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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2부 7장

오늘의 쉼터 2013. 6. 23. 15:58

여인의 향기 - 2부 7장

 

 

 

우리는 사회적 규율과 관습을 벗어나 발가벗은 몸으로 부둥켜안는다.

 

수진은 잉태를 하기위한 여인처럼 안타까운 신음을 흘리며 엑스터시에 젖어들었다.

 

나는 터트릴 것처럼 그녀의 아담한 몸을 끌어안고 욕망의 회오리 속에 묻힌다.

 

그녀의 오르가즘을 느끼는 순간은 수줍음과 쾌감 사이에서 습한 신음을 터트린다.

“하 앙! 오빠 사랑해! 하 으........”

“허 윽! 나도 사랑해.......!”

“아 항.......! 아 으! 미치겠어. 아 힝........!”

“수, 수진아. 하 아........”

크리스마스의 즐거운 분위기와 선물을 받은 기쁨 탓인지,

 

수진은 다른 날보다 활활 타오르며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간다.

 

앙증맞은 몸매에 성적인 매력까지 뿜어 나오기 시작한 수진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매달린다.

 

벽시계를 바라보던 그녀가 후다닥 일어나 옷을 추슬러 입는다.

연습시간이 임박한 모양이다,

 

호텔을 나오니 아직도 하얀 눈이 쌓인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눈이 쌓인 거리에 작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 못하는 까닭인지 수진은 아쉬운 눈빛을 한다.

 

시계를 들여다보던 그녀가 허리를 비꼬며 투정을 한다.

“연습하러 가기 싫은데........”

“........!?”

수진은 나와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연예인의 꿈은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정사의 쾌감을 음미하듯이 몽롱한 눈빛을 하던 그녀가

 

심통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토닥거리는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내손을 붙들며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는다.

 

그때였다.

 

인파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 수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수진아! 수진아!”

“.........!?”

벌떡 일어난 수진과 내가 뒤돌아보았다.

 

사람들을 헤치고 소녀 같은 깜직한 모습의 두 젊은 여자가 다가온다.

 

키도 비슷하고 앳된 복장의 여자들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는 모습을 보고 한 여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미정이었다.

 

투정을 부리던 수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아! 미정아! 성희야!”

“수진아! 넌 연습시간 다 됐는데, 안가?”

“가야지! 우리 집의 오빠야! 오빠! 얘가 새로 들어온 성희야.”

“안녕하세요! 저, 성희에요. 수진 오빠 멋있다.”

“안녕하세요! 수진이네 같은 집에 사는 오빠야.”

“응! 사랑스럽구나!”

두서없는 말이 오가고 나는 무심코 가까이 있는 미정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들끼리 재잘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화 도중에 미정이 수진과 나를 유심히 곁눈질하여 살핀다.

 

혹시나 미정이 수진과 나 사이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수진이 그녀들과 수다를 떨더니 나에게 손을 흔든다.

“오빠! 갈게. 연지 선물 꼭 가져다가 줘.”

“응! 수고해.”

“안녕히 가세요!”

“오빠! 안녕!”

그녀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뒤돌아보는 미정이 무엇인지 의미 있는 미소를 짓는 것 같다.

 

대로변으로 다가선 그녀들이 지나가는 택시를 부른다.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들의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린다.

 

한 손에 수진이 선물한 인형을 들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인파속을 걸어간다.

 

마치 언어를 잃은 수진의 손목을 잡고 걷는 기분이다.

 

거미나 버마재비가 교미 후에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 상대를 잡아먹는다고 했던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들뜬 분위기속에 한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반복되는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가 시작되면 한해를 설계하고 계획을 세우는 동안 한 달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새로운 인생의 한해를 맞이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은영과는 습관처럼

 

전화연락을 하고 이따금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고,

 

수진의 톡톡 튀는 순수함은 나를 매료시킨다.

이제 구정도 며칠 남지 않았다. 잠시 넋을 놓고 앉았는데,

 

한지영이 둔부를 살랑거리며 지나간다.

 

헤픈 미소로 묘한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몇 번인가 술을 사달라고 하는 것을 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볼륨감 넘치는 한지영과 대조적인 은영의 매혹적인 아담한 자태가 떠올려진다.

 

새해 들어서 은영을 안아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니 한번뿐인 것 같다.

그만큼 서로 시간을 같이 할 수 없는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삼인조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한 수진과는 몇 번 만나 서 뜨거운 정사를 했다.

 

바빠지는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전화를 해서 보고 싶다고 하며 찾아오는

 

수진을 멀리 할 수 없었다.

 

수진이 생활비를 필요로 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나지 않아도 어차피 통장으로 넣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이고 조건 없는 순수한 수진의 깊은 마음을 느낀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수진은 자신의 엄마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를 극진히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낮 시간을 이용해 집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집에 다녀온 후에는 자신의 엄마와 있었던 일과 험담을 말한다.

 

아울러 아내와의 불편한 관계를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다.

비만으로 인한 아내의 뚱뚱한 몸매와 굳은 표정을 생각하니,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은영의 조순한 자태가 갑자기 떠오른다.

 

은영은 어느새 나에게는 바다보다도 포근한 이데아가 되어 있다.

 

내 가슴에 안겨서는 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보이지만,

 

평소에는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감싸주는 마음!

 

남자는 때로 연인에게 어머니 같은 모습을 느낀다고 했던가!

 

수화기를 들고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아노의 선율이 흐르는 신호음만 가고 받지를 않는다.

다시 그녀의 전화번호를 눌러도 역시 신호음만이 들린다.

 

그녀는 이틀 전에 남편과 친정에 다녀온다고 했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늦게 친정에서 출발한다고 연락 받았다.

 

피곤해서 자고 있는 것인지!

 

왜, 전화를 받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보다 더 집착을 하는 그녀이기에 궁금하다.

오후의 한나절!

 

사무실 안에는 출장 직원을 제외한 직원들만 남아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맑은 햇살이 고즈넉이 비치는 사무실에는 고요함이 흐른다.

 

누군가 떨어트린 볼펜 굴러가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사무실을 나갔던 한지영이 양손에 자판기 커피를 들고 볼륨감 넘치는

 

둔부를 흔들며 들어온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한지영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내민다.

“강부장님! 커피 한잔 하세요!”

“응, 고마워.......!”

“그런데, 정말 술 한 잔 안 사주실거예요?”

“언제 한잔 할까?”

“호호~! 언제 라도요!”

“술 좋아하나봐!”

“그냥 분위기를 즐겨요.”

“그럼, 애인에게 사달라고하지.”

“강부장님처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야지요.”

“지금 날 유혹하는 거야!?”

“네! 호호........!”

“하하하........!”

타이트한 스커트를 걸친 한지영이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으며 눈웃음을 친다.

 

책상 모서리에 눌리는 둔부의 윤곽이 두드러져 보인다.

 

한지영의 벌거벗은 몸매를 상상한다.

 

볼륨감 넘치는 젖가슴과 둔부로 보아 글래머일 것 같다.

 

그때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처를 확인하니 은영에게서 온 것이다.

 

묘한 한지영의 눈빛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복도를 걸어가며 통화버튼을 누른다.

 

웬일인지 은영의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화 못 받았어요. 병원이라서.......”

“병원!? 왜.......!”

“그이가........사망했어요.”

“사망........! 갑자기 사망했다니!?”

“전화로 말하기가.........”

“어, 어느 병원 야?”

예기치 않은 갑작스런 말에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해진다.

 

은영의 남편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사망을 했을까!

 

도저히 터무니없는 사실을 받아 드릴 수 없다.

 

내가 그런데 당사자인 은영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녀가 얼마나 당황하고 상심을 할는지 걱정이 된다.

 

그녀는 지금 혼자 일 것이다.

 

은영의 남편에게는 전처의 자식이 있다.

 

그러나 미국영주권을 갖은 아들과 딸은 국내에 없었다.

또한 은영의 부모는 시골에 있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강원도에 있어서 급하게 달려올 친지가 없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그녀가 무척 좌절하고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그녀를 도울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 사랑하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

 

휴대폰을 끄고 사무실로 가서 직원에게 급한 일이 있어 나갔다 온다고 했다.

정신없이 회사를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타고

 

 은영이 있다는 종합병원으로 간다.

 

병원 종사자와 의료진, 환자복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

 

방문객이 뒤섞인 병원은 혼잡하다.

 

때로는 보호자의 아우성, 방금 도착하는 구급차의 사이렌소리,

 

방문객들의 아우성으로 소란하지만,

 

 시끄러움은 소란 속에 묻히고 적막이 흐르는 것 같다.

 

혼잡한 병원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

안내창구에서 ‘구준석’이라는 이름을 흘려내고 영안실로 향해 걸어간다.

 

복잡한 곳을 벗어나니 길게 뻗은 미로 같은 복도를 걸어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드문 한적한 복도였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내려앉은 가로수라고 할 가!

 

아! 은영의 모습이 보인다.

 

복도 끝의 긴 의자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은 여인!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그녀 곁으로 다가간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이가 약을 먹었어요.”

“약!? 무슨 약.......?”

“나도 몰라요. 아침에 올라와 집에 들어가니.........”

“그럼........! 같이 올라온 게 아니고?”

“그이가 먼저, 어제 저녁에........”

마치 옛 추억을 기억해 내듯이 먼 곳을 바라보는

 

은영의 눈동자에는 동공이 풀려져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은영은 무척 우울해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까닭인가!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남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이 슬프고 낙심하는지도 모른다.

조순하게 앉아있는 은영을 껴안아 위로하고 싶다.

 

그녀의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인다.

 

하지만 영안실 문이 열리고 가운을 걸친 사람이 나오기에 슬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의자에 앉는다.

 

뭐라고 그녀를 위로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시선을 옮긴다.

 

햇살이 비치는 복도 입구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노인 내외의 모습이 보인다.

 

 점점 다가오는 노인 내외 모습을 힐끔 바라 본 은영이 귓속말처럼 빠르게 말한다.

“우리 부모님이세요.”

“아......!”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자리를 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은영의 부모님과 대면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망설이는 가운데, 은영이 나를 올려다본다.

 

내가 취해야할 행동을 은영이 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은영도 갈등을 느끼는 모양이다.

 

애잔한 은영의 눈빛을 의식하며 얼어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다가서고 그녀가 부스스 일어난다.

“아이고! 은영아! 이게 웬 날벼락이냐!”

“도대체, 어찌 된 거냐........!”

은영의 부모님이 그녀를 에워싸며 안타까워한다.

 

그녀는 나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부모님에게 한다.

 

그리고 남편이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통스러워했는데 아마도 자살한 것 같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중에 은영의 부모님은 그녀와 남편이 같이 올라 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은영의 말로는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작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전주의 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올라왔다고 했다.

 

집에 들어 와보니 남편이 이상해서 구급차를 불렀고,

 

이송 중에 숨졌다는 그녀의 말이다.

 

말을 들은 은영의 어머님은 길게 탄식을 한다.

“어찌해서 네 팔자가 이러냐!

 

남편 복도 지지리도 없다.

 

한 놈에게 배반당하고,

 

살만하니까 먼저 저승으로 가고........”

 

“그런 소리 마러. 은영이 마음은 어떻겠어.”

은영의 어머님 넋두리에 은영 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쉰다.

 

은영은 자그마한 체구의 어머님을 닮은 듯하고,

 

은영의 아버님은 평범한 체구에 무척 너그러운 인상이다.

 

나는 이방인이 되어 한쪽에 서서 바라볼 뿐이다.

 

은영의 부모님이나 은영도 마찬가지이다.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묻혀 침묵이 흐른다.

 

문득 나를 바라본 그녀의 어머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분은 뉘시여?”

“아......! 제 친구, 오빠 되세요.”

은영이 주춤거리며 나를 대신해 변명을 한다.

 

그녀의 부모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막상 뭐라고 자신을 밝힐 수 없는 입장여서 허리를 굽으려 목례를 한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그녀의 어머님 눈빛이 반짝인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젊은 양반, 고마워요.”

“제, 제가 뭐.......!?”

은영을 위해 특별히 도운 일도 없었다.

 

다만 안타까움에 달려왔을 뿐이다.

 

그녀 부모님의 감사의 눈길에 내가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녀의 어머님이 시댁 식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서운해 하는 말에

 

그녀가 외국에 나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아들딸들이 급하게 출발했으니

 

조금 있으면 귀국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녀의 옆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시댁식구와 마주하면 도리어 그녀의 입장만 곤란해 질 것이다.

복도 끝으로부터 흰 모포로 시신을 덮은 침상을 의료진이 밀고 온다.

 

누군가의 생명이 사라져 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살아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시선이 마주친 은영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은영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긴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이 애잔하다.

회사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은영의 애잔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 전체가 침울한 안개 속에 빠진 것 같다.

 

퇴근을 하면서 동료 최부장과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최부장은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무척 낙심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최부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내가

 

동창 남자친구와 같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불륜을 직감하는 교통사고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최부장이 뇌까린다.

“차라리 날 버리고 가지.......”

“그렇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나?”

“나쁜 년!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만약에 반대로 최부장이 다른 여자와 은밀한 사이라면, 아내를 버릴 수 있겠어?”

“인간이라면, 적어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최선의 선택을 줬겠지.”

“최선의 선택!? 그게 뭐야?”

“몰라 나도.......! 하지만, 이처럼 배반당했다는 고통은 안 줬을 거야.”

“최부장 아내가 순간의 감정에 빠져있으면........ 냉정한 이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난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

 

그 놈의 좆 대가리를 받아드려 허우적거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내 것도 받아 드렸을 것 아냐!?

 

더럽고 구역질이 나!”

“그게 뭐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최부장의 마음은 이해하는데.........

 

순결을 잃는 것은 순간이고, 누군가를 소유하고 소유당하면서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최부장과 대화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과연 나는 아내에게 최선의 선택을 주고 있는 것일까!

 

아내를 버릴 만큼 은영과 수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과연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았는가!

 

아무리 되돌려 보아도 감정의 블랙홀에 빠져든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와의 관계는 숨이 막힌다.

 

지금 심정같으면 윤리고 도의적인 규율을 내던지고 싶다.

 

은영이나 수진을 선택하고 아내의 판단을 기다릴 것 같은 심정이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서도 은영의 모습을 떠 올린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인다.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안내의 잠든 모습은 나하고는 먼 세계의 사람 같다.

 

어두운 밤에 거실로 나와 은영과의 통화를 시도한다.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은영의 목소리를 들었다.

 

식사를 할 생각도 나지 않아 굶고 있는 은영의 목소리는 몹시 지친 목소리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다.

미국에서 귀국한 남편의 전처 아들과 딸을 만나고 은영은

 

더욱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남편의 아들과 딸은 아버지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면서

 

경찰에 검시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의심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도 예기치 않은 사태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부모님과 남편의 자식들 시선을 피해 전화를 하기에 긴 통화를 못한다고 한다.

혼자서 감당할 은영의 좌절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내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하면서 동틀 녘을 맞이했다.

 

세면을 하면서 들여다 본 거울에는 핏기가 없이 초췌한 나의 몰골이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힐끔거리며 나를 유심히 살핀다.

 

그러나 아내의 표정에는 감정변화가 없고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돌을 씹는 것처럼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해서도 잠든 도시처럼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감정이 없다.

 

오직 머릿속에는 은영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녀와 통화를 하려고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결국은 그녀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하지만 통화를 할 수 없다는 멘트만 들린다.

 

여러 번 시도를 하지만 궁금증만 더해간다.

불안한 생각 속에 하루가 지나간다.

 

은영이 있을 병원에 들려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습관처럼 출근을 한다.

 

휴대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데, 휴대폰이 내 마음처럼 진동한다.

 

드디어 은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의 검시결과가 나왔고 조서를 받으러 경찰관과 함께 검찰청에 간다고 한다.

 

문득 그녀가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떠 올린다.

직원에게 은영이 가입한 보험 관련 서류를 달라고 했다.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명분으로 그녀에게 접근을 할 생각이다.

 

조사과 직원 한명에게 회사차를 운전하게 하고 부리나케 회사를 나온다.

 

검찰청 형사과 대기실에서 은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진 곳에 앉아있는 조촐한 그녀의 모습!

 

오! 나의 가여운 여인!

 

얼마나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울 가!

 

하지만 주위 시선이 있어 따뜻하게 포옹해 줄 수도 없다.

은영의 주변에는 남편의 자식도, 그녀의 가족도 없었다.

 

단지 나이 듬직한 남자와 변호사 사무실 이름이 적힌 봉투를 든 직원이

 

그녀 곁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변호사를 선임한 모양이다.

 

변호사에게 보험회사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했다.

 

침묵이 흐르고 그녀와 애타는 눈길만 교환한다.

형사과 사무실내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

 

때로는 형사들의 고함 소리에 공포감마저 느낀다.

 

안경을 걸친 담당형사가 그녀를 부른다.

 

변호사와 그녀가 담당 형사 책상 앞의 의자에 앉고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서류를 훑어보는 형사가 그녀를 예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묻는다.

“누구시죠?”

“아! 대림보험의 강지환 부장입니다.

 

유족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요.”

명함을 내어 형사에게 건네주었다.

 

명함을 들여다 본 형사가 안경 너머로 은영의 등 뒤에 서있는

 

나를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형사가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

 

다소곳이 앉아있는 은영의 자태가 애처롭다.

 

그러나 연약하게만 보이던 그녀가 흔들림이 없이 침착한 태도로 버티는 것이 대견스럽다.

 

나이 듬직한 형사의 입이 열렸다.

“조은영씨! 슬픔이 크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시결과, 남편 되시는 구준석씨의 시신에서

 

대량의 수면제와 고혈압 치료약 성분이 나왔습니다.

 

혹시 남편이 당뇨와 고혈압에 어떤 약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아뇨! 결혼하고 그이는 줄 곳 혼자서 병원에 다녔어요.”

“왜 남편과 같이 병원에 가지 않았지요?”

“그이가....... 같이 가기를 꺼려했어요.

 

아마도 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부끄러웠던 모양예요.”

“고인에게서 검출된 약품은 졸피뎀과 프라프로노졸이라는 성분입니다.

 

치료약이지만, 혼합하여 대량으로 투입하면 극약입니다.

 

담당의사가 처방한 약이 아니던데, 어디서 구입했을 가요?”

“저는 결혼하고 나서, 그이가 오랜 지병으로 약을 장기 복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어요.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음, 평상시에도 프라프로노즐을 자신의 몸에 직접 주사했습니까?”

“그이는 직접 주사를 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어요.

 

가끔 서재에서 주사를 놓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남편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습니까?”

“지인의 소개로.......”

형사는 때로는 자상한 목소리로 때로는 예리하게 심문을 하며 조서를 작성했다.

 

부부관계에 대한 예기치 않은 질문에 은영이 답변을 망설이면

 

변호사가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문을 하는 형사의 의도는 점점 평범한 자살사건으로 결론을 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은영이 심문을 받는 동안 의아심이 떠올랐다.

은영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남편하고 같이 올라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에게는 다툼이 있어서 전주의 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올라왔다고 한다.

 

그녀는 왜 나와 부모에게 다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자살을 하려고 약을 투여한 시간은

 

오전 10시경이고 구급차를 부른 시간은 10시 반경이라 한다.

그렇다면 은영이 일찍 올라왔다는 8시와 남편이 약을 투여한

 

10시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형사는 그녀의 남편이 병을 치료하는 약을 투여했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가 의심 받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2시간 동안 그녀와 남편과의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다.

 

다툼 끝이라서 그냥 평범한 부부처럼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시간사이를 궁금해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부부관계에서 여성의 성기 질구 안으로 삽입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육체관계를 강요당하지 않았나!

 

아울러 또 하나의 의문점이 떠오른다.

 

장기간 지병을 앓고 있던 그녀의 남편은 치료약의 성분과 투여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자살하려는 의도로 대량의 약을 투여했을까!?

 

자살의 동기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형사는 부부간의 관계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한 질문을 하였다.

 

긴 시간동안 질문이 이어지고 점점 지루함을 느끼는데,

 

휴대폰이 진동을 한다.

 

중역회의가 있다는 회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검시결과와 형사의 질문 의도로 보아서 평범한 자살로 결론이 내려질 것이 분명하다.

 

끝까지 은영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거리다가 형사과를 나왔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도 모르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다고 한다.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지 모른 채로 살아가고 어떻게 죽어야 의미 있게 죽는지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낙망하고 싶지 않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것을 아름답게 보고 평범한 삶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검찰의 조사를 받고 시체를 인도받는 시간때문에 은영의 남편이 사망한 후

 

오일 째 되던 날에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남편의 아들딸 의견을 따라 화장을 했고 강원도 어느 산에 수목장을 지냈다고 하였다.

 

그녀도 추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아들딸은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친정 부모님은 그녀와 같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간간이 전화 통화로 그녀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동네에는 그녀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주민들은

 

자신들의 느낌을 조작해서 낭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미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지병이 든 것을 알고,

 

그녀가 재산을 노리고 재취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말과

 

그녀가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기에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악평도 나돈다.

 

아울러 혼자가 된 그녀가 취할 미래에 대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아내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마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은영의 남편이 사망한 후 보름이 지나고,

 

그녀의 변호인이 보험금을 수령해 갔다는 것을 직원을 통해 들었다.

 

간혹 그녀의 의상실 앞을 지나쳐 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물결을 이루고 지나치는 인파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으려고 길 잃은 나그네처럼 서성거린다.

 

그녀는 의상실에도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

 

예전에는 가끔 동네 슈퍼에서 모습을 볼 수도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동네 슈퍼를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내 심정은 답답하고 침울한 시간을 보낸다.

은영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어가는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을 하게한

 

의문점이 다시 떠오른다.

 

그녀는 과연 남편과 깊은 육체관계를 하지 못 했을까!

 

남편이 다량의 약을 투여하는 동안 그녀는 무엇을 했는지!

 

어째서 나에게는 그 전날 같이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는지.

 

그녀가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것과는 관계가 없는지.

 

그녀의 남편이 지병을 비관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감수하고 그녀와 재혼했을 것이다.

남편이 정말 자살했다면 동기가 이해가지 않는다.

 

자살하는 사람은 거의 유서를 작성해 놓았다는데,

 

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는지.

 

애정이 없었지만 남편의 죽음 앞에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

 

평소 이혼하고 혼자 살고 싶다던 그녀의 말!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으리라고 전혀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무엇인지 미로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미로 속의 비밀이 있다면 은영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머리를 흔들어 은영에게 드리워지는 의문을 떨쳐 버린다.

 

다만, 나는 생활의 구심점을 잃고 혼란스럽다.

 

은영은 나의 새로운 생활에 모태가 되어 있었다.

 

구심점을 잃은 나는 아내가 있는 집과 직장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항상 나를 자극했던 수진을 만났던 시간도 오래된다.

 

말썽을 부리던 멤버를 빼고 다시 멤버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혹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 앙증맞은 율동을 보이는 수진은

 

스케줄이 점점 바빠지는 모양이다.

 

수진이 속한 삼인조 아이돌 여성그룹 ‘와일더’는 점점 인기가 상승중이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수진에게서 이따금 톡톡 튀는 애교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했던 사람이 더욱 외로워진다고 했던가! 날씨가 포근해지지만,

 

으스스한 한기를 느낀다.

 

퇴근 후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자주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오늘은 오전부터 회사 창립기념일이라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후가 되면서 같은 부서의 직원들은 모처럼의 회식을 위한 미팅에 관심이 깊어진다.

미팅 장소는 무교동의 술집과 클럽들이 운집한 대형 음식점이었다.

 

웅성거리며 모인 직원들이 ‘위하여’를 외치는 소리와 함께 첫잔을 들었다.

 

배고프던 참에 음식을 먹고 술잔이 몇 차례인가 돌아갔다.

 

매캐한 담배 연기! 술기운이 거나해지는 직원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

 

바쁘게 손님 접대하는 종업원들의 부산한 움직임!

 

음식점 안은 온통 시끌벅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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