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66. 안두희의 아들

오늘의 쉼터 2013. 3. 31. 11:00

66. 안두희의 아들

 

 

 1961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에서 미국 유학생들의 실태를 취재하러 갔던 모 신문의 사회부 기자 K는

어느 좌담회 석상에서 우연히 안두희의 아들인 안국영(가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안국영의 얼굴은 무척 초조하고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렇게 보아선지 안두희의 얼굴을 빼다 박았다.

생각해 보면 안국영 역시 불쌍한 젊은이였다.

처음부터 안두희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세상에 나와 보니 아버지가 안두희였고,

그 안두희가 백범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것,

그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지 자신의 잘못은 결코 아닌 일이다.

  K기자는 안두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안정열을 바라보았다.

일자(日字)로 찢어진 뱀같이 매서운 눈과, 인정머리 없이

달싹 붙은 얇은 입술이 어찌나 그리 닮았는지 섬뜩해 보였다.

  그런지 1년 후, 서울에 있는 김구 선생 살해 진상규명투쟁위원회의 K씨 앞에

50대의 중년부부가 25세 가량의 묘령의 아가씨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백모라는 중년의 남자는 책 한 권을 K씨에게 내놓았다.

그 책은 백범 선생의 암살 전모를 쓴 논픽션이었다.

  백모 씨가 K씨에게 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안두희라는 사람의 나이가 얼마나 됩니까?」

  K씨는 백모 씨에게 안두희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백범을 시해 할 때의 나이가 31세였고 포병 소위였으며

지금은 양구에서 군납업을 크게 하는데,

웬만해서는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백모 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K씨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라뇨?」

  그러자 백모씨의 얼굴에서 점차 화색이 비쳤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내 딸년은 평생 고생을 시킬 뻔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백씨 부부는 K씨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K씨는 그 연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백모 씨의 대답은 이랬다.

  백 모씨의 딸 경숙(가명)은 서울에서 모 여대를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어느 파티석상에서 안두희의 아들 안국영을 만나게 되었다.

안국영이 안두희의 아들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안국영 역시 아버지가 파렴치 범죄자란 사실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1961년도 당시에는 안두희가 풀려나서 군납업을 하고 있어서

꽤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안국영은 서울의 모 재벌의 아들 정도로만 알고 있던 차였다.

가정환경(?)이 좋은 인물로 그리 빠지지 않는 안국영에게 경숙은 푹 빠져들었다.

  그것은 안국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숙은 고국의 부모들에게 편지로서 이 사실을 알렸다.

백씨 부부는 좋은 사윗감을 만났다는 딸의 편지를 받고 흐뭇해했다.

  「역시 사윗감은 미국에서 골라야 해, 딸아이가 사귀는 학생의 집안이 대단한 것 같군.」

  이때쯤 경숙은 자신의 몸에 안국영의 씨앗이 잉태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기쁜(?)소식을 서울의 부모에게 전했다.

  자식만 낳으면 이제 안 씨 집안의 어엿한 며느리로 입성(?)하게 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경숙의 부모는 가능하면 임신한 딸을 서울로 불러서 시부모와 면담도 하고,

서울의 병원에서 아기를 낳도록 권유를 했다.

  경숙은 부모의 말에 따라서 학업을 일시 중단하고 서울로 왔다.

또 남편 식구들과도 만나 상견례를 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온 경숙은 아버지에게 미래의 시아버지가 될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내놓았다.

  경숙이 아버지에게 준 시아버지의 이름은「안두희」였다.

  백모 씨는「안두희」라는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게 여겨졌다.

  「안두희,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누구일까?」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들을 일컬어 명사(名士)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 명사(名士)가운데는 명사 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명사가 스캔들, 일테면 뇌물죄나, 간통 같은 파렴치한 범죄에 연루되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

안두희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지만 선의(善意)의 명사 축에 들지 못하고

악의(惡意)의 명사 측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명사(名士)는 명사인데 누굴까?」

  백모 씨는 얼른 그 이름의 임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안두희라?」

  그래서 그는 친척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친지를 찾아가 물어본 백모 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두희란 놈, 민족의 지도자를 살해한 인간답지 않은 놈이요. 

그러나 안두희란 이름이 어디 하나둘이겠소.

혹시 동명이인인지 모르니 잘 알아보고 결정하시오.」

  백모 씨는 친척의 말에 따라 딸에게 시아버지란 사람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그이가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래도 대충 나이는 나올 수 있지 않느냐?」

  딸이 답했다.

  「그냥 안두희 씨라고 했어요.」

  딸 경숙은 안두희란 인물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백범 시해 사건은 세인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은 있었겠지만

젊은이들이란 과거의 역사보다 미래의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화번호를 들춰보니 안두희란 이름은 없었다.

안두희의 돌림자가 희(熙)였는데 가운데 붙은 두(斗)자가 없는 것으로 보나

안두희와 동명의 이름을 갖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안두희란 인물을 아느냐?」

  백 모씨가 딸에게 묻자 딸이 대답했다.

「들어본 일이 있긴 있어요.」

  백모 씨는 딸의 불룩한 배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딸의 신세는 물론 백씨 문중에 큰 화(?)가

미칠 것으로 판단, 안두희의「정체」를 알기 위해 안두희의 소재파악을 위해

민족범죄자처벌 단체를 찾아 가기로 했다.

  백모 씨는 K씨에게

「안두희의 나이와 출생지를 알려주십시오.」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K씨는 안두희의 족보를 모두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 아들 안국영,

즉 딸의 미래 배필인 미국 휴학생 안국영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백모 씨는 K씨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이번에는 큰 절까지 올렸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무남독녀의 외동딸을 삼천만 민족의 원수인 안두희의 며느리로 들여보낼 뻔 했습니다.」

  백모 씨는 그길로 임신한 경옥을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안되겠다. 씨가 나빠.」

  연유를 모르는 경숙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두말하지 말거라, 아주 못된 씨가 네 속에 들어 있어. 

     악종자의 씨야. 그 씨를 없애 버려야 우리 집안과 ....」

 

 


  백모 씨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 집안과 삼천만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야. 놈들은 죽어야 해.」

  백모 씨는 머뭇거리며 딸을 산부인과로 밀어 넣었다.

의사는 원칙적으로 낙태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모 씨가 벽력같이 외쳤다.

  「이 아이 속에 들어있는 것은 사람의 씨앗이 아니오!」

  「욕을 당했습니까?」

  「일테면 그렇소, 낙태수술이나 하시오.」

  이렇게 돼 백모 씨의 딸은 낙태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후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