.

' 이키 ! 이놈이 이건 무슨 신출귀몰한 수법을 쓰는 거냐 ?

도무지 알 도리가 없으니 ...........'

처음에 팔조독경 오백평은 단순히 노영탄이 자기의 방비 울타리 밖에서 포위하는형세로

공격해 들어오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차츰차츰.

노영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솓도가 빨라지자.

아무리 눈을 똑바로 뜨고 주의해 봐도 노영탄의 몸이 어느 허공에 틀어 박혀 있는지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마치 화살이 빙글빙글 눈 앞을 돌아가고 있듯이 무엇이 무었인지 분간할 도리가 없고.

눈 앞에 온통 안개가 낀 듯 몽롱해질 뿐이다.

' 이키! 이게 이게 ! 어떻게 돌아가는 셈이냐 ?'

마침내 팔조독경 오백평은 완전히 노영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단지 눈망울이 튀어나올 것만 같이 어지럽고 머리속도 흔들흔들 쏟아질 것만 같고

눈앞이 아찔하며 무엇이 무엇인지 숫제 보이질 않았다.

점점 점점 .팔조독경 오백평은 자신도 까닭을 알 수 없게 .

그 자신 마저도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노영탄을 따라서 똑같이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속도가 극도로 빨라졌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마지막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것처럼 어지럽고 손과 발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꼼짝달싹할 기운도 없어진 것이다.

팔조독경이라는 무기가 제 아무리 악독한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을 휘두르고 써볼 만한

힘조차 없어진 것이다.

별안간 . 모든 동작이 일시에 딱 끊어져버렸다.

시간이란 것이 어떤 공간과 면적 속에서 돌아가기를 잃고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

실로 숨이 막혀버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팔조독경 오백평은 꿈인지 생시인지 잠을 깬 것 같고 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이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갑작스레 두 팔이 시큰시큰해지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무기를 잔뜩 움켜쥐고 있던 손이 무슨 힘 때문인지 까닭을 알 수 없게 허술해 지면서

팔조독경 그무서운 무기도 맥없이 땅위에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 철썩 !"

무기가 땅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가 마는가 하는 순간.

머리 뒤통수로 무엇인지 싸늘한 바람을 일어키고 매섭게 스쳐가는 감각.

" 쏴악 !"

그와 동시에 두 눈앞이 번쩍거렸다.

그러나 두 눈을 뒤덮는 광체는 밝은 빛깔이 아니었고. 시커멓고 캄캄한 빛깔이었다.

다음 순간.

눈앞이 아찔 !  머릿속이 흔들흔들.

팔조독경 오백평은 마침내 그 이상 더 견딜 도리가 없어 땅 위에 졸도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노영탄의 정확한 공격에 수혈을 찔려 인사불성이 된 것이다.

 

한편 초산활귀 맹성은 어지간한 적의 공격이면 그것을 꿋꿋하게 잘 버티어 나가기로

유명한 위인이었고 그가 몸에 지닌 독특한 무기라는 것도 일종의 잔인한 화기(火氣)를

뿜는 괴상한 연장이었다.

그러나 팔조독경 오백평이 대세가 기울어짐을 느끼고 슬쩍슬쩍 뺑소니를 치고 싶은

기세를 보이자.

초산활귀 맹성도 당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키 ! 나도 어물어물하구 있다가는 큰일이로구나 ....... 같이 뺑소니를 치는 수밖에 ........'

퍼뜩! 이런 생각이 달아날 구멍을 찾았으나 그렇게 쉽사리 피해나갈 도리가 없었다.

감욱형이 손에 잡고 있는 한 자루의 보검 녹악.

칼을 쓰는 감욱형의 솜씨가 매섭게 세련된 데다가.

그 유명한 보검이 천강의 검술이 전개하기 시작하자.

한줄기 새파란 칼빛이 무서운 쇳소리를 내면서 싸늘한 광채를 발사하여

초산활귀 맹성의 앞을 가로 막아버렸다.

" 쏴악 !"

" 쏴악 !"

초산활귀 맹성은 자못 긴박해진 것을 눈앞에서 똑바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막. 그의 독특한 화기를 뿌리는 무기를 써 볼 작정을 하고 있을 때 .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이 장면에 끼여든 것이 노영탄이었다.

노영탄이 팔조독경 오백평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단숨에 막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을 쓰기 불과 몇 번만에 땅 위에 졸도시켜 버리니. 

초산활귀 맹성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더 한층 극도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 그뿐이랴.

이때마침 건곤취객 방곤 영감도 팔조독경 오백평을 물리쳐버라자.

재빠르게 달려들더니 감욱형을 대신해서 초산활귀 맹성에게 덤벼들었다.

초산활귀 맹성과 방곤 영감은 두서너 번 일진일퇴 맞닥뜨려 보았다.

쌍방의 실력은 당장에 드러났다.

건곤취객 방곤 영검의 무술의 실력이나 재간이 너무나 차이가  날 만큼 놀라운 것임을

알아차린 초산활귀는 도저히 방곤 영감을 이겨낼 승산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재빨리 판단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초산활귀 맹성.

죽느냐? 사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아슬아슬한 판국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맥없이 굴복해 버릴 초산활귀는 아니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다음순간.

양미간을 찌푸리고 괴상한 얼굴에 징글맞은 웃음을 띠었다.

" 헤헤헤 .......헷! 헷!  어차피 이리 된 바에야 나도 있는 힘을 다해보는 수밖에!

  어디 네 년놈들이 얼마나 견디나 한 번 해보자."

감욱형이 싸움의 테두리 속에서 몇 발자국인지 뒤로 물러서며 노영탄을 부르고 있었을 그 순간에.

초산활귀 맹성은 몸에 지니고 있던 그의 독특하고 무서운 무기 유황탄(硫黃彈)이란 것을

세 덩어리 집어 들었다.

방곤 영감의 손바람이 맹렬히 그에게 공격해 들어갔을 때 .

그는 몸을 한 옆으로 슬쩍피해버리고  그와 동시에 한쪽 손을 홱! 뿌렸다.

세 덩어리의 유황탄을 던져버린 것이다.

" 쉬익 !"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이 요란스런 음향과 함께 세 줄기 불빛이 일어나더니

곧장 방곤 영감의 앞가슴을 겨누며 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방곤 영감은 그 불덩어리의 유황탄이 어떤 성능을 지닉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몸에 스치거나 손으로 만져서도 안되는 무서운 무기였다.

슬쩍! 그것은 단 한 번이라도 스치기만 하면 당장에 폭발해 불을 내뿜는 바람과 맞닥뜨리면.

점점 더 거칠 뿐 그 화력이 더 맹렬해지는 놀라운 무기였다.

방곤 영감은 그것을 손으로 막아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쌔게 몸을 땅 위에서 솟구쳐 올라 공중에서 신형(身形)을 옆으로 서서

모로 움직이며 결사적으로 손바람을 일어켰다.

" 이얖!"

덤벼더는 불덩어리 앞에 맹렬히 일어나는 방곤 영감의 손바람 .

건곤취객 방곤 영감의 맹렬한 손바람은 마침내 그 무서운 세 덩어리의 유황탄을

막아내고 물리칠 수가 있었다.

방곤 영감의 손바람과 그 세 덩어리의 유황탄이 맞부딪치는 찰나에.

" 팍 !"

하고 무서운 폭음이 일어났다.

물론 세 덩어리 의 유황탄이 동시에 폭발한 것이다.

불덩이 처럼 던져저서 또다시 바람과 맞닥뜨려서 폭발하는 유황탄.

그 세 덩어리의 유황탄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꺼무쭉쭉한 조그마한 불똥으로 변해버렸다.

그 무수한 불똥들은 삽시간에 공중으로 퍼져 여러 사람들이 서 있는 언저리의 공간을

뒤덮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연기와 불똥이 뒤석여서 이루어진 넓은 그물이 여러사람들의 머리 위에   

뒤집어 씌워지는 것 같았다.

건곤취객 방곤 영감은 일찍부터 초산활귀 맹성이 곧잘 장남질을 치는 이 유황탄이란

무기가 지독하고 무섭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으나 한 번도 당해보거나 구경해 보지 못했다.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그것과 대결하여 막아보니 조금도 특별나게 괴상하거나 .

무서운 점이 없었다.

이만하면 방곤 영감은 자신 만만해젔다.

껄껄껄껄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상대방의 의기를 여지없이 꺾어 버리는 것이다.

" 핫! 핫! 핫!

천하의 초산활귀 매성이란 위인의 재간이란 몽당 떨어서 요것 뿐이냐?

이따위 대단치도 않은 흙덩어리 같은 물건을 감히 어디다 대구 함부로 던지느냐?

핫! 핫! 핫! "

옆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던 감욱형도 긴장이 풀어지며 쓰디쓴 미소를 띨 뿐이다.

' 저까짓 대단치도 않은 불덩어리를 가지구 .......싱급게 ............. '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는 감욱형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해서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덩어리의 유황탄이 공중을 나는 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초산활귀 맹성의 그 세 덩어리의 유황탄이 불똥처럼 깨어져 가지고 연기처럼

맥없이 흐트러져 버리는지라. 그저 신기하고 재미나는 구경거리 같이 바라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인 즉

이 유황탄의 무서운 위력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 멀찌가니 떨어진 저편에서 노영탄이 팔조독경 오백평의 수혈을 찔러서

땅에 졸도하게 해놓고 힐끗 눈초리를 이편으로 돌렸다.

노영탄은 초산활귀 맹성이 유황탄을 집어 던졌으며 동시에 방곤 영감이

그것을 손바람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 앗! 이건 큰일이다!'

노영탄은 당황했다.

땅 위에 졸도한 팔조독경 오백평을 그 이상 내려다볼 겨를도 없었다.

노영탄은 경각을 지체치 않고 몸을 날려 이편으로 대들었다.

다시 몸을 땅 위로 솟구쳐 올리며 동시에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 쏴악 !" 

맹렬한 손바람이 일어났다.

전신에 축적되어 있는 내공의 무형적인 진기를 모조리 일어켜 손바람을 써 본 것이다.

온갖 힘이 집중된 노영탄의 무서운 손바람은 사방을 휩쓸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변해서 공중에 감돌기 시작했다.

그 무서운 손바람은 건곤취객 방곤 영감 손바람에 부딪처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거무쭉쭉하고 남빛이 도는 무수한 불똥들을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조그마한 불똥으로 변해버린 그 유황탄들의 파편들은 절대로 깔보아서는 안 되는

무서운 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또다시 폭발하면 할수록 이편이 받아야할 피해는 더 커지기만 하는 것이다.

노영탄의 손바람은 마침내 이 무수한 유황탄의 불똥들을 포위해 마치한 무더기의

찬란한 구름덩어리가  수많은 별들을 감사고 슬슬 구슬려서 몰고 가듯이.

곧장 벽송관 뜰의 담 밖으로 쫗아내는데 성공했다. 

노영탄의 오른손도  쉴 새가 없었다.

" 벌꺽!"

때마침. 발을 들먹들먹하고 도망을 치려는 초산활기 맹성의 등들미에서 노영탄의 오른손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쥐어졌다가 펴졌다.

마치 줄에 맨 인형을 앞에 세워놓고  그줄을 늦추었다가 잡아당겼다가 하는 것 같았다.

초산활귀 맹성의 몸이 별안간 앞으로 둥둥 떠서 금방 그 자리에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다음순간 .

그와는 반대로 발 디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벌떡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네놈이 감히 이 이상 섣부른 짓을 또 하려고?' 

노영탄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아무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노영탄 혼자만이 그것을 깨끗이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 초산활귀 맹성이 유황탄을 발사하기 시작했을 때.

노영탄은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무서운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 아차 ! 저것 부터 막아내야겠구나 !'

노영탄이 깜짝놀라서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미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유황탄은 건곤취객 방곤 영감의 재빠른 손바람에 격파되기는 했다.

그러나 유황탄의 위력이란 이 다음부터가 무서웠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노영탄 한 사람 뿐이었다.

그것은 막아내고 깨뜨려버리고 부셔버리면 그뿐인 물건이 아니었다.

한 번 발사한 다음에 스치거나 .다치기만하면 폭발하는 폭발하는 것은 물론.

어떤힘이 그것을 막거나 한다면 폭발하는 힘은 더욱 빨라지며 점점 더 작은 파편으로

흐트러져서 휘감고 퍼저나가는 면적도 그에 따라서 점점 확대되는 것이다.

이 유황탄이라는 무기는 일찍이 초산활귀 맹성의 스승 되는 사람이 발명해낸 것이다.

강호 넓은 땅에서 이 무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불과 몇 명밖에 안 된다.

단년간 묵은 초석에다 유황을 썩고 다시 무서운 독기가 들어 있는 모래를 합쳐서 반죽을 했으며.

그 속에 죽은 사람의 뼈 속에 들어 있는 한린(寒燐) 까지 섞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무기다.

한 번 발사하면  당장에 남빛으로 반짝반짝하는 불길이 일어난다.

그것이 깨지고 부서지고 흐트러져서 산산조각으로 파편이되고 가루가되고 불똥이되면

그 불똥들은 저절로 사람의 몸이나 피부를 쫓아다니며 달라붙게 마련이다. 

죽은 사람의 뼈 속에서 파낸 한린이란 일종의 궁음(窮陰)한 물건으로 언제나 따뜻하고

열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달라붙기를 즐기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의 몸에서 언제나 떠나지 않는 체온이란 것이 꼭 이것을 흡수해

들어가기에 알맞은 것이다.

이런 특수한 성능을 가진 무기이기 때문에 이 유황탄은 한 번 부서지고 깨지기만 하면

무수한 깨알같이 작은 불똥들로 변해 사람의 몸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실로 오묘 불가사의한 위력을 감추고 있는 괴상한 무기.

한 번 당해본 일도 없고 그것을 구경도 못해본 사람으로써는 절대로 이 유황탄의

오묘하고 무서운 힘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구경한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품이 진기하고 보기좋고

재미스럽다고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 잘디잔 불똥들이 천천히 바람에 날려 떨어질 때 까지 전혀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깨알같은 불똥이 하나 둘 쭘 머리나 얼굴. 손. 발에 덜어져 앉았다 해도

티끌만큼도 전혀 이상하다거나 가렵다거나 하는 감각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것은 순식간에

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그 깨알같은 작은 불똥들이 지니고 있는 기독(奇毒)이 인체의 모공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혈액의 순환을 따라서 전신에 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 이불똥을 맞은 사람은 불과 너댓 시간도 지나기 전에 전신이 시뻘겋게 부어오르며

그것은 다시 흐늘흐늘 궤란(潰爛)을 일으킨다.

그리고 살점이 썩어 문드러지는 이 무서운 독소에 대해서는 초산활귀 맹성 혼자만이 연구해냈고.

비밀히 쓰는 해독제가 있을 뿐 .

이 해독제를 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생명을 건져낼 생각은 단념해야 할 만큼 그렇게 잔인하고

악독한 무기였다.

노영탄이 다년간 무술의 재간을 연마한 후 스승의 곁을 떠나려고 했을 때 남해어부가

노영탄에게 신신당부해 둔 점이 있었다.

이 위태로운 순간에 그것이 번갯불처럼 노영탄의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 요즘의 강호 무예계란 험악하기 형언키도 어렵다 .

무예라는 본래의 숭고한 정신을 망각하고 사도로써 사람을 괴롭히는 비루한 무리들이

도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정정당당히 대결해서 자웅을 겨눌 때보다도 더욱 경계를 게을리 해서 안 되는 것은

소위 화기(火器)라는 괴상망측한 무기를 쓰는 놈들이다.

이런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놈으로 초산활귀 같은 놈을 들 수 있으니 .......'

노영탄은 초산활귀 맹성이 유황탄을 발사하는 것을 보는 순간 번쩍하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스승 남해어부의 말을 생각했다.

' 앗! 바로 이런 놈들이 ! 스승께서 화기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이 따위 ?'

이렇게 생각이 든 노영탄은 즉각에 달려가서 그것을 막아내려고 했다 .

그러나 그때는 벌써 건곤취객 방곤 영감이 다행하게도 그것을 격파했다.

노영탄이 당황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 유황탄을 격파해서 깨뜨리고 부서버린 것이 사실은 그것을 물리쳐버린 결과가 되지 않고

이제야말로 무서운 결과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노영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건곤취객 방곤 영감과 감욱형은 여전히 그들의 위치에 서 있는 채로 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서 있지 않은가?

' 앗! 깨져서 흐트러지는 불똥들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꼼짝도 하지 않고

구경만하고 서 있다니!'

긴장되고 당황한 위기일발의 찰나에.

노영탄은 비상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됐다.

' 저 무수한 불똥들을 깨끗이 몰아내버리는 수밖에 ........'

노영탄은 공중을 나는 새와도 같이 몸을 재빠르게 써 온갖 힘을 다해서 일어킨 손바람으로

마침내 그 무수한 불똥들을 벽송관 뜨락 담 밖으로 몰아내버린 것이다.

바로 이때. 초산활귀 맹성이 란 놈이 이틈을 타서 도망칠 구멍을 찾느라고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자.

노영탄은 가슴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 고약한 놈! 이따위 잔인무도한  짓을 해놓고 그렇게 호락호락 빠져 나갈 줄 알고!'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도 이놈을 놓칠 수는 없었다.

즉각에. 오른팔을 높이 휘두르기가 무섭게 응금장(鷹擒掌)이라는 무서운 손바람을 일으켜

초산활귀 맹성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잡아버린 것이다.

마치 인형을 주무르듯이 상대방과 멀찌감치 덜어져서 마음대로 조종하는

노영탄의 응금장이라는 손바람 앞에서 초산활귀 맹성이 부들부들 떨었을 뿐만 아니라

건곤취객 방곤 영감도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모르며 넋을 잃고 바라다 볼 뿐 이었다.

' 아직도 새파란 청년의 몸으로서. 저렇게 놀랍고 무서운 무술의 재간을 몸에 지니고 있다니!

 흐음 ! '

강호 넓은 천지에서 소위 일류고수라 일컷는 건곤취객 방곤 영감도 노영탄의 뛰어난

무술의 재간 앞에서는 입 밖에 내놓지도 못할 정도의 감탄과 존경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감욱형도 일찍이 노영탄의 무술의 재간을 여러 번 구경하기는 했으나.

이제 생각하면 그것들은 지극히 적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의 무궁무진한 무술의 재간을 눈앞에 보고나니.

기쁨과 존경을 아울러 금할 길이 없었다.

'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한마디 해야지 .......'

감욱형이 이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나서보려고 해을 때.

갑작스레 노영탄은 몸을 한쪽으로 홱 도이키더니

흘쩍 허공으로 솟구쳐서 뒤로 날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까닭일까?'

건곤취객과 감욱형은 무슨 영문인지를 알 수 없이 눈을 높이 떠서 뒤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매가 날 듯 날쌘 동작으로 뜨락의 높은 담위로 솟구쳐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 바라다 보였다.

" 쉬익 !"

" 쉬익 !"

시커먼 그림자는 입으로 휘바람을 힘있게 불었다.

그러자 노영탄의 응금장 손바람에 붙잡혀서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던 초산활귀 맹성이

한참 동안이나 비출비출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간신히 발로 땅을 디디며 버티고 서는 것

이었다.

시커먼 두 줄기 그림자가 휘바람을 불면서 두발로 땅위를 구르며 다시 도망칠 구멍을

찾으려했을 때 이편에서도 휘바람을 한 번 불었다.

" 쉬익 !"

함께 달아나자는 암호를 그 시커먼 두 줄기 그림자에게 보내는 휘바람이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

초산활귀 맹성이 다시 몸을 써 볼 만한 여유도 주지 않고 몸을 허공에서 몇 번인지 날쌔게

꿈틀하더니 

초산활귀 매성의 머리 위를 스치고 날면서 한편 손을 홱 앞으로 뿌리쳤다.

" 쏴아 !"

맹렬한 바람소리와 함께. 노영탄은 초산활귀 매성의 현기혈(玄機穴) 급소를 찔러버린 것이다.

"철썩! 쿵!"

처참한 소리를 내면서 초산활귀 맹성은 그대로 땅 위에 쓰러져버렸다.

혼사(混死) . 뻗어 버린 것이다.

노영탄은 조금도 쉴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해서 불끈 허공으로 높이 솟구쳐 오르더니

두줄기 시커먼 그림자의 뒤를 바싹 쫓아갔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도 . 그 두 그림자는 이미 벽송관 밖에 있는 송림속으로 번갯불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분하다! 저놈들마저 때려 눕혔어야 했을 것을 ........"

노영탄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담 아래로 내려섰다.

 

<다음은 답설무흔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