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64. 안두희(安斗熙)의 거짓 수기(手記) (3)

오늘의 쉼터 2013. 3. 31. 10:49

64. 안두희(安斗熙)의 거짓 수기(手記) (3)

 

 암흑 반세기 왜정의 질곡(桎梏)속에서 자란 우리들이 아직도 혼미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어찌 불우한  몸으로써 세계정국에 헤엄쳐 온 그 세련된 경륜을 일거에 비판할 수 있으랴.

파고 들어가 보자 그러면 모름지기 미지의 경국대도(經國大道)가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비밀당원으로서 입당절차를 밟은 것이 지난 3월 상순이었다.

입당수속이 끝나고 비밀당원증을 몸에 지닌 다음, 나의 절절한 염원이던 백범 김구 선생님과

대면의 날은 왔다. 김학규의 안내 경교장 2층 서제의 미닫이를 조심히 열었다.

  한복차림에 싸인 건장하신 체구는 발산의 장력(壯力)을 지닌 듯 하고 검붉은 혈색과 위엄 있는

안광은 일견에 마치 심산의 사자와도 같이 개세(蓋世)의 패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선생께서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내 손을 덥석 잡으시며,

「오오 네가 두희냐.」

  반세기 해외풍상이 아롱 새겨지신 주름진 노안에 만면의 미소를 띠신다.

「선생님! 광영이올시다. 변변치 못하오나 이 나라의 충성된 아들의 하나이오니 엄히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하여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깨달았다.

갑자기 할 말도 없다.

「고향이 이북이라지?」

「네, 평북입니다.」

「군무가 매우 고달플 테지. 그래 일할 때다. 열심히 배우고 닦아라.」

 


  선생님께 대한 나의 소개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모양이다.

미리부터 사전소개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음을 직각하였다.

  인사 정도로 대면을 마치고 물러나왔다.

세상을 얻은 듯, 탄희(歎喜)의 심정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발이 땅에 닿는 둥 마는 둥 경교장 넓은 안뜰을 좁다하고 종종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선생님과 면회사실을 자랑하며 어린애처럼 말을 보태서까지 풍을 쳤다.

  홍종만은 조석으로 만나는 사람이요, 홍의 연락으로 김학규도 자주 만났다.

엄항섭도 알게 되고 선우를 비롯하여 경교장의 비서들도 알게 되었다.

  당 간부들의 ‘크게 기대되는 일꾼’이라는 찬사도 불유쾌한 것은 아니지만은 무엇보다도

내게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둘도 없는 즐거움이다.

경교장은 이미 내 집 같이 무상출입이다. 구실이 붙는 대로 자주 찾았고 일요일은

거의 예외 없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선생님께서는 만나면 만날수록 친밀히 대해 주셨다.

친필 족자를 두 폭이나 받았다. 나는 대포탄피로 만든 화병(花甁) 한 쌍을 선물했다.

포병대내에서 유위(有爲)한 비밀당원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고 그 후보자명단도

작성하여 조직부에 바쳤고 김학규로 부터 그 운동비로  몇 차례 용돈도 받아썼다.

  이럭저럭 한 달 남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가까이 접하면 접할수록 그렇게도 신뢰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의아감을 발현케 되어, 선생님을 위요(圍繞)한 엄항섭 김학규등의 동태에

대하여도 비상한 주의를 가지고 임하게 되었다.

 


  말이 많고 적은 데는 상하가 있고, 이론이 연역적이요,

귀납적인 데는 분별이 있을망정, 궁극의 이데올로기나 정책은 선생님이나

주위인물이나 마찬가지의 사고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호의로 해석코자 하였으나 명확한 해답을 얻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미운(迷雲)은

짙어가고 도리어 어마어마한 새 사실만이 발현될 뿐이다.

  첫째 건국실천원양성소는 무엇이며 백범정치학원은 무엇이며 혁신탐정사는 무엇하는 곳인가?

세상은 잘 감지치 못하고 있을 것이리라.

이 기관들은 모두가 그들이 호장(豪張)하는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정치성의 태반위에 자라고

있는 명찰 있는 비밀결사이며 살기를 간직한 행동부대임에 어찌 놀라지 않을 손가.

나는 벌써 은근한 협박과 위협을 받았다.

 ‘당의 조직지령은 절대적인 것이며 이 지령에 움직이지 않는 자는 반동이다.

탈당의 자유란 없다. 반동자의 등위에는 오로지 죽음의 제재만이 따라설 뿐이다’라는......

  전라도의 모 경위가 암살당했고 모 부대의 모 장교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모 관청의 모인(某人)이

고기(魚) 밥이 되었다고 하는 등등 전율할 사실의 강의를 여러 차례 받았다.

  환언하자면 나도 이미 탈당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요 지령의 철쇄에 얽힌 수인 아닌 수인이

되고 만 것이다.

다시 파고들면 가공! 이 비밀 당원의 조직망은 일익 만연되어 경찰진에도 상당한 세력으로

침투되고 있거니와 특히 그 주력은 군대다. 군대 중에서도 행정적으로 절대적인 성능을

영유한 ㅇㅇ대(隊)를 비롯하여 xx대, xx대. 그러면 포병계에서는 내가 부지불식간에 영예로운

지하세포책의 인수(印綬)를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이로써 나는 심도 모를 고민의 암혈(暗穴)로 실족케 되었다.

천 가지 만 가지가 의아의 대상 아님이 없다.

  선생님께서 객년 호남지방 순회강연 때에 하셨다는 말씀,

‘지금 이박사의 정부는 정부이기는 하지만’이라는 전제 한마디가 웅변으로 해명하는

그대로「소위 이남이 반 쪼가리 정부도 우리 정부일 것 없고,

 이북의 반 쪼가리 정부도 우리 정부일 것 없다」라고 개탄하는

그 대승적인 심경은 통찰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상해임정의 법통」을 가지고 고집하는 그이로서는 의외의 폭언도 아닐 것이나,

아직도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게 주는바 영향이 적은 것이 아닐진대,

이 선동적인 언사가 그 무엇을 교사(敎唆)한 결과가 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으며,

저 여순반란사건에 한독당공작원 오동기(吳東基)가 개재되었다는 설을 어찌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이라 웃어만 버릴 수 있을 것인가.

  강(姜)소령 표(表)소령이 월북하기 직전까지 이 두 부대 영문(營門)출입을 자기 집 문 드나들 듯

하다가 양 부대 월북과 동시에 잠적하여버린 자가 한독당 공작원이며 혁신탐정사 사원인

이문장이라는 사실을 어찌 직시치 않을 수 있으랴.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것이 모두 두희 자아류(自我流)의 관찰이요

자아류의 해석이 오나 제가 그렇게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시역의 총을 겨누기까지에 겪은

번민 상을 가식 없이 그대로 토로하는 것이오니 왜곡된 점은 장차 지하에서 선생님을 뵈올 때

순순히 타일러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8·15 이후 우리 한국의 정국을 부감(俯瞰)할 때

「골목 방구석 정치평론객」들의 전망 그대로「공산계열을 제외한 남한에 놓인 좌익진영이

대세는 미주파(美洲派) (이 박사系), 중국파(臨政系), 국내파(韓民系)의 정립이다」라는

이론을 수긍한다면 한독당은 망명생활 사십성상(四十星霜) 즐풍목우(櫛風沐雨)의 정신력의

긍지를 교재삼아 국내동지를 재빠르게 규합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내걸고

어떤 형태로던지 김구주석에게 대권을 장악시키기 위하여 미주파를 사대주의 화신으로 규정짓고

국내파를 부일잔재(附日殘滓)로 몰아세우면서 자파 세력만이 신장확충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항간의 논정(論定) 그대로 송진우(宋鎭禹), 장덕수(張德秀) 양씨는 이 국내파 주동세력

도륙작전(屠戮作戰)에 희생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여기까지에 상도(想到)될 때 지난번 선생님께서 족자 두 폭을 써주신 날이 하필 각각 윤봉길 의사의

 기념일이며 안중근 의사의 기념일인가? 이상스럽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번민은 번민을 더하여 매일 밤 두세 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밝혔다.

몸은 폐병환자처럼 나날이 여위어만 간다. 이렇게 5월도 거의 다 갔다.

  이 의심과 고민을 불식하기 위하여 당 간부들과 논란하여 볼 기회도 모색하였고 선생님과

직접 담판하여볼 틈도 엿보았으나 좀처럼 시원스러운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도리어 거거익심(去去益甚)으로 부하된 책무 지하조직공작에 정신(挺身)하라는 지령의

반복뿐이더니, 달이 바뀌면서는「8·15광복절을 전후하여 중대행동지령이 내릴지 모르니

여기에 대비하도록 태도 갖추라」는 무시무시한 명령까지 받게 되었다.

 


‘8·15전후?’ ,'중대행동' 심장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이 눈이 뒤집혀짐을 금할 수 없다.

언제인가 나의 부대에 장비된 대포의 성능과 문수(門數)의 질문을 받은바가 있다.

그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부대에 출동하여도 그렇게 근면 하는 내손에 도무지 일이 잡히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만 같은 대포의 포문만이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세상이 세상 같지 않다.

이렇듯 격심한 내심의 고민은 어찌 언색과 거동에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당연계자와

만나는 것이 무서워지고 선생님을 찾는 발길도 자연히 떠졌다.

선생님도 내 태도를 눈치 챘음인지 나의 질문을 귀찮게 대하며,

「군인이면 군인답게 군무에게 충실할 것이지, 네 따위가 정치를 알아서는 무얼 하느냐.」

하고 때로는 신랄한 태도로 육박하려하여도 이런 등속(等屬)의 화제에는 동문서답 격으로

응수 하실 뿐 좀처럼 개회를 주시지 않는다. 부지중에 선생님과의 사이는 현격히 멀어졌음을

깨달았다.

  악착스럽게도 의사를 천단(擅斷)하려고 발호하는 반동배 소위 국회소장파의 노선과 한독당의

지론이 어쩌면 그렇게도 부합될 법인가. 공산당 프락치 국회소장파 주도배의 본거이며 참모부가

경교장이라는 세론도 중상만이 아닐 것이니,

지금까지 반동적인 정치사범의 배후연관을 캐고 들어가면 거개가 경교장이라는 미궁으로

숨어버린다는 이 사실을 제아무리 현하지변(懸河之辯)일지라도 도저히 이를 반증치는 못하리라.

 


  참된 겨레들의 직간 읍소(泣訴)를 물리치시고 도망치다시피 경교장 뒷문을 빠져나가시면서

「초지를 관철치 못하면 귀로에 삼팔선을 베고 누워 죽고 말리라」라는

 맹서를 남기고 월북하셨던 선생님의 협상에서 무엇을 얻으셨는지

무고(無故)히 삼팔선을 되넘으셔서 귀경하신 후 뚜렷한 진상발표와 심경의 피력도 없으신 채

일관하여 미(美)정책을 박대하시며 UN의 처사를 환손 하시며 미군철퇴를 주장하셨고

미의 대한원조를 중상하여 심지어는 그렇게도 미덥고 향기로우시던 이 박사님과의 금난(金蘭)의

교(交)도 끊으셨으니 슬프다. 5·10선거를 거부하고 부통령의 취임권고까지 뿌리치실 줄이야

알았으랴.

  그러면 한독당은 공산당의 방계(傍系)정당인가?

그렇지 않다. 김구 선생님은! 김구 선생님만은!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공산주의자는 못될 것이며 공산당을 좋아하실 수도 없을 것이다.

나쁘다면 보필하는 놈들 주위의 놈들이 나쁠 것이다. 엄항섭이가 그런 놈이요,

김학규가 그런 놈일 것이다. 놈들이 혜안을 가리고 민이(敏耳)를 막아 선생님을 거세하여버리고

그 큰 그늘 밑에 충칩 하여 가진 흉계를, 우리는 이 위대하신 영도자들의 영명을 살리기 위하여

그 그늘 아래 준동하는 간 귀(奸鬼)들을 하루바삐 소탕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5일경일 것이다. 신문은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미국은 하원에서 통과되니 일억 오천만 불의 대한군사 원조 안을 상원에서 부결시켰다.

 

 

 

  이날 신문을 움켜쥐고 선생님을 방문했다.

「미군은 이미 철퇴한 이때에 군사비원조마저 끊겼으니

우리의 국방문제는 장차 어찌될 것입니까?」

「우리는 주권의 나라이여야 하며 자주의 백성이여야 한다.

죽던 살던 우리의 일은 우리기리 우리 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

사대주의사상의 조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까닭 없이 이해관계 없이

무엇 때문에 군대를 보내고 돈을 주겠느냐.

너도 이 나라 젊은 군인이니 전통 있는 단조(檀祖)의 붉은 피가 뜨겁게 체내를 휘돌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옛 역사는 고사하고라도 공권으로서 총검에 반항한 기미운동이 있었으며,

과병(寡兵) 소총(小銃)으로써 중무장한 왜놈의 정병 대부대를 격파한 독립군이 있었으며,

근 사십년의 긴 세월에 망명정부를 이끌고도 불감의 정신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바도 있지 않았느냐.

8·15 이래 미군이 남기고간 무기만으로도 태산이다.

염려할 것 없다. 나머지는 너희들의 정신무장이다. 반지뻐러운 생각 말고 자기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해라.」

  선생님의 태도는 대단히 냉담하다. 그 표정부터가 두 번 다시 질문의 가차(假借)를 주시지 않는다. 내 딴에는 생각이 그렇지 않아서 뛰어왔건만,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완고한 아버지!' ’대원군 같은 영감!’이라고 마음속으로 주저(呪咀)도 하여보았다. 선생님은 아시는 뱃장인지 모르시는 꾸지람인지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난 봄 부대에서 장교 교육 시 영어교재로 나누어준 <타임스 紙>에서 (同紙 극동특파원이 쓴 평론)이런 구절을 본 생각이 난다.

 

 

 

한국의 군대는 김구씨의 군대요 한국의 경찰은 이승만씨의 경찰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제기될 것이다.

 

 

 

  대단히 신랄한 논평이다. 집정자도 아니요, 무인도 아닌 김구씨가 군의 조종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 함일까. 이승만씨의 경찰이라는 어구도 한낱 김구씨의 군대라는 표현을

좀 더 강화시키기 위한 야유적인 대조사인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도대체 시국을 어떻게 보시며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모두가 의문뿐이요,

경교장이란 무슨 복마전(伏魔殿)같이만 보여진다.

 


  막대한 원조비 부결의 보도가 있기 며칠 전 육군본부 비밀공문으로써 각 부대 보급관에게

전달된 명령서에서(나도 보급담당자의 일인 이였기 때문에 놀랄만한 통계숫자를 보게 되었다.),

즉 미군(美軍) 진주(進駐) 이래 통위부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사이에 한국군에게 보급된 장비 기타

군수물자를 조사하여 본 결과 평등 ㅇ할(割) 행방 모르게 없어져 버렸다하여 ‘국공협상마샬보고’

당시의 중국 실태와 흡사히 이 행방불명의 군수물자는 모두 적방으로 유출된 것이라는 혹평을 받게 되었으니 금후 더욱 엄중한 군수물자단속을 요한다는 내용이다.

기우(杞憂)가 아니라는 사태는 이면을 알아볼수록 점점 어지러운 사실 뿐이다. 북방의 괴뢰(傀儡)들은 금방이라도 남침을 감행할 듯이 군비증강에 광분중인데....미군은 철퇴하고, 주고 간 군수물자는 ㅇ할(割)이나 적이 훔쳐갔고, 게다가 미국의 원조루트마저 단절된 현실에 있어서 공공연히 정계를 교란하고 있는 국회 프락치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세력이 남이 아니라 외국인으로부터 군의 조종력을 장악하였다고 규정받은 김구 선생이시며 무서운 음모를 내포하고 목하 지하조직을 확대중인 한독당인데는 어찌 몸서리치지 않을 수 있으랴.

  사태는 급박이라고 생각하면 급박 할대로 급박한 것 같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선생님께 직간을 거듭하여, 어떤 일을 하여서라도 선생님의 왜곡된 관념을 광정(匡正)시켜보자. 그러다 안 되면 <테러>에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연히 탈당이라도 감행하자.

 


하여튼 선생님과 용감스러이 대결하여 흑백을 가려야 할 때다. 이렇게 마음이 태도를 결정 지어보면 어느 정도 눈앞이 밝아지는 듯하다, 뇌리에 구비치는 고민의 파도는 좀처럼 잠자지 않는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얼마동안 당 간부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하여가면서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는 동시에 대론의 기회를 엿보기 우하여 이따금 경교장을 찾았다.

  정을 물어뜯던 노일환(盧鎰煥)이하 국회소장파 여섯 명이 일거에 구속되고 김약수는 피신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 신문은 ‘김약수는 김구씨 보호 하에 은신’이라는 뉴스까지 버젓이 실었다. 나는 또 선생님을 방문했다. 경교장은 자못 소연(騷然)한 분위기였다.

「국회소장파 문제로 선생님께 대한 세론은 굉장하오니 일부에서는 선생님께서 김약수씨를 은닉시켰다고까지 하오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또 그따위 소리냐. 네가 알 것까지 없다.

시끄럽다. 군인이면 연무나 할 노릇이지 무슨 건방진 수작이냐.」

  다짜고짜로 불이 나는 반박을 받았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지 않아도 잡음에 골머리가 아프고 또 세상눈이 시끄러우니

두류(逗留)하지 말고 빨리 가거라.」

  나의 퇴석을 재촉하신다.

「그러면 선생님은 저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관계를 끊으시는 것입니까.

정령 그러하시다면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당원증도 바치오리까?」

  나도 저으기 흥분되는 기분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할 것까지는 없다마는 부질없는 잡념을 버려라. 깨끗이 뇌를 씻어라.

네 태도가 뭐냐. 내 마음을 떠보자는 말이냐.」

  약간 달래는 어조이시면서도 노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가겠습니다. 다시는 아니 오기로 하겠습니다.」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억제하면서 이 이상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기로 하고 일어서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