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만고강산 유람할 제
김구는 탈옥수의 신분을 잊은 채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음이 울적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죄스러웠고,
또 부모님을 뵙고 싶었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암담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그래서 김구는 어느 절의 말사(末寺)에 들어가 승방의 뜰에서부터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김구는 밤낮없이 술을 마셔 댔다. 폭주였다.
가다가 주막을 만나면 들어가 술타령을 하고,
그러다 보니 오산장(烏山場)에 이르러 갖고 있던 노자가 모두 바닥나고 말았다.
오산장 서쪽 동리에 김삼척 (金三涉)이 란 사람의 집이 있었는데,
주인은 옛날에 한때 삼척의 영장(領將)을 지낸 바 있었다.
영장이란 하급 무관직 벼슬이었다. 김삼척에게는 아들만 여섯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맏아들이 인천항에서 상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사기 횡령죄로 인천옥에서 한 달쯤 고생한 적이 있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 아들은 김구를 몹시 아꼈다.
그 아들이 한 달 후 방면되었을 때 김구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뒷날 김 서방이 나오면 꼭 나를 찾아 주기 바라네.
자네는 이런 감옥에서 어 지낼 사람이 아니네. 용기를 잃지 말고 지내게."
김구는 그 집에 찾아가 아들을 만났다. 예측한 대로 그를 반겼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여기서 맘껏 놀다가 떠나게."
하면서 형제들을 불러 흥겹게 놀았다.
그리고 떠날 때는 두둑한 노자까지 얹어 주었다.
"자, 또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
"어디로 가나?"
"유람이나 하겠습니다. "
"부디 몸조심하게 ."
김구는 공주를 지나, 은진(恩津) 강경포(江景浦)에 있는
또 다른 동지 공종열의 집으로 갔다.
김구가 아는 사람이라곤 감옥의 동기생이나 감옥에서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뿐이었다.
공종열 역시 감옥에서 만난 친구였다.
그때 공종열은 부친이 작고하여 상중(喪中)인 몸이었다.
공종열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 또래로서는 제법 학문을 익혀서 사람이 듬직해 보였다.
일찍이 대원군이 머물던 운현궁의 청지기를 지냈고,
조병식(趙秉式)의 하인 책임자(마름)로 강경포에서 물상객주를 경영했다.
그러다가 금전관계로 살인죄에 걸려들어 여러 달 인천옥에 갇혀 있게 됐다.
인천옥에 있을 때 김구와 친해졌다.
공종열은 다른 파렴치범이나 잡범들과는 달리 언행이 반듯해 호감이 가던 친구였다.
강경포에 들어가 공종열의 집에 당도했다.
생각했던 대로 그의 집은 매우 크고 넓어 다른 집과 금방 선별되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요? 김 서방이 아니오?"
공종열은 금방 김구를 알아보았다.
"이렇게 됐소이다. "
"자세한 것은 들어가 이야기하시오."
공종열이 김구의 손을 잡아끌었다. 공종열의 집 안채로 통하는 문은 여러 개였다.
일곱 번째의 문을 거쳐 방으로 들어갔더니 마침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김구를 알아보았다.
아들이 인천옥에 수감 중 가끔씩 면회 와서 김구와는 안면이 익었던 것이다.
"김 서방은 신분이 그러하니 우선 내 부인의 방에서 지내게."
공종열은 김구의 신분이 탄로 날까봐 염려했다.
그곳은 포구라서 각처의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그러다보면 김구의 전신을 알게 돼 신분이 탄로 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김구는 공종열의 호의가 무척 고마웠다.
사람이란 때로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질 수 있는 법, 문제는 그 인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덕근 같은 자는 신분이 천하고, 생각도 천해서 자신의 이득이 없으면
금방 배신할 사람이고, 공종열이나 그의 사람들은 의리를 소중하게 여겼다
며칠을 이렇게 편하게 지내던 어느 날 밤, 달빛이 뜰에 교교 하게 비쳤다.
심사가 흔들렸다.
이때 공종열의 어머니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심상치 않다. '
김구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창문 유리를 통해 뜰을 내다보았다.
이때 갑자기 칼 빛이 섬광을 일으켰다.
혹시나 공종열이 나를 해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종열은 칼을 들고, 그 어머니는 창을 끌고 모자가 군사를 동원했다.
김구는 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의복을 단정히 한 채 정좌를 했다.
잠시 후 공종열이 어떤 청년의 상투를 손으 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청년을 천장에 거꾸로 매달았다.
공종열은 열 살미만의 아이들을 불러 모으더니,
방망이 한 개씩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호령을 했다.
"이놈은 너희들의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때려 주어라."
그러자 영문을 모르던 그 아이들이 공종열의 엄포에 한 대씩 청년의 볼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이쿠, 어이쿠, 잘못했소."
청년은 연신 엄살을 했다.
공종열은 한참 후에 김구의 방으로 들어왔다.
"김 서방은 내 행동에 상당히 놀랐을 것이오.
그러나 김 서방과 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겠소.
조금 창피한 이야기를 하겠소. 내 누님 한 분이 그 동안 과부로 살면서 수절을 했소.
그런데 그 더러운 욕정에 사무쳐 상노(床奴) 한 놈과 통정을 했소. 이것으로 끝났다면
별것 아닌데 상노 놈의 씨앗을 받게 되었소."
당시만 해도 인공 임신 중절이란 생각지도 못했다.
임신을 하면 출산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누님이 얼마 전에 자살을 하고 죽고 말았소.
그놈을 불러 내가 이야기했소.
네 자식을 데리고 멀리 가서 기르고, 우리 집에는 다시는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했소."
공종열은 몹시 분한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런데 이놈이 천주학을 하여서 신부의 백을 믿고,
내 집 곁에 유모까지 두어 아이를 기르는 것 아니겠소.
이런 수치스런 일이 어디 있겠소."
"참 안됐소. 내가 형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하시오."
김구는 그의 청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들어 주고 싶었다.
"김 서방이 나가서 그놈에게 호령해 주시오."
김구는 그러마. 하고 약속했다.
그래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상노를 풀어 주고 무릎을 꿇어 앉혔다.
그리고 그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 꾸짖었다.
"이놈아, 아무리 밥상을 나르는 상놈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탈을 썼다면
기본적인 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집에서 핏덩이인 너를 받아줘 길러 준 은혜만을 생각해도 백골난망인데,
어찌 이 집의 누님을 넘보고, 일을 저질러 임신까지 시켰느냐.
그리고 출산한 그 상스런 씨앗을 유모를 데려다 보살피려 하느냐 이 못된 놈 같으니."
김구의 말에 상노는 벌벌 떨었다.
"그러니까 너는 이 집에서 멀리 떠나 네 씨앗과 함께 가서 살아라.
다시는 이 집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거라."
"나리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공종열이 김구의 곁에서 거들었다.
"너는 오늘밤 안으로 네 자식을 내다버리고 이 지방을 떠나겠느냐?"
"예 예."
김구는 상노가 한편 딱하고 불쌍하다고 여겼다.
상노란 자는 먼저 주인집 딸을 유혹하지 못하는 법이다.
아마도 공종열의 누이가 상노를 유혹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육욕이 발동돼 일을 저질렀고,
상노의 씨가 누이의 몸에 들어가 잉태를 하게 된 것이리라
김구가 공종열에게 물었다.
"상노가 자식을 데리고 도망할 곳이라도 있소?"
"개울을 건너면 임피 란 곳에 제 형이 살고 있소.
그리로 가면 자식도 기를 수 있고, 그런 대로 여생을 의탁할 수 있을게요."
김구가 물었다.
"아까 두 사내아이는 누구요?"
"내 조카들이오."
아마 공종열의 누이의 아들인 것 같았다.
김구는 이곳도 더 이상 있을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종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날 것이오. 공형의 호의는 고맙지만 나는 탈옥수요.
혹시나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형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오."
공종열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김 서방은 갈 곳을 정했소?"
"그런 건 없소."
공종열은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내 매부가 한 사람 있소. 진씨 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무관으로 있소.
이 사람이 전라도 무주읍에 살고 있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오.
그 읍이 한적하고 깊숙해서 그리로 가서 일단 세월을 보내시오."
하면서 매부에게 보일 소개 편지 한 장을 써주었다.
김구는 그 소개 편지를 품속에 간직하고 다음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했다. 갈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
작정 가다 보면 또 갈 데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시간만 갔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해서는 안 되는데‥‥
김구는 문득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순간 아득하다 싶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관의 감시를 피해 이렇게 사는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강경포를 벗어나기 전에, 웬 사람들이 거리에서 삼삼 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글쎄, 지난 새벽에 강가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지.
그런데 그 소리가 지금 들리지 않네. 아마 죽은 것 같아."
김구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을 쳤다.
'아아, 나는 한 생명을 죽였구나.'
상노란 자가 김구의 으름장에 겁을 먹어,
어린아이를 안고와 강변에 버리고 도주한 것이 분명 했다.
'참으로 불쌍한 놈이 로구나.'
아무리 법도가 엄하기로서니 제 자식을 갖다 버리다니, 상놈이란 할 수 없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김구의 심기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아무런 죄도 없이, 다만 그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목숨을 잃어 버린 어린아이가 여간 불쌍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 일로 인해 평생 동안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무주읍의 진 선전의 집에 갔으나, 그리 오래 머물 곳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내친걸음에 삼남 지방으로 내려가 남원의 김형진(金亨鎭)을 만나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의 남문 안에 있는 한약국 주인 최군선(崔君善)이 김형진의 매형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먼저 남원의 이동(耳洞)으로가 김형진이 사는 곳을 물었다.
"김형진요? 동학에 입도한 그 사람 말인가요?"
촌로 한사람이 김형진의 이야기를 하자 김구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수상쩍다는 얼굴이었다.
김형진은 고능선 선생 집으로 참빗을 팔러 왔을 때 알게 된 사람이었다.
인물은 그리 출중하지 못했으나 그런대로 시국에 대한 일가견이 있어서
중국을 갈 때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헤어져 그 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터였다.
노인의 이야기는 이렇다.
"김형진이란 사람이 이 동네에서 대대로 살기는 했소.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동학에 입도하여 동학이 망하자
식솔을 모두 이끌고 도망간 후에는 소식이 없소.
그런데 선생은 김형진과는 어떤 관계요?"
김형진은 김구와 함께 청나라까지 동행하여 위험을 같이 넘긴 사람이다.
김형진은 김구의 내력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김구는 섭섭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김형진이 동학에 입도한 것도 김구와 헤어진 1897년이기 때문에
김구에게 속인 것은 없었다.
김구는 전주 남문으로 가서 최군선을 찾았다. 최군선은 제법 큰 한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찌 오셨소?"
"김형진이란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
"김형진이오? 김형진이라?"
최군선은 한참 동안 천장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말을 이었다.
“김형진은 내 처남이오. 그런데 내게 무거운 짐만 지우고 먼저 떠났소."
"먼저 떠나다니요?"
황천으로 갔소."
혹시나 환대를 하지 않을까 하고 찾아간 최군선으로부터 박대를 당한 김구는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김형진이 매부인 최군선에게 생전에 좋은 일을 했다면 김구에 대한 대접이
그리 소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최군선에게 신통치 못한 대접을 받고 집을 나온 김구는 장터로 나갔다.
그날이 전주 장날이었다.
김구는 이리저리 다니다가 어떤 포목점에 이르러서,
포목을 사려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용모가 김형진 같았다.
그러나 나이로 보아서 김형진은 아니었다.
그래서 김구는 그 청년에게 다가가,
"혹시 김 서방이 아니시오?"
하고 물었다
청년은 머뭇머뭇 거리다가 말했다.
"성은 맞소만‥‥‥‥ "
"김형진이란 사람이 맞소?"
"그분은 저의 형님이십니다. "
그랬다. 김구의 생각은 적중했다. 청년은 김형진의 친동생이었다.
"'내게 물은 선생은 뉘신지요?"
"나 김창수란 사람이오. 혹시 형님의 생전에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요?"
그러자 그 청년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있다가 뚝뚝 흘리면서 김구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그렇습니다. 형님 생전에 선생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이 세상 떠나실 때도 창수를 생전에 다시 못 보고 죽는 것이 한이 맺힌다고 하셨어요."
하면서 김구의 소매를 끌었다.
"제 집으로 가시지요."
김형진의 동생은 김구를 데리고 어떤 조그만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어머니와 형수께 김구가 찾아온 이유를 들려주자 곡성이 진동했다.
김형진이 세상을 떠난 지 19일째 되는 날이라고 했다.
김구는 김형진의 영전에 삼배를 했다. 육십 넘은 노모는 김구를 보자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고 삼십 청상과부는 남편 잃은 생각에 울었다
김형진의 아들 맹문(孟文)은 나이가 7,8세 밖에 되지 않아 철이 없어서
아버지가 세상 떠난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장터에서 만난사람이 김형진의 둘째 아우였다.
그는 시골에서 겨우 농사를 지어 연명하고 있었다.
김구는 그 집에서 며칠 묵었다 가세가 넉넉지 못해서 더 묵을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그는 무안을 거쳐 목포로 갔다. 목포에는 함께 탈옥한 양봉구가 살고 있었다. 양봉구를 만나서 인천옥 소식을 물었다.
"조덕근은 서울에서 잡혀 인천감옥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그자는 잡힐 때 눈 한 개가 빠졌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또 있다. 아편 중독자였던 간수는 옥중에서 죽었고, 김구에 대한 소문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여긴 위험합니다. 항구라서 항구끼리 연락이 금방 닿아요. 빨리 몸을 피하시오."
하며 양봉구는 김구에게 약간의 여비를 쥐어 주었다.
목포를 지나 해남 관두, 강진, 고금도, 완도 등지를 구경했다.
그리고 장흥, 보성 , 송곡면으로, 화순 동복으로, 순창 대명으로,
하동의 쌍계사, 칠불아자방(칠불암)으로 돌아다녔다.
김구가 돌아다닌 곳은 전남 북의 소도시였다.
다시 그가 계룡산의 갑사(甲寺)에 도착했을 때는 9월이었다.
절 부근에 감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붉은 감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여간 정겹지가 않았다.
절에서 절밥을 돈을 주고 사먹으며 앉아 있자니,
어떤 풍류객이 한사람 인사를 청했다.
"지금 동학사에서 왔습니다."
김구가 인사를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공주 사는 이 서방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청해서 자기소개를 했다.
초면이라도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여간 비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노형은 어떤 연유로 오셨소?"
묻기에 김가 답했다.
"나는 계성에서 성장하여 사업을 벌이다가 실패해서 강산유람이나 하자고 해서 들렀습다."
그 유생은 김구의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심정이오. 이왕 유람을 떠났으니
여기서 40여리를 더 가면 마곡사(流谷寺)란 절이 있소이다.
그 절 경치가 또한 그럴듯하니 거기 구경이나 갑시다."
김구는 마곡사란 절 이야기를 듣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본 '동국명현록(東國明賢錄)'이란 책이었다.
그 책은 우리나라 역대 현자들의 일대기를 그려 놓은 책이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서화담(서경덕)이 동지하례에 참례하여 자신도 모르게 웃자,
임금이 연유를 물었다.
"경은 무슨 일로 그리 웃소?"
"오늘밤 마곡사 상좌승이 밤중에 죽을 끓이려고 불을 때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죽 솥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중 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죽을 퍼먹으면서 웃었습니다."
임금은 서경덕의 말을 듣고 파발마를 놓아 3백여 리를 달려 마곡사로 가서 조사했더니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다.
김구의 아버지는 가끔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이가 차 김구도 이 책을 본 기억이 있었다.
바로 이곳이 마곡사였다.
이 서방과 함께 마곡사로 향했다.
김구의 유람 생활은 마곡사까지 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 사이에 겪은 일들은 다음 장에서 열거하기로 한다.
'소설방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평양에서 (0) | 2012.12.26 |
---|---|
16. 세상사 덧없어 삭발중이 되어 (0) | 2012.12.26 |
14. 김구의 몸값 (0) | 2012.12.26 |
13. 잡범들 틈에 (0) | 2012.12.26 |
12. 탁 노인 이야기 (0) | 2012.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