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동지 규합
김구의 나이 25세, 2월이었다.
작은 아버지 준영은 김구를 순수한 농사꾼으로 만들기 위해 무한 애를 썼다.
새벽녘이면 와서 김구의 단잠을 깨우고, 먹기 싫은 새벽밥을 먹이고 가래질을 시켰다.
며칠 김구는 하는 체하다가 몰래 집을 나섰다.
고능선 선생이나 안태훈 진사를 찾아가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신분이 떳떳하지 못해 단념했다.
김구는 우선 남들이 부르는 이름부터 고치기로 했다.
김두래 (金斗來)가 그의 이명 (異名)이 되었다.
강화에는 김주경(김경득)의 집이 있었다.
김주경의 소식이 묘연해서 꼭 한번 찾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의 남문으로 들어 김주경의 집을 찾았다.
김주경은 없고 그의 친동생 진경(鎭柳)이 김구를 맞았다.
진경의 얼굴을 보니 문득 그의 형의 얼굴이 떠올라 감개가 무량했다.
"나는 김두래란 사람이올시다. 김경득 어른을 찾아왔소."
"어디 사시는 뉘 시 온지?"
진경은 형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불량(?)한 사람들이라 지레 짐작하고,
김구의 아래위를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김구는 상대가 김주경의 친동생이란 점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김주경이란 인물은 김구의 석방을 위해 아무런 사심 없이 전 재산을 쾌척한 사나이였다.
예로부터 한 인물을 위해 전 재산과 생명을 바치는 협객이나 지사가 많이 있었지만
난세에, 더구나 출세와 욕망에 사로잡힌 어지러운 시대에 그런 인물이 있다는
건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연안(延安)에서 살았고, 당신 형님과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소.
수년동안 생사를 몰라 찾아 헤매던 차였소."
진경도 김구의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었는지,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형님이 집을 나간지가 벌써 3,4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소식이 없었죠.
편지 한 장 없어서 생사여부를 몰라 제사도 못 지내는 형편입니다.
집안은 망할 대로 망해서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형님이 사시던 집이 여긴데, 제가 대신 들어와 조카를 건사하고 형수님을 모시고
근근이 지내고 있는 형편 입니다."
김구가 집의 구조를 살피니 ,
비록 초가일망정 규모 있게 지은 집이었다.
그러나 수리를 하지 않아선지 초가가 썩고 군데군데 잡초가 돋아나 볼썽사납게 보였다.
다만 김주경이 앉아 있던 둥근 방석과 그가 사용하던 나무 방망이가 벽 위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형님은 저 방망이로 동지 가운데 신의를 배신한 자를 징벌 했습니다.
감히 아무도 형님을 배신치 않아서 한 번도 쓰신 적은 없었죠."
사랑에 들어가 봤더니 7, 8세 된 아이가 철모르게 뛰어놀고 있었다.
바로 김주경의 아들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김주경의 집을 찾아왔으나 만날 수가 없어 그대로 돌아가자니
너무 섭섭했다.
진경에게 그 동안에 겪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김주경과 김진경이 비록 형제이지만 의견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서며 김구는 진경에게 이런 말로 위로를 했다.
"제가 이 집에 찾아온 것은 과거의 끈끈한 연(緣) 때문입니다.
김주경 어른에게 신세를 많이 져서 신세 갚음이나 할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진경이 물었다.
"신세 갚음이라니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문자를 좀 알기 때문에 변변하지는 못하지만 윤태(김주경의 아들)에게
글자나 가르치면서 형님 소식을 같이 기다리면 어떻겠습니까?"
진경은 김구의 말에 감격했다.
윤태는 서당에 갈 처지도 못 되고 해서 그대로 놀리고 있었다.
글자를 모르면 까막눈이 되고,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 걸 진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배움이 넉넉하지가 못해 조카를 가르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형장(兄丈)께서 그리 해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아이뿐만이 아니라 둘째 형의 자제도 있습니다.
무경 형도 두 아이가 있는데, 글 배울 나이가 지났음에도 촌에서 그대로 놀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짐승 같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좋습니다. 그 아이들도 맡아서 가르치죠."
김구는 내심 반가웠다.
진경은 그 즉시 무경에게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자 무경은 반색을 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니, 이것 역시 복이 아닌가?"
무경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김구에게 인사를 시키고, 자신도 인사를 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
"아닙니다.
제가 은혜를 갚고 있는 중입니다. 하늘이 은혜를 갚으라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사실 김구는 김주경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글공부를 시작했다.
김주경의 아들 윤태에게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무경의 아들에게는 '사략(史略)' 초권을,
또 한 아이에게는 '천자문' 을 가르쳤다.
'동몽선습' 이란 책은 유교의 오륜을 해설한 것이고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가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저술한 책이다.
'친자문'을 알아야 '동몽선습'이나 '사략'을 이해하기 때문에 김구는 '천자문'을 세심히
가르쳤다
김진경의 사랑에는 매일처럼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그러자 진경의 친구와 주경의 친구들은 각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한 달쯤 지나자 진경의 좁은 사랑방에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김구는 모처럼 만에 서당의 훈장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진경이 서울에서 편지 한 장이 왔다면서 시름에 겨워했다.
"'왜 그러시오?"
김구가 묻자 진경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내게 자꾸만 편지를 보내는데 내가 도대체 어찌 하란 말인지‥‥‥ "
"무슨 내용이오?"
그러자 진경이 속을 털어놓았다. 그 내용인즉 이렇다.
유인무(柳仁茂) 혹은 완무(完武)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이 섬 (강화도)에서 30리쯤 되는 촌에 상(喪)을 당한 몸으로
3년 동안 살다 갔다는 것이다.
유완무가 김주경을 청해 며칠동안 함께 있으면서 즐겁게 지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유완무는 양반의 신분이고 김주경은 상놈인데, 신분을 초월해서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그 뒤로는 더욱 친해져 김주경이 유씨 집을 방문해 함께 술을 마시고 세상사
돌아가는 일을 논의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작년의 일이었다.
해주 청년 김창수(김구)란 사람이 왜놈 육군 중위를 죽이고 인천옥에 수감되었는데,
간수 가운데 최덕만이란 자가 김주경에게 찾아와 김창수의 인물 됨됨이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김주경은 김창수에 대한 인간적 매력을 느껴서 이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애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김구는 이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이야기는 탈옥하기 전에 미리 들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진경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바로 그 김창수갸 어찌나 담대한지 , 감리나 경무관을 옴짝 달싹 못하게 만들었답니다."
김진경의 이야기는 김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유완무란 인물은 김주경과 의기투합한 인물이고,
유완무란 사람이 김진경에게 혹시 김창수란 사람이 오거든 알려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춘백 (李春伯)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유완무는 이춘백을 통해 김진경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진경과 유완무는 한 번도 상면 못한 사이라는 것이다.
김진경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완무란 사람의 신분이 과연 무엇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김진경에게 물었다.
"그럼 김창수란 사람이 여기 온 적이 있소?"
김진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형님이 계시다면 혹시 올는지 모르죠.
형님도 안 계신데 뭣 땜에 오겠습니까?
설령 오고 싶어도 형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확인하고 올 텐데,
난데없이 찾아왔다가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 아닙니까?"
김구가 물었다.
"자네 말이 옳네, 그럼 유완무는 혹시 왜놈의 부탁을 받고 정탐하려는 의도는 아닌가?"
"그건 아닐 겁니다.
형님 이야기인즉, 유완무란 사람은 양반이지만 보통 벼슬아치와는 아주 다르다고 했습니다.
의리를 지킬 줄 알고, 갖고 있는 것이 있으면 나눠 줄 줄 아는 호걸이라고 합니다."
김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김진경의 이야기대로라면 유완무는 김주경 못지않은
열혈남아가 된다.
그러나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의리 남아를 자처하고 속뜻은 염탐꾼이 어디하나 둘인가.
"정말일까?"
"틀림없습니다.
저희 형님이 사람 보는 안목이 꽤 높습니다.
아마도 김창수란 젊은이도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 같아 살려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죠."
김구는 김진경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꾸만 김창수와 유완무를 거론하다가는 김진경이 수상하게 생각할까 봐서 였다.
밤이 지나고 그 다음날 아침나절에 한 사내가 두루마기를 걸친 채 김진경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사내는 기골이 장대하고 손마디가 억세 통뼈같이 보였는데,
얼굴에 마마자국이 분화구처럼 얼금얼금 파여 있었다.
하긴 그 시대 장년들치고 마마 병 앓지 않은 사람이 몇 있겠냐만,
이 사내의 마마 흔적은 유달랐다.
사내는 김구가 윤태를 가르치고 있는 사랑방으로 성큼 들어왔다.
"이놈 윤태야. 녀석 꽤 컸구나. 안에 들어가 작은아버지 나오시라고 해라."
윤태는 사내의 말에 냉큼 일어나 진경을 앞세우고 다시 들어 왔다
그 사내는 진경과 간단한 수인사를 한 다음 김주경의 소식을 물었다.
진경에게 반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다소 윗사람 같았다.
"형의 소식은 들었나?"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
"큰일이로군.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유완무의 서신 받아 보았겠지?"
"예 , 어제 받아 보았습니다."
사내는 진경과 뭔가 속 깊은 이야기를 하려는지 ,
김구가 있는 방 앞의 조그만 방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진경이 사내에게 춘백 선생이라는 걸로 미뤄 보아,
사내는 유완무가 자주 편지를 전달하는 이춘백 같아 보였다.
김구는 두 사람의 은근한 말씨에 신경이 쓰여져 아이들에게 가르칠 한자문을 잊어 버렸다.
윗방에서 두 사람은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진경이 이춘백에게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유완무란 분, 형님도 안 계신데 김창수란 사람이 왜 온다고 그렇게 편지를 여러 번 보냅니까?"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만, 우리가 그 동안 1년 넘게 김창수를 찾기 위해 별별 애를 다 썼네."
하며 입을 연 이춘백의 다음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김주경 즉 김진경의 형이 김창수를 감옥에서 빼내 주려다 실패한 후
가산마저 탕진한 것을 안 유완무는, 김주경의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 동지를 규합했다는 것이다.
김주경은 뇌물로 김창수를 빼내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또 마지막으로 법을 동원 했지만
그것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걸 안 유완무와 일행은 김창수를 강제로 탈옥시킬 생각으로
특공대를 조직했다는 것이다.
용감하고 날쌘 청년 10여 명으로 인천항 주요 거점마다 밤중에 석유통을 들고 가
7, 8곳에 방화를 하고, 감옥을 깨서 김창수를 구출하자는 계획이었다.
"유완무가 나더러 먼저 두 사람을 데리고 인천항으로 들어가 공격할 주요 지점을
탐문한 다음, 김창수의 감옥 내 동정을 조사 하라고 해서 가 보았더니
이미 김창수는 탈옥을 했다는 거야."
그 후 유완무와 이춘백은 탈옥한 김창수의 행방을 수소문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구의 고향인 해주 쪽을 생각했는데 김구가 결코 그리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또 부모에게 이야기 했을 리도 만무하고,
유력한 연고선이 김주경의 집이라는 걸 감지했다는 것이다.
김구가 김주경의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어도 편지 한 장쯤 보냈을 것이라고 믿고,
유완무는 이춘백을 몇 번씩 내왕케 했다는 이야기이다.
진경이 유완무의 말을 모두 듣고 이야기했다.
"형님에게는 편지도 없었습니다. 물론 김창수도 그렇구요."
이춘백은 김진경에게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었는지 다른 말로 돌렸다.
"내일 상견 하겠네."
이춘백은 이 말을 끝으로 김진경의 사랑에서 나갔다.
김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유완무란 사람 역시 김주경과 흡사한 사람 같아 보였다.
유완무가 왜놈의 첩자라면 그 역시 김구를 잡기 위한 계책이랄 수도 있겠지만,
김구 생각에 첩자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춘백이 진경에게 하는 간절한 말투에서 그걸 감지할 수 있었다.
김구는 '맹자'의 '군자가기이방(君子可欺以方)'이란 말을 생각해 보았다.
군자는 알고도 속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김구는 이 사람들의 말을 엿듣고, 이들의 생각을 알아 차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설 차례가 됐다고 느꼈다 .
그 이튿날 밤, 진경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으며 물었다.
'어제 그분이 이춘백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분은 언제 또 오시는가?"
"아침 먹고 상경한다니까 조금 있으면 오시겠지요."
"이춘백이가 오면 내게 인사를 시키게. 자네 형님과 친했다니 나도 반갑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떠나기로 했네.
윤태와 종형제들의 공부를 모두 못 시켜 줘서 송구한 마음이 드네."
김구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어찌 보면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자제들이었다.
김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들 의 머리를 깨우쳐 줘서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이었다.
진경은 김구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김구는 이 말에 정색을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내가 그분들이 찾는 김창수일세. 유완무란 사람의 추측이 맞았네."
진경은 더욱 놀랐다.
"형님이 김창수?"
진경은 김구의 면모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나는 유완무란 사람을 의심했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실을 안 이상, 내 신분을 구태여 위장할 필요가 없어졌네."
김진경이 다시 말했다.
"형님이 그러시다면 어찌 만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최덕만(간수)은 작년에 죽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감리서에 주사로 다니는 자도 있고,
순검을 하는 자도 있어서 아무래도 오래 계실 곳은 못됩니다."
김진경은 학동들에게,
"선생님께서 급한 볼일이 계셔서 댁으로 가시니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몇 시간 후 이춘백이 진경을 찾아왔다. 고별 인사차 온 것이다.
"좋은 선비 한 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진경이 이춘백에게 말했다.
"아, 그런가."
이춘백은 김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저 평범한 접장인 줄 알고 수인사를 했다.
진경은 인사가 끝나자 이춘백을 데리고 골방으로 갔다.
그리고 수군수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방에서 나온 이춘백은 김구에게,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유완무의 선견지명은 과연 놀랍소.
나 역시 반드시 형이 이곳에 올 것이라 믿었소."
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손해가 되는 것 같아 김구는 말을 줄였다.
"함께 상경합시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구가 상경한다고 하자,
학동들과 부형들이 모두 몰려와 전별을 했다.
김구는 이들을 성심껏 지도했고,
수업료도 한 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학부형들은 늘 그를 존경했다.
그날 하루 온종일 걸어서 공덕리(孔德里)의 박태병(朴舍秉)진사의 집에 도착했다.
공덕리는 지금의 공덕동을 말한다.
이춘백이 먼저 사랑으로 들어가더니 한 사내를 데리고 나왔다.
첫인상이 선비다워 보이진 않았다. 체격이 단단하고 옹골차 보였다.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망건에 검은 갓(黑笠)을 쓰고 있었다.
생원(生員)이었다.
"내가 유완무요. 잘 오셨소.
남아가 어디에 있든 남아를 아는 사람은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되었소."
그런 다음 이춘백에게 말했다.
"그것 보게. 구하면 얻는 날이 반드시 있다고 하지 않았나."
유완무의 말은 이제야 김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풀이되었다.
김구는 그냥 있기가 멋쩍어서 유완무에 대한 덕담을 늘어놓았다.
"강화의 김진경 집에 있으면서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쓸데없는 사람을 위해 허다한 고생을 하셨다니,
그 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다만 나 같은 졸렬한 인간이 선생의 마음에 드실는지 그것이 몹시 걱정됩니다."
유완무는 빙그레 웃으며 김구의 두 손을 잡았다.
"뱀의 꼬리를 잡고 올라가다 보면 용의 머리를 만질 수가 있지 않겠소."
김구는 그 말에 더욱 푸근한 느낌을 받았다.
지사(志士)가 없던 시대에 유완무는 빼어난 인물 같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그의 품성이 와 닿았다.
김구는 유완무의 얼굴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김주경이나 유완무,
나아가서 안태훈 진사, 고능선 선생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김구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무엇이 잘났다고 생각한 것인가?
김구는 이런 생각 때문에 더욱 큰 부담을 느꼈다.
박태병 진사는 유완무의 동서였다.
세 사람은 저녁을 먹으면서 시국담을 논했다.
김구는 유완무와 함께 성 (城) 이곳저곳을 구경하기도 했고,
요릿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창수 형은 마땅히 갈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소.
다행히 내 아는 친지가 있소, 거기서 후사를 기약합시다."
유완무는 편지 한 통과 노자를 두둑이 주면서,
충청도 연산(連山) 광이 다리 앞에 있는 도림리(桃林里)의 이천경(李天敬)을 찾으라고 했다.
김구는 유완무에게 작별을 고하고 곧 이천경의 집으로 향했다.
사람이란 그 친구를 보면 사람의 값(?)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유완무와 사귀는 사람들이란 대부분 의 (義)를 소중히 여기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이천경 역시 유완무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이천경은 김구가 전하는 편지를 받고,
그 신분을 묻지도 않은 채 환대를 했다.
아마도 유완무가 김구의 소개를 잘한 것 같았다.
매일 닭을 잡고, 하얀 쌀밥에(기장밥) 좋은 반찬으로 대접했다.
김구가 송구할 정도였다.
김구는 이천경과 함께 시를 읊기도 했고, 천하대사를 논하기 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천경은,
"호걸이 한 곳에 오래 묵으면 풍류가 끊어지는 법입니다."
하며 무주읍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이 서방을 찾아가라고 했다.
이때 김구가 만난 사람들은 유완무를 통해 이천경, 이시발, 성태영 등이었다.
감구가 성태영의 집에 묵고 있을 때 유완무가 찾아왔다. 유완무는 김구에게,
"창수라는 이름보다 김구(金龜)가 어떻소?
그리고 호는 연하(蓮下), 자는 연상(蓮上)이라고 해주시오."
하며 새로운 이름과 호, 그리고 자(字)를 지어 주었다.
유완무와 성태영 등은 김구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유완무가 김구를 자신의 친구들 집에 며칠씩 돌려가면서 유숙시킨 것은 그 뜻이 있었다.
새로운 동지가 생겼을 때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1개월씩 지내게 하고,
그 동안 인물 됨됨이를 살펴보아, 사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사업을,
공부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벼슬을 시키게 하는 나름대로의 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유완무는 김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하(김구의 호)는 우리 동지들이 시험한 결과, 학식이 얕고 부족하니
공부를 더해야만 하겠소. 경성 방면의 동지들이 맡아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이루게 만들 것이오.
또 연하의 출신이 상인(常人)계급이니 신분상 양반에게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지금 이천경이 소유하고 있는 가택과 논밭, 그리고 가구 전부를 연하의 부모가
생활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려고 하오."
하며 양반으로서의 처신을 이야기해 주었다.
즉 그 고을의 큰 성씨 몇몇만 잘 사귀어 신임을 얻어 두면
같은 반열(班列)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성에서 유학하다가 가끔씩 부모님을 뵈면 되니까,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오라는 것이다.
김구와 유완무는 바로 서울로 동행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유완무의 제자인 장곳(長率)의 주윤호 진사를 찾아갔다.
김주경의 집에 들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염려되어 주 진사 집만 왔다갔다 했다.
주 진사는 백동전 4천 냥을 유완무에게 보냈는데,
김구는 그것을 온몸에 감고 서울로 왔다 주진사의 집은 해변이라서
11월인데도 감나무에 감이 빨갛게 달려 있었다.
김구는 여기서 후대를 받으며 며칠을 보냈다.
그 돈을 밑천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당시 철로가 부설되지 않아서 육로로 걸어서 갔다.
그날 밤 꿈에 김구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는 아들에게 '황천(黃泉)' 두 자를 쓰라고 했다.
꿈이 몹시 불길했다.
황천이란 저승을 말하는 것이고, 저승이란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닌가.
"유 선생, 이 꿈은 분명 흥몽(兇夢) 같소."
"꿈이란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오,
사나이가 꿈 때문에 마음을 상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오."
유완무는 간단히 꿈 해몽을 해주었다.
즉 김구의 아버지가 몸에 병이 들었는데, 아버지에게 우편으로 한약을 지어 보내고
마음을 놓지 못한 결과 이런 불길한 꿈을 꾸게 됐다는 이야기를 유완무가 해주었다.
김구는 바로 길을 떠나 해주로 갔다.
고 선생 (고능선)은 해주의 비동에 있었는데,
문득 고 선생이 보고 싶어 산중턱의 집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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