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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오늘의 쉼터 2011. 5. 20. 20:55

 

 

 

토끼전

 

 

이러한 차례로 모다 모였는데,

만세를 불러 하례를 마친 후, 왕이 하교(下敎)하여

토끼를 바삐 잡아들이라 하니,

금부 도사(禁府都事)가 나졸을 거느려 객관(客館)에 이르니,

이 때 토끼, 홀로 앉아 자라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니,

불의에 금부 도사가 이르러 어명을 정하고,

나졸의 좌우로 달아들어 결박하여 풍우같이 몰아다가 영덕전(靈德殿) 섬돌 아래 꿇리거늘,

토끼,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전상을 우러러보니,

용왕이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몸에 강사포(絳紗袍)를 입고,

손에 백옥홀(白玉笏)을 쥐었으며, 만조 백관이 좌우에 옹위(擁衛)하였으니,

그 거동이 엄숙하고 위의가 놀랍더라.

용왕이 선전관 전어(錢魚)로 하여금 토끼에게 하교하여 가로되,
“과인은 수국의 천승(千乘) 임금이요, 너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라.

 과인이 우연히 병을 얻어 신음한 지 오랜지라.

 네 간이 약이 된다 함을 듣고 특별히 별주부를 보내어 너를 다려 왔노니,

너는 죽음을 한치 마라.

너 죽은 후에 너를 비단으로 몸을 싸고 백옥과 호박(琥珀)으로 관곽을 만들어 명당 대지에 장사할 것이요,

만일 과인의 병이 하린즉 마땅히 사당을 세워 네 공(功)을 표하리니,

네 산중에 있다가 호표(虎豹)의 밥이 되거나 사냥꾼에게 잡히어 죽느니보다 어찌 영화롭지 아니하리요?

과인이 결단코 거짓말을 아니 하리니, 너는 죽은 혼이라도 조금도 과인을 원망치 말지어다.”

하고 말을 마치자, 좌우를 호령하여 빨리 토끼의 배를 가르고 간을 가져오라 하니,

이 때에 뜰 아래 섰던 군사들이 일시에 달려들려 하니,

토끼, 무단히 허욕을 내어 자라를 쫓아왔다가 수국 원혼이 되게 하니,

이는 모다 자취(自取)한 화라,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한하리요?

세상에 턱없이 명리(名利)를 탐하는 자는 가히 이것을 보아 경계할지로다.

이 때에 토끼, 이 말을 들으매 청천벽력이 머리를 깨치는 듯 정신이 아득하여 생각하되,

‘내 부질없이 영화 부귀를 탐내어 고향을 버리고 오매 어찌 이외의 변이 없을쏘냐?

이제 날개가 있어도 능히 위로 날지 못할 것이요,

또 축지(縮地)하는 술법이 있을지라도 능히 이 때를 벗어나지 못하리니 어찌하리요?’

 또 생각하되, ‘옛말에 이르기를,

죽을 때에 빠진 후에 산다 하였으니,

어찌 죽기만 생각하고 살아날 방책을 헤아리지 아니하리요?’ 하더니,

문득 한 꾀를 생각하여,

이에 얼굴빛을 조금도 변치 아니하고 머리를 들어 전상(殿上)을 우러러보며 가로되,

“소토(小兎), 비록 죽을지라도 한 말씀 아뢰리이다.

대왕은 천승의 임금이시요, 소토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라.

만일, 소토의 간으로 대왕의 환후(患候) 십분 하리실진대,

소토, 어찌 감히 사양하오며,

또 소토 죽은 후에 후장(厚葬)하오며 심지어 사당까지 세워 주리라 하옵시니,

이 은혜는 하늘과 같이 크신지라,

소토 죽어도 한이 없사오나, 다만 애달픈 바는,

소토는 바로 짐승이오나 심상(尋常)한 짐승과는 다르와, 본대 방성(房星)  정기를 타고

세상에 내려와 날마다 아침이면 옥 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주야로 기화요초(琪花瑤草)를 뜯어 먹으매

그 간이 진실로 영약이 되는지라.

이러하므로, 세상 사람이 모다 알고 매양 소토를 만난즉 간을 달라 하와 보챔이 심하옵기로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와, 염통과 함께 꺼내어 청산녹수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사와

고봉준령 깊은 곳에 감추어 두옵고 다니옵다가,

우연히 자라를 만나 왔사오니,

만일 대왕의 환후 이러하온 줄 알았던들 어찌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리잇고?”

하며 또 자라를 꾸짖어 가로되,
“네 임금을 위하는 정성이 있을진대,

어이 이러한 사정을 일언반사(一言半辭)도 날 보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뇨?”

하거늘, 용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꾸짖어 가로되,
“네 진실로 간사한 놈이로다.

천지간에 온갖 짐승이 어이 간을 출입(出入)할 이치가 있으리요?

네, 얕은 꾀로 과인을 속여살기를 도모하나, 과인이 어이 근리(近理)치 아닌 말에 속으리요? 

네, 과인을 기만한 죄 더욱 큰지라, 빨리 너의 간을 내어 일변 과인의 병을 고치며,

일변 과인을 속이는 죄를 다스리리라.”

토끼, 이 말을 듣고 또한 어이없고 정신이 산란하여 간장이 없고 가슴이 막히어 심중히 생각하되,

속절없이 죽으리로다 하다가, 다시 웃으며 가로되,

“대왕은 소토의 말씀을 다시 자세히 들으시고 굽어 살피옵소서.

이제 만일, 소토의 배를 갈라 간이 없사오면, 대왕의 환후도 고치지 못하옵고

소토만 부질없이 죽을 따름이니, 다시 누구에게 간을 구하오려 하시나이까?

그제는 후회 막급하실 터이오니, 바라건대 대왕은 세 번 생각 하옵소서.”

용왕이 토끼의 말을 듣고, 또 기색이 태연함을 보고 심중에 심(甚)히 의아하여 가로되,
“네 말과 같을진대, 무슨 간을 출입(出入)하는 표적이 있는가?”
토끼, 이 말을 듣고 크게 기꺼 생각하되,

이제는 내 살아날 도리 쾌(快)히 있도다 하고 여쭈오되,

“세상의 날짐승, 길짐승 가운데 소토는 홀로 특별히 간을 출입하는 곳이 따로 있사옵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더욱 노하여 꾸짖어 가로되,
“네 말이 더욱 간사한 말이로다.

 날짐승, 길짐승을 물론하고 어이 간을 출입하는 곳이 따로 있으리요?”

토끼, 다시 여쭈오되,
“소토의 간을 출입하는 곳의 내력을 말씀하오리니,

대저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려 하늘이 되옵고,

땅이 축시( 丑時)에 열려 땅이 되옵고,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겨 사람이 나옵고,

만물이 묘시(卯時)에 나와 짐승이 되었사오니,

"묘(卯)"라 하는 글자는 곧 소토의 별명이니,

날짐승, 길짐승의 근본을 궁구하오면 소토는 곧 금수의 으뜸이 되나니,

생초를 밟지 아니하는 저 기린도 소토의 아래옵고,

주리되 좁쌀을 먹지 아니하는 저 봉황도 소토만 못하옵기로,

특별히 품부(稟賦)하와 일월성신 삼광(三光)을 받아 간을 출입하는 곳이 따로 있사오니,

대왕이 만일 이 말씀을 믿으시지 아니하실진대 말으시려니와,

그러지 아니 하오시면 소토의 몸에서 적간(摘奸)하옵소서."

용왕이 이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 나졸을 명하여 자세히 보라 하니,

과연 간을 출입하는 곳이 따로 있는지라. 용왕이 아직 의혹하여 가로되,

“네 말이, 네 간을 능히 내는 곳이 있다 하니, 도로 넣을 제도 그리로 넣는가?”
토끼, 속으로 헤오대 '이제는 내 계교가 거의 맞아 간다.'하고 여쭈오되,
“소토는 다른 짐승과 특별히 같지 아니하온 일이 많사오니,

만일 잉태하오려면 보름달을 바라보아 수태하오며,

새끼를 낳을 때에는 입으로 낳으옵나니,

옛글을 보아도 가히 알 것이오.

이러하므로, 간을 넣을 때에도 입으로 넣나이다.”

용왕이 더욱 의심하여 가로되,
“네 이미 간을 출입한다 하니,

네, 혹 잊음이 있어 네 뱃속에 간이 있는지 깨닫지 못할 듯하니,

급히 내어 나의 병을 고침이 어떠하뇨?”

토끼 다시 여쭈오되,
“소토, 비록 간을 능히 출입하오나 또한 정한 때 있사오니,

달마다 초일일부터 십오일까지는 뱃속에 넣어 일월 정기를 호흡하여

음양지기(陰陽之氣)를 온전히 받사옵고,

십육일부터 삼십일까지는 줄기 아울러 꺼내어 옥계청류(玉溪淸流)에 정히 씻어

창송녹죽 우거진 정(淨)한 바위 틈에 아무도 알지 못하게 감추어 두는고로,

세상 사람이 영약이라 하는지라.

금일은 하육월(夏六月) 초순이니,

자라를 만날 때에는 곧 오월 하순이라.

만일 자라, 대왕의 병세 이러하심을 말하였던들 수일 지체하여 가져왔을지니,

이는 다 자라의 무상함이로소이다.”

대저 용왕은 본성이 충후(忠厚)한지라,

토끼의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으며, 속으로 헤아리되,

‘만일 제 말 같을진대, 공연히 배만 갈라 간이 없으면 저만 죽을 따름이요,

다시 누구다려 물으리요?

차라리 저를 달래어 간을 가져오게 함이 옳도다.’하고,

이에 좌우를 명하여 토끼의 맨 것을 끄르고 맞으니

전상(殿上)에 올라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거늘, 용왕이 가로되,

“토 처사는 나의 아까 실례함을 허물치 말라.”
하고, 이에 백옥배(白玉杯)에 천일주(千日酒)를 가득 부어 권하며 놀람을 진정하라 재삼 위로하니,

토끼, 공손히 받들어 마신 후 황송함을 말씀하더니,

홀연, 한 신하 나아가 아뢰어 가로되,

“신이 듣사오니 토끼는 본대 간사한 종류요,

또 옛말에 일렀으되 '군자(君子)는 가기이방(可欺以方)이라.'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전하는 그 말을 곧이듣지 말으시고 바삐 그 간을 내어 옥체를 보중하옵소서.”

모다 보니, 이는 대사간 자가사리라. 왕이 기꺼하지 않아 가로되,
“토 처사는 산중 은사라, 어찌 거짓말로 과인을 속이리요? 경은 물러 있으라.”
하니, 자가사리, 분함을 못 이기나 하릴없이 물러나니,

 용왕이 이에 크게 잔치를 베풀고 토끼를 대접할새,

금광초, 불로초는 옥반에 버러 있고, 옥액경장은 잔마다 가득하고,

전악(典樂)을 아뢰며 미녀 수십 인이 쌍쌍이 춤추며 능파사(陵波詞)를 노래하니,

이 때 토끼, 술에 반취하여 속으로 헤오대,

‘내 간을 줄지라도 죽지 아니할 것 같으면 이 곳에서 늙으리라.’ 하더라.

용왕이 이에 토끼다려 가로되,

“과인이 수국에 처하고 그대는 산중에 있어 수륙이 격원하더니,

오늘 상봉함은 이 또한 천재(千載)에 기이한 인연이니, 그

대는 과인을 위하여 간을 가져오면 과인이 어찌 그대의 두터운 은혜(恩惠)를 저바리리요?

비단, 후히 갚을 뿐 아니라 마땅히 부귀를 같이 누릴지니, 그대는 깊이 생각할지어다.”

토끼, 웃음을 참지 못하나,

조금도 사색을 드러내지 아니코 흔연히 대답하여 가로되,

“대왕은 너무 염려치 마옵소서.

소토, 외람히 대왕의 너그러우신 덕을 입사와 잔명을 살았으니,

그 은혜를 어찌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갚사옴을 생각지 아니하오며,

하물며 소토는 간이 없을지라도 사생(死生)에는 관계치 아니하오니 어찌 이것을 아끼리잇고?”

하니, 용왕이 크게 기꺼하더라.

잔치를 파한 후,

용왕이 근시(近侍)를 명하여 토끼를 인도하여 별전(別殿)에 가서 쉬게 하니,

토끼, 근시를 따라 들어가니,

광채 영롱한 운모 병풍(雲母屛風)과 진주발을 사면에 드리웠는데,

석반(夕飯)을 올리거늘 살펴보니,

진수성찬이 모두 인간에서는 보지 못한 바라.

그러나 토끼는 마치 바늘 방석에 앉은 듯하매 생각하되,

 ‘내 비록 일시 속임수로 용왕을 달래었으나,

이 땅에 가히 오래 머무르지 못하리라.’ 하고,

밤을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다시 용왕을 보아 가로되,

“대왕의 병세 미령(靡寧)하오신 지 이미 오랜지라.

소토, 빨리 산중에 가 간을 가져오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소토의 작은 정성을 살피옵소서.”

용왕이 크게 기꺼 즉시 자라를 불러 이르되,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고 다시 토처사와 함께 인간에 나가라.”
하니, 자라 머리를 조아려 명을 받드는지라, 용왕이 다시 토끼를 대하여 당부하여 가로되,
“그대는 속히 돌아오라.”
하고 진주 이백 개를 주어 가로되,
“이것이 비록 사소하나 우선 과인의 정을 표하노라.”
하니, 토끼, 공손히 받은 후 용왕께 하직(下直)하고 궐문 밖에 나오매,

 백관이 다 나와 전별하며 수이 간을 가져 돌아옴을 부탁하되,

홀로 자가사리 오지 아니하였더라.

이 때, 토끼, 자라등에 다시 올라 만경창파를 건너 바닷가에 이르러 자라, 토끼를 내려놓으니,

 토끼, 기꺼움을 못 이겨 스스로 생각하되,

‘이는 진실로 그물을 벗어난 새요,

함정에서 뛰어나온 범이로다.

 만일 나의 지혜 아니면 어찌 고향 산천을 다시 보리요?’

하며 사면으로 뛰노는지라.

자라, 토끼의 모양을 보고 가로되,
“우리의 길이 총망(悤忙)하니, 그대는 속히 돌아감을 생각하라.”
토끼, 크게 웃어 가로되,
“이 미련한 자라야, 대저 오장육부에 붙은 간을 어이 출납하리요?

이는 잠시 내 기특한 꾀로 너의 수국 군심(群心)을 속임이라.

또 너의 용왕의 병이 날과 무슨 관계 있느뇨?

진소위(眞所謂)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이로다.

또, 네, 무단히 산중에 한가로이 지내는 나를 유인하여 네 공(功)을 나타내려 하니,

내, 수국에 들어가 놀라던 일을 생각하면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한지라.

너를 곧 없이하여 분을 풀 것이로되,

네, 나를 업고 만리창파에 왕래하던 수고를 생각지 아니치 못하여 잔명을 살려 이르되,

사생이 다 명이 있으니, 다시는 부질없이 망령된 생각을 내지 말라 하여라.”

하고 또 크게 웃어 가로되,
“너의 일국 군신(君臣)이 모다 나의 묘계(妙計)에 속으니, 가히 허무타 하리로다.”
하고 인하여 깊은 송림(松林) 사이로 들어가 자취가 사라지는지라.
자라, 토끼의 가는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내 충성이 부족하여 토끼에게 속은 바 되었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요?”
또, 탄식하여 가로되,
“우리 수국 신민이 복이 없어,

내, 토끼의 간을 얻지 못하고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우리 임금과 만조 동료를 대하리요?

차라리 이 땅에서 죽음만 같지 못하도다.”

하고 머리를 들어 바윗돌을 향하여 부딪치려 하더니,

홀연, 누가 크게 불러 가로되,

“별주부는 노부(老夫)의 말을 들으라.”
하거늘, 자라, 놀라 머리를 돌이켜보니,

한 도인이 머리에 절각건(折角巾)을 쓰고

몸에 자하의(紫霞衣)를 입고 표연히 자라 앞에 와 웃어 가로되,

“네 정성이 지극하기로 내 천명을 받자와 한 개의 선단(仙丹)을 주노니,

 너는 빨리 돌아가 용왕의 병을 고치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더니,

소매 안에서 약을 내어 주거늘, 자라,

크게 기꺼 두 번 절하고 받아 보니,

크기 산사(山査)만하고 광채 휘황하며 향취 진동하는지라.

다시 절하고 사례하여 가로되,

“선생의 큰 은혜는 우리 일국 군신(君臣)이 감격하려니와,

감히 묻삽나니 선생의 존성 대명(尊姓大名)을 알고자 하나이다.”

도인이 가로되,
“나는 패국(沛國) 사람 화타(華陀)로다.”
하고 표연히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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