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가출옥, 석방
김구가 경성 감옥에서 인천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 원인은 과장인 왜놈과 싸운 일 때문이었다.
그놈은 김구에 대한 감정으로, 김구를 고역이 심한 인천 항구를 축성하는 곳으로 보낸 것이다.
서대문 감옥에서는 김구의 동지들이 많아서 서로 위로도 하고 말벗도 되기도 했는데
인천옥은 어떨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구는 인천감옥에 살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벌써 17년 전 일이었다.
1898년 3월 9일 한밤중 옥을 깨뜨리고 도주해서부터의 17년,
참으로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17년이란 그냥 평범한 세월이었지만 자신은 1백년도 넘는 세월만 같았다.
그 동안에 겪은 고생, 만난 사람, 그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훌륭한 사람 또한 많았다.
김구는 그저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해준 하느님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17년 만에 다시 굴비 엮듯 철사 줄에 묶여 옥문 안에 들어서 살펴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20년이 가까운 세월이니 안 그렇겠는가?
옛날에 김구가 글 읽던 방과 산보하던 뜰을 빼놓고 모두가 달라져 있었다.
김구가 와타나베 순사를 호통 치던 경무청은 매춘부들의 검사소로, 감리사가 집무하던
내원당(來遠堂)은 감옥의 창고로 변했고, 순검, 주사들이 있던 곳은 모두가 왜놈의
발길이 오가고 있었다.
감옥 뒷담너머 용동 마루턱에서 아들인 김구를 물끄러미 보시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그저 무정한 세월만 탓할 뿐이었다.
김구는 속으로, 이곳에 혹시 옛날의 김창수를 알아보는 자가 혹시 없는가
은근히 두려움을 가졌다.
감방을 들어서니 서대문에서 감옥 생활을 할 때 낯익었던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생전 본적도 없는 사람이 곁에 앉으면서 아는 체를 했다.
「거 참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그는 김구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아는 듯이
「당신 혹시 김창수가 아니오?」
하고 물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세히 보니 17년전에 절도죄로 10년 형을 치루고 한때 감방살이를 같이 하던
문종칠(文種七)이란 자였다.
나이가 들어 늙었으나 흉측한 얼굴 판때기는 속일 수가 없었다.
전에 없던 상처가 이마에 나있어 얼른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문종칠 바로 그 작자였다.
절도범이란 인간성 자체도 교활한 작자들이라 마음을 줄 수가 없는 법이다.
그 자는 김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김 서방, 나를 모르겠소? 지금 내 이마에 구멍이 없다고 생각하면 옛날 그 얼굴이 나타나오.」
하면서 17년 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이 탈옥하고 나서 죽도록 매를 맞은 문종칠이오. 나를 모르겠소?」
김구는 모른다고 했다가 무슨 화를 입을지 몰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문가가 물었다.
「항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당신이 이번엔 무슨 죄로 들어왔소?」
「강도 15년이오.」
문가가 비아냥거리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충신과 강도는 그 거리가 먼데,
그때 창수가 우리 같은 도적 떼들 방에 넣었다고 규탄을 했었는데 강도죄라....」
문종칠은 처음부터 이죽댔다.
당시 김구는 자신은 국사범이기 때문에 파렴치범들과 같이 있지 않겠다고
경무관에게 호통을 친 적이 있었다.
문가는 지금 그걸 이야기하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김구는 이 자를 그냥 내버려 둬서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자에게 접근, 가능하면 입을 틀어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서방, 사람의 일생이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충신도 되보고 강도도 되보고 그러다가 가는 것 아니겠소.
그러데 문 서방은 어찌하여 이곳 들어오셨소?」
김구는 문가에게 깍듯이 공대를 했다.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만일 문가가 옛날 일을 전옥에게 발설이라도 한다면 큰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잔여 2년만 무사히 넘기면 될 텐데, 잘못하다가는 일이 복잡하게 꼬일 것 같아서였다.
「이번이 꼭 일곱 번째요.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는군요.」
「징역은 얼마요?」
「강도 7년에서 감형 5년이 되어 반년 후면 다시 나가는데,
모르겠소. 아마 다시 들어오게 될 거요.」
「문 서방, 아예 그런 끔찍한 소릴랑 하지도 마시오.」
문가가 세상을 비관하듯 말했다.
「내야 뭐가 있겠소. 자본이 없으니 도적질밖에 할 수가 있겠소.
도적질에 입맛을 붙이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소.
당신도 여기서는 별 꿈을 다 꾸지만 사회에 나가보시오.
도적질한 전과가 드러나면 누가 받기나 하오?
자연히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오.
개 눈에 똥만 보인다고 도적질하던 놈은 남의 담벼락만 쳐다보게 되는 거요.」
문가는 태연히 말했다. 출감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도적질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나이가 오십 줄에 들어선 문가의 일생도 끝장이 난 셈이었다.
김구는 이런 문가가 여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자는 원래 기분 나쁘다는 차원을 넘어서 두렵기 조차한 것이다.
더구나 여기는 감옥이 아닌가.
간수란 놈들이 수인들의 약점을 캐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판에 문가가 17년 전일을
자랑삼아 떠벌린다면 끝장인 셈이다.
김구가 동정하듯 물었다.
「그같이 여러 번인데 감형은 어찌된 일이오?」
「번번이 초범이죠. 전과를 모두 이야기했다가는 바깥바람도 못 쐬오.」
당시에 컴퓨터나 전과조회 같은 빠른 사무기계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각 관청에 유기적인 협조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행정이 허술하다보니 전과 10범도 초법이라고 우기면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구는 감옥 내에서 가끔 경험을 했었다.
그것은 서대문 감옥에 있을 때였다.
평소 같은 공범이 도적질을 하다가 먼저 들어와 자신은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또 같은 무리가 가벼운 횡령죄로 들어와 서로 만났을 때 중형 자가 경형자인 동료를 고발,
종신형을 받게 하고 자신은 그 공로로 감형이 되어 후한 대우를 받은 배신자들도 여럿 있었다.
따라서 절도범이나 강도 같은 범죄자들에게 속마음을 내비쳐서는 되지 않는다.
문가의 비위를 거슬러 덧 뜨려 놓으면 감옥에 대해 눈치가 훤한 자가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저놈들이 군관을 죽이고 탈옥한 사실까지 드러나면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
만기가 1년 남짓, 온갖 욕을 당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학대를 모두 지내고 세상에 나갈
희망을 갖고 사는 김구에게 문가가 발설한다면 모든 끔이 깨져버리게 된다.
그래서 김구는 문가에게 극진히 대접했다.
우선 집에서 부쳐주는 사식을 틈을 내 문가에게 주어먹게 했다.
감옥식이라도 문가가 곁에 오면 속이 나쁘다는 핑계로 문가에게 주고 자신은 굶었다.
그러다가 마침낸 문가가 출옥을 했다.
그가 출옥하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김구는 속으로 문가 놈이 다시 들어오지 말았으면 하고 기원을 했다.
김구의 하루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아침저녁 쇠사슬로 얽매어 인천항 공사장으로 출역을 나가,
흙 지게를 지고 10여장의 높은 사다리를 밟고 오르내렸다.
김구는 이곳 생활에 비해 서대문 감옥 생활은 천당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중노동은 감당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반나절동안 노동을 하면 어깨가 붓고 등창이 생기고,
발이 부어 진물이 나서 움직이질 못했다.
이 고통을 참지 못해서 김구는 여러 번 사다리위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작정도 했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김구와 쇠사슬을 마주 맨 자는 인천항에서 남의 구두켤레나 훔치고,
담뱃갑을 도적한 좀도둑이었다.
이자는 두어 달의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자까지 죽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몇 달 후에 김구는 상표를 받을 수가 있었다.
김구는 그 상표를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도인권 같은 사람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구는 감옥문 밖 축항공사장(인천항 신축공사장)으로 출입할 때,
왼편 찻집을 보면서 회상에 젖었다.
그 집은 문상객주 박영문의 집이었고, 17연전 부모님께서 그 집에서 신세를 졌다.
박영문은 무척 후덕하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아버님과 동갑이었기 때문에 흉허물 없이 친구로 지냈다.
바로 그 노인이 문 앞에서 죄수들의 들어오고 나감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제가 창수입니다. 17연전 신세를 진 김창수입니다.」
김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쩔까?
죄수의 신분을 그분이 알고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맞은편 집도 물상객주 안호연의 집이었다.
안씨 역시 김구와 그 부모에게 극진하게 대한 노인이다.
그 노인도 그대로 살고 있었다.
김구는 그 분 노인에게 마음으로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세월은 두 분의 얼굴에 잔뜩 주름을 그려 놓았지만 마음의 주름은 그려놓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달려 가 인사를 한다면 친아들처럼 반갑게 대할 것이라 생각하니
김구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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