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65. 안두희(安斗熙)의 거짓 수기(手記) (4)

오늘의 쉼터 2013. 3. 31. 10:53

65. 안두희(安斗熙)의 거짓 수기(手記) (4)

 

  이로부터 2일 후―

  운명의 작희(作戱)는 내게도 극적인 사실을 가져왔다.

  황해도 옹진 국사봉의 전투는 종래 삼팔선 곳곳에서 발생되어 온 소충돌과는 양상을 달리하여 국군창설이래 최초로 포병의 출동명령이 내린 것이다.

  때마침 포병사령관으로부터 하달된 작전명령은「제7대대 중에서 일개중대를 출동 시킬 것」이란 것이다. ‘내 차례다’하고 나는 작약 기뻐하였다. 나는 제1중대장이다. 군작전의 규례로 보아 이런 때에는 서열 순으로 움직이는 것이 통칙이기 때문이다.

  서북청년회이래 일번구호로 울부짖으며 몽매간에 그려보던 소원(所願), 원한의 삼팔선에서 전개된 대공전투에서 기백(氣魄)에 응결된 노후의 포문을 열 생각을 하니 감개무량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칼 집고 일어서니 원수 치떨고, 피 뿌려 물들인 곳 영생탑 세워지’의 옛 노래 일절을 불렀다.

  그런데 의외에도 출동명령은 제3중대에 내리고 나는 제3중대 출동명령일자에서 이일을 소급한 6월21일부로 목하 결원중인 연락장교로 발령이 났다. 낙망천만의 일이다. 감격의 꿈은 일순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와병중인 장 사령관(장은산)을 병원으로 찾아 항의를 거듭하여 보았으나 도리가 없었다. 분한일이다.

 


전임 연락장교인 김 소위는 수일 전 주석에서 상관과 싸우다가 뚜드려 맞고 입원과 동시에 휴직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가 공석이였던 것이다. 김 소위가 실수가 없었던들 나는 틀림없이 전지(戰地)로 향하였을 것이다. 연락장교로 뽑히게 된 ‘우수한 장교’라는 인정의 광영도 반갑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선생님과 나와의 악연을 고결(固結)시키는 숙명이였었는지.

  이 때 내가 전선으로 향하고 말았더라면 죽더라도 본회(本懷)의 죽음을 이루었을 것이고 선생에게 대한 시역의 기회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개월을 두고 축적된 울분과 고민을 세척할 좋은 기회이며 월남 수년래의 숙원이던 참전의 꿈이 무참히도 깨지고 나니 사체(四體)가 느려지는 것 같다. 전속(轉屬)발령을 받고는 결근계를 던진 채 부대에 나가지 않았다.

  ―드디어 역사적인 비극의 날. 2월 6일은 예사로이 밝았다.

  간밤에는 아내의 낙산(落産)소동에 더욱이나 눕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새웠다.

일요일이다. 초여름의 폭양(曝陽)은 아침녘부터 대지를 태울 듯이 날카롭다. 열시가 좀 지나서 철야에 지친 눈을 부비며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무심히 옮기는 발걸음은 세종로 네거리까지 다달았다. 왼편으로 뻗은 서대문 쪽 중정로를 바라보면서 문득 생각을 돌렸다. ‘경교장으로 가자!’

  ―이렇게 우유부단의 시간만을 보낼 것이 아니다. 주저하면 주저할수록 암운만이 짙어가는 것이 아니냐. 저번 날 그렇게 몌별(袂別)에 가까운 언사까지 주고받았을진대 선생님의 총애도 다시는 옛 같지 못할 것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검은 그림자가 나의 뒤를 따르고 있는지 누가 알랴.

 


  일이 여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오늘은 결단코 선생님의 심저를 똑똑히 규명하여 실태를 분명히 파악하여 만고에 충언이 끝내 헛되게 되면 다음 시간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연히 당원증을 내던지고 이 마굴(魔窟)의 정체를 일거에 폭로하는 동시에 선생님 주위에 야합칩복(野合蟄伏)된 악당들을 일망에 타진하여 그 파괴적이며 반역적인 전율할 음모사실을 일일이 척결하여 놓으리라. 이것이 국가의 운명을 위하는 길이며 선생님을 돕는 길이 될 것이다―.

  경찰관파출소 뒤를 돌아 서쪽을 향하여 천천히 발을 옮기며 생각했다. ‘어떻게 만나 어떻게 말을 붙여볼까?’

  이런 작전과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경교장을 1,20 미터 앞둔 행길가 다방 자연장(紫煙莊)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눈을 감고 묘안을 모색했다.

  ―첫째 지난번 선생님께서 오지 말라 하셨고, 나도 다시 가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니 오늘 방문한 구실을 어떻게 붙일까?

  이번 국사봉 전투에 국군창설이래 처음으로 포병이 출동하게 되었으며, 그 제일 진으로 내가 가게 되어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자.

  ―둘째 그러면 담판의 서두는 무엇을 택할까? 선생님이 숨기셨다던 김약수가 엊그제 자기 첩네 집에서 잡혔다는 이야기로서 시발(始發)하자.

  ―셋째 전같이 말을 중단시키면 어떻게 할까?

  이 기회가 마지막이니 상하의 예의를 돌볼 것 없이 선생님이야 답변하시건 말건 들은 말 마음에 먹음은 말 전부를 남김없이 토로하자. 그러면서 지금까지 억눌러오던 설움을 터뜨려 놓자.

 


  그렇다. 백범 선생이야 말로 우리 겨레의 귀감이시다. 지금에 와서 이 ‘거울면’을 흐리게 더럽혀 놓은 것은 가증하게도 선생님의 존재를 이용하려 드는 측근자 간 귀들일 것이다.

  소위 한독당을 형성하고 있는 중견간부는 물론, 저 지하공작원들 전부가 의식적으로 야합된 부족들이라면 그야말로 진실 된 애국자로서 이 비밀, 이 음모를 캐치한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정체를 폭로시킬 역할은 나를 두고는 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금후 선생님의 심경에 추한 촉수(觸手)를 제지시킬 수 있는 사람도 나 하나뿐이 아닌가. 피치 못할 임무요, 운명이다.

  이런 작전계획 하에 신념을 가다듬고 경교장을 들어선 것은 오전10시경이다. 분위기는 전날보다도 더 엉성하다.

  '오늘은 일절 면회사절' 이라고 접종(接踵)한 내방객을 물리치느라고 비서들은 바빴다.

  나는 일찍 무상으로 출입하던 터인지라 안내를 새삼스레 청할 것도 없었지만 일반 내방객을 물리치는 분위기를 돕기 위하여

「선생님 지금 안계십니까?」

하고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비서는 나즈막한 음성으로 자리를 권한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지금 선객이 계십니다.」

  '선객이라?'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떤 손님이신가요?」

「문산 헌병대 강 대위(姜大尉)입니다.」

  강 대위. 인사교환은 아직 없었지만 이 응접실에서 여러 번 안면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와 같이 '비밀당원이나 아닌가?'하고 가끔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사람이다.

 


  약 삼십 분간 아래층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강 대위와 교체하여 2층으로 올라갔다. 활짝 열린 창변(窓邊), 회전의자에 몸을 싣고 서안(書案)에 기대어 부채든 손으로 무슨 서류를 뒤적이고 계시다가 안내 없는 인기척에 약간 놀라시는 얼굴로서,

「너냐, 너는 왜 왔느냐?」

하고 한마디고 쏜다. 대단히 귀찮으신 모양이다.

「인사 여쭈려 왔습니다.」

  마루에 연달은 <다다미>위에 꿇어앉았다.

「인사? 오지 않겠다더니 또 왔어?」

「저, 지금 옹진 국사봉(國士峰) 전투에 우리 국군창설이래 처음으로 포병이 출동하게 되었는데 그 제1진으로 저의 중대가 참가하게 되어 내일 떠나기로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니 국사봉전투란 그렇게 치열하냐.」

「네, 적의 작전이 지금가지의 모양과는 좀 다른가 봅니다. 대공 전투참가라는 것은 저의 큰 숙원이였으며, 더욱이나 포병대의 초진에 참가케 된 데 대하여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목숨을 홍모(鴻毛)에 비기는 군입의 몸이 오라 이번도 살아서 돌아오리라 어찌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이 될는지 모를 선생님과의 대면의 기회를 얻기 위하여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들으실 뿐, 대답이 없으시다. 지난 한때 같으시면 나의 등이라도 쓰다듬으시면서 '그렇지 참 반갑다.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빈다.'고 여러 가지 격려의 말씀이 계셨을 것은 물론, 무슨 과자 한 봉이라도 사다놓고 장행회(壯行會)라도 하시려고 떠들으셨을 선생님이 이렇게도 표변(豹變)하시다니.....

 


  잠시 피차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이 마당에 임하여 꼭 선생님께 여쭈어볼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먼 밖을 바라보던 자세대로 머리를 돌리시지도 않으신다.

「세상 이목이 귀찮다. 시끄럽다. 어서가거라.」

「선생님! 저는 이 의문과 이 번민을 풀지 못 하오면 죽사와도 옳은 귀신이 못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간절한 청이오니 이 몽매한 자식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주실 수 없으십니까?」

「또 무엇이냐?」하시면서 회전의자를 틀어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신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로 변할망정 선생님의 철석같이 굳으신 지조야 변할 리 있사 오리까마는, 저희들이 우미(愚迷)하여 선생님께 대한 여러 가지 풍설과 당의 행동에 있어서 불가사의한 점을 해명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선생님께 직소앙문(直訴仰問)코저 애썼으나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고 본시 이런 회의를 갖는 것부터가 성스러우신 선생님의 정신을 모독함일까 저어하와 감히 입 밖에 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서는 여기에 대하여 석연히 그 내용을 밝히시어 저의 왜곡된 의심을 씻어 주심이 이런 혼란기에 처한 자제를 사랑하시는 길일까 하옵니다.」

「그래 말해봐.」

  다소 표정은 부드러워지셨으나 어조는 역시 거칠으시다.

「국회소장파와 선생님 사이에 일직부터 내통되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정평이요, 이번 그들 피검시 김약수를 선생님께서 숨기셨다는 억측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이 온데 선생님과  그들과의 관계는 정말 어떤 것 입니까?」

 


「세상이 아무려면 어때, 또 공산당이라면 어때!」

「그러시면 공통된 노선이란 말씀이십니까?」

「네 멋대로 해석하렴.」

「선생님께서 남북협상당시 서울을 떠나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게 굳은 서약을 하시고자 돌아오신 뒤에 왜 뚜렷이 대국의 전망과 선생님의 심경을 밝혀 말씀치 못하셨습니까? 무슨 숨은 사정이 계셨습니까.」


 
  나는 일방적인 흥분조로 변해갔다.

  선생님은 저으기 태연을 잃으신 안색이시다.

「그래 내 나라 내 땅을 갔다 온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

「왜 모든 것을 국민 앞에 밝히지 못 하셨냐는 말씀입니다.」

「그래 밤낮 반 쪼가리 땅에서만 살자는 말이냐.」

  요령부득(要領不得)의 답변이시다.

「협상 다녀오신 후에 태도는 어떠하셨습니까. 미군의 철퇴를 주장하셨고 미국의 원조를 거부하셨고 UN의 처사를 비방하시면서 급기야는 5·10선거까지 부인하신 것, 어떻게 그렇게 그 주장하심이 공산당과 꼭 같으십니까. 전라도 방면을 순회 하실 적에 정부를 부인하시고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지으시며 이 박사를 사대주의자의 전형적인 존재로 매도하셨으니 공적인 국면도 국면이오나 그렇게도 국민 전체가 쌍벽으로 모시던 두 분의 교의(交誼)가 끊겼다고 생각될 때에 온 겨레의 실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래 이놈아 이것이 정부구실을 한단 말이냐, 그러고 미국 놈이 무슨 전생에 은혜를 입었기에 그리도 고맙게 적선을 할 것이란 말인가. 대국을 좀 큰 눈으로 보아라.」

 


「그리고 건국실천원양성소(建國實踐員養成)는 무엇 하는 기관이며 혁신탐정사(革新探偵社)는 누구의 것이며 또 한독당(韓獨黨)의 소위 비밀당원 조직망이란 무슨 사명을 부여한 결사입니까. 한국군대는 김구씨의 군대라는 외인(外人)의 평론에 대하여 선생님은 무슨 말로써 반박하시렵니까.

선생님! 제게 8·15기념일을 전후하여 중대한 지령이 있을지 모른다던 예비명령은 무엇에 대한 준비입니까.」

  나의 음성은 높을 대로 높았다. 선생님도 노기등등한 안색으로 안절부절못하시면서,

「무어야? 이놈 죽일 놈! 입이 달렸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고함을 지르신다. 이제는 피차가 사리를 가릴 이지(理智)의 여유를 잃었다.

「여순 반란은 누가 교사한 것입니까.」

「뭐야 이놈.」

  주먹으로 서안을 치신다.

「표(表)소령, 강(姜)소령과 기거를 같이하던 놈은 어떤 놈입니까.」

「저런!」

  책 뭉치가 날아온다. 얼굴에 맞았다.

  나도 주먹을 부르쥐고 고함을 질렀다.

「송진우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벼루가 날아와서 머리를 스치고 뒷벽에 부딪힌다.

「장덕수(張德秀)씨는 누가 죽였습니까?」

「이 놈! 너 이놈!」

  붓이 날아오고 또 책이 날아오고 종이 뭉치가 날아오고......

 


  나는 고개를 수그리고 잠깐 생각의 여유를 포착하려했다. 무슨 말씀인지 기억은 없으나 선생님께서는 노후(怒吼)를 계속하시는 것이다.

‘안됐다. 선생의 심기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구나. 저 그늘 밑에 칩복(蟄伏)한 것들을 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도노(徒勞)일 것이다. 그늘의 주체인 대목을 찍어 버리자. 그것이 비상시에 봉착한 국가민족을 위하는 길이요, 백범 선생 장본인의 오명을 막는 길일 것이다. 하물며 폭풍을 잉태한 8·15지령이 숨 가쁘게 때를 기다리는 아슬아슬한 찰나가 아닌가. 꺾어야 한다. 이때다.’

  뒷 허리를 스친 나의 오른편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뽑혔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왼손은 날쌔게 총신(銃身)을 감아쥐었다. 제끄덕! 장탄(裝彈)을 하면서 얼굴을 들었다. 앗! 선생께서는 그 거구를 일으켜 두 팔을 벌리고 성낸 사자같이 엄습하여 오는 것이 아니냐. 눈을 감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영감과 나라와 바꿉시다.」

  고함인지 신음인지 나도 모르는 소리를 지르며......

  빵! 빵! 빵!

  유리 깨지는 소리. ‘으응’하는 비명.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겨우 눈을 들었다. 선생님의 커다란 몸집은 사지를 늘어지고 두부(頭部), 흉부로 피를 쏟으며 의자와 함께 몸으로 쓰러진다. 무섭다. 나는 발을 옮기어 옆 마루 미닫이 뒤로 돌아섰다. 아현동 쪽으로 향한 서쪽 들창에 기대어 섰다. 광활한 푸른 하늘 저편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다. 하늘도 고요하고 땅도 고요하고, 내 마음도 고요하다.

 


  공허한 내 마음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쇼크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일까. 분명히 실신은 아니다.

「구애 없는 이 시간에 나마저 죽어버릴까?」

  총구를 오른편 이마에다 댔다.

「아니다. 죽을 때가 아니다. 지금 죽어선 안 된다. 내가 말없이 이대로 죽으면 영원이 역적이 되고 말 것이다. 첫째 겨레의 안녕과 국가의 질서를 위하여 이 가공할 복마전(伏魔殿)의 정체를 폭로하여야 할 것이고 후대 자손을 위하여 참된 이 단심을 밝혀 두어야 할 것이다. 아무 때라도 죽을 목숨이니 종용히 법의 제단 밑에 선생님의 뒤를 따르리라.」

  따로 죽음의 시간을 택하기로 하고 총을 내렸다.

  ‘이제는 나는 죄수다. 군장을 더럽힐 필요가 없다.’

  포병 뺏지와 소위계급장을 떼어 마룻바닥에 버리고 권총을 손에 든 채 층층대를 한 계단 한 계단 내려디디었다. 아래층 응접실에서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잡담을 하고 있는데 정문(대문)에서 파수(把手) 보던 순경이 총소리를 들었는지 두 세 명이 제각기 카빈총을 내밀고 응접실 앞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당황한 태도로,

「지금 2층에서 무슨 총소리야! 손들어 손들어!」

하고 떠든다.

  비서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나는 들고 내려온 권총을 쇼파 위에 놓고 종용히 두 손을 들었다.

「지금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지금 선생님은 나의 총에 돌아가셨소.」

「뭐? 선생님을? 이놈 죽여라!」

칼빙 개머리판이 날라들고 책상다리가 날라든다.

「죽여라!」

「없애라!」

  주위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들이치는 판이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죽이지는 말아라. 죽여서는 안 된다.」

  가물가물 돌리는 목소리. 누구의 말인지....

 

 

 

  지금까지 움직인 이 붓은 수개월의 시간을 더듬었고 무한계의 세계를 거래하였건만 기록이 끝나고 보니 현실은 현실 그대로 아직도 6월 30일 그날이요 불과 수(數)입방미터의 옥방우주(獄房宇宙) 그대로 구나.

 

 

 

7월 1일 (금요일) 청천

  어제 하루 쉰 취조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취조란 내게는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사건의 전모는 신문 초일(初日)에 모두 설파했고 그 후 중요한 부분의 설명도 알아들으리만치 부연(敷衍)하였으니 그만하였으면 죄상의 경중(輕重)과 사리의 흑백도 판정되련만 물은 말을 다시 무도 캔 자리를 다시 캐는 데는 지치지 않을 수 없다. 공범자나 있다면 복잡도 하겠지만 무엇이 그리 다기(多岐)하단 말인가. 이 고역도 속죄에 속하는 한 가지 죄역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미 사형을 각오한 몸인지라 죽을 때까지 내 세계, 사색의 세계를 허용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짜증을 내봤댔자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충실해야할 일과라고 관념하고 나의 기분도 달랠 뿐만 아니라 취조관의 수고도 헤아려 요령 있고 간명하게 기교를 다했다. 말하자면 취조에 대한 기술을 연마하는 셈이다. 차차 취조관과 나와 호흡이 맞아가는 탓인지 쌍방의 문답에 그리 심각한 저어(齟齬)가 없이 조서의 부피는 거의 일정한 템포로 늘어가는 것이다.

 

 

 

  안두희와 그의 일당들은 마치 안두희가 김구와 국사(國事)를 논하다가 의견충돌이 일어나서 우발적으로 권총을 발사했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김구를 일개 육군 소위와 동급으로 올려놓게 하고, 안두희를 국사를 논하는 지사(志士)처럼 등급을 최상급으로 놓아서 그를 영웅시하게 해 국민들에게 이를 납득시키게 했다는 게 구역질을 느끼게 한다.

  또한 위대한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님을 마치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제거하려던 친일 민족반역자들의 가증스러운 음모가 김구 선생님 서거이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민족의 암적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귀(貴)한 지면(紙面)에 안두희의 거짓된 수기를 게재한 의도는 민족의 지도자를 시해하고 일말의 반성도 없이 남은 추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하는 한 인간의 추악상을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이런 인간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 후 안두희는 군에서 제대를 하고 그를 비호하던 세력에 의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다만 그것은 그의 배후세력이 득세한 한시적인 기간에서만이 가능했다.  여기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안두희는 추한 모습으로 80 넘어서까지 살다가 박기서 청년에게 ‘정의봉’이란 짧은 막대기에 얻어맞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