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백두대간

43. 하늘이 살렸다 3

오늘의 쉼터 2013. 3. 17. 08:57

43. 하늘이 살렸다 3

 

  사람이 뜻하지 않은 불행을 당했을 때, 흔히 운이 나쁘다고 한다. 악인이 별다른 일도 없이 불황을 당했을 때 하늘이 벌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서 훌륭한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을 때, 이를 일컬어 하늘이 살렸다고들 말하고, 이를 경세의 표징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시키곤 한다. 김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김구가 1백여 명의 남녀 노유와 청년들을 데리고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 간 이유가 있었다. 그곳은 이곳이 곡식 값이 싼 곳인데다. 장래 홍콩(香港)을 통해 해외와 통신을 계속할 계획 때문이었다. 장사에 우선 선발대를 보낸 김구는 안심이 되지 못했으나, 김구가 장사에 도착하자 옛날부터 친하게 지냈던 장치중(張治中) 장군이 호남성의 주석으로 부임했기 때문에 무엇인가 일이 잘 풀려나갈 것만 같았다. 장치중 장군은 김구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서 식구들의 신변을 잘 보호해 주었다.


  따라서 김구가 추진하던 대외 공작임무와 홍보활동도 순탄하게 진행됐고 경제적으로는 이미 남경에서부터 중국 중앙에서 배급하는 매월 다소의 보조비와, 그 밖에 한인 교포의 원조도 있었다. 또한 장사는 물가가 싼 곳이라서 다수 식구의 생활이 고등난민(高等難民)으로 자격을 보유하게 되었다.

  김구는 고국을 떠나서 상해에 도착한 후에도 본명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왜놈들의 밀정에게 신분이 드러날까 봐 우려해서였다. 가흥에서는 김씨대신 장씨로 행세했고, 출생지도 아예 광동 인으로 소개했던 터였다. 그러나 장사에 도착한 후부터는 다소 신변의 위협에서 벗어났기에 터놓고 김구란 이름으로 행세했다.

  당시 상해, 항주, 남경등지에서 옮겨온 식구는 광복진선(光復陳線) 원동(遠東) 3당의 당원과 그 가족, 그리고 임시정부의 직원들이었다. 이때 종종 3당 통일문제가 거론되었다. 3당의 첫째가 조선혁명당이었다. 주요간부로는 이청천, 유동열, 최동오, 김학규, 황학수, 이복원, 안일청, 현익철 등이었다. 다음은 한국독립당이었다. 간부로는 조소앙, 홍진, 조시원등이었다. 3당의 마지막은 김구가 창립한 한국 국민당이었다.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차이석, 송병조, 김봉준, 엄항섭, 안공근, 양묵, 민병길, 손일민, 조성환 등이었다.

  3당의 통일문제를 협의하기위해 조선혁명당 당본부인 남목청(南木廳)에 모여 연회를 개최하기로 해 김구도 출석했다. 그런데 김구는 남목청에 간 기억이 나긴 나는데 깨어보니 집은 아니고 병원인 듯했다. 잠시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웬일인지 몸이 천근이나 되는 듯 꼼작할 수가 없었다. 동지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여기가 어디요?」

「병원입니다.」

「어째서 내가 여기 오게 됐소?」

「남목청에서 선생님이 약주를 드시다가 졸도를 하셨습니다.」김구는 과도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시다보면 쓸데없는 말이 오가게 되고, 간혹 이 말로 인해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청진기를 가슴에 걸고 자주 와서 심각한 얼굴로 김구의 여기저기를 진찰했다.

  김구가 가만히 자신의 가슴을 살펴보았다. 가슴에 무슨 상흔이 있는 듯 했다. 그는 의사에게 물었다.

「어쩐 까닭입니까?」

  의사는 별 것 아니란 듯 간단히 말을 마쳤다.

「선생님이 졸도할 때 그만 상 모서리에 엎어지셨습니다. 모서리가 가슴에 받쳐서 상처가 난듯합니다.」

  김구는 그 말을 듣고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김구는 비서 엄항섭으로부터 자신이 입원하게 된 진상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남목청에서 연회가 시작될 때 였습니다. 조선혁명당 당원으로 있던 이운환이란 자를 선생님도 잘 아시죠?」

「알고 있지.」

  이운환은 불평이 많은 자였다. 평소 임시정부의 어른들이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조선혁명당 청년들에게 주는 생활비가 적어 늘 불평불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운환은 남경에서부터 특무공작을 간다고 해서 김구가 금전도 보조해 준적이 있던 자였다.


  이 자가 회의장에 돌입하여 권총을 난사했던 것이다. 제1발에 김구가 맞고 제2발에 현익철이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제3발에 유동열이 중상, 제4발에 이청천이 경상을 입었다.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을 했다. 김구와 유동열은 입원 치료하고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운환은 성 정부(省政府)의 긴급명령으로 체포 구속되었고, 공범으로 박창세, 강창제, 송욱동, 한성도 등도 수감되었다.

  의혹은 강창제, 박창세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강, 박 두 사람은 상해시절 이유필의 지휘로 병인의용대라는 특무공작기관을 설립한, 일종의 낭인들이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골치 덩어리들이었다.

  이들은 때로는 강도짓도 벌여 돈이 많은 동포를 강탈하기로 하고, 일본의 밀정을 총살하기로 하는가 하면 때로는 밀정노릇도 서슴지 않는「뜨내기」들이었다. 독립운동 사회에서는 신용이 없는 자들이었으나, 그렇다고 반혁명분자로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수십일 전에 강창제는 김구에게 이렇게 청했다.

「선생님, 박창세가 장사(長沙)로 올 마음이 있는데 여비가 없어서 오지 못한다니 여비를 보조해 주십시오.」

  김구는 박창세가 그리 탐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응답을 미루었다.

「상해기관에 의탁해서 처리하겠소.」

  박창세의 아들 박제로는 일본 영사관이 정탐(밀정)이 된 것을 김구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창세는 바로 그 아들집에 의탁하고 있었다. 아비와 아들이 한 집에 기거하면 비밀이 없어진다. 더구나 박제로가 일본 경찰의 밀정이라는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 비밀이 새나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얼마 뒤 장사에 온 박창세를 김구가 만나보았다. 사람이 경솔하여 깊은 말은 하지 못할 사람 같아서 경계를 했다. 성격이 급하고 다소 난폭한 구석이 있던 이운환은 강·박의 농간에 현혹돼 애꿎은 독립운동가에게 총질을 한 것이다.

  경비사령부의 조사 때 이운환의 주머니에는 18전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박창세가 상해에서 장사에 도착하기 전 2백 원의 돈을 박창세에게 지원했다. 그러나 이 돈은 이운환에게 한 푼도 가지 않았다. 이운환이 남목청에서 총질을 하고 도주해 수십 리 떨어진 기차역까지 와서 체포됐을 때 18전을 소지한 것으로 보나, 범행후 최덕신(崔德新)에게 위협, 10원을 강요해서 장사에서 탈출한 것을 보아도 강·박의 마수에 이용됐음을 알 수가 있다. 장사(長沙)는 전쟁으로 급박하게 돌아갔다. 전쟁이 발발하자 점점 질서가 없어져가고, 법정에서는 주범과 종범(從犯)을 주범을 가리지 않고 석방했다. 범인 이운환은 그 뒤 탈옥해서 걸인으로 방황하는 것을 박기성이 알아보고 담배 불까지 권했다고 한다.

  아무튼 남목청 사건이 일어나고서 장사는 일대소란이 벌어졌다. 경비 사령부에서는 장사에서 출발하여 무창(武昌)을 향해 출발한 기차를 다시 장사까지 오게 하여 범인을 수색했다. 또한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광동으로 공작원을 파견하여 중·한 합동으로 범인 체포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성주석(省主席)안 장치중 장군은 김구가 입원한 상아의원(湘雅醫院)까지 친히 찾아왔다. 그는 김구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상처부위를 살펴보았다.

「생명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의사의 말에 장장군은 김구에게 들으란 듯,


「별 상처는 아니니 염려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불행 중 다행이었소. 범인은 우리 손으로 꼭 잡겠소. 치료비용은 우리 성정부가 책임질 테니 안심하시오.」

하며 위로했다.

  중국인이란 왜놈과 달라서 사람을 알아볼 줄 알고, 일단 마음을 주면 신뢰를 배신치 않는 기질이 있다. 그것을 대륙적인 기질이라고 한다. 희로애락의 변화가 드물어서 사람이 듬직한 면이 있다. 물론 중국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큰 인물일수록 대인(大人)들이 많다. 장치중 역시 그렇다. 그러나 왜인들이란 금방 성을 냈거나 또 다른 일로 풀어지는 폼이 여간 방정맞지 않아서 마음을 함부로 줄 수가 없는 민족이다. 조석으로 많이 변해서 경과를 예측치 못해 이를 섬 기질이라고도 한다.

  한편 남목청 연회장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상아이원에 도착한 김구에게 의사는 아주 비관적인 말을 했다.

「가망이 없습니다.」

  동지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사정을 했다.

「진찰이라도 해보야 할 것 아니겠소?」

「가망이 없는데 진찰이 무슨 필요가 있소.」

「정말이오?」

「얼굴이 벌써 사색(死色)이 깃들었소. 호흡도 점점 정지돼가고 있소.」

「 한번만이라도 원이 없게 치료해주시오.」

「병원은 살아날 가망이 있는 사람만 치료를 하는 곳이오. 이런 환자는 안되오.」

  동지들이 이번엔 애원을 했다. 그러나 의사는 막무가내였다.


「이 분을 꼭 살려야합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글쎄 가망이 없대두.」

  의사는 퉁명스럽게 다시 말했다.

「저 바깥에 내다 놓으시오. 거기서 명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치워 버려야하니까.」

  할 수 없이 김구는 동지들의 손에 의해 병원 바깥 복도 바닥에 누워있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한 시간 이내에 명이 떨어져 송장이 되어야 하는데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 김구의 숨은 끊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의사는 김구의 눈을 뒤집어 보았다. 그러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가망이 있다는 얘기요?」

「글쎄요. 한 시간쯤만 더 환자가 목숨이 연장되면 살길이 있을 것 같소.」

  이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김구의 맥은 쉬지 않고 뛰었다. 동지가 말했다.

「선생님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하늘이 살리신 것 같습니다.」

「그렇소.」

  김구는 의식이 없는 가운데서도 이런 말들이 가물가물 뇌리에 들어왔다.

  마침내 의사가 단안을 내렸다.

「이 환자는 살았습니다.」

  그는 간호부에게 우등병실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한편 안공근은 중경에 살던 자기 가족과 광서(廣西)로 이주시켰던 작은 형 정근가족까지 홍콩으로 이주시킬 일로 홍콩에 가 있었다. 김구의 맏아들 인이 역시 상해 공작 가는 길에 홍콩에 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김구가 자동차에 실려 의원 문간에서 의사가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은 즉시「피살당했다」는 전보가 홍콩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 인과 공근이 김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장사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죽었다던 김구가 멀쩡하게 살아있음을 보자 공근과 인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저희들도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하늘아래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한구(漢口)에서 중일전쟁을 관장하던 장개석 장군은 김구의 병태에 대해 걱정하는 전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내왔다. 한 달 뒤 김구가 퇴원했을 때 장장군은 나하천(羅霞天)씨를 통해 치료비 3천원을 보내고 위로했다.

  김구는 퇴원즉시 걸어서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김구는 자신의 병세를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았었다.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퇴원할 무렵 둘째 아들 신이를 시켜서 겨우 병세를 전했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

  김구가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네의 생명은 상제(上帝)께서 보호하시고 있네.」

  어머니는 김구에게「자네」라고 호칭을 한 등급 높였다. 아들의 사이도 연만해졌을 뿐 아니라 이제는 행동거지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되겠기에 붙인 호칭이었다.


「예로부터 사악(邪惡)한 것은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게 돼 있네. 사악한 것은 일시적으로 기세를 부릴 뿐이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자네를 쏜 자가 이운환이라는 정탐꾼인즉, 한인의 총을 맞고 살아난 것은 왜놈의 총을 맞고 죽은 것보다 못하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당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김구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서 엄격했다. 아들이 혹시 이제까지 지켜 온 의(義)를 저버릴까봐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믿을만한지 아들을 영웅 대접했다.

  하루는 엄항섭의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신기가 불편하고 구역질이 몹시 나서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상아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X레이 촬영을 해보니 박혔던 탄환이 위치가  변경되어 오른쪽 갈비뼈 옆으로 옮겨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 없습니까?」

  엄항섭이 묻자 외과 주임이 대단치 않게 말했다.

「심장 곁에 박혀있던 탄환이 혈관을 따라 우측 갈비뼈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예,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수술도 쉬우나, 그대로 놔둬도 생명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오른쪽 다리의 마비는 대 혈관을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김구는 박힌 탄환을 그대로 두고 병원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