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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1부 6장

오늘의 쉼터 2013. 6. 21. 21:13

 

여인의 향기 - 1부 6장

 

 

 

 성(SEX)에 대한 욕망의 결과는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것이냐,

 

아니면 자의에 의한 것이냐는 차이점으로 쾌락과 원한의 갈림길을 선택케 한다.

 

항상 이런 보험사고 결과는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지난 시간을 상실케 한다.

잔 업무를 처리하고 지점장과 식사를 마친 후 서울 종로에 있는 본사로 올라오니

 

해가 저물고 어두웠다.

 

퇴근길에 복도에서 마주친 한지영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눈웃음을 친다.

 

그리고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강부장님! 언제 술 한 잔 사주실거죠!?”

 

“.........!”

말없이 나는 미소를 지을 뿐이다.

 

승용차를 몰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물결치는 도로를 달린다.

 

이 세상에서 남성에게 돌아오는 것 가운데에서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여성의 마음이라고도 하지만, 여자의 집념은 남자의 야심과 같이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소설 위기의 여자, 작가 보봐르가 말했던가.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는 아니고,

 

그녀의 성(gender) 역할을 통해 ‘여자’로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특별히 음란한 사람은 없고.

 

또한 특별히 정조가 굳은 여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나의 집은 상일동에 있다.

 

집으로 가기위해 동대문 로터리를 지나치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지하철 입구로 향하는 상점 앞에 마주 서있는 두 여자 중 한명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승용차를 멈추고 쇼윈도 불빛에 비치는 얼굴을 확인한다.

 

대화를 하는 동안 미소를 지을 때마다 들어나는 보조개, 깜박이는 짙은 속눈썹,

 

차분하면서도 앙증맞은 몸매, 조은영이었다!

 

혹시나 해서 재차 확인해도 조은영이 분명하였다.

 

그녀를 이런 곳에서 보는 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어찌해야할지 바라보는데 마주 보았던 여자와 헤어진 조은영이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경적을 울리니 길을 걷던 사람들과 함께 조은영이 돌아본다.

 

천천히 승용차를 몰아 그녀가 서 있는 도로가로 갔다.

 

운전석을 바라보던 조은영의 얼굴에 놀람과 묘한 미소가 떠오른다.

 

차창 문을 열고 소리 질렀다.

“퇴근하는 중 아녜요? 타세요.”

 

“연지 아빠가 웬일로........”

머뭇거리던 조은영이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자잘한 체크무니 플레어스커트와 연미색 블라우스위에 가벼운 니트를 걸친 그녀모습.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는 여인의 체취가 가득 묻어난다.

 

한지영과 하루 종일같이 있었던 까닭인지,

 

나도 모르게 시선이 조은영의 스커트 자락 밑과 아담하게 솟은 가슴을 훑어봤다.

 

나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그녀가 멋쩍은 미소를 띠운다.

“연지 아빠가 여긴 웬일이세요?”

 

“아! 평소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오늘 수원 출장 갈일이 있어서 승용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은영씨는 여기 웬일로?”

 

“모르세요!? 저 이 근방에 의상실을 하고 있어요.”

“몰랐어요. 그런데 이른 시간에 귀가 하는 것 같던데?”

 

“가게에 늦도록 안 있어요.

 

집이 가까운 우리 지배인이 가게 문을 내리고 퇴근해요.”

“미술 전공이라고 했는데, 직접 디자인을 해요?”

“아뇨! 저는 아직 배우는 입장이고, 디자이너는 따로 있어요.”

퇴근길이라서 도로가 혼잡하였다.

 

잠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자동차 행렬 속에 묻혀 흘러간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마주하니

 

무슨 말부터 할지를 모르겠다.

 

마른 침만 삼키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승용차는 안가지고 다녀요?”

 

“바보같이 아직 운전 할 줄 몰라요.”

그녀가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대답으로 다시 대화가 멈추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하고 단순한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말한다.

“저, 사실 은영씨를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요........!?”

“네.......! 그런데, 하나 물어 볼 것이........”

 

“네! 뭔데요?”

“혹시 제 사무실 아세요?”

 

“호호........! 음.......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사무실을 알 것이라고..........”

“사실은 오늘 직원에게 들은 얘긴데, 어느 여자 분이 나를 찾아왔고,

 

이름도 안 밝히고 갔다고 하는데,

 

직원이 설명하는 모습을 느끼기에 왠지 은영씨 같아서요.”

 

“저 같다고요.......!?”

힐끔 은영을 바라보니 눈 밑이 붉게 물든다.

 

하지만 정색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아 무안하기도 했다.

 

앞 유리창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를 직시하는 그녀의 눈빛이 소녀처럼 짓궂고 장난스럽다.

 

공연히 말해서 이미지만 깨지는 것이 아닌가, 후회스럽다.

“제가 잘못 알았나보군요.”

 

“연지 아빠를 좋아하거나, 사귀고 있는 여자 분 아니세요?”

“그런 여자가 없어요. 아마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호호호.........!”

 

“.........!?”

그녀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녀에게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가.

 

아니면 지금 내 표정이나 모습이 웃음거리인가.

 

어리벙벙하다.

 

보조개를 드리운 얼굴을 붉혔던 그녀가 살짝 눈을 흘기며 말한다.

“........죄송해요!”

 

“뭐가요?”

“사실은 얼마 전에 마트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연지 엄마를 만났어요.

 

대화중에 보험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연지 엄마가 연지아빠 명함을 나눠주며

 

보험가입을 권유하더라고요.”

 

“연지 엄마가.......!?”

“네. 그래서 종로에 볼일보러갔다가 의상 쇼를 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망설이다가,

 

그 옆의 건물을 보니 명함에서 본 연지아빠 명함에서 본 보험회사더라고요.

 

궁리하다가 용기를 내서 차라도 같이 마실까하고 들어갔었어요.

 

들어갔다 나와서 얼마나 창피한지....... 제가 간혹 엉뚱해요. 죄송해요!”

“아, 아니! 저는 영광이죠.

 

그때 제가 있었어야 하는데. 없었던 내가 잘못이죠.

 

다음에 연락드릴게 명함 줄 수 있어요?”

 

“네! 그렇지 않아도 보험에 하나 가입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은영은 서슴지 않고 손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주었다.

 

아내가 동네 여자들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는 말에 별다른 뜻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은영이 기억하고 있다가 사무실에 들렀었다는 말에 감동을 느낀다.

 

나 혼자만 그녀를 연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도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험 얘기 끝에 오늘 출장 갔던 보험사건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얘기 하는 도중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애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최민국에게 미성년이었던 임난희가 당한 얘기를 할 때,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증오심으로 가득했다.

대화를 하는 동안 그녀와 나의 집이 있는 동네의 도로변에 도착했다.

 

그녀와 헤어질 시간이라서 대화를 할 시간이 다시 올는지 몰라 아쉬웠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큰 도로 옆에 운치 있는 살롱 간판이 보였다.

 

주춤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식사 하셨습니까?”


“........아뇨!”


“그럼, 같이 식사 하고 싶은데, 괜찮아요?”


“.......!”

시선을 마주한 그녀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승용차를 집에 주차하고 올 것이라면서 도로변에 보이는 'AMOUR(아무르)' 살롱에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는 의도를 생각하는 듯 머뭇거리더니 차에서 내려 살롱 입구로 걸어간다.

내 가슴은 소년처럼 기쁨으로 가득했다.

 

집은 먼 거리도 아니었다.

 

부리나케 집에 도착하여 주차를 시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보자마자 습관적으로 아내는 식사준비를 하려고 한다.

 

주방으로 향하는 아내의 등 뒤를 향해 말했다.

“당신 식사 안했지?”


“응, 자기 기다렸지.”

“어쩌지, 나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왜?”


“사실은 근처에 중요고객이 사는데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해서,

 

차를 두고 가려고 들어왔는데.”

그때서야 아내는 나를 마주하고 선다.

 

아내의 눈빛을 바라보며 죄인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남자는 때로 아내가 어머니 대신 모성애를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아마도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아내 앞에서 주눅이 든다.

 

그러나 아내는 표정에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다녀와. 그렇지 않아도 점심 늦게 피자를 먹었더니

 

소화가 안돼서 밥 생각이 없었는데.”


“미안해!”


“괜찮아, 다녀와.”

아내는 너그러운 말투로 무덤덤하게 말한다.

 

아니면 귀찮아서 하는 말인가.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아내에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지 조심스럽다.

 

그러나 집을 나서고는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용돈을 타서 친구들과 어울리러 나가는 심정이다.

살롱 안으로 들어가니 희랍의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의 그림들이 걸린

 

고풍의 실내가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작은 무대에서는 하얀 드레스를 걸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연주하고 있는 곡은 ‘보이지 않는 사랑’ 이었다.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은영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이고 마음이 설렌다.

 

어쩌면 은은하게 흐르는 피아노곡이 그녀를 위한 것만 같았다.

 

은영과 식탁을 마주보고 앉으며 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아니요!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이 곡 좋아하세요.”


“네. 제 차에는 ‘리차드클레이더만’이 연주한 씨디가 있어 항상 들어요.”

웨이터가 부지런히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웨이터를 향해 보는 은영의 긴속눈썹이 깜박이는 눈동자가 아름답다.

 

나는 아무래도 그녀에게 매료당했나보다.

 

마주앉아 있어도 탁자 너머로 그녀의 향기 가득한 체취를 느낀다.

블라우스가 벌어진 앞가슴의 뽀얀 살갗!

 

미소를 지을 때마다 보조개가 들어가는 표정!

 

환상 속에 앉은 느낌이다.

 

넋을 놓고 은영을 바라보는데 웨이터가 메뉴판을 내밀고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을 은영을 향해 돌려놓으며 물었다.

“아! 좋아하는 음식이 뭐에요?”


“음......! 우리 그냥 간단하게 먹어요.”

미소가 머금은 눈빛으로 은영이 말한다.

 

메뉴판을 잠시 보다가 웨이터에게 말했다.

“간편하게 먹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음....... 그러시면 제가 알아서 해드릴까요?”


“그럽시다.”


“그럼. 와인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웨이터에게 주문하기 전에 은영에게 고기와 생선,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물었다.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그녀의 긴 속 눈썹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더니 양고기를 선택한다.

 

나에게 생선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는 것인가.

 

웨이터에게 술로 붉은 포도주를 시켰다.

 

웨이터가 사라지고 은영이 내게 묻는다.

“양식 좋아하세요?”


“그냥 손님들과 동석할 때는, 하지만 한식이 좋고 편해요.”


“저도 그런데요. 다음에는 편한 곳이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은영이 ‘다음’이라고 했다.

 

그녀가 다음에 만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은영도 나와의 만남의 자리를 편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7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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