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밀실의 음모 (2)
김구는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의 길로 나서게 한 것이, 어쩌면 대의(大義)를 위해서 바람직했지만 개인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 명상에 젖어 있던 김구에게 안두희가 찾아왔다.
안두희는 이 날 대포 탄피로 만든 화분을 2개나 가져왔다.
안두희는 이 탄피화분을 김구에게 선사하고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선생님. 군인에게는 돈이 없어서 이렇게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훌륭하네.」
「그런데 제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이 무엇인가?」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휘호를 하나 써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지.」
김구는 평소에도 붓글씨를 즐겨 썼다.
이 글씨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그날도 열성당원인 안두희의 부탁을 받고서 휘호를 한 장 써주었다.
안두희는 이 글씨를 받아 가지고 갔다.
그는 이 날의 정경을 모두 김지웅에게 보고했다.
안두희가 붓글씨를 받아간 것은 나름대로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자신은 한독당 비밀 당원이고, 김구와는 부자(父子)처럼 지냈으며 시해 후,
어떤 조직에 의해서 시해를 한 것이 아니라 김구와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시해했다는
것의 증거로 삼으로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안두희의 생각이라기보다 이 방면의 천재라 할 수 있는 김지웅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구 암살 행동대원들은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합숙을 하며 모의를 했다.
이들은 군인으로서 국방의무에 충실하기는커녕 사격연습으로 소일을 했다.
먹고 마시고, 술이 취해 잠들고, 때를 기다렸다.
이들의 행동은 모두 장은산을 통해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보고되었다.
이 보고서는 국방부 제4국 정보과장 김명욱(金明煜)대위가 작성했다.
보고서의 명칭은 백봉(白峰) 일지(日誌)였다.
행동대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는 막연한 목적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한독당 내부에 침투해 있는 공산당들을 일망타진한다는데 투입될 것이라는
짐작뿐이었다.
6월 22일, 이날 포병 사령관 장은산 중령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특등 1호실에 입원했다.
병실 밖에서는 보초 헌병 2명이 지켜 서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김지웅은 장은산의 지시에 따라서 행동대원들을 모두 계동(桂洞)의 자기 집으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행동대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마침내 동지들에게 임무가 부여되었다. 이제야 말로 여러분들은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큰일을 해서 공을 세워야할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애국자가 되자.」
김지웅은 그들의 용기를 부추기는 일장연설을 했다. 그리고 행동대원들을 3대의 지프차에
태워 중앙중학교 근처의 어느 집 2층으로 데려갔다.
깁지웅은 오병순(吳炳順)에게 돈을 듬뿍 주어서 술을 사서 마시도록 했다.
그리고 안두희와 홍종만을 서울대 병원의 장은산에게 데리고 갔다.
장은산은 병실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장은산은 환자가 아니었다.
그는 찾아온 안두희의 어깨를 힘차게 잡으며 말했다.
「자네는 이제 영웅이 되네. 모든 것이 자네에게 달려있네.
이 나라의 운명을 자네가 걸머지고 있네.」
안두희는 장은산이 부추기는 말에 우쭐해졌다.
이 날 밤 민족 반역자들은 병실 한 귀퉁이에서 구체적인 계략을 짰다.
민족반역자들은 김구를 시해하는데 있어서 국민적 명분을 내세우는 사건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짜낸 것이 당시 국회 프락치 사건의 주범 김약수(당시 국회부의장)를 찾다가
김구가 김약수를 숨겨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우발적으로 김구를 시해했다고
가장하는 것이었다.
그 몇 가지 민족반역자들이 교활한 지혜를 짠 것은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① 김약수가 현재 경교장안에 숨어있다는 정보가 있으니
그 자를 체포하러 경교장을 습격한다.
② 경교장을 습격할 때 소란을 틈타 김구를 시해한다.
③ 만일 군경에게 붙들리게 되면 김약수가 사전에 기미를 알고 뒷담으로
도망갔다고 변명한다. 그래서 김구는 실수를 했거나 애국충정에서 시해했다고 말한다.
민족의 지도자란 사람이 어째서 김약수 같은 빨갱이를 감추었는가,
우국충정에서 시해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명분을 세운 민족반역자들의 무리는 밤12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6월23일, 김지웅은 행동대원 가운데 홍종만을 제외한 나머지를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행동대원 일행이 병실로 들어서자 장은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받았다.
장은산은 행동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다음 어젯밤 김지웅과 세운 작전 지시를
차근차근히 설명했다.
「지금 경교장에는 간첩인 김약수 국회부의장이 숨어있다.
그곳으로 가서 범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너희들의 이름은 후세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범인을 사살하거나 체포한다면
그 책임을 전적으로 나와 김지웅 선생이 지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행동대원들의 생명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장은산이 이들에게 묵시적으로 약속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성공한다면 너희들의 미국 유학은 물론이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보장한다.
2) 군대의 장교로 승진과 채용은 물론이고 경찰 간부, 공무원 등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시켜준다.
3) 생명은 절대로 보장한다.
4) 경교장 외곽은 헌병들이 동원되어서 경비한다.
5) 행동대 지휘 대장은 오병순 소위가 한다.
6) 작전은 오늘 밤 0시에 한다.
장은산에게 이 같은 지시를 받는 행동대원들은 별달리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교장 안에 잠입해 있는 김약수를 체포하거나 죽이라는 것이지,
김구를 시해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시작전은 오병순과 안두희가 거실에 올라가 김구를 시해한다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엑스트라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흉계는 실패하고 말았다.
6월 23일 밤11시 30분,
행동대원들은 중앙중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그들의 아지트를 출발,
두 대의 지프차를 타고 경교장으로 달렸다.
이때 김구를 시해하라는 명령을 받은 오병순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평소 김구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부귀영화가 좋다한들 그를 시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일 명령을 어기면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병순은 경교장을 다녀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집안에 의외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안 되겠습니다.」
오병순은 어떻게 하든지 사건을 지연시켜 민족반역자들의 무서운 계교를 경교장에 알리려 했다. 그러나 안두희는 달랐다. 안두희는 경교장의 담을 넘어 경교장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이때 송아지만한 개가 3마리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놀란 안두희는 다시 담을 뛰어 나왔다.
「누구냐! 누구! 어떤 놈이야!」
안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안두희가 숨을 가다듬으면서 오병순에게 말했다.
「오늘밤은 틀렸으니 그냥 돌아갑시다. 잘못하다가는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오.」
이 말에 따라서 행동대원들은 서로서로 짚차에 올라타고 아지트로 돌아왔다.
안두희와 오병순은 대작병원의 장은산에게 가서 작전(?)에 실패했음을 보고했다.
장은산은 이 말에 벌컥 화를 냈다.
평소 친절하던 말투가 아니었다.
「이제 보니 모두 병신 같은 새끼들이로군.」
「죄송합니다.」
「너희들이 만일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모두 군법회의에 넘겨 총살시킨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해둬.」
다음날은 24일,
이리의 탈을 쓴 홍종만은 종로에 있는 한독당 당사로 나갔다.
10시쯤 도착하니 이미 조직부장 김학규가 출근해 있었다.
「부장님, 경교장에 갈 일이 있으니 동행하시죠.」
「그럽시다.」
이들은 경교장으로 향했다.
김학규와 홍종만은 각기 다른 정보를 얻었다.
홍종만이 이때 알아낸 정보는 김구가 김학규 조직부장, 엄항섭등 수행원을 데리고
공주에 있는 건국 실천요원 양성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아침에
현지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민족반역자들은 25일에 거사하기로 했다.
「장소는 수원과 오산간의 병점고개이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해야 한다.」
장은산은 목에 힘줄을 돋우면서 말했다.
행동대원들은 헌병소위, 중위 등 복장을 하고 2대의 지프차와 1대의 스리쿼터에
나눠 타기로 했다.
이 가운데 지프차 1대는 병점고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구 일행이탄 차가 오면
정면에서 들이박아 차가 가지 못하도록 하고 뒤따라오던 괴뢰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일제 사격을 가해 김구 일행을 모조리 죽일 계획을 세웠다.
음모자들의 이런 흉계를 알았는지, 다른 어떤 텔레파시가 작용했는지,
김구는 문득 적십자 병원의 주치의를 데려오라고 했다.
서대문 적십자 병원의 이기섭 박사가 왕진가방을 풀어놓고 김구의 몸 여기저기를 진찰했다.
그러자 김구는 이기섭 주치의에게 자시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물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 선생,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소?」
이 박사가 대답했다.
「아직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십니다.」
「그런데 내 몸에 박힌 총알이 자꾸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김구의 몸 안에는 총알이 한 개 박혀 있었다.
1938년5월 조선혁명당본부인 남목청(南木廳)에 모여 3당의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연회를 개최할 때 이운환이란 자가 연회장에 난입, 총을 난사해서 김구는
이때 총을 맞고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때 몸에 박힌 총알을 김구는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에는 하등 지장이 없습니다.
시간을 봐서 제거해드리도록 하지요.」
「그럽시다. 그런데 요즘은 몸이 몹시 피곤하오.」
「운동을 좀 하시는 게 좋습니다. 안되면 산책이라도 날마다 하세요.」
「그것이 좋겠구먼.」
주치의가 돌아가자 김구는 한결 마음이 개운해졌다.
김구는 내일 아침에 떠날 준비를 하기위해 비서들과 논의를 했다.
이 날 김구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날만 밝으면 김구는 음모자들의 총탄세례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치 않았는지 김구의 출장이 취소되었다.
25일 개원식의 행사집회엔 경찰의 방해로 갈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는 암살음모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는데,
시골 경찰서장은 과잉충성 때문이었는지 스스로 알아서 김구의 집회 허가서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6월 25일 아침,
그런 사실을 모르는 김구는 새벽 기도를 간단히 한 다음 세수를 하러 2층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 나서, 공주행 준비가 어떻게 됐냐고 선우비서에게 물었다.
「어젯밤 늦게 공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우비서는 마치 그 일이 자기 책임처럼 면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연락?」
「경찰에서 집회허가를 해주지 않아서 행사가 취소됐다고 합니다.」
「그럼 공주에 갈 필요도 없겠군.」
「예.」
김구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여간 불쾌하지가 않았다.
그날 행사장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김구를 기다렸으나,
김구가 나타나지 않자 청년들이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김구는 마음도 심란하고 해서 한강으로 가 모처럼 뱃놀이를 했다.
한편 이런 사실도 모르고 김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행동대원들은 시간이 지나도록
김구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들은 안두희와 오병순의 지휘로 2조로 나누었다.
헌병과 괴뢰군 복장으로 변장한 행동대원들은 1대의 지프에 타고 수원-오산 간을
연결하는 병점고개에 매복하고 있었다.
또 한 조는 한강 다리 건너편 노량진 언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조에는 홍종만도 끼어 있었다.
점심까지 굶고 기다렸으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김구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이들의 초조감은 더해갔다.
행동대원 한 명이 김구 일행의 동태를 알기위해 경교장에 전화를 해봤다.
그는 신문사기자를 사칭한 채
「여기 신문산데요, 선생님이 공주에 가신다고했는데 출발하셨나요?」
하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경교장에서 답변을 했다.
「예, 수고하십니다. 공주행사가 취소되어 선생님은 다른 곳에 가셨습니다.」
「예?」
「그런데 어느 신문삽니까?」
그 말에 행동대원은 얼른 전화기를 놓았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김구 일행을 기다리던 행동대원들은 김구가 행사에 참석치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힘이 빠졌다.
합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이 사실을 두목인 김지웅에게 알렸다.
김지웅은 여간 실망스런 얼굴이 아니었다.
김지웅은 급히 대학병원으로 가서 장은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장은산은 병점고개에서 매복하고 있던 행동대원들을 철수시키라고 했다.
장은산은 여간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수록 자신들의 음모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한껏 공을 세워보겠다고 벼르던 안두희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병순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오병순은 행동대원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김구를 시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기회를 봐서 김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잘못하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서 고민하던 터였다.
장은산은 윗선인 채병덕 참모총장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꾸지람 정도가 아니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하지 못하면 우리가 하겠다!」
채병덕은 김구를 시해하지 못한다면 자선의 출세 길은 끝장나고 만다는 생각이었다.
채병덕에게 욕설을 들은 장은산은 행동대원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26일까지 김구를 죽이던지 너희들이 총살을 당하던지 양자 택일을 하라!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아!」
하며 다그쳤다.
행동대원들은 그날 밤 진탕 술을 마셔댔다.
김구를 시해하지 못한 책임을 전가시키는 장은산에게 불만을 토로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셨다.
그러나 오병순은 예외였다.
오병순은 자신이 왜 이런 흉악한 무리들에게 끼게 되었는가 운명을 탔다.
「내가 어떻게 김구 선생을 시해할 수가 있는가?
더구나 김구 선생의 비서인 박동엽 선생은 내 은사가 아닌가?」
박동엽은 오병순의 학교시절 교장으로 있었다.
박동엽은 학생들에게 김구 선생이야말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가르쳤다.
생각다 못한 오병순은 경교장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이 취해 잠들어 있는 행동대원들 틈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종로 결찰서 뒤편에 알고 있는 친구인 현역 소령 김정진(金禎鎭)에게 찾아갔다.
밤늦게 찾아온 친구 오병순을 대한 김정진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비록 군대 내에서의 계급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고향 친구이면서도 학교동문이었다.
「술이나 한잔 하지. 밤도 늦었는데.」
김정진은 오병순이 찾아온 데에는 어떤 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밤늦게 집으로 찾아온 그에게 말 못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그를 안심시켰다.
오병순은 술을 연거푸 두 잔이나 마시고 김정진에게 자신의 속을 털어 놓았다.
「큰일 났네. 김구 선생님을 암살할 계획이 있네.
나 역시 그 계획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됐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오병순은 김정진에게 눈물로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래서 말일세. 자네가 경교장으로 찾아가 김구 선생에게 직접 말씀해 드리게.
잠시 자리를 피하시라고.」
김정진은 오병순은 보내고 급히 김구 선생의 비서인 박동엽을 찾아갔다.
그리고 오병순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정진은 다시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김승학(金承學)의 집으로 가서 모든 것을 알렸다.
김정진, 박동엽, 김승학, 이 세 사람은 급히 서대문 경교장의 2층의 김구의 거실로 찾아갔다.
이들 세 사람을 맞은 김구는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일들인가?」
「선생님, 혹시 무슨 불길한 경보라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흉한 소식이라니?」
「선생님 신변에....」
「내 목숨을 뺏는다는 소식 말인가?」
너무나 태연한 김구의 모습에 이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못했다.
「나를 누가 죽이겠나? 그런 소리야 많이들 있었지.」
「들으셨군요.」
「내 나이 이미 고희를 지나지 않았나. 살만큼 살았고, 설마 이승만이가 나를 죽이기야 하겠나.
그 사람도 살만큼 살았고, 더 이상 욕심이 있겠나.」
「선생님이 마음만 믿으시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선생님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악(邪惡)한 무리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잠시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경교장에서 피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웃지 않겠나.
칠십 평생을 보내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의 날들을 겪어 왔네.
너무들 염려하지 말게. 죽음이 두렵다면 구태여 내가 왜 돌아왔겠나.
어서들 돌아가게.」
「선생님.」
그들은 김구의 너무나도 대범한 모습에서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고, 사람들 모두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김구의 동심 같은 마음이
존경스러웠으나, 이런 어른을 죽이겠다고 날뛰는 자들이 그렇게 증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초상이 났나, 이 사람들아 울기는....」
김구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말고 돌아가게. 어떻게 하면 나라가 편하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내 나름대로 궁리를 하고 있네. 나야 무슨 욕망이 있겠나.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는 일이 급선무이지. 나라가 잘되면 경교장의 주인을 새로 맞이하고 나는
이 경교장의 문지기 노릇이나 할 생각이야.」
김구는 그들의 등을 믿었다.
「자 빨리 가게. 나도 할 일이 좀 있고.」
세 사람은 김구의 재촉에 못 이겨 경교장을 나왔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그대로 돌아가기가 안 되어서,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金信) 소령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끔찍한 음모를 들은 김신의 가슴은 몹시 떨렸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었다.
김신은 2층에 있는 아버지 서재로 올라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아버님 그분들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아버님 몸을 각별히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아버님의 몸은 아버님 혼자의 몸이 아닙니다.
아버님을 바로 보는 삼천만 모두의 몸입니다.」
그러자 김구는 아들의 말을 쉽게 물리쳤다.
「무슨 소리인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내 목숨을 몇 번씩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죽는 것이야.」
「하지만 아버님...」
「내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목숨이 아깝다고 자리를 피하고,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야.」
「아버님.」
김신은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울었다.
그러나 김구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신은 더 이상 말을 못 꺼내고 2층을 내려왔다.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김신은 자기 방에 들어와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희 아버님을 지켜주시옵소서.
저희 아버님은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발 하나님이 옆에 계셔서 보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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