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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2부 15장

오늘의 쉼터 2013. 6. 23. 21:24

여인의 향기 - 2부 15장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며 말하니 형은 하여튼 내일 당장 귀국한다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앉아서 지금 나에게 닥친 일들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은영은 잠든 연지를 끌어안고 연지의 뺨에 입맞춤을 한다.

전화를 듣고 있던 은영은 아내의 사망에 대해 대충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확실한 내용이 궁금했던지,

그녀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누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이층의 수진 엄마가.”

“자기한테도......!?”
“응.......!?”

“경찰에서는 뭐라고 해요?”
“강도가 들어 온 것도 같고, 아직.......!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

“연지는 어떡해.......!? 왜 여기 있어?”
“과학수사반의 현장검증을 할 때까지 현장보전을 해야 한데.......”

“자기가........ 전화했었나본데 못 받았어.”
“집에 잠간 들렸다 온다고 하던데.......?”

“지갑을 놓고 왔기에.......,집에 들렀다가 손님 만나서 전화 못 했어.”
“혹시........동네에서 연지엄마 못 봤어?

“못 봤는데, 왜.......!?”
“.........!”

은영이 긴 속눈썹을 깜박이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나를 의심하느냐는 표정이다.

공연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녀가 식사라도 하러 가자고 하지만,

모든 것이 귀찮고 식욕도 없었다.

그녀가 호텔 로비에 식사를 배달해달라고 했다.

난 곁들여 양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해달라고 하였다.

주문한 식사와 양주가 배달되었다.

나는 맑은 정신을 견딜 수 없어 양주부터 그라스에 따랐다.

은영도 한잔 달라고 잔을 내밀었다.

양주를 채운 그라스를 비우고 나니 목구멍부터 위로 들어가는 알코올의 짜릿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침부터 빈속이었기에 위가 쓰리기도 하다.

그녀도 잔을 비우고 나서 나의 표정을 살핀다.

“식사 좀 해요. 식사도 제대로 안 했지?”
“.......!?”

대답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은영이 눈을 흘기더니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어준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어 스위치를 눌렀다.

광고가 나오고 이어서 뉴스시간을 알린다.

침묵이 흐르지만, 그녀와 시선만으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뉴스가 거의 끝날 무렵, 아나운서가 오늘의 사건 소식이라면서

상일도 살인사건이라고 멘트를 한다.

아내의 사망 사건이었다.

화면을 보면서 나는 또 한잔의 양주를 들이킨다.

피로 얼룩진 사건현장이 나오고 사건의 소식을 전하지만,

경찰에서 원한이나 강도에 의한 가능성을 두고 수사 중이라는 말로 끝맺음을 한다.

이어서 예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아이돌 그룹들이 나왔다.

아이돌 그룹 중에는 ‘와일더’도 있었는데 수진의 모습도 보인다.

리모컨의 수위치를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지금은 즐겁거나 흥겨운 음악도 소음으로 들린다.

수진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아내에 대하여 죄책감을 의식할 것 같다.

은영이 주춤거리며 나에게 말한다.

“우리 집으로 가면 안 돼?”
“영이나 들어가.......!”

“나도! 그럼, 여기 있을래.”
“........”

은영의 말은 고마우나,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아니고,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이성적인 판단이 허락지 않았다.

그냥 번민하고 고뇌하는 시간을 오히려 즐기고 싶다.

술잔을 들어 마시면서 침묵과 망각의 고통 속에 젖어들어 밤이 깊어간다.

양주 몇 잔을 비운 은영은 나의 어깨에 기대 있더니

연지를 끌어안고 잠이 들어있었다.

나도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새벽안개로 자욱한 한강을 내려다보다가 호텔을 나와 강변을 거닌다.

많은 사람들이 발자취를 남긴 강변 어딘가에는 아내의 흔적도 있을 것 같다.

강변을 거닐다가 안개 속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호텔로 들어가니

은영과 연지가 깨어 있었다.

은영의 가슴에 안겨있던 연지가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로 달려든다.

“아빠! 이모 왔어! 히히~!”
“응, 그래.......”

“눈뜨니까, 예쁜 이모가 와있었어.”
“그러니........”

어리광이 가득한 연지를 안고 보니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은영이 주문했는지 아침 식사가 배달되어 왔다.

숙취를 깨라고 해장국을 주문한 모양이다.

식사를 끝내고 은영이 나와 연지를 번갈아 살피더니 의상실로 전화를 한다.

디자이너 미스 진에게 며칠 동안 가게를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장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남과 같이 서울역에 도착한다고 한다.

은영에게 연지를 맡기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나를 본 장모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애끓는 푸념을 한다.

집으로 모실 수도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집근처의 모텔로 처남과 장인장모를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캐나다에서 온 형님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장인장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항으로 형을 마중 나갔다.

형과의 오래간만의 해후에 반갑기도 하고 감정이 북받친다.

지나간 얘기들을 나누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형은 귀국한 틈을 내어 친구를 만나본다고 한다.

형과 대화를 나누고 장인장모가 묵고 있는 모텔에 들렸다.

장모가 연지를 궁금해 하기에,

평소 아내와 가까운 친구 집에 맡겼다고 변명하였다.

장모에게 연지를 보러가야겠다면서 모텔을 나와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다.

호텔입구의 정원에서 놀고 있는 연지를 바라보고 있는 은영을 발견했다.

다행스럽게도 연지는 엄마를 찾지 않고 은영을 이모라고 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은영도 나에 대한 관심보다는 연지를 친딸처럼 사랑스럽게 보살핀다.

다음날 경찰서에서 강력반으로 출석을 요구했다.

긴장과 번민의 혼란 속에 승용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한다.

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분위기는 긴장감과 위압감이 들었다.

험상궂은 사람들이 수갑을 차고 언성을 높이는 형사 앞에서 취조를 당하고 있고,

피해자 측인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하소연을 한다.

강력반장인 곽 반장이 나를 강력반 안의 작은 조사실로 안내를 했다.

그곳에는 수진엄마도 와서 있었다.

아마도 경찰에서는 원한이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일어난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배제하지 않는 모양이다.

수진엄마도 경찰서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수진엄마와 마주앉은 황형사가 수진엄마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황 형사가 나에게 목례를 한다.

이따금 노트북에 기록을 하는 황 형사 옆에는 투명한 비닐봉투가 놓여있었다.

피가 시커멓게 엉겨 붙은 수정 구슬을 보니 끔찍스러웠다.

아마도 아내를 살해한 증거물로 가져온 것 같다.

한동안 수진 엄마와 질문과 답변이 이어가다가 황형사가 언성을 높인다.

“왜 거짓말을 해요. 아 아줌마 안 되겠네. 사건 당일 날은 아줌마가 시장에 가려다가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이제는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다가 봤다고?”
“아, 아니에요. 세탁물을 널고, 시장을 다녀오려고 했다고요.”

“아줌마 거짓말 하면 안 돼?”
“네, 거짓말 아네요.”

“피해자가 아줌마에게 자주 싸움을 걸었지요?”
“아니요! 연지엄마는 말이 없고 착했어요. 다만 요즘 와서......”

“요즘 와서 뭐? 싸웠어?”
“아뇨! 요즘 와서 연지 엄마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집을 사용한다고 나가달라고 해서,

말다툼을 두 번 했어요. 그 외에는......”

“그래서 아줌마가 화가 났어요?”
“아뇨! 두 번, 그러고 말기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그럼, 집을 비워줄 생각은 있었어요?”
“네. 정 비워달라면 비워줘야죠. 집 주인이 그러는데.”

“아래층 부부간에 가끔 다투는 소리를 들었지요?”
“아뇨! 두 분 모두 착하기 때문에 조용했어요.”

수진 엄마에 대한 심문은 한동안 이어졌다.

황 형사는 수진엄마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넘겨짚으며 달래보기도 한다.

나도 수진 엄마를 의심했지만, 아내를 살해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황 형사는 아내와 나 사이의 부부관계도 세밀하게 질문을 했다.

거짓말이 들어나면 다시 부르겠다고 하며 황 형사는 수진 엄마를 돌려보냈다.

일어나서 나가던 수진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꾸벅 인사를 한다.

수진엄마가 나가고 황 형사가 나를 부른다.

내가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니 황 형사는 서류를 정돈하며 검토하였다.

서류를 뒤적이는 황 형사가 간간이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수사선상에 올려놓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앞에 앉혀놓고 밖으로 나갔던 형사반장도 다시 들어왔다.

형사반장이 나에게 말한다.

“고통스러우시죠?”
“네.........”

“부검과 과수반의 현장 수사가 끝났는데, 아세틸과 아세틴아미노펜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아세틸은 우울증 치료제로서 혈압강화제로도 사용되고, 아세틴아미노펜은 두통약 성분입니다.

사망과는 관련되지 않다고 보는데, 부인께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대화도 기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부인과 자주 말다툼을 하셨겠네요?”
“아뇨! 말다툼이라도 하면 받아 주겠는데, 대화를 기피했으니까요.”

“아내의 사인은 후두부 파열로 인한 사망입니다.

이 수정 구슬을 알고 계시죠? 부인을 직접적으로 사망케 했던 살해도구입니다.”
“네, 결혼 초에 인사동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형사반장과 황 형사는 부검결과와 수사기록들을 검토하는 것 같았다.

정말 아내가 나하고 싸움이라도 하려고 했으면 차라리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하던 아침에도 아내는 ‘내 마음은 어떤지 알아!?

 왜, 참고 견디는지 모르잖아!’ 라는 말만을 남겼다.

황형사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곽 반장이 밖으로 나간다.

이어서 황 형사가 나에게 질문하였다.

“결혼은 어떻게 하셨나요?
“형님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서.”
“그럼 중매결혼을 하신 건가요?”
“네........!”

“부인과의 부부관계는 어떠셨습니까?”
“부부관계.......!? 결혼 초에는 행복했지요.

아이를 낳고나서 바로 아내가 임신했는데 자궁외 임신으로 수술을 하고

아내의 성격이 변한 것 같아요.”

“부인과 갈등으로 크게 싸우신 적은 없나요? 이를테면 폭력을 쓰거나.......”
“그런 일 없습니다.”

“통장관리는 누가 주로 하나요?”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보너스는 자동으로 통장에 입금되고 아내가 사용합니다.”
“통장잔고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신경 안 써서 모르겠는데요.”

“그럼 사건현장에 있던 부인의 지갑에 현금이 얼마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네!”
“강지환씨는 직책상 교제비도 있어야하고, 그럼 어떤 돈으로 비용을 충당합니까?”
“부동산과 증권 거래를 하는 통장이 별도로 있습니다.”

“고객이나 직원들과 술자리를 자주 하시나요?”
“가끔 하지요.”
“흠......! 그러면 솔직히 남자들끼리 얘기인데, 여자들과의 육체적관계도 있었겠군요?”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가끔 집에 못 들어갈 때도 있겠군요.”
“아뇨! 지방 출장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출장은 자주 다니시나요?”
“지점에 문제가 있거나 상부지시가 있으면 가게 되지요.”

“출장가시면 부인께서는 보통,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요?

주부들은 수영이나, 에어로빅 등을 취미생활을 하잖아요.”
“아내는 별다른 취미생활은 없고 한동안 꽃꽂이를 했었는데, 요즘은 별로........”

“부인께 원한을 살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성격이 담백하고 조용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겨하지 않고,

누구하고와도 다툼을 싫어합니다.”
“부인께선 대학을 나왔고 동창이나, 친구들은 있을 텐데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동창들은 있겠지요.”

“죄송하지만, 혹시, 결혼 전에 부인께서 사귀던 남자라던가,

가깝게 지내던 남자 친구들은 없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압니다.”

아마도 황 형사는 원한관계나 남녀의 치정관계를 배제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내와 내 사이에 있었지 않은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육체관계를 가진 은영과 수진을 비롯한 여자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괴로웠다.

황 형사는 내가 대답을 할 때마다 메모를 하거나 노트북에 입력을 했다.

문득, 아내의 처참한 시신이 떠올랐다.

스커트가 걷어 올려지고 팬티가 발목에 걸려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의아심을 느꼈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볼펜으로 탁자를 톡톡 치고 있는 황 형사에게 내가 물었다.

“부검결과 혹시, 아내가 성추행당한 흔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저희도 그 점을 의심하고 있는데, 성추행을 당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부인에게 지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건의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 아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층 아줌마와 부인 사이는 어떻습니까?

집 문제 때문에 다투기도 했다는데.”

“평소에는 그동안 같이 살아온 정도 들어 친척 같았습니다.

재계약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변한 아내의 의도를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

노트북과 나를 번갈아 보는 황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내의 남자관계를 묻는 질문에 아내가 떨어트렸던 사진속의 남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내의 명예를 더럽히고 싶지도 않고, 사진 속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황 형사의 질문은 오랜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아내와의 부부잠자리까지도 묻는 질문에 예민해지기도 했다.

지루한 질문을 끝내고 황 형사가 사무실을 나갔다.

이어서 곽 반장이 들어왔다.

“애석하게도 사건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집은 사용하셔도 되고, 부인의 시신은 내일 인도해 가십시오.”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단서라도 찾았나요?”

“아뇨! 비슷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

“이런 사건은 대부분 장기화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단서로 남녀관계의 치정이 얽힌 내용이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강력범들을 취조하다보면 우연하게 연결되어 사건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

이맛살을 찌푸리는 곽 반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원한관계나 치정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으로도 배제하지 않지만,

범죄자에 의한 사건으로 치중하는 것 같았다.

곽 반장은 몇 가지 보충 질문을 하고는 사건의 경과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나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하면서 아내의 사망에 대한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조사실을 나와 바라보는 강력반은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형사들 마다 책상 앞에 범죄 대상자들을 놓고 심문을 하고 사건조사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강력반 문을 열고 나오다가 등 뒤에서 들리는 형사와 범죄자의 목소리에 주춤한다.

“너! 목요일 날, 상일동에도 갔었지? 그것도 대낮에. 바른대로 불어?”
“아. 아닙니다! 정말 거기는 금시초문입니다. 다 말해놓고, 거기 하나를 말 안 하겠어요!”

“거짓말 마! 임마! 발각되면 네 친구가 훔친 물건도 뒤집어쓴다.”
“네! 무슨 사건인지 몰라도, 하늘을 두고 맹세할게요.”

“미친 놈! 너한테 하늘이 어디 있어. 지랄하구 있네.”
“에쿠......!”

형사가 들고 있는 파일철로 범죄인의 머리를 후려친다.

끌려 들어오는 강력 범죄 대상자마다 아내의 사건과 관련지어 추궁하고 있었다.

경찰서를 나와 승용차에 올라탔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 내 자신을 탓하면서도 아내를 살해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함 을 견딜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의문!

아내가 죽음을 당한 집으로 가보고 싶다.

승용차를 몰아 집으로 향한다.

집의 대문 앞을 가로막았던 통제구역을 알리는 노란 테이프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문 앞에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대문을 열어 젖힌다.

어수선한 정원과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집! 활짝 열어 젖혀져 있는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침침한 거실! 어디선가 들새 한 마리가 정원수 위에 앉아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내의 영혼인지도 모른다.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현관 문 앞으로 다가서는데, 이층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수진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경찰로부터 집에 들어간다는 통보를 받은 것 같다.

빗자루로 들고 내려다보던 수진 엄마가 층계를 내려온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 수진엄마를 넋을 잃고 쳐다본다.

층계 밑에서 나를 마주한 수진엄마가 동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떡해요! 연지 아빠!”
“........!?”

“경찰에서는 뭐라고 해요?”
“아직.......”

“연지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
“..........”

침묵을 지키는 내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수선한 거실의 바닥과 벽에 낭자했던 피가 응고되어 검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내가 쓸어져 있던 윤곽을 표시하는 흰 선이 그대로 있었다.

새삼스럽게 사건의 현장을 인식하고 아내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추측으로 떠올린다.

몸서리쳐지고 온 몸의 신경이 짜르르하게 전율한다.

천천히 안방을 향해 걸어간다.

열려진 옷장과 어수선한 방안의 광경을 돌아보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진열장에서 양주병을 꺼내 병마개를 열었다.

양주병을 들어 꿀꺽꿀꺽 들이킨다.

그리고 아내의 시신이 있던 자리 옆에 털썩 주저앉아 진열장에 몸을 기댄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뿌연 잿빛으로 변해있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지도 모른다.

무심코 침침한 소파 밑을 바라보다가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것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엎드려서 소파 밑으로 기어가 손을 뻗었다.

반짝이는 작은 물체를 집어 들고 보니 조각난 작은 자수정 구슬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수진에게 선물한 목걸이를 떠올린다.

깨진 조각이지만 분명히 수진이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 자수정 구슬이다.

어찌해서 수진의 목걸이 구슬 조각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

암울한 그림자가 가슴을 억누른다.

아내의 죽음과 수진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하던 시간에 수진은 스케줄로 분주했고,

방송국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수진의 목걸이의 깨진 구슬과 아내가 사고를 당하던 시간과 연관지여 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집념이라고 고개를 흔들어 지우려고 한다.

구슬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손에 잡히는 휴대폰을 꺼내든다.

 아내의 죽음에 관한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다.

평소 고객으로 알고 있는 청소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집안 청소를 의뢰하고 일어선다.

승용차를 몰고 은영과 연지가 있는 호텔로 향한다.

다음날, 일찍이 경찰서에서 아내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식장에 안치하였다.

연락을 받은 처가댁 식구들이 달려오고 형도 문상을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의 캠퍼스 동창들도 찾아와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

상주를 할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아 처남과 내가 문상객을 맞이한다.

아내의 고향에서 올라온 친척 중에 아내가 떨어트린 사진 속의 남자 모습에 긴장했다.

조문을 마친 남자가 돌아간 다음 처남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구시지?”
“매형 결혼식에도 왔잖아요. 사촌형님 모르세요?”
“아! 그랬던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의문은 물렸지만, 친척 사이에도 얼마든지 은밀한 관계는 있을 수 있다.

아내의 영정 앞에서 장모는 기절하다시피 애닮은 눈물과 통곡을 한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느티나무 집 할머니, 슈퍼의 아줌마, 동네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은영이 연지를 데리고 모습을 나타났다.

장모와 장인을 본 연지는 반가움에 깡충거리며 기뻐한다.

영문도 모르는 연지는 한동안 사람들의 귀여움 속에 재롱을 부리다가,

아내의 영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연지의 모습에 가슴이 북받친다.

문상객들이 아내의 영정 앞에 조문, 장모의 애닮은 통곡,

아내의 생전 모습을 떠 올리는 대화 등 분위기가 가라 앉아 있다.

결국 연지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에게 매달리며 울먹인다.

“아빠!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죽은 거야?”
“애구! 우리 연지!”

지친 모습으로 눈물로 얼룩져 있던 장모가 연지를 끌어안는다.

하지만 연지는 외할머니를 뿌리치고 나를 올려다보며 매달린다.

연지의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흐른다.

연지를 바라보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맺힌다.

멀리서 바라보던 은영이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인지 다가와서 연지를 끌어안는다.

은영의 가슴에 안기는 연지가 드디어 울음을 터트린다.

“싫어! 싫어! 엉 엉~! 엄마가 나중에 온다고 아빠가 말했잖아.

우리 엄마 어디 있어! 어 허 엉.........!”
“연지야!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줄게.......”
“싫단 말이야! 엉 엉~! 이모! 헛 엉 엉! 우리 엄마 죽은 거야?”
“아냐! 내가 말해줄게.”

은영이 발버둥치는 연지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 나간다.

문상객들이 연지를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쑥덕거린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안면이 있는 동네 사람들이 은영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다.

아내와 은영이 가깝게 지냈으니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바라보던 장모가 넌지시 나에게 묻는다.

“저 여자는 누구여?”
“아! 같은 동네에 사는데, 연지 엄마 학교 후배로 자매처럼 지냈어요.”
“오! 고마우셔라.”
“........!”

장모는 얼룩진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장모가 은영을 별다른 생각 없이 여기기에 안심이 되었다.

문상객들마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의아하게 여기고 질문을 한다.

오랜 시간동안 문상객들을 맞이하고 서있으려니,

나는 감각이 없는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

시간이 멈추어진 공간에서 육신만 허우적거린다.

장례문제를 말하는 장모에게 장인은 무덤을 찾고 싶지도 않다면서 화장을 하라고 한다.

아마도 딸의 죽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괴로워하고 싶지 않은 장인의 마음인 것 같다.

하지만 장모의 반대로 아내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기로 했다.

부검을 해서 만신창이가 된 아내지만, 나도 먼 훗날 연지가 엄마가 그리울 때

찾아가게 하고 싶었다.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 회사의 직원들과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장례식장은 회사직원들로 가득하여 혼잡을 이룬다.

직원들 중에는 한지영의 모습도 보인다.

애잔한 눈빛을 보내던 한지영과 여직원들이 손수 문상객들의 시중을 들며 바쁘게 움직인다.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던 회사직원들은 자정이 지나서 돌아갔다.

한지영이 몇 번인가 나를 돌아보며 장례식장을 나갔다.

장지는 나의 부모님과 선친의 묘가 있는 양평으로 정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전답 옆의 야산이었다.

다음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양평의 선친 묘 옆에 아내의 무덤을 만들었다.

아내의 무덤 앞에서 애달프게 통곡을 하는 장모가 기진맥진하였다.

장모의 건강을 걱정한 장인이 처남과 함께 장모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처갓집 식구들도 무덤 앞을 떠나고 등을 토닥이던 형도 일이 바빠서

캐나다로 급히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마지막 남았던 형이 등선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아내의 무덤 앞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와 연지,

그리고 연지를 가슴에 안고 있는 은영이다.

 한없이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던 연지는 지쳤는지

은영의 가슴에서 잠들어있었다.

 

----------------------------[2부 16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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