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영웅(?)처럼 행세한 범인
안두희가 헌병사령부에 도착하자 전봉덕은 김병삼 대위에게 지시해 서대문 경찰서에서
압수해간 안두희의 소지품을 찾아오도록 했다.
전봉덕은 또 범인 안두희를 쳐다보고는 의무실에 옮겨 얻어맞은 상처를 치료해 주도록 지시했다.
병실에는 깨끗한 침대가 두어 개 놓여있었다.
다른 환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안두희는 편안하게 누웠다. 헌병들이 바깥에서 안두희를 지켜주었다.
얼마 후 군의관과 위생병이 안두희를 치료했다.
2시간 후, 경교장에서 돌아온 전봉덕은 안두희를 더 좋은 침대에 눕게 하고
2층 자기 사무실 옆으로 옮기게 했다.
한편 장흥사령관이 김구 시해사건을 들은 것은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장 대령은 그 길로 급히 차를 서울로 몰았다. 경교장으로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성난 군중들이 운집하고 있었다.
경교장 입구에서 김병삼 대위를 만난 장 대령은 범인이 군인이며 헌병사령부에서
데려 갔다는 말을 들었다.
장 대령은 경교장에 들어가는 것을 단념한 채 헌병사령부로 갔다.
하오 4시 30분,
사령부에 돌아온 장 대령은 당장 장교를 불러 범인이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의무실에 있습니다. 상처가 심해서 의무실로 보내졌습니다.」
장 대령은 그 길로 의무실로 갔으나 안두희는 없었다.
「부사령관님 옆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누구 명령으로?」
「부사령관님이....」
다시 부 사령관실 옆 사무실로 간 장 대령은 안두희가
그곳에서 칙사 대접을 받고 있는데 불같이 화를 냈다.
「야, 이놈들아! 정신이 있는 거야?
저런 파렴치한 국사범을 침대에 재워? 빨리 영창에 넣지 못해!」
「부사령관님이 시켜서...」
「아놈들아! 나는 사령관이야!」
안두희는 들것에 들리어져 지하실 감방으로 옮겨졌다.
조금 후 전봉덕이 왔다가 안두희가 없어진 것을 알고 화를 냈다.
그리고 다시 안두희를 자기 옆 사무실로 옮기게 했다.
부하 헌병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장 대령이 다시 안두희가 있는 감방에 가보았으나 안두희는 그곳에 없었다.
안두희는 원위치대로 좋은 침대에 가서 누워 있었던 것이다.
「누가 여기 데려다 놓으라고 했나?」
「전봉덕 부사령관님이...」
「부사령관이 높아 사령관이 높아! 군대는 계급이야!」
이래서 안두희는 다시 감방으로 옮겨졌다. 화가 난 장 대령은 부사령관 실로 갔다.
그러나 부사령관 전봉덕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전봉덕은 자신이 직접 국방부장관 신성모를 찾아갔다.
안두희 문제를 상의하러 간 것이다.
이 자리에는 육군참모총장 신태영(申泰英)도 와 있었다.
그 시각에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신성모, 신태영, 전봉덕이 경무대에 도착했을 때 서울에 있는 장관들이 모두 참석,
임시 긴급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국무총리인 이범석(李範奭)은 목포에서 급히 상경 중이었다.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을 통해 이 사건을 보고받은 장관들이 표정은 모두 침통했다.
아무런 말들이 없었다.
이 가운데는 8·8부락부에 참석해 김구 시해를 모의하던 자도 끼어 있었다.
보고를 받은 이승만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정적인 김구가 시해 당했다는데 대한 안도감인지 얼른 감지되지 않았다.
「범인은 어디 갔는가?」
「헌병사령부에 있습니다.」
「 백범을 무엇 때문에 죽였다고 했는가?」
「예, 각하! 범인은 한독당의 비밀당원으로서 김구 선생이 매우 아끼던 자였습니다.」
「한독당 당원이 김구를 죽였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각하.」
「그렇다면 사소한 일로 그랬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각하! 범인은 우국충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장교나 군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조사해보도록 해.」
이승만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한마디 했다.
「범인이 한독당 당원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비밀당원이었습니다. 각하!」
「그러면 헌병 사령관을 바꾸는 것이 좋겠군.
사령관은 백범과 가까웠으니까, 신 장관!」
신성모가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꺾었다. 아첨기질이 농후한 그였다.
「예, 각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임시국무회의에서는 장흥대령을 교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곧이어 신성모는 전봉덕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장흥 사령관은 전방 4당장으로 발령을 냈다.
요즘에야 사단장이나 사령관은 모두가 장군 급이지만,
당시만 해도 군의 위계질서와 체계가 잡혀져 있지 않아서 한 계급 진급은 물론,
때로는 두 계급씩 진급하는 판이었다.
또 새파란 30대가 전투경력이 있다고 해서별을 따는 형국이었다.
그날 하오 6시 헌병부사령관 전봉덕의 이름으로 김구 시해 첫 공식 발표문이
각 신문에 게재되었다.
한독당 위원장인 김구가 26일 낮 12시 반경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 저격당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으며 구속 중인 범인이 현장에서 많은 상처를 입어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수사기관은 범인이 의식을 되찾는 대로 그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겠으나 현재로서는
단독범행인 것 같다.
이 발표문을 보고서 장흥 대령은 모든 것을 짐작했다.
장흥 대령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길로 마포 강변에 있는 마포장(麻浦莊)으로 달려갔다.
마포장은 한눈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매우 좋은 별장이었다.
이 집은 해방 후 이승만이 잠시 머물러 있던 곳이었는데 당시에는 신성모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성모는 이곳에 늘 있지 않고 아현동의 딸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장흥대령은 마포장으로 신성모를 찾아갔으나 신성모가 없자,
다시 그의 딸집으로 찾아갔다. 신성모는 거기에 있었다.
장흥을 맞은 신성모의 얼굴은 그리 유쾌하지가 않았다.
「발표문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신성모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골치 아픈 사령관보다 전방 사단장이 훨씬 편할 거요. 축하하오.」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장흥은 바로 이 자들이 김구 시해사건이 배후들임을 직감했다.
자신을 제외시키고 그동안 비밀리에 이을 진행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자신이 모르는 편이 훨씬 후세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아서 큰 다행이라고 여겼다.
부귀영화란 결국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닌가.
후세에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그 부귀영화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결국 이 자들은 현재의 안녕을 위해 영원히 민족 앞에 비난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장흥은 전방 사단장으로 발령이 났고, 전봉덕은 헌병 사령관으로 승진되었다.
서울 시내에는 비상 경계령이 내려섰고 통행금지 시간이 10시로 앞당겨졌다.
경교장입구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좁았다.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는데도 애도 객들은 끊이질 않았다.
맞은 편 동양극장 앞쪽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서울시민 거의 모두가 경교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경교장 일대는 밤을 새워 장례준비를 하는 인파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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