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정협지(情俠誌)

제 2장 일편단심(一片丹心)

오늘의 쉼터 2013. 12. 6. 11:55

정협지(情俠誌) 제 1권
제 2장 일편단심(一片丹心)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강남(江南) 때는 삼월이었다.

 중원(中原)땅에는 파릇파릇 자라나기 시작하는 풀이 가는 곳마다 산과 들을 뒤덮었고,
아늑한 봄 하늘에는 귀여운 꾀꼬리 소리가 한창이었다.

 

남선북마(南船北馬)
강남땅은 강과 배가 아니면 교통이란 거의 불가능한 고장이었다. 

그리고 이 수운(水運)의 중추요, 

맥박이 되어서 대륙의  한복판을 꿰뚫고 흐르는  것이 장강(長江(양자강(揚子江)))이다.

서장고원(西藏高原)에서 뻗어난 양자강의 물줄기가 파촉(巴蜀)의 벌판을 흐리고 흘러서
 그 하류(下流)인 구강(九江)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강반(江畔)의 봄 풍경은
 초록빛  수채화 같이 아름다웠다.

 

멀고도 가까운 것 같이  손으로 스쳐보고  싶은 충동조차 받는,

강반의  파아란 봄풍경을 따라서  진강(鎭江), 남경(南京)으로 향해 그대로 흘러 내려가자면

그 도중에  왼편 기슭으로 엷은 보랏빛 속으로 내닫는 큼직한 부두(埠頭)가 있다.

 

 안경(安慶).
 안휘성(安徽省)의 수도.

 어떻게 보면 시골의  대단치 않은 부락 같기도  하지만

삼면이 강물로 둘러 싸여진 재미 있는 지형을 가진 부두.

나룻배. 고기잡이 배. 범선.

하늘을 찌를  듯한 돛대들.

바글바글 끓고  있는 부두의 풍경속에서 

사람들 또한 바글바글 끓는 고장이었다

장사아치들이 운집하고 뿔뿔히 흐트러져 가고.

교(敎)가 다르고  파(派)가 다른 가지각색  사람들이,

용(龍)과 같은  사람,
뱀과 같은 사람 틈에 끼어서 뒤범벅이 되어 얽히고 설켜서 살고 있는 고장.

 

중오(中午).
모든 사람들이 한때 휴식을 찾고, 점심을 먹기에  바쁜 때였다.

강변에 열원루(悅遠樓)라는 주관(酒館)이 있다.

비교적 정결하고 조용한 음식점이었으나 때가 때인지라 아래층 윗층 할 것없
손님들이  웅성웅성 꽥 들어차서 와글와글  떠들고 지껄이고 하는 소리가
집이 떠나갈 것만 같았다.

 이층 주루(酒樓)의 일각. 서편 강가로 가깝게 놓여진 높직한  식탁에는

소년 한 사람이  외롭고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잔에  술을 찔끔찌끔 따라가며, 

 이따금 한모금 두모금씩  훌쩍훌쩍 천천히 마시고  있었다.
얼굴은 온갖 풍진(風塵)으로 그을고,

타고  여위어서 고달프기 이를데 없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천애(天涯)를 지향없이 방랑하고 있는 노영탄 바로 그였다.

한없이 그리우면서도  쓰라린 추억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낙양(洛陽)을 떠난지 어언  반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끝에 우연히 이 안경  부둣가에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생각 저생각 어지러운  머릿속을 쉬어가며 천천히 술잔을 들고  있노라니,

어디선지 맑고 또렷한 노랫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들려왔다.

달콤한 듯 하면서도 처량한 노랫소리였다.

 노영탄은 부지중  머리를 쳐들었다. 

한참동안이나 사방을 살펴보고  나서야
그 노랫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층 주루(酒樓)의 또다른 일각.
 북쪽 창가로 가깝에 놓여진 한자리 식탁 옆에,

알지 못할  소녀와 노인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리디 어린 소녀는 고개를 포옥 수그리고 부끄러운 듯이
얌전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굴이 똑바로 바라다보이지는  않지만 옆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아도

어지간히 똑똑하고 귀엽게 생긴 소녀임을 알 수 있었다.

 늙은이와 어린 소녀의 옷차림은 소박하고 깨끗하면서도

낡고 초라함을 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소녀의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억지로 참아야만  한다
는 가엾은 모습은  처량하고 측은하기 이를데 없다.

소녀가 노래를  잠시동안 쉬고 잠잠히 서 있게 되자

식탁을 둘러싸고 우글우글 모여앉은 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떠들썩 해졌다.

 "잘한다!"
 "꾀꼬리 같은 음성이구나!"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
 "와하하하하……이 히히히히!"
 식탁을 함부로 두들기며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사람.

 이층 주루(酒樓)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고,

벌집을 별안간에 쑤셔놓은  것 같이 야단법석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건달같기도 하고 

깡패 같기도 한 사나이가 있었다.

거창하리만큼  키가 크고 뚱뚱한 몸집에다가 얼굴이 거무티티하고

음성 또한 높고 거칠은 사나이다.

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나이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기분이 제일 상쾌한 모양이다.

자못 통쾌하다는 듯이 한바탕 껄껄대고 나더지 서슴지 않고 입을 여는 것이다.
 "야, 고것 맹랑하다. 어린 년이 제법 노래를 곧잘 부르는 걸! 이리 와!

어디 이리 와서 아저씨 술이나 한잔 따라 주고… 한잔 같이 해보자꾸나!"

 이 사나이는 주루(酒樓)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높고 거칠은 음성으로 악을 쓰고 그 얼굴에 미친 사람처럼 씰룩씰룩 경망하
 짝이 없이 날뛰더니  마침내 팔을 뻗어 소녀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분거리는 것이었다.

 소녀는 한번 이 사나이의  음성을 듣자 마자 대경실색.

그런데다가 다시  손이 가까이 대들며 지분거리게 되니

어찌할바를 모르고 당황한 김에 소맷자락을 뿌리쳐버리고 몸을 살짝 한옆으로 피해섰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바로 노영탄이 앉아 있는 편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꼭같이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그 노인이 두 손을 공손이 앞으로 끼고 머리를 굽혀,

그 사나이에게 연방 굽실굽실 절을 하며 말했다.

 "서방님! 용서해주십쇼.

이 늙은 것이 어린 딸년을 데리고 타향에 왔다가 만나고자 하는 친척은 찾지 못하고,

노자는 떨어지고 헐 수 없이 어린 년의 음성을 팔아 여비나 몇 푼 마련해 볼까 하옵는 것이지,

손님을 모시고  술을 따르거나 마실 수 없사오니 그쯤 아시고 관대히 봐주시기만……."

 노인은 무슨 큰 죄라도 진 사람같이 몇번이고 공손히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그 거무티티한 얼굴에다가  거창한 체구를 가진 망나니 같은 사나이는

둥글고 큰 두눈을 한번 찢어질 것 같이 부릅뜨더니

손바닥에 있는 힘을 다해서 식탁을 내치는 것이다.

 "쨍그렁!"
 식탁 위의  접시, 대접 술병들이 공중으로  튀고 음식이 사방으로  흐트러지고.
 다음 순간 이 괴상한  사나이는 얼굴빛을 스스로 가라앉히면서

아주 점잖고 위엄 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뭣이 어쩌구 어째? 

 노래는 팔아도 주석에는 앉을 수 없다? 

술은 따를 수 없다?

이 아저씨가 네년을 좀 귀엽게 봤다는데……

발칙한 년 같으니.

네년의 값이 얼마나  올라가는 줄 모르구서.

타향에서  굴러 들어왔다면 더욱  좋아!

이 고장에  들어와서 적어두 나를, 

진삼강 도보지(鎭三江 屠保志)란  사람이
어떤 양반인지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감히 여기서 푼돈을 벌어보겠다구?

여러말 할  것이 통쾌하게 이리 건너와서 이 아저씨의 명령대로 복종해 보란 말이다!

그렇지 못한다면……흥!  이 늙은 것! 자네두 이대루 호락호락히 견디어 나진 못할 걸!"

 굉장히 긴 이름을 가진 사나이.
 진삼강 도보지라고도 하고 그것을 둘에다 갈라서 어떤 때는

진삼강 또는 어떤때는 그냥 도보지라고만 부르기도 하는 괴상한 사나이.

 얼굴과 음성에 무서운 위엄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한바탕 호통을 치고 나니
그 소녀는 점점 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두 눈에서는 벌써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노인 역시 극도의  겁을 집어 먹고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을뿐,

두번  다시 입을 벌리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망나니 같은 사나이가 앉아  있는 식탁에서 이번에는 이 사나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쩍 마르고 호리호리한,

또 다른 사나이가 소녀의  앞으로 불쑥 나서더니 팔을 잡아 끄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루(酒樓)에 꽉차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마음속으로만  울분을 참지 못하면서도 감히  어떤 사람도 나서서

관경을 간섭하거나 가로막는 사람이 없었다.

 진삼강 도보지는 본래가 이 부두에서 유명한 망나니요 깡패였다. 

섣불리 건드리거나 참견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다. 

누가 감히 그를 상대로 시끄러운 싸움을 맡고 나설 사람이 있으랴?

모든 사람이 동정에 가득찬 눈초리로 그 가련한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의

정경을 바라다 볼뿐,

감히 숨도 크게  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난데없이 '쿵!'하는  음향이 들려왔다.

모든  손님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비호같이 날아들더니 그  소녀의 앞에 우뚝 섰다.
 소녀의 팔목을 잡아 당기던 비쩍 마른 사나이가  그것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그 시커먼 그림자는 '철썩! 철썩!' 그 사나이의 이편 저편 뺨을 후려 갈기고
 턱주가리를 불이 번쩍 나도록 주먹으로 내지르는 것이었다.

 소녀의 팔을 잡아 끌어보다가  번갯불같은 불의의 습격을 받은 사나이는

떨김에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서 턱주가리를 얻어맞고 입으로 터져 흐르는 피

손수건을 꺼내서 틀어막고 있었다.

그제서야 여러 주루의 손님들은 이 난데없이 벌어진 광경을 또 한번 자세히 바라보았다.

 비호같이 달려든 시커먼 그림자는 이 고장에서 낯설은 어떤 어리디 어린 청년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노영탄이었다.
 그는 정말 이런 꼴을 참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까닭없이 선량한 사람들, 

더군다나  의지할 곳 없이 타향에 흘러 들어온 엾은 늙은이와 어린 딸을
 억누르고 괴롭게 구는 폭행 앞에 그의 의분이 북받쳐 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언제나 정의(正義)에 불붙는 그의  천성인지라,
나중에야 무슨  결과가 닥쳐오든 그런 것을  헤아릴 틈이 없었다.

참다  참다 못해 덮어 놓고  식탁을 주먹으로 힘껏 치고  몸을 날려

그 말라깽이 사나이 앞으로 달려가서 뺨을 치고 턱주가리를 쥐어 박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때려 놓고 보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다?'
 자신이 도리어  당황해져서 우두커니 상대방을  바라다보며 서 있을 뿐이었다.

 진삼강 도보지가 그대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 유명한 망나니도 노영탄이 사람을 치는 무서운 솜씨에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위신상 이따위 새파란 애송이 녀석을 그대로 두고  보다니,

그는 마침내 징글맞은 웃음을 빙그레 소리도 나지 않게 웃었다.

 성큼성큼 노영탄 앞으로 걸어왔다.

 별안간 바른편 팔을 한번  훌쩍 쳐들더니
손가락 다섯개를 갈퀴발처럼  꾸부려 가지고 노영탄의 얼굴을 향해서

육박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마치  노영탄의 얼굴을 단숨에 갈퀴 같은 손으로  움켜잡아서

으스러뜨려 버리겠다는 듯이.

 노영탄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주춤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모가지를  움츠러뜨리고 가슴과 배를  조그라뜨려서 수세(守勢)를 취하며,

 그와 동시에 왼편 손을 위로 높이 쳐들어서  공세(攻勢)를 막아내고자 했다.

 그런데 또 상상도 못할 만한 이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진삼강 도보지가  바른편 손으로 노영탄의  얼굴을 움켜쥐려 덤벼드는 찰나에,

노영탄이 왼편 손을 훌쩍 허공으로 쳐들기가 무섭게  진삼강 도보지는

을 한번 두리번 거리더니 

 손이 공중에서 쳐들린 채 꼼짝달싹도 못하는 것이었다.

손을 더 쳐들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고 뻗지도  못하고 마치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같이 나무나 돌로 깍아서 만든 사람같이 짹 소리도 못하고

직이지 못하는 진삼강 도보지.

 이런 기막힌 광경을 바라다보자 

진삼강 도보지 주면에서 우글우글 하던 많은 망나니 패들도

놀라 자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주루에 가득 차 있는 여러 손님들의 시선이 일시에 노영탄에게로 쑬렸다.
 그들은 놀라웁다기 보다 속이 후련했다.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어떻게 저렇게  절묘(絶妙)한 기술을 몸에 지니고 있을까?'
 '그쯤 되길래 이 부두에서 벌벌 떠는  망나니 패를 상대로 싸움을 걸구 나섰겠지!'

 제가끔 입밖에도 내지 못하는 말을 입 속에서 되씹으며 노영탄을 위해서

제야 안심했다는 표정들이었다. 

사실, 수많은 손님들은 여간  맘속을 태우고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필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알 수도 없는 이 낯선  청년이 멋도 모르고

망나니  패의 한사람을 섣불리 건드려 놓고 대단한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노영탄 자신이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생각해 봐도 도무지
이상야릇하고 알 수 없는 기묘하고 놀라운 일일 뿐이었다.

 노영탄은 사방을 조심조심 휘둘러 보았다.

아무것도 갑자기 변한  것은 없었다.

몸을 돌이켜 뒤를  돌아다보니

거기에는 여전히 누군지 알 수 없는  늙은 어부(漁翁) 한 사람이 태연히 앉아 있을 뿐.

 이 늙은 어부는 노영탄이 주루로 올라왔을 때,

이미 그  자리에 앉아서 혼자 술을 따르고 마시고 하며 유유히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람이었다.

 몸에는 무명옷을 걸쳤으며 등 뒤에는 사립을 벗어서 늘어뜨린 채, 

고기 바구니를 허리에 차고 식탁 한옆으로  낚싯대를 세워놓은 품이 손톱만치도 이상한 점이 없다.

 노영탄이 새삼스럽게 주의해서 바라다 보았을 때도,

이 늙은  어부는 얼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그저  유유히 혼자서 따르고 마시고 할 뿐이었다.

또  다른 두개의 식탁에는 삼삼오오 대단치 않은 장사꾼같은 사람들이 몰려앉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강남(江南)지방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멀찌가니 떨어져 있는 또 한자리 식탁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노영탄이 주루(주루)에  올라오면서 이들  남녀도 유심히 보아두었었다. 

남녀는 분명이 이 고장 사람들 같았다.

 앉아 있는  시간이 어지간히 오래됐는데도 아직껏  자리를 뜨지 않고, 

별로 주고 받는 이야기도 조용히 앉아서 이편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품이,

상하다면 확실히 이들 세 사람의 남녀들이 괴상한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노영탄이 다시 처음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을 때.
 진삼강(鎭三江)의 등덜미로는 같은 망나니 패거리들이 둘러싸더니, 

그중 두 서너명의 손에서는 비수와 단도가 시퍼렇게 번득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영탄에게 보복이 닥쳐 올 것만 같은 위기일발의 찰나.
 이때, 뜻하지도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별안간 두 사나이와 한 여자가 앉아 있는 식탁에서 키가 후리후리하고

비쩍 마른 사나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쏜살같이 망나니 패들이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람 앞으로 달려 들었다.

 비수와 흉기를 손에 들고 웅성거리는 망나니 패들 앞으로 대든

그 말라깽이 사나이는 위엄있게 고함을 쳤다.

 "손에 잡은 것들을 집어 넣어라!"
 이것은 정말 대담무쌍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의분을 참지  못하고 이 무시무시한 판에 뛰어든 노영탄의  행동도 대담하다면

이를 데 없이 대담한 것이었지만 떼를 지어서 덤벼들려는 이 고장의  망나니요,

깡패요, 깍정이 패들로 유명한 진삼강 도보지의 일당 앞에서

감히 이렇게 명령할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었다.

 노영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편 버티고 서서 이 말라깽이 사나이의

일거일동을 응시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일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다.
 꽁무니를 빼고 비실비실 달아날  수도 없는 판국이요,

또 그들 험상궂은  깍정이 패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히 놓아줄리도 없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말라깽이  사나이는 한번 고함을  질러 놓고는 바른편 팔을 쭉  뻗더니

진삼강 도보지의 등덜미로 몸을 돌리고 진삼강의 한편 어깨를

힘있게 한번 탁! 하고 치는 것이었다.

 말라깽이 사나이의 손바닥이  진삼강의 어깨를 건드리기가 무섭게

여태까지 돌부처처럼 꼼짝달싹도 못하고 서 있던 진삼강이 별안간

두 눈을 두리번두리번 하고  기침을 몇번 하고 나더니, 

죽어가다 살아난 사람같이 또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몸을 다시 움직이기는  했지만,

짐삼강 도보지는 얼굴빛이 창백하고  핼쑥하게 질렸으며 전신이

중풍에  걸린 사람같이 씰룩씰룩 하며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말라깽이 사나이는 다시 몸을 돌이키더니 진삼강과 진삼강을 둘러싸고 있는
깍정이 패들과 더불어 나지막한 음성으로 무엇인지 몇 마디를 쑥덕쑥덕 하는 모양이었다.

 진삼강의 얼굴빛이  또 한번 백지장같이 변해졌다. 

비수를 빼들던 수  많은 깍정이 패들의 얼굴도 두목인 진삼강과 꼭같이 당황하고 창백해졌다.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놈.
 자세를 바로 잡고 말라깽이 사나이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 모습.
 두 손을 깍지를 끼고 황공하다는 듯 점잖게 읍(읍)을 하는 놈.

 그들의 손에 빼들었던 비수와  흉기가 어느 틈에

어디로 감추어졌는지도 수 없었고,

만면에 두려움이 가득 차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 고장에서 유명한 깍정이,

망나니 패들도 그들의 두목인  진삼강 도보지가
이렇게 형편없는 꼬락서니를 당하는  것을 눈 앞에 보게 되니,

감히 어떤  한 놈인들 이 사나이의 명령에 거역할 수 있으랴?

말라깽이 사나이는 너희들 같은 것들은 더불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는  듯

거만스럽게 한편 손을 높에 쳐들어서 휘저었다.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진삼강은 비실비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부하  일당을 거느리고 앞장을 서서  후퇴하는 것이었다.

엉금엉금 기는  놈, 고꾸라지는 놈, 뒤로 나가자빠지는 놈.

 악당들이 완전히 층층다리  아래로 사라져버린 다음

주루(酒樓)에는 이상야릇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어 무엇을 말해 보려는 손님이 있을 리 없었다.
 '괴상한 사나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남의 싸움을 가로맡아  가지고 깍정이 패들을

깨끗이 후퇴시켜 버린 이 사나이의 정체는?'

 노영탄은 고맙다기보다  수상쩍은 생각이 앞을  서서

그 말라깽이 사나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고만 서 있었다.

 이때.
 이때 말라깽이 사나이는 천천히  얼굴을 노영탄에게 돌리더니

두 주먹을 불끈쥐고 마주 대하고  서는 것이었다.

이제야말로 너를 대적해서 자웅을  결해 보겠다는 듯이.

 그러나 다음 순간.
 말라깽이 사나이는 뜻밖에도 체구에 맞지도 않는 너털웃음을 껄껄껄껄 웃어 젖혔다.

 "헛헛헛! 여어! 젊은 분이, 대단한 재간을 가지셨는데. 정말 신출귀몰하시단 말야.
 옆에서 보구 있다가 탄복했소!"
 노영탄은 어리둥절 했다.

 점점 까닭을 알수 없는 말이었다.
 그 사나이는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면서 싱글벙글 반갑기라도 하다는 듯 말을 계속했다.

 "노형은 뉘댁이시우? 

우리  피차간에 인사나 하구 지냅시다.

어느 고을  분이시며 우리 고장엔 무슨 일루 들르셨는지?

 나는 초식문(焦式文)이라는 사람이요.

남들이 나를  옥면비표(玉面飛豹)라구두 불러 주오.

우연히  한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노라니, 

노형의 무술(武術) 재간이 이만저만한 게 아님을  알구 정말 탄복했소. 

그래서 이렇게 당돌하구 무례한 짓은 줄은  알면서도,

렁이 제 몸 추듯이  먼저 인사를 청하는 거요.

핫핫핫! 왜 저어  모수자천(毛遂自薦)이란 말두 있지 않소!

전국(戰國) 시대의 조(趙)나라 공자 평원군(平原郡) 문하에 손님이면 모수(毛遂)처럼…….

남의 소개도 바라지 않구  제 몸을 윗 양반들에게 자찬(自讚)하기 좋아하던 사람도 었었다니……. 

인사의 선후야 어찌됐든 우리 서루 알구나 지냅시다."

 노영탄은 난데없이 이렇게 나서는 괴상한 사나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몰라서 한동안 심히 망설였다.

 방금, 이 사나이는 노영탄의 위기를 막아 주었을  뿐 아니라,

사실은 진삼강 도보지를 되살려 놓았으며, 

그 깍정이 패 일당들은 이 사나이의  명령일하에 공손히 복종하고 물러나갔다.

 비록 말라빠진  얼굴이라지만 면목이 청수한  편이기는 하나

이상한 광채를 발하는 두 눈을 쉴새없이 두리번 거리는 꼴이

그 속에는 반드시 음침하고 교활한 꾀가 감추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놈은 분명히 까닭이 있는 놈이다.

제대로 된 놈이 아닐 게다!'
 '진삼강과 기맥을 통하는 같은 깍정이 패의 한 놈일 게다.

여태까지 한 짓은 모두가 꾸며낸 연극이리라.

그 속에는 무슨 계교와 음모과 숨어 있을지…….'

 노영탄은 번갯불같이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판단에  대처할 만한 다른 각오와 결심을 든든히 해보는 것이었다.

 '이놈은 잘못 알구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조금 전에 진삼강 도보지가 갑자기 돌부처처럼 꼿꼿해져 꼼짝달싹도 못하고
나에게 손찌검을 못하게  된 것을 나의 무술의  재간인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무술의 재간이 그만큼이나 고묘(高妙)하니까,

섣불리 걷드려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영탄은 이런 판단도  내렸다.

사실, 노영탄은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아무 재간이랄 것도  몸에 지닌 것이 없이 사고무친하고 생소한 남의  고

부두(埠頭)가에 굴러 들어온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놈이 정말로 나를 이렇게 기막힌 재간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구 있다면

 이런  눈치를 놓칠 것 없이  어물어물 구슬려 주고 한바탕 공갈을 때리다가,

그 틈에 재빠르게 헤치고 몸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묘하고 재미나는 일이냐?'

 노영탄은 이런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아주  점잖은 체통을 차려서  거드름을 부리면서 앞가슴만 떠억 내밀고

 버티는 자세로 천천히 대답했다.

 "천만에. 그건 너무나 과찬이시오.

나는 노영탄이라 하오.

우연히 형장의 고장을 지나치게 된 것 뿐이구….

금릉(金陵)으로 가는 길이요."

 옥면비표(玉面飛豹) 초식문은 이 말을  듣더니

대뜸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흐음…, 노형(路兄)이시라구……, 

노형께서 꺼려 하시지만  않는다면 잠시 이 아우의 집에까지 

한번 가셔서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떠시겠소?

나는 본 고장 사람의  하나로서 노형 같으신 분을  잠시나마

누추한 집에라도 모셔볼 수 있다면 대단한 영광을 알겠소!"

 말을 마치자 말라깽이 사나이는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더니

한편 팔을 쳐들어 허리를 굽히고  정중하게 층층다리 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당장에  자기를 따라서 어디로 가자는 뜻이 분명했다.

 노영탄은 진퇴가 양난하게  됐다.

그러나, 마음속에야 무슨 흉계가  있든 없든 이다지도 정중하게 구는

이 사나이의 호의를 이 이상 비겁하게 물리쳐 버릴 수도 없게 되었다.

 마음을 더 한층 다부지게 먹으면서 여전히 대담하게 버티고 서서

음식 나르는 심부름꾼 녀석을  불러서 음식값을 셈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심부름꾼  녀석은 노영탄 앞으로 와서 싱글벙글 웃어가며 공손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냥 나가십쇼! 아까 도보지 영감께서  분부하구 가신 말씀이 있으니깐,

산을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노영탄은 주머니에서 은전 몇 닢을 꺼냈다.
 음식값을 치르자는 것이 아니었다. 

겁을 집어 먹고 창백한 얼굴로 한  옆에 쭈구리고 비켜 서 있는

노래를 팔러 들어온 값은 소녀와 늙은 아버지에게 주자는 것이었다.

 "노인! 몇 푼 안되는 것이지만  노자에 보태셔서 고향으로 돌아가십쇼.

되도록이면 이런 데로 따님을 끌구 다니시지 말도록……."

 늙은 아버지가 은전을 받아들고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르며

딸을 데리고 나가 버린 뒤에,

노영탄도 보따리를 집어 들고 말라깽이 사나이의  한패인 세 남녀를 따라서

층층다리를 내려가려고 했을 때.

 "쾅!"
 등 뒤로 좀 떨어져 있는 곳에서 식탁을 주먹을 내리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심부름꾼 어린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방금 노영탄을  보고 생글생글 웃어 가며 그 비위를 맞추고 있던 때와는

전혀 딴판이 되어 가지고 악독한 눈초리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뭐냔 말이요? 남의 음식을 숫제 거저  먹겠다는 거요?

그렇게 만만한 세상인 줄 아시우? 돈두 없이  음식점엘 뻔뻔스럽게 들어와서,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이오!

 당신 같은 손님만 받아 들이다가는 장사를 집어치우고 문을 닫아 버려야겠소!"

 어린 녀석의 말투가 얼마가  각박하고 날카로왔던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찌렁찌렁 주루를 흔들 것처럼 울려 퍼져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부지중 일시에 그곳으로 쏠리게 됐다.

 노영탄도 얼떨김에 주춤하고 발길을 멈추고 섰다.
 처음에는 그것을 음식값을 내지  않고 나가려는 자기를 보고 하는 소리로만 알았다.
 심부름꾼 녀석의  하는 말을 한참동안이나 자세히 듣고 나서야  머리를 돌이켜서
 그 편을 바라다 보았다.

 몇 살 돼 뵈지도 않는 어린 녀석이 한 손으로는 허리를 떠억  버티고,

또 한 손으로는 삿대질을  해 가면서 바로, 그  오래전부터 앉아 있었던

늙은 어부(漁翁)에게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노영탄은 유심히 그 늙은 어부를 바라다 보았다.
 백발은염(白髮銀髥).

 다 낡은 무명옷 주머니 속을 쓸쓸하게 더듬어 보고 있었으나, 

그 속에는 나올 만한 돈은 한푼도 들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린 녀석에게 욕을 먹고  무안을 당하고 보니

얼굴이 시뻘개져서 초조하고 군색함을 감출 수 없는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나이 많은 노인이 심부름꾼 어린 녀석에게 창피한 꼴을 당하고 있다니…….'
 노영탄은 측은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 지나쳐 버리기에는 그  늙은 어부의 모습이  너무나 쓸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점잖은 기품이  있어 보였다.

 노영탄은 선뜻 몸을 돌이켜 그 식탁 앞으로  대들었다.

 일변, 주머니에서 은전 몇 닢을 급히 꺼내면서 일변 심부름꾼 녀석을 호되게 꾸짖었다.

 "이놈, 떠들지 말아!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 노인께서 너의 집 음식을 몇 가지 잡수셨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굴게 있느냔 말이다?

사람이란 주머니 속에 돈을 잊어버리구 지니지 않구 나오는 수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뭘 그다지 야단법석을 하느냐!"

 어린 녀석은 꾸지람을  맞고 찔끔해서 한편으로 물러서더니,

노영탄이  은전을 꺼내는 것을 보자 당장에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네! 네! 잘 알았습니다! 히히히……."
 하고 수그러져 버렸다.

 그러나 옥면비표 초식문이 한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감히 그 은전을 받아 넣지 못했다.
 초식문이 층층다리 근처에서 아래턱을 몇번  끄덕끄덕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녀석은 노영탄의 은전을 받아 넣었다.

 노영탄은 그 늙은 어부에게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두 손을 가볍게 깍지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곧 옥면비표의  한패인 세 남녀를 따라서 주루를 내려왔다. 

으로 나온 다음 노영탄과  옥면비표의 한패들은 강변의 큰 거리를 끼고

한참 동안 걸어서 부둣가 나루터에 다다랐다.

 옥면비표 초식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물 속에 매 있는  두척의 돛단배를 가리키며 노영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노형을 우연히 알게 됐지만, 이제야 무엇을 더 숨기겠소.

사실인즉 우리 회양방에는 유명한 뱃사공 네  사람이 있소.

나는 바로 그중의 하나쯤 되는  사람이요.

이  두 분들도 우리  방(邦)의 두령급에 드시는 분들이구……, 

아까 주루에서 노형의  놀라운 재간을 한번 구경하게  되자

여간 탄복하고 우러러 보고 존경한  것이 아니겠소.

우리 방에서는  요즘에 바야흐로 한번  발흥(勃興)해 볼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방주(邦主)되시는 분께서는  마침,

무술계(武術界) 각 방면으로  고인기사(高人奇士)들을 극력 망리하고 계신 판이고, 

 이런 인재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아끼시니,

 노형 같은 재간을  지니신 분이면 반드시 각별히  우대하실 것이요.

노형!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들을 따라서
이 길로 한번 회양까지 돌아가 보시는 것이……."

 말하는 품이,

마치 노영탄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어떤  협박의 뜻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노영탄은 대뜸 안색이 변해 가지고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명백히 대답했다.
 "나같은 무명소졸이야 무슨 후대를 받구  말고 할 게 있겠소?

또 형장의 회양방에는 쟁쟁한 인재들과  고명한 기수(奇手)들이 운집해 있을  것이구……,
나는 현재 일신상 긴요한 일에 얽매어 있는 몸인지라 형장의 그 의사를 따를 수는 없소."

 사실 노영탄은 가슴 속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당초부터 손톱만한 무예도 몸에 지닌 것이 없는 데다가 그들에게 잘못 알려져서

흡사 호랑이의 등을  타고 올라앉은 사람처럼 내려설 수도 없는 딱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만일에 이것이 탄로난다면  기막히는 봉변을 당할  것은 면키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이 궁리, 저 궁리, 몸을 빼서

이  난처한 지경에서 달아나 버릴 방법만을 골똘히 찾고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다가 옥면비표가 자기는 회양방 소속의  뱃사공이라고 정체를 밝히고 

덤벼들게 되니 노영탄은 더  한층 황당하기 이를데 없고, 

그와 동시에 이 일당들에 대한 가증한 심사가 북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향비(鄕匪)의 도당들이 집결된 회양방.
 저희들 한패의 보복행위를  위하여 여하한 악독한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고,
숭양표국의 국사들을 잔인무도하게 참살하던 회양방 악당들.

 이것을 눈으로 보았고,

거기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노영탄인지라 결코 그들에게 호감이 갈 리 없었다.

 이런 악독한 무리들에게  섣불리 끌려갔다가는 무슨 화를  입게 될지 알 수 있을 것이랴?

 눈치 빠른 노영탄은 옥면비표  초식움이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자

사실대로 솔직히 말하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하고

당장에  완강히 거절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초식문은 호락호락히 노영탄을  놓아 줄 리가 없었다. 

발칙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요런, 어린 녀석이 좀 추켜 올려 주었더니 제 분수도 생각지 않구….'
 '감히 우리 회양방을 업신여기다니…….'
 이렇게 생각하니 초식문은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별안간 얼굴빛이 실쭉하고 변하더니
 "으흐흐흐……흐흐흐……."

 능글맞은 냉소를 우락부락하게 터뜨렸다.
 그리고 나선,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영탄의 가슴을 향해서 육박해  들어갈 듯이 번쩍 쳐들었다. 

내공(內功)의 힘을 써서 소리도 없이 노영탄을  혼내주자는 기세였다.

 "좋아! 사정이 저엉 그렇다면 이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 어디 두고 봅시다."

 이렇게 협박적인 말만  거만스럽게 던지면서 불쑥 대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위기일발의 찰나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사태가 일어났다.

초식문이 주먹을 쳐들고 마악, 기운을 써서 노영탄을  건드려 보려고 했을 때,

그는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눈 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떤 사람의 저항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정면으로 몸을 떠밀며 덤벼드는 것 같았다.

 '이크! 잘못 됐구나!'
 초식문의 머리속의 이런 생각이 번갯불같이 스쳤을 때,

퍼뜩  몸을 재빠르게 날려서 피해보려  했으나,

이미 그럴  겨를도 없었다.

몸을 비스듬히  옆으로 빼보려 했을 때,

초식문은
 "풍덩!"

 하는 요란스런 소리를 귓전에 들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초식문의 몸뚱아리는 어떤 사람에게 떠밀리기나 하듯이,

나루터에서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쳐서 거꾸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강물에는 정통한 초식문인지라,

이만  일쯤을 겁낼 리 없이 물 속에서  단숨에 얼굴을 똑바로 쳐들 수 있었다.

 그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와 동행하던 다른 한 사람의  사내와 여자,

남녀 두령들도 어느틈엔지 초식문과 꼭같이 강물속으로 떠밀려서 둥둥 떠 있으니

이건 정말 기막힌 노릇이다.

 세 사람은 물독에서 빠져  나온 생쥐 같은 얼굴들을

제각기 물 밖으로 내밀고 서로 바라다 볼  뿐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의 무슨 힘이  이렇게 그들 세 사람을 한꺼번에 

모조리 강물 속에다 처박아  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셈이여?"
 초식문은 턱을 높이 쳐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물 위에 떠 있는 다른 두개의 대가리들이 무슨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멋도 모르고 옥면비표  초식문이 가자는 대로, 어슬렁어슬렁 뒤를  따라가다가,
역시  영문도 모르고 강물속으로  거꾸로 박혀버린 두령이라는  남녀들이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었으랴.

 '강물이 내 세상인 줄 알고 사는 나를 물 속에다 처박는 놈이  있다니?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셈일까?'

 초식문은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는 가운데서도

이렇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물 위로 둥둥 뜬 채로 고개를 돌려 멀찌가니

떨어져 있는 나루터를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나루터에는 이미 노영탄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물 위에  떠 있는 남자두령의 대가리가 놀라움에 가득 찬 고함 소리를 질렀다.

 "초타주(焦舵主)님! 저편을 좀 건너다 보시우!"
 초식문의 대가리가 물 위에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강기슭을 건너다 보자니,

외돛을 단 자그마한 어선 한 척이  마악 닻줄을 감고 나루터를 떠나려고 하는 판이었다.

그 뱃머리 나무바닥에  단정이 앉아 있는 것은 틀림없는 노영탄이었다.

 '저놈이 어느틈에 우리  일행을 강물 속에 처박아 버리고 

저 혼자서만 배를 타고 도망질을 치는 것일까?'

 놀라운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알 수 없는 기묘한 사실은  배꼬리에서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얼마전에 주루에서 음식값을 내지 못하고 

어린 심부름꾼 녀석에게 창피를 당하던 늙은 어부(漁翁),

그 사람인 것이다.

 '흐음, 이 늙은 어부와 젊은 녀석이 애당초부터 두 놈이 짜고서

주루에 나타나 우리들을 희롱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되자 옥면비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그대로 참을 수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두고 보다가는 부아가 터져날 것만 같았다.

 초식문은 나루터에서 누가 보건  말건,

그런 창피니 무어니 돌볼 겨를도  없이,

 마치 잉어가 거센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며 펄펄 뛰듯이

몸을 물위로  구쳐 올렸다.

 그리고는 평소에 단련해 둔 그의 독특한 재간을 부려서 물결을 헤치고

발길로 차 버리고 하면서 강기슭에 매 두었던 자기의 배 위로 기어 올라갔다.

 배 위로 올라간 초식문은  발을 구르고 펄펄 뛰면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저놈들을 쫓아 가자!"

 초식문이 탄 배는 흐르는  물결(順流)을 타고서 질풍같이

그 조그마한 어선을 쫓아 가는 것이었다.

 한편, 두령이라는 남자와 여자도  또 한척의 다른 배를 재빠르게 잡아  타자
급히 돛을 달고 옥면비표의 배꼬리를 바싹 따랐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도 옥면비표 초식문은 가장 중요한 점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회양방의 사대타주(四大舵主)의 하나요,

뛰어난 무술의 재간을  가졌다고 뽐내는 자기자신.

 그리고 두령이라는 두 남녀만 하더라도 남못지 않은 재간을 지니고 있는

 만만치 않은 존재들인데, 

어째서 셋이 한꺼번에 강물속으로 거꾸로 박혀  버리게 됐는지?

 그 중요한 점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었다.

 북받쳐 오르는 분노와  초조한 마음속에서,

초식문은 손아래 뱃사공들을  호령해서 배를 빨리  몰자는 생각뿐이었지,

이게 어떻게 된 까닭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부하 뱃사공이란 놈들도  물론 회양방의 졸도들로서  윗사람의 명령인지라

죽을 힘을 다해서 두 척의 배를 빨리 몰아 날으듯이 물결을 헤치
 앞서서 달아나는 배를 쫓았다.

 순식간에.
 세 척의 배는 안경(安慶)  부두에서 십여리나 떨어진 강물위를 달리고 있었다.
 강은 점점 그 폭이 넓어졌고 물결도 거칠어지며 파도가 흉흉해졌다.

 강 위에는 이미  지나가는 범선이나 나룻배들의 그림자도 희소해졌고, 

 하늘과 바다가 똑같이 망망할  뿐,

 거침없이 흐르는 빠른 물결에 강풍이  노호(怒號)하여 풍력이 맞부딪치니,

세 척의 돛단배들은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나는 새같이 수면에  찰싹 배를 깔고

일직선이  되어서 달음질 치며 뱃머리에서는
부딪치는 흰 물결이 눈발처럼 흐트러지고 휘날리고 했다.

 마침내 세 척의 배들은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배들은 갑자기 급류속으로 몰려  들어가게 됐다.

강 양편 기슭에 꼭같이  산봉우리가 솟아 있어, 

강 허리를 졸라매듯이 협착해지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노영탄과 늙은 어부가 타고 있는 조그마한 배는 이 불리한 지점에 이르르자
다소 불안한 듯이 배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옥면비표 편의 두척의 배들은 돛을 펼대로 펴고

기고만장한 듯이 질풍같이 달려 들어서,

그 조그마한 배와의 거리가  불과 이삼십간밖에 되지 않는 지점까지

화살처럼 쏴 들어갔다.

 "휘익!"
 하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두척의 배에서 꼭같이 들렸다.
 양편으로 갈라서자는 신호였다.

 한척은 바른편으로  또 한척은 왼편으로,

순식간에  두 척의 배는  앞서가는
노영탄의 배와 품(品)자 

모양이 되어서 협공(挾攻)의 태세로 추격을 하자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옥면비표  편의 두척의 배는,

 왼편 배가 앞서  가는 배와
불과 일곱 여덟간의  거리까지 접근해 들어갔으며,

바른편 배도 열간  남짓한 거리까지 가게 됐다.

 이때,
 뱃버리에 서 있는 옥면비표는  자못 통쾌한 기분으로 앞서서

달아나는 배를 건너다 보았다.

 그러나 조그마한 배에는 늙은 어부가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선미(船尾)에

아서 유유히 노를 저으면서,

누가 쫓아오든지 아랑곳이 아니라는 듯.

 노영탄도 뱃버리에 단정히 앉아서 눈 하나 깜짝하는 기색도 없다.
 배와 배의 거리가  차츰 접근해지자 옥면비표는 입에다 

손을 대고 또 한번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더니 우렁찬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자아! 다같이  감추었던 연장들을 꺼내서 이  늙은 놈부터 요절을  내 버리자!"
 그리고 두 팔을 번쩍 쳐들었다.

그의 손에는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쇠갈고리
가 불이 일 듯이 서슬이 시퍼렇게 번득이고 있었다.

 옥면비표 초식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배의 두 남자와  여자 두령들도 제각기 흉기를 꺼내들고

폭풍우처럼 늙은 어부와 노영탄이 타고 있는 작은 배로 습격해 들어갔다.

 그런데도 늙은 어부는 머리를 돌이켜 바라다볼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배끝에 앉아서 옥면비표가 고함을 지르고 덤벼들자

어깨 너머로 걸뜨리고 있던 사립(蓑笠)을 천천히 손에 집어  들더니,

마치 부채질이라도 한다는 듯 휘적휘적 가볍게 흔들고 있을 뿐이다.

 비수, 쇠갈퀴,  그리고 부하 뱃사공놈들이  던지는 가지가지

흉기가  무수한 화살같이 작은 배를 향해서 날아들어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 빗발치듯 날아가는 온갓 흉기들이 작은 배와 너더댓자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까지 날아가서는,  마치 무슨 장벽에 가로  막히는 것처럼

모조리 강물  속으로 낙엽이 떨어지듯 풍덩풍덩 빠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옥면비표는 놀라웁다기보다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하! 이놈의 늙은이가  까닭이 있는 작자로구나! 보통  늙은이가 아니로구나!'

 그제서야 옥면비표는 이 궁리 저 궁리 해보기는 하지만, 

화살같이 날아가는 흉기들이 작은 배 가까이 가서는  물 속으로 떨어져 버리는 힘이

과연 이 늙은 어부의 재간인지?

 그것을 확실히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두척의 배는  더 한층 작은 배와 거리가 가까워졌다.

불과 너더댓간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옥면비표 초식문은 이만하면 한번 손의 힘(掌力)을 써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전신을 구부정하게 굽혀  가지고, 두 손바닥을 합쳐서  꼿꼿이 일으켜 세운 다음,

다시  그것을 가슴 앞으로 조금 당겨 가지고 내공의  온갖 힘을 다해서

역도(力道)의  기술을 써 가지고 회오리바람처럼 무서운 기세로 왈칵 작은 배의 꼬리를 쳐 보았다.

 '나의 손의 힘이 한번 스치기만 하면 너 같은 늙은 어부 하나쯤야,

강물속으로 거꾸로 박히지 않고는 못견디리라!'

 '저따위 작은 배 한척쯤은 나의 손바람을 한번 쏘이기만 하면 뒤집어 엎어지지 않고는 못배길 거다!'

 옥면비표는 이렇게 자신만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도 회양방에서는 뽐내는 축이었다. 

남못지 않은 손의 힘을 자랑하고 사는  위인이었다.

 그러나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었으랴.

무서운 손의 힘을  휘두를 만큼 휘둘러서 분명히  늙은 어부와 그가 앉아  있는

배꼬리를 쳤는데도, 마치  그것은 허공을 들이치는 것과 같이 가로 막히는

아무런 다른 힘도 없고 손톱만한 반응도 없으며, 다시 휘두르던 손을 걷어들여 보아도

역시  아무것도 가로 질리는 반향이 없다.

 그저 혼자서 제멋대로 허공을 향해서 손의 힘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었다.
 '이상한 일인데! 괴상한 늙은인데! 나의 손힘에도 요지부동이라니?'
 점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옥면비표 초식문은 딴 궁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눈을  부릅떠서 뱃머리에 단정히 앉아 있는 노영탄을 흘겨보면서 고함을 질러본다.

 "네, 이 괴씸한 놈!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제 분수도 모르고

감히 우리 회양방을 조롱하다니……발칙한  놈…

어디 이번에야말로  누가 견디어내나 두고 보자!"

 배와 배의 거리가 불과 네댓간이고 보니

그 고함소리가 분명히 들렸을 터인데도, 뱃머리에  앉아 있는

노영탄은 눈  한번 깜짝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조런 앙큼스런  놈! 흐음! 네놈도 대단한  손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어디 나하고 한번 맞닥뜨려 보자!'

 이렇게 결심한 옥면비표는 이번에는 손의 힘에는 자신을 잃었는지, 

발의 힘(足力)으로 대결해 볼 작정을 하고 한편 발을 높이 쳐들어 호공을 지르며

힘으로 노영탄이 앉아 있는 뱃머리를 육박해 봤다.

 그러나 역시 노영탄도 뱃머리도 손톱만치 흔들리는 기색도 없다.
 '흐음! 요놈두 맹랑한 놈인데……. 내발의 힘에도 끄떡 없다니…….'

 옥면비표가 이렇게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껄껄대는 너털 웃음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늙은 어부의 웃음소리였다.

그제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킨 늙은  어부는 옥면비표를 건너다 보면서

좀체로 그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허허허허헛!"
 비가 걷힌 뒤의 풍월(風月)처럼 맑고, 시원스럽고 점잖은 품위 있는 얼굴.
 발그스레한 두 볼이 어린아이와 같이 귀여워 보이며,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이 듣는 사람의 마음 속을 뜨끔하게 하는 늙은 어부.

 그는 너털웃음을  치고 나서는, 희고 길다란  수염을 점잖게 쓰다듬어  내렸다.
 위엄이 가득찬 말투로 옥면비표를 꾸짖는 것이었다.

 "네 이놈! 내  말을 잘 들어봐라! 네놈들의 회양방에 가담해서 

악독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모조리 네놈들의 독수(毒手)에 걸려

죽어야 한다는 말이냐?

나, 이 늙은 어부는  오랫동안 강남 땅을 등지고 살아왔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두번 다시 내 눈으로 구경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네놈의 한줄기 목숨이나마 그대로 살려줄터이니

두말 말고 선뜻 돌아가거라!"

 말을 마치더니 늙은 어부는 옥면비표의 대답도 들은 것이 없다는 듯이

잠자코 두 발로 뱃바닥을 몇번인지 쿵! 쿵! 가볍게 굴렀다.

리고는 두  손을 좌우 양편으로 쳐들더니 옥면비표  편의 두 척의 배를 향해서

마치 무슨 힘으로 그것들을 슬쩍 밀어버리듯이 휘익! 하고 내저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힘이었다.

그 커다란 두척의  배들이 별안간 휘익! 뱃머리를 저절로 돌리고 

지금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역류(逆流)를 거슬러 올라가며 흘러나가지 않는가.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는…….'
 옥면비표는 꼼짝하는 수도 없었다.

 늙은 어부는 이번에는 처음보다  다소 가볍게 뱃바닥을 몇번인지 다시 쿵쿵 굴렀다.

그리 하니까,

그 자신과 노영탄이 타고  있는 작은 배는 흐르는 물결을 따라서

제대로 흘러 내려가는지라 쏜살같이 옥면비표 패의 두 척의 배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양편의 거리가  십여간, 이십여간……

이렇게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늙은 어부는 여전히 뱃꼬리에 점잖게 서서 멀찌가니  떨어져 나가는

옥면비표의 배를  바라보며 그 찌렁찌렁한 음성을  높이 뽑아서

마지막 한마디를 더 덧붙여 말하는 것이었다.

 "네 이놈!  빨리 돌아가서  네놈들의 회양방 방주(邦主)인 

금모사왕(金毛獅王) 오빈기(伍斌奇)에게 고해 바쳐라!

옛날의 남해어부(南海漁父) 상관학(上官鶴)을 만났더니 전하는 말이 있더라구……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 그 옛날의 홍택호(洪澤湖) 호반에서의 교훈을

길이길이 잊어버리지 말라구, 

내가 이렇게 말하더라구……한 마디만 전해라!"

 강바람은 사나웁게 으르렁대고 배와  배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는 했으나

은 어부의 위엄있는 음성은 마디마디 또렷하게 바람을 타고

옥면비표의 귓전에 울리는 것이었다. 

물결을 거슬러서 반대방향으로 올라가게 된 두척의  배에서는 수 많은 

아랫또래 뱃사공, 졸도들만이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옥면비표  초식문도 혼비백산,

얼굴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의 혈색조차  찾아내기 힘들지경이었다.

 '이건, 만만한 늙은이가 아니로구나!'
 옥면비표는 처음에는 얼떨김에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다. 

그것은 상상만 하기에도 무시무시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척의 큼직한 배가  순풍을 따라서 바람결대로 흘러  내려간다고 해도

그것만도 웬만한 힘으로는 어려운 것이다.

그 두척의  배들은 물결을 거술러서 역류를 헤치고 올라가게  한다는 것은 그만두고

그대로 한  자리에 멈추게 한다는 것만도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이것들은 이 늙은 어부가 하듯이,

두 손을 허공속에서  한번 슬쩍 밀어버리기만 해 가지고, 

무슨 형체도 없는 거창스러운 힘이 그것들을  가로막아서 밀어버리듯이 

두 척의 배가 한꺼번에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손의 힘이야말로 과연 얼마나 무서운 것이랴.

 그러나 사실인즉, 옥면비표 초식문은 이 늙은 어부의 놀라운  재간을 독똑히
눈으로 볼만한 겨를도 없었다. 또 아무 소리도 뚜렷하게  귀로 듣지도 못했었다.

 그 늙은  어부가 자기자신을 남해어부  상관학이라고 자칭하고 나섰을 때야
비로소 심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놀랐으며 뜨끔하는 가슴속에서 입 밖에
내놓을 힘도 없는 말을 혼자 중얼대 보는 것이다.

 '이크! 뭐라구? 남해어부? 상관학? 이건 애당초부터 잘못 걸렸구나!'
 옥면비표는 뱃머리에 털썩 주저앉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 뱃머리라도 다시 돌려볼 수 없느냐?"
 옥면비표는 쫓기어 가면서도 다시  한번 뱃머리라도 처음같이 돌려 보고 싶
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여러 뱃사공  졸도들을 보고 고함을 질러  봤으나
그것은 이미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랫또래 뱃사공 녀석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백짓장같이 창백한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죽어  넘어진 놈들같이 배를 땅에 찰싹 깔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만에야 그 중의  한놈이 숨이 금방 끊어지는  것 같이 힘없는 음성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안되겠습니다! 노를 저을 수가 없습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있는 힘을 다해서 움직여 봐도 요지부동이니 

이대로 가만히 있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이것이었구나!'
 옥면비표는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못쓰는 뱃사공들의 꼬락서니를 휘둘러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혼자서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섣불리 노영탄이라는 어린 녀석을  쫓아가다가 뜻밖에도

무술계(武術界)에서 제일인자라고 일컫는 고명한  인물 남해어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은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오래전부터 소문만  들었지 한번도 당해본일이 없던

신출귀몰한 늙은이의 재간. 그가 방금 썼던 그 재간이  바로

강호에 옛날부터 알려져 있는  건곤혼원장(乾坤混元掌)이었으리라.

이  손의 힘이야말로  산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고 바닷물을 기울려 버릴 수도 있다니……. 

이만하기가 다행이었지 섣불리 더 덤벼들었다가는 뼈도 못추릴뻔 했구나!'

 상대방의 정체를  인제야 똑바로 알아차린  옥면비표 초식문은

마치 깃발을 내리고 북을 거두는 패장(敗將)과  같이 짹소리도 못하고

그 길로 다른 부두를 찾아 들어가서 배를 멈추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번 다시 양자강에 배를 띄워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배를 버리고 육로를 걸어서 조심조심 회양까지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놀라고 겁을 집어 먹은 것은 옥면비표뿐은 아니었다.

 한편, 작은 배 위에서도 노영탄이 꼭같이 극도의 놀라움과  무서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배는 쏜살같이 양자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도 배꼬리에 묵묵히 입을 봉하고 선 채로 시야속에서 깨끗이 사라져 가려는

옥면비표의 배를 가소롭다는 듯이 멀리 바라다만 보고 있는 남해어부의
희고 길다란 수염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노영탄은 얼빠진 사람같이

언제까지나 뱃머리에서 건너다 보고만 있었다.

 순식간에 벌여졌다가 또한 순식간에 깨끗이 끝나 버린 이 놀라운

물싸움(水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기묘하고도 불가사의한 손의  힘이었다.

그러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노영탄의  놀라움 속에는 일변 형언키 어려운 기쁨이

어 있었다.

 "허허허헛! 헛!"
 남해어부 상관학은 강바람에 휘날리는  희고 길다란 수염을

다시 한번 점잖게 쓰다듬으며 이렇게 통쾌한 듯이 너털웃음을 쳤다.

 그의 두 눈 앞에는 망망한 강물과 무변대하와 널브러진 강남의 봄

하늘만이 바라다 보인다는  듯이 배를 같이 타고  있는 노영탄이라는

소년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듯이 혼자서 중얼대는 말이 있었다.

 "흐음! 철부지로군! 제놈의 재간을 가지고 감히  비수나 흉기로써

나를 대적하여 굴복시킬 생각을 하다니……,

네놈들의 일당은  자고로 약한 사람, 선량한 백성들만  괴롭히는 악독한 무리들이었어!

내,  그것을 보고 모른  척하고 있을 수야……."

 꾸욱 다문 입.
 늙기는 했으나 아직도 사람을 쏠 듯한 매서운 광채가 번득이는 두 눈.

 정의(正義)와 의협심으로만 뭉쳐진 거룩한 얼굴같이 노영탄에게는 바라다보였다.

뭐라고 먼저 말을  붙여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감격에 넘치는  순간이었다.

놀라운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노영탄은, 어떤 기쁜 생각  때문에

전히 두근두근 파동치는 가슴속을 누를 길이 없었다.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느님이 천애고아 노영탄의 망망한 앞길을  굽어 살피시고

이렇듯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인지도 몰랐다.

 뱃머리에  멍청히 선채로 노영탄은  선뜻 입을 벌리지 못하고, 

강물과 하늘이 맞닿은 아득하게 먼 줄기 수평선만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미 아득하게 먼  것이 아닌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그리고  강물과 하늘과 그리고 그 중간에  널브러진 무변대한 공간이 온통

한개의 어떤 얼굴로 변해서 왈칵 덤벼들며 귓전에다  대고 속삭여 주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잠겨 있었다.

 '천하에 두루두루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아리따운 소녀.
 생명의 은인인 감욱형.

 반년이나 되는 동안 천애를 방황하면서도 일구월심, 자나깨나 잊을  수 없던
그 방울 같은 음성이 새삼 귓전에다 대고 소곤대 주는 것만 같았다.

 '한번 다시 소녀를 만나볼 수 있는 날이…….'
 '그러나 그것은 내 자신이, 저 악중악에게 받은 창피와 수치를

설욕할 수 있을 만한 무술의 실력을 몸에 갖추는 날이 아니면…….'

 이제는 그날이 아득하게 먼  수평선에서 당장에 차츰차츰 다가들고 있는 것만 같은

기쁨에  노영탄의 가슴속은 점점 더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것이었다.
천릿길을 멀지 않다  하고 강호 넓은 땅을  방랑해 돌아다닌 것도 오로지

한가지 목적때문이었다.

 '명사(名師)를 구해서, 남못지 않은 절기(絶技)를 배워서…….'
 그러나 이런 목적은 좀체로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고, 

절망과 비관에 싸여서 낯선 고장을 떠돌아 다니던 판이었다.

 '만일에 옥면비표 초식문에게 끌려가는 몸이 되었다면…….'
 소름 끼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늙은 어부의 얼굴을 바라다보는 노영탄이었다.

 무슨 생각에 젖어 있슴인지,

여전히 묵묵히 배꼬리에 선 채로  흰 수염을 강바람에 휘날리면서

머언 하늘만을 바라다 보고 있는 남해어부 상관학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거룩한 신(神)의 모습같이 노영탄에게는 

고하게만 바라다보였다.

 방랑생활 반년 동안에 노영탄은  비록 나이는 어릴망정 수많은

무술계의 명사고수(名師高手)라는 위인들을 접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위인들의 십중팔구까지는 자신의  몇푼어치 되지도 않는

명성이란  것을 가지고 무술을 모르는 사람들을 농락하고 어지럽게 굴뿐이었다.

 무술의 오묘한 경지를 스스로 터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짜요,
어떤 것이 고명하고 탁월한 재간이란 것쯤은 판단할 줄 알게 되었다.

 애당초부터 진삼강 도보지(鎭三江  屠保志) 따위의 섣부른 재간쯤은

안중에도 없었던 노영탄이었다.

 그나 그뿐이었으랴.
 무명옷에 사립을 쓰고  주루에서 태연히 술을 마시고  앉아 있던

한낱 보잘 것 없는 늙은 어부가 어느 모로 보아도 덮어 놓고 무전취식할

노인이 아니고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는 우연한 판단을 내렸을 때부터

그것은 노영탄에게 어떤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주는 중대한 기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인연이었던지,

나루터에까지 뒤를 따라와서 위기일발의  곤경까지 구출해줄 줄이야.

 오래전부터 강호에 위명(威名)을  떨치고 있던 무술계의 제일인자의 남해어부,

그를 이렇게 쉽사리 만나게 되다니.

 또 약하고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한 무리들에 대한

그의 뚜렷한 증오심과 정의(正義)에 대한 고묘한 정신.

 노영탄은 기쁨이 넘쳐서 미쳐 날뛸 것만 같았다.
 이 이상 무엇을 망설이고 주저할 것이랴.

 노영탄은 옷깃을  바로 잡고 조심조심  걸어가서 남해어부의 발밑에

무릎을 끓고 엎드렸다.

 "소생, 철부지의 불미하온 행동으로  인연하와 이렇게 고명하신

선배님께 번거로움을 끼쳐드리게  되었사오니 죄송하옵기  이를데 없사옵니다!

하치않은 어린 생명을 위기에서  건져주신 선생님의 은혜 태산에 비길바 아니오니, 

골난망이오며 길이 한낱 어린  제자로서 선생님을 받들어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옵신다 하오면,  선생의 높고 깊으신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올 날이 있을까 하옵나이다."

 남해어부 상관학은 그제서야 고개를 두어번 끄덕끄덕 하더니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띠우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이 어린 나이에 천생의 의협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악한 무리들 앞에 두려움을 모르고 약한 사람을 구해주려는 정신,

그것은  가히 칭찬할 만한 것이다.

허나,  너는 아직도 세정에  어둡고 일시적 충동으로 몸을  그리치기 쉬운 때다.

조심해야  하느니라.

이름이 무엇이며, 무삼  연고로 어린 나이에 이렇게 강남 땅을 떠돌아 다니고 있는고?"

 노영탄은 수그렸던 고개를  쳐들고 노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한없이  자상하고 평화스러운 노인의 얼굴.

노영탄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노영찬은 다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감격에 넘쳐서 공손히 대답했다.
 "노영탄이라 하옵니다……."

 그리고는 참변을 당한  가정 형편, 형제가 이산(離散)된 일, 

낙양으로 아는 사람을 찾아 갔다가 남의 무예를 도둑구경하고 혼이 났던  일이며,

자살을 해 버리려는 찰나에 구함을 받은 일,

그리고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강호를 헤매고 있다는 처지를 숨김없이 자세히 말했다.

 남해어부는 아래턱을 몇번 끄덕끄덕 하더니 탄식하면서 하는 말이
 "흐음! 너같이 어린  나이에 그렇게 억울한 화를 입고  있다니 내 보아하니,
너는 올바른 지도만 받으면 비범한 재목이 될 수 있는 출중한 천품을 타고난 놈 같다.

내가 한탄하여  마지 않는 것은 소위 숭양파가 낡아빠진 그들의  규율만을 고집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천하의 인재들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점이다.

나는 몸도 늙었거니와 오랫동안 강남 지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지내다가

이번에 볼일이 생겨서 남경(南京)까지 가는 도중에 뜻밖에 너를 만나게 됐으니

이는 필시 무슨 인연인 성싶다.

내 평생에 제자를 거느려 본  일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너 하나만 제자로 삼아보겠다."

 남해어부는 인자스러운 두  눈으로 노영탄의 아래위를 유심히 한참동안이나
훑어보았다.

 노영탄은 너무나 기뻐서 몸  둘 곳을 모르며 다시 머리를 땅에 닿도록 세번이나

수그려 정중하게 절하고
 "사부(師父)님!"

 감격에 넘치는 소리를 참지 못하여 몸을 일으켜 남해어부의 곁으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남해어부ㅌ 한 손으로 노영탄의  팔을 잡아 일으키고, 또 한손으로는

그  희고 긴 수염을 연방 쓰다듬으면서 위엄에 가득 찬 음성으로 말했다.

 "무술이란 오묘하고 심원(深遠)하기  헤아릴 수 없는 길이지만  몸과 마음을 바쳐

발분노력하면 진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요즘 사람들이 무덕(武德)이란 것을

전혀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왕왕 자사자리(自私自利)의 정신으로  움직이기 일쑤요, 

혹은 옹졸하고 협착한  종파(宗派)와 문호(門戶)의 관념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고 죽이고

명리(名利)를 쟁탈하는데만 급급하여 그  마음씨가 잔혹함과 수단 방법의 악독함은

옛사람들이 숭상하던 무로써 친구와  친구들을 사귀고 친하게 지낸다는 근본정신과는

전히 배치되는 짓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거룩한 의협정신으로 약한 사람을
도웁고 구해주기  위해서 용감히 싸운다는 것은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너는 나의 제자가 됨에  있어서, 제일 먼저 이 무덕을 발휘해야 한다는 

숭고한 정신을  저버리지 말고 결코 요즘  무술계의 퇴풍악습에 물들어서

당파와 문호를 만들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짓을 해서는 못쓴다."

 "사부님의 지리명훈(至理明訓)! 각골불망하옵고 길이 받들어 모실까 하옵니다.!"

 봄날 하루 해가 서녘게 기울기 시작한다.

고기잡이 배들이  흥겨운 노래가락이 들려오는 양자강의 물줄기를 타고

스승과 제자를 태운 일엽편주는 금릉을 향하여 흘러내려갔다.


 다음은 강호입문(江湖入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