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9장 군마란무(群魔亂舞)

오늘의 쉼터 2013. 12. 7. 22:16

정협지(情俠誌)
제 9장 군마란무(群魔亂舞)
 

 

악중악을 구출하라.

 

노영탄의 작전은 멋들어지게 먹혀들었다.

노영탄은 신출귀몰한 재간을 부려 회양방의 진지 금사보 안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놈들이 갈팡질팡 허둥지둥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틈을 타 악중악과 한빙선자 연자심을

감방에서 탈출시켰다.

 북소리.

 징소리.

금사보 안에 경종이 천지를 진동할 듯 울려 퍼질 때 노영탄은 가산  굴속으로 들어가는

악중악과 연자심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영탄은 이미 두 사람을 탈출시킨 이상  한곳에만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즉각에 은신법을써서 형체를 감추고 곧장 안쪽 보루 정면 앞에 있는 대청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바로 회양빈관 (淮揚賓館) 금모사왕이 귀빈을 접대하는 곳이다.

이 대청 안에서는 아닌밤중에 홍두깨가 나타난 것처럼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이크! 이게 무슨 종소리지........ 이렇게 요란하게?"

"이 깊은 밤중에 이건 무슨 북소리냐?"

"어디 무슨 일이 났다는 거냐?"

"어떤 놈이 무슨 일을 했다는 거냐?"

대청 안에서 쉬고 있던 귀빈이라는 몇 놈들이 경종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그리고 한 마디씩 지껄이며 밖으로 뛰어 내닫기는 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두령 금모사왕도 자다 말고 벼락을 맞은 셈이 됐다.

꿈속에서 듣는 것만 같은 난데없는 급보를 접한 금모사왕은 미친 사람같이 펄쩍 뛰어

일어나며 무작정 고함을 질렸다.

"예! 백평아!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이냐! 빨리빨리 이리 나오너라."

"예! 아버님! 이 심야에 무슨 일이오니까?"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도 얼떨결에 까닭을 알 수 없는 외마디 소리같은

말을 되는 대로 지껄이며 후닥닥 뛰쳐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회양빈관 대청을 향해서 줄다음질을 쳤다.

그때 마침 저편에서는 귀빈 몇 놈이 밖으로 달려나오고 있었다.

대청 앞에서 그들은 맞닥뜨렸다.

덤비고.날뛰고. 하면서도 그중 한 놈도 까닭을 아는놈은 없었다.

모두가 두령 금모사왕만 붙잡고무슨 사고가 발생했는지알고 싶어 할 뿐이다. 

금모사왕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아들 오백평의 스승인 

해남인마(海南人魔) 였다.

그는 금모사왕의 초청을 받고 막 금사보에 도착하는 판에 이런 봉변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그 옆으로는 멀리 동북지방 장백산에서 왔다는 명물 사나이들 .

땅딸보형제 혹은미씨(米氏) 형제라고 부르는 두 놈.

그밖에 또 한 놈은 바로 동해기경객이라는 괴상한 사나이.

그들이 떠들고 있을때 운몽노인과 홍의화상 우람부루도 이층으로 부터

눈이 휘둥그래져서 뛰어 내려왔다.

금모사왕의 얼굴에는 노기로 가득했다.

그의 괴상하게 생긴 얼굴은 분노를 참지 못해서 움찔거리는 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눈알은 불을 뿜어며 튀어나올 듯 이글거렸고.

두껍고 무지하게 생긴 입술이 부르르떨었다.

그러나 어쨌던 여러 사람들에게 이 돌발사고의 정황을 설명해 주어야 했다.

"방금 보고를 받았소! 지난번처럼 ......

어떤 놈이 우리 보루 안에 몰래 잠입했는데.......

그런데 이놈의 무술의 재간이 대단한 모양이요.

하는 짓이 괴상하고 신출귀몰해서 좀체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니.......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지......."

금모사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기 저기서 불쑥불쑥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놈을 잡아야지요!"

"당장에 없애버려야지!"

"그런 괴씸한 놈을 그냥두고보다니........" 

여러 놈들의 이견은 일치했다.

당장에 잡아서 처치하자는 것이다.

이런 소리라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으면 놈들의 체면조차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놈들도 잠시 작전을 세웠다.

마침내. 몇 놈씩짝패를 갈라가지고 서쪽을 향해서 포위망을 압축해 들어가기로 작정하고

즉각에 행동을 개시 했다.

놈들이 방침을 결정하느라고 쑤군쑤군하고 있을 때

노영탄은 벌써 회양빈관 지붕 꼭대기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흥 ! 놈들! 제법 당황한 모양이구나! 나를 잡아보겠다고 ?

어떻게 미처볼 작정이냐? 꼬락서니나 두고보자!"

노영탄은 여러 놈들이 제각기 흐트려지기를 기다려서

이 건물의 뒤편으로부터 태연자약하게 살랑살랑 대청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노영탄이 들어선 방은 바로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침실로 쓰고 있는 방이었다.

노영탄은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칠흑 같이 어둠 속에서도 .

능히 낮이나 다름없이 물건을 살필 수 있는 놀라운 재간을 가졌다.

노영탄은  그 방의 설비며 배치되어 있는 물건을 또렸이살펴볼 수 있었다

그방이 홍의화상 이 쓰고 있는 방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침상 머리맡에 큼직하고 붉은 가사가 걸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그곳이 우람부루의 거처인 것을 알아차렸다.

노영탄이 방안으로 뛰어든 것은 종이와 붓을 찾아서 놈들에게 남기는

경고문을 한장 근사하게 쓰기 위해서 였다.

그리하여 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한편 분수도 모르고 날 뛰는

금모사왕에게 한 마디 훈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종이와 붓은 눈에 띄지 않고.

담벼락에 한 자루의 보검이 걸려 있는 것만 찾아낼 수 있었다.

노영탄은 손에 잡히는 대로 칼을 쑥 뽑아보았다.

그  칼에서 발사되는 맑고 싸늘한 광체는 그윽하고 찬란한 금빛을 발산했다.

자루에는 옥룡(玉龍)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노영탄은 그 보검이 비범한 물건임을 일견해서 알아냈다.

"흐읏! 이건 꽤 쓸만한 물건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잠시 사용해야 되겠다!"

선뜻 그 보검을 벽에서 떼어 허리에 보기 좋게 찼다.

이때. 노영탄은 악중악과 연자심이 그만하면 이미굴길을 완전히 뚫고 빠져나갔을 때라는 것을

문뜩 생각했다.

'그렇다면?'

'굴길 밖으로 나가서.

그들을 찾아 내고자

뒤를 쫓아나간 괴상한 귀신같은 놈들과 혹시 승강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노영탄은 굴길 밖으로 빠져나갔을 악중악과 연자심이 불행히도 놈들에게 다시 잡히지나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며 시급히 건물 밖으로 몸을 뛰쳐나왔다.

이거저갓을 돌볼 겨를도 없이 곧장 바깥쪽 보루 서편 가까이 있는 높은 담을 향하여 달려갔다.

노영탄이 보루 높은 담 근처에 다다랐을때 마침 악중악과연자심이  한 쌍이 되어서

담 위로 급히 뛰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줄기 작달막한 그림자가 난데없이 번쩍하고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악중악과 연자심 두 사람의 등덜미를 향해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이건 또 무엇이냐? 괘심한 놈들.......

달아나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서 감히 제깟 놈들이.......'

노영탄은 발을 한 번 쿵! 하고 급히 굴렀다.

거리는 비록 치팔십 간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노영탄은 자기가 서 있는

지붕꼭대기에서 그대로 곧장 저편 보루 높은 담머리를 향하여

한편 팔을 맹렬히 휘들러서 전광석화 같이 눈부시게 빠른 손바람을 이어켜

땅딸보 두 놈을 향하여 습격의 손을 뻗쳤다.

이놈들 ! 너히들 두 놈은 뭣하는 놈들이냐!

어디 한번 맛이나 보거라 !

그 땅딸보 두 놈은 바로 멀리 장백산에서 온 말라깽이와 뚱뚱보 형제

미씨형제라고 하는 놈들이었다.

이곳까지 달려왔다가 뜻밖에도 악중악과 연자심을 발견한 것이다.

미씨 형제란 놈들은 본성이 음흉하고 능글맞은 데다가 곧잘 뚱딴지 같은 괴상한 짓을 즐겨했다.

죽은 듯이 한 편에 숨어 숨도 쉬지 않고 있다가 .별안간에 불쑥 튀어나와서 악중악과 연자심의

등덜미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가해보자는 배짱이었다.

한번 내달아 들이치기만 하면 . 문제없이 수월하게 성공할 것이고.

힘안들이고 두 사람을 잡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아니꼬운 연놈들 같은니.......

어딜 주제넘게 달아나겠다고?

꼼짝말고 거기 서 있지 못하겠느냐?"

뚱뚱보 땅딸보는 이렇게 제법호통을 칠 줄도 알았다.

그러나 어찌 뜻했으랴.

땅딸보 형제들이 막 쳐들어가는 도중에 노영탄이 질풍과도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앉으며

한쪽 손을 써서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을 일어켜 놈들을 섭격해 들어가니.

그제서야 땅딸보 미씨 형제도 이 복면한 사나이가 만만치않은 적수임을 알아차렸다.

노영탄의 무서운 손바람에 찔끔하고 겁을 집어먹고 땅딸보 미씨 형제는 순식간에

몸 쓰는 품이느릿느릿 해젔다.

노영탄은 이 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서서 잠시 공격을 멈추고 .

땅달보 미씨 형제들이 우물쭈물 망서리고 있는 틈에.

회양빈관대청 방에서 떼가지고 나온 보검옥룡을 흘쩍 악중악에게 던저 주었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다.

"빨리 달아나시오! 어서.......이칼을 지니고.......

그대들은 부디 내가 가르쳐드린 적화주라는 섬을 잊어버리지 말고........"

 

악중악은 숭산에서 무예를 5년 동안이나 연마하고 나서

몸에 지닌 재간이 완전무결한 경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도.

상당한 조화 정도까지 다다라 있었다.

또 조급한 성미와 오만불손. 웬만한 사람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성격으로써

일찍이 한 번도 남에게 창피한 꼴을 당해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뜻밖에도 홍의화상의 용연선독의 손바람에 걸렸기 때문에

어쩔도리 없이 붙잡히게 된 것이다 .

정신적으로 받은 타격이여간만 크지 않았다.

그런 판에. 이건 또다시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복면의 사나이가

그를 보고 빨리 도망치라고 고함을 지르니.

그대로 수그르지기 싫은 꼬장꼬장한 성미가 불길같이 북바쳐 오르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 일파의 종주가 될 대장부다.'

'내 무술의 재간도 과히 남에게 떨어지지 않는 이상.

어찌 찍 소리도 못하고  남이 분부하는 대로 꼴사납게 비슬비슬 도망질을 처버릴 것이랴!'

그러나 사실인즉. 악중악은 이 순간에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의 성미와 무술의 재간만 과신하고 있었다.

회양방 놈들에게 잡혀 겨드랑밑 비파골을 쇠사슬로 묶인채. 이틀 동안이나 갇혀있었고 . 

또몸은 용연선독의 침해를 받아서 원기가 완전히 빠저버렸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무술의 천품을 지녔어도 .또 아무리 절묘한 재간을 가젔서도.

 이런 경우에는 휴식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 청년의 가장 큰 결점은 .혈기방장. 불끈하고 치미는 성미대로만 일을 하려는 점이다.

이를 때 적과 결투를 시작한다면. 점점 더 자기쪽만이 원기가 소모된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

노영탄이 그에게 설령환 세 알을 먹이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형세를 파단하지 못하고악중악은 한 자루의 보검이  난데없이 손에들어오자.

그것만 믿고몸을 갑자기 홱! 돌이키더니 .

노영탄과 더불어 미씨 형제를 대처하고 싸워보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 광경을 본 노영탄은 놀라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고 해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악중악! 지금이 어떤 판인지 똑똑히 아시오 !

두말 말고 빨리 몸을 피하시오! 이곳은 나 혼자서 수습할 것이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

노영탄은 고함을 지르면서  연자심을 향해 한쪽 손을 맹렬히 휘둘렸다.

"빨리! 빨리....."

목청이 터질 것만 같아. 더긴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짖을 해서 연자심과 악중악 두 사람을 한시 바삐 빠저나가라고 초조하게

서둘렀다.

이러는 동안에. 땅딸보 미씨 형제들은 노영탄이 하는 짓이 가소롭다는 듯이 한바탕 웃어젖혔다.

'으흐흐.......흐흐........별놈다보겠다...... "

"와하하하.......하하하...........제법 대담한 놈인데 !"

말을 마치자마자 밌 형제는 한 쌍이 돼 가지고 동시에 노영탄에게 덤벼들었다.

노영탄은 그 이상 말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쉬익 !"

매서운소리와 함께 보검 금서를 선뜻 뽑아들었다.

칼로써 밌 형제를 막아내면서 그와 동시에 왼편 손을 써서 바람을 일어켜 악중악쪽으로

 밀어보냈다.

악중악은 괴상하고 무서운 바람이 앞가슴을 향하고 몰려드는 것을 느겼다.

형언키 어려운 괴상한 바람이었다.

악중악으로서도 노영탄의 손바람 앞에는 후퇴를 하지않을 수 없었다.

"흐음! 굉장한 인물이구나!"

복면한 사나이의 무술의 재간은 악중악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무술 재간이 노영탄에 비겨서 한 수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중악은 그래도 자기 성미를 억재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몸 안에 축적 돼 있는 진기를

불러내서 그바람을 막아보려고 애섰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였다.

그제야 악중악은 자신의 원기가 형편없이 소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한빙선자 연자심은 옆을 떠나지 않고 빨리 달아나기를 안타깝게 재촉하고 있다.

"빨리 몸을 피하세요! 놈들과 대립할 때가 아닌가 하옵니다.!"

대세가 이쯤 되자 악중악도 어쩔 수없이 연자심을 따라서 보루높은 담을 넘어

금사보 밖으로 몸을 내달렸다.

노영탄은 두 사람이 완전히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

적이 안심이 되었다.

다시 정신을 똑똑히 수습하고 미씨 형제를 차근히 관찰해봤다.

두놈이 다 같이 짝달막한 키에 한 놈은 살이 통통하게 쩠고. 또 한놈은 비쩍 말랐다.

두놈의 얼굴 모습이 똑 같았다.

부리부리하고 큼직한 눈에 들창코. 큼지한입이 찢어지고 있는 듯.

웃고 있는 것이지 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형뚱뚱보는 미극량(米克良)이라 하여 생김새가 한 덩어리 고기가굴러다니는 것 같고.

비쩍마른녀석인 미극심(米克心)은 무우말랭이 같이 생긴 놈이다.

땅딸보 미씨 형제는 오랫동안 만주땅에서 살았다.

무술의 재간이 있어 저희들 딴에는 일파를 이루고 있다고 자부하는 놈들이었다.

이 미씨 형제들이란 음흉하고 끈덕지고 .악독하기로 유명한 놈들이었다.

놈들이 키가 짝달막한 땅딸보라고 섣불이 봤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었다.

동작이 나에 없이 빠르고 민첩하여 거기다 힘이 무지무지하게 억센 놈 들이다.

미씨 형제는 악중악과 한빙선자 연자심이 몸을뛰쳐서 달아나려는 눈치를 채자.

한바탕 껄껄대고 냉소를 치더니.

두 놈이 선뜻 양편으로 갈라섰다.

한놈은 노영탄에게 손바람을 쓰면서 덤벼들었다.

또한놈은 악중악과 연자심의 뒤를 쫓았다.

노영탄은우선 악중악과 연자심의 뒤를 쫓는 그놈을 그대로두고볼 수는 없었다.

발을 굴러 땅 위에서 흘쩍 몸을 날리며. 뚱뚱이땅딸보를 가로막았다 .

그리고 날카로운 칼끝으로 곧장 중궁(中宮) 을 찌르며 육박해 들어갔다. 

이때 노영탄의 머리 뒤통수를. '홱' 하고 스처지나가는 손바람이 몹시 억셌다.

말라깽이 땅딸보의 손바람이 벌써 처들어오고 있었으나 노영탄은 그까짓 것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노영탄은 칼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꼿꼿이 뻗으며 뚱뚱이 땅딸보에게 공격을 가하며

그와 동시에 몸을 다소 오른쪽으로 비스듬이 빼 가지고 왼손을 돌연 뻗쳐서 바람을

일어켜 칠팔 분의 무서운 힘으로 말라깽이 땅딸보의 두 팔에 통격을 가했다.

이복면의 사나이가 칼을 쓰는 데도 번갯불 같은 광체가 눈을 뜰 수 없게 하며 .

몸을 쓰는 품이 비길 데 없이 민첩하고 빠른지라.

미씨 형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영탄에게 가로 막혀서 악중악과 연자심의 뒤를 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자.

땅딸보 형제는 노기가 충천하여 고함을 질렀다.

"에잇! 괘심한 놈! 비겁하게 얼굴을 싸매고 감히 우리를......."

"아니꼬운놈 ! 우리형제를 가로막다니 ! 에잇! 천하에 발칙한 놈이로다 !

어디 우리들을 상대로 싸울 만한 대단한 힘이 있다면............"

노영탄의 매섭고 번쩍이는 칼끝이 뚱뚱이 땅딸보를 찌르고 들어가는 순간

말라깽이 땅딸보가 노영탄의 등들미로 덤벼들었다.

노영탄이 맹렬한 손바람을 한 번 일어켜 습격하자.

뚱뚱이 땅딸보는 꼼짝 못하고 땅 위를 슬슬기며칼을 피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렸다.

그러나 어찌 깨달았으랴. 

노영탄은 말라깽이 땅딸보 녀석의 손바람이 그대로 계속해서 맹렬히 처들어 오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위기일발.

하나 . 이만한 힘에 그대로 굴복할 노영탄이 아니었다.

그대로 칼로 찌르고 육박해 들어가자 .

뚱뚱이 땅딸보는 땅을 몸으로 쓸 듯이 칼끝을 피했다.

그찰나. 노영탄은 비호같이 방향을 돌려서 두번째 칼을 찌르고 들어가며.

동시에 왼손으로 흘쩍 바람을 일어켜 말라깽이 땅딸보의 손바람을 멋들어지게 막아버렸다.

뚱뚱이 땅딸보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으나.

다시 몸을 일어켜 덤벼들려고 애섰다.

그러나 그를 만한 틈도 주지 않으며.

노영탄의 매섭고 날카로운 검광은 연거푸 화살같이 쏘아 들어갔다.

뚱뚱이 땅딸보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숨이 막힐 듯이. 털끝만한 틈도 주지 않고 처들어오는 노영탄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서 .

다시 몸을 움츠러뜨리고 왼손을 미친듯이 휘둘렀다.

바람을 일어켜서 막아보자는 것이나 한쪽 손이 일어키는 바람만으로 노영탄의 칼을

막아 낸다는 것은 너무나 힘에 벅찬 일이었다.

이것을 깨달은 뚱뚱이 땅딸보는 오른손으로 자기의 허리를 더듬었다.

그가 독특한 무기라 자랑하며. 웬만한 경우에는 비장해 두고 쓰지도 않는 .

음양이월윤(陰陽日月輪)이라는 무기를 선뜻 뽑아들었다.

칼도아니요 창도 아니며 쇠갈귀 쇠몽둥이도 아닌 이무기는 길다란 쇠지팡이 끝에

해처럼 둥근 것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 눈 깜짝하는 찰나에 뚱뚱이 땅딸보는 위익! 하고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이상한 음향을 느꼈다.

그때는 벌써 머리 한 귀퉁이 털이 깨끗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뚱뚱이 땅딸보는 전신을 부르르 떨렸다.

더 이상 지탱할 자신이 없었다.

땅 위에 몸을 찰싹 붙이고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저편에서 노영탄과 말라깽이 땅딸보가 여전히 손바람과 손바람으로 대결하고 있었다.

어떤편도 만만치 않았다.

이편의 팔과 저편의 팔이 멀찍히 거리를 두고 떨어저서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을 뿐이다.

두 편에서 똑같이 어떤 형체도 없는 무서운 힘으로 상대방을 습격해 들어가고 있으나

어느 한편도 그 바람에 꺽이지는 않았다.

이편에서도. 저편에서도. 불과 불이 맞부디쳐서 불똥이 튀듯이 몸을 흔들흔들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서야 비로소 각자의 위치에 다시설 수 있었다.

싸움판이 이쯤 되니.

땅딸보 미씨 형제는 점점 더 놀랍고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복면의 사나이가 이처럼 신출귀몰하고 전광석화같이 빠르고 무서운 무술의 재간을

지니고 있는 인물일 줄이야 어찌 꿈엔들 생각했으랴.

더군다나. 형 뚱뚱이 땅딸보는 분노와 수치스러움 때문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쉬익!"

"휘익!"

땅딸보 형제들은 두 놈이 동시에 괴상한 휘바람을 불었다.

힘을 합해서 마지막 공격을 가해보자는 것이다.

두 놈은 땅 위로 미끄러지는 듯.

몸을 사리더니  땅을 한 번 탁 치고 나서 다시 솟구쳐 일어서서

손에든 무기 음양일월윤을 높이 쳐들고 놈들의 독특한 재간인 혈류공이라는 술법을 써서

노영탄에게 결사적인 공격을 개시 했다.

땅딸보 형제들이 쓰고 있는 무기 음양일월륜이란 것은 두 가지가 같이 합쳐야만 .

쌍벽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p138

뚱뚱이 땅딸보 미극량이 쓰는 것은 일륜(日輪)이었고.

말라깽이 땅딸보 미극심이 쓰는 것은 월륜(月輪)이라는 것인데.

그들 형제가 적과 싸울 때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단독으로 대항해서는 못쓰고.

일륜과 월륜이 합쳐저야만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땅딸보 미씨 형제는 혈류공이라는 일종의 무술을 창안해 냈다.

혈충이 사람을 쏠 때의 모습을 모방한 혈류공은 땅바닥에 몸을 찰싹 붙이고 기어다니듯

꿈틀거리는 재간이다.

워낙 키가 작은 땅딸보들인지라.

키 큰 사람과 마주서서 대적하기 어려운 까닭에 언재나 상대방의 허리서부터

아랫도리를 몰래 습격하는 것이 이 재간의 독특한 점이다.

작달막한 몸집을 다시 땅에 찰싹 붙이고 기어단니듯 꿈틀거리는품이 몹시 빠르고 민첩한데.

이렇게 되면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히고 아랫도리를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아랫도리를 방비하려고 할 때에는. 두 땅딸보 중의 한 놈이 별안간

껑충 뛰어올라.

공중으로 부터 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든지 아래위를 동시에 돌볼 겨를이 없게 되느지라 .

마침내 그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

땅딸보형제의 수단 방법은 지극히 악독하고 잔인해서 적에 대해서는

털끝 만한 인정도 사정도 없었다.

형제놈들이 사용하는 음양일월륜이라는 괴상한 무기에는

언재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혈액이 감추어져 있었다.

상대방 피부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당장에 그 험집으로 이 무서운 혈액이 뚤고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일륜과 월륜을 동시에 써서 대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상대방이 당해낼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적이라고 인정했을 때만 이 양륜을 한꺼번에 써서.

그들의 독특한 재간을 혈류공을 부려보는 것이다.

노영탄은 땅딸보 형제가 갑자기 땅 위에 몸을 깔듯이 움츠려뜨리고 다리 아래를 휘감으려는 듯

빙빙 돌아다니며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으나.

놈들이 무슨 괴상한 짓을 하려는지 그것을 선뜻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영탄은 일찍이 이 땅딸보 미씨 형제란 놈들이 독특한 무술의 재간을 부리는

놈들로 빠르고 민첩하고 괴상망측한 짖을 곧장하는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놈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

노영탄도 암암리에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안으며 한편으로는 발아래 팔괘방위를

정확하게 디디고 서서 먼저 그 밖의 방위의 지세를 세밀히 관찰하면서 정신을 바짝차리고

놈들을 다루어 볼 생각을 했다.

과연 땅딸보 형제는 땅 위를 두 바퀴나 빙글빙글 돌고 나더니

갑자기 두 편으로 재빠르게 갈라섰다.

한 놈은 북쪽에서 동쪽을 향해서 빙글빙글 돌았고 .

또 한 놈은 서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돌아들기 시작했다.

몇 번인지 두 놈이 맞딱뜨리고 다시 교차해서 지나치고 하면서 돌아들더니 .

동시에 일륜과 월륜을 무시무시하게 허공으로 높이 흔들어서

노영탄의 넓적다리를 거누고처들어오는 것이다.

'흐음? 놈들이. 이게 무슨 괴상한 술법이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노영탄은 태연자약.

 허리를 굽히고 놈들과 대적하려 들지는 않았다.

외쪽다리를 내밀고 상반신을 여전히 꼿꼿이 새우고.

두 무릎을 약간 구부리는 듯.

땅 위의 위치를 든든히지키며 마치 말을 탄 사람같은 자세로 요지부동의 태세를 갖추었다.

뚱뚱이 땅딸보의 일륜이 먼저 쳐들어왔다.

노영탄은 손에 잡고 있는 보검을 한 번 흘쩍 휘둘려서 그것을 가볍게 막아내고.

곧장 뚱뚱이 땅딸보의 오른팔을 치고 들어갔다.

노영탄의 안광은 불이 일 듯 매습게 반짝거렸다.

말라깽이 땅딸보 의 월륜이 등들미로부터 처들어와서 .

그의 허리 부분을 습격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영탄은 비호같이 칼을 걷어들이더니 번갯불처럼 몸을 날렸다.

눈깜짝할 사이에 허공으로 솟구처 올랐다.

마치한 개 나무 잎새가 뒤집히듯. 홱! 허공에서 흘쩍 뒤집었다.

칼은 무서운 광체를 발산했다.

그것은 마치 노영탄의 머리와 다리를 휘감고 도는 휘황찬란하고도

무서운 빛을 발산하면서 곧장 땅딸보 형제의 머리를 향해 습격해 들어갔다.

'이크! 이놈이 무슨 놈이야?'

'대단한 재간을 가진 놈인데.......'

땅딸보 형제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노영탄이 이렇게도 신출귀몰하게 놈들의 기선을 제압하는 재간을 가졌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세를 취하는 줄만 알았더니.

별안간 비호같이 몸을 날려 도리어 공세를 취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땅딸보 형제들이 일찍이 당해 본 일이 없는 재간이었다.

땅딸보 형제는 하는 수없이 결정적인 최후의 작전과 재간을 부려보기로 결심했다.

일륜과 월륜을 교차시켜서 힘을 합첬다.

그러면서도 몸은 여전히 두 곳으로 갈라 노영탄이 허공에서 내려설 지점을 예상하고.

그 지점 이편저편으로 두 놈이 버티고 섰다.

그리고 두 놈은 제각기 두손을 동시에 후들후들 떨더니

하늘이 자욱하도록 시커먼 별과 같은 것을 퍼뜨려서 노영탄에게 반격을 가하고자 했다.

이때. 노영탄의몸은 아직도 공중에 떠 있었다.

날카로운 검광으로 두 놈을 동시에 습격해 들어갔을 때 .

별안간 두 놈이 양편으로 갈라서버리는지라 .

어떤놈을 먼저 공격해야 좋을지 망서이지 않을 수없었다.

뿐만 아니라 .

두 놈이 괴상한 무기를 쓰기 시작하는 모양인데

단지 까뭇까뭇한 별 같은 방울들이 퍼저나가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것이 무슨 짓인지 알 수 없었다.

노영탄은 두 다리를 한 번 힘껏 걷어차서 .

다리와 머리의 정상적인 위치를 똑바로 잡은 다음 왼손으로 억센 바람을 일어켜.

그 괴상한 무기에서 퍼저나는 시커먼 별 같은 것들을 막아냈다.

동시에 오른손에 쥐어진 보검을 다시 한 번 휘둘러서 매서운 광체를 발사시켜

전신을 보호하면서 땅 위에 바람처럼 내려섰다.

새카만 별 같은 방울이 퍼져나는 이 괴상한 무기는 땅딸보 형제들의 비제품인

독혈표라는 것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유일한 무기 독혈표도 노영탄이 한쪽 손을 한 번 휘둘러서 막아내자.

그 절반 이상이 땅 위에 흩어져 떨어지고 말았다.

단지 몇 방울 안 되는 검정별 같은 것들이 노영탄의 신변 가까게 남아들고 있었다.

노영탄은 보검 금서를 휘둘러서 흩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땅딸보 형제도 그대로 굴복할 리는 없었다.

두 놈은 호랑이처럼 어러렁거리며 동시에 몸을 내던지듯 육박해 들어올 태세를 갖추었다.

바로이때.

난데없이 어디선지 호통을 치는 우락부락한 음성이 벽력같이 들려왔다.

"미씨 형제 두 분은 잠깐만 쉬시오.

이번에는 우리가 좀 알아보기로 합시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 들어온 . 얼마나 고명한 놈이기에 밤마다 연거푸 금사보 진지엘

뛰어들어서 우리 회양방을 깔보다니.............

이놈이 어떤놈인가?

어디 한 번 실력을 겨루어 봅시다!"

호통을 치는 소리가 체 끝나기도 전에 사람의 그림자가 번갯불 처럼 밀려들더니 .

땅딸보의 등들미로부터 서넛 놈이 흘쩍 날아들어 땅 위에 말뚝이 곶히듯 우뚝 섰다.

금모사왕과 그가 거느리고 있는 놈들이었다.

호통을 치는 소리를 듣고 땅딸보 형제는 부꺼러움을 금할 길이 없어 어쩔줄 몰랐다.

그르나 그대로 계속해서 대적해봐야 도저히 이복면의 사나이를 대항해 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러 여러 사람에게 망신만 당하고 창피한꼴만 당하게될 것이니

이런 틈에 우물쭈물 해 두는 것이 자기네 형제를 위해서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더디어 땅딸보 형제는 한편으로 비실비실 물러서서 후퇴해 버렸다.

금모사왕은 외눈깔을 무섭게 부럽떴다.

얼굴의 근육을 온통 부들부들 떨며 징글맞게 웃어젖히더니 이를악물었다.

한쪽밖에 없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

팔을 높이 쳐들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대는 누구인지 알 수는 없어나. 지극히 비급한 자로다 !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고 싸움을 하려 들다니........

내 늙은 몸으로 그대의 까부는 재간을 감탄하여 마지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금사보에서 호락호락히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잠시 말을 그친 금모사왕은 앞으로 한 걸음을 썩 나서면서 더 한층 언성을 높여 악을 섰다.

"이놈 ! 이 발칙하고 괘심한 놈 ! 도대체 네 놈은 누구란 말인냐?

뭣하는 놈이기에 ?

우리 회양방과 무슨 불구대천지 원수라고?

네가 누군지 밝힌 후에 겨루어보기로 하자 !"

"........................."

노영탄은 대답이 없었다.

미친 듯이 날뛰고 고함을 지러는 금모사왕을 가소롭다는 듯

쏘아보며 꼼짝다삭도 하지않고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노영탄은 보검 금서를 덜커덕 하는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등에메고 있는 칼집에다 집어넣었다.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늘하고 매서운 눈빛만이 화살같이 무섭게 사방을 쏘아볼 뿐이었다.

노영탄은 금모사왕 의 등뒤에 버티고 서 있는 네 놈을 똑똑히 노려봤다.

거기다 땅딸보 미씨 형제까지 합치면 도합 일곱 놈 .

금사보 안에서 소위 고수라고 하는 중진급 인물들이 모조리 달려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노영탄은 일변 놀랍기도 했으나 또 일변 기쁘기도 했다.

본래 노영탄은 땅딸보 미씨 형제를 빨리 격퇴시키고 금사보에서 안전하게

몸을 빠져나갔으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악중악과 연자심이 얼마 달아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만일에 이 여러 놈들이 보루 밖으로 내달아서 악중악과연자심의 뒤를 쫓는다면

그들은 꼼짝 못하고 또다시 금사보로 잡혀 오고야 말 것이다!"

노영탄은 이렇게 생각했기때문에 일부러 이곳을 떠나지않고 오락가락하면서

금사보 안의 고수란 놈들을 한곳으로 유인해 놓고 그의 몸에 지닌 절묘한 무술의 재간을 부려서

놈들의 이목을 놀라게 해주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오로지 악중악과 연자심 두 사람을 안전히 탈출 시키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막상 무술계의 기인이며 강호에서 유명하다는 마귀의 두목 같은 녀석들을

여러 명이나 면대하고 보니 .

다소 긴장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네깐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질 못할소냐...... 가소로운 놈들."

노영탄은 결코 놈들에게 패할 리 없다는 자신이 만만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적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던 터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일에 임할 때마다 자신을 흐트려뜨리지 말아라!'

'침착하고 냉정해라!'

스승 남해어부의 무서운 얼굴이 눈앞을 번갯불처럼 스쳐가는 것 같았고.

그의 다년 간의 교훈이 귓전을 찌르는 것 같았다.

노영탄은 점점 더해만가는 긴장 속에서도 티끌 만한 동요도 없이 태연히 버티고 서 있었다.

금모사왕의 호통을 다 듣고 난 노영탄.

"흐으! 흐흐흐.........."

그는 서너 번이나  코웃음을 치며 냉소했다.

그리고 나서 지극히 침착하고 엄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자루 칼에도 영혼이 있다 하거늘.

감히 그 따위 허세의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이십 년 전의 무서운 교훈을 네 놈은 깨끗이 잊어버렸단 말이야?

네 놈이 아직도 무예계를 혼자서 제패해 보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

온갖 잔인무도한 짓을 떡 먹듯이 하고 있는 것은 진실로 가소운 일이다!

천인이 공로할 네 놈의 죄.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만악지도(萬惡之徒)로다 !"

"뭐라구? 이놈이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금모사왕의 한쪽밖에 없는 어깨와 팔이 와들와들 떨렸다.

노영탄의 마지막 한마디의 말은 더욱 싸늘하고 매서웠다.

"네 이놈. 감히 나를 이 금사보 안에 붙잡아 두겠다고?

당치도 않은 어리석은 소리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네 놈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노영탄의 말을 듣고난 금모사왕은 노기가 충천한 듯.

폐부가 터져나갈 것만 같이 그 괴상망측하게 생긴 얼굴의 근육이란 근육이

모조리 부르르 떨렸다.

외부에서 초청한 몇 놈들도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잔뜩 일거려뜨리고 있었다.

단지 땅딸보 미씨 형제만은 방금 노영탄의 무술의 재간을 실컷 구경하고 혼이 난 판이었는지라.

이 인물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잠자코 서 있었다.

또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이 복면의 사나이가 지난번에 망신을 주었던

그 청년과 다소 비슷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선뜻 나서지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러나 복면한 청년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반드시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상한 일인데? 이놈이 지난번의 그 놈이라면?"

"두 번 다시 저놈에게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또 망신을 당하면 ......."

어쨌든 한 번 혼이 난 우람부루나 땅딸이 미씨 형제나 용기가 나지않고.

되더록 이 복면의 청년과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찍소리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서 있을 뿐이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 서 창피한 꼴을 당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금모사왕 오빈기는 회양방을 지배하는 두령일뿐만 아니라 .

강남 일때에서는 상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거물이다.

제 집안 뜨락에서 어떻게 남에게 욕을 먹는 꼬락서니가 됐으니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체면과 위신을 유지할 수 있으랴!

"이 발칙하고 당돌하기 이를 데 없는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서 감히......."

금모사왕은 추상같이 무섭게 호령을 했다.

그리고 한쪽밖에 없는 팔을 맹렬히 휘둘렸다.

광풍이 성내는 듯한 기세로 손바람을 일어켜서 곧장 복면의 청년을 향해 습격해 들어갔다.

노영탄은 금모사왕의 손바람이 습격해 들어왔을 때.

즉각 이놈의 몸에 지니고 있는 내공의 힘이 어지간히 빠르고 억세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심.이놈을 소흘히다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그놈의 손바람이 가까이 대들기를 기다려 이편에서도 맹렬한 손바람을 일어켜서 대항했다.

금모사왕의 손바람의 힘이 도대체 어느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우선 시험해보자는 것이다.

"쉬익!"

"곽! 곽!"

억세고 무서운 손바람이 괴상한 음향을 내면서 맞닥뜨렸다.

그 바람과 바람이 맞닥뜨리는 순간 .

쌍방의 손은 똑같이 바르르 떨렸다.

노영탄은 자기의 손바람의 힘이 상대방의 힘에 가로막혀서 .

한 쪽 팔이 오싹하고 떨리는 것을 느겼다.

그러나 그것을 대단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노영탄은 바로 이때라고 생각 했다.

이 위기일발의 찰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

경각을 지체치 않고 몸 안에 축척되어 있는 힘을 한층 더 뽑아서

오른팔에 집결시킨 다음 .흘쩍 손바닥을 뒤집어서 그대로 계속하여 쓰며.

지금까지와는 딴판으로 일종의 무형적이면서도 억센 손바람을 일어켜서 공격해 들어갔다.

금모사왕은 그것만으로도 지탱할 수가 없게 됐다.

노영탄의 손바람과 자기의 손바람이 한 번 맞닥뜨려을 때

그는 벌써 팔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버티고 서서 대결하는 전신의 위치가 다소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 쉬며 기운을 써 볼 틈도 없었으며.

두 다리를 땅 위에 든든히 뿌리박고 서 있을 만한 여유도 없었다.

한쪽밖에 없는 팔을 다시 걷어들이기도 전에 .

그대로 연거푸. 전 보다도 더 억세고 괴상한 힘이 육박해 들어오는 것을 느겼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 그대로 버틸 수가 없구나!"

퍼뜩! 이런 형세를 알아차린 금모사왕은 몸을 날려 한편으로 물러서면서 .

노영탄의 손바람을 피해버렸다.

본래. 무술에 있어서 소위 고수급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힘과 힘을 겨룰 때는

한번 자리잡은 위치에서 절대로 몸을 경솔히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무술에 있어서 신(身). 법(法). 안(眼)이라는 세 가지 기본조건이다.

아무리 무술의 재간이 높고 비등한 사람끼리 대결할지라도 눈 깜짝할 동안에

쌍방의 실력은 우열이 드러나며. 손을 한 번 드는 것 . 발을 한 번 떼어놓는 것으로써

이미 승부는 결정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손바람과 손바람이 맞닥뜨려서 대결할 때는 반드시 힘이 약한 편의 위치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만일에 그 위치를 벗어나 몸을 몸을 피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상대방의 힘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크 이놈은 굉장한 놈이구나!'

'손바람만도 대단한 놈인데.......'

금모사왕은 겁을 잔뜩 집어먹으며. 일파의 두령으로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견디기 어려운

수치감 때문에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두 귀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도 부꺼러움이거니와. 내심 놀라움을 금할 길이없었다.

'대체 이놈이 무슨 놈이기에?'

금모사왕은 이 일게 복면의 청년이 이다지도 뛰어난 무술의재간을 지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단지 한 가지 손바람만 가지고도 이 청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금모사왕은 뒤로 물러서서 머리를 휘저어며 옆에 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이 몇 사람 중에서는 운몽노인의 무술의 재간이 제일 뛰어났다.

해남인마와 기경객도 자기보다 단수가 높은 사람들이며.

홍의화상과 떵딸보 미씨 형제만은 자기보다 별로 높은 재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모모사왕의 잔뜩 겁을 집어먹은 눈빛이 운몽노인.해남인마. 그리고기경객을

차례로 훓고 지나갔다.

회양방의 중진급인 이들이 자기 대신 나서서 복면의 사나이와 싸워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운몽노인과 해남인마는 다같이 일흔 살의 늙은 몸이었고 기경객만이 쉰몇 살의 젊은 축에

들었다.

이들 세 인물은 평소에는 강남 땅 깊숙한 지방에서 칩거하면서 제 딴에는 한 지방의

최고라고 자처해 왔다.

이십 년 전에 무예계의 일대 결투가 벌어젔을 때는.

 이들 세 인물은 아직 일류급 고수 축에는 끼지 못했었고.

기경객은 더군다나 후배인지라 그 결투에는 참가하지 못했었다.

금모사왕은 그때 나이는 겨우 서른 살. 무술의 재간도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못 됐으나

단지 회양방의 두령인 개세천왕의 사제지간이라는 이유로 결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술의 재간이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행이 정통파 고수들의 주의를 끌지 않았고.

혼란한 틈을 타서 한쪽팔이 잘리고 한쪽 눈이 먼 불구자의 몸으로나마 잔명을 보존하고

도망칠 수가 있었다 .

개세천왕과 그 밖에 네명의 제자들과 파를 달리하는 수많은 고수들이 모조리

처참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금모사왕은 개세천왕에게 있어서는 제일 나이어린 제자이기는 했으나.

무예의 길에서는 개세천왕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점이 적지않았다.

문하생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처참한 결투를 치르게 되어 혼자의 몸으로 도망을 쳐서

잔명을 보존하게 된 후에도 깊숙한 황산(荒山) 에 은거 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왔다.

 

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다음 금모사왕은 스스로 기이하고 독특한 무술의 재간을 연마해

다시 깊숙한 산 속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나와서 회양방의 부흥을 꾀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각지에 은거해 있는 기인이사들을 유혹하고 매수하고 끌여들여서 보복을 꾀하는

동시에 무예계의 패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

운몽노인. 해남인마. 그리고 기경객은 다같이 지난번에 무예계의 일대 결투가 있었다는

소식을 알고는 있었으나 참가하지 못한 것을 늘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에 금모사왕이 회양방의 재기와 부흥을 외치고 나섰을 때에는.

무예계의 고수급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인물들은 거의 전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 세 인물들은 이런 기회에 머리를 들고 세상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고수급 인물들이 없어진 기회를 교묘히 포착해서 하 번 무예계의 패자가 되어 재간을

맘껏 뽐내고 싶었다.

이제 금모사왕의 눈초리는 분명히 그들에게 싸워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인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이 망설이기만 할 뿐.

어떤 놈도 선뜻 먼저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다.

제각기. 섣불리 나섰다가 체면과 위신을 잃고 말까봐 겁내고 있었던 것이다.

중진급 인물 세 사람 주에서 나이가 제일 젊은 것이 기경객이고보니.

부득불 나서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금모사왕 앞으로 썩 나서면서 자신만만하다는 듯 거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방주님이야 우리 방의 두령이 되시는 몸이니 저따위 놈 하나 때문에 몸소 나서셔서

손을 대실 것 까지는 없소! 아무걱정 마시고 가만히 계시오.

어디 내가 한 번 수고해 보리다 ! "

"암 ! 저 따위 젊은 녀석 하나 쯤이야 기경객만 나선다면 문제 없이........핫 ! 핫! 핫!

발칙한놈 ! 어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겨루어 봐라 ! "

이렇게 방주로서의 위신과 체통을 간신히 유지 하면서.

억지로 거드럼을 부리며 한편으로 비겨서서 태연한 듯 호통을 치고 있기는 하지만.

금모사왕의 괴상한 얼굴에는 자신 없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단. 스스로선언을 하고 나선 기경객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훌쩍 몸을 솟구쳐

한 번 껑충 뛰어 오르더니.

허리에 차고 있는 경수편(鯨鬚鞭) 채찍을 날쎄게 뽑아 들었다.

그는 곧 이 괴상한 체찍을 휘두르고. 내리치고 갈기고 하면서  노영탄을 향해

습격해 들어갔다.

그 몸을 쓰는 품이 비상히 민첩하고 . 특이했다.

노영탄은 남달리 괴상한 용모를 가진 데 다가 또 체찍 같은 괴상한 무기를 뽑아들고.

덤벼더는 기경객을 유난히 주의해서 살폈다.

이런 파워의 괴상망측한 용모를 가진 놈들이 제일 다루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놈들은 십중팔구 괴상하고 .독특한 잔재주로 속임수를 쓰려든다.'

기경객의 경수편 체찍은 몹시 억센 바람을 일어키면서 마치 꽃잎 같은 것을 뿌려서

사람의 얼굴을 단숨에 그속에 휘몰아쳐버릴 듯이 곧장 노영탄의 머리를 겨누고.

휘휘 감겨 들어갔다.

노영탄은 오른팔에 모은 힘을 막써보려 하는 찰나에 선뜻.

휘휘 감겨저 들어오는 체찍 끝을 발견하자.

마치한쪽 눈을 깜짝하듯이 가볍게 빠른 동작으로 몸을 살짝 굽혀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손을 번쩍 쳐들어서 억센 바람을 일어켜 상대방을 향해

화쌀처럼 쏘았다.

기경객의 경수편 체찍도 그 바람 앞에서는 맥을 못 쓰고 어지럽게 방향을 잡지못하며

허공 속에서 힘없이 펄럭거릴 뿐이다.

기경객은 체찍을 한 번 내리첬다.

그러나 노영탄의 손 바람 앞에 그것도 힘을 못썼다.

'아아! 이놈은 이만저만한 손바람을 가진 놈이 아니구나!'

'이대로 꼐속해서 닥치는대로 ㅊ찍을 휘둘러서 처들어가 봤댔자.

그것도 반드시 이놈의 손바람 앞에서는 물러날 수밖에없어니.......' 

대경질색한 기경객 .

그러나 그대로 굴복하고 후퇴해 버릴수는 없었다.

그도 정신을 바짝차렸다.

암암리에 몸 안의 온갖 힘을 한곳으로 집중해 오른팔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괴상한 술법을 쓰는 놈이로군.' 

한 번 팔을 떠니까.

경수편 체찍이 즉각에 한 자루 못처럼 꼿꼿해지더니 

단단한 쇠뭉치같이 변해버리는 것이다.

기경객의 경수편 채찍은 . 고래의 가느다란 수염을 뽑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맨 위에는 사람의 머리털같이 가느다란 금사가 온통 칭칭 감겨저 있어며.

또 그속에는 뽀족하고 가늘고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무수한 가시가 돋아나 있다.

이것을 만일에 채찍으로 사용할 때엔 가늘고 부드럽고 가볍게 칭칭 감겨저 

어떠한 보도. 보검도 두려울것이 없으며.

한번 사람의 몸을스첬다가 떼기만 하면 피부든 살점이든 한점 남지 않고 .

송두리째 떨어져나가기 마련이다.

몸 안에축적되어 있는 내공의 온갖 힘을 이 채찍 위로 집결시키고 .

팔에 힘을 써서 한 번 흔들기만 하면  당장에 붓대와 같이 꼿꼿해지고 단단해지는

이상한 물건이다.이렇게 되면 거기 돋처 있는 바늘 끝 같은 가시들도 똑같이

곳꼿하고 단단하게 변해서 마치 한 자루의 아미자(峨嵋刺) 쇠갈귀같이 되어버린다.

이물건은 병기의 계보에도 들지 않는 무기로서.

기경객 혼자만이 독창적으로 연구해서 사용하고 있는 괴상한 물건이다.

기경객은 노영탄의 손바람이 비상히 빠르고 억센 것을 알아차리자.

당장에 아미자의 술법을 써서 빈틈을 찾아내 가지고 그 손바람을 물리침으로써.

노영탄의 손에 채찍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영탄을 위해서는 정말 다행한일이었다.

만일에 노영탄이 이채찍의 무서움을 조금도 모르고 손을써서 채찍을 움켜잡았다면 

이때야말로 노영탄은 기경객의 계교에 떨어져 그의 두 손은 채

직에 돋쳐 있는 무수한 뽀족하고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서 살이고 피부고 할 것 없이

채찍의 놀라운 위력에 휘말려버리고 말게됐을 것이다.

기경객은 즉각에 오른팔을 한 번 맹렬히 휘두르더니 

경수편 술법의 제일단인 악교출혈(惡蛟出穴)이라는 재간을 부려서

곧장 노영탄의 양 가슴을 정토으로 습격해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도 억센 바람을 일어켜 노영탄의 하복부까지 공격해 들어갔다.

'이놈이 몹시 엉큼스러운 놈인데!'

'이게 또 무슨 괴상망측한 짓이냐?'

노영탄은 기경객이 아미자의 술법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비급한 술법으로 대항하려 한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신을 바싹 차려 기경객의 일거일동을 샅샅이 노려보았다.

과연.

기경객의 채찍에는 바늘 끝 같이 가늘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온통 꼿꼿이 돋처 나오지않는가?

'흐음? 이놈이 이런 괴상한 장난으로.......'

노영탄은 그 괴상한 물건을 손을 써서 빼았거나 스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약싹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때 벌써 기경객의 왼쪽 손바람도 맹렬히 노영탄에게 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영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소리 한 번 내는 법도 없었다.

냉정침착 . 태연자약한 노영탄 .

팔괘의 방위를 정확하게 디디고 서서 몸을 번갯불같이 번쩍번쩍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다 못해.

마침내 다년간 스승을 따라 연마했던 건곤혼원장의 술법으로 적과 대결해 볼 결심을 한 것이다.

이 이상 시간을 오래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빨리 무서운 재간을 보여주어서 회양방의 중진급이라는 이물들을 놀라자빠지게 하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노영탄은 왼쪽 손을 일어켜 세워서 훌쩍 찌르듯이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뒤집는 순간.

무섭고 억센 바람이 일며 때마침 습격해 들어오는 기경객의 경수편의 힘을 문제없이 

막아낼 수가 있었다.

노영탄은 다시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부터 아래를 향하고 내리치 듯.

무엇을 잘라버리 듯 홱 뿌리쳤다.

그것만으로도 기경객이 왼쪽 손바람을 넉넉히 막아낼 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노영탄은 몸을 갑자기 뒤로 뽑아서  두 손을 번갈아 이쪽 저쪽으로 교차시켜

휘젖더니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향했다.

발은 정북의 방향인 감위(坎位)를 꼿꼿이 디디고 서서.

어르렁거리는 천둥소리 속을 번갯불이 헤쳐나가듯.

'쉬익! ' 하는 매서운 음향과 더불어 건곤혼원장의 제일단인 성분익진(星分翼軫)의 술법을

전개했다.

두팔에서 일어나는 센 무서운 바람은 난데없이 부는 회오리 바람처럼 땅 위를 휘말아버리고.

휩슬어버리고 눈도 뜨기 어려운 모래바람. 흙바람이 되어서 길길이 높이 솟구쳐 오르며.

기경객에게 맹습을 가하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않고 땅이 갈라질 듯 했다.

노영탄이 일으키는 바람의 위력은 과연 회양방의 소위 중진급이라는 여러 인물들도

일찍이 이 땅 위에서 구경은 물론 상상조차 못 해본 무섭고 놀라운 것이었다.

기경객의 그 무서운 채찍도 또 손바람도 마침내 맥을 못 쓰게 돼 버렸다.

기경객이 제이차 공격을 맹렬히 가해 볼 생각을 하는 순간에는 벌써 노영탄이

두 번째 일어키는 손바람이 육박해들어오고 있었다.

첫 번째 못지않게 무서운 바람이 연거푸 습격해 들어오자.

기경객은 당황하여 제이차 공격을 가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선 공격을 단념하고 수세(守勢)를 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경객은 몸을 급히 움츠러뜨리며 옆으로 슬쩍 뽑았다.

그리고는 땅 위에서 이십여 척이나  흘쩍 뛰어 올랐다.

허공에 떠서 가까스로 상대방의 바람을 막아내며.

그 틈에 몸을 뒤집어 이 무서운 적을대해 볼 기운을 억지로라도 수습해 볼 생각으로

다시 땅 위에 표연히 내려섰다.

땅 위에 내려 서기는 했으나.

기경객의 마음속은 이미 보이지 않게 부들부들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날세고 이렇게 억센 적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기경객이 가까스로 땅 위에 내려서자마자.

노영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각을 지체하지 않고 발을 다시 하 번 번쩍하고 움직이더니

연거푸 습격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기경객은 이번에는 노영탄이 채 발을 들고 손을 쓰기도 전에.

몸을 껑충 허공으로 날려서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처음과 같이 곧장 높이 뛰어 올라서 그 자리를 피하지는 못 했다.

두 번씩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자리를 피하다가는 노영탄이 그대로 거침없이 따라 나서며

습격해 들어올 것을 겁냈기 때문이다.

기경객은 몸을 솟구쳐 높이 뛰어올라 슬쩍 한 옆으로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이렇게하면 노영탄의 손바람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노영탄은 그대로 곧장 앞만 바라다보고 쳐들어 올 것이 틀림없을 터이니

이 찰나에 기경객이 몸만 슬쩍 한 옆으로 빼내서 자리를 피해 다시 훌쩍 몸을 뒤집으면

꼭 알맞게 노영탄의 등들미를 대하고 서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노영탄을 역습하고

기습하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랴.

마침내 이런 잔꾀를 생각해 낸 기경객은 껑충 뛰어오르면서 슬쩍 왼편으로 몸을 빼냈다.

그리고는 두 발이 다시 땅 위에 내려 닿을락말락 하는 순간에.

머리르 흘쩍 돌려서 방향을 바꾸고 그대로 육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없는 헛수고였다.

천만뜻밖에도 노영탄이 그 잔꾀에 넘어가지도 않았으며

곧장 앞만 바라다보고 공격해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그 역시 날세게 방향을 돌이켜 여전히 기경객을 정면으로 대하고 맹렬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경객은 극도로 당황했다.

창졸간에 몸을 피할 수도 없었다.

껑충 뛰거나 솟구쳐 올르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를만한 겨를도 없었다.

'이크! 잘못됐구나!'

'이제는 마지막 ..... 피할 길이 없구나!'

기경객은 간담이 서늘해지며 갈갈이 찢기워지는 것 같아 가슴속이 오싹하고 떨렸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인 최후의 힘을 다해서 두 손을 한꺼번에 써볼 생각을 하고

막움직여볼까 하는 위기일발의 무시무시한 찰나에 난데없이  저편에서어떤 사람인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다 같이 잠깐만 멈추시오 ! 손들을 멈추시오!"

노영탄과 기경객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또한 둘이 몸을 멈추고 우뚝 선 채로 음성이 들려오는 저편을 바라다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긴장된 순간에 고함을 지른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

금모사왕 바로 그였다.

조금전에 노영탄이 건곤혼원장의 술법을 쓰기 시작해을 때.

그 손바람이 무시무시하고 억센 품에 대적하고 있는 기경객이 겁을 집어먹었을 뿐만 아니라.

금모사왕은 물론 옆에서 바라다보고 있던 회양방의 중진급이라는 인물들 까지모조리

놀랍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 지경이었다.

'이크 ! 이것은 보통 놈이 아닌데.......'

'잘못 건들렸다가는 큰코다치겠는 걸!'

'안되겠는데! 이만저만한 재간이라야 상대가 되지........'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그것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잔뜩 겁을 집어먹고

두 눈이 휘둥거려지는 판이었다.

회양방의 소위 중진급이라는 몇 사람 가운데서 제일 고령자에 드는 운몽노인은 노영탄이

첫째 발자국을 떼어놓고 손을 한 번 휘들렸을 때.

이미 어떤 사람보다도 제일 깜짝 놀랐다.

'이건 분명히 무예계에서 제일 기인이라는 남해어부의 절예인 건곤혼원장의 술법일 터인데...'

'이 사나이가 과연 누구이기에?

어떻게 이런재간을 몸에 지닌 걸까?'

운몽노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알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여러 인물들 중에서 단지한 사람 운몽노인만이 이십여 년 전에 남해어부가 보여준

이 놀라운 재간을 구경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괘심한 놈들! 이제 알아봐다는 거냐!"

노영탄은 여태까지 오만하기 짝이 없던 금모사왕의 태도가 돌변해서 공손해지는 것이

비위에 거슬렸서나 그것을 안색에 드러내지 않고 내심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영탄도 선뜻 일부러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목적은 여러 놈둘에게 골고루 잘 알아듣도록 하자는 데 있었다.

"남해어부는 바로 소생의 스승되시는 분이요.

밤중에 당신네들 모두에 실례한 것은 단지 사람을 구해내자는 목적 뿐이었소!"

"에해해해 해해해..........."

금모사왕은 노영탄의 대답을 듣더니 웃어지지도 않는 억지 웃음을 몇 번인지

히히거리고 웃어 젖혔다.

그리고는 한쪽밖에 없는 외눈동자를 두리번거려 굴려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생은 노형의 무술의 재간을 십분 탄복하고 존경하여 마지않소!

그러나 오늘만은 사정상 불편한점이 있느니

바라건데 이월 초이일 홍택호 호반에 있는 앵무주에서 다시만나 가르침을 받아볼까 하오!

노형께서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가부간 결정적인 의사를 표시해 주시기 바라오!"

노영탄이 금모사왕의 꾀를 알아체지 못할 리 없었다 .

"흐음 ! 아니꼬운 놈 ! 그때 매복(埋伏)의 음모를 써서 불의에 습격을 해보자는 수작이구나 ! "

"나까지 숭양파의 인물들과 똑같이 대하고 그런 잔꾀로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을........"

노영탄은 금모사왕의 계교를 명백히 간파했지만.

이제는 이만큼 해두고 놈들에게서 빨리 손을 떼고 몸을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레서 노영탄도 태연자약하게 자못 통쾌하다는 듯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좋소! 그와 같은 약속을 원한다면 소생도 그날.

그때 어김없이 약속한 지점에 가서 기다리겠소!"

점잔케 후전이 성립된 셈이었다.

이때 벌써 하룻밤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이새도록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된 아슬아슬한 싸움은 금사보 안을 거센 파도처럼 뒤흔들어

놓았다.

회양방의 중진급 인물들이 서 있는 곳을 둘러싸고.

그 주변으로는 무수한 졸도들이 총동원 되어서 들끓어 나와가지고.

제각기 놀라운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이 알 수 없는 괴상한 복면의 사나이를 바라다 보고 있었다.

금모사왕은 일파의 두령으로써 위신을 자못 거만스럽게 갖추면서 한편 손을 높이쳐들어서 휘둘었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낮은 음성으로 옆에 서 있는 몇 명의 두목격 인물들에게 분부했다.

"일제히.빨리 이 자리를 뜨도록 하시오!"

금모사왕의 명령에 두목급이요.중진급인 인물들은 모조리 날듯이 금시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제야 금모사왕은 자못 정중하고 위엄있는 태도로 이편으로 걸어와서.

노영탄을 금사보 밖에까지 전송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휴전협정이 성립된 쌍방의 장군이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것이다.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회양방의  수많은 졸도들은 담장에 양편으로 갈라서서

그 가운데로 길다랗게 길을 띄웠다.

보루 정문 가까운 지점에는 일백이십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양편으로 갈라서서

장중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장정들은 저마다 손에 잡고 있는 서슬이 시퍼렇게 번쩍이는 장금을 높이 쳐들고.

그 칼 끝을 서로 교차시켜 마치 칼로 지붕을 덮은 굴속같은 장엄한 길을 만들었다.

노영탄은 그 긴칼로 뒤덥힌 문과도 같고 .아치와도 같고 . 굴속 같기도 한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노영탄은 대담무쌍.태연자약. 머리를 위엄 있게 떠억 벌리고 성큼성큼 천천히

그 칼지붕 밑 굴속같은 길을 걸어나갔다.

보루 정문앞에 있는 부교에 이르렀을 때 노영탄은  그 다리 위에 버티고 서더니

몸을 흘쩍 돌이켜서 팔짱을 끼고 금모사왕에게 다소 정중한 듯 상반신을 약간 굽혀

인사하며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만나 뵙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아오!  

약속대로 이월 초 이튼날. 다시만납시다.

말을 마치자.

노영탄은 몸을 꿈틀하나 보다 하는 찰나.

그대로 다리 위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몇번인지 몸을 가라않히는 듯. 또다시 솟구쳐오르는 듯 하더니

어디론지 형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마치 한 마리 새가 날아가 버리 듯 .

여러 사람들의 시야에서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이긴싸움이 일단락을 짓는 동안에 한빙선자 연자심과 악중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 두 사람은 노영탄의 분부에 쫓기듯이 금사보에서 빠저나온 뒤로 무사히

강 물줄기를  따라서 곧장 서쪽을 더덤어 내려갔다.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강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지점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지난번에 금사보에서 빠져 나와서 잠시 휴식하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광경을 다시 회상해 보자니.

두 사람은 똑같이 일종의 수치스럽고 어색한 감정을 참을 길이 없었다.

두 젊은이들은 더 한층 친밀해지고 다정해진 듯 싶었다.

그야말로 환난을 같이 뚫고 나가며 사귀게 된 사이였기 때문이다.

강변에서 멀지않은 곳에 마침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그 나룻배 위에 사람이 있건 없건 그런것을 알아볼 생각도 없이 단숨에 한 쌍이 되어서

껑충 뛰어 그 위로 올라갔다. 

배 위로 올라가 보니 과연 그것은 빈배였다.

둘이서는 즉시로 닻줄을 감아버리고 돛을 달고 복면한 사나이의 분부대로 순류의 물결을 따라

곧장 홍택호를 향하여 배를 저어갔다.

동녘 하늘이 막 밝아오기 시작했다.

불그스레하게 떠오르는 새벽녘 햇발이 희미하게 하늘로 퍼저 올라올 무렵이었다.

자그마한 나룻배가 호수어귀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돋을 내려버리고 두 개의 노를 쌍쌍이 저어서 빽빽한 갈대숲을 헤치고

경쾌한 기분으로 이 미지의 세계를 뚫고 들어갔다.

이제.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호수 위에 배를 띄우고. 목적지를 찾아 들어가는

두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새벽녘 미풍이 시원스럽게 나부껴서 한없이 행복스러워 보였다.

갈대숲을 꿰뚫고 나오니 눈앞에 난데없이 전개되는 경치는 세상이 별안간 딱 트이듯이

명랑하고 시원스럽고 넓었다.

두 사람은 저편으로 사면이 호수로 둘러싸여서 둥둥 떠 있는 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섬은 온통 매화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어며 . 매화꽃이 바야흐로 만개해있었다.

매화나무 숲. 깊숙한 골짜기로 한군데 아담한 건물의 한 귀퉁이가 내다보였다.

이곳이 바로 저 복면한 사나이가 일러준 적화주라는 고장임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갈대숲 속도 섬 위도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비단결같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고. 무슨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우선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를 알 수 없어 심히 궁금했다.

더군다나 그 주인을 어떻게 찾아가서 만나봐야 할지 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런점을 저 복면의 사나이에게 좀 더 자세히 묻고 오지 못했음을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몰랐다. 

"어떻게 한다?"

"누구를 찾아보조?"

둘은 똑같이 답답한 말만 주고받으며 한참 동안이나 얼빠진 사람같이 멍청히 바라다볼 뿐이었으나.

마침내 이것 저것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로 섬에 가까운 나루터에다 배를 곧장 들이댔다.

배를 한군대다 매놓고 섬으로 올라서서 살금살금 매화나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화나무숲 속으로들어섰을까 말까 했을 때.

난데없이 두 개의 사람그림자가 번쩍하고 두 사람 의 시야에 스첬다.

사내와 계집아이.

두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활발하며 깨끗한 모습이 튀어 내달았다.

어린이들은  채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저편에서 똑같이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렸다.

"영탄 아저씨!욱형 아줌마!"

악중악과 한빙선자 연자심은 두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동시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서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두 어린아이들은 줄달음질을 쳐서 이편으로 달려왔다.

하나는 한빙선자 연자심을 얼싸안고.

또하나는악중악에게 대롱대롱 매달리고 깔깔대고 웃으며.

고함을 지르고 어쩔줄 모르는 품이 기뻐서 못 견디겠다는 모양이었다.

악중악과 한빙선자 연자심은 한동안 어리둥절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빙선자 연자심과 악중악은 한참동안이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제야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처다보며 빙그레 웃는 도리 밖에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또한 무엇이라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없는 감개에 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어린아이들은 얼마전에 이곳을 다녀간 노영탄과 감욱형을 생각한 것이요.

비슷하게 생긴 악중악을 노영탄인 줄 알았고 더군다나 분간하기어려운 한빙선자 연자심을

감욱형인 줄 안 것이다.

그러나 두 어린아이들이 사람을 잘못 알고 달려들었다고는 하지만 .

악중악과 연자심은 이 두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런 품이 귀여워 견딜 수 없었다.

연자심은 대문의 머리를 한 손으로 톡톡 쳐서 쓰다듬어 주었다.

웃음을 참지못하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에! 넌 사람을 잘못 본 게다! 우리는 영탄 아저씨도 아니고. 욱형 아줌마도 아니다!"

이말을 들은 두 어린아이들의 표정이 일시에 확 변했다.

이상하다는 듯.

두 눈을 크게뜨고 어리둥절해서 악중악과 연자심을 뿌리치고 멀찌막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를 리가 없는데 !'

두 어린아이들은 그대로 단념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물러서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참 동안이나 얼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다보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한참 만에야 동생인 대림이 놀라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꼬챙이 같이 뽀족한 음성으로 물었다.

"누나! 그럼 저이들이 정말 영탄아저씨도 아니고. 욱형 아줌마도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나서는 악중악과 연자심을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당돌하게 말했다.

"그럼. 당신네들은 누구시오? 뭣하는 분들이시오?

무엇 때문에 우리 적화주엘 들어오셨다는 거요?"

그 당돌하면서도 천진난만한 태도는 귀엽기 이를 데 없었다.

악중악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들은 너희들의 영탄아저씨. 욱형 아줌마와 아주 친한 친구다.

너희들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우리들을 이리로 가라고 일러주어서.........."

악중악의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어디선지 난데없이 점잖고 엄격한 음성이 들려왔다.

"대문아! 대림아! 너희들은 어째서 손님이 오셨서면 먼저 나를 부르지 않고서?"

악중악과 연자심은 그 음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동안학발(童顔鶴髮)

면목이 자상하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막 매화나무숲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급히 몸을숙여 공손히 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후배 악중악과 연자심이올시다.

찾아뵈라고 분부해 주신 분이 있사옵기에 당돌함을 무릅쓰고 대선배님 앞에........

선배님께서는 뉘라 일컬으시옵는지?"

할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두 사란을 자세히 훓어보며 말이 없었다.

이윽고 할머니는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다는 이상한 표정을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 늙은 것은 오매천녀라고 부른다.

너희들 두 사람은 어느파의 문하생들이냐?

또 누구의 소개를 받고 여기엘 온 것이냐?"

악중악과 연자심은 여태까지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복면의 사나이는 십중팔구 바로 노영탄이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말을 듣자 오매천녀 역시 그 복면의 사나이가 틀림없이 노영탄이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대답했다.

"소생은. 숭양파의 제자이오며.이 연자심 아가씨로 말하오면 회양방의 옛날 방주이신

개세천왕 연약파의 따님으로서..........."

악중악의 말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채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오매천녀는 갑자기

얼굴빛이 핼쑥해졌다 .

창백해진 얼굴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떨려 나오는 음성으로 물었다.

"뭐? 뭐라구? 너........너....... 네가 정말 연약파의 딸이란 말이냐?"

한빙선자 연자심은 이 말을 듣고 . 오매천녀의 놀라는 품을 보자 선뜻 알아차렸다.

오매천녀는 회양방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할머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회양방 옛날 방주의 딸이라는 한마디를 듣자말자 분노와 원한을 못 참겠다는

표정을 하지않는가!

연자심은 한동안 공교롭고 어색하기 짝이 없게 된 자기 입장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뜻했으랴.

오매천녀는 연거푸 이상한 질문을 했다.

"너는 너의 어머니를 기억하느냐?"

연자심은 이 괴상한 질문을 받게 되자 깜짝 놀라서나 .

사실대로 대답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 . 한 살도 다 차지 못해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사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저씨뻘 되는 스승을 섬기고 그 밑에서 자라났사와 어머님의 

모습조차 기억하지 못하옵니다."

오매천녀의 얼굴에는 갑자기 슬픔이 가득 찾다. 

두 눈이 빨갛게 타오르는가 하는 순간 구슬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영문을 알 수 없어 .

일변 당황하고 일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오매천녀는 앞으로 한 걸음 천천히 나서더니 두 팔을 벌려 연자심을 부등켜안으며

슬픔에 가득찬 으성으로 말했다.

"불쌍한 계집애! 나는 네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더니

이렇게 커다랗게 자랐을 줄이야!

네 어머니가 바로 내 동생이었다!

넌 이런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연자심도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동자로 오매천녀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

어리둥절해서 이 광경을 넋잃고 바라다보고 서 있는 대문 대림 두 어린아이들.

악중악은 도무지 어떻게 된 까닭을 알 수는 없었으나 .

어쨌든 연자심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기뻐했다.

한참만에.

오매천녀는 눈물을 거두고 천천히 조용히 과거를 추억해가면서 악중악과 연자심에게

길고 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다음은 기연기명(奇緣崎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