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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2부 6장

오늘의 쉼터 2013. 6. 23. 14:57

여인의 향기 - 2부 6장

 

 

 

 어두운 거실 안쪽, 전등불이 켜진 주방에 아내의 뚱뚱한 뒷모습이 보인다.

 

층계 밑의 검은 그림자가 아내였었다는 말인가!?

 

수진과 내가 뜨거운 스킨십을 하는 장면을 아내가 본 것인가!

 

소파 위에서 뒹구는 수진과 나의 모습을 본 아내의 심정은 어떠할는지.

 

아내가 돌아서면 금방이라도 표독스러운 말이 쏟아질 것이다.

얼어붙은 동상처럼 서서 아내의 동태를 주시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는 아내의 치마꼬리가 흔들린다.

 

한 컵 가득히 냉수를 따라서 마신다.

 

내가 들어 온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빈 컵을 들고 나를 향해 돌아선 아내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아내가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컵을 던질 것만 같다.

 

잠시 노려보던 아내의 입술이 떨린다.

“밤중에 어딜 그렇게 다녀?”

“아! 다, 답답해서.......차, 찬바람 좀 쐬려고.......”

“답답하다고.......!?”

“응, 소, 소화가 안 되나........!”

“왜, 소화가 안 돼?”

“글쎄.......”

자꾸 캐물으려는 아내 앞에서 나는 형사 앞에서 취조당하는 죄인 같은 기분이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추고 정적이 맴돈다.

 

아내와 눈빛을 마주할 용기도 없어 시선을 돌린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아내가 어떤 말로 추궁을 할지 두려움으로 떤다.

 

그런데 한동안 바라보던 아내가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내의 풍만한 자태에서 찬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아내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돌아보지도 않은 아내가 침대위에 누워 얼굴까지 모포를 뒤집어쓴다.

 

숨소리를 죽이며 아내 옆에 누우니,

 

돌아눕는 아내에게서 찬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두려움으로 떤다. 아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암흑의 고요함과 압박을 해오는 긴장감! 마치 예고된 폭풍의 전야 같다.

아내는 수진과 함께 있는 광경을 보지 못 한 것인가.

 

아니, 나의 바램 일 뿐이다.

 

확실히 아내는 보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마음으로 더 캐묻지는 않는 건지!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는 여자는 없다.

 

그러기에 나는 더욱 두렵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아내는 고의적으로 내가 긴장하고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혹시 아내로서 남편의 성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가 방황을 한다고 생각하여 묵인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나 자신을 기만하는 생각인가!

 

아내의 잠을 깨울지 몰라 몸을 움츠리고 잠을 청한다.

 

잠이 들었다가도 아내의 살갗이 스칠 때마다 깜짝 놀라며 눈을 뜬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무겁고 뻐근하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세면장을 드나든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아내는 주방에서 출근을 하는 나를 위해 식사준비를 한다.

 

무언가 감정을 들어낼 것 같은 아내가 평상시처럼 탁자를 마주하고 식사를 한다.

 

냉랭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그런데 웬일인지 아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자기, 오늘 일찍 들어올 거지?”

“왜!? 요즘 별일이 없으니까.......”

“자기 좋아하는 생태찌개 끓여 놓으려고.”

“아........! 좋지.”

정말 어찌된 일이지! 아내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겠다.

 

일찍 들어올 것이냐는 물음은 일찍 들어오라는 명령인가!

 

어쨌든 아내의 말 한마디로 긴장감이 다소는 풀리지만,

 

두려움은 더욱 고조된다.

 

출근을 하면서,

 

업무를 하면서도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몰두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어떻게 근무를 했는지 모르겠다.

 

은영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내의 말도 있고 해서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핑계를 한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을 한다.

 

 아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귀가를 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멈칫하였다.

은영의 조순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은영이 내 집에 웬일이지?

 

연지를 안고 있는 은영과 아내는 미소를 띤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인지를 하고 있었다.

 

은영, 연지, 그리고 아내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한다.

 

은영에게 안겨 있던 연지가 양 팔을 벌리며 쪼르르 나에게로 다가온다.

“아빠.....!”

“..........!”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일어서면서 인사를 하는 은영을 향해 어설픈 미소를 흘린다.

 

낮에도 정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정색을 하고 이웃 남자를 만난 표정을 짓고 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달려드는 연지를 들어서 안았다.

 

연지가 나의 뺨을 붙잡고 입맞춤을 한다.

 

내 머릿속에는 은영이 집으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에 쌓인다.

“자기 일찍 왔네!”

“응........! 머리가 아파서.......”

아내의 말에 급조된 변명을 한다.

 

은영에게 몸살이 난 것 같다고 전화를 했었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그녀를 바라본다.

 

은영과 아내는 무착 다정한 자매 같아 보인다.

 

그녀들이 언제부터 저토록 다정한 사이가 됐는지!

 

그녀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염려된다.

 

안개 속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품에 안겼던 연지를 내려놓으니 은영의 품에 가서 안기며 재롱을 떤다.

“크크~! 연지는 이모가 좋다.”

“나도 연지가 좋아! 귀여워라! 이모도 연지 같은 딸이 있으면 좋겠다.”

“쟤는 이상해! 다른 사람한테는 낮 가리면서, 은영씨를, 몇 번 보고 좋아 하니.”

“호호호........!”

정말 모를 일이다.

 

은영을 이모라고 부르며 따르는 연지도 그렇지만,

 

은영과 아내는 전혀 스스럼없는 사이같이 보인다.

 

오늘 말고도 은영이 집에 왔었던가!

 

탁자위에 놓인 과일을 먹고 있는 그녀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아내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다.

“자기야! 은영씨가 과일을 가져왔는데. 같이 들어요.”

“응........ 응! 옷 좀 갈아입고.........”

넙죽 앉아서 과일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옷을 갈아입고도 거실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은영, 두 사람 사이에서 내가 존재할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방안을 서성이지만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안방을 나가서 서재로 향한다.

힐끔 돌아보니 등을 지고 과일을 먹는 아내와 마주보고 있는 은영의 모습이 보인다.

 

아내의 비만과 대비하여 은영의 아담한 몸매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돋보이고,

 

그녀들의 주고받는 말은 의미 없이 귓속에 윙윙거린다.

 

시선이 마주친 은영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배시시 눈웃음을 짓는다.

그때 연지의 비명소리에 모두들 깜짝 놀란다.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는 연지 발밑으로 커다란 수정구슬이 굴러간다.

 

소파 옆의 작은 탁자위에 놓였던 축구공만한 수정구슬이었다.

 

아마도 연지가 만지다가 굴러 떨어졌고,

 

굴러 떨어진 수정구슬이 연지 발등을 찐 모양이다.

 

급하게 아내가 일어나고 옆에 있던 은영이 연지를 끌어안는다.

“어머! 우리 연지 아팠겠다. 어쩌지......!?”

“가끔 그래! 다른 곳에 치우던지 해야겠어.”

은영이 연지를 가슴에 끌어안아 달래고, 아내가 연지의 발등을 살펴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든 모양이다.

 

울음을 그친 연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내의 젖가슴을 파고들듯이

 

은영의 가슴에 매달려 있다.

 

아내가 거실 바닥의 수정 구슬을 힘겹게 들어서 다시 탁자위에 올려놓는다.

 

투명한 구슬 안에는 붉은 눈동자를 치켜뜬 독수리가 날갯짓을 하며

 

발톱을 사납게 들어낸 형상이 들어있다.

 

수정 구슬을 바라보는 은영의 눈살을 찌푸린다.

“뭐가 그렇게 큰 것이 있어요?”

“이거 연지 아빠하고 유럽 여행할 때 사온 건데, 멋있지 않아?”

“멋있기보다는 왠지, 끔찍스러워요.”

“희랍신화에 나오는 독수리라는데, 액운을 막아준다고, 보는 사람마다 달래......”

“흉물스럽고....... 사람을 다치게 할 것만 같은 느낌에요.”

“그래!? 보는 사람마다 다르네.”

그녀들을 뒤로하고 서재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위에 놓인 책을 펴든다.

 

하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은영과 아내의 목소리에 예민해진다.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은영이 집으로 온 목적이 무엇일는지?

 

빠끔히 열려있는 서재 방문 사이로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촉각을 곤두세워 그녀들의 대화를 듣는다.

“연지가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지요?”

“그렇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만사가 귀찮아.”

“그럴 때는 연지 아빠하고 여행이라도 해서 기분전환하시지.”

“기분 전환!? 내가 잘하지도 못하지만, 연지아빠도 생활에 권태를 느끼나봐.......”

“연지 아빠가 자상할 것 같은데.........그렇다고 언니, 집에만 있지 말고,

 

에어로빅이든지 다른 운동이라도 해봐요. 몸 관리도 해야 기분전환도 돼지요.”

“은영씨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다운 몸매를 갖고 있어.

 

우리 어머니도 그렇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비만 인가봐.”

“그래도 관리를 하면........!”

“귀찮아! 요즘은 우울증도 심해졌나봐.”

“우울증 있어요!?”

“응, 요즘 약 먹고 있어.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어.”

“그래도 언니는 연지아빠가 있잖아요.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은영씨는 남편이 없나, 뭐!?”

“호호~! 그이는 나이도 많지만 지병이 있어서, 그냥 의지하고 산다지만,

 

내가 여자인가 의문스러울 때가 많아요.”

“왜! 경제력도 있고, 나이 차이가 많으니 사랑도 받을 테고.......”

“사랑 요!? 그냥 마네킹 같은 생활인데.......

 

능력이 있다면 연지 같은 귀여운 딸을 갖고 싶어요.”

“그럼........!?”

“네! 여자의 본능마저도 버리고 사는 걸요.”

“하기야! 나도 연지아빠와 잠자리를 언제 했는지 모르겠는데......”

“언니는 왜.......?”

“오래전부터 욕구도 없고, 고통스러워.”

“그래도 남자들은.......!?”

“연지 아빠도 그걸 알고 있어. 어쩌다가 연지 아빠가 요구해도 괴롭기만 해.”

은영과 아내는 정말 친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부부 사이의 은밀한 얘기도 부담 없이 털어 놓는다.

 

그녀들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아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가 우울증까지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 까닭에 속마음을 털어 놓을 기회가 없었던 까닭이다.

 

부부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대화가 끊어지기 시작하면 감정이 앞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두런두런 삼십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던 은영이 가는 것 같았다.

현관을 나서는 소리와 대문까지 나갔던 아내가 거실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난다.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아마도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그녀들의 대화를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여자들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 우울증까지 있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린다.

 

더욱이나 수진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들어내지 않는 아내의 속셈은 무엇일까?

 

나는 웬일인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자기 뭐해요!? 식사해야지.”

“응........? 응!”

아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본다.

 

서재 방문 사이로 보이는 아내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내가 좋아하는 생태찌개를 끓인 것이 아내의 마음 전부를 대변하는 것인지.

 

다른 말은 할 것이 없는 것인가.

 

아내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를 하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차라리 화를 내서 속마음을 털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은영을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하였다.

 

그리고 약속한 것처럼 모텔로 들어가 며칠간 정사를 하지 못한 회포를 풀었다.

 

그녀와 나는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단련되어간다.

 

상대의 성감에 익숙해지고 불같은 욕망의 오르가즘에 탄성을 지른다.

 

땀으로 촉촉해진 그녀를 껴안으며 아내와 가깝게 된 동기를 물었다.

 

발가벗은 몸으로 가슴속을 파고들던 그녀가 달콤한 목소리를 흘렸다.

“지환씨 출장 갔을 때, 슈퍼에서 재희언니를 만났어.

 

심심한데 집에 가자고 하더라고. 그 후에 두 번인가 갔었지! 왜.......!?”

 

“아니 그냥.......!”

“그런데, 이층 세든 사람들과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왜!?”

“무슨 일인지, 계약 만료되면 내보내야겠다고 그러더라고.”

“갱신해서 아직 멀었는데........!?”

아내는 무슨 생각으로 은영을 집으로 초대했을 가!

 

그리고 은영에게 세든 집을 내보내야한다는 말을 왜 했는지!

 

만약 수진이와 나의 관계를 알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층집에 대한 말을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다.

 

그런데 아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내와 은영의 다정한 모습을 본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오전 내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평상시나 마찬가지로 퇴근을 해서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내와 수진이 서로 노려보고 다투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모두 하얗게 쌓인 눈을 쓸던 중인 것 같았다.

 

이층 계단 위에서는 수진이 빗자루를 들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단 밑에서 마찬가지로 빗자루를 든 아내가 수진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말대꾸야! 나이도 어린 게.”

“아줌마!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뭐라고!? 나이가 어려도 알 것은 다 알잖아. 눈을 마구 쓸어내리면 어떡해?”

“내가 정원까지 치우면 되잖아요? 왜 소리 지르고 화부터 내요.”

“네가 정원까지 치운다고!? 서쪽에서 해가 뜨겠다.”
“저도 하고 싶어 그런지 알아요! 엄마가 시키니까 하지.”

“넌 지난번에는 계단에 물을 뿌렸잖아!?

 

말 안했지만, 얼어붙으면 어떡해. 너 같은 계집애는 처음 봐.”

“왜 욕을 하요!? 그럼 그때 말하지, 왜, 지난 일까지 들먹여요?”

“못 된 계집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른한테 대들어!? 하기야,

 

옷 입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엉덩이를 들어 내놓고

 

남자들한테 꼬리치고 돌아다니는 계집애니까, 말하면 뭘 해!”

 

“왜 자꾸 욕해요! 아줌마가 옷 사줬어요?

 

그리고 남자들한테 꼬리치는 거 봤어요?

 

아줌마 같은 사람, 나도 처음 봐요.”

아내는 점점 수위를 더해 언성을 높이고, 수진도 지지 않고 대든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었다.

 

보통 때는 느낄 수 없는 아내의 격한 모습이다.

 

혹시 수진과 나와의 관계를 알고 있던 분노가 폭발한 것은 아닌지.

 

등지고 있는 아내는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지만,

 

마주하고 있어 나를 발견한 수진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여 반짝거린다.

 

수진과 아내의 언쟁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등 뒤로 다가가 손을 잡아끌었다.

“당신! 그러지 말고 참고, 이해해. 수진이도 들어가고.”

“자기는....... 제가 하는 말 들었어!? 기가 막혀서.......”

분을 삭이지 못해 시근덕거리는 아내를 간신히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온 아내가 나를 쏘아 본다.

 

얼음장 같은 아내의 눈빛에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 가?

 

아내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홧김에 쏘아붙일 것 같은 아내가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새도 날이 어두우면 안식처인 보금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보금자리는 싸늘한 냉기가 감돈다.

 

그만큼 가정에서 아내의 비중은 큰 것 같다.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수진과 아내가 친밀한 것 같더니 순간의 감정으로 다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은영과 아내가 자매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수진과 아내 사이의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수진과 아내가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곤혹스러워진다.

 

수진이 큰 잘못이나 실수를 했다기보다는 아내는

 

수진의 조그마한 잘못도 지나쳐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녀들 사이가 원만했으면 하는 것은 너무나 독단적인 나의 이기심인가!

 

수진과 은영, 모두 은밀한 애정을 느끼는 관계이기에 아내에게는

 

죄를 짓는 마음이지만, 그녀들 사이가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경제가 좋지 않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번화가를 왕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덩달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감정이다.

 

가족과 같이 환호하는 사람들 물결 속에 휩싸여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그러나 아내는 불교집안이라서, 결혼 초부터도 크리스마스 날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직원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나간 사무실에서 있노라니 허전하였다.

 

오전에 은영에게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별장에 가자고 해서 다녀온다고 했다.

 

남편과 별장에 가기 싫은지, 망설이다가 ‘미안해서, 어떡해!?’ 라고 하던

 

은영의 촉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집에 들어가서 아내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퇴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유리창 밖의 하얀 눈으로 덮인 거리에는 오색등을 깜박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현란하다.

 

쇼윈도 앞으로는 팔짱을 낀 연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걸어간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수진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기에 쓸쓸함에 젖는다.

 

혼자 남아 있던 사무실을 나오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톡톡 튀어나오는 수진의 목소리가 반갑다.

“오빠! 전화했었어?”

“응.......!”

“그렇지 않아도 오빠 생각났는데,

 

진희 빼고 다시 삼인조 그룹 결성하고 연습중이라서 전화 못 받았어. 왜......? 어디야?”

 

“회사에서 퇴근하는데, 그냥, 뭘 하고 있나 해서.......”

“지금 연습 끝나고, 이따가 다시 시작할 건데, 거기로 갈게.”

 

“알았어.”

수진이 온다고 하는 말에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회사 건물을 나가서 물결처럼 흘러가는 인파를 바라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한 대가 멈추어서고,

 

밝은 미소를 띤 수진이 작은 손가방을 들고 내려선다.

 

검은색 타이즈에 검은색 핫팬티, 검은색 모피의 방한복,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수진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깜찍하게 보인다.

“오빠! 나 빨리 왔지? 헤헤~!”

“내가 갈 걸 그랬나! 차가 안 밀렸어?”

“응, 조금 밀렸어.”

“식사 안했지?”

“응, 배고파.”

“뭘 먹을까!?”

수진을 데리고 경양식 집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아름답고 특별한 복장을 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실내에는

 

크리스마스 노래가 흥겹게 울리고 있다.

 

배가 고팠던 차에 스테이크와 맥주를 시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수진은 정말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면서 말을 한다.

“오빠! 오늘 뭐할 거야?”

“특별히 할 일이 있나! 지금 수진이와 같이 있잖아.”

“헤 헤~! 그냥 걸어 다니자!?”
“그래! 춥지 않겠어?”

“오빠하고 있으면 안 추워. 헤 헤......!”

“요런 깍쟁이.........”

“오빠! 오늘은 넥타이 다른 거네. 구두도 다른 거고. 멋있어.”

“음. 괜찮니?”

은영이 대답대신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수진이 나를 바라보는 눈은 의외로 예리하다.

 

나에 대한 집착이고, 덜렁대는 것 같으면서도 두뇌회전과 관찰력이 빠르다.

 

수진의 모습에는 다양함이 있는 느낌이다.

 

아름답고 순진한 요정, 불같은 열정이 담긴 순수함,

 

남자를 매혹시키는 마력이 곁들여 있다.

배를 채우고 음식점을 나와 인파 속을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내리는 눈송이 속에서 수진은 어린아이처럼 기뿐 미소를 띠운다.

 

그녀는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나의 허리를 붙들고 토끼 걸음을 한다.

 

나는 한결 젊어진 기분에 들떠서 그녀의 어깨를 포옹하고 걷는다.

 

그녀의 종알거리는 목소리가 노래처럼 들린다.

“아! 정말 기분 좋아. 우리 영화제하는 부산으로 놀러갈까!?”

“지금 무슨 부산.........!?”

“아줌마 때문에 못가는 거지.......!?”

“꼭 그런 건 아니고, 나중에.........”

“요즘, 아줌마 이상해! 나만 보면 화를 내.”

“가깝게 느끼니까, 그런 거야! 남이면 뭐 하러 신경 쓰겠어.”

“피 잇! 아줌마가 미워 죽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줌마가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래.

 

시간이 흐르면 다시 너를 좋아할 거야.”

수진은 언제나 직설적이고 당돌하다.

 

어찌 보면 순수하기도 하지만, 대인 관계에서는 위험한 말투이다.

 

그녀의 어깨를 껴안아 당기니 눈빛을 반짝이며 올려다본다.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인파 속을 걸어간다.

 

한동안 걸음을 옮기다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진열된 상품을 구경한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수진의 모습에 행복함을 느낀다.

 

사람은 홀로 태어났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 묻혀 있음으로 행복함을 느낀다.

 

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 다니다가

 

수진이 인형들이 진열된 점포 앞에 섰다.

 

눈동자가 유난히 동그랗고 귀여운 인형을 집어 든 수진이

 

점원에게 포장을 해 달라고 한다.

“오빠! 이거 예쁘지. 연지 가져다 줘. 내 선물이야.”

“하하~! 꼭 수진이 닮았구나.”

“아니, 연지 닮았어.”

“아줌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오빠가 샀다고 그래.”

인형처럼 눈썹이 짙고 동그란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수진의 모습이 깜찍스럽다.

 

중앙 홀에서는 가수들의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5인조 아이돌 여성그룹의 율동과 노래가 공연 중이다.

 

가던 길을 멈춘 수진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맞추어 좌우로 흔들리는 수진의 엉덩이가 앙증맞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톡톡 치니 순진이 하얗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 나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 가득한 눈ㄴ웃음을 짓는다.

 

다시 걸음을 옮겨 인파 속에 묻힌다.

 

보석의 영롱한 빛이 반짝이는 쇼케이스 앞에 섰다.

 

쇼케이스 진열된 목걸이를 바라보던 수진이 탄성을 지른다.

“어머! 정말 예쁘다.”

“예쁘지요! 손님이 예뻐서 잘 어울리네요.”

제복을 걸친 여자 점포직원이 수진의 마음을 부추긴다.

 

사파이어로 만든 페넌트가 시선을 끄는 자수정 목걸이였다.

 

페넌트에는 작은 하트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반짝이는 빛깔이 선명하여 나도 마음에 들어서 점원에게 꺼내달라고 하였다.

 

목걸이를 들고 감탄하는 수진의 표정은 내 마음을 움직인다.

“이거 주세요! 얼마지요?”

“오빠, 정말 사주는 거야!?”

대금을 지불하는 동안,

 

수진은 목걸이를 걸고 거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몇 번이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수진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내 뺨에 입맞춤을 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백화점을 나와 걸으면서 그녀는 목걸이를 만지며 깡충거리는 걸음을 한다.

 

키득거리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크리스마스의 밤거리에 메아리친다.

 

크리스마스의 밤거리를 상큼한 그녀와 걷는 기분은 색다르다.

 

얼마를 걸었는지 수진이 허리를 비틀며 매달린다.

“오빠! 나, 다리 아파.”

“그럼 이제 집에 갈까?”

“몰라! 오늘 늦게라도 합숙소에 가야 돼.”

“그럼 택시 태워줄게.”

“싫어! 미워 죽겠어.”

“다리 아프다면서.......!?”

수진이 눈을 하얗게 흘기며 가슴속을 파고들며 매달린다.

 

그녀가 직접 표현하지 않지만 나와 같이 있고 싶은 것을 직감한다.

 

성욕의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어린여자의 욕구는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인가!

 

부둥켜안으면 가슴속으로 묻혀버릴 앙증맞은 그녀의 몸에서 전해오는

 

체온을 느끼며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핑크빛의 호텔 간판이 우리를 유혹한다.

 

호텔을 바라본 수진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약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발걸음은 호텔로 향한다.

 

서로 무언의 욕구를 풀기 위해 호텔로 들어갔다.

 

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수진은 세상모르는 어린 사슴처럼 나의 가슴 속을 파고 들며 뜨겁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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