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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2부 14장

오늘의 쉼터 2013. 6. 23. 20:54

여인의 향기 - 2부 14장

 

 모처럼, 은영과의 만남에 육체관계는 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깊은 애정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긴장이 되고 답답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차라리 아내가 화를 내던지 어떤 결과를 제시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아내와의 관계에 해결점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설사 이별이라는 최후의 결정도 받아드리고 싶다.

고민과 혼란 속에 잠을 못 이루고 밤새 뜬눈으로 뒤척인다.

시계추처럼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외면하면서도 아내가 나를 위해 차려놓은 식탁 앞에 앉는다.

아내의 정성을 느끼기보다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다.

이제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지겨운 시간을 탈피하고 싶다.

몇 수저 뜨다 말고 일어났다.

안방으로 들어가 양복을 걸쳐 입는다.

침대위에는 연지가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거실로 나오니 정원을 내다보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답답함에 피 말리는 심정이다.

공연히 화가 치밀어 아내를 향해 소리 지른다.

“당신! 조금만 이해해줄 수 없어, 내가 설 곳이 없잖아!”
“..........!?”

아내가 뒤돌아서서 나를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아내가 분통을 터트리며 언성을 높일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침착하였다.

나의 답답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보복이라도 하는 것인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더욱 화가 치민다.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물론 내가 원인이기에 잘못은 알아!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내가 어떡하기를 원해!?”

“숨을 쉴 수도 없어. 가정에 애정을 느끼게 해 줄 수 없어?”
“내 마음은 어떤지 알아!? 왜, 참고 견디는지 모르잖아!”

아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말이다.

아내는 자신의 속을 드러내 보이지도 않았고,

나는 아내의 마음을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야 대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대화를 함으로서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인지!

끓어올랐던 화를 참으려고 마른 침을 삼킨다.

바쁜 출근시간에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집을 나선다.

물론, 내가 언성을 높여 대화를 하려했던 것은 잘못이다.

도리어 감정을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돌이켜 보건데, 아내와 나사이가 원만해져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해결점이다.

해결점에 도달하려면 아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 또한 고통스러워도 은영과 수진과의 관계를 끊어야한다.

서로를 관용하고 이해해야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아내를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출근을 하는 발걸음은 허공을 걸어가는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정신은 아내와의 관계에 혼란하고 몽유병자처럼 몸만 출근을 하여 사무실로 들어간다.

책상에는 오늘 처리해야할 서류들이 쌓여있다.

업무준비도 안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다가 잠긴 것을 알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는다.

그런데 열쇠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양복 이곳저곳을 찾아도 열쇠가 없었다.

관리과로 가서 비상열쇠를 달라고 하여 서랍을 열었다.

번민과 혼란 속에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허기짐을 느낀다.

문득 없어진 책상 서랍 열쇠가 생각난다.

어제저녁에 은영의 집에 떨어트렸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식사라도 같이 하려고 은영에게 휴대폰으로 걸었다.

그런데 신호음만 가고 전호를 받지 않는다.

다시 의상실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은영이 아니라 디자이너 미스 진 이었다.

언젠가 은영과 같이 식사를 했기에 익히 듣던 목소리다.

“네! 샤인 의상실입니다!”
“은영씨! 계신가요?”

“아! 강부장님 이신가요? 미스진예요.”
“네! 어떻게 알아보시네.”

“호호~! 왜, 모르겠어요.

언니, 잠간 집에 다녀온다고 나갔어요.

들어오면 전화하라고 할 가요?”
“아뇨! 다시 전화하죠.”

전화를 끊고 망설인다.

직원들은 점심 식사하러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사무실은 썰렁하였다.

수진은 스케줄로 한창 바쁠 것이다.

오늘따라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사람도 없다.

간단하게 분식집이라도 갈까 생각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회사 건물 일층에서 입구로 향하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은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집의 전화번호이다.

출근할 때 마주했던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 수진 엄마인데요. 큰일 났어요! 연지 엄마가, 연지 엄마가........”
“네!? 집 사람이 왜요.......!?”

“연지엄마가 피, 피를 흘리고 쓸어져 있어요!

주, 죽은 것 같아서.......내, 내가 경, 경찰에도 연락했어요.”
“뭐라고요!?”
“창문이 열려있기에 보니 연, 연지 엄마가........”
“........!?”

무척 놀라서 떨면서 더듬는 수진 엄마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온 몸의 피가 밑으로 쏟아지는 것 같다.

아침에 침착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솟구친다.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으로 달음박질한다.

한 걸음에 회사를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집어탄다.

믿을 수가 없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죽은 것 같다고!?

나에 대한 원망으로 약이라도 먹은 것인가!

출퇴근길도 아닌데 집까지 가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집 앞에 도착하니 이미 비상등을 번쩍이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와 있었다.

정신이 아득하고 감정이 북받쳐 끓어오른다.

동네사람들이 집 앞을 막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사람들을 헤치고 집 앞으로 다가섰다.

집 앞을 막고 있던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저지한다.

악을 쓰며 경찰의 멱살을 잡는다.

“내가 남편이란 말이야. 내가, 내가 김재희 남편이라고!”
“........!?”

울먹이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의 아래위를 살피던 경찰이 길을 열어준다.

발걸음이 허공을 딛는 것 같다.

정원으로 들어서면서 무심코 정원 한구석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의 승용차를 바라본다.

승용차의 방향등이 깜박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내가 연지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 주고 왔을 것이다.

경찰들이 정원을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머리가 벗겨진 사복형사가 길을 막고 묻는다.

“누구십니까?”
“피해자 남편 되십니다.”

뒤에서 쫓아온 경관이 나 대신 사복형사에게 대답을 한다.

창문은 활짝 열려져있는 거실 안에는 신발을 신은 채 분주하세 움직이는

사복형사와 경관들이 보인다.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고 감정이 북받친다.

거실 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하고,

하얀 모포로 덮여 있는 밑으로 삐죽하게 나와 있는 아내의 발이 보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시야 속에 거실의 처참한 광경은 아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 안아 모포를 벗겼다.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아내모습이 보였다.

피로 범벅이 되어 헝클어진 아내의 머리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어찌 된 것인지 아내의 팬티가 벗겨져 발목에 걸려 있었다.

이미 아내가 숨을 거두었다는 생각에 왈카닥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의 시신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으 흐 흑! 어떡해서 당신이........! 으 흑 흑.........!”
“저기 김재희씨 남편, 강지환씨 되시죠?‘

“흐 으 흑! 네........!”
“부인의 사고에 안타깝지만, 이러시면 안 되고 수사에 협조하여 주십시오.”

누군가 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흐느끼면서 올려다보니 안경을 낀 중년형사였다.

형사들 중 누군가 나를 부축하고 서재로 향한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다.

문득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로 얼룩진 수정구슬이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

서재 안에는 파랗게 질려 서있는 수진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서재에 들어가니 안경을 낀 중년 형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로 다가온다.

“시경 강력반의 곽호인 반장입니다.

먼저 부인의 사고에 애도 드립니다.

괴로우시더라도 수사에 협조 바랍니다.

아무래도 시체검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지금 시간이 한시 이십분.......!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부인의 사망시간은 열두시 반경으로 추측합니다.

오전 중에 아내 되시는 김재희씨와 연락을 받거나,

연락을 한 사실은 없습니까?”
“출근한 이후에....... 연락한 사실은 없습니다.”

“혹시, 부인과 특별히 사이가 안 좋다거나, 원한을 살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아내는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 사람 없습니다.”

“흠! 하여튼 또 확인 하겠지만,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단시간 내에 절명한 것 같습니다.”
“........!?”

형사 반장의 묻는 말에 내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든다.

아내는 누구와 다툼 자체를 싫어하고 바깥출입도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누가 아내를 살해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사관들이 거실과 방을 오가면서 범인의 흔적을 추적하는 모양이다.

수첩에 몇 가지 적어 넣은 형사반장이 거실을 향해 다른 형사를 부른다.

“저기 황 형사! 처음 발견한 목격자 진술 받았나?”
“몇 가지 물어 봤는데, 이제 진술 받으려고요.”

황형사라고 불린 체격이 다부지고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거실로부터 서재로 들어왔다.

곽반장은 급히 서재로 나갔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으면 좋겠다.

넋을 잃고 온 갖가지 혼란한 생각을 떠올린다.

서재로 들어온 황형사가 질려있는 수진 엄마를 힐끔 쳐다본다.

평소에 담배를 잘 피지 않던 나는 책상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출근할 때 마주쳤던 아내의 눈빛이 떠오른다.

답답한 심정에 화를 내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침착했던 눈빛!

담배 한 모금을 뿜어내는 연기 속에 아내의 무표정한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의 죽음이 나로 인한 것 같아서 다시 눈물이 쏟아진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 속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을 흘린다.

눈물이 맺힌 시야 속으로 비치는 수진 엄마와 황형사의 모습이 빛바랜 사진처럼 각인된다.

메모한 수첩을 들여다보던 황 형사가 수진 엄마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황 형사는 수진엄마에게 내가 가끔 사용하던 침대를 가리킨다.

수진 엄마가 주춤거리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편하게 앉으세요.”
“네.......!”

“그러니까, 거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들여다봤더니,

피를 흘리고 쓸어져 있더란 말이죠?”
“네! 피투성이라서 놀랬어요.”

“거실로 들어가 봤습니까?”
“네! 무서워서 멍하니 서 있다가 거실로 들어가 봤어요.

 연지 엄마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하면서 어깨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겁이 나서 경찰서와 연지 아빠에게 전화를 했어요.”

“흠~! 다른 것은 건드리지 않고요?”
“네! 무서워서 밖으로 나갔어요.”

“아줌마는 항상, 이 시간에 집에 있습니까?”
“아뇨! 오늘은 빨래가 밀려서 세탁을 하고 시장도 보려다가........”

아내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궁금했다.

암울한 마음으로 황 형사와 수진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황 형사는 최초의 목격자인 수진 엄마를 의심하고 심문하는 모양이다.

수진 엄마의 일반적인 사생활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는다.

문득 수진 엄마와 내연의 관계인 남자 모습을 떠올린다.

보험에 종사하고 있는 직업의식인지,

아니면 아내의 사고에 대한 의혹인지 몰라도 예민해진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에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고 침착해지려고 한다.

며칠 전이었던가, 한 밤중에 수진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집문 앞을 나서던

인상이 험상궂은 남자! 혹시 집을 비워달라던 아내와 수진 엄마의 다툼 끝에

남자가 가세한 것은 아닌지. 공연한 의심인지도 모른다.

수진 엄마에 대한 질문이 끝나고 나서도 형사들과 경관들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의 집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다.

초등수사가 끝났는지 무전기와 휴대폰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형사들과 경관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아직도 아내가 죽었다는 현실을 받아 드릴 수 없다.

더욱이나 아내는 누구에게인가 살해를 당 한 것이다.

아내를 살해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문득 아내가 친정에 다녀오고 나서 떨어트렸던 사진이 생각났다.

책상 서랍을 열어 넣어두었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체격이 우람한 중년남자!

아내에게도 정을 통하는 남자가 있었던가!

의문은 가지만 아내의 담백한 성격으로 보아 믿기지 않는다.

사진을 드려다 보고 있는데 형사 반장이 내게로 다가왔다.

슬며시 사진을 서랍에 넣는다.

“과학수사팀이 수사를 하는 삼 일간 사건 현장을 보존해야 합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네.......!”

“그리고 부검을 해야 하는데, 힘드시지만 동의를 부탁드립니다.”
“..........”

형사반장이 나에게 동의서를 끼워놓은 파일을 내밀었다.

아내의 사인을 알고 나도 싶었던 상황이다.

눈물로 눈앞이 어른거려 내용도 보이지 않는 동의서 빈칸에 싸인을 했다.

연락을 다시 하면 경찰서로 나와 달라는 말을 남긴 형사반장이 서재를 나간다.

안자 있을 수먼 없어서 형사반장을 따라서 서재를 나갔다.

아수라장이 된 거실을 바라본다.

흰 마스크와 하얀 가운을 걸친 구급대원들이 아내의 시신을 운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옷장문은 활짝 열려있고,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방바닥에 떨어져 아내의 소지품 중에는 열려진 지갑!

모포와 시트가 흐트러진 침대와 서랍이 열린 화장대!

혹시 강도라도 침입한 것일까!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와 흰 모포로 덮인 아내의 시신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 으 흑~! 여보........”
“.........”

잠시 내려다보던 형사반장과 황형사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아내의 시신을 들것에 옮겨 들고 나간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경관들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경관들의 부축을 받고 거실을 나섰다.

현장보존을 위해 집을 비워달라는 모양이다.

뒤돌아보니 아내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현장의 처참함이 새삼스럽게 내 마음을 북받치게 한다.

정원에 서서 경찰이 현관문 앞에 노란 테이프로 통제선을 치는 광경을 바라본다.

보금자리이기를 바라는 나의 집은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사건현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아내와 연지, 그리고 내가 행복을 느껴야할 보금자리였다.

문득 학원에서 엄마를 기다릴 연지가 떠오른다.

승용차에 오르니 운전석에서 아내의 온기를 느끼는 것 같다.

운전석에는 승용차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어떤 다급한 상황이 있었기에 아내는 차 열쇠를 꽂아 놓고 내렸는지 모르겠다.

승용차에 시동을 걸어 집밖으로 꺼내 정차를 시키고 또다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흘린다.

집문 앞에 세워진 구급차에 아내의 시신이 옮겨지고 있다.

옹기종기 모인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사건현장을 취재하는 언론의 기자와 카메라맨의 모습도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는 수진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수진엄마도 경찰로부터 당분간 현장을 보존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급하게 싸들고 나온 짐 보따리를 든 수진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사건 현장을 목격한 상황을 설명하는 모양이다.

집문 앞에도 사건 현장을 보존하는 노란 테이프의 통제선이 쳐진다.

경찰차와 아내의 시신을 운반하는 구급차가 집문 앞을 떠난다.

구급차 뒤를 따라 승용차를 몰고 골목길을 나간다.

나간다. 혼란과 번민 속에 구급차 뒤를 따라 대로로 나왔다.

한동안 정신없이 구급차 뒤를 따라가다가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내를 따라 가는지도 모른다. 연지의 모습을 떠 올리고

그때서야 내가 갈 곳을 의식한다.

승용차를 돌려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연지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 앞에 주차를 시키고 부리나케 내렸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건물의 이층 계단을 올라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연습을 끝내고 혼자 앉아 있는 연지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발견한 연지가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로 뛰어온다.

“아빠네!? 엄마는.......!?”
“아! 엄마.......!”

막상 연지를 보니 뭐라고 설명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어린 연지에게 충격을 주지 않을까!

또 다시 북받치는 감정을 참으며 연지를 끌어안았다.

끌어안은 연지에게서 아내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가슴에 안은 연지의 볼에 입술을 맞추고 학원 문을 빠져 나온다.

층계를 내려오다가 허공을 짚어 비틀거렸다.

나의 얼굴을 감싸고 들여다보던 연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빠, 우는 거야? 왜 울어? 엄마는 어디 갔어?”
“응, 엄마는 외할머니 댁에........”

“나도 안 데려가고!?”
“곧 올 거야.......!”

연지의 계속되는 질문에 나는 변명할 말이 없다.

연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승용차를 출발시킨다.

그러나 막상 갈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들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집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것에 서러움이 북받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쉴 장소도, 의지해야할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연지는 해맑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차가 씽씽 달린다. 더 달려, 아빠!”
“........”
“나, 배고픈데.......”
“응, 알았어.”

연지는 승용차 앞 대시보드위에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한다.

어디인가 연지를 쉬게 할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은영에게 연락하기도 싫다.

무작정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한강변에 닿았다.

고수부지로 들어가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연지를 데리고 선착장과 연결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 내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지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었다.

“야! 신난다! 나, 피자 줘!”
“그래! 연지, 피자 좋아하는구나!”

종업원에게 음식을 시키고 한강물이 출렁이는 창을 내다본다.

아내와 중매로 맞선을 보고 데이트를 하던 장소이다.

강물은 예전이나 다름없는데 아내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자리이다.

아내는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어떻게, 사고를 당했을까!

경찰에서 밝혀지겠지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연지는 즐거워서 레스토랑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저기 신기한지 기웃거리던 연지가 달음박질하여 나에게 뛰어왔다.

“아빠! 저거 사줘!”
“응! 뭐 사줄까?”

연지에게 끌려 간곳은 장난감과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다.

연지에게 인형과 장난감을 사주었다.

마냥 즐거워하는 연지를 데리고 다시 창가에 와서 앉는다.

아내의 죽음 앞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무능하기만한 자신을 탓하며, 안개 같은 미로 속에 빠진다.

피자를 먹으며 마냥 즐거워하는 연지의 모습을 볼수록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끝없이 출렁이며 흐르는 한강물과 기울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번민한다.

무언가 수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부에 아내의 사고 사실을 간단히 알리고 일주일의 휴가를 얻는다.

석양이 질 무렵에 고수부지를 나와 근처의 호텔로 들어갔다.

연지는 나와 놀러 온줄 아는 모양이다.

“와아! 신난다.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은데.......”
“응.......! 우선 연지는....... 아빠하고 있을 거야.”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도 허전하고 세상을 잃어버린 감정이다.

비록,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긴장과 두려움으로 보낸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내의 그늘이 나의 보금자리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차량의 물결이 멈추었다가 가기를 반복한다.

지금쯤이면 회사를 퇴근할 시간이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캐나다를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상황에서 아내의 사고소식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주춤거리다가 아내의 고향 집에 전화를 걸었다.

누구도 아내의 소식을 알릴 사람이 없다.

장인장모가 충격을 받더라도 아내의 사고소식을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에 장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에요! 연지 아빠!”
“응! 자네가 웬일인가?”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뭐가!? 괜찮아, 먹고 살다보면 다 그렇지 뭐.”
“그게 아니고 연지엄마가.......”
“연지 애미가 왜? 잘 있지?”

“그게 아니고 연지 엄마가 사고를 당해서.......”
“애구! 많이 다쳤어!?”
“오늘 사고를 당해서 사망한 것 같아요.......”
“뭐라고.......!? 애구 구.........”

울먹이며 간신히 말하는데 전화기 떨어트리는 소리와 무엇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놀란 장모가 실신이라도 하지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목소리는 장인이었다.

조심스럽게 아내의 사고소식을 장인에게 전했다.

장인은 평소 아내처럼 담백하고 말이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장인도 충격을 받았는지 듣기만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우선 장모를 위로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한사람의 죽음은 욕망보다 큰 슬픔을 자아낸다.

휴대폰 벨이 울린다.

호텔 일반전화로 캐나다 연결을 부탁했건만,

형과 연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나 아내의 사고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은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은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포근하고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퇴근 안 해요?”
“퇴근.......!?”
“네! 목소리가 왜 그래?”
“연지 엄마가....... 사고를 당해서, 경찰서 안치실로 갔어.”

“네~! 무슨 말이야?”
“경찰서 시체 안치실로 갔다고.......”
“네 에~!? 그럼 언니가 사망했다고요?”
“그런가 봐........”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요!?”
“.........”

“........어쩌다가!? 연지는요? 지금 어디야?”
“잠실 선착장 옆의 아망뜨 호텔.......”
“왜, 거기 있어!? 하여튼 갈게요.”
“.........”

통화가 끊긴 신호음을 한동안 듣고 있었다.

인형을 나고 뒹굴던 연지는 침대위에서 새근거리고 잠들어 있다.

점심시간에 은영에게 전화를 했었을 때,

디자이너 미스 진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혹시 아내가 사고를 당하기전에 은영과 만난 것은 아닌가!

아내의 죽음과 은영과는 관계가 있을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의문스럽다.

천진난만하게 잠든 연지에게 모포를 덮어 주었다.

긴 여정이 아니었지만, 연지는 아내와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증표였다.

한 시간 가량 지나서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은영의 모습이다.

그녀를 보니 감정이 북 받쳐 눈물이 맺힌다.

시선이 마주친 은영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힌다.

그녀가 나를 살며시 껴안았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녀의 품이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스하고 포근하다.

그러나 서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잠들어 있는 연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다.

탁자위에 놓인 프런트로 통하는 벨이 울렸다.

캐나다 형과 연결된 전화였다.

나에게 피붙이라고는 단 하나의 형뿐이었다.

울먹이면서 아내의 사망소식을 전달했다.

역시 몹시 놀라는 형은 내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2부 15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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