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10장 기연기명(奇緣崎命)

오늘의 쉼터 2013. 12. 7. 22:22

정협지(情俠誌)
제 10장 기연기명(奇緣崎命)

 

참으로 기이한 인연

 

 

오매천녀는 슬픔이 가득 찬 어조로악중악과 연자심에게 삼십여 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흘러간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십여 년 전

숭양파를 창립한 조사 숭양장로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첫째 제자인 황보자우(皇甫子羽)가 대신 그 자리에 앉아 문호를 계승해 나갔다.

숭양장로는 임종 때에 유명(遺命)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수중에 넣게 된 무예계에서 진기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숭양비급이라는

책자를 후대의 제자들에게 물려주기로 하되.

각대의 영도자들이 지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관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 비급이라는 책자는 북송때 어떤 강호의 뛰어난 인물이 있어.

몸에 지닌 절세의 무술의 재간을 일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연마한 결과.

천강지쇄(天강地殺).생극소장(生克消長) 의 수(數)를 터득하여 그것을 기초로

인간이 내부에 지닌 정신력으로 연마해 낼 수 있는 독특한 무술의 재간을 기록하여 꾸며낸 것인데.

책자의 명칭은 결정치 못했다.

그 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송나라 조졍은 여러 차례 변란을 겪었다.

이 비급이라는 책자도 여러 차례 의 변란 통에 어디로 어떻게 굴러다니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원조 말년에 이르러 숭양장로가 강호 넓은 땅을  두루두루 돌아단니며 유람했을 때.

우연히 이 책자를 손에 넣게 되었다.

자세히 뒤적거려 보자니 .

무술에 있어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정신력을 연마하는 비결이 적혀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때마침 숭양장로가 숭양파를 창립하고 있던 차 인지라.

그 길로 숭산의 남쪽에 오랜 동안 파묻혀 이 비급에 숭양비급이라는 명칭까지 붙이게 되었다.

숭양장로는 이렇게 해서 이 비급을 수중에 넣게 된 다음부터는 한편으로는 이런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 강호 여기 저기서  이것을 탐내고 넘겨다보는 놈들이 생길 것을 몹시 겁냈다.

또 한편으로는 숭양파가 창립한 지 얼마 되지 못하여 기초가 공고하지 못한 데다가 사무가

번잡하고 힘이 부족한 까닭으로 어떤 사람이 이 책자의 일을 알려고 할 만한 겨를이 없어고.

자연 이 비급은 벽송관 어느 깊숙한 곳에 비밀히 감춰져 있게 되었다.

숭양장로가 네 사람의 제자를 받아들인 다음부터 숭양파는 강호 무예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위엄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숭양장로도 이 비급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첫째 제자인 창랑거사(滄浪居士)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런 까닭으로 숭양비급이라는 책자에 관해서는 그들 스승과 제자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

다른 세 제자들은 전혀 깜깜 소식이었다.

그러나 숭양장로는 이 비급을 그 오묘한 경지까지 연구해 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숭양장로는 임종이 눈앞에 닥친 순간에야 가장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 숭양비급이라는 책자가 어떤 기이한 천부(天賦)의 힘을 타고난 인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 오묘한 경지를 터득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신 한 사람의 힘이나 혹은 첫째 제자 창랑거사 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 책자 속에 기록되어 있는 심오하고 현묘한 경지를 터득해 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눈이 감길 듯 말 듯 가늘어지는 숨소리가 마지막을 재촉하는 순간.

숭양장로는 네 제자들을 머리맡으로 불러 앉히고 중대한 최후의 선언을 했다.

"너희들 넷이서는 .... 내 마지막 말을 명심해 들어라!

이 숭양비급은 천하에 둘도없는 진기한 무술의 보물로서.

내 평생에 힘을 기울였으나 오묘한 경지를 터득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수밖에없어나.......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여........

너희들 넷이서 각골명심........

개인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버리고 숭양파의 앞날을 위해서 합심협력하여라.

이것을 연구하고 그것으로써 숭양파의 기초를 튼튼히 쌓아 올리기에 전심전력 하여라.

이것이 내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남기고 가는 말이니.......

부디 명심하고......... "

이로써 숭양비급은 네 사람의 제자에게 똑같이 공개되었으며 공동으로 연구하라고

선포를 받은 셈이 되었다.

창랑거사 황보자우는 위인이 몹시 야무지고 총명했다.

숭양장로가 제일 애지중지 하는 수제자로서 .

몸에지닌 무술의재간도 누구보다도 숭양장로의 진전(眞傳)을 물려받은 편이었다.

그때. 벌써 창랑거사는 강호의 7대 고수라는 무술계의 명인들 틈에 당당히 낄 수 있는

뚜렷한 존재였다.

그르나 이런 사실은 그에게는 우쭐대는 자만심을 길러주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숭양파에서 제일 뛰어난 존재라고 과신했다.

자신의 무술의 제간 역시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서.

누구를 대적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해 섰다 .

만일에 . 자기 혼자서 남보다 먼저 숭양비급을 터득하여 정신력을 토대로 하는

절묘한 무술의 재간까지 연머할 수 있다면 숭양파의 영수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호 넓은 땅을 주럼잡으며 무술계를 독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항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던 창랑거사는 숭양장로의 명령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숭양비급을 다른 세 제자들 몰래펼처 보았던 것이다.

뜻밖에도. 가장 어린 제자는 위인이 당돌하고 성미가 급한 데다가.

이찍부터 혼자서 엉뚱한 뜻을 품고 언제나 남보다 뛰어난 독특한

무술의 재간을 연마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스승이 첫째 사형인 창랑거사만을 편애하고.

감싸주는 것을 늘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숭양장로의 임종시의 유언을 듣고서야 이 숭양비급을 둘러싸고

 이런 사제지간의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제일 어린 제자는. 창랑거사가 스승 숭양장로 의 유명을 받들어 이 비급을

여러 사람 앞에 내 놓고 다 같이 연구하리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창랑거사는 마침내 스승의 유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을 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제일 어린 제자는 크게 불만을 품고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날이 갈수록

자라나고만 있었다.

이 제일 어린 제자가 바로 회양방의 옛날 방주 연약파(燕躍派)였다.

연약파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고 무술의 재간도 창랑거사를 따를 수 없으며

혼자 몸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지라 한때는 찍소리도 못하고 창랑거사 밑에 굴복해 있었다.

그러나 암암리에 자나깨나 노리고 있는 것은 숭양비급이었다.

언제든지 비급을 감춰 둔 곳을 탐지해서 그것만 훔쳐낸다면.........."

주야로 이런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만 훔쳐낸다면 그때에는 어디든지 명산대천을 찾아가서

그 속에서 깊숙히 파묻혀서 은거 하면서 필사적으로 무술을 연마하면 절세의 재간을

몸에지니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강호 넓은 천지에서 감히 어떤 사람도 따를 수 없는 패자가 될 수 있고.

사해에 위대한 명성을 떨칠 수 있으리라고 확신 했다.

내정히 말하자면.

이들 두 제자는 똑같이 자만의 심리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명리라는 것을 지나치게 중대하게 생각했으며 단지 혼자만의 명망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에 만 정신을 쏟아던 것이다.

그들은 똑같이 가장 중요한 점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것은  이 숭양비급이라는 것이. 정신력에 의한 내적인 무술 연마의 비결이니 만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것을 연마하는 사람이 세속적인 자사와 명리지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비록 이것을 탁월하고 고명하고 완강하다는 어떤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는 기묘한 사실이다.

그들 두 제자의 천품이나 자질. 삐뚫어진 정신을 가지고는 높고 깊은 경지에까지 이러기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명리와 사욕에 눈이 어두운 그들 두 제자가 어찌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심원한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사심이 없고 맑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정신으로 앞을 멀리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었으랴.

그들은 영정치원(寧靜致遠)의 도리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목적의 사리사욕에만 눈이 뒤집혔다.

원대한 앞날을 생각지 못했다.

군주가 위대하면 먼 곳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자진해서 따라오며 복종하게 된다는 도리를 몰랐다.

연약파는 다년간 창랑거사 밑에서 은인하고 굴복하는 체하며 견디어 봤으나.

결국은 숭양비급을 감춰 둔 곳을 도저히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연약파는 참다못해서 창랑거사에게 항의를 제출하고야 말았다.

"사형 ! "

어느날 깊은 밤중에 창랑거사 황보자우의 침실에 뛰어든 연약파의 음성은 날카롭게 떨렸다.

막내동생이 맏형에게 덤벼든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황보자우는 지극히 태연했다.

벌써부터 너의 뱃속을 들려다보고 있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위엄있는 음성으로 응수했다.

"무슨 일이냐? 이 밤중에........ "

"사형께 따져야 할 일이 있소!"

"따져야 할 일? 뭔냐? 어디말해 봐!"

"사형깨선 어째서 돌아가신 스승님의 유언을 저버리시고 

그 비급을 우리들 앞에 공개해 주시지 않는 거요?"

당돌한 연약파의 두 눈동자는 창랑거사 황보자우를 화살처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하아! 그것.......그것 때문에 ?

네가 정 그다지 조급하다면 내일부터라도 꺼내다가 보여주지!"

창랑거사는 맏형의 위엄을 갖추고 선선히 대답했으나.

그는 그대로 딴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떠난 스승의 임종시의 유명을 어길 길이 없어.

이렇게 쾨히 승락은 했지만 그렇게 쉽사리 비급을 내놓을 창랑거사는 아니었다.

약속대로 이튿날 부터 창랑거사는 그 비급을 공개하기는 했으나 .

그것은 부분 부분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이따금 보여 줄 뿐이요.

절대로 전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연약파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어디 두고 보자 ! 어떤 놈이 잘 되나 !'

연약파는 창랑거사가 지키고 있는 숭산을 흘겨보면서 표연히

그곳을 떠나 강호 넓은 천지를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 후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우연한 기회에 왕년에 무예계의 괴물이라 일컫는

기북인마(冀北人魔) 풍천(馮天)의 문하에 들어가 무술의 연마에 전념한 결과 .

마침내 상당히 재간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무렵에 그는 또한 우연한 기회에 오매천녀의 동생인 백화천녀(百花天女)를 만나게 되었다.

무슨기이한 인연이었던지 둘이서 한 번 보자마자 정이 통해서 부부가 되었다.

아내를 거느리게 된 연약파는 한편으로 회양방을 창립했다.

스스로 칭호를 붙여 개세천왕(蓋世天王)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위 이파의 기인. 고수라는 인물들과 결탁해

숭양파와 대적하려 했다.

그리고 숭양비급을 수중에 넣기 전까지 싸울 것을 맹세 한다고 세상에 선포했다.

이리하여. 숭양비급은 강호 천지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진귀한 보물이 되었다.

비단. 숭양파에게만 깊은 산 속에 감춰 둔 지보가 아니라 .

연약파도 이것을 빼앗을 때까지는 결사적으로 항거하겠다는 것이며

온갖 이파의 인물들도 이것을 탐내어 기웃거리고 침을 삼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개세천왕 연약파는 마치 호랑이 등에 타고 앉은 격으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었다.

행동이 점점 더욱 거칠어졌다.

거느리고 있는 방도들을 시켜서 온갖 나쁜 짖이란 짖은 도맡아서 저질렀다.

이리하여 날이 갈수록  강호 넓은 천지에서 어디를 가나 사악한 무리로 몰렸고.

소위 무예계의 정통파 인사들의 저주의 대상으로 변했으며.

마침내 쌍방이 일대 결투를 피할 수 엾는 형편에 이르러 두 편이 다같이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를 내고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백화천녀는 개세천왕 연약파와 부부관계를 맺게 된 그날부터 지극히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남편되는 사람이 하는 일을 당장에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그만 두세요! 깨끗이 손을 떼어버리세요!

당신의 입장이 여간만 불리한 게 아녜요.

사람이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사리지념(私利之念)으로 나쁜 짓을 하고.

넓은 천지를 싸움터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옳지않는 일이에요!

제발 오늘부터라도 그런 일은 그만 두세요!"

아침저녘으로 백화천녀는 애원하다시피 간곡히 말렸으나.

이를 때 마다 연약파는 똑같은 대답만을 되풀이 했다.

"이제 와서는 어쩔 도리가 없단 말이요!

사내자식이 한 번 내디딘 걸음을 일석일조에 뒤로 물러서버릴 도리도 없고........ "

이때만 해도 연약파는 자기 소행에 대해서 후회하는 바 없지는 않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섰다.

한 걸음을 잘못 내디딘 것이 마치 호랑이 등에 타고 앉은 격이 돼 버렸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저버렸다.

동시에 정통파인 숭양파에서도 중대한 선언을 발표했다.

파에서 반역 행위를 했고.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연역파를 준엄하게 성토했으며.

이제부터 숭양파 문하에는 재자를 세 사람이상 받아들이지 않키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연약파 부부는 정세가 자기네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들은 다년간 거두어들이고 몰아들이고 한 금은보석이며 값진 패물들을 남몰래 살며시

어떤 비밀 장소에 파묻어 버렸다.

그 보물을 파묻어 둔 장소에 관해서는 간단한 지적도를 그려서 그것을 간직해 두고

일후에 부부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것으로써 남은 인생을 편안히 살아 볼 궁리를 했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란 것을 누가 감히 예측할 수 있었으랴.

백화천녀는 연약파와 결혼한 지 오 년만에 한빙선자 연자심을 낳아놓고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연약파는 자랑스런 딸을 얻어서나 . 그와 동시에 현쳐를 잃자.

상심한 나머지 그의 심경에 커다란 변동을 일어켰다.

성격과 행동이 더욱 횡포해지고 악독해젔다.

이렇게 되고 보니 회양방의 명망이란 것은 날이 갈수록 땅에 떨어져 갈 뿐이었다.

이때. 숭양파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숭양파에서도 회양방의 연약파를 토벌해 버리기로 결정했다.

문호를 정리한다는 이유를 스스로 내걸고 연약파를 주토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한편 연약파는 여러 이파의 기인들이 저마다 야심을 품고 덮어놓고 떠받드는 바람에

전 방을 동원해서  숭양파와 일대 결투를 해볼 결심을 했다.

이리하여 쌍방이 약속을 하고 자리를 홍택호 호반으로 택하여 무예계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대규모의 치열하고 처참한 결전을 전개했던 것이다.

개세천왕 연약파와 여러 이파의 두목들은 결투의 장소에다 미리 복병을 숨겨 놓고.

만일에 사불여의(事不如意)하여 무술의 재간이나. 실력으로 이겨낼 수 없게 될 때에는 .

곳 복병을 발동시켜 정통파의 고수들을 호수의 물속으로 몰아넣고 물위에 강력한 소주와 기름을

뿌린 다음 불을 질러서 이 무서운 불길로 갈대숲이고 호수고 온통 불바다를 만들어 물과 불

양면으로 공격을 가해서 절대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을띄워주지않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과연.

정통파의 고수들의 무술의 재간은 확실히 이파의 인물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이 있었다.

개세천왕은 이겨낼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돌아서서  도망칠 길도만만치 않게 되자.

곧 매복해 두었던 방도들을 발동 시켰다.

그러나 뜻밖에도 .

그와 여러 이파의 고수들이 도망치려 했을 때에는 도리어  그들이 몸을 피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제가 쳐놓은 그물 속으로 자신이 얽혀든 셈이 되었다.

그 결과로는.

숭양파도. 회양방도 쌍쌍이 똑같이 처참한 죽음의 수라장을 이루었으며 두 편이 똑같이

패망하여 무수한 희생자와 부상자를 내게 되었다.

그야말로 무예계에서 사리와 탐욕에 눈이 어두워 은혜와 원수라는 감정을 지나치게

격화시켰기 때문에 연출되었던 공전절후의 처참하고 규모가 컸던 일대 결투였다.

오매쳔녀는 당초부터 이 싸움에 휩쓸려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남편인 천룡검이 숭양파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던 관계로 .모른채 할 만한

형편이 못되어 어쩔 수 없이 가담했던 것이다.

싸움이 최후의 단계에 이르러 쌍방이 똑같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

개세천왕 연약파는 그래도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는 정리상.

오매천녀까지 생명을 빼앗아버릴 수는 없었다.

경각을 다투는 총망 중에도 오매천녀에게 도망을 쳐서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주었으며.

그의 외동딸 연자심을 잘 돌봐 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되었다.

오매천녀는 개세천왕이 가리켜주는 길을 따라서 호수 밖으로 도망쳐 나왔으나 .

그때에는 이미 앞길이 꽉 막혀 버렸을 때였다.

이때 마침.

남해어부 상관학이  겨우 이곳으로 달려왔던 판인지라 .

간신히 오매천녀를 사지에서 구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과 불이 합쳐젔서 불바다를 이룬 싸움터는 눈을 뜨고 볼 수 없도록 처참했다.

오매천녀의 남편인 천룡검과 창랑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파 사파 할 것 없이

소위 고수라는 여러 인물들이 모조리 물에 빠지고 불에 타버려서 어디 가서 뼈도

추려볼 수 없었다.

요행이라는 것은 절대로 바랄 수 없는 처참하고 무서운 싸움이었다.

남해어부와 오매천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호수를 바라다 보면서.

무예계의 처참하고 잔인한 살육의 광경을 탄식하여 마지않았으나.

그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불과했다.

오매천녀는 한편으로는 개세천왕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망매(亡妹) 백화천녀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불상한 고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양방이 출몰하는 곳이면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도처로 연자심의 행방을

알고자 애섰다.

그러나 회양방이란 이미 재가 바람에 날리 듯 연기가 흩어저버리듯

그 종적도 존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오매천녀는 몇 해 동안을 두고 꾸준히 연자심을 찾아내고자 했으나.

날이 갈수록 더 행방은 묘연해졌으며.

어느 곳으로 손을 뻗쳐 보아야 할 지 그것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오매천녀는 흥택호 호반에 자리 잡고 앉아서 어느 날이고 세상을 떠난 동생의

딸인 연자심을 찾아 낼 때가 있으리라는 안타까운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서 개세천왕 연약파의 맨 끝의 제자 금모사왕 오빈기만이 요행으로

이 결투의 마당에서 한편 팔이 잘리고 한편 눈이 멀어 가지고도 호수 밖으로

몸을 피해 나올 수 있었다.

금모사왕은  즉시로 회양방의 근거지로 달려가서 금은 보석이며값진 패물들을

제 손아귀에 걷어넣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연자심을 데리고 회양지구를 떠나 변경 깊숙한 곳으로 달아났다.

성을 감추고 이름도 숨기고 십여 년이란 긴 세월을 지냈다.

한편으로는 전심전력 무술의 재간을 연마하면서 또한편으로는 암암리에

옛날 졸도들을 모아들여서 회양방의 부흥을 꾀하고 있었다.

금모사왕은  또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은 개세천왕의 유서까지 발견했다.

그 속에는 금은 보물과 값진 패물들을 감추어 둔 지적도까지 들어 있었다.

금모사왕은 기쁘서 어쩔줄 몰랐다.

그러나 그 유서에는  자기가 남기고 가는 딸 연자심이 장성하면 방주의자리를

계승 시킬 것과 또한 그 보물과 패물들도 딸에게 돌려주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금모사왕은 기쁘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빙선자 연자심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될 것을 겁내고 남몰래 조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남아 있는 옛날의 방도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될까 그것도 겁이 나서 

보물을 감춰 둔 사실은 일체 비밀에 붙이고 혼자만 알고 있었다.

금모사왕은 .다년간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칩거하고 있는 몇몇 옛날의늙은 마귀같은

인물들을 모아들여서 회양방을 부흥시킨후에 무예계에서 혼자 뽐내다가  세상이

태평세월로 들어간 다음에 그 보물과 패물들을 파내 가지고 편안히 살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백화천녀는 생전에.

남편 개세천왕과 그 무서운 싸움 판에서 요행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경우를 생각하고.

보물과 패물들을 파묻고 나서  곧 오매천녀에게 편지로 연락을 해 두었다.

비록 그 편지 속 지젇도까지는 첨부되어 잇지 않았으나. 만일에 그들 부부에게

변고가 생겼을 때에는 남기고 가는 딸 연자심을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해 두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오매천녀는 옛날부터 이 보물과패물을 파묻어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십여 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간 다음.

오매천녀는 연자심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줄로만 알았고.

또 회양방도 강호 천지에서 종적도 찾을 길 없어 삼들의 염두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이런 지난날의 사실도 머릿속에서 히미해저 갔다.

이러는 동안에 난데없이 회양방이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서서.

옛날 보다도 몇 배 횡포하고 악독해저서 강호의 백성들을괴롭게 굴며.

은연중에 또다시 무예계의 일대결투를 빚어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매천녀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오매천녀는 지난번 결투 때에 요행히 도망을 쳐서 잔명을 건지게 된 후부터는 .

강호 넓은 천지에 은혜니.원수니 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똑똑히 간파했기 때문에

무술계에서 살육만 일삼는 자들을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강호 천지 어려운 세상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니면서도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오매천녀는 마음속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곧. 회양방이 다시 부흥했다면 세상을 떠난 동생이 남기고 간 고아 연자심도

이 인간세상 어느 곳에 살아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안타까운 생각에 다시 정신이 쏠리게 되어.

오매천녀는 불일간 한 번 호수 바깥 세상에 나가서 회양방의 옛날 근거지를 돌아보고

탐지해 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판이었다.

천만뜻밖에도 악중악과 연자심이 제발로 걸어서 호수로 찾아들었으니.

그야말로 발톱이 젖히도록 천하를 헤매며 찾아다니다가 .

힘 안 들이고 쉽사리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되었다.

오매천녀는 연자심이 개세천왕의 딸이라는 말을 듣자.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했다.

슬픔과 기쁨이 엉클어진 이루 형언키 어려운 심정으로 이 긴 옛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들려준 것이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얽히고 설킨 옛날의 사실을 알게 되자.

말없이 서로 얼굴만 처다볼 뿐.

꾀 오랫 동안.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쳐서 떨어질 줄 모를 뿐이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그것이 어떠한 심정이라고 말로써 나타낼 수 없었다.

기쁨도 있고 놀라움도 있고 슬프기도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두 대에 걸처서 내려온

은혜니 원수니 하는 것이 또 이 세상 넓은 천지의 인정이니 하는 것이 한데 엉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지러운 거물이 되어 두 사람의 가슴속을 휘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따저보자면 연자심은 악중악보다 얼마되지는 않아도 응당 선배라고 할 수 있으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결국 두 젊은이들은 완전히 적대시 해야만 될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는 두 젊은이들은 또한 생사와 환난을 같이 겪은 친구가 되었으니.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두 젊은이들로 하여금 어리벙벙해서 피차간에 상대방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을 뿐 감히 입을 열어 무슨 말이고 한마디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오매천녀는 이런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여태까지의 심각하던 얼굴이 웃음으로 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 둘이서 이렇게 만나게 됐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인연으로 표현할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 이것을 불가에서 하는 말을 빌리자면.

소위 인과응보란 것이 얄궃게 돌아다니다가 맞부딪쳤다고나 할까.

그러면 너희들의 윗사람이나 스승들이 너희들에게 씨뿌려놓은 것은

무슨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변화무상한 세상인지라.

누가 감히 미래란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랴?

어째든 너희들 둘이서는 이미 지나간 오랜 옛날 일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응당 생사와 환난을 같이 한 우정이란 것을 귀중히 알고 길이길이 아껴야만 될 줄로 안다!"

오매천녀의 이런 말을 듣자.

두 젊은이들은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몸 둘 곳을 몰랐다.

악중악의 준수하고 영민하게 생긴 얼굴은 그저 가볍게 불그스레해졌으나.

연자심은 역시젊음 처녀인지라 허여멀쑥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온통 복사꽃보가도 더 진하게

새빨개졌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말을 못하고 애교와 부끄러움에 잠긴 연자심의 모습은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었다.

오매천녀는 또다시 한참동안이나 묵묵히 두 젊은들을 자상한 얼굴로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두 젊은이들의 심중에는 이미 말없이 통하는 정이란 것이 조용히 흐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오매천녀는 악중악과 연자심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두 젊은이들의 용모가 다같이 출중하게 생겨서

짝을 구하기 어려운 한 쌍의 좋은 부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에 이 두 젊은이들이 가연(佳緣)을 맺을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이미 지하에 잠들어 있는 망매를 마음 편하게 위안해 주는 길도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시금 이 두 젊은이들의 각각 다른 기묘한 입장이나 처지를 생각했을 때에는.......

두아이들이 똑같이 각각 지니고 있는 은혜니 원수니 하는얄굳은 감정을 좀체 풀어버리지는 않을

테지!"

이렇게 생각하자면 오매천녀는 새삼스럽게 우울해지고 근심스러운 바가 없지않았으나.

한편으로는 혼자만이 단단히 마음먹는 바가있었다.

" 만일에 그렇게만 된다면..........."

" 이두 아이들이 가연을 맺어 한 쌍의 부부가 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난관이나 장애라도 물리치고....."

" 이렇게만 된다면 그것을 기회로 무예계에 감돌고 있는 문호니 편견이니.

혹은 은혜니 원수니 하는 편협한 감정을 없애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생각할수록.

오매천녀는 이 일을 위해서 반드시 강호 바깥 세상엘 나가보아도 좋겠다는 결심까지

단단히 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대문과 대림 두 어린아이들은 어리둥절해서 눈을 크게 뜨고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참지 못해서 한빙선자 연자심의 곁으로 달려들었다.

대문은 연자심을 불러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무엇이라 불러야 좋을지 몰라서

부리부리한 두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의 얼굴만 휘둘러보고 있었다.

오매천녀는 어린 계집아이가 하도 안타까워 하는꼴을 보고 인자스런 웃음을 띠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 분들을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러야 한다.

인제는 너희들도 호수바깓 세상을 구경 시켜 줄 사람이 없다고 걱정할 건 없단 말야. 

아저씨 아줌마가 둘씩이나 쌍쌍으로 생긴 셈이 됐으니........"

대문과 대림 두 어린아이들은 할머니의 이 말을 듣자.

기쁘서 어쩔줄을 모르며 왈칵 달려들어서 악중악과 연자심의 팔목에 매달렸다.

더군다나 대림이란 아이는 앙큼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말을 했다.

"아저씨! 그리고 아줌마! 아저씨 하구 아줌마는 며칠 전에 여기왔던 영탄 아저씨.

욱형 아줌마 하구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생겼을까!

한판에 찍어낸 것 같아서....... 하마터면 누이도 나도 알아보지 못할 뻔 했지 뭐야!"

악중악과 연자심은 어린아이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이때 오매천녀도 갑작스레 어린아이와 똑같이 까닭을 알 수 없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대림이란 녀석이 이런 말을 하니 말이지만 나 역시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너희들은 분명히 지난번에 왔든 두 젊은 사람과 똑 같이 생겼거든!

나도 자칫했으면 잘못 알아봤을 뻔 했다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나더니.

오매천녀는 별안간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악중악을 한참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바라보고

나서야 다시 말을 계속했다.

" 노영탄과 감욱형이라는 한 쌍의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왔을 때도 그들은 너희들 둘의

이야기를 나한테 한 일이 있었다.

노영탄이란 청년은 너희들 둘이서 이미 회양방 근거지에서 몸을 빠져 나온 줄로만 알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어떻게 그 청년이 가던 길을 되돌아서서 너희들 둘을 구출해 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너희들의 말을 듣자니.

어떤 복면의 사나이가 너희들을 금사보에서 구출해 주었다는데.......

너희들도 이 복면의 사나이가 바로 노영탄이라고 추측하겠지만 .

나 역시 바로  그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 노영탄과 감욱형 둘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인데......" 

오매천녀는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도 까닭을 알 수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 두 남녀는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로 갔을 터인데........

또 둘이서 반드시 동행을 했을 터이고 어째서  그 청년 혼자만이 너희들을 구출해 내려

나타났을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또 무엇 때문에 복면을 해서 얼굴을 가리고 너희들에게 보이려들지 않은 것인지?

그리고 그 청년이 노영탄이 아니랄 수도 없는 일이고......."

오매천녀는 여기까지 말을 계속하더니.

또 다시 잠시동안 무엇인지 묵묵히 생각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적화주에는 외부의 사람이라고는 찾아왔던 사람이 없었고.

강호 넓은 땅에서도 불과 몇 사람의 옛날 친구들이 이곳을 알고 있을 따름인데.

그 복면을 한 청년이 너희들을 보고 여기로 가라고 했다니

아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형편을 잘 아는 사람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노영탄이와 감욱형이가 가는 도중에 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청년이 감욱형이를 떼어버리고 혼자서만 심야에

금사보엘 뛰어들었을 리가 있겠느냐?"

오매천녀가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악중악이 별안간 손벽을 탁 치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선배님의 말씀이 조금도 틀려심이 없사옵니다.

복면을 한 사나이는 확실히 그 청년이라 생각되옵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청년은 반드시 옛날에 저와 옥신각신 했던

과거지사를 생각하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서 저를 대하기 싫었던 것 같사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어떻게 저희들이 또다시 회양방의 손아귀에 붙잡혔다는 것을 알아채고

구출해 주려 왔을까요?

십중팔구 . 그들은 노상에서  또 무슨 변고를 당한 것 같사옵니다.

욱형이가 또다시 회양방 놈들에게 납치되어 갔달 수도 있는 일이옵고.......

그래서 노영탄은 그 당장에 구출할 수가 없게 되자. 다시 밤중에 금사보에 나타나서 욱형이를

구해내려다가 결과에 있어서는 저희들 둘을 발견하게되어............

그래서 저희들을 구해준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악중악의 이 말 가운데도 여러가지 의아한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오매천녀와 연자심이 생각해봐도 그 말에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거의 비슷한  결론을 내리게 되자 똑같이 초조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요줌의 금사보 안에는 소위 고수라는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어서.

노영탄 혼자 몸으로 필마(匹馬)의 힘만 가지고는  도저히 탈출해 나올 수가 없이

꼼짝달싹 못하고 붙잡혀 있을 것이라고 세 사람은 단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사태는 심히 긴박하다! 그 호랑이 굴속에 떨어진 청년을 어떻게 한다?"

혼잣말을 하면서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오매천녀의 얼굴은 지극히 침통하고 심각했다.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갔다!

악중악. 너는 지금부터 일각을 지체치 말고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로 달려가서 숭양파 사람들에게

이 위급한 사태를 연락해 주도록 하여라!"

이렇게 지시하고나서.

오매천녀는 한편으로 두 어린아이들을 불렸다.

"대문아. 대림아. 너희들은 설령이를 당장에 이리로 불러 들여라!"

오매천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

백로 설령이란 놈이 그 넓은 날개를 펼치고 자못 거만스럽게 훨훨 날아들더니.

긴 다리로 우뚝 한 옆에 버티고 섰다.

오매천녀는 설령이를 옆에 세워놓고 급히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몇자를 적더니

그것을 설령의 다리에다 단단히 붙들어 매주었다.

그리고 명령 했다.

"네 이놈. 도중에서 잠시라도 장난질을 치고 돌아다니지 말고 이 길로 곧장 파양호에 있는

백로주로 날아가서  이 편지를 남해어부 선생께 똑똑히 전달해 드리고 오너라!"

백로 설령이란 놈은 똑똑히 알아들었다는 듯이 긴 주둥아리를 몇 번인지 끄덕끄덕

날개를 푸드득 하는가 하는 순간 벌써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서 기고만장한 듯 멀리 날아 가버렸다.

이 위급하고 어려운 처지에서 오매천녀는 어쩔 수 없이 남해어부를 생각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로 하여금 싫든 좋든 간에 한 번 이곳으로 나오게 해서 이 위태로운 국면을

해결해 주도록 부탁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런 긴급 조치를 취한 다음.

오매천녀는 한편으로 냉향단 여섯 알을 꺼내서  악중악과 연자심에게 주었다.

"이것을 세 알씩 빨리 먹도록 해라!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너희들의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오매천녀는 숭양파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다는 일은 하루쯤 여유를 두어도 좋다고

생각했음인지.

악중악을 이 섬에 하루 동안 머물러 몸을 쉬어 가도록 명령했다.

하루를 섬에서 쉬고 난 악중악은 인사를 차리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었다.

역시 오매천녀의 분부대로 대림대문 두 어린아이들이  노를 저어주는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시급히 호수 밖으로 나와서  곧장 미산호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악중악이 떠나간 뒤. 

오매천녀는 방안에 깊숙히 간직해 두었던 보검 한 자루를 꺼냈다.

고색이 창연한 데다가 얼룩얼룩한 무늬가 새겨저 있는 보검이었다.

오매천녀는 그 보검을 한빙선자 연자심의 손에 들려주었다.

별안간 얼굴빛이 침중해지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이 칼은 이름하여 자정(紫晶)이라고 부른다.  

왕년에 너의 어머니가 쓰던 칼이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자루의 보검 녹악과 한 쌍이 되는 물건이며

당년에 저 유명하던 일심사태(一心師太)란 분의 귀중한 유물이다.

그뒤에 우리 자매에게 한 자루씩 나눠 주신건데.

며칠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녹악이란 보검은 감욱형이에게 물려주었다.

이자정 보검은 바로 너에게 물려주는 것이 뜻도 깊은 것 같고..........

또 너는 감욱형이와 이상하게도 한판에 찍어낸 듯이 얼굴이 닮았으니.

너희들 둘이서는 합심하고 협력하여 이 어지러운 무예계에서 여자로서 기염을 토하고

기개를 높여주기 바란다.

정말 언제고 한 번 굉장하고 멋들어진 일을 해다오!

그래야만 구천에 누워 있는 너의 어머니의 영혼을 다소라도 위로해 드리게 될 게 아니냐!"

한빙선자 연자심은 경건한 마음으로 공손히 그 보검을 받아 들고 손으로 어루만저 보았다.

외로운 자기 신세를 생각하자니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오늘날까지 자신이 이다지도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한빙선자 연자심이었다.

다같이 지하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시 파란 속에서 세상을 떠난 영혼을 생각하자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눈자위가 새빨개지며 구슬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오매천녀도 이 광경을 보고 애처로움과 슬픔에 가득 찬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마고 있을 뿐.

한참 만에야 오매천녀는 떨려 나오는 음성으로 점잖게 입을 열었다.

"애! 자심아! 이제 와서 그다지 너무 슬퍼할 것은 없다.

너의 앞길은 이제부터다.

착잡했던 과거지사와 너의 기구한 신세를 똑똑히 알았으면.

더욱 용기를 내서 분발해야지.

세상 사람을 위해서 한 가지 좋은 일을 하고 .

어지러운 무예계에 올바른 기풍을 일어키기에 힘 쓰고.......

자아. 인제 그만 눈물을 거두어라..............."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리는 연자심에게 오매천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어디 . 네가 어떠한 검법을 쓸 줄 아는지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어니

지금 당장 그 보검도 시험해 볼겸 네 무술의 재간을 한 번 나에게 보여주렴!"

한빙선자 연자심은 넓은 뜰 아래로 내려서면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회양방을 따라단녔다고 하옵지만 .

애당초부터 무예다운 재간을 배우지는 못하였사옵니다.

그저 두령이라는 오빈기가 보통 무술의 기초 지식 정도를 가르처주었을 뿐이옵고.

더군다나 검술 같은 것은 말씀드릴 나위도 없사오니

이모님께서 보시고 웃지나 마시옵길............"

말을 마치자 말자 .

연자심은 몸쓰는 법을 전개하고  보검을 휘둘러 검광을 사방으로 찬란하게 퍼뜨렸다.

상당히 가관인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고  오매천녀는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연자심이 어렸을 적부터 오빈기를 따라서 무술의 재간을 연마했다고는 하지만

오빈기는 연자심에게 아무것도 특출한 재간을 가르쳐 준 것이 없었다.

단지 무술의 기초적인 공부만은 확실히 한데다가.

연자심의 천품이나 자질이 놀라운 바 있었고 심성이 아울러 총명했다.

백절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

또 하나를 배우면 셋을 깨닫는 뛰어난 터득의 힘을 가졌었기 때문에

비록 고절하고 출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부의 힘이 주력이 되는 재간에 있어서는 공고한 기초를 연마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라도 유명한 스승을 따라 지도를 받아서 터득치 못하고 망설이는 점을 깨우치고 .

선천적인 발전성을 옳은 방향으로 탁 띄워주기만 한다면 물르녹는 오묘한 경지에까지 

쉽사리 도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연자심의 칼을 쓰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난 오매천녀는 내심 여간만 감탄하지 않았다. 

한빙선자의 천품이나 자질이 확실히 뛰어난 바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고.

따라서 아직도 올바른 무술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연자심을 어떻게 해서든지

훌륭한 인재를 만들어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

한빙선자 연자심은 칼을 다 써보고 난 다음에  몸을 단정히 하고 공손히 층대 아래로 섰다.

오매천녀는 만면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좋아 ! 훌륭하다 !  너는 실로 천품이나 자질을 겸비한 아이다.

가히 여러 사람 중에서 뛰어나다 할 수 있으리라 !

그러나 애석하게도 너는 아직 고명한 스승의 지도를 받지 못해서 대기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하지만 . 이미 너는 기초적인 공부를 공고히 했으니 다시 전심전력 무술의 연마에 노력한다면.

노력에 따르는 몇 배의 성과를 거둘 수있을 것이다.

이제. 내 일평생을 배워왔고. 또 가장 배우기 어렵고 힘든 고매검(古梅劍) 이라는

검법을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니.

너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어렵고 힘든 일을 참고 이겨 나가야 한다.

경망하게 중도에서 힘들다고 집어던지거나 해서는 못쓴다 ! "

한빙선자 연자심의 기쁨은 비길 데 없었다.

빙그레 웃는 낯으로 선뜻 대답했다.

"이모님이 명령하시는 바를 제가 어찌 감히 거역하오리까.

어떠한 외로움이나 감당치 못한 어려움이 잇다 하더라도 전심전력 연마에 노력하여 

이모님의 기대하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

오매천녀는 그제야 다소곳이 머리를 수거리고 있는 연자심의 등을 어루만저주면서 

그  기특한 생각을 대견하게 여기며 심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는 꿈만 꾸고 있는 것만 같구나 ! 

이제 와서 세상에 없는 줄로만 알고 있던 너에게 내가 친히 검법을 가르쳐주게 되다니....... 

부디 훌륭한 인재가 되어다오!"

이리하여 한빙선자연자심은 마음을 터놓고 적화주에 머무르며 유쾌한 나날을 보냈다.

아침 저녘으로 내공 외공의 온갖 무술의 재간을 연마하기에 몸과 마음을 기울였으며.

특히 오매천녀의 지도에 따라 고매검 검법을 배우기에 노력했다.

한가할 때는 대림 대문 두 어린아이들과  매화나무숲 속에서 명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호수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유유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뛰어난 천품을 타고난 연자심인지라.

만난을 물리치고 정진하는 노력과 아울러 무술의 연마는 눈부시게 향상되어 갔다.

 

삭풍이 노호하고 주먹덩어리 같은 함박눈이 분분히 내리고 있었다.

악중악은 별천지 같이 풍경이 아름답고 사시장춘(四時長春) 따스한 날만이 계속되는 적화주를

떠난뒤 모진 겨울바람과  사나운 눈보라를 무릅쓰고 곧장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를 향하고

달려갔다.

오매천녀가 준 환약 냉향단을 먹고 하루를 푹 쉬고 났는지라 원기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홍택호를 떠나기가 무섭게 즉시로  몸을 가볍게 날린 그는 독특한 재간을 부려서 먼길을

단숨에 달리듯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엔 도중에서 봉변을 당하고 혼이 난  경험이 있는 지라.

이번에는 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큰길로 활보해 갈 수는 없었다.

회양방 놈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선 길을 돌아서 뒷길을 찾아가야만 했다.

자연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

악중악은 이틀 동안이나 꾸준히 쉬지 않고 달려서 간신히 서주에 이르렀다.

서주는 강소(江蘇). 산동(山東). 하남(河南) 세 성의 교통요로가  되는 지점으로서

상업이 번창하고 인구가 밀집해 있는 번화한 고장이었다.

한나절이 기울 무렵 악중악은 서주 성안의 큰거리로 들어섰다.

오가는 행인들의 혼잡한 물결 속에 휩쓸리면서 뚜벅뚜벅 태연히 길을 걸어가며

일변 적당한 여관을 한군데 찾아보느라고  정신을 팔고 있었다.

한참만에 한길로 들어서서 한군데 조용하고 따로 떨어져 있는 손님도 적고 조출해 뵈는

여인숙 한 집을 찾아 들었다.

여인숙 대문을 향하고 곧장 걸어 들어가서 막 안으로 한 발자욱을 들어서려고 했을 때.

난데없이 등들미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악중악은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며 섰다.

누가 자기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퍼뜩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  이곳에서 공교롭게 나를 부르는 사람이 ? "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

자세히 들어 보니

그 음성은 분명히 자기를 부르고 있는 음성임에 틀림 없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몇 해 동안을 두고 듣지 못한 음성이면서도 그것은 역시 심히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선뜻 몸을 돌이키고 바라다 보았다.

과연 .

그것은 바로 친남매 같이 자라나던 감욱형이었다.

오랫동안 생사를 모르고 초조하게 소식을 알고자 하던 감욱형을

이렇게 공교롭게 또한 이렇게 쉽사리 만날 수 있게 되다니.

감욱형은 한필의 든든하게 생긴 백마를 타고 악중악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얽굴과 얼굴이 마주쳤을 때.

그 기쁨.

그 놀라움이란 이루 형언하기 어려웠다.

감욱형은 악중악의 얼굴 가까이 다가서자말자 말에서 내릴 겨를도 없이

숨이 턱에 닿는 음성으로 급히 물었다.

"오빠! 오빠!  오빠는 어째서 이런 곳에 혼자서 와 계신가요?

오빠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

그러나  그것은 악중악 역시 똑같이 놀랍고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생각되는 일이었다.

알떨결에 선뜻 대답할 말이 없어 똑같은 말을 반문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너는 대체 어찌된 일이냐?  어째서 너 혼자 이곳에 와 있는 거냐?"

두 사람은 똑같이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급함을 참을 길이 없어 쌍방이 똑같이 묻기는 했으나 .

또한 여전히 어찌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허어! 그것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허허허........" 

"아이참! 공교롭기도 ..... 세상에 대체 이런 일이?   호호호........."

둘이서는 똑같이 하도 기가 막혀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악중악은 선뜻 앞으로 나서서 말 위에서 내려오는 감욱형을 받아주고

손을 이끌다시피 나란히 여인숙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체 이게 얼마 만이냐?  어찌된 셈이냐 ?"

악중악은 똑같은 말을 또 한 번 되풀이했다.

" 가만히 있어요!  우선!  우선 방이나 잡아 놓고서....."

감욱형도 어서 빨리 이야기하고 . 또 물어보고 싶은 조바심을 꾹 참으면서 여인숙으로

따라 들어갔다.

둘이서는 시급히 방을 잡아 자리 잡고 앉은 다음 .

그제야 마음놓고. 

피차간에 지금까지 겪어오고 당해 온 경과를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어머나 ! 어쩌면 ! 저런 ! 세상에 그런 일이 ?"

악중악이 그간 지내온 경과와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동안 감욱형은

놀라운 감탄사만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욱형은 악중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더니.

그제야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가라앉히면서 긴장되고 또 한편 심히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지금까지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던 가지가지 사정과 변고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오빠 !  난 정말 꿈만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오빠가 벽송관에서 몰래 혼자 빠져나온 뒤에 천리 길이나 되는 먼 회양지방까지 쫓아오셔서

마침내 이런 변고가 생길 줄이야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겠으요?"

"그래서 ?  그래 . 내가  쫓아간 것은 간 것이고. 발리  그 뒤 이야기를 듣자꾸나 !"

"만일에 어떤 사람이 오빠를 도와 드리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오빠는 회양방 놈들에게  감금 당해서 금사보 그 호랑이 굴 속같은 데 갇혀

있었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몸서리쳐지도록 위험한 일이었나?

우리편에서는 대표 아저씨는 물론 . 그밖에 여러 아저씨들이 이미 회양방의 약속에 응하기로

태도를 결정해 버렸으며. 내가  천암사로 가서 대표 아저씨에게 오빠가 납치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대표 아저씨께선 놀라시고 또 노하시고..........

아저씨께서는 오빠가 몰래 산에서 빠져나가신 것을 알게 되자.

낙양으로 나를 찾아나간 줄로만 알고 계셨거든요........

또 나도 오빠가 곧 뒤쫓아서 올 줄로만 생각했고요.......

그랬던 것이 .

뜻밖에도 낙이산 아저씨와 내가 큰봉변을 당하게 됐고.........

그래도 운수가 좋아서 오빠가 달려와서 낙이산 아저씨를 미산호 천암사로 구출해 가시게 됐죠!"

"그야 나두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서 그다음엔?"

"낭월 아저씨께서는 오빠가 몰래 산에서 빠져 나오섰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계셨거던요.

그래 검정매 편에 편지 연락을 해서 대표 아저씨께 알려드리게 됐고 .

이것을 알게 되신 대표 아저씨께서는 몸소 산을 내려오신 다음 천암사로 건너가셔서

일변 매에 전서를 시켜서 문하의 모든 제자들을 소집하여 회양방과 대결하도록 하시고.

또 일변으로는 노인께서 친히 오빠를 찾으려고 나서신 거예요!"

"그래서?"

"여기까지는 여태까지의 경과에 지나지 못하지만 .......

오빠는 앞으로 큰 걱정이에요! 

큰일 났으요!"

"무엇이 ? 큰일이라니 ?"

" 오빠는 이미 우리 숭양파의 중대한 교규를 범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돼요!

스승을 속이고 행동을 하셨서니 극형에 처할 게 아니겠어요 ?

오빠가 사고를 일어킨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니

정상이 딱하게 됐다고 그 점을 양해하시고 대표 아저씨께서

그 밖의 여러 아저씨들에게 간곡히 권고를 하셨기 망정이지........"

악중악은 감욱형의 말을 듣다가 중간에 갑자기 표정이 몹시 심각해젔다.

"뭐라꼬? 그래서 나를 어떻게 한다든 ?" 

"뻔하지 뭐예요 ! 대표 아저씨께서 기를 쓰고 말리셨기 때문에.

그나마 문호에서 축출 당하거나 또는 극형에 처하지는 않게 된 거예요!"

"뭐 ?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놈이란 말인가?"

악중악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로 기막힌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 오빠가 숭양파의 영도자의 위치를 계승하기로 결정되었던 일은 이미 취소되었으니......

이제는 숭양비급의 연구에는 참여할 자격도 없게 됐고.

거기다 또 오빠에게 벌을 내려서 벽송관에 처박아 두고 앞으로 십 년 동안이나

그대로 무술이나 연마하게 한다니 ......

이 일을 어쩌면 좋다지요?"

"뭐라꼬? 그게 정말이냐!"

"그럼요. 정말 안타까워서 죽겠으요.

본래는 대표 아저씨께서 날더러 미산호 천암사에 남아 있으면서 낙이산 아저씨의 시중이나 들고

있으라고 하시는 것을. 오빠 소식을 몰라 얼마나 궁금하구 조바심이 나던지........

그래서 낙이산 아저씨에게 이런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

가까스로 살며시 이 길을 빠져나온 거예요.

적화주까지 다시 한 번 들려서 소식이나 알아보려고요.

난. 노영탄이란 분과 작별할 때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도 한 일이 있고 해서........"

감욱형은 단숨에 거침없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아이. 참! 그......."

하면서 음성이 높아졌다.

"그......... 그 뭐라구 했나?

참 한빙선자니.

연자심이니 하는 아가씨는 어째서 함께오지 않은 건가요?

또 노영탄이란 그분은 지금 어디계시고요 ?"

감욱형이 말을 마치자.

악중악은 그저 명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얼이 빠져버린 사람같이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감욱형은 점점 초조해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 어서 말씀 좀 하세요! 왜 바보처럼 . 정신나간 사람같이 그렇게 잠자코 있기만 해요?"

그러나 이런 말이 악중악의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어리둥절 정신을 잃고 휘둥그레졌던 두 눈이 다시 정신을 돌린 듯.

매서운 광체를 발사하며 몇 번인지 깜박거리기는 했으나 어지러워진 머릿속은 마치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가 산에서 아무도 몰래 내려왔다는. 이 단순한 한 가지 사실이 큰 죄과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이것을 지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생각했고 .

또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단지 젊은 혈기에.

친한 사람에 대한 정리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떤 한 개 정파의 교조라는 것은 이다지도 사람을 목석같이 여기고 속박하기만 해야 되는 것인가?

친한 사람이 사지에 빠졌다는 데도 그 소식조차 알아봐서는 안 되는 건가?

"그것은 산송장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한 개 조약돌과 무엇이 다르랴!"

악중악은 먼 하늘을 바보같이 바라다볼 뿐 말이 없었다.

만일에 무술이란 것이 이다지도 사람의 감정이나 사상에 강제적인 제한을 가해야만 되는 것이라면.

설사 천하무적의 무예의 길을 닦아서 무예계의 최고 권위자가 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무슨 쓸데 있는 일이랴!

'그것은 산송장이다 !  산송장 ....."

몇 번이고 높은 창공을 향하여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누르면서.

악중악은 또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예계에서 떠드는 종파니 문호니 하는 것이 편협하기 이를 데 없고.

소위 교조라는 것도 완고하고 무지하기만 하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에 오매천녀에게서 들은 말이 이제 와서는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이 늙은 할머니의 말과 같이. 무예계에서는 서로를 물고뜯고. 권리를 쟁탈하고 .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처참한 싸움을 해야 하고 .

쫓고 쫏기는 살육을 다반사처럼 알고 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잔혹한 일이냐!

악중악은 이런 생각도 해봤다.

'나는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온갖 고생을 무렵쓰고 무술을 연마했다.

그 결과란 단지 어떤 한 개 종파를 위해서 힘이 되었다는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냐.

설사 장래에 영도자가 되고 대표자가 되어서 무예계에서 제 일인자라는 인물이 된다 하더라도

그역시 숭양파라는 한 개 종파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존경이나 칭찬을 받게 하는 이외에.

그것이 개인에게 있어서야 무슨 소용이된다는 거냐?'

가지가지 복잡한 문제가 그의 머릿속에 첩첩이 쌓여서 그는 언제까지고 우두커니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만일에 감욱형이가  옆에 서서 깨우쳐주지 않았다면.

악중악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자기의 복잡한 생각 속에서 그대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감욱형은 이일 저일 샅샅이 말해주기는 했으나 대답 없이 얼빠진 사람같이 서 있기만 하는

악중악을 보자.

그가 겁을 집어먹고어쩔줄 모르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감욱형은 감욱형대로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다못해 또 다시 급히 물었다.

" 오빠 ! 왜 그래요 !  하지만 그다지 겁낼 것은 없어요.

이번에 회양방과의 일이나 끝나기를 기다려서.

오빠가 몸소 대표 아저씨에게 후회와 개준의 뜻을 표시하시고......

또 다른 여러 아저씨들에게 잘 말씀드리면 대표 아저씨께서도

꼭 그렇게 벌을 내리시진 못하실 거예요..........

그런데 오빠! 대체 오빠는 당장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죠!"

악중악은 이 말을 듣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고 있더니

간신히 입을 열어 침통한 어조로 대답했다.

"욱형아! 나는 추호라도 겁을 내는 것은 아니다 .

나에게 어떠한 처벌이 내리든지 그것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이!  그건......너는 모른다!"

감욱형은 새삼스럽게 유심히 악중악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확실히 평소의 악중악이 아니었다.

그 태도며 표정이 괴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감욱형은 점점 더 조급해 질 수밖에.

감욱형과 악중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라난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다.

마치 손과 발이 따로 떨어질 수 없듯이 감욱형은 악중악에 대한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실 작정이신가요?

그리고 노영탄이란 분은 지금 어디 계시고요?

어서 말이나 좀 시원하게 해 주세요!"

감욱형은 또다시 안타깝게 대들며 힐문이나 하듯 물었다.

악중악은 본래가 고집이 세고 성미가 까다로운 데다가

언제나 오만 불손하게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

원만한 사람을 대수롭게 여기는 법이었다.

그런 위인이 산에서 내려온 뒤 벌써 두 차례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봉변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번번히 남에게 구함을 받지 않았던들 어떤지경에  이르렀을지 상상하기도 무서운

경험을 했다.

비록 자기를 이런 위기와 사지에서 구출해 준 사람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

그 청년이 누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몇 해 젼에 저 숭양표국 뒤뜰에서 자기가 창피와 모욕을 주어 괴롭게 굴었던

노영탄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악중악의 마음속에 이점에 대한 감격과 존경의 심정이 물론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

한편으로는 지워버릴 수 없는 한줄기 경멸과 불복의 의식이 서리어 있었다.

심지어 무엇이라고 꼬집어낼 수 없는 일종의 질투심까지 섞여 있었다.

악중악은 자기를 따르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대단치도 않던 사람에게 구함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지극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고 몹시 자존심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뜻밖에도 감욱형을 만나고보니 .

노영탄과 감욱형의 사이를 눈치첼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감욱형이 노영탄에 대해서 조급하고  절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입을 벌리기만 하면 말끝마다 '그 노영탄이라는 분'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연방 되풀이 하고 있는

점은 악중악으로 하여금 일종의 굴욕적인 심정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악중악은 한빙선자 연자심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사귀어 보고 고난을 같이 해오는 동안에

한편으로는 감욱형에게 대해서는 무슨 색다르게 이상한 감정을 품어 본 일이 없었고 .

그저 단순히 어려서부터 손과 발같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로 자라났다는 오누이 같은 정을

느끼는데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웬일인지 이제 와서 형언키도 어려운 이상야릇한 실의(失意)의 심정으로

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악중악의 두 눈에는 갑자기 싸늘한 광체가 떠돌았다.

그리고는 매서운 눈초리로 감욱형의 아래 위를 새삼스럽게 유심히 훓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감욱형은 그의 이런착잡한 심경을 알 리 없었다.

참다못해 또 한 번 똑같은 말을 초조하게 되풀이 했다.

"오빠! 어서 말해 줘요! 그 노영탄이란 분이 지금 어떻게 됐으며. 어디로 갔는지?

답답해 죽겠다니까요........"

그제서야 악중악은 싸늘하고 매정스러운 음성으로 쏴붙이듯이 몇 마디를 탁 던졌다.

" 나는 아직 어디로 가야겠다는 작정도 없다.

또 네가 말끝마다 그분! 그분! 하고 있는 그 청년은. 나에게는 그분도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가 어디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냐?"

감욱형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있을까?'

다음순간. 감욱형의 두 눈은 휘둥그레젔고.

그것이  또다시 쓰디쓴 미소로 변해서 입가에 가볍게 떠올랐다.

그 한마디로써 악중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미소를 띠었던 감욱형의 얼굴은 이내 침통한 듯 그리고 심히 섭섭하다는 듯.

얌전하게 가라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 오빠!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세요!

남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걸고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위태로운 사지에서

건져내주었는데..........

오빠는 어쩌면 그렇게 매정한 말씀을 하세요?

그게우리들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일까요?"

칼끝으로 찌르는 듯.

이렇게 앙칼지게 말하는 감욱형의 얼굴은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러나 감욱형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무슨 말을 더 계속하려고 했을때.

난데없이 안으로 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와 두 사람은

귀를 기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이 여인숙 안에서 떠드는 소리였다.

"여보시오 ! 이 여인숙은 정말 괴상한 집이 아니냔 말이요?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들어오는 손님을 맞아들일 줄은 모르고.

도리어 문 밖으로 내쫓다니.......

여인숙을 해 먹으면서 이건 무슨 배짱이냔 말야!"

이 말소리를 듣고 난 악중악과 감욱형은

갑자스레 무엇으로 가슴속을  꼭 찌리는 것같이 깜짝 놀랐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둘이서 똑같이 서로 얼굴만 처다보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밖으로 나왔다.

둘이서 방을 나와 손님을 접대해 들이는 넓은 마당으로 나왔을 때.

그 곳에서는 여러 손님들과 심부름꾼들이

어떤 늙은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옥신각신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늙은이는 그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

입에서 침이 튀도록 함부로 떠들고 지껄이고 야단법석이었다.

둘이서 자세히 살펴보자니.

이 늙은이야말로  숭양구우(崇陽九友) 중의 한 사람인 독응구붕(禿膺區鵬)이라는 명물영감이었다.

악중악과 감욱형은 조금 전에 방안에 잇을 때에도.

이 늙은이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 말투가 몹시 익숙한 점이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둘이서  누가 먼저 나온 지도 모르게 같이 나와 살펴보니

그것은 과연 그들이 알고 있는 영감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감욱형의 말에 의하면.

숭양파의 대표자인 철장단신 탁창가는 벌써 두 대를 거쳐 내려오는 문하의 모든 제자들을

인솔하고 회양방과의 이월 초이튼날 대결에 응하기 위해서 길을 떠났을 터인데.

그리고 독응구붕이라는 영감도 분명히 그들을 따라갔을 사람인데 어째서 지금 서주에 와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이 늙은 영감의 몸차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

악중악과 감욱형은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본래. 이 독응구붕이란 늙은이는 아주 괴상한 얼굴에다가 .

머리통이 마치 참외같이 멋없이 둥글둥글한데.

그 꼭대기는 풀이라곤 하나도 돋아나지 않은 뻔뻔한 잔디밭같이 훤하고 번질번질하고

번쩍번쩍 해서 파리가 앉으려다가도 미끄러질 지경으로 머리카락이 한 오라기도 없었다.

이 독응구붕이라는 늙은이는 얼굴 빛깔까지 괴상망칙 했다.

개기름이 번지르르 흐르는 얼굴이 거무튀튀한 진흙 빛깔인데.

그 시커먼 얼굴 속에는 시뻘건 빛이 얼룩들룩 발사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늘로 꼭 찌른 것 같기도 하고 가죽이 모자라서 간신히 뚫린 것 같기도 한

가느다란 두눈과 주독이 올라서 시뻘겋고 큼직한 주먹코 때문이었다.

그기다 또 여덟팔자로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수염이란 것도 있으나 마나한 몇 가닥이

희미하게 돋아나서 마치 쥐수염 같아 보였다.

이런 얼굴에다 양편에 달린 두 귀까지 바람이라도 일어킬 것 같이 큼직하게 너풀거리고 있으니.

한 번 보는 사람치고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악중악과 감욱형은 옛날부터 이 영감이 이런 괴상한 모습을 오랫동안 익숙히 봐온

까닭으로 이날이라서 특별히 이상하게 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 날은 영감의 옷차림이나 옷 입은 꼬락서니가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독응구붕이라는 늙은이는 평소에는 이렇게 괴상망칙한 얼굴에 나마 의복이나 몸차림만은.

단정하고 깨끗했다.

그런 사람이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어나 .

이날 이 자리에서는 완전히 평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지독하게 추운 날씨가 비록 낮이라고 하지만 사람까지 얼어붙게 만들 것 같은데 

이 늙은이는 여름철에나 입는 회색빛 홑적삼을 입고 있으며 발에도 다 떨어진

헌짚신을 신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보따리 하나 짐짝 한 개도 없이 빈털터리로 두 팔을 호기있게 휘저으며

여인숙 안으로 대들었으니.

보는 사람이야 이 늙은이를 정신병자가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악중악과 감욱형 둘이서 여인숙 접객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영감도 떠들 만큼 떠들었는지.

찍소리도 없이 잠잠했다.

이때 젊은 심부름꾼 녀석 하나가. 썩 앞으로 나서더니

한 손으로는 허리를 떡 버티고 한 손으로는 늙은 영감의 어깨를 탁탁 치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 아니. 이게 어디서 빌어먹던 늙은 개야?

대체 뭘 해 먹는 위인이냔 말야?

야. 그래 요 꼬락서니를 해 가지구두 남의 여인숙엘 들겠다는 거야?"

이렇게 혼이 나는 판인데도 독응구붕이란 늙은이는 흘끗 곁눈질을 해서 악중악과 감욱형을

처다 봤다.

그 순간 늙은이의 얼굴에는 무엇에 찔린 듯이 놀라 자빠지는 황당한 표정이 명백히 떠올랐다.

그러나 금방 얼굴빛이 다시 변하더니.

영감은 껄껄껄껄.......

바보같은 웃음을 한바탕 통쾌하게 웃어젖히더니.

그 젊은 심부름꾼 녀석에게 두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호통을 첬다.

"네. 이 고약한 놈 같으니.......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네 녀석이 상관할 개 뭐냐?"

영감은 말을 하다 말고 퉤!퉤! 큰 소리를 내고 침을 뱉었다. 

" 그래. 네 녀석은 영감마님 같은 점잖게 생긴 사람만 모셔들인다는 거냐?

여관에 드는 사람이 어떤 옷차림을 했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다?

영감마님 같은 사람이라면 네깐 녀석은 상대도 하지 않을 거다!"

늙은이는 말을 마치더니 또 한 번 퉤! 하고 큰소리를 내어  땅위에 침을 밷었다.

몰려든 여인숙의 손님들은 까르르하고 박장대소를 금지 못했다.

여러 손님들의 웃음 소리가 가라앉자 주위가 갑자기 떠들썩해지고 공기가 자못 험악해졌다.

"이런! 빌어먹을 늙은 것이 ........"

"어디서 굴러 들어온 개뼈다귀 같은 것이 ........"

"저 꼴에 그래도  큰 소리만 탕탕 치고..........."

"그대로 몰아내라 !"

"문 밖으로 내쫓아 버려라!"

젊은 심부름꾼 녀석이 화를 발끈 내면서 한 마디를 던지자.

다른 여러 심부름꾼 녀석들도 노기가 충천하다는 듯 .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이면서 늙은 영감을 둘러싸버렸다.

웃옷자락을 걷어 젖히고 소맷자락을 치올리고 수많은 주먹들이 불끈불끈.

이늙은이를 때려 내쫓자고 덤벼드는 판이었다.

그런데도 독응구붕이라는 늙은 영감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겁을 집어먹기는 커녕.

그 괴상망측한 얼굴이 더 한층 흥분과 분노에 타오른다는 듯.

주독에 시뻘겋게 된 두 주먹코 구멍을 벌름벌름 하면서 지지 않겠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야. 이놈들 봐라! 천하에 배워먹지 못한 후례자식들!

아 그래 어디. 젊은 놈들이 늙은 사람을 까닭 없이 함부로 치는 법이 있단 말이냐? 

여관에 들겠다는 사람을 때려서 내쫓겠다고 ?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이........."

"무엇이 어쩌고 어째 ?"

"이런 거지 깍정이 꼬락서니를 해 가지고  ..........

비렁뱅이 같은 건. 우리 여관에 들지 않아도 좋단 말야 ......."

" 헤헤헤. 헤헤. 저 꼴에 그래도 나이 값을 따지겠다고 !"

젊은 심부름꾼 녀석들이 우르르르 몰려들며 주먹다짐을 하려 덤벼드는 판이었다.

악중악은 그 이상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여! 잠깐만.......물러들 나시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왜 이다지 야단법석들이시오!"

악중악과 감욱형은 그제야 무슨 까닭으로 옥신각신하게 되었는지를 대강 알아차리게 되었다.

여인숙의 심부름꾼들이 독응구붕 영감을 너무 업신여기고 여인숙에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말다툼의 시초가 벌어진 것이 틀림 없었다.

악중악은 여인숙의 심부름꾼 녀석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아무리 의복이 남루하다 해도 이 여인숙을 찾아오신 분이면 손님이 틀림없으실 것이거늘.

어찌 이 무례한 욕지거리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

썩 물러들 가지 못할까!"

악중악은 여러 사람들의 울타리를 헤치고 가운데로 뛰어들어 독응구붕 영감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저씨! 이게 웬일이십니까. 어떻게 여길 오셨습니까?

우선 안으로 들어가셔서 쉬시기나 하시고 ........"

늙은 영감은 이 광경을 보자.

응당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

괴상한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띠면서 의기양양하게 사방을 휘둘러보며 무엇이라

대답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 노인께서 다소 실언을 하셨다하드라도 이 집을 찾아오신 손님이시니

공손히 모셔들여야지........

이거나 받아 나눠 쓰도록 하고 빨리 이 영감께 방 한 간을 치워 드리도록 해!"

악중악은 은전 한 움큼을 심부름꾼 녀석들에게 집어주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이런 광경을 보자 

웃음거리로만 알고 구경하던 여인숙 안의 수많은 손님들은 깜짝 놀랐다.

한 쌍의 준수하고 출중하게생긴 남녀가 이렇게 거지 깍정이같은 초라한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늙은 영감에게 이다지도 공손하게 절을 하고 내달으리라고는 천만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랴.

"아저씨" 라고까지 부러니 여러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 한층 컸다.

그러나 강호 넓은 천지에는 언제나 기기묘묘하고 괴상망측한 일이 곧잘 일어나는지라

이 넓은 땅 여기저기를 오가는 사람들은 항시 남의 쓸데없는 일에 휩쓸려들어서 

화를 입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과연. 악중악이 한 번 그럴듯하게 호통을 치는 바람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어느틈에 뿔뿔이 흐트러져서 각각 제 처소로 들어박혀 버리고 말았다.

젊은 심부름꾼 녀석은 처음에는 발끈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이늙은 비렁뱅이 같은

영감에게 손지검을 해서 때려 내쫓을 생각을 하다가.

뜻밖에도 악주악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정세를 살펴 보자니

난데없이 뛰어든 청년은 그 생긴 품이나 위엄 있어 보이는 태도가 이만 저만한 귀공자가

아닌가 싶었다.

섣불리 그 이상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고 꾹 참아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악중악이 둥글둥글 구슬려서 말을 해주고. 또 은전까지 두둑하게 집어주었으니

젊은 녀석들도 그 이상 더 할말이 없게 됐다.

한 놈 한 놈 다 같이 무슨 일이 바쁘다는 듯이 . 혹은 까닭 모를 웃음을 씽긋 웃어가면서 .

악중악의 명령대로 방을 치우러 안으로 몰려 들어가 버렸다.

이편에서는 감욱형이 벌써 독응구붕 영감을 모시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자리잡고 앉아있는 독응구붕 영감에게 급히 허리를 굽히고 절을 했더니.

영감은 이편에서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긴 한숨을 땅이 꺼질 듯이

쉬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허어. 그겻 참! 너희들 철부지들은 물인지 불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여기서!"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저씨!"

악중악이 답답해서 선뜻 이렇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라니? 그것 참. 아무리 철부지 아이들이라고  해도.......

지금 우리 숭양파는 일찍이 당해본 일이 없는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파의 대표는 낙이산 아우와 욱형이가 봉변을 당하고 상처를 입고 납치를 당하게 된

까닭으로 몸소 산에서 내려와서 이곳으로 달려오게 된 것이며.

동시에 중악이 너의 뒤를 급히 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삼일 전에 감욱형이 천암사에 와서 납치되었던 일과 구함을 받게 된

경과를 보고했기 때문에 대표는 그제야 네가 또다시 회양방에게 납치되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회양방과 이월 초이튿날 홍택호 호반에서 결투를 해야 된다는

자세한 연락을 받게 되었다. 

며칠 되지 않는 동안에 잇달아 여러가지 복잡한 사건이 발생했으니

우리 대표의 초조한 심저은 가히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

중악이. 너를 위험한 지경에서 구출해 내기 위해서 대표는 몸소 문하의 제자를 인솔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놈들과 싸우기로 약속하고 있는 판인데.........."

" ..... 천만뜻밖에도. 너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자약하게 유유히 이렇게 놀고 다니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이냐?"

"하아!  그렇게 된 일이군요!

그러나 저는 또 저대로 피치 못할 사정과 까닭이 있었사옵니다."

악중악은 그제야 감욱형을 구출해 내려고 금사보 안으로 뛰어들었던 일.

한빙선자 연자심이란 여자를 잘못 알고 구출해 낸 일.

두 번이나 복면한 청년에게 구함을 받는 일 등 자세한 경과와 형편을 독응구붕 영감에게

설명해 들려주었다.

구봉 영감은 악중악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더니

웬일인지 얼굴빛이 몹시 침통해젔다.

탄식하여 마지못하여 천천히 하는 말이 있었다.

"중악아 !  그건 큰일났구나! 그러면 너는 우리파의 중대한 교구를 범했다는 거지?

방금 네가 말한 그 여자 . 위험한 지경에서 같이 구출을 받아다는 그 여자가 거러면 분명히

회양방의 옛날방주개세천왕의 딸이란 말이냐?"

'무엇때문에 이 영감은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질문하는 것일까?'

'거기서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지않느냐?'

악중악은 이런 의심스런 생각을 하면서도. 영감의 묻는 말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수밖에 없었다.

"흐음?"

영감은 단지 한 마디. 한참 동안이나 다른 말을 못하고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역시 악중악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그 까닭을 말했다.

" 그 계집아이와 여태까지 지내온 일에 대해서는 일체 우리 대표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네가 그 계집아이와 함께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가 구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우리 대표에게 말하지 말거라!

중악아 너는 그 계집아이의 내력을 똑바로 아느냐?

그애 아버지와의 복잡한관계를 알고 있느냐?"

영감의 말이 이렇게 나오자 .

악중악도 문득 치밀어 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도리어 반문을 해 보고 싶은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빙선자 연자심과 숭양파와는 무슨 불구대천지 원한이 그렇게 깊이 서리어 있습니까?

제 자신의 마음속은 광명정대 합니다.

한빙선자 연자심 또한 그렇게 순결하고 아리따운 여성인데 어째서 우리들의 윗사람들의 대에

저지른 은혜니 원수니하는 것을 그 아랫 대인 티 없는 우리들 아들딸의 신상에다 유전시켜

놓으려는 것입니까?"

이 미묘한 순간에.

악중악은 퍼뜩! 생각을 다른데로 돌렸다.

감욱형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에 이런 말을 무턱대고 끄집어 냈다가는 감욱형이 반드시 자기와 어떤 특수한 관계라도

있는 것 같이 오해할 것이 아닌가.

악중악은 천연스럽게 아무것도 모르는 체 시치미를 딱 떼고서 도리어 독응구붕 영감에게 반문했다.

"그 여자와 무슨 복잡한 관계가 있는지 . 그점은 잘 모릅니다만 .

그러나 그 여자와 여태까지 지내온 일을 우리파 대표께서 아신다면 거기에는 또 무슨 중대한

문제가 있는 건가요?"

독응구붕 영감은 악중악의 말을 듣더니

"흥!"

하고 그 주독으로 시뻘건 주먹코 구멍을 벌름벌름 하면서 기가 막힌다는 듯 냉소를 했다.

"예! 너는 정말 절부지다! 회양방과 숭양파의 은혜와 원수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너는 모른다.

만약에 그 계집아이가 우리 대표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도저히 살아날 길이 없을 뿐더러.

우리 대표의 저 무서운 천강철장의 손아귀 속에서 당장에 거꾸러지고 말 것이다."

악중악은 이 말을 듣자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바윗돌같이 거대하고 무거운 분노와 불만의 심정이 가슴속으로 뭉클하고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악중악은 모든 부노와 원한과 슬픔을 꾹 누르면서 또 한번 독응구붕 영감에게 물어봤다.

"그건 무슨 까닭인가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그 아저씨가 무예계에 있었서 무슨 용서하기 어러운 죄라도 범했사옵니까?"

독응구붕 영감은 한동안 악중악과 감욱형을 이쪽 저쪽으로 두리번 거리며 처다보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대표 형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있다.

선배 스승께서 남기고 간 유명에 의하면 . 무릇 숭양파의 제자 가운데서 스승을 배반하거나

교구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는 즉각에 무술의 재간을 박탈해서 문호 밖으로 내쫓아버릴 것이요.

중죄를 범한 자는 당장에 사형.

만일에 후손이 있는 자라면 그것들까지 함께 없애버리라고 하셨다.

두말할 것 없이 숭양파 제자 가운데서 이런 놈이 나타났을 때에는

즉각에 없애버려야 할 것이며 이것을 은익 하거나 알고도 신속히 보고하지 않는 놈은

 또한 그와 같은 죄를 저지런자로 간주한다고.......

중악아! 나는 네가 벌을받게될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것 때문에 이런 사실을 누설하지 말라는 거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네 손으로 그 계집아이를 죽여 없애고 나서 우리 대표에게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고 일후의 관계를 깨끗이 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막히는 말이었다.

감욱형은 옆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독응구붕 영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악중악의 얼굴빛을 살며시 살펴보았다.

악중악의 얼굴에는 창백한 빛이 서릿발처럼 싸늘하게 뻗쳐 있었다.

슬픔과 분노가 한테 엉클어진 심각한 표정이었다.

' 어떻게 날더러 아무 죄도 없는 젊은 여자를 죽여버리라는 거냐?'

그의 매서운 눈초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감욱형의 생각에는 악중악이 그 고집이 센 성미에 참고 있을 것만 같지 않았다.

악중악은 한빙선자 연자심을 위하는 .

초조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마음에서.

반드시 격렬한 언사로서 독응구붕 영감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할 것만 같이 생각했다. 

그래서 감욱형은 얼른 두 사람의 말을 가로채 버렸다.

" 아저씨 ! 아저씨께선 우리 대표님과 함께 홍택호로 가신 게 아니셨나요?

그런데 어쩨서 지금 이곳에 와 계시온지?"

 

 

다음 숭양구우(崇陽九友)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