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55. 경교장의 나날들

오늘의 쉼터 2013. 3. 31. 08:50

55. 경교장의 나날들

 

 

 도둑 대학생과 김구

  

 

 

  경교장에 칩거하면서 김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생 동안 집 한 칸 없이 살아온 김구에게  광산 갑부 최창학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마련해준 경교장은, 그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집이자 대궐이었다. 집은 컸지만 정작 그의 사물(私物)은 하나도 없었다.

  김구는 선천적으로 물질을 탐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에도 굶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호의호식은 꿈에도 생각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입고 있던 옷만 해도 그랬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자가 무슨 옷이 필요하냐면서 아주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무슨 옷이든지 두벌 이상을 갖지 못하게 했다.

  해방 후 환국해서도 어느 좌석에 가든 꼭 한복을 입었다. 한복 두벌을 번갈아 입고 벗고 했다. 김구가 남북협상을 하기위해 3?8선을 넘을 때도 옷은 다해진 한복이었다. 이것을 본 김덕근(金德根)이 밤을 새워 한복 한 벌을 만들어 이른 새벽에 경교장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제가 보기엔 의복이 마음에 쓰입니다.」

그러자 김구는 이렇게 말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이 옷 한 벌로 족하네.」

「선생님 김일성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우선 옷 모양부터

얕잡아보여서는 안됩니다. 체면도 있고....」

  김구는 그제서야 김덕근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복 한 벌을 입고 또 한 벌은 싸가지고 갔다. 평양에 간 김구는 도산 안창호의누이 동생 안신호(安信浩)를 만나 모란봉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신호는 한때 김구와 약혼이야기가 오간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두 사람 모두 70을 넘은 나이였으니 정분이라기보다 옛날 추억이야기가 전부를 차지했을 것이다.

  김구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 보면 갖고 있는 것 모두를 나눠주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중국 상해에서도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대가족(大家族)을 굶기지 않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동족의 슬픈 일을 당하거나 생활이 어려울 때는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특히 거사(擧事)가  있어서 임지로 떠나는 의사(義士)들이 있으면 평소에 점심도 먹지 않고 지내면서 모아 온 돈을 저고리 고름 속에서 끄집어 내어주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나석주 의사 등이 거사를 위해 길을 떠날 때도 때 묻은 돈을 꺼내 그들의 손에 아낌없이 쥐어 주었다.

  김구는 물질의 가치보다 사람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사람이었다. 평소 그의 성글 성글한 얼굴은 호랑이 같이 무섭기도 하지만 실상 만나서 이야기하면 사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고민을 함께 해주는 어버이 같은 사람이었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라기보다 정이 많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근엄하거나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 돈을 모르고 지내고 있던 그가 측근들에게 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돈은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측근들이 묻자 김구는 대답했다.

「쓸데가 있네.」

「그러시다면 저희가 마련해보겠습니다.」

  측근들은 김구에게 더 이상 묻지 않고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주었다.

  김구는 말없이 그 돈을 받아 책상위에 얹어 놓았다.

  그런지 얼마 후에 대학생 차림의 젊은이 한명이 김구를 찾아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꿇어앉았다.

  김구는 웃으면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돈을 집어 그 학생에게 주었다.

「자 이것 갖다 쓰고, 모자라면 다시 찾아오게.」

  그러자 대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며 김구의 두 손을 잡고, 그 손등에 눈물을 떨구었다.

「마음 약하게 갖지 말고 생각을 굳게 갖게.」

  김구는 대학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측근들이 의아해서 대학생이 나간 후에 김구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젊은이는 누구인가요?」

  김구는 그 말에 빙긋이 웃었다.

「젊은이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네.」

  측근들이 절대로 비밀로 하겠다고 하기에 김구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어젯밤이었네. 변소에 가기위해 일어나려고 하니까 창문가에서 어떤 물체가 어른거렸네. 도둑이었지.」

  김구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았다.

  김구는 잠자는체하고 가만히 그의 동정을 엿보았다. 도둑은 방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제법 값나갈 만한 물건을 싸 갖고 나가려다가 김구의 책상 앞에 놓여있던 김구의 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혼자 잠들어 있는 김구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도둑은 잠시 후에 자기가 싸놓은 물건을 풀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나가려고 했다.

  이때 김구가 벌떡 일어나서 근엄하게 불렀다.

「이놈!」

  그러자 도둑은 나가다 말고 김구를 쳐다보았다.

「이놈아 들어왔으면 가지고 갈 일이지 왜 그냥 가는가?」

  김구는 이렇게 말하며 도둑이 풀어헤친 물건들을 도로 보자기에 싸주었다.

  「이 물건들이 필요한 모양인데 어서 갖고 나가거라. 나는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나가다 말고 도로 방으로 들어와 김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울면서 용서를 청했다.

「선생님, 선생님이신 줄 모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선생님!」

「그래 무슨 사연이 있나 본데 그 이야기나 들어 보자.」


  그러자 도둑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 날 밤 들어온 도둑은 시골에서 올라와 고학을 하는 대학생이었다. 학교 등록금 납부일이 다가오는데 돈은 없고, 시골에서는 흉년이 들어 돈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궁리 끝에, 사람으로서는 안됐지만 도둑질을 하기로 결심했다. 서대문 근처에서 도둑질할 집을 물색하다가 서대문에서는 제일 큰집인 경교장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아마도 이 집 주인은 재벌총수거나 높은 관리인 줄 알았던 것이다. 도둑은 이 집이 경교장이고, 김구가 거처하는 집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도둑은 물건은 싸갖고 나가려다가 책상위에 놓여있던 김구의 사진을 보고, 차마 이집에서 도둑질을 할 수가 없어서 도로 물건을 두고 나가려 했던 것이다.

  도둑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김구는 갖고 있던 얼마의 돈을 쥐어 주고 내일 밤 이 시간에 다시 들르라고 했다.

  대학생 도둑의 등록금을 마련해 놓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측근이 김구에게 물었다.

「선생님 만일 그 도둑이 학생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니오. 그 도둑의 행동으로 보아 대학생이 틀림없소. 대학생이 아니고 도둑이라 해도 그 돈을 줘서 회개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겠소?」

  김구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림없었다. 측근은 그의 넓고 큰 도량에 대해 역시 김구 선생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인배 같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는데 비해 김구는 사람을 우선 믿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이었다.

  돈을 가지고 간 학생이 등록금을 치루고 나머지 돈을 도로 갖고 왔다.

김구는 다른 사람을 시켜 학생이 정말 등록을 했는가 알아보도록 했다.

그것은 김구가 학생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간 학생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등록을 포기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등록이 안 되었으면 등록을 해놓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학생은 돈을 한 푼도 낭비 없이 등록하고 돈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구는 그때서야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지. 우리 동포가 아니겠소?」

  그 후 그 학생은 정계의 거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이름을 대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김구는 자신의 지나온 70평생을 돌아보면서 동포들이 자신처럼 파란만장한 역경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행복한 삶을 살아 본 날이 없던 김구였다.

가정생활도 단란하지 못했다. 결혼생활도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구는 이에 개의치 않고 많은 동포들에게 행복한 삶을 나눠 주려 애썼다. 마음속에 조그만 욕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요즘처럼 정치를 마치  치부의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기업을 자신의 금고처럼 생각생각 하여, 호화 사치생활을 하는 악덕 재벌과 사이비 정치가와는 근본부터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인물이 이 나라에 존재했다는 것 자체만 해도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영광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