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8장 추운언월 (追雲偃月)

오늘의 쉼터 2013. 12. 7. 22:09

정협지(情俠誌)

제 8장 추운언월 (追雲偃月)

 

회양방에 불어닥친 혼란

 

이야기는 회양방의 진지 금사보로 돌아간다.

난공불락을자랑하는 철통같은 보루 금사보는 하루밤 사이에

두 차례나 외부 사람의 침범을 당하고말았다.

난데없이 불을 질러놓는 놈이있는가 하면.

감금해 둔 사람을귀신같이 구출해 데리고 달아나는 놈이 있어고 .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분난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놀란 말 처름 날뒤고.

말은 말대로 미친 듯이 울부짖고 길길이 날뒤었다.

그른데도 침입자는 종적도찿아볼 수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회양방의 방주인 금모사왕 오빈기(伍嬪奇)가 극도의 분노와 수치를 참지 못하고

그야말로 성난 사자같이 으르렁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아니라.

그가특별히 초청한 무예계의 세 고수 동해기경객(東海騎鯨客).운몽노인(雲夢老人).

그리고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군다나 한때 방주요

선배였던 개세천왕(蓋世天王) 연약파의 딸 한빙선자 연자심이 천만뜻밖에도 외부의 인물과

결착하고 도주해 버렸다는 사실은. 금모사왕으로 하여금 전신을 부들부들 떨게했다.

한쪽 눈이 멀고 한쪽 팔이 없는 이 무서운 괴물은 몇번이나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홍의화상이 납치해 온 숭양파의 제자 감욱형까지 누군가에게 구출되어 도망처버렸다.

용이 버티고 앉아 있는 물속이나. 범이 잠자고 있는굴속처럼 그 누구도 침범 할 수 없다고

자랑하던 금사보가 일시에 허명무실 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으며 . 

무예계를 휩쓸던 회양방의 무시무시한 위명도 땅에 떨어져버렸다.

금모사왕의 하나 밖에 없는 눈동자가 불을 뿜을 듯이 무섭게 두리번 거렸다.

초청한 세 사람의 고수들을 한자리로 불러들였다.

선배고 부하고그런 것은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금사보의 대청을 뒤헌들었다.

"이게 무슨 창피한꼴이요! 이야말로 목을 따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노릇이지!

이런 망신.이런 분할 때가 또 어디 있겠소"

"........."

그 누구도 감히 무엇이라 대답할 수도 없을 만큼 긴장과 흥분이 감도는 험악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쥐잡듯이 금사보안을 샅샅히 뒤젔다.

그러나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단지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보루밖. 서쪽 강변에서 감욱형을 구출해 데리고 도주하는

청년 하나를 발견하고. 그와더불어 격전을 거덥 했지만 동행했던 십 여명 부하가

모조리 몰살 당했고. 우람부루 자신마저도 부상을 당한체 돌아왔을 뿐이다.

왼편 팔에입은 상처를 움켜쥐고서 금사보로 돌아 온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꼬락서니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을 똑바로 떠고 금모사왕을 처다 볼 수도 없을 지경이였다.

비범한 무술과 잔인한 독기까지 겸해서. 당대의 무예계에 용명을 날리고 있다는

이 대선배 우람부루의 위신이 금모사왕 이상으로 형편없이 땅에 떨어져 짖발혀 버린셈이다.

"쯔쯔쯔쯔! 그건 또 무슨꼴이요?

대선배께서 그까짓 젊은 애송이 녀석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시고 ..........

원 십여명을 죽이다니? 천하에 방자한 놈이.........

우리방으로서는 꿈에도 생각못할 일이 연거푸 일어나니............

도무지 창피한 꼴이란 이루......."

이를갈고. 두 주먹을 불끈쥐고.전신을 부듣부들떨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르나 이런 극도의 분노 보다도 더 큰놀라움이 금모사왕의 가슴속 깊은 곳을 찔렀다.

" 흐음? 천하에 그런 젊은놈이"

혼잣말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하지만 그르면 그를수록 놀라움은 더 커젔다.

일게청년의 몸으로 홍의화상우람부루를 격퇴시키고 십여명의 부하까지 대적하고

싸울 수 있는 위인이라면 정말 놀라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무술의 재간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이게 누구란말인냐? 어떤 놈이란 말인냐? "

"깊은밤에 침범해서 불을 지러고 사람을 데리고 달아난 그놈이 바로 어느놈이란 말이냐?"

아무리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어 생각해봐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생각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금모사왕은 마침내 해골바가지 도장으로 발포되는 무서운 특급령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전방의 향비들에게 전달하도록 명령했다.

회양 각 방면에서 어느때 어느곳을 막론하고 행적이 수상한 인물이 나타나면

일각을 지체치말고 비둘기를 날려서 금사보로 총진으로 보고하라는 것이다.

그 이튼날도 금사보 안에서는 금모사왕을 위시하여 호의화상 우람부루 아래의

여러고수들이 극도의 분노와 우울을 참아가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마침 사양(泗陽) 분진(分陳)으로부터 한장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빙선자 연자심과 동행하는 청년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금모사왕은 이 급보를 접하고 당장에 무섭던 표정이 풀어젔다.

"헤헤헤...... 그러면 그렇지! 어떤놈인지 몰라도 제놈이 그렇게 호락호락

우리 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줄 알았는가.........

이번에는 내가 친히 나가 봐야겠다.

급히 서두르는 금모사왕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홍의화상 우람부루였다.

"여보 ! 방주. 잠깐만......."

"왜그르시오 ? 선배님께선 "

선배라고 마지못해 부르기는 하지만 금모사왕의 하나 밖에 없는 외눈에는

분명히 경멸의  빛이 서려 있었다.

"방주는 조용히 진정하시고 금사보를 지키시고 계시오! 내가 다시 가야겠소."

 "팔이 그 모양인데 어떻게 또 가시겠다는 건가요.

과히 자신도 없으신 것 이라면 그만두시는게......"

은연중에 또 한 번 멸시하는 금모사왕의 말이다.

아무리 패장이라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만큼 용기가 없는 우람부루는 아니였다.

용기라기보다도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볼 면목이 없었고. 후배에게도 위신이 서지 않았다.

"허허허.... 그다지 염려할 건 없소 ! 

내 한쪽팔이  아직도 건제하니까 고른녀석은 다시찿아서 톡톡히 혼을내구..........

이번에야말로 산체로 잡아올테니......... 방주님은 안심하시고 계시오."

"누군줄 아시고 덮어놓고 이렇게 가시겠다고 서두르시는 건가요.

"괴상한 젊은녀석이면. 내 팔에 상처를낸 그녀석이 틀림없을거요 !

그 놈이 더 멀리 달아나기전에........"

"반드시 그렇타구는......... 그놈이 바로 그놈이라고 속단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놈이 자심이 년과 동행을 하구 있다니......."

"어쩼던 내가 가 봐야겠소 ! 그 놈이 그 놈이건.

그놈이 아니건 나는 이대로 주저앉지는 못하겠소!

내 평생에이런수치와 모욕을 당해 보기는 처음이여서니.

어떤 놈이건 분풀이나 토쾌하게 해주고..........."

우람부루는 끝내 금모사왕을 뿌리치고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청년을 본 뒤에야 우람부루는 자신이 가진 무기중에 그 유명한 구한용두장(九環龍頭杖)까지

몸에 지니고 고수에 사무친 복수심을 불테우며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날 밤으로 비보가날아든 사양지방 부근인 양하진(洋河鎭)이란 고장에 다다랐다

그 청년을 실제로 본 뒤에야

그가 자신의 팔에 상처를 입히고 부하 십여명을 때려눕힌 그 청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습이 몹시 닮기는 했으나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라탄 배가 이미떠나버려서 되돌아설수 없는것같은 형편이라서.

어차피 내친 걸음에 어떤 놈이든 수상한 놈이면 잡아야만 했다.

또 한빙선자 연자심으로 말하면.

산체로든 그렇지 못하면 죽은 시체라도 반드시 잡아 가지고 오라는

금모사왕의 명령을 받고 떠나온 길이었다.

 

한편 연자심이 감욱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악중악은 당장 금사보로 되돌아 가려고했었다.

그러나 연자심이 간곡히 권고하고 말했다.

"제발~~~제발~~~. 악공자께선 소녀의 권고해 드리는 뜻을 소흘히 듣지 말아주세요!"

"무엇 때문에 소생이 금사보엘 다시 가선 안된다는 거요?"

"지금의 금사보 안에는 소위 무예계에서 고명하다는 인물들이 모여있사옵니다.

여태까지는 그들이 너무나 광망자대(광망자대) .

감히 그들의 보루를 침입할 사람이 없다고 과신하여 미처날뒨 까닭으로

방비를 소흘히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격고나서는. 그야말로 철통같은 경비를 할 것이니.......

다시그곳엘 들어가는 것은 물고기가 그물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것 만큼이이나

어리석은 소행이니. 제발 .......

소녀의 권고를 웃어버리시지 마시옵고........."

 

금사보 진지로 되돌아가겠다는 악중악의 팔에 메달려 간곡히 만류하는

한빙선자 연자심의 표정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베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연자심은 여테까지 있었던 일을 한 가지도 뻬놓지 않고 낱낱이 악중악에게 들려주었다.

 

노영탄이 어떻게 해서 회안지방에서 자기를 감욱형의 행방을 자기에게 물어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금사보로 달려와서 자기를 구출해 주었는지

여기까지 자세히 말하고 난 연자심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 하겠다는 듯.

단도적 입장으로 물었다.

"그런데. 악 공자께선 노영탄이란 분을 어떻게 아시게 되셨나요 ?"

"............"

묘하게 얽힌 운명속에서 악중악은 무엇이라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감욱형이라는 아가씨와는 어떻게 되는 사이 이신가요 ?"

"..........."

역시묵묵부담

감욱형과 너무나 꼭같은 연자심의 얼굴을 세삼스럽게 뚤어저라 바라보며

한동안 입을 벌리지 못하는 악중악이였다.

"허어 그것 참! 일은 지극히 묘하게 돼는데............"

 

한참만에야 악중악은 긴 한숨을 내쉬고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뎄다.

어차피 이리된 바에야 사내 대장부 무엇을 숨길 필요가?

연자심의 솔직한 태도가 결국 악중악으로 하여금이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으리라.

그제서야 악중악은 오 년 전 낙양에서당한 일 등 지난 일을 숨김없이

연자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비로소 악중악이 숭양파 다음 대를 계승할 영도자 임을 알게 된 연자심의 놀라움은

비길 데 없었다.

구명의 은인이 되어준 악중악에게 연자심 역시 자기의 과거나 처지를 숨길 수 없었다.

"소녀는 회양방의 그 전 방주 개세천왕 연약파의 딸로서......."

연자심의 솔직한 고백을 듣는 악중악.

"그게 정말이요?"

두 젊은이의 운명은 너무나 놀랍고 너무나 기묘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첬다.

두 젊은이들의 신분과 입장은 절대적으로 원수의 위치였다.

피차간에 생사를 결단하고 싸워야만 될 적과 적이.

이렇게 기묘한 운명의 희롱으로 한 자리에 같이 있게 되다니.

생각할 수록 그것은 하늘의 실수였다.

음과 양이 잘못 맛닥뜨린 것이다.

만나서는 안될 사람들이 서로 사귀게 된 것이다.

 

악중악의 입을 통해 노영탄과 감욱형의 관계를 알게 된 연자심은

말똥말똥해지는 두 눈을 꼼짝도하지 않으며 이빨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 뿐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속에 안타가움을 어지할 수 없어 입술이라도 깨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그런 표현으로 악중악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젖었다.

 

"반드시 그를 게다! 노영탄이란 청년이 이렇게 무서운 위험을 무럽쓰고 감욱형이란 아가씨를

금사보에서 구출해 낸 것은 단지 구명의 은혜를 잊기 어려운 까닭만은 아닐게다.

더 중요한 까닭은.......?

물론 애정의 힘이란 것이........

그 청년을 그렇게 대담무상하게........용감하게.........."

 

연자심은 허전하고 서운하고 안타까운 심정 때문에 입을 벌릴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악중악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기만 했다.

구분이 안 될 만큼 노영탄과 꼭같이 름름하고 준수하게 생긴 청년.

그는 앞으로 일파의 영도자가 될 청년이다.

무술의 제간이 얼마나 놀라울지는 가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한편.

연자심은 회양방의 속박에서 벗어난 몸을 믿고 의지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세를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앞날.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믿음직한 희망.

비록 원수의 입장에서 있는 청년이라고는 하지만

연자심은 악중악에게 그런 것을 느낄 만큼 마음이끌렸다.

악중악은 악중악대로 혼자만의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까지의 악중악과 감욱형.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악중악 자신과 감욱형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난 오누이. 손아래 누이 동생 같은 사이.

악중악의 감정이 정도를 넘어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노영탄이 감욱형을 사지에서 구출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다.

꼭같은 목적으로 먼저 달려간 자기 자신은 도리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생각 했을 때.

악중악은 형언키 어려운 실망과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반변에. 비록 얼마되지 않는 동안이나마 연자심이라는 아가씨를 가까이 대해 보니

그 드물게 보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감욱형과 꼭 닮은 얼굴과 부드럽고 간드려진 애교를 발견했을때

비록 원수의 딸이라고 하지만 .

무슨까닭인지 알수없는 알궃은  심정의 충동이 머리에 들기도 했다.

두젊은이들 사이에는 오래동안 무겁고 긴 침묵만이 감돌았다.

제각기. 이상야릇한 심정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원수와 원수. 둘이서는 대단한 상의를 했다.

"우선.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그것은 둘 다에게 시급한 문제였다.

입장이나 신세나 신분이나 과거를 따질 때가 아니였다.

둘 다 쫓기는 몸이 아닌가.

악중악이 대담한 결론을 내렸고 연자심또한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둘은 우선 미산호 가운데 있는 천암사로 가기로 작정했다.

숭양파의 영도자인 철자단심(鐵章丹心) 탁창가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악중악이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것이다.

반나절쯤 지난 뒤에 악중악과 연자심은 별서 숙천(宿遷)과 사양(泗陽) 중간에 있는

양하진(洋河鎭)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때는 금모사왕이 발포한 해골바가치 도장이 찍힌 특급령이.

이미 회양방 산하의 각 분진(分陳)에 골고루 연락되어 있었다.

 

"자아 인제 좀 쉬어 갑시다."

악중악의 말에 연자심도 간단히 응했다.

"네에. 좋으실 대로......."

"어디 들어가서 잠시.......

너무 시장하니 요기라두 하고 갑시다.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무슨 대단한 일이 있겠소 ! "

두 젊은이는 자신들의 무술 실력만 믿고 대담무상해젔다.

또 금사보에서 붇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떨어저 나왔다는 생각에

백주에 태연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퍼저 있던 회양방의 비도(扉徒)들이 한빙선자 연자심을 알아보고

당장에 금사보 총진으로 비보를 날렸고 . 마침내 홍의화상 우람부루가 불같이

치밀어 오르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멀리 이곳까지 달려나오게 된 것이다.

석양이뉘엿뉘엿 산허리를 넘어가고 있을 무렵......

악중악과 연자심이 숙천 부근에 다다랐을 때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십여필의 준마가 두사람을 포위하여 달려들고 있었다.

무리를 이끌며 날뛰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홍의화상 우람부루. 바로 그였다.

한빙선자 연자심은 대경질색할 수밖에.

"큰일났으요! 조심해요! 준비를단단히 하지않으면......."

악중악의 귀에다 대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악중악은 추호도 겁날 것 없다는 듯 .

앞으로 한 걸음 선뜻 나서면서 손을 높이들어 등에 메고 있던

숭양파의 대표적인 보검 옥룡(玉龍)을 날세게 뽑아 들엇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와 악중악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저 있었다.

거리 때문에 우람부루는 한쌍의 젊은 남여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틀림없이 지난번의 젊은 남여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람부루는 제빨리 말에서 흘쩍 몸을 날여서 뛰어내렸다.

손에는 구환용두장을 단단히 움켜쥐고 상대방을 집어삼킬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징글맞게 웃으며 악중악과 연자심을 향해호통을 첬다.

"이 발칙하고 앙큼스런계집아!

그렇게 앙탈을 하고. 제분수도모르고 도망질을 치려들면......

헤헤헤헤....... 대체 어디까지나 갈 줄 알았단 말이냐?

부처님의 손길이란 언제나 이 세상 어느 천지에고 뻗쳐 있는 거야!

그렇게 호락호락 달아나질 줄 알고! 어서 우리들을 따라서 금사보로 되돌아가자.

공연한 고생을 사서까지 할 것은 없지 않는냐!

순순히 내 말을 들어두는 것이 네 신상에 좋을 거야! 헤헤헤.......헤헤헤..........."

악중악은 태연했다.

네 따위의떠드는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소 긴장했던 얼굴이 당장에 봄눈 녹듯 풀어지며 빙그레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 쏴........."

난데없이 매서운 소리가 회오리 바람처럼 일었다.

칼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칼은 매섭고 싸늘한  소리를 내며 무서운 속도로 우람부루의

앞가슴 한복판을 향해 날아 들었다.

우람부루는 상대방 청년의 손을 쓰는 품이나 칼을 뽑아서 덤벼드는 수법이

지난번청년과는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청년도 이만저만한 솜씨가아니요.

칼쓰는품이 독특하고 무서운데가 있음을 대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섣불리 했다가는 안 될 놈인데....... 제법 칼을 쓸 줄 아는 품이 만만치 않겠는걸."

이런 판단을 내린 우람부루는 손을 추호라도 서툴게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온갖 힘을 팔로 모았다.

구환용두장을 높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악중악은 벽송관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무술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의 독특한 제간인 천강검 검술이 더 한층 정묘하고 기특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의 뛰어난 무술의 제간은 수양파의 영도자 철장단심 탁창가까지도 항시 감탄하는 솜씨였다.

그는 너무나 탁월한 천부의 품성을 타고 났으며. 총며. 민첩. 무인으로서 지녀야 할 힘과.

그것을 다루어나가는 오성이 비길 데 없이 뛰어 났다.

온갖 무술의 제간이 조화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데다가 청강검 술법까지

최고의 경지에 들어섰니.

탁창가로서도 더 지도할 무술이 없을 정도였다.

악중악의 무술이 이렇게 오묘한 경지에까지 도달하자.

숭양파의 영도자 철장단심 탁창가는 그들의 비전의 보물이요.

천하에 이것을 배울 만한 자격을 갖춘 인제가 드물다는 숭양비급을 악중악에게

연구하게 해 이 길로 정진시키고자 그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였다.

바로 이런 때.

천만뜻밖에도 숭양표국의 주인이요.

감욱형의 아버지 금면불수 감영장의 끔직한 불상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본래. 탁창가는 숭산(崇山)에서 아중악을 하산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무술에만 전력토록 해 다음대를 물려주어야 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악중악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키워 준 감영장이 회양방 도배들에게 무참한 최후를 마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비보를 들은 악중악은 그데로 산속에만 들어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사부 탁창가를 속이고 아무도 모르게 산을 내려와서 단숨에 낙양으로 달려갔다.

악중악이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감욱형의 집안이 수습할 수없는 비운에 빠져버린 뒤였다.

    뜻밖에도 감욱형이 산동 방면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악중악은 곧바로 그 뒤를 쫒았다

   그리고 도중에 서주(徐州) 부근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저있는 고봉상인 낙이산 노인을 발견했다.

그를 구출해서 미산호 천암사에 있는 낭월대사에게 보내 놓고 .

그 길로 다시 금사보로 잠입해서 감욱형을 구출해 내고자 한 것이였다.

 

이제 악중악은 홍의화상 우람부루와 대결하기위해 마주 보고 서게 되었다.

"흐음 ! 이놈이 바로 고봉상인 낙이산 노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욱형이를 납치해 갔다는

바로 그놈이었구나!"

악중악은 불덩이같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 없었으며 우람부루에 대한

저주와 복수의 일념이 골수에 사무첬다.

"잘 됬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한번 만나고 싶던 차였으니....."

악중악은 칼을 더 한층 단단히 움켜잡았다.

눈동자를 움직이는 듯 마는 듯하는 순간.

그의 독특한제간인 저 추운언월십이식(追雲偃月十二式)을 전개했다.

칼에서 발사되는 매서운 광체가 열여섯 방위로 화살같이 날아가며 한 단. 또 한 단

기묘하게 전개되는 검술은 상대방의 급소만을 습격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즉각 이 청년이 칼을 쓰는 품이 가히 놀랍고

무서운 데가 있어서 섣불리 물리쳐버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람부루는 구환용두장을 맹렬히 휘둘러서 반용장(蟠龍杖)의 술법을 전개하여

이지팡이가 지니고 있는 크고 무서운 힘으로 역시 널찍하게 광막을 퍼뜨려.

그속에서 몸을 보호하며 대항했다.

자웅을 겨뤄보자는 이 극도로 긴장된 순간에.

악중악은몹시 짧은 찰나였지만 주춤하고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에 대한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와 저주와 복수의 일념에서 선뜻

칼을 뽑아 들고 천강검의 검법을 전개하여 한 단 또 한 단 법칙의순서대로 무섭게

습격해 들어 갔으나 뜻밖에도  우람부루는 추호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그의 방비에 흔들림이 없어기 때문이다.

"흐음 ! 놈이 이만한 실력이 있었으니깐

욱형이를 납치하고 낙이산 아저씨에게 상처를 입혔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보면 볼수록 우람부루의 구환요두장은

무시무시하게 굵고 단단하고 길어서 무턱대고 칼로서 맞닥뜨리고 처들어갈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악중악은 추운언월십이식의 검법을 펼치려다 말고.

머리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작전을 달리했다.

홍의화상을 대적하고 다루는데는 단지 머리를 약사빠르게 써서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고 힘으로써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린 악중악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독특한 수법으로

몸안에 축적한 진기를 재빠르게 움직여 그것을 칼끝으로 총집중 시켜놓고

털끝만한 틈도 주지 안으며 노려보았다.

천강검이라는 검법은 숭양파에 있어서는 가장  정묘한 비전의 비술 이었지만

이것을 쓸 때에는그 위력의 변화란 사람의 뜻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전광석화같이 빠르고 날쎈 힘으로 상대방을 당장에 눈부시게 굴복시켜 버릴 수도 있지만.

힘이 너무나 엄청나게 크다든지 무겁다든지 하는 적을 상대로 하게 될 때에는 .

이와 반대로 속도를 늦추어서 느릿느릿하고 온건한 방법으로 몸안에 축척되어 있는

정신적인 힘.

내가진력(內家眞力) 이란 것을 칼끝으로 총집중시켜 놓고 상대방의 손바람이나

혹은 내공의 보이지 않는 힘까지도 물리쳐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악중악은 별안간 칼을 거두고 지금까지의 행동을 멈추는 듯한 자세를 보이더니.

선뜻 왼편손을 가슴 앞으로 구부려 세우고 바른편 손으로 보검을  한일자로 

가로 잡아 가슴 앞으로 내밀고 온갓 정신을 집중해서 노려보며.

무형중에 몸 안에 있는 진기를 불러 일어켜 

그것이 두 팔로 뻗쳐나와 옥룡검 보검 위로 직통하도록 하고 대결의 자세를 취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구환용두장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반룡장 술법을 쓰다가 힐것

악중악이 갑자기 칼쓰는 속도를 늦추며 서슬이 시퍼런 광체가 한 번 유난히 번쩍하고

물러나는 것 같더니.

칼을 거두고 부동의 자세로 한 곳에떡 버티고 서버리는지라.

이게 무슨 까닭인지 를 알 수가 없어서 깜짝 놀라면서 대결해야 할 방향을

똑 바로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람부루는 악중악의 돌변한 작전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는 악중악이 노영탄인 줄만 알았었다.

그레서 비상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판에 악중악이 가슴 앞에 칼을 가로 잡고

정신을 집중하여 노려보자.

지난번에 자신이 당했던 똑같은 기묘한 검법을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판단은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악중악이 칼을 쓰기 시작하고 한 단 또 한 단 검법을 풀어가는 품이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조금도 힘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칼이 한 번 손에서

번뜩일 때마다 "쉬익" 하는 날카롭고 매서운 쇠소리가 귀전을 흔들어

상대방을 바들바들 떨게했으며.칼끝에까지 일종의 기기묘묘하고 앙칼진 힘이 뻗쳐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돌진해 들어왔다.

우람부루는 너무나 뜻밖이였다.

이 청년이 어떻게 정묘하고 기상천외한 내공의 정신적인 힘까지

몸에 지니고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우람부루는 그제서야 상대방의 무술의 제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다년간 강남 천지에 위명을 떨치고 있는 숭양파의 절예 천강검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상대방 청년의 실력을 정확하게 판단해 낸 우람부루는  이 긴장된 순간에도 

커다란 의혹을  풀 길이 없었다.

지난번에 대적 했을때. 발휘한 검법도 일찍이 본 일이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였고 .

그 위력이 과연 어느정도까지 뻗쳐 나가는 것인지 상상할수 없었는데 .

어디서 이번에는 다시 천강검의 검법을 가지고 대적하려 드는가.

도무지 까닭을 모를 일이다.

천강검이란 검법이 강남 천지를 떨게 하는 무서운 검술이라고는 하지만.

또 그것이 무술에 있어서의 외공과 내공이라는 외부의 힘과 내부에 잠재해 있는

정신력을 겸비하지 않고 는 써볼 수 없는 최고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술법이라고 하지만. 홍의화상 우람부루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아무래도.

지난번에 당해본 그만큼은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우람부루는 그때까지도 이 청년이 과연 지난번에 자신과 대적했던

바로 그 청년인지 그러치 않으면 전혀 다른 청년인지를 분간해 내지 못했다.

어찌 되었던. 어떤 청년이든 간에 일이 이쯤 벌어젔으니

그데로 뒷걸음질을 칠 수도 없는판국이다.

악중악이 눈 깜짝할 사이에 검법을 달리하고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재빠르게 알아차린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여태까지의 수법을 포기하고 변술(變術)의 태세를 갖추었다.

선뜻 오른손을 높이 휘두르더니 백근 이사의 중량이 나가는 무겁고 큰 구환용두장을

마치 한 개의 화살을 쏘듯 한편으로 홱 던저서 땅 위에 우뚝 꽂아버리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뼈 마디마디에서 우두둑! 하고 이를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드니

그 무섭게 생긴 얼굴이 온통 징글맞은 웃음으로 변하며 껄껄껄껄

폭음같은 소리를 내며 웃어 젖혔다.

"흐흐흐.....흐흐흐......., 어떤 놈이래도 좋다! 해 볼태면 해보자!

요며칠 동안에 젊은 녀석이 천둥벌거숭이처럼 철없이 까부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보자니......"

노영탄에게 한 번 혼이 나고도 굽힐 줄 모르는 우람부루 였다.

몸을 길다랗게 슬쩍 뒤로 빼는가 하는 찰나.

두 손으로 쏴! 하고맹렬한 바람을 일어키더니 곧장 악중악에게 공격을 가했다.

악중악은 별안간 검법을 달리하여 내공의 오묘한 정신력을 가지고 습격해 들어왔다.

우람부루는 반룡장 수법을가지고는 대항해 낼 수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구환용두장의 위력을 발휘해 보려고 애써도. 악중악의 놀라운 칼의 힘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막혀버릴 따름이였다.

추운언월십이식의 술법을 쓰기 시작한 악중악의 몸은 유유하기 이를데 업었다.

여유자작 느릿느릿 . 맹호(猛虎)가 양 한 마리 데리고 장난 치듯.

열여섯 방위를 태연히 디더가며 .

홍의화상의 전신을 호위하고 일직선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시도 쉴새 없이 쉬!  쉬! 소름이 끼치도록 날카롭고 매서운 휘바람 소리 같은

쇠소리가 나는 칼을 무서운 내공의 오묘한 정신력까지 겸해 찌르고. 우람부루에게

털끝만한 틈이 보이기만하면 한칼에 결단을내버릴 기세였다.

우람부루는 천강검이라는 검법이 . 상대방을 정(靜)으로 동(動)을 제압하며.

상대방의 기세와혼을 빼놓는 무서운 술법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뜻 지팡이를 버리고 뼈속에 서린 용연선독(龍涎仙毒)이라는

그의 독특하고 잔인한 독기를 팔 위로 솟구처 오르게 해 그것과 손바람의 힘을 아울러 써서

악중악에게 대항해 볼 결심을 했다. 

서로 대결하고 있는 두 사람의 기세가 동시에 똑같이 느려젔고 수그러젔다.

그들의 대결을 극도의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빙선자 연자심과 십여명의 회양방의

비도들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상대방을 노려보며 또한 똑같이 몸 안에 축적된 내공의 오묘한 정신력을

불러내서 그것으로 자웅을 가려보자는 기세였다.

악중악은 본래 정으로 동을 제압하는 술법을 써서 내공의 힘으로 적을 물리쳐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람부루가 재빠르게 그의 작전과 의도를 간파해 버리고 .

더 한층 조심조심 몸을 사리며 갑자기 뼈마디에서 우두둑! 하는 무서운 소리를 냈다.

악중악은 그것이 손바람으로 온갖 힘을 모아서 덤벼들려는 의도임을 알아차렸다.

이 위기일발의 찰나.

"에잇!"

하고 고함소리와함께.

악중악은 칼을 한 번 번쩍하고 휘둘러무서운 광체를 발산하면서 전광석화같이

물환성이(物換星移)라는 한 단의 검술을 전개해서  매서운 휘바람같은 쇠소리를 내며

홍의화상의 앞가슴을 향해서 맹렬히 습격해 들어가며.

한편으로는 칼이 저편에 체 닿기도 전에 내공의 힘을 발휘해서 먼저 손바람을 일어켜서

습격해 들어갔다.

홍의화상도 이 위기 일발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손바람을 일어키면서 막아냈다.

손바람과 손바람이 숨이 막히 듯 맞닥뜨렸다.

두사람은 똑같이 몸을 한 번 오싹 떨었다.

그리고는 제각기 선뜻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

악중악은 슬거머니 몸을 위로 뽑는 척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

이틈을 타서 검술의 단수를 한 단 높여서정면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주춤하고 뒤로 물러선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흔들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악중악의 칼이 육박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우람부루는 간신히 몸을후퇴하는자세를 취했다.

이 틈을 타서자신의 잔인한 무기 요연선독을 한 번 써보자는 엉큼스런 작전이였다.

마침내. 우람부루는 한편 손을 맹렬히 벋쳐 비린내나는 괴상한 바람을 일어키며 악중악에게

습격해 들어갔다.

몸을 움추려뜨리고 급히 후퇴하는 우람부루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 공격을 계속할

생각을 하던 찰나에.

난데없이 우람부루가 한편 손을 써서 바람을일어키는 것을 보고 악중악은 공격의 기세를

다소 늦추었다.

바로이때.

이상야릇한 비린내가 왈칵 코에 끼처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차! 하며 몸을 피하려는 순간.웬일인지 갑자기 다리와 팔이 시큰시큰해지며 전신의맥이

탁풀리는 것이다.

악중악은 결국 우람부루의 용연선독의무서운 독기에 감염되고 말았다.

휘청휘청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하고 뼈 없는 사람처럼 팔과 다리를 흐늘흐늘 흔들더니

털석 땅 위에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본 한빙선자연자심은 대경질색.

연자심은 홍의화상이 무슨 제간을 부렸는지 그것을 똑똑히 알 수는 없지만.

악중악이 그 자리에서 맥없이 졸도해 버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저 위인은 사술(사술)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은 일이 있는데!"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황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였다.

전 후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왈칵! 몸둥아리를 던저버리 듯 앞으로 내달어며.

가날픈 몸이기는 했으나 . 온갖 힘을 모아서 손바람을 일어켜 홍의화상을 향해.

이를 악물고 습격해 들어갔다.

자신이 쏜 독기의 손바람을 마시고 악중악이 당장에 졸도해 버리는 것을 보고

홍의화상은 기쁘기도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용연선독의 독기를 이 청년에게 써 보아야 대단한 효력을 보지 못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마시고 그만 졸도해 버리지 않는가!

기쁘기 이를 데 없고. 의기양양해지며 신바람이 나는 일이다.

"흐음? 괴상한 일이다! 어째서 지난번에는 독기 앞에서도 끄떡없이 버티던 놈이 .

이번에는 형편없이 쓰러저버릴까?"

우람부루는 두 눈이 휘둥 그래저서 쓰러진 악중악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때까지도 악중악과 노영탄을 분간해 내지 못했다.

우람부루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한빙선자 연자심이 두 손이 한꺼번에 바람을 일으키며

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홍의화상은 이미 기고만장할 대로 기고만장했다.

승리가 자기편에있다는 것을 확인한 홍의화상에게 한낱 젊은계집아이 한빙선자 연자심 쯤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어허허허........  허허헛..........

네 년은 무엇을 믿고 감히 ?

발칙하게 내게 덤벼드는거냐?

그것 참 ! 가소로운 일이로다!"

홍의화상은 껄껄대며 징글맞은 웃음을 한바탕 호기 있게 터뜨렸다.

그리고는 한편 팔을 처들더니 

거센 바람을 일어켜 연자심의 손 바람을 대수롭지 않게 막아 버렸다.

동시에 오른손을 획 뿌리치듯 가볍게 휘저어서 한 줄기 독기를 발사했다.

한빙선자 연자심은 두 손으로 바람을 일어키며 습격해 들어가는 순간.

이미 우람부루가 한쪽 손만으로 그것을 간단히 막아내는 것을 알았다.

다음순간.우람부루의다른쪽 손이 곧장 습격해 드어왔을때 연자심은

주춤하고 몸을 다소 뒤로 빼서 그의 손바람을 피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불가능한 일이었다.

난데없이 콧속을 팍드는 괴상한 비린내를 깨닫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자심은 별안간  팔과 다리가 흐늘흐늘 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다시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중심을 잃고 비실비실 흔들릳더니 철썩! 하고 땅 위에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에헤헤헤........헤헤헤.............. 그러면 그렇지 !

지난번에야  내가 실수를 했다 치더라도 .....네까짓 젊은 것들 둘 쯤이야!

보잘것없는 것들이 천방지축 까불더니 ......하하하하.............

아아! 이리 빨리들 와서 이 두 연놈을 단단히 묵어 버려라!"

악중악과 연자심이 졸도하는 것을 본 홍의화상 우람부루는 위풍당당하게 호령을 했다.

지난번에 망신을 당하고 상처까지 입고 도망질쳤던 보복을 통쾌하게 .

그리고 힘 안 들이고 해치웠다는 기쁨에 우람부루의 어깨가 으쓱해젔다.

뒤를 따라온 회양방의 졸도들 십여 명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들은 홍의화상 명령대로 땅에 쓰러저 정신을 못 차리는 악중악과 연자심을  

꽁꽁묶어 버렸다.

"일각을 지체치 말고 말을 달리자 ! 빨리 본진으로 돌아가야 된다. !"

홍의화상은 말체를 높이 처들고 또 한 번 호통을 첬다.

 

금사보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젔다.

금모사왕도 희색이 만면해서 홍의화상을 맞았다.

선배를 경멸하던 거만한 태도도 씻은 듯이 없어젔다.

축배를 높이 들었다.

"역시. 우리 선배님의 재간이 놀랍단 말씀이요!

은근히 걱정은 했사옵니다만 .......

아무래도 손쉽게 해치우시고 돌아오실 것만 같아서..........핫! 핫! 핫! "

"방주님도........ 무선 소릴! 지난번에야 운수 불길해서 그녀석에게 창피를 당했지만.........

두 번씩이야 !  하 하 하 ..........."

우람부루의 어깨가 또 한번 으쓱하고 올라갔다.

금모사왕과 홍의화상이 축배를 높이 들고 기쁘서 어쩔 줄 모르는 금사보에서는

난데없이.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젔다.

둥! 둥! 둥!

이제는 경종(警鐘)이 아니었다.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들이 우루루 대청으로 몰려들었다.

초청한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이 기쁜 승리의 시각에 때를 맞춰 몰려든 것이다.

그들을 환영하는 목소리였다.

회양방은 또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분주해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들은 수륙제맹대회(水陸祭盟大會)를 머지않아 개최할 준비에 분망한 것이다.

"그 젊은 녀석을 우선 영창에 집어 넣어라! 자심이란 년도........

천하에 육시처참할 년! 외부의 놈과 정을 통하고 방을 배반 하다니........."

금모사왕은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악중악과 연자심은 안쪽 보루에 있는 영창에 다시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튼날. 악중악과 연자심에게는 지극히 수치스럽고 처참한 장면이 벌어젔다.

영창에 갇힌체로 금모사왕의 심문을 받아야 했다.

악중악은 자기의 신분을 선선히 밝혔으며.

연자심도 지금까지의 경과를 솔직히 토해버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금모사왕은 놀라움도 컸으나 기쁨 또한 컸다.

숭양파의 다음 대를 계승하고 영도자가 될 악중악이란 청년이.

이렇게 쉽사리 금사보로 잡혀 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앞으로 닥처올 더 큰 승리와 장차 무예계를 제패할 기막힌 길조라고 생각한

금모사왕은 기쁘서 펄펄뛰고 싶었다.

영창문 밖에는 적파(敵派)의 대표적 청년인악중악의 얼굴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회양방의 졸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금모사왕은 이 신바람이 절로 나는 장면에서 방주의 위험을 과시 하면서 기고만장해서

호통을 첬다.

"으흐흐흣! 제 발로 걸어서 우리 진까지 들어온 기특한 놈이로다!

훌륭한 선물이다! 네 놈을 멀지 않은 우리 제맹대회의 귀중한 제물로 바칠 것이다.

그날 네 놈은 영광스럽게 목이 달아날 것을 각오해라!"

금모사왕은 그들의 제맹대회 날 악중악을 죽여버릴 작정을 했다.

그러나 이때.옆에 서 있던 그의 외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앞으로 나서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그데로 죽여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숭양파의 두령에게 통지를 해서

그들의 숭양비급과 이 포로 녀석을 교환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악중악이란 자를 인질로 삼고 이월 초 이튼날을 기약해서

이십 년 전에 양파가 결투했던 홍택호 옛터에서 다시 한 번 자웅을 대결해 보고.

피차간에 원한을 깨끗이 청산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허어!그야말로 슬기로운 의경이로다! 놈들이 우리의 도전에 응할 용기가 없다면

당장 이놈을 처치해 버리기로......... 핫! 핫! 핫! 실로 통쾌한 일이다!"

금모사왕은 아들 팔조독경 오백평이 제시한 의견을 쾌히 받아들였다.

본래부터 이파 저파의 소위 고수라는 오합지졸들을 초청하고 .매수하고.

끌여들여 중원 무예계의 패자가 돼 보려는 것이 금모사왕의 야심만만한 배짱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십 년 동안이나 내려온 저 진귀한 무술의 보물. 숭양비급을 탈취하고

 쌓이고 쌓인 원한을 갚는 것이야 말로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르면 당장에 행동으로 옮기자! 지체할 필요가 없다! 즉시 놈들의 태도를 떠보기로 하자!"

금모사왕은 또 한 번 이렇게 위험 있게 외치면서 영창문 밖에 운집한 졸도들을 해산시컸다.

그중에서 힘깨나 쓰고 재간께나 있다는두목급의 인물 다섯명을 선발해서 도전장이나 다럼없는

서신을 몸에지니게 한 다음 숭산으로 달려가게 했다.

여기까지가 .이다섯 놈 중의 한 놈인 조중이란 자의 입을 통해서

노영탄이 알게 된  그 동안의 금사보에서 일어난 변동이였다.

 

조중은 자신이 목격한 일은 물론 들은 일 알고 있는 일을 하나도 빼지않고 노영탄에게

샅샅이 알려주었다.

악중악과 연자심이 홍의화상에게 다시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확인한 노영탄은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이 청수하게 생긴 청년의 얼굴도 뜻하지않는 놀라운 사태에 구름이 끼듯 어둠침침해지며

찌푸려진 양미간에는 침통한 빛이 서렸다.

한참지나.

어떤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했다는 듯 그의 얼굴은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두 눈이 유리알같이 유난히 또렷하고 밝아젔으며 음성은 위엄을 더했다.

"흐음. 그렇게 됐구나! 그러면 현제 그들 두 남녀는 금사보 어느 지점에 감금돼 있는냐?

또 어떻게 하면 그들을 금사보에서 구출헤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지금 금사보 안의 경비 상태는 어느 정도냐?

 네.이놈!

거기

거기까지 숨김없이 말하지 않으면........

네놈을 당장에..........."

조중은 잠시 이 궁리 저 궁리하더니

여전히 부들부들 떨며 말을 계속했다.

"네....네......

그들 두 남녀는 현제 금사보 안쪽 보루에있는 영창에 감금되어 있사옵고.

주야로 교대하여 스물네 명의 파수병들이 순찰하며 감시를 철저히 하옵고.....

또 주변에는 많은 궁수들이 사방으로매복되어 있어.

두목급 이상의 자격을 갖춘 요패(腰牌)를 차지 않는 사람은 수하를 막론하고

안쪽 보루 화원에는 얼신도 못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이런 정세이오니 그들을 금사보에서 구출해 낸다는 것은 진실로 하늘에서 별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인가 하옵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금사보에는 쟁쟁한 고수들이 운집되어 있사옵고.

극도의경각심을 가지고 경계가 엄하오니 .

일단 보루안에 침범한 사람은 갈데 없이 그들이 손아귀에 잡혀 들고 말 것이오니.........

허나. 남아대장부 한 번 가보시는 것도 통쾌한 일이옵고.......

소인에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하옵니다만....."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조중은 두 눈을 끔뻑끔뻑거리며 노영탄을 쳐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던 몸을 다소 진정 시킨 듯 했으나 얼굴은 처참하리만큼 창백했다.

'내가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그것을 알아야만 더계속하겠다는 그런 초조하면서도 맥이 빠진 눈동자로 

노영탄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다.

어떤 교환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비로소 금사보 안의 비밀을 털어놓겠다는 눈동자였다.

그것을 알려주면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하는 애원의 빛도 처량하게 감돌았다.

그 눈치를 알아차리지 못할 노영탄이 아니다.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또 한 번 위엄있게 호통을 첬다.

"네 이놈 ! 추호도 숨김없이.......

그들 남녀를 구출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말해라.

그것만 말한다면 네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조중의창백한 얼굴에 별안간 생기가 돌았다.

이만하면 타협이 서립됐음을 확인하려는 듯 .

그제서야 두 눈을 또 몇 번인지 끔뻑거리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금사보 후원에 있는 영창 옆에는 높직하게 쌓아올린 가산(假山)이 있사옵니다.

그 가산 밑으로 굴길이 뚫려 있사온데.

이것은 금사보 에서 두목급 몇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옵고.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않는 것이오며

이길은 바깥쪽 보루의 담밑까지 이어져 이사옵니다.

만일에 영창에서 잠입해서 그분들을 구출해 낼 수 있다하오면.

그 즉시로 이 굴길 속으로 들어가서 도주해 나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가 하옵니다.

그러하오나 바깥쪽 보루까지 탈출해 낸다는 것은 난중지난사 이옵니다."

"흐음! 놈들이 거기다 굴길을 파놓았다? 알았다! 네 말이 거짓말이 아닌 듯하니

죽을 죄는 면해 주겠다만 살아생전 받아야 할 벌까지 면해 줄 수는 없다!"

노영탄은 오른팔을 높이 처들더니

손가락을 칼끝같이 빠르게 놀려서 조중의 수혈을 찔러버렸다.

조중은 숨도 못 쉬고 두 눈을 감은 체 쓰러지고 말았다.

노영탄은 선뜻 보검을 휘둘러 조중의양쪽귀를 번개불처럼 내리쳐서 잘라버렸다.

그리고 나서 조중의 몸을 뒤저서 요패를 찾아낸 다음 흘쩍 몸을 날려 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바로 이때.

난데없이 휘익! 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덩어리의 눈뭉치가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이건 또 무엇이냐?'

깜짝놀란 노영탄은 주춤하며 한 걸음 물러서서 몸을 획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재빠르게 한쪽 손을 뻗어서 눈뭉치를 막아냈다.

노영탄의 손바람에 맛부디친  눈뭉치는 떨어지는 꽃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젔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회양방의 어떤 놈이 또 이 부근에 매복되어 있어서 이 따위 장난질을 치는 것일까?'

의아스럽게 생각한 노영탄은 무서운 음성으로 악을 썼다.

"누구냐?"

대답이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노영탄은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넓은 벌판을 휘둘러보고  또 한 번 서리발같이 싸늘한 음성으로 악을 썼다.

"누구냐? 이 따위 장난질을 치는 놈이....., 썩 나서지 못할까!"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한참만에야.

" 호 호 호 호.....호 호 호"

어디선지 난데없이 간드러지고 보드라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한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저편 언덕으로부터

날아 내려오더니 옆에 우뚝 서는 것이다.

그 시커먼 그림자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노공자께선 어째서 혼자서만 슬거머니 빠져 나오셨나요?

저에겐 일언방구도 없이....."

감욱형이었다.

그제야 노영탄의 얼굴에 서려 있던 노기가 풀어젔다.

어린아이 같은 귀여운 장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따라서 웃으며 노영탄은 말했다.

"허허허헛...... 그것 참!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하시면......."

"호호호 ......... 눈 뭉치 한 덩어리가 그다지도 무서우셨나요?

호호호..........."

감욱형의 웃음소리는 방울이 짤랑대듯 명랑했다.

원망스럽다는 눈초리가 도리어 샐쭉한 매력을 발산하며 노영탄을 훑어보고 있었다.

"허허허......... 감소저께서 너무나 고단하게 잠이 드신 것 같기에 대단치도 않은 일에

소저를 깨운다는 것도 우섭고 해서.........

이까짓 하잘 것 없는 녀석 하나쭘이야 구테여 감소저에게까지 폐를 끼치지 않더라도.........

그래서 혼자 슬거머니 나와본 것뿐이였소 !"

감욱형은 노영탄의 말을 듣고서야 주위를 살펴보았다.

"애그머니나!"

"핫! 핫! 핫 !  그다지 놀라실 것은 없소 !

나쁜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따위 위인은 평생을 두고 자신의 죄과를 생각하고

뉘우쳐가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아서......"

이 말을 듣고도 감욱형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이였다.

웃음 띤 얼굴에 여전히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하고 물었다.

"이 자는 어떻게 된 일인가요?

노공자께서 무슨 이상한 일이라도 당하신 건가요?"

노영탄은 땅위에 꼬꾸라져 있는 조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감소저도 여기까지 오시는 도중에 들어신 말이 있으실 거요! 보시요!

이타위 놈들이 바로 저 잔악무도한 회양방의 소위 두목급이라는  비도들이요!"

감욱형은 땅위에 꼬꾸라져 있는 조중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한 번 힐끗 내려다 보았다.

다소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노공자께서 계시지않은 것을 알고 .

그때부터 말굽 자욱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을 뿐.

무슨 까닭으로 이자를 추적하시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언덕에 올라서서 내려다봤을 때는 바로 이 자가 정신을 잃고 꼬꾸라지는 판이었어요.

아무 말씀도 듣지는 못 했고요........"

노영탄은 그제서야 지금까지의 자세한 경과를  감욱형에게 말해주었다. /100

"감소저! 사태가 심히 위급하게 됐소!"

노영탄의 얼굴에는 엄중한 결의와 비장한 각오로 긴장이 감돌았다.

"무슨 일인데요?"

감욱형의 아리따운 알굴에도 갑자기 수심이 서리었다.

감욱형은 노영탄의 다음말을 초조히 기다릴 뿐이었다.

"일각이라도 지체하고 있을 수 없게 됐소!

곧 금사보로 되돌아가서 악중악이란 청년과 연자심이란 아가씨를 구출해 내야만 되겠소!

우리들만 이대로 달아나버리면 불의를 눈앞에 두고 그대로 피하는 비급한 행동이 될 것이니.

소생으로선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요!"

"네? 그러면 악중악 오빠와 그 한비선자란 아가씨가 끝끝내 놈들의 마굴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건가요?"

"그렇소 ! 놈들의 손아귀에 다시 떨어지고 만 것이요!"

이말을 들은 감욱형의 얼굴은 핼숙해젔다.

이만저만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금사보에서 탈출하여 어디로든지 피신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악중악이

이놈들에게 다시 잡혀가다니.

감욱형은 전후를 헤아릴 겨를도 없이 선뜻 말했다.

"그렇다면 . 저도 동행할까 하옵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 노영탄은 지극히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감소저 ! 사태는 일각을 다툴 만큼 몹시 긴박해젔소 !

사소한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면 안 되오.

바라건대.

감소저는 시급히 미산호에 있는 천암사로 가주시오.

지금까지의 경과와 정세를 숭양파의 영도자에게 상세히 보고해 주시오.

그리고 그 즉시 그들과 금사보로함께 오셔서 놈들과 맞서 주시오.

소생은 이 길로 곧장 금사보로 달려가겠소.

사람의 생명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 든 것 만큼이나 위태로운 지경에빠젔소 .

일각이라도 늦어진다면 건저 낼 수 없을 것이니..........."

 "......."

감욱형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소한 고집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노영탄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또. 금사보에는 지금 무예계의 고수라는 인물들이 운집되어 있고 .

이다지 긴박한 정세에 처했을때.

자기의 대단치 않은 무술의 재간을 가지고 노영탄을 따라간다는 것은 도리어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리라는 것을 감욱형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둘은 헤어지기로 했다.

슬픈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기구한 운명이었다.

어떤 무형적인 힘이 그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5년 만에 기이한 인연으로 간신히 죽음의 땅에서 구출해낸 감욱형과

또 다시 길을 달리해서 헤어저야 하다니.

이 기구한 운명 앞에서 둘 다 할 말을 잊고 서로의 얼굴만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영탄은 결연히 말했다.

"부디. 맡으신 임무를 시급히..........."

"네. 몸조심하시기만......."

감욱형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한명은 서북편으로. 또 한 명은 동남편으로.

노영탄과 감욱형은 서로 길을 달리 하고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노영탄은 스승을 섬긴 5년 동안 남해어부의 진전(眞傳)의 비술을 완전히 배웠고.

그 무술의 재간이 오묘 불가시한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스승과 작별하고 백로주에서 바같 세상으로 나온 이후 아직도 이렇다 할 만한

무서운 적수를 만나본 일이 없다.

지난번 금사보에 야간침입을 했던 일쯤은 노영탄에게는 지극히 수월한 일이 었다.

나중에 무술의재간이 어지간하다고 하는 홍의화상과 대적하고 싸웠지만

불과 몇단의 검법으로 넉넉히 이겨낼 수가 있었다.

노영탄은 아직까지도 그의 무술의 재간을 한번도 마음껏 발휘해보지 못했다.

이제야 말로 몸에 지니고 있는 온갖 무술의 재간과 능력을 송두리째 발휘해서

사지에 빠저 있는 두 젊은 남녀를 구출해 내야한다.

노영탄은 전광석화같이. 달을쫓는 유성과도 같이 앞으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노영탄은 자신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악중악은 노영탄과 무슨 정의 같은 것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심지어 노영탄에게 일평생 잊기 어려운 모욕과 수치를 준 청년이 아닌가.

한번은 사나이 대장부로서 정정당당하게 칼을들고

힘과 재간을 견주어 보고싶다는 결심을했던.

저 5년 전의 숭양표국 뒤뜰에서 의 맹세를 노영탄은 아직도 똑똑히 기역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은 도리어 그를 구출해 내고자 경각을 두투어 몸을 날리고 있다니.

그날밤 .

금사보에서 악중악을 만나을때 악중악 역시 감욱형을 구출하려 나타났다는 것을

노영탄은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악중악은 한빙선자 연자심이란 여자를 잘못 알고 구출했으며.

이런 인연으로 노영탄은 마침내 감욱형을 구출해 낼 수가 있었다.

과거지사를 회상하며 몸을 날리는 동안 그것이 무슨 심정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어나

왜 그런지 악중악과 연자심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한 바 있었다.

"악중악이란 그 청년은 다시 연자심이란 아가씨와 함께 도주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생각까지 하면서 하여튼 그들 두 남녀가 다 같이 자기가 달려갈 때까지 죽지않고

무사하게 있어 주기만 간절히 바랐다.

어쩼든. 쓰라리고 아프고 가엽게만 생각되는 이상한 심정이었다.

한빙선자 연자심을 위해서냐?

그렇지 않으면 악중악을 위해서냐?

그 누구 하나만을 위해서라고 똑똑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노영탄은 어쨌든 그들이 다 같이 한시바삐 회양방의 손아귀 속에서

무사히 빠저나갈 수 있기만 간절히 바랐다.

또한 그것을 위해서  몸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에게는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악중악과 한빙선자 연자심은 그들의 기이한 인연과 미묘한 관계를 과연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하나는 숭양파의 다음 대를 계승할 영도자의위치에 서 있는 청년.

또 하나는 회양방의 초대방주의 딸.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두 남녀가 은혜로서 맺게된 기묘한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그들은 대적의 위치에 처해있는 두 남녀가 각각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가.

노영탄은 그들의 이런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결말이 몹시 궁금했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한시도 쉴세없이 손과 발을 놀려서 금사보로 달려가고 있는 노영탄의

머리속에는 이런얽히고설킨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끊임없이 물결치고 있었다.

반시간도 체 지나지않아서 노영탄은 이미 금사보의 전경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것은 끝없이 널브러진 몽롱하고 어두컴컴한 그림자 속에서 군데군데 등광이 번쩍거리는

한폭의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그림과도 같았다.

보루높다란 돌담 위에서는 서너댓 걸음밖에 안되는 사이를두고 횃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과연 금사보 안의 방비와 경계는 전일의 그것과는 딴판으로 삼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노영탄은 벌써 보루밖에 있는 강가에 다다랐다.

강 위에서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부교가 걸려 있었다.

이때 그 네개의 부교들은 모조리 하늘 높이 들려저 있었다.

외부와의 출입 왕래를 일체 차단시켜 버리자는 것이다.

노영탄은 한참이나 강변에 무성해 있는 수풀 속에 몸을 감추고 숨어 있었다.

꾀 오랜동안 이 궁리 저 궁리 어떻게 행동을 개시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마침내 서쪽으로 가깝게 있는 보루담 위에는 오락가락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교적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영탄은 서쪽으로부터 뚫고 들어갈 결심을 했다.

'이번에야 말로 지난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만일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중대하다!

숭양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니........'

'그만큼 놈들도 경비를 철통같이 물샐 틈 없이 엄밀하게 하고 있다는 거 겠지'

노영탄은 조심조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강변으로 살거머니 넘어 들어 갔다.

금사보 언저리를 둘려싸고 있는 호성하(護城河)는 그넓이가 약 삼십여 척.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보루의 높은 담을 가깝게 끼고 흘러 돌아가고 있었다.

보루의 돌담도 그 높이가 이십여 척. 견고하고 중후하기 철벽같았다.

금사보에는 대문이 네 개 있다.

평상시에는 동.서.북 세 군데의 문으로만 출입을하며.

특히 중대한 회합이나 전례가 베풀어질 때만 남쪽에 있는 정문을 개방하고 출입을 허락하였다.

무시무시한 어둠속에 파묻힌 금사보의 네 개의 성문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단단히

잠겨져 있었다.

그 문 앞에는 네 개의 부교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호랑이 같이 허공으로 높이 치솥아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노영탄은 두 발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면서도 바삭하는 소리 한 번 없이 높은 돌담 밑으로 달려들어 잠시동안 몸을 숨기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몸에 지니고 있는 온갖 진기를 용솟음치게 해서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갖춘 것이다.

두 손을 좌우 양편으로 활짝 벌리고 . 발끝으로 돌담 밑 땅을 몇 번인지 꼭꼭다젔을

몸은 벌써 높은 돌담을 훌훌 올라가고 있었다.

높은 돌담 위에올라와서 정세를 살피니.

마침 파수를 보고있는 방도 두 놈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엇인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노영탄은 이 부근 건물의 배치나 구조에는 훤했다.

전번에 한 번 와 봤던 길이다.

거침없이 달려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때다.

즉각. 몸을 솟구첬다가 내려앉혔다하면서 두 방도 놈의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아단니면서도.

숨소리 한 번도 내지 않고 당장에 몸을 날려 높은 돌담을 뛰어내린 다음 곧장 보루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바깥쪽 보루 안에 줄비하게 늘아서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시커먼 어둠에 잠겨 있었다.

죽음같이 조용하고 음산한 적막만이 이 호랑이 소굴의 무서운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파수병 몇 놈만이 손에 횃불을 높이 처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노영탄은 그까짓 놈들 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은신법을 써서 몸을 감추고 단숨에 안쪽 보루로 화살같이 날아 들어갔다.

안쪽 보루또한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단지 몇 군데 건물에서만 아직도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영탄은 일각이 삼추같은 초조한 심정이면서도 대담하게 몇 번인지 몸을 비호같이 날려.

곧장 후원에 있는 영창 부근으로 어둠을 뚫고달려들어갔다.

과연 경비는 예상 이상으로 삼엄했다.

영창사면으로는 보초들이 줄비하게 깔려 있었으며.

무수한 횃불이 낮과 같이 밝게 휘날리며 따오르고 있었다.

또 영창 사방으로 자리잡고 있는 굴속 보루에는 24명의 활소기 명수들이 각각 배치되어

매복하고 있었다.

만일에. 어떤 범인이든 한 발자욱이라도 도망치는 기세가 보이기만 한다면

당장에 이들 활소기명수들이 화살을 날릴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은 느닷없이 날아온 화살에 한 마리의 날짐승만도 못하게 목을 찔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나 노영탄에게는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일먼저 찾아내야 할것은 다른 데 있었다.

가산이 있느냐? 없느냐?

칠흑같은 어둠과 죽음같은 적막 속에서 노영탄의 두 눈에는 무서운 광체를 발산하는

유리알처럼 금사보 후원의 이구석 저구석을 노려보며 매섭게 돌아가고 있었다.

목숨을 내걸고 해동을 개시하려는 긴장된 순간.

시커먼 시야가 조금씩 훤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다.

'조중이란 놈이 나를 속이고. 제 목숨만 건지고싶은생각에서 터무니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면?'

이순간. 노영탄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만 꽉 차 있었다.

설사 조중의 말이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

만난을 물리치고 놈들과 싸워볼 비장한 결심으로 여기까지 뚫고 들어온 노영탄이였다.

그러나 우선 사람을 구출해 놓은 다음 탈출시킬 길을 미리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승패를 결정짓는 제일 중대한 조건이다.

노영탄은 어둠 속에서 영창 이편저편을 차근차근히 살펴보았다.

조중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창 한 옆으로 희미하게나마 불쑥솟아 있는 가산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러면 그렿지! 제 놈인들 나를 속일까!"

우선 조중에게 속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뜻대로 진행되고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가산만 있어서는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 가산을 꿰뚫고 보루 밖으로 통하는 굴길이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노영탄은 다시 어두컴컴한 시야 사이로 불숙 드러난 가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중이 말한 대로였다.

산기슭으로 훤하고 큼직하게 뚫린 구멍은 분명히 밖으로 통하는 굴길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노영탄은 이 긴장된 순간에도 어둠 속에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흐음! 이만하면..........

탈출하기에는 과히 힘을 안 들여도.........

노영탄은 그 굴을 멀리서 한참 동안이나 노려 보았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어느쪽으로 들이처야 좋을지 묘계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만일 풀을 베려다가 그 속에서 잠들어 있는 뱀을 깨우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때는 꼼짝달싹 할 수 없다.

겹겹이 둘러싼 포위망에 자신마저 빠져 들어가고 .

사람을 구출해 내기는 커녕.

제 몸 하나도 빠저나갈 수 없는 마지막 함정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쪽으로 ? 어떻게?'

노영탄이 요모조모로 머리를 짜며 여전히 망설이고 있을때 .

마침 그영창을 지키는 파수병 중의 한 놈이 제 자리를 어슬령어슬령 떠나더니.

가산옆 시커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한 노영탄은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기쁨을 가슴속에 꾹 누르면서 .

그 놈의 일거일동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옳지! 잘괬다! 이 틈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노영탄은 단숨에 몸을 날려서 가산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파수병 녀석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던 모양이다.

가산이 있는곳 어두컴컴한 데까지 걸어왔을 때.

파수병 녀석은 난데없이 눈앞을 번개불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시커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운 바람소리가 일어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녀석은 수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찰라에  깜짝놀라서 덮어놓고 고함을 지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만한 겨를이없었다.

그 녀석이 채 입을 벌리기도 전에 노영탄이 앞질러서 가산 꼭대기에 선 채로

그놈의 수혈을 찔러버렸기 때문이다.

파수병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한 일인지 

상대방의 얼굴을 처다볼 겨를도 없이 그대로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노영탄은 과히 높지 않은 가산 꼭대기에서 흘쩍 뛰어내렸다.

땅 위에 나둥거려진 파수병 녀석을 힘 안 들이도 가볍게 끌어다가 굴속에 처박아버렸다.

그리고 옷을 몽당 벗겼다.

날쎈 동작으로 벗겨낸 옷으로 갈아입었다.

변장을 한 노영탄은  한참 동안 이나 굴속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굴속 저편으로는 분명히 한 줄기 굴 길이 훤하게 뚫려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노영탄은 다시 머리를 수그리고 조심조심 굴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노영탄은 어둠 속에 몸을 또 숨겼다.

잠시동안 걸음을 멈추고 정세를 관망하고  나서 행동을 개시할 작정이었다.

스무 명 정도의 졸도들이 영창 사방을 수비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중 한 놈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은 없었다.

저마다 입을 딱딱 벌리고 하품만 하느라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밤이었고 .겨울날씨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쌀쌀해서 몸이 동태처럼 얼어갔다.

이십여 명의 졸도들은 담 한 모퉁이에 쪼그리고 몰려 서서 모가지를 움츠러뜨리고

팔짱을 끼고 오들오들 떨면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여러 놈 중에서 오줌을 누러 가느라고없어졌거나  혹은 누가 더 끼어들어 숫자가 늘었거나

애당초에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만한 정신도 없었다.

"흐음! 됐다. 잘들 한다! 고단하고 추운 모양인데......

어디가도 네 놈들 틈에 한 번 끼어보자!"

노영탄은 모가지를 자라모가지처럼 움츠려떠리고 팔짱을 청성맞게 끼우고 추위를

참지못해 사지를 와들와들떠는 시눙을 하면서 기우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비슬비슬 영창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몇 놈의 졸도들은 노영탄의 이런꼴을

한 번 바라다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중 한 놈이 자못 거드럼을 부리는 듯한 게을러터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야 ! 저 새끼 좀 봐라 ! 자식이 어제  대제 지내는 마당에서 한참 굶주리던 판인지라.

고기란 고기는 모조리 닥치는 대로 배가 터지도록 처먹은 모양이지 ?

설사가 나서 갈팡질팡 하구 왔다갔다 하는 꼴이란.........

자식. 너무 욕심을 부려서 처먹으면 곱게 삭이지 못하는 법이니라!"

"맞았어 ! 어제 대제 지낼때 내가옆에서 봤지만 자식 .

눈이 뒤집혀서 고기만 보면 함부로 쑤셔 넣더라니 .......

제놈의 배때기도 사람의 배때기니 설사가 나지 않고 배길 수가있느냐 말야 !

핫 !핫 ! 핫! 바보같은 자식 !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적당히 처먹어야지 ........

그렇게 무작스럽게 처먹더니 .......  하하..........."

파수보는 졸도중의 다른 한 놈이 맞장구를 첬다.

"아하하 ....... 자식 꼬락서니 묘하다 !"

"배때기 속에 들어간 고깃덩어리가 모두 살아나는 모양이구나! 하 하 하........"

"그러게 작작 처먹어 두라고 내가 그러지 않았어! 하 하 하 ......"

놈들은 한 마디씩 지껄인 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어댔다.

"누가 정말 바보인지는 두고 보아야 알 노릇이다. 어리석은 놈들 !"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은 노영탄이다.

그러나 놈들과 어울려서 같이 웃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머리를 푹 수거리고 배가  아파서 입도 벌릴 힘이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배를 잔뚝 움켜쥐고 쩔쩔매는 시눙을 하면서 슬금슬금

영창 문 앞 한 모뚱이로 힘 안들이고 무난히 휩쓸려 들어갔다.

그것이 변장을 한 노영탄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파수병 놈들은.

한 바탕 지끌인 후 웃고나서는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헤. 날씨 고약하다 ! "

"오장육부가 얼어붙는 것 같으니....."

"파수고 뭐고 이만 저만 해 두세 !"

"이 춥고 깊은 밤에 ....... 영창 밖으로 도망칠 놈이 어디 감히 있을라고....."

"어디 가서  한 잔 마시기라도 해야지..... 이 대로 밤을 샐 수야 ...... 춥고 졸려서.........."

어떤 놈은 여전히 담에 기댄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또 어떤 놈은 영창을 지키던 제 자리를

떠서 어디론지 어슬렁어슬렁 가버리는 것이다.

노영탄은 이만하면 어떤 놈 하나도 자기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놈이 없음을 확인했다.

번쩍 !

번갯불이 스치는 것 같은 순간.

노영탄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몸으로 . 벽을 훔치듯이 살금살금 접근해 들어가며.

왼손을 한 번 홱 뿌리치듯 힘을썼다.

그것만으로도 영창 문에 단단히 체워저 있는 자물쇠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벗겨저버렸다.

벗겨버린 자물쇠를  잠겨 있을 때와 똑같은 자리에다 도로 매달았다.

주춤하고 한 걸음을 물러서서 쏠 듯한 안광으로 고개를 좌우 양편으로 돌려봤다.

사방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여전히 어떤 한 놈도 알아채지 못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살금살금 접근해 들어가다가 .

흘쩍! 단숨에 몸을 날려 영창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과 똑 같은 자물쇠가 매달린 감방 문짝을 처음과 똑같이 안에서 닫아버렸다.

전광석화와 같은 행동이었다.

바삭 ! 하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그 감방은 빈틈없이 잠겨저 있으며 그 안으로 침입해 들어간 인물이 있다는 것은

귀신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번. 감욱형을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뛰어들었을 때는 창졸간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감방을 차근차근히 살펴보니.

안쪽과 바깥쪽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바깥쪽 감방이 지난번 감욱형이 감금되어 있었던 곳임을 당장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안쪽 감방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 있을 뿐.

무엇에 쓰는 곳인지를 얼른 알아낼 수 없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깜박깜박그리며 시력을 예리하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사방을 샅샅히 휘둘러보았다.

과연 바깥쪽 감방의 침상위에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

바로 악중악이였다.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시무시하게 굵다란 쇠사슬이 악중악의 어깻죽지 밑 비파골(琵琶骨)을 칭칭 감고 있었는데.

쇠사슬 한 끝은 기둥에 매어져 있었다.

악중악의 꼴은 처참하고 가엾기 이를 데 없었다.

고개를 저편으로 떨어뜨리고 잠이 들었는지 인사불성이 되었는지

숨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으며.

감방 안에 누군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노영탄은 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싸맸다.

또다시 복면한 사나이가 되었다.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앞으로 다가가 침상 앞에 섰다.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음성에는 긴장이 흘렀다.

"악중악! 악중악! "

"............."

악중악은 대답이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노영탄은 입술을 악중악의 귓가에 바짝대고 다소 속삭였다.

"악중악!  아중악!"

그제서야 악중악은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

몸을 꿈틀하더니 고개를 쳐들고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기색이다.

노영탄은 급히 손을 입가에 대고 흔들었다.

악중악이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막아버려야 했다.

노영탄은 음성을 한층 나추어서 전혀 딴 사람의 음성처럼 말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구해주러 온 사람이오.   114

어디 다치신 곳이나 없으시오?"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어둠 속에서.

악중악은 노영탄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음성도 낮설기만 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상야릇한 심정으로 악중악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

어떻게 이 무시무시한 금사보 안엘 들어 왔소!

나를 구해 줄 생각을 했단 말이오?

또 내가 여기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소?"

노영탄은 감방 안의 어둠 속에서 아므도 모르게 혼자 빙거레 웃었다.

"지금 그런것을 따지지 맙시다!

우선 한빙선자 연자심이 어디 있는가를 가르쳐 주시오!"

노영탄의 말을 듣고 나서도 악중악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무었인가 한참 동안 망설였다.

정체도 모르는 난데없이 나타난 복면의 사나이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추호라도 망설일 것 없이 빨리 말해 주시오.

일각 이라도 늦으면 그만큼 우리는 이 무서운 함정에서 헤어날 수 없소.

나는 결코 한빙선자 연자심을 해롭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시고 ........"

노영탄은 나직막한 음성으로 간절히 재촉했다.

그제서야 악중악은 결심을 했다는 듯 침통한 얼굴을  천천히 들고 노영탄의 아래 위를

힘없는 시선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더디어 한쪽 손을 들어서 안쪽 감방을 가리켰다.

"저기 ........저 안에........"

더 이상 말할 힘도 없다는 듯 악중악은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흐음 ? 그래 ?  이 감방 안에 함께 갇혀 있다고 ?"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노영탄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떡이더니 보금 금서를 선뜻 뽑아 들었다.

힘 안 들이고 슬쩍 가볍게건드리기만 했는데도 .

악중악의 겨드랑 밑 비파골을 칭칭 감고 있는 무시무시하게 굵다란 쇠사슬은 끊으저 버렸다.

그리고 나선 품에 지닌 환약 설령환을 꺼내서 선뜻 악중악에게 내밀었다.

"이것 빨리 잡수시오! 모든일은 안심하시고 .........

잠시 동안 원기나 회복하시고 조용히 쉬고 계시오!"

악중악이 묵묵히 환약 세알을 받아서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을 보고 나서.

노영탄은 손과발을 또다시 날세게 놀리더니

서슴치 않고 안쪽 감방으로 불쑥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빙선자 연자심 역시 굵다란 쇠사슬에손발을 꽁꽁묶인 채 .

한 방의 멍석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신히 목숨만 남아 힘없는 숨소리를 할딱할딱  내뿜고있었다.

두 눈을 꼭감은채.

노영탄이 감방 안으로 불쑥 들어서자.

연자심은 깜짝놀라서 두 눈을 떴다.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연자심은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쇠사슬에 꽁꽁묶인 몸이었다.

반가워서가 아니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반항하겠다는 앙칼진 태도였다.

몸을 비비틀며 연자심은 발악같은고함을 질렀다.

"네 놈은 또뭐냐? 여긴뭣하러 들어오는거냐!"

노영탄은다짜고짜 로 왈칵 앞으로 다가섰다 .

"쉬 . 아무소리도 내지 마시오 ! 나는 당신을 구출해 드리고자 들어온 사람이니......."

"그대가 나를 구해주려고 대체 누구시길래?"

"쉬......"

노영탄은 연자심의 말을 가로막고 보검 금서를 가볍게 휘둘러서

연자심의 손발을 묶은 쇠사슬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노영탄은 한빙선자 연자심에게도 설령환 세 알을 먹였다.

그리고 바깥쪽 감방으로 조용히 데리고 나왔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 이곳엘 어떻게 ?"

연자심은 연신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악중악 역시 궁금함을 금치 못하고  난데없이 달려든 사나이의 정체를 알고자 했으나 

좀처럼 알아낼 수 없었다.

복면도 복면이려니와 그 옷차림이 회양방 파수병과 똑같아서 정체를 알길이 없었다.

그저 놀라움과 의심스러움을 참을 길이  없을 뿐이다.

노영탄은 시조일관 두 사람에게 입을 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나지막하면서도 조급한 음성으로 차근차근히 말해주었다.

 

"그대들은 우선 절대로 안심하시기 바라오.

본인은 결코 그대들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니 .

지금은 무엇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궁금하게 생각하거나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오.

내 다시 밖으로 나가서 파수 보는 놈들을 흩뜨려놓을 것이니

그대들은 이틈을 타서 . 시급히 이감방을으로 부터 몸을 뛰처나가시오.

저편의 가산동굴을 찾아서 몸을숨겨나가 다시 굴길을찾아서 그길만 따라서 뚫고 나가면 .

바로 바깥쪽 보루 돌담 밑에 다다를 수있을 것이요.

본인의 생각으로는 만한 무술의 재간을 가지면 비록 원기를 잃고 있더고는 하더라도

족히 이 보루에서 몸을 빠저나갈 수 있다고 믿소.

또 본인이 드린 환약 세 알이면 그대들의 체력이나 정신력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될 줄 아오.

지금 이 보루 안에는 무예계의 고수라는 놈들이 적지 않게 몰려들어 있소 .

그러나 이 정도의 위인들쯤은 본인이 모조리 가로막아 버릴 수 있으니까.

그대들은 전후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전심전력을 다해서 도망쳐 나가기만하시오! 또 본인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일이요! "

 

악중악과 연자심은 긴장되고 초조한심정 가운데서도 감격에 넘처서 묵묵히 듣고 있었다.

복면의 사나이는 난데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닌가 .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의 입을 여전히 열지 못하게 하면서.

노영탄은 잠시 잠자코 있더니  더 한층 가느다란 음성으로 속삭이듯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이 보루에서 빠져나간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마시오.

지금 회양방 정찰기 놈들이 방방 곡곡 에 즐비하게 깔려 있는 판이요.

이 부근 회양 지대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절대로 놈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날 수는 없소.

그런 정세를 자세히 파악하고 그대들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아나시오 .

한줄기 강을 끼고 서남쪽으로 흘러서 달아나면 바로 홍택호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요.

이 강 물줄기와 호수가 서로 맞닥뜨리게 되는 경계선에 적화주라느 조그마한 섬이 있소.

그대들은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소 .

그 섬으로 올라가서 그곳까지 오게 된 내력과 경과만을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무 일도 없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대들에게 모던 형편을 자세히 알려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요...."

 

말을 마치자마자.

노영탄은 훌쩍 몸을 날렸다.

단숨에 감방 문옆에 우뚝 서더니 고개를 두어 번 끄덕끄덕 해보였다.

악중악과 연자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인사였다.

아무 소리도 말고 즉각에 행동을 개시하라는 명령과 신호의 뜻도 되었다.

벌어진 문틈으로 손을 넣더니 힘 안 들이고 열었다.

그리고는 몸을 살거머니 옆으로 돌리더니 쿵! 하고발을 한 번 구르는 소리와 동시에.

마치 숲 속을 향해날아가는 날짐승과도 같이 날세게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 괴상한 사나이다 !"

"무서운 재간을 지닌 인물이다 !"

악중악과 연자심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놀라움과 감탄에 싸여서 한동안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멍청히 서 있었다.

문득 영창 밖에서 여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p120

쿵쾅 ! 쿵쾅 !

괴상한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고 뒤숭숭하게 오락가락 했다.

악중악과 연자심은 잠시 동안 여전히 망설이고 서 있었다.

그러나 망설이고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 얻기 어려운 기회를 놓처버린다면 영영 이 마굴 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않은가.

드디어 그들은 행동으로 옮길 결심을 했다.

"자아 ! 해봅시다 !"

악중악의 들릴듯 말듯 한 음성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늘게 떨렸다. 

"네 !"

한빙선자 연자심의 음성은 모기소리 만큼이나 가늘었다.

둘은 어둠을 헤치고. 복면의 사나이가 분부한 대로 살금살금 감방문 앞으로 기어나와서

문을 밀어버리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감방을 둘러싸고 파수를 보고 있던 그 수많은 회양방의 졸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대여섯 놈이 땅 위에 꼬꾸라진 채 꼼짝 못하고 있지 않는가.

악중악과 연자심은 그놈들을 자세히 거들떠볼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가산을 향해 달음질을 첬다.

과연! 복면한 사나이의 말처럼 가산에는 굴이 뚫어져 있었고.

그 굴 속으로는 한줄기 굴길이 훤히 내다보였다.

드듬. 드듬. 두 사람은 굴길의훤한 광선만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

본래. 노영탄은 자신의 온갖 절묘한 재간을 다 부려서.

금사보 안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고 놈들의 정신을 분산시켜서 

악중악과 연자심 두 사람이 도망쳐 나가기 쉽도록 하자는 작전이었다.

두 사람에게 말을 하자말자 노영탄은 감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몸을 날리는날센 동작 앞에 십여 명의 파수병 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놈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땅 위에 모조리 나둥그라저버렸으며.

노영탄이 감방 건너편 건물 지붕 꼭대기로 날아오랐을 때까지도

그것을 눈치채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난데없이 와르르! 뚝딱하는 놀라운 음향.

노영탄이 지난번에 장난친 것과 똑같이 기와장을 손으로 으스러뜨려 뿌려버린 것이다.

기와장의 파편이 유성처럼 날았다.

지붕꼭대기에 나타난 노영탄이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아 어디 날 잡을테면 잡아봐라!"

그러나 다음 순간 노영탄의 그림자는 번쩍하고 번갯불 같이 꺼지듯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십여 명의 파수병들이 고함소리를 듣고 머리를 채 처들기도 전에 시커먼 별 같은

기왓장이 번쩍 하고 날아들었다.

머리 뒤통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 얼굴을 정면으로 맞은놈..........

순식간에 십여 명이 땅에쓰러졌으며.

얻어맞지 않는 놈들은 영문을 모르고 허둥지둥 몸둘 곳을 모를 뿐이었다.

석실보루에 매복해 있던 활쏘기 명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 어느 한 놈도 노영탄이 나타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노영탄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단지번쩍하고 사람의 그림자가 번갯불처럼 그들의 시야에 비쳤을 뿐.

화살을 꽂아 활을 겨누었을 때는 벌써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놈들이 허둥지둥. 갈팡질팡.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감방지붕꼭대기에 난데없이 사람의 그림자가 또 나타났다.

그괴상한 그림자는 마치 다리에 힘이 빠졌다는 듯 철석!쿵!하는 소리를 내더니

지붕 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졌다.

파수병놈들은 제직책도 잊어버리고.

우르르 몰려들어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그 정채가 무엇인가를 구경하려고 했다.

그러나 몰려들어서 둘러쌀 겨를도 없이 지붕 꼭대기에서 떨어진

그 사람은 한 번 펄쩍 뛰고 어깨를 으쓱하는가 하더니

그대로 여러 놈들의 머리 위를 바람처럼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훌쩍!

지붕꼭대기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는 번갯불이 꺼지듯 다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이번에는 석실 보루에 매복해있던 활쏘기 명수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 그림자가 펄쩍!뛰는 찰나에 화살을 빗발같이 퍼부어서

그 그림자가떨어진 지붕꼭대기를 겨누고 다시 맹열히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나그그림자는 장난이나 하듯이 두 팔을 휘둘렀다.

빗발같이달려들던 화살도 그그림자의 손바람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이다.

마치 줄이끊어진 연처럼 수많은 화살이 일제히 땅위에 떨어저 나둥그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두 손을 휘두르는가 하는 바로 그 찰나에 어디론지 번갯불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편 석실 보루에서는 경종이 맹렬히 울리기 시작했다

북소리

징소리

종소리

철통같은 경비를 자랑하는 금사보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이 소란해졌다.

새파란 광선을 발사하는 수십 개의 화살이 쏘아져서 밤 하늘은 갑자기 밝아졌다.

그러나 놈들은 갈팡질팡 하는 동안에 그 시커먼 그림자는

동쪽에 있는 건물 지붕 꼭대기에 다시 나타났다.

"아하하하! 이 어리석은 놈들아!"

껄껄대고 호통을 치고 나서는 여전히 번갯불처럼 없어졌다.

마치 도깨비가 숨밖꼭질을 하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아래서 올려다보는 수많은 놈들의 정신을 빼놓았다.

 

 군마란무(群魔亂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