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54. 백범 어록(語錄) (3)

오늘의 쉼터 2013. 3. 31. 08:30

 

54. 백범 어록(語錄) (3)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안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의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국련(國聯)은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여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며 전쟁의 위기를 방지하여서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위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국련은 한국에 대하여도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 위원단은 신탁 없는, 내정간섭 없는 여건 하에 그들의 공평한 감시로써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남북통일의 완전 자주 독립의 정부를 수립할 것과 미· 소 양군을 철퇴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제 불행히 소련의 보이콧으로 그 위원단의 사무진행에 방해가 불무(不無)하나 그 위원단은

국련의 위신을 가강(加强)하여서 세계 평화수립을 유리하게 진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그 위원

제공(諸公)들의 혁혁한 공적을 한국 독립운동사 상에 남김으로써 한인은 물론 일체 약소민족에

있어서 영원한 은의(恩誼)를 맺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만일 자기네의 노력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국 련 전체의 역량을 발동하여

서라도 기어이 성공할 것을 삼척동자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 몰각한 도배(徒輩)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하여서 단선, 단정의

노선으로 민족을 선동하여 국련위원단을 미혹하기에 전심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군정이 난익(卵翼)하에서 육성된 그들은 경찰을 종용하여서 선거를 독점하도록 배치하고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태연스럽게도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하는 선각자로서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각자는 매국족(賣國族)의 일진회식(一進會式) 선각자일 것이다. 왜적이

한국을 병합하던 당시의 국제 정세는 합병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국지사들이

생명을 도(賭)하여 반항하였지만 합병은 필경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파악한 일진회는

동경까지 가서 합병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은 영원히 매국적이 되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설령 국련위원단이 금일에 단정을 꿈꾸는 그들의 원대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면 이로써

한국의 실정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을 것이며, 국련위원단 제공은 한인과 영원히 불해(不解)의

원(怨)을 맺을 것이요, 한국 분할을 영원히 공고히 만든 새 일진회는 자손만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니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死坑)에 넣는 극악 극흉의 위험일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국련위원단에 제출한 의견서는 이 필요에서 작성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자주 독립의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임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남북 정치범을 동시 석방하며,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며 남북지도자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이 철과 같은 원칙은 우리의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변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원칙으로서 순식만변(瞬息萬變)하는 국내외 정세를 순응, 혹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 장 주석의 이른바 ‘불변(不變)으로 응만변(應萬變)’이라는 것이다.

독립이 원칙인 이상 독립이 희망 없다고 자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왜정 하에서 충분히

인식한 것과 같이 우리는 통일정부가 가망 없다고 단독정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단독정부를 중앙정부라고 명명하여 자기 위안을 받으려하는 것은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정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은망념(邪恩妄念)은 해인해기(害人害己)할

뿐이니 통일 정부 수립만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가 자주 독립의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요,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민족의 공고한 단결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미군정의 앞잡이로 인정을 받는 한민당의 영도 하에 있는 소위 한협은

나의 의견서에 대하여 대망소괴(大妄小怪)한 듯이 비애국적, 비신사적 태도로써 원칙도 없고

조리도 없이 후욕(?辱)만 가(加)하였다. 한민당의 후설이 되어 있는 「동아일보」는 ㅇㅇㅇ이란

여자의 이름까지 빌어가지고 나를 모욕하였다.

  일찍이 조소앙, 엄항섭 양씨가 수도청에 구인(拘引)되었다고 허언을 조출하던 그 신문은

이번에 또 ‘애국단체가 제출한 건의서, 김구씨 동의 표명’이라는 제목으로 허언을 조출하였다.

이와 같은 비열한 행위는 도리어 애국 동포들의 분노를 야기하여 각 방면에서 토죄(討罪)의

성랑이 높았다.

  이리하여 내가 바라던 단결은 실현도 되기 전에 혼란만 더 커졌을 뿐이다.

 


  시비가 없는 사회에는 개량이 없고 진보가 없는 법이니 여론이 환기됨을 방지할 바가 아니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호기를 만나서 원방(遠方)에서 내림한 귀빈을 맞아가지고 우리 국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이 순간에 있어서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 행동은 아니다.

  일체 내부 투쟁은 정지하자! 소불인(小不忍)이면 난대모(難大謀)라 하였으니,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참아보자.

  삼천만 자매 형제여!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 대계를 그르친 자가 있으랴. 우리는 과거를 한번 잊어버려

보자.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의심하지 말며 타매(唾罵)하지 말고 피차의 진지한 애국심에 호소해

보자!

  암살과 파괴와 파공은 외군의 철퇴를 연장시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조출할 것이다.

 악착한 투쟁을 중지하고 관대한 온정으로 임해보자!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도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칠십유삼(七十有三)인 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금일(今日今日) 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에 새삼스럽게 재화를

탐내며 명예를 탐낼 것이냐, 더구나 외국 군정 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냐. 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지(主持)하는 것도, 한독당을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민족의 단결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삼천만 동포와 공동분투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서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적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고 한다.

  내가 사형선고를 당해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금일도 이것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삼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분투 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需要)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러운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다.

  삼천만 동포 자매 형제여!

  글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抑塞)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잇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 번 더 심환(深患)하라.

 


*이 성명은 김구의 70여생을 통해 주장하여 마지않는 조국독립이 숙원을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참다운 애국정신의 결정이며 자파의 이권을 위해 독립노선을 방해하는 일부 군정 연장배들이 악질적 모략을 여지없이 분쇄한 명문이다. 오천어(語)에 이르는 장문(長文)의 글속에 백범이 애절한 마음이 나타나있다.


조국 흥망의 관두(關頭)에 임하여

-<김구 주석 최근 언론집>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하였으니 처세술로는 수구여병(守口如甁)이 제일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침묵을 힘써왔다. 이와 같이 침묵하던 나로서 근일에는 상당히 말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내가 어찌 변(辯)을 좋아함이랴. 실로 부득이한 까닭이다.

  보라! 금일의 ‘조국은 흥망’ 의 관두(關頭)에 임하고 민족은 사멸의 험경(險境)에 처하였다. 그리하여 경술(庚戌)을 회고하는 감회가 없지 아니하다. 이때에 있어서 일개의 애국자로서 더 침묵을 지킬 수 있으랴! 무지몰각(無知沒覺)한 도배(徒輩)들이 나에게 후욕을 가(加)할까 염려하여 터지는 분통을 더 누르고 참을 수 있으랴.

  나는 일생을 왜적과 또 그 놈들의 주구 배에게 박해와 참욕을 당한 것이다. 악형도 당하였고 생명을 여러 차례 빼앗길 뻔도 하였다. 내 심장에는 조선 놈이 쏜 왜적의 탄환이 아직도 박혀있다. 내가 더 기탄(忌憚)하며 더 주저할 것이 무엇이랴. 아주 스러지려 하는 조국을 붙들기 위하여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한국 사람인 까닭에 한국을 누구보다도 더 잘 사랑할 줄 안다. 동일한 이유로 내가 이북사람인 까닭에 이북을 누구보다도 더 잘 사랑할 줄 안다.

  내가 입국한 뒤에 남한에서 수많은 고향의 친지를 만났다. 반갑기는 하나 우리의 선영이 있고 우리가 생장한 그 땅에서 만나지 못하고 객지에서 유랑하는 신세로 만날 때에 나에게  는 형용할 수 없는 비애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이북인은 ‘이중의 망국노(亡國奴)’가 되어 있다. 우리는 왜적의 패망한 것을 보면서도 조국의 광복을 못 본 채 남쪽으로 망명한 것이다. 우리는 망국노의 욕을 면하지 못한 채 망향노(亡鄕奴)가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이중의 비애와 고통이 있으니 만큼 이중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 망국의 경험이 없는 자는 망국의 고통을 모르는 것과 같이 망향의 경험이 없는 자는 망향의 고통을 모를 것이다.

우리 한인은 일반적으로 망국의 비애는 잘 알고 있지마는 망향의 비애는 오직 우리 이북인 만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쪽에 있는 동포들은 진정한 애국자를 제외하고는 이북의 흥망에 큰 관심이 없다. 정상(政商)· 모리(謀利)·반역 도배들은 입으로 독립자주통일을 부르짖으면서 내심으로는 오직 사리사욕에만 팔려서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는 매국 매족이라도 할 만한 비열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금수도 그 자식이 사지(死地)에 빠지면 그것을 구하려다가 제 자신까지 희생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소위 애국자라면서 일천만 동포가 위경(危境)에 있는 것을 보고도 태연히 입을 열어서 북한을 구할 수 없으니 위선(爲先) 남한이나 살리고 보자, 그리고 앞으로 여유 있는 대로 북한까지 구해보자고 말을 할 수 있으랴! 이것은 결국 명 짧은 북한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거나 일반이다.

 


  나는 중국에서 일찍 이 동북(東北, 滿洲) 사람들이 망명을 하여 중국본토로 오니까 거기에서 경박 무지한 도배들이 그들을 망국노라고 비웃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도 이 꼴대로 더 나가면 그 따위 현상이 없지 아니할 것이다.

  조국의 독립은 조국의 통일에서만 완성할 수 있는 까닭에 내가 후욕을 당해 가면서 분열주의자들과 맹렬한 투쟁을 계속하거니와 그들과 투쟁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이북인인 까닭에 우리의 손으로 차마 이북을 버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처자가 있는 우리 고향을 남이 찾아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의 손으로 광복할 결심을 하자. 이것이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고 민족을 분열하는 지역 관념을 고취하는 길이 아니요, 어정어리(於情於理)에 합당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고향으로 평안히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국의 통일과 자주 독립을 전취하는 것뿐이다. 분열주의자들은 이것을 비웃어 말하기를, 원칙은 가(可)하지만 기실은 ‘도덕적 관념론’에 불과하다고 한다. 만일 원칙이 가(可)라고 한다면 그 원칙위에 입각한 도의(道義)는 반드시 관념적이 아니요 과학적이며 과학적인 도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 사(事)의 대소를 물론하고 그 진행에 있어서 반드시 원칙이 있나니 이 원칙을 무시하는 자는 그 사업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때에 있어서는 공리주의자(功利主義者)· 변절 족· 매국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의적 원칙에 근거한 독립운동은 삼천만 대중이 일치하게 요구하는 바요, 전 세계 정의 인사가 일치하게 애호하는 바이니 필연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탁(反託)하기 위하여 미·소 공위 협의 대상되기를 거부하다가 필의에 신탁정부가 아니 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기어 들어가면 그 사람들은 유엔 총회의 정당한 결의는 우리 독립을 방해한다고 반대하면서 한국 임시위원단이 내한한 후, 소총회에서 정말 한국의 독립에 불리한 결의를 한때에 있어서는 그 결의는 실시 될 듯 하니까 지극히 만족하다고 솔선 환호하였다. 그들은 지금 수무족도(手舞足蹈)하지만 미·소 공위에서 하던 망신을 또 하지 아니하기를 누가 보증하랴. 그들은 일찍 38선을 철폐하기위하여 미·소 양군 철퇴하라고 고함도 질러보았다. 작년 6월에는 미군정에서 좌익 정치범을 석방 할 때에 불만을 토(吐)하면서 북한의 정치범도 즉각 석방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정말 적절한 때에 남이 그것을 주장하면 공산당이라고 명명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과학적 현실론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자살적 현실론자’이다. 조국의 분열을 촉진하면서 독립의 길로 간다하며, 단독정부를 수립하면서 중앙정부를 수립한다고 고함을 친대야 속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반쪽 정부라도 수립하면 3개월 내에 민생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나 민생문제를 연구한 모 미국인 전문가는 통일정부나 수립해야 5개월 내에 수출입 무역에 평형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남한에만 단정을 수립한다면 그 정부는 미국의 경제원조가 없는 한 3개월 내에 전복할 것이라고 말하였다.(1948년 3월)

 


  또 그들은 그들이 세우는 단정이 유엔의 회원이 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엔헌장에는 이 문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당장에 독립이나 되는 듯이 대통령도 내고 조각(組閣)하느라고 분망하지마는 불국(佛國, 프랑스) 안남(安南) 총독 밑에 안남 황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그토록 흥이 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력으로써 북한까지 통일하기를 희망하는 까닭에 전쟁이 폭발하기만 고대하고 있지만 아직 나지 아니할 것이다.

  미·소가 다 전쟁을 할 수 없거니와 설령 미국이 개전(開戰)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형시 형세로 보아서는 전우로 나설 능력 있는 맹국이 없는 것이다. 일보를 후퇴하여 전쟁이 된다 하더라도 제일선에서 북으로 향해 진군할 자는 이북 청년일 것이요, 우리의 사살 대상은 우리의 부형·친척·친구일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는 소련이 승리하면 한국은 소련의 연방이 될 것이요, 미국이 승리하면 미국의 부속국이나 혹 일본이 전리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전쟁을 고대하겠는가?

  나는 ‘이북인 불살 이북인(以北人不殺以北人)’ 하라고 주장한다. 또 ‘한국인 불살 한국인(韓國人不殺韓國人)’하라고 주장한다. 인류는 진보하는 까닭에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전쟁으로만 해결하게 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평화로도 능히 해결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근 30년 전에 중국에서 소위 봉직(奉直?奉天?直隸)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이 전쟁은 오패부(吳佩孚) 대 장작림(張作霖) 전쟁이었는데, 그때 오씨가 전선에서 ‘직예인 불살 직예인(直隸人不殺直隸人)’이라고 쓴 기(旗)를 들고 전진한 까닭에 장(張) 진중의 직예(直隸) 군인이 투항하였다. 그리하여 오씨는 대승하였다. 우리도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애향심에 호소하여 외인이 획정한 38선을 우리 동포끼리 철폐하도록 하여보자. 외군의 전쟁으로써 동족상잔의 길을 찾지 말고, 민족적 단결로써 우리의 독립도 완성하고 세계 평화도 촉진하는 것이 훨씬 가능하고도 유효할 것이다.

 

 혼란기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완력도 필요한 것이나 그러나 질서가 점차로 서게 되면 법은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완력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모른 체 할 뿐 아니라 염오(厭惡)하거나 심하면 중상(中傷)까지도 하는 것이다. 근일에 김두한(金斗漢) 군의 사건을 보아도 우리가 얻은바 교훈이 많다. 김 군이 자기 범행에 관해서 법적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범행이 애국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또 그가 위대한 애국자 김좌진(金佐鎭) 장군의 영사(令嗣)라는 점에서 보면 그에 대한 구명운동의 그토록 열렬하지 못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탄탄한 대로’가 있다. 그것은 오직 자주 독립의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매진하는 것이다. 조국을 광복하기 전에 고향가지 망한 우리로서 반쪽 의회에 대의사(代議士) 몇 사람을 들여보냈다 해서 자기에게나 고향부모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줄 수 있으며 독립운동에는 얼마나 큰 공헌을 할 수 있으랴. 이것은 마치 왜정 하에서도 망국의 수치를 모르고 부유(腐儒)들이 과거의 은(?)을 풀어보려고 백일장(白日場)에 머리를 싸매고 덤비는 것과 같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취할 길이겠는가? 우리에게는 목전에 마땅히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엔총회에 향하여 소총회? 비법(非法)을 지적하면서 해(該)총회에서 작년 11월에 우리에게 약속한바 통일 독립의 정부를 수립하여 줄 거을 일치하게 요구할 것이요, 둘째는 남하한 이북의 빈궁한 동포를 구제하기 위하여 먼저 이북의 부유한 동포들이 분바할 것이다. 진정한 애국 애향자거든 거금을 소모하여 대의사 감투를 사려고 애쓰지 말고 그 돈으로 먼저 가련한 동포를 구하라.

 


                              대한민국 30년 3월 21일 김구

                                                   

 

 

 

*1948년 3월 20일 서울 남산에서 열린 재(在) 남한 이북인 대회에서 백범의 단선 반대의 충정은 선거에 현혹된 군중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연설을 중단한 백범은 그 이튿날 못다 한 말을‘남하한 이북 동포에게 기(寄)함’이란 제하의  특별 성명으로 냈다.

 

 

 

단결로 새해를 맞자

- 1949년 1월 1일, <서울신문>

 

 

 

  우리는 이제 또 새해를 맞게 되었다. 좋던 언짢던 느낌이 없으랴. 그러나 과거 일 년을 살아온 나의 자취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뿐이다. 애국자로 자처하면서 동포가 굶어죽고 얼어 죽고 그리고 또 서로 찔러 죽여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통일론자라 하면서 점점 굳어가는 국토의 분열을 막지 못하였고 마땅히 할 말을 하지도 못하였다. 또 독립운동자라 하면서 독립을 위한 진일보의 표현도 하지 못하였다.

  나는 마땅히 과거 일 년 동안의 자기를 비판하고 자기반성을 함으로써 새해에 실행할 새 계획을 작성하여야 할 것이다. 묵은해가 몇 번 가고 새해가 몇 번 와도 우리 삼천만의 절대 다수의 유일한 최고 염원은 조국의 자주적 민주적 통일뿐이다. 과거 일 년을 돌아보며 서글픔이 있다면 이 염원이 성취되지 못한 것뿐이요, 오는 일녀에 새 희망을 부친다면 이 염원의 달성뿐이다. 소련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하여도 공산 독재 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독점 자본주의의 발호(跋扈)로 인하여 무산자(無産者)를 외롭게 할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자기 상품 시장화 하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우리는 진실로 국제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친선을 촉진하면서 우리가 삼천만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자주 독립의 조국을 가지기만 원하는 것이다. 더구나 반쪽의 조국만이 아니라 통일된 조국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이 아무리 크고, 우리의 성공이 아무리 확실하고, 우리의 분투노력이 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단결이 없으면 만사는 환멸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어느 때나 단결이 오는 새해에는 과거에 성공하지 못한 단결을 실현하기로 결심하고 새해는 단결 년(團結年)으로 맞이하자. 단결을 성공 하는 데는 필요한 요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요소를 잡지 못하고 단결하자고만 외치면 과거와 같이 단결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나는 내 생각하는 제일 중요한 단결의 요소를 두 가지만 제시하고 이글의 끝을 맺겠다.

  1. 단결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원칙이 없는 단결은 제대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백서의 생활을 위협하고 백성을 무리하게 압박하는 탐관오리가 그 백성을 보고서 단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을 그 백성이 믿고 따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보고 믿을 수 있는 단결의 원칙과 아울러 그것을 행동으로써 실천할 성의까지 보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국의 통일을 성공하려 하면 통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서만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것이다.

 


  2. 민심의 안정을 도모해야 될 것이다. 정치가 궤도(軌道)에 오르지 못하고 사회가 문란하면 그럴수록 대중은 배고프고 괴롭고 무서운 중에는 그날그날을 보내는 것이다.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 괴로운 사람과 무섭게 하는 사람은 한데 뭉쳐질 수 없는 것이니 전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려면 먼저 민심을 안정케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빈궁한 동포를 구제하자

- 1949년 1월 4일, <서울신문>

 

 

 

  나는 다만 동지들에 대한 약속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이 돈은 내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중간에 서서 나를 사랑해 주는 여러 친구의 심부름을 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 공덕은 전부 그 분들의 것이다. 본래 적은 돈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까닭에 그 분배 방침에 있어서 곤란이 너무 많았다. 결국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전재(戰災) 아동의 교육 보조비로 증여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작정하였다. 그 조사에는 주로 관청 문서에 드러난 전재민 집단을 표준으로 하였다. 이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권연호(權連鎬) 목사를 비롯하여 몇몇 동지에게 크게 감사하는 바이다.

  내가 이번에 몇 군데 전재민 정경을 친히 시찰한바 작년에 볼 때보다도 상상 이상으로 처참한 데가 적지 아니하였다.

  끝으로 나는 나의 동지와 친구 여러분들이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굶어죽고 얼어 죽는 빈궁한 동포를 위하여 구제운동을 시급히 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김구는 추석을 맞아 시내 염리동과 장춘단 등 여러 곳에 집 없이 굶주림에 떨고 있는 가엾은 동포들을 손수 찾아 총액 90만원을 나누어주는 등 빈궁한 동포들을 몸소 찾아 다녔다. 이글은 백성을 사랑하는 김구의 의지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