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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6

오늘의 쉼터 2011. 5. 2. 00:09

사씨남정기 6 


이처럼 사씨는 천신만고 뱃길을 얻어서 장사에 거의 다 왔다가

풍랑에 밀려서 이곳에 와서 배에서도 내렸으므로 앞길이 다시 막혔으니

창자가 촌절할 듯 아무리 생각하여도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탄식하였다.

유모가 울면서 호소하였다.


"사고무친한 이 땅에 와서 또다시 앞길이 막혔으므로

부인은 장차 어떻게 귀하신 몸을 보전하려 하십니까?"
"인생이 세상에 나면 수요장단(壽夭長短)과

화복길흉이 천정(天定)한 운수임에 일시의 액운을 굳이 근심할 바 아니지만

이제 내 신세를 생각하니 자취기화(自取其禍)라 할 수밖에 없다.

옛말에도 하늘이 지은 화는 면할 수 있어도 스스로 지은 화에선 살아나지 못한다 하였는데

내가 지금 중도에 이르러서 이같이 낭패하니 다시 어디로 가며 누구를 의지하랴."
하면서 자탄하였다.

이때 유모가 도리어 사씨 부인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영웅호걸과 열녀절부들도 이런 곤액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부인에게 지금 일지의 액화가 있으나 그 억울함은 명천(明天)이 조람하시고

신명이 재방하여 청풍이 흑운을 쓸어 버리면 일월을 다시 보실 것이니

부인은 너무 낙심 마십시오.

어찌 일시의 액운에 지쳐서 천금 같은 몸을 돌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러나 사씨 부인은 여전히 힘을 잃고 탄식만 하였다.

 

"옛날 사람들도 액운을 겪은 이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자연 구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몸을 보존하였다.

그러나 지금 내 처지는 그렇지 못하여 연연약질이

위로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아래로 땅에 용납되지 못하니 어찌하랴.

구차하게 된 인생을 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한번 죽어서 옛날 사람처럼 꽃다운 이름을 나타내자는 것이 하늘의 뜻이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강물이 맑아서 깊이가 천만장이니 마땅히 나의 한낱 뜻과 뼈를 감출 것이다."
하고 강물을 향하여 뛰어들려고 하였다.

유모가 놀라서 사씨의 몸을 부여잡고 울면서 애원하였다.
"저희들이 천신만고하여 부인을 모시고 이곳에 이르렀으매,

부인이 만일 죽으시려면 저희들도 함께 죽어서 지하에서도 모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안 된다. 나는 죄인이니까 죽어도 마땅하지만

너희들은 무슨 죄로 나를 따라 죽는다는 말이냐.

도중에서 노자 다 떨어졌으니 너희들은 인가에 의탁하여 일을 해주고

몸조심을 하다가 북방 사람을 만나거든

내가 이곳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고향으로 전해라."
하고 신신당부한 뒤에 거기 선 나무의 껍질을 깎고

큰 글씨로 모년 모월 모일 사씨 정옥은 시가에서 쫓긴 몸 되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진퇴무로하여 몸을 이 강물에 던졌다고 썼다.

이 유서를 쓴 사씨는 붓을 놓고 통곡하였다.

유모와 시녀가 좌우에서 사씨를 붙잡고 슬피 울매

일월이 빛을 잃고 초목이 시들어서 슬픈 듯하였다.

어느덧 날이 어둡고 달이 떠서 달빛이 강 위에 처량하게 비치매

사면에서 물귀신이 울어대고 황릉묘에서 두견새가 처량하고, 소상강 대밭에서도

귀신 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서 악기(惡氣)가 사람을 침노하였다.


"밤기운이 몹시 차가우니 저 악양루에 올라서서

밤을 지내고 내일 다시 앞일을 선처하시기 바랍니다."
유모가 부인에게 권하자 부인이 유모의 말에 따라서 악양루로 올라갔다.

조각으로 된 들보가 하늘에 높이 솟아서 소상강 물에 임하였는데

오색 구름이 구의산에서 피어 와서 악양루를 둘러싸고 달빛이 난간에 은은히 비치매

시인 묵객이 읊어 쓴 글귀의 현판이 벽에 무수히 걸려 있었다.

사씨가 그 광경을 보고 길이 탄식하면서,
"이 악양루는 강호의 유명한 곳이지만

영웅호걸과 절부열녀들이 이렇게 많이 이곳에 인연을 맺었을 줄 알았으랴.

내 비록 표박중이나 이곳에 온 것이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고 노주 세 사람이 그날 밤을 누상에서 지냈다.

그러자 이튿날 새벽에 누 밑에서 소란한 사람의 소리가 나며

수십 명이 누상을 향하여 올라왔다.

그들은 서울 사람들로서 이곳에 왔다가

악양루의 해 뜨는 경치를 구경하려고 일찍 올라온 일행이었다.

사씨 부인은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으므로

유모를 데리고 뒷문으로 빠져 강변 숲으로 와서 말하였다.
"날이 밝았으나 노자가 없고 우리들이 의탁할 곳이 없으니 장차 어디로 가랴.

아무리 생각하여도 강물 속으로 몸을 감추는 수밖에 없다."
하고 사씨 부인이 또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유모와 시비가 망극하여 통곡하였다.

 

사씨는 어제 종일과 종야를 굶주리고 잠을 자지 못하여

지칠 대로 지쳤으므로 잠시 유모의 무릎에 기댄 채 깜박 졸았다.

그때 비몽사몽간에 한 소녀가 와서,
"저의 낭랑께서 부인을 모셔오라는 분부로 왔습니다."
하고 어디로인지 인도하여 가고자 하였다.
"너의 낭랑이 누구시냐?"
"저와 함께 가시면 아실 것입니다."
사씨 부인이 그 소녀를 따라서 어떤 곳에 이르니

고대광실의 전각이 강가에 즐비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가 사씨 부인을 인도하여 그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중문을 몇 개나 지나서 들어가자

큰 대궐 위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지시가 내렸다.

사씨가 전상으로 올라가서 보니 좌우에 두 분의 낭랑이 황금교의에 앉았고

그 좌우에 고귀한 여러 부인들이 모시고 있었다.
사씨 부인이 예를 마치자 낭랑이 자리를 권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순 임금의 두 비다.

옥황상제께서 우리의 정사를 측은히 여기시고 이곳의 신령으로 삼으신 고로

여기서 고금의 절부열녀를 보살피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대가 한때의 화를 만나고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모두 하늘의 정한 운명이다.

그대가 아무리 죽으려 하여도 아직 죽을 때가 아니므로

허락할 수 없으니 마음을 진정하라."

 

사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례하고 낭랑의 덕을 치하하였다.
"인간계의 미천한 여자로서 항상 책을 통하여 성덕열절을 우러러 사모할 따름이옵더니

이제 여기와서 양배하올 줄 어찌 뜻하였겠나이까?"
"그대를 청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대가 천금 중신을 헛되게 버려서

굴원의 뒤를 따르려 하니 이는 천도가 아니니라.

그대의 호천 통곡은 천도가 무심함을 한함이니

이는 평일의 총명이 옹폐함이요, 그대의 액운이 비상한 탓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의논하고 오래 쌓인 회포를 듣고 위로해 주고자 한 것이다."


"상랑의 분부가 이러하오니 미첩이 품은 소회를 아뢰겠나이다.

저는 본디 한미한 사람입니다.

일찍 엄부를 잃고 자모 슬하에 자랐으매 배운 바가 없어서 행실이 불미하던 중에

시부가 별세한 뒤에 크게 변하여 남산의 대[竹]를 베고 동해의 물을 기우려도

그 죄를 씻지 못할 누명을 쓰고 낯을 가리고 시가의 문을 하직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에 눈물을 뿌려 시부의 묘하에 하직하고 강호를 유랑하다가

몸이 소상강에 이르러 진퇴궁전하여 앙천 장탄하였으나 하는 수 없어서

천장수심(千丈水深)에 임하니 한 터럭 같은 일신을

어복(魚腹)에 장사지낼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녀자의 마음이 망령되어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호천통곡하여 낭랑께서 들으시게 됨에 심려를 끼쳤사오니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천정한 바로서 인력이 아닌데

그대가 어찌 굴원의 뒤를 따르며 하늘을 원망하겠느냐?

하늘이 이미 나라를 멸망시키고 원한을 시원케 하시니

임금이 죄를 다스리고 충신의 이름이 나타나서 천백 세에 유전된 것이다.

그 옛일을 비겨서 보면 처음에는 곤액하나

장래에는 복록이 무량함이니 어찌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결하겠느냐?

우리 형제(아황과 여영)는 규중약녀로서 배운 바 없으되

시가를 조심하여 섬김을 옥황상제가 가엾게 여기시고

기특히 여기셔서 이 땅의 신령으로 봉하여 그윽한 음혼을 다스리게 하였으매

이 좌상의 여러 부인은 모두 현부열녀이므로

이따금 풍운의 힘을 빌려 이곳에 모여 서로 위로하매, 세상의 영욕이 어찌 문제가 되랴.

유가는 본디 적선지문(積善之門)인데 오직 유한림이 조달하여 천하사를 통하나

골격이 너무 징청한 고로 하늘이 재앙을 내리사 크게 경계코자

잠깐 이리하다가 좋은 때가 오면 다시 재앙을 없이 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그것을 모르고 조급히 구느냐.

그대를 참소하는 자는 아직 득의하여 방자교만하지만

그것은 마치 똥벌레가 제 몸 더러운 줄을 모르는 것과 같으니

어찌 더러운 것과 곡직을 다루겠느냐?

하늘이 장차 대벌을 내리셔서 보응이 명백해질 것이다."


"어리석은 저를 이처럼 위로하시고 격려하여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그대 온 지가 벌써 오래 되었으니 내 말을 알았거든 빨리 돌아가라."
"제 허물을 낭랑께서 더럽다 하시지 않으시고

목숨을 구해 주시려 하오나 돌아가도 의탁할 곳이 없으매

속절없이 강물에 몸을 감추겠사오니, 낭랑께서는 저의 정상을 살피고

이 말재(末才)를 시녀로 삼아서 이곳에 참례케 하여 주십시오."
하고 사씨 부인이 다시 애원하였다.

낭랑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그대도 나중에는 이곳에 머무르게 되려니와 아직 때가 마땅치 않으니 빨리 돌아가라.

남해도인이 그대와 인연이 있으니 그에게 잠깐 의탁함이 또한 천의(天意)로다."
"제가 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남해는 하늘 끝이라 길이 요원하다는데

이제 노자 한 푼도 없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겠습니까?"
"연분이 있어서 자연 가게 될 것이니 그런 염려는 말고 어서 돌아가라."
하고 동벽 좌상에 용모가 미려하고 눈이 별같이 빛나는 자를 가리키면서

그는 위국부인이라 하고 또 한 사람을 가리켜서 반첩녀(潘妾女)라 하고

동한 때의 교대가와 양처사의 처 맹광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대가 이미 여기 왔으니 옛사람의 이름을 서로 소개하는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늘 여기 와서 여러 부인의 면목을 뵈오니 뜻하지 않았던 영광이옵니다."
하고 두루 예하자 여러 부인들도 미소로 답례하였다.

사씨 부인이 하직하고 물러서려고 하자 낭랑이,
"매사를 힘써 하면 오십 후에 이곳에 자연 모이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세상에서 몸을 조심하라."
하고 청의동녀를 명하여 사씨를 모시고 가라 하므로 사씨가 전상에서 계하로 내리며

전상에서 열두 주렴 내리는 소리가 주르르 하고 맑게 울렸다.

그 소리에 놀라서 정신을 깨우치니 유모와 시녀가

사씨 부인이 오래 기절한 것을 망극히 여기다가 사씨의 소생을 반기며 구원하였다.

사씨가 몸을 움직여서 일어나서 얼마나 잤느냐고 물으니

기절한 뒤 서너 시나 되었다 하면서 소생한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부인께서 기절하셔서 저희들이 당황하여

백방으로 구완하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하고 그동안의 경위를 고하자 사씨도

낭랑을 만나보고 온 비몽사몽간에 본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고,
"아무래도 보통 꿈과는 다르니 내가 그곳으로 가던 길을 찾아가 보자."
하고 소상강 가의 대밭으로 들어가니

과연 한 묘당이 있고 현판에 황릉묘라고 써 있었다.

이것은 아황, 여영 두 비의 사당으로서 사부인의 꿈에 본 장소와 같으나

건물의 단청이 퇴색하고 황량하기 말이 아니었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서 전상을 바라보니

두 비의 화상이 꿈에 보던 용모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사씨가 분향하고 축원하는 말이,
"제가 낭랑의 가르치심을 입사와 타일의 길할 때를 기다리겠사오니

낭랑의 성덕을 믿고 잊지 않겠습니다."
축원을 마치고 사당을 물러나서 서편 언덕에 앉아

신세를 생각하고 여전히 슬픈 회포를 탄식하였다.

그리고 묘지기 집에 가서 밥을 얻어 오게 해서 세 사람이 모두 먹었다.

 

"우리 셋이 방황하여 의지할 곳이 없으나 이것은 신령께서 야속하게 희롱하심이다.

낭랑의 말씀대로 참는 데까지는 참아보자."
하고 탄식하는 동안에 해가 서산에 지고 달빛이 떠서 몽롱하게 주위를 비쳤다.

묘 안에 들어가서 사방을 살펴보니 밤은 깊어만 가고 짐승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사씨가 곰곰이 생각하되,
"사람이 세상에 나면 부귀빈천이 팔자소정이나 여자로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곳에 와서 의탁할 곳이 없으니

아무리 아황, 여영의 영혼의 위로하는 말씀이 있었으나

역시 죽어서 만사를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하고 또다시 죽을 생각을 하였다.

이때 홀연히 황릉묘의 묘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와서 물었다.
"부인이 또한 고초를 당하고 물에 빠지려고 하십니까?"
사씨 부인이 놀라서 바라보니 하나는 여승이요, 하나는 여동(女童)이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우리 일을 아는가?"
여승이 황망히 읍하고 합장하면서,
"소승은 동정호 군산사에 있는데 아까 비몽사몽간에 관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어진 사람이 환란을 만나서 갈 바를 모르고 강물에 빠지려고 하니

빨리 황릉묘로 가서 구하라' 하시므로 급히 배를 저어 왔는데

과연 부인을 만났으니 부처님 영험이 신기합니다."
"우리는 죽게 된 사람이라 존사의 구함을 받으니

실로 감격하나 존사의 암자가 멀고 가더라도 폐가 될까 합니다."
"출가한 사람은 본디 자비를 일삼는 처지이며

하물며 부처님의 지시로 모시려고 왔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하고 세 사람을 밖으로 인도하여 강가로 내려와서

배를 태우고 여동에게 노를 저어 가게 하자 순풍을 만나서 순식간에 군산사에 이르렀다.

 

이 섬의 산은 동정호 가운데 솟아 있으므로 사면이 다 물이요,

산은 푸른 대숲으로 덮여서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여승이 배에서 내려서 사씨를 부축이고 길을 찾아 갔으나

사씨의 기운이 파하였고 산길이 험해서 열 걸음에 한 번씩 쉬면서 암자에 이르렀다.

수월암(水月庵)이라는 이 절은 매우 한적하고 정결하여 인세(人世)를 떠난 선경이었다.
사씨는 몸이 피곤해서 곧 잠이 들어 이튿날 아침까지 깨지 못하였다.

여승이 먼저 일어나서 불당을 소제하고 향을 피우며

경자를 치며 부인을 깨워 예불하라고 권하였다.

사씨가 유모들과 함께 불당에 올라 분향배례하고

눈을 들어 부처를 쳐다본 순간에 문득 놀라며 눈물을 흘렸다.

알고 보니 그 부처는 다른 불체가 아니라

사씨가 십육 년 전에 자기가 찬을 지어서 쓴 백의관음의 화상이었다.

 

그 화상에 쓴 찬의 자기 글씨를 보니 자연 놀라움과 슬픈 회포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양을 본 여승이 또한 깜짝 놀라서,
"부인의 말씀이 그러실진대 분명히 신성현 땅의 사급사 댁 소저가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스님이 어찌 내 신분을 아십니까?"
"부인의 용모와 음성이 본 듯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소승 역시 그때 저 관음화상의 찬을 당시의 소저에게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입니다.

소승이 유대감 댁의 명을 받고 부인에게 관음찬을 받아다가 보인즉

크게 칭찬하시고 아드님 유한림과 혼인을 정하셨던 것입니다.

소승도 부인과 혼사를 보려고 하였으나

스승이 급히 부르셔서 산으로 돌아왔으므로 참례를 못하였습니다.

그 후에 소승은 스승 밑에서 십 년을 수도하였으나 스승이 입적하신 후에

이곳에 와서 암자를 짓고 고요히 공부하면서 불상을 예배하고

부인이 쓴 글과 필적을 볼 적마다 부인의 옥설 같은 용모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어찌하여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씨 부인이 유한림의 부인이 된 이후의 전후사실을 자세히 들려주자

묘혜가 탄식하면서 사씨를 위로하였다.
"세상 일이 항상 이러한 법이니 부인은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부인이 감개무량해서 다시 관음불상을 우러러보니

외로운 섬 가운데 있는 한적한 절간에서 생기유동하여

완연히 살아 있는 듯하고 사씨가 소녀 시절에 지은 찬사가

또한 자기유락함을 그린 그 경지와 흡사하였다.
"세상만사가 모두 하늘이 정한 운수이매 인력으로 어찌하랴.

그러나 관음보살을 매일 분향하여 공양 기도하고 떼어놓고 온 어진 인아를 다시 만나야겠다."
고 축원하며 남자로 변복하였던 것을 여자옷으로 갈아입었다.
묘혜가 조용한 때 사씨 부인을 보고,
"부인이 이제 여기 와 계시나 왜 복색을 갈아입으십니까?"
"내가 자비로운 부처님과 스님의 보호를 받고

신변이 안전한데 어찌 어색한 변복으로 지내겠습니까."
"그렇게 마음이 안전되신 것을 소승은 고맙게 여깁니다.

그런데 유한림은 현명한 군자이시니까

 한때 참언에 속더라도 멀지 않아서 일월같이 깨닫고 부인을 화거주륜으로 맞아 갈 것입니다.

소승이 일찍이 스승에게 수도하여 주(籌)도 약간 알고 있으니

부인의 사주를 보아드리겠습니다."
부인이 자기의 생년월일시를 말하자

묘혜는 한동안 침음하며 점을 친 뒤에 크게 기뻐하고 풀이를 하였다.
"부인의 팔자는 앞으로 대길합니다.

초년은 잠깐 재앙이 있으나 나중에는

부부와 모자가 다시 화락하여 복이 무궁하실 것입니다."
"아아, 그 말씀을 믿고는 싶으나 어찌 믿고 안심하겠습니까?

이 박명한 인생이 스님의 과장하신 복을 어찌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한담하는 동안에 도중에서 배가 풍랑을 만나고 병도 나서

어떤 인가에 들러서 휴양한 이야기와 그때 어진 주인 여자의 은덕을 입은 일을 칭찬하였다.

그러자 묘혜가 그 말을 듣고,
"그 여자가 소승의 질녀였습니다."
하고 뜻밖의 말을 하였으므로 사씨가 의아해서 물었다.
"스님의 질녀라뇨?"
"이름이 취영이라 하지 않던가요.

제 어미가 그 애를 강보에 두고 죽고 제 아비가 변씨를 후처로 취했는데

그 후 아비가 또 죽으니까 계모 변씨가

취영이를 소승에게 맡겨서 삭발시키라 하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 애의 관상을 보니 귀자(貴子)를 많이 두고

복록을 누릴 상이라 변씨에게 데리고 살도록 권하였는데

요사이 들으니 효성이 지극하여 모녀가 잘 산다더니

부인이 이번 도중에서 우연히 만나보셨습니다그려."
"역시 스님의 인연으로 그 질녀의 덕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나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몸에 누명을 쓰고

쫓기는 사람이 되어서 이런 신세가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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