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고전소설

사씨남정기 9.

오늘의 쉼터 2011. 5. 2. 00:38

 

  사씨남정기 9.

 

 

사씨 부인은 임낭자의 재덕을 생각하고 유시랑에게 허락을 받은 후 사환을

그 연화촌에 보내고 얼마 지나 다시 시녀와 교부를 보내서 임낭자를 데려오게 하였다.

임낭자가 사부인을 만나려 생각하던 차에 가마로 데리러 왔으므로 감사히 여기고

얻어서 기르던 소년(인아)을 데리고 함께 사씨 부인을 만나 반기고

아이는 동생이라 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씨 부인은 임낭자에게 유시랑의 둘째 부인이 되기를 권하였다.

임낭자는 이것이 꿈인가 의심하면서도 고모 묘혜 스님의 예언을 생각하고 감격하였다.

 

사씨 부인은 택일하여 친척을 초대하고 잔치를 베풀어 임씨를 성례시키니

그 용모가 아름다운 숙녀였으므로 유시랑이 심중으로 기뻐하고

사씨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 그대에게 정이 덜할까 염려하노라 하니

부인은 미소만 보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는 인아의 그전 유모가 임씨 방으로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요전에 시비의 말을 들으니 낭자의 남동생 도련님이

그 전에 제가 시중하던 우리 공자와 얼굴이 꼭같이 생겼다 하기에 한번 보러 왔나이다."
유모의 말을 의아스럽게 생각한 임씨가 유모에게 물었다.

"댁의 공자를 어디서 잃었던가?"
"북경 순천부에서 잃었습니다."
임씨가 생각하기를 북경이 천 리인데 어찌 남경 땅에서 잃은 공자를 얻었으랴 하고

의아하였으나 시녀에게 인아 소년을 불러오게 하였다.

유모가 본즉 어렸을 때 자기가 밤낮으로 안고 기른 인아가 틀림없었다.

반가운 생각으로 왈칵 끌어안으나 한편 의심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소년은 실로 내 모친이 낳은 친동생이 아니고

'모년 모월 모일'에 강가에 버려진 어린아이를 주워다가 길러서 의남매가 되었다네.

만일 얼굴이 댁이 기르던 공자와 같으면 혹 그런 연고 있는 소년인지도 모르겠네."


이때 소년이 먼저 유모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유모, 왜 나를 몰라보는거야?"
"앗, 도련님!"
유모가 이때 소년을 끌어안고 임씨에게,
"이것 보십시오.

이 댁의 도련님이 아니면 어찌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반가워하겠습니까?"
"이 아이의 성명은 비록 모르나 전에 귀한 댁 아들로서 곱게 길렀던 것이 분명하고

남경으로 가던 뱃군이 어디서 주웠으나 가다가 우리집 근처에 버리고 간 것이니까,

유모가 잘 알아보고 대감 양위께 말씀드리도록 하게."


유모가 임씨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곧 사씨 부인에게 그 말을 전하자

부인이 황망히 임씨 방으로 달려와서 그 소년을 보고 반신반의하면서,
"너는 나를 알겠느냐?"
인아가 사씨 부인을 자세히 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어머니, 어머니는 저를 몰라보십니까?

어머님이 집을 떠나신 후에 소자가 매양 그립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릴 때 일이라 제 기억이 아득하여 잘 모르나

여자가 저를 멀리 가다가 제가 잠든 사이에 강변 숲속에 두고 갔기 때문에

잠을 깬 뒤에 외롭고 무서워서 울 적에  큰 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데리고 가다가

또 어떤 집 울 밑에 놓고 갔습니다.

그때 그 집의 은모(恩母)가 거두어 길러 주어서 전보다 편하게 지내다가

이제 뜻밖에 여기 와서 어머님을 뵈오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사씨 부인이 인아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면 이대로 깨지 말아야겠다.

내 너를 다시 보지 못할까 하였더니

오늘날 집에 돌아온 것을 만나니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느냐?"
하고 흐느껴 울다가 유시랑에게 인아를 찾은 사실을 고하자,

유시랑이 급히 달려와서 자초지종을 듣고서 임씨를 칭찬하면서 기뻐하였다.
"우리가 오늘 부자, 모자가 이처럼 만나서 즐기는 경사는 모두 그대의 공이니,

그 은덕을 어찌 잊겠는가. 금후로는 나의 가장 큰 슬픔이 없게 되었다."
"과분하신 말씀을 듣자와 황송하옵니다.

오늘날 부자 모자가 상봉하신 것은 모두 존문의 음덕이시지, 어찌 제 공이겠습니까.

사씨 부인의 성덕현심(聖德賢心)에 신명이 감동하신 영험입니다."
"음, 그것도 그렇고 그대 공도 또한 장하지 않은가?"


하고 온 집안이 이 경사를 축하하면서 인아의 모습을 보니

장부의 체격이 발월하고 그 준매함을 칭찬치 않은 사람이 없었다.

원근의 친척이 모두 모여서 치하하는 동시에

임씨에 대한 대우가 두터워지고 비복들도 착한 임씨를 존경으로 섬겼다.

그리고 사씨 부인이 임씨 대하기를 동기처럼 아끼고

임씨 또한 사씨 부인을 형님같이 극진히 섬겼으며

보통 처첩간의 투기 같은 감정은 추호도 없었다.


이 무렵에 교녀는 동청이 죽은 뒤에 냉진과 살다가

마침내 냉진이 역적의 도당을 꾸미다가 괴수로 잡혀 처형되자

도망가서 낙양 술집의 창기가 되어 낙양의 인사에게 웃음을 팔아

재물을 낚으면서 전신이 한림학사의 부인이라고 호언하였으므로

낙양에서 교녀의 교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유시랑 댁의 사환이 마침 낙양에 왔다가

창녀 교씨의 유명한 평판을 듣고 술집에 가서 보니

분명히 본인이라 깜짝 놀라고 돌아와서 교녀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유시랑은 부인 사씨에게,
"교녀를 잡지 못할까 걱정했더니 낙양청루에서 행색이 낭자하더니

내가 돌아갈 때에 잡아서 설치(雪恥)하겠소."
"그러세요. 그년을 잡아서 제 원한을 풀어야겠습니다."
관대한 부인 사씨도 교녀에 대한 철천지한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씨는 아들 인아를 만난 후로는 시름이 없었고

유시랑은 사사로운 고민이 없어서 모든 힘을 치민(治民)에 근면하매

모든 백성이 농업과 학업에 힘썼으므로

그의 일읍이 대치(大治)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황제가 그 공적을 들으시고 예부상서로 승탁하시니 유상서가 사은차 상경하게 되었다.

행차가 서주에 이르러서 창녀로 이름난 교녀를 염탐한즉

분명히 그곳 화류계에서 군림하는 존재로 있었다.

유상서는 수단 있는 매파와 상의하고 창녀 교칠랑을 시켜서 이러이러하라고 명하였다.

매파가 교녀를 찾아서,
"이번에 예부상서로 영전되어 상경하시는 대감께서

교낭자의 향명을 들으시고 소실을 맞아 총애코자 하시는데 낭자 의향이 어떤가?

상서벼슬은 거룩한 재상의 지위요,

그 시비의 말을 들은즉 정실부인은 신병으로 치가(治家)도 못한다니까

낭자가 그 대감 댁에 들어만 가면 정실부인과 다름이 없이

집안 실권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호강을 할 것이니 이런 좋은 혼담이 어디 있겠나.

여자의 부귀는 역시 교낭자 같은 미인의 차지야."

 

교녀가 매파의 달콤한 권고를 듣고 생각하되,
'내 비록 화류계 생활로 의식의 부족은 없지만 나이도 점점 먹어 가니

종신의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기회에 상서 부인이 되어서 천한 신분을 면하자.'
하고 매파에게 잘 성사시켜 달라고 쾌락하였다.
"성례는 대감과 본부인이 보시는 데서 할 것이므로 준비가 되면

낭자를 데리고 갈 테니 화장을 곱게 하고 기다려요."
"알겠어요."
하고 교녀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매파가 교녀의 승낙을 고하자 유상서는 인부를 갖추어서

교녀를 가마에 태워서 본 행차와 따로 서울로 데려가도록 분부하였다.

 

유상서는 서울에 이르러 황제 어전에 사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척을 모아 놓고 경축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사씨는 임씨를 불러서 두부인을 뵙게 하고,
"이 사람은 그전의 교녀와 같지 않은 현숙한 사람이니 고모님께서는 그릇 보지 마십시오."
하고 소개하자 두부인은 새사람이 비록 어진 사람이라도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담담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때 유상서는 빙글빙글 웃으며 두부인과 좌중 손님들에게,
"오늘 이 즐거운 잔치에 여흥이 없으면 심심할까 합니다.

노상에서 명창을 얻어 왔으니 한번 구경하시오."
하고 좌우에 명하여 창녀 교칠랑을 부르라 하였다.

 

이때 교자로 실려서 서울로 왔던 교녀가 사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승명하고 상서 댁으로 데려오자 가마 안에서 내다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 집은 분명히 유한림 댁인데 왜 이리 가느냐?"
시녀가 시치미를 딱 떼고 하는 대답이,
"유한림은 귀양가시고 우리 대감께서 이 집을 사서 들어 계십니다."
교녀가 시녀의 말에 안심하고 또다시 가증한 교만한 생각을 일으켰다.
'나하고 이 집과는 인연이 깊구나. 마땅히 그 전에 정들었던 백자당에 거처하겠다.'


시비가 그렇게 옛꿈을 그리워하는 교녀를 인도하고 유상서와 사부인 앞으로 갔다.

교녀가 눈을 들어서 보니 좌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낯익은 유연수 문중의 일적이라 벼락을 맞은 듯이 낙담상혼하고 말았다.

교녀는 땅에 엎드려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유상서가 큰 호통을 하며 꾸짖었다.
"네 죄를 아느냐!"
"제 죄를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관대히 용서하여 주십시오."
"네 죄는 일륜이니 음부는 들으라.

처음에 부인이 너를 경계하여 음탕한 풍류를 말라 함이 좋은 뜻이어늘

너는 도리어 참소하여 여우의 탈을 썼으니 그 죄 하나요,

요망된 무녀 십랑과 음모하여 해괴한 방법으로 장부를 혹하게 했으니 그 죄 둘이요,

음흉한 종년들과 동청과 간통하여 당을 이루고 악행을 하였으니 그 죄 셋이요,

스스로 저주하고 부인에게 미루었으니 그 죄 넷이요,

동청과 사통하여 가문을 더럽혔으니 그 죄 다섯이요,

옥지환을 도둑질하여 간인(奸人)을 주어 부인을 모해하였으니 그 죄 여섯이요,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이고 그 악을 부인에게 미루었으니 그 죄 일곱이요,

간부와 작하고 부인을 사지에 몰아넣었으니 그 죄 여덟이요,

아들을 강물에 던졌으니 그 죄 아홉이요,

겨우 부지하여 살아가는 나를 죽이려고 하였으니 그 죄 열이다.

너 같은 음부가 천지간의 음악한 대죄를 짓고 아직도 살고자 하느냐?"


교녀가 머리를 땅을 받으면서 울어대고,
"이것이 모두 제 죄이오나 자식을 해친 것은 설매가 한 일이요,

도적을 보낸 것과 엄승상에게 참소한 것은 동청이가 한 일입니다."
하고 사씨 부인을 향하여 울면서 호소하되,
"저는 실로 부인을 저버린 죄인이오나

오직 부인은 대자대비하신 은혜로 저의 잔명을 살려 주시기비오."
부인 사씨는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네가 나를 해하려 한 것은 죽을 죄가 아니지만 대감께 죄진 너를 내가 어찌 구하겠느냐?"
유상서는 교녀의 비굴한 행색에 더욱 노하였다.

곧 시동에게 엄명하여 교녀의 가슴을 찢어 헤치고 심장을 꺼내라고 하였다.

 

이때 사씨 부인이 시동을 만류시키고,
"비록 죄가 중하나 대감을 모신 지 오랜 몸이니 시체는 완전하게 처치하십시오."
유상서는 부인의 권고에 감동하고 동편 언덕으로 끌어내다가 타살한 후에

시체를 그대로 버려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게 하라고 명하니

좌중의 모든 사람이 상쾌하게 여겼다.

유상서는 만고의 간부 교녀를 죽이고 상쾌하게 여겼으나

사씨 부인은 시녀 설매가 억울하게 참사된 것을 가엾이 여겨서 뼈를 찾아서 잘 묻어 주었다.

그리고 십랑을 잡아서 치죄(治罪)하려고 찾았으나

전년에 금령의 옥사에 연좌되어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씨가 유씨 문중에 들어온 지 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

계속하여 삼형제를 낳았는데 모두 옥골선풍이요, 천금가사(千金佳士)였다.

장자의 이름은 웅(雄)이요,

차자의 이름은 준(俊)이요,

삼자의 이름은 란(爛)이라 하였는데

모두 부형을 닮아서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황제는 유상서의 벼슬을 좌승상으로 승진하고 자주 불러서 만나시니,

유씨 가문의 영광이 비할 데 없었고

또 두춘관이 높은 벼슬에 이르니 그 명성의 웅성함이 천하에 으뜸이었다.
유승상 부부는 팔십여 세를 안양(安養)하고, 그 후대의 공자는 병부상서에 이르고

유웅은 이부상서를 하고

유준은 호부시랑을 하고

유란은 태상경을 하여 조정에 참열하였으니,

그 모친 임씨도 복록을 누려서 자부와 제손을 거느리고,

사씨 부인을 모시며 안락한 세월을 보냈다.

 

문필에 능달한 사씨 부인은 내훈 십 편과  열녀전 십 권을 지어서 세상에 전하고

자부들을 가르쳐서 선도를 행토록 권장하였다.
이러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앙화를 받는 법이니

후인을 징계함직 하나 사정이 기이하므로

대강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바이니 보시고 사람은 명심하소서.

희로애락을 지성으로 근고(謹告)하옵니다.

 

<종>

 

 

 

사씨남정기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또한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치고 장희빈을 맞아들인 그 시대적 정황에 맞아 떨어지는 내용 하며,

선과 악이 분명한 구도로 당대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현대를 사는 나로서는 온갖 박해를 받고도 해명하지 못한 채 쫓겨나는 사씨의 모습과 그 인고의 삶이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소설방 > 한국고전소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끼전-완판본   (0) 2012.12.25
토끼전  (0) 2011.05.20
사씨남정기 8   (0) 2011.05.02
사씨남정기 7   (0) 2011.05.02
사씨남정기 6   (0) 2011.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