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6.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오늘의 쉼터 2011. 5. 18. 19:18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7)
사막이란 이런 것이다.

본래는 놀이의 규칙에 지나지 않는 한 권의 코란이 사막을 제국으로 바꿔 놓는다.

텅 비었을 사하라 한복판에서 인간의 결정을 뒤흔드는 은밀한 연극이 연출된다.

사막에서의 참된 삶은 목초를 찾아 옮겨가는 부족들의 이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놀이에 의해서이다.

귀순사막과 불귀순 사막과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내용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재의 전혀 다르게 변모해 버린 귀순 사막을 앞에 두고

나는 소년시절에 여러 가지 놀이를 하던 일들이며,

우리가 온갖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컴컴하고 금빛 도는 그 공원이며,

우리가 완전히 알아낼 수도 없었고,

전부를 뒤질 수도 없었던 1킬로 미터 평방으로 된 그 무한한 왕국 등을 회상한다.

우리는 한 발자국마다 어떤 맛을 갖고 있고,

사물들이 다른 데서는 있을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갇혀진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다른 법률 아래 살게 되었을 때,

소년시절의 음영으로 가득 찬 그 마법의 공원, 그 얼어붙은 공원,

그 폭염의 공원에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지금 그 공원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일종의 절망감을 느끼며

바깥쪽의 나지막한 회색 돌담을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좁은 울타리 안에 그때는 자기에게 있어

무한한 넓이였던 하나의 세계가 갇혀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그 무한한 세계 속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들어가야 할 곳은 그 공원이 아니라, 그 놀이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불귀순 사막은 없어졌다.

쥐비 곶, 시스네로스, 쀠에르또 깡사도, 사뀌에뗄함라,

도라 스마라, 그 어디에도 이제 신비는 없다.

우리가 그리고 달려가던 수많은 지평선들도, 마치 따뜻한 손의 올가미에 걸리면

빛깔을 잃어버리는 곤충들처럼 차례차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지평선을 쫓아다녔던 사람들도 어떤 환영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달리던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팔에 안기자마자 아름다운 여자 포로들이 날개의 황금빛을 잃고

하나하나 새벽 빛 속에 사라져갔다는, 저 너무나 정교한 것을 추구했던

아라비안나이트의 사르탕 왕도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막의 마술을 양식으로 삼았지만 다른 사람들 같으면

거기에 유정을 파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는 것이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들어가지 못할 종려나무 숲이나 사람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조개껍데기 가루가 그 가장 귀중한 부분을 이미 우리에게 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 한 때의 열광밖에는 주지 않았으며, 그리고 그것을 살린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사막이라고? 언젠가 나는 바로 그 심장부로 해서 그곳에 뛰어든 적이 있다.

1935년 인도차이나로 가는 장거리 비행 도중,

나는 이집트의 리비아 접경 오지에서 끈끈이에 붙들리듯이

사막에 붙잡혀 버렸는데, 그때 나는 꼭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1)

지중해로 들어가면서 나는 낮게 뜬 구름을 만났다.

나는 고도 20미터까지 내려갔다.
소나기가 앞 유리창을 두드렸고, 또 기선 마스트를 들이받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기관사 앙드레 쁘레보가 내게 담뱃불을 붙여준다.

"커피를 할까...."

그는 비행기 뒤쪽으로 사라졌다가 보온병을 들고 나온다.

나는 회전 속도 2천을 유지하기 위해 가끔 가스 핸들을 퉁겨 준다.

힐끗 계기반들을 훑어 본다.

내 신하들은 모두 공손하다. 바늘이 모두 제자리에 있다.

나는 바다를 한 번 내려다 본다.

바다는 빗발 아래서 끓는 커다란 대야 모양 김을 내뿜고 있다.

내가 만약 수상기를 타고 있었다면 바다가 그렇게 푹 패어있음을 애석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육상기를 타고 있다. 패어 있건 말건 내려앉을 수는 없다.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일종의 이치에 안맞는 안전감을 내게 주는 것이다.

바다는 내 것이 아닌 어떤 세계의 일부분의 이루고 있다.

여기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고, 내게 위협을 주지도 못한다.

나는 바다에 대비해서 장비는 되어 있지 않으니까.

한 시간 반을 날자 비가 수그러진다.

구름은 여전히 낮게 드리웠지만, 이미 햇빛이 크나큰 미소처럼 뚫고 비친다.

나는 이 갠 날씨의 유유한 준비에 감탄한다.

나는 머리 위에 흰 솜의 켜가 덮여 있음을 짐작한다.

나는 돌풍을 피하기 위해 사행한다.

이제 그 복판을 가로지를 필요는 없다.

마침내 첫 하늘 조각이 드러난다.

나는 그것을 보기 전에 예감했었다.

왜냐하면 내 앞 바다 위에 초원의 빛을 띤 긴 띠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나는 진초록의 오아시스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세네갈에서 3천 킬로 미터의 사막을 넘어 남부 모로코에 다다랐을 때,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 저 보리밭 빛깔과도 흡사했다.

여기서도 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고장에 접어든 느낌이 들어 가벼운 기쁨을 맛본다.

나는 쁘레뽀 쪽을 돌아본다.

"됐어. 잘 돼 간다!"
"네, 됐어요."

튀니스, 가솔린을 채우는 동안 나는 서류에 사인을 한다.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다이빙할 때, 같은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린다. 울림이 없는 둔한 소리.

나는 그 순간에 전에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차고가 폭발했었다.

그 목쉰 기침소리로 두 사람이 죽었었다.

나는 활주로를 끼고 길 쪽을 돌아다본다.

약간의 먼지가 피어올랐는데, 두 대의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충돌했던 것이다.

갑자기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달려가고 몇 사람은 우리에게로 달려온다.

"전화를 해... 의사를... 머리가...."

나는 심장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운명이 고요한 저녁 햇빛 속에서 기습에 성공한 것이다.

한 아름다움이, 아니면 한 지혜가, 한 생명이 짓이겨졌을 것이다.

비적들도 이렇게 사막 속을 걸어왔지만,

 아무도 그 모래 위의 가벼운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주둔지 안에서 약탈하는 짧은 웅얼거림만이 들렸을 뿐이다.

그런 다음은 모든 것은 황금빛 침묵 속에 잠겨드는 것이다.

그것과 똑같은 평화, 똑같은 침묵....

내 옆에서 누군가가 두 개골이 깨어졌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피투성이의 얼굴을 알고 싶지 않아

도로를 등지고 내 비행기 쪽으로 온다.

그러나 위협감은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조금 뒤에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시속 2백 70킬로로 시커먼 사구를 스쳐갈 때, 그와 똑같은 목쉰 소리,

약속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저 운명과도 같은, "콜록!"하는 소리를.

벤가지를 향해 출발!

(2)
도중.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도 2시간.

트리포리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벌써 검은 안경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모래가 금빛으로 물든다.

그런데 이 지구는 왜 이리도 적막할까?

나에게는 또다시 강물이며, 나무 그늘,

사람의 집들은 어떤 우연한 요행의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와 모래의 영토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비행의 영역에 살고 있으니까.

나는 신전에 들어앉듯이 사람들은 본질적인 관례의 비밀에 의해 구원 없는 명상 속에 갇힌다.

이 속된 세상은 이미 희미해지고 곧 사라지려 하고 있다.

눈 아래 풍경이 아직은 불그레한 빛을 머금고 있지만,

무엇인지 벌써부터 거기에서 새어나가고 있다.

나는 이 시간만큼 값진 것을 아무것도 모른다.

정말 아무것도... 비행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맛본 사람만이 나의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차츰차츰 태양은 포기한다.

사고가 났을 때 나를 받아 줄 드넓은 황금빛 표면도 나는 포기한다.

나를 안내해 줄 표적들도 포기한다.

나를 위해서 암초를 피하게 해 줄, 하늘에 솟아난 산들의 옆모습도 포기한다.

나는 깊은 밤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비행한다.

나를 위해 가진 것이라고는 별밖에 없다.

이 세계의 죽음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그래서 빛도 조금씩 내게서 없어져 가는 것이다.

땅과 하늘이 조금씩 섞여든다.

저 대지가 솟아올라 수증기처럼 퍼져나가는 것 같이 보인다.

첫 별들이 푸른 물 속에서처럼 떨고 있다.

그것들이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변하기까지에는 아직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어떤 밤에는 날아가는 불꽃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별들 사이로 큰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쁘레보가 고정 램프와 구급 램프를 시험해 본다.

우리는 빨간 종이로 전구들을 싼다.

"한 겹 더 쌀까...."

그는 한 겹 더 싸고는 스위치를 넣는다.

불빛이 아직도 너무 밝다.

그 빛은 사진관에서처럼 바깥 세상의 희미한 형상들을 지워 없앨 것이다.

그것은 종종 밤에 사물들에 붙어 있는 저 가벼운 무리를 망가뜨릴 것이다.

밤은 이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 진짜 밤은 아니다.

초승달이 아직 남아 있다.

쁘레보가 뒤쪽으로 기어들어가 샌드위치를 갖고 나온다.

나는 포도 한 송이를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다.

시장기도 갈증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전혀 피로도 느끼지 않는다.

이대로 10년이라도 조종을 할 수 있은 것 같다.

달이 졌다.

벤가지가 캄캄한 밤 속에서 나타난다.

벤가지는 하도 깊은 어둠 속에 쉬고 있어서 아무런 무리로도 장식되어 있지 않다.

나는 거의 가깝게 다다라서야 도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비행장을 찾고 있으려니 붉은 표지등이 일제히 켜진다.

불빛들이 검은 장방형을 그려 놓는다. 나는 선회한다.

하늘로 향한 표지등 불빛이 화재의 분수처럼

곧바로 하늘로 치솟아 회전하면서 땅 위에 황금빛 길을 그린다.

나는 장애물을 잘 살피기 위해 여전히 선회를 계속한다.

이 공항의 야간 시설은 훌륭하다.

나는 속도를 늦추며 검은 물속인양 다이빙을 시작한다.

내가 착륙한 것은 현지 시간 23시였다.

나는 표지등 쪽으로 굴러간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장교와 사병들이 어둠 속에서

탐조등의 단단한 빛 속으로 나타나며 차례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사람들은 내 서류를 받고, 가솔린을 채우기 시작한다.

나의 통과 절차는 20분이면 완료 될 것이다.

"한 번 선회해서 우리 위를 지나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륙이 제대로 끝났는지 모르니까."

"출발!"
나는 장애물 없는 통로를 향해 이 금빛 길 위를 활주한다.

시문(사막의 열풍이라는 뜻)형인 내 비행기는

활주로에 충분한 여유를 남기고 무거운 기체를 떠올린다.

탐조등이 뒤따라와서 방향 선회의 방해가 된다.

마침내 그것은 나를 놓아준다. 그것이 나를 눈부시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수직으로 반선회한다. 그때 탐조등이 다시 내 얼굴을 스친다.

그러나 닿자마자 내게서 달아나 그 긴 금빛 플롯을 딴 데로 돌린다.

이러한 조심성에서 나는 최대의 친절을 느낀다.

이제 나는 사막을 향해 다시 기수를 돌린다.

파리와 튀니지, 벤가지로부터의 기상 통보들은

 시속 30--40 킬로미터의 뒷바람을 내게 알려준다.

나는 시속 3백 킬로 미터의 속도만을 믿는다.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맺는 직선의 한가운데로 기수를 돌린다.

이렇게 하면 나는 해안의 비행 금지구역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모르고 편류를 일으킬 경우에도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이들 두 도시 중 어느 하나의 등불을 만날 것이다.

바람이 그다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3시간 20분 동안 비행할 것이다.

바람이 약해진다면 3시간 45분 동안을,

그래서 나는 1천 50킬로 미터의 사막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달도 이미 없다.

별들이 있는 데까지 부풀어 오른 시커먼 타르.

나는 불빛 하나 볼 수 없을 것이고, 목표물 하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무전도 없으므로 나일강에 이르기 전까지는 사람이 보내는 신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 나침반과 "스뻬리" 이외에는 살펴볼 생각을 않는다.

계기의 어둠침침한 눈금판 위에서

완만한 호흡하고 있는 가는 라듐선 이외는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다.

쁘레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가만히 중심의 변화를 수정한다.

나는 2천 미터로 상승한다.

그 높이이면 바람이 알맞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가 나는 전구를 켜본다.

계기 중에서 야광 장치가 없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어둠 속에 깊이 갇혀 있다.

 

별들과 똑같은 광물성의 빛, 똑같이 쓸데없고

은연한 빛을 내며, 똑같은 언어로 말하는 내 작은 성좌 속에서.

나도 천문학자들처럼 하늘의 구조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나도 또한 근면하고 청순하다고 느낀다.

외계에서는 모든 것이 꺼져 버렸다.

잘 견디어내던 쁘레보는 잠 속에 빠졌고, 그래서 나는 더욱 고독을 느낀다.

엔진의 부드러운 붕붕거림이 있고, 내 앞 계기반 위에는 이 모든 조용한 별들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명상에 잠긴다.

우리는 이제 달의 혜택도 없고, 무전 연락도 없다.

우리가 나일강의 번쩍이는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에는

우리를 세계와 연결지어 줄 어떠한 가느다란 끄나풀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의 밖에 있으며,

우리의 엔진만이 타르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지속시켜 준다.

우리는 동화에 나오는 거대한 어둠의 골짜기, 시련의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서는 구조란 전혀 없다.
여기서는 과오에 대한 사면도 없다.

우리는 신의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다.

배전반의 접촉점에서 광선이 새어나온다.

나는 쁘레보를 깨워 그것을 끄라고 한다.

쁘레보는 어둠 속에서 곰 모양 움직이더니 재채기를 하고 앞으로 나온다.

그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손수건과 검은 종이를 결합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나를 방해하던 그 광선은 사라졌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계기 바늘의 라듐의 창백하고도 아득한 빛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의 유흥장의 빛이었지 별의 빛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빛은 내 눈은 부시게 하고, 다른 빛들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비행 3시간. 강렬한 것 같은 빛이 오른쪽에서 솟아 오른다.나는 지켜본다.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기다란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 같은 것이 날개 끝의 등에 걸린다.

그것은 환해졌다 꺼졌다 하는 단속적인 빛이었다.

나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구름이 내 램프에 반사되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들에 다가온 지금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원했었는데.

날개가 무리 아래서 반짝인다.

빛은 자리를 잡고, 고정되고, 번쩍이며, 또 날개 끝 쪽에서 장미빛 꽃다발을 이룬다.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를 뒤흔든다.

나는 두께를 모를 두터운 구름 덩이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것이다.

나는 2천 5백 미터까지 올라가 본다.

그러나 구름 위로 솟아 나지 못한다.

1천 미터로 다시 내려간다.

꽃다발은 여전히 있어, 꼼짝도 않고 점점 더 번쩍인다.

그래, 좋다. 할 수 없지. 내게는 딴 생각이 있다.

빠져 나갈 때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불길한 여인숙의 등불 같은 빛이 싫다.

나는 어림해 본다.
"여기서는 야간 기체가 흔들린다. 이건 정상이다.

그런데 하늘이 맑고, 높이 날아 왔는데도 끊임없이 동요가 있었다.

바람이 조금도 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시속 3백 킬로 미터를 초과했던 셈인가."

결국 나는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구름에서 빠져 나가면 어떻게든 위치를 알아내도록 해야겠다.

이윽고 구름에서 빠져 나왔다. 그 꽃다발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예고다. 나는 앞을 주시한다.

그러자 일순간 하늘과 다음 구름 덩이 사이로 좁은 골짜기가 보인다.

꽃다발이 어느새 되살아났다.

나는 이제 이 끈끈이에서 단 몇 초 동안밖에는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3시간 반 동안을 비행한 후에 이 끈끈이가 나를 불안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대로 전진하고 있다면 나일강이 가까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구름의 회랑 너머로 강을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회랑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감히 더 내려 가지 못한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고지 상공을 날고 있을 것이니까.

나는 여전히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았으나 다만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침착성에 4시간 50분의 비행이라는 한계를 긋는다.
이만한 시간이 지나면 설령 무풍 속을 날았다 하더라도 (무풍이란 있을 수도 없지만)

나는 벌써 나일 계곡을 넘어섰을 것이다.
구름의 가장자리에 이르자

그 꽃다발은 점점 더 자주 명멸하는 빛을 내더니 갑자기 꺼져 버린다.

나는 밤의 악마들과 하는 이런 암호 교신이 싫다.

파란 별 하나가 내 앞에 등대처럼 빛나며 나타난다.

별일까, 등대일까? 나는 이 불가사의한 빛, 마왕의 별,

이 위험한 초대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쁘레보가 잠이 깨어 계기반에 점화한다.

나는 그와 그의 램프를 모두 밀어 젖힌다.

나는 방금 두 구름떼 사이의 단층에 접근한 것을 이용해서 아래를 관찰하려고 애썼다.

쁘레보는 다시 잠이 든다.

그러나 관찰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4시간 5분의 비행. 쁘레보가 내곁에 와서 않는다.

"카이로에 도착할 시간인데...."
"누가 아니래...."
"저건 별인가, 등대인가?"

나는 아까부터 엔진을 약간 죄었었는데, 그것이 아마 쁘레보를 깨운 모양이다.
그는 비행소리의 모든 변화에 민감하다.

나는 구름더미 아래로 빠져 나가기 위해 천천히 하강을 시작한다.
방금 나는 지도를 살펴 보았다.

어쨌든 나는 표고 제로에 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강하를 계속하며 정북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러면 비행기의 창으로 도시의 불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 그 도시를 지나쳤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왼쪽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나는 적운 밑을 날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왼편으로 더 낮게 내려가고 있는 다른 구름을 스치며 날고 있다.

그 그물에 걸려 들지 않으려고 기수를 북북동으로 향한다.
이 구름은 분명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내게서 지평선을 모두 가려버린다.

이제는 감히 더 고도를 낮출 수가 없다.

나의 고도계는 4백 미터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 기압을 알 도리가 없다.

쁘레보가 몸을 구부린다. 나는 그에게 소리친다.
"바다로 빠져나가 바다에 내려가 보세. 들이받지는 않게."

이미 항로를 벗어나 바다로 들어서지 않았다고 증명할 아무것도 없었다.

이 구름 밑의 어둠은 전혀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나는 창에 몸을 바짝 붙인다. 아래를 확인해 보려고 시도한다.

불빛이 나 표적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나는 재를 파헤치는 사람이다.
나는 아궁이 밑바닥에서 생명의 불씨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과 같다.

"등대다!"

우리 둘은 동시에 이 명멸하는 함정을 보았다.

얼마나 미친 짓인가! 이 유령 등대, 이 밤의 속임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더란 말인가?

왜냐하면 쁘레보와 내가 날개 밑 3백 미터쯤에서

 그것을 다시 찾아내려고 몸을 숙인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앗!"
나는 다른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세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어마아마한 폭음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갓 같다.

시속 2백 70킬로 미터로 우리는 땅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 뒤에 온 1초의 백분의 1동안 우리는 우리 둘은 한 덩어리로 뭉쳐버릴

폭발의 커다란 진홍빛 별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쁘레보도 나도 조그만 감동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 속에 엉뚱한 기다림,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그 속에서 사라져 버릴,

그 찬란한 별에 대한 기다림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진홍빛 별은 끝내 없었다.

있었던 것은, 유리창을 뜯어 내고, 철판을 1백 미터나 날려보내고,

그 요란한 울림으로 우리 창자 속까지 꽉 채우고

조종실을 쑥밭으로 만든 일종의 지진 같은 것이었다.

기체는 멀리서 던져 단단한 나무에 꽂힌 칼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1초, 2초....

기체는 여전히 떨고 있었고, 나는 비행기가 간직한 에너지가

그것을 유탄처럼 폭발시키기를 무서운 초조감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지하의 진동은 결정적인 분화에 이르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나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진동도, 이 분노도, 이 끝없는 유예도 알 수가 없었다....

5초, 6초.... 그러자 갑자기 우리는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비행기 창으로 우리 담배를 내동댕이치고, 오른쪽 날개를 박살낸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어붙은 듯한 부동 외에는 아무것도,

나는 쁘레보에게 소리쳤다.
"뛰어 내려, 빨리!"


동시에 그도 소리쳤다.
"불이!"

순간, 우리는 이미 떨어져나간 창으로 곧두박질했었다.

우리는 2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나는 쁘레보에게 말했다.
"다친 덴 없나?"

그가 대답했다.
"다친 덴 없어요!"

그러나 그는 무릎팍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만져보게. 움직여보구. 정말 다친 데가 없다고 내게 맹세해봐...."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나는 그가 머리에서 배꼽까지 갈라지면서 별안간 쓰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구조 펌프였어...."

나는 생각했다. 미쳤구나, 이제 춤이라도 출 거다.
그런데 그는 화재를 면한 기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나를 보면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무릎에 걸렸을 뿐예요."

 

 

 

(3) -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는 손에 회중 전등을 들고 땅 위의 비행기 자국을 더듬어 되올라간다.

정지 점에서 2백 50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미 우리는

비행기가 달리며 모래를 퉁겨 놓은 뒤틀어진 쇳조각이며 철판들을 발견한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어느 황막한 고원 꼭대기의

비스듬한 경사면을 거의 접선처럼 들이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충돌 점에 생긴 모래 속의 구멍은 쟁기 보습으로 판 것과도 같았다.

기체는 곤두박질하지 않고 성난 길짐승이

꼬리를 휘두르듯이 배밀이를 하며 나갔던 것이다.
기체는 시속 2백 70킬로로 구르는 검은 돌들이

축받이 구슬 역할을 해주었던 덕택일 것이다.

쁘레보는 늦게나마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막기 위해 축진지의 접속을 끓어 놓았다.
나는 엔진에 기대어 생각해 본다.

고공에서 4시간 15분 동안을 시속 50 킬로 미터의 강풍을 계속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과연 진동이 있었다.

그런데 예보를 수신한 후에 변화가 있었다면

나로서는 바람의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한 변의 길이 4백 킬로 미터의 정방형 안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쁘레보가 내 옆에 앉으면서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하군요."

나는 목표를 찾기 위해 쁘레보에게 그의 전등을 켜 놓게 하고

내 회중 전등을 들고 똑바로 걸어 나간다.

주의 깊게 땅을 들여다본다.

천천히 나가면서 커다란 반원을 그리고, 여러 번 방향을 바꾼다.

마치 떨어뜨린 반지를 찾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땅을 들여다 본다.

방금 나는 이렇게 해서 생각의 불씨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나의 전등이 비치는 흰 원반 위로 몸을 굽히며 여전히 어둠 속을 나아간다.

역시 그래, 역시 그렇군.... 나는 천천히 비행기 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나는 조종석 옆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나는 희망적인 증거를 찾아보았으나 그것을 도무지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생명이 내보이는 어떤 표시를 찾았으나,

생명은 내게 아무런 표시도 해주지 않았다.

"쁘레보, 나는 풀 한 포기도 보지 못했어."

쁘레보는 잠자코 있어서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날이 밝아 장막이 걷히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단지 심한 피로를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막 한가운데 4백 킬로 미터 쯤 되는 곳!"

갑자기 나는 벌떡 일어섰다.
"물!"

가솔린 탱크도 오일 탱크도 터져 있었다.

물 저장고도 마찬가지였다. 모래가 전부 마셔버렸다.

우리는 박살이 난 보온병 밑바닥에서 반 리터의 커피와,

다른 병 밑바닥에서 4분의 1리터의 백포도주를 찾아냈다.

우리는 이 액체들을 걸러서 한데 섞었다.

우리는 또 약간의 포도와 오렌지를 한 개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속셈을 한다.

"사막에서, 햇빛 아래서 다섯 시간만 걸으면 이건 다 없어져 버릴 걸...."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 의해 우리는 조종실 안에 자리잡는다.

나는 드러누워 잠을 청하려 한다.

나는 잠이 들면서 우리가 한 모험의 결산표를 만들어 본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도무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1리터의 음료도 없다.

만약 우리가 대략 항로의 직선 위에 놓여 있다면 1주 일 후라야 발견될 것이고,

그 이상은 바랄 수도 없고 또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우리가 만일 옆으로 벗어나 있다면 여섯 달이나 걸려서야 발견될 것이다.

비행기에 의한 수색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를 3천 킬로 미터나 되는 지역에서 찾아야 할 테니까.

"아아, 유감이다."
쁘레보가 내게 말한다.

"뭐가?"
"단번에 깨끗이 죽을 수 있었는데!"

그러나 그렇게 빨리 단념할 필요는 없다.

쁘레보와 나는 생각을 덜린다.

그것이 아무리 가냘픈 것일지라도

비행기에 의한 기적적인 구원의 찬스를 놓쳐서는 안된다.

또한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어서

어쩌면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오아시스를 놓쳐서도 안된다.

날이 새면 오늘 하루 종일 걸어가보자.

그리고 다시 비행기 있는 데로 돌아오자.

그리고 출발에 앞서 우리의 예정표를 모래 위에 큰 글자로 써두고 가자.

그래서 나는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서 새벽까지 자야겠다.

잔다는 것이 나는 몹시 기쁘다.

피로가 수많은 영상들로 나를 에워싸준다.

나는 사막 속에서도 고독하지 않다.

나의 어렴풋한 잠 속에는 갖가지 목소리와,

추억과, 속삭여진 속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아직은 목마르지 않고 기분이 좋다.

나는 모험에 향하듯이 잠에 몸을 내맡긴다.

현실도 꿈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아아! 그런데 날이 밝았을 때 사정은 아주 딴 판이 아닌가!

 

 

 

 

(4)
나는 사하라를 무척 사랑했다.

나는 여러 밤을 불귀순 지역에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바람이 바다에서처럼 물 이랑을 새겨 놓은 그 황금빛 벌판에서 잠을 깬 적도 있다.

나는 사막에서 비행기 날개 밑에 자면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완만한 구릉의 비탈진 면을 걸어간다.

땅은 반짝거리는 까만 조약돌이 한 켜 온통 뒤덮인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속 비늘이라고나 할까.

우리를 둘러싼 은모래의 돔(둥근 지붕)들은 갑옷처럼 번쩍인다.

우리는 광물질의 세계 속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쇠로 된 풍경 속에 갇혀 있었다.

첫 봉우리를 넘어서니, 그 앞에 또 비슷한 번쩍이는 검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우리는 나중에 되돌아올 때의 표적으로 하기 위해 발로 땅을 긁으면서 걸어간다.

우리는 태양을 향해 전진한다.

내가 이렇게 정동 쪽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은 모든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기상 통보도, 나의 비행 시간도

모두 내가 나일강을 넘어섰다고 믿게 하고 있었으니까.

하기야 아는 서쪽으로 잠깐 동안 가보았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서쪽 방향은 내일로 미루었다.

나는 또 바다로 이끌어 주기는 할 북쪽 방향도 일단 희생시켰다.

 

사흘 뒤, 반 실신상태가 되어 우리가 결정적으로 비행기를 포기하고,

쓰러질 때까지 줄곧 바로 걸어가기로 결심하게 될 때에도

우리는 역시 동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북동 쪽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모든 이론에도, 또 모든 희망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조된 뒤에 우리는 다른 어떤 방향도

우리를 살아 돌아오게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북쪽으로 향했더라면 너무나 지쳐서 바다에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생각에도 이치에 닿지 않아 보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그 방향을 선택하게 할 아무런 표시도 없었으므로,

그때 내가 그 방향을 택한 유일한 이유는 안데스 산 속에서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내 친구 기요메를 구해 낸 것이

바로 그 방향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방향이 내게는 막연하나마 생명의 방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 시간을 걸으니까 풍경이 바뀐다.

모래의 강이 골짜기를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우리는 그 골짜기를 따라 가기로 했다.

우리는 큰 걸음으로 걷는다.

가능한 한 멀리 가야하고, 만약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밤이 되기 전에 되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나는 멈춰 섰다.

"쁘레보."
"왜요?"
"발자국을...."

얼마나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는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잊고 있었던가?

만약 그것을 다시 찾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되돌아간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약간 비껴서, 우리가 꽤 멀리 오고 나서

처음 방향을 향해 직각으로 꺾여서 가면

우리가 잊기 전에 남겨 놓았던 발자국을 찾아낼 것이다.

그 금을 다시 이어놓고 우리는 다시 출발한다.

더위가 더 심해지고, 그와 더불어 신기루들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초기적인 신기루 일 뿐이다.
커다란 호수들이 이루어지더니 우리가 전진하면 사라진다.

우리는 모래 골짜기를 넘어서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지평선을 살펴보기로 작정한다.

우리는 이미 여섯 시간을 걸었다.

우리는 큰 걸음으로 도합 25킬로 미터는 걸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커먼 산등이 꼭대기에 이르러 말없이 주저앉는다.

우리 발 밑에 있는 모래의 골짜기는 흰 빛이 우리 눈을 태우는 듯하다.

눈이 닿은 한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까마득한 지평선에는 빛의 장난으로 벌써 마음을 끄는 신기루를 만들고 있다.

요새며, 회교 사원의 첨탑이며, 직선으로 된 기하학적인 덩어리들.

나는 또 초목을 가장해 보이는 거대한 검은 반점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은 낮이면 흩어졌다가 밤이면 다시 생겨나는

저 구름의 마지막 한 조각에 의해 덮여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적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더 가봤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시도는 아무 곳에도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행기로 되돌아가야 한다.

저 빨갛고 흰 표지가 어쩌면 동료들에게 발견됐을지도 모른다.

공중으로부터의 탐색에 조금도 희망을 걸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내게는 유일한 구원의 기회같이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곳에 마지막 몇 방울의 액체를 두고 왔으며,

벌써 우리는 그것을 꼭 마셔야 할 지경이다.

살기 위해서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갈증이라는 한정된 자치권인 쇠우리에 갇힌 포로다.

그러나 생명을 향해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때 되돌아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저 신기루 너머의 지평선에 진짜 도시며,

단물이 흐르는 운하들이며, 풀밭들이 꽉 들어차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발길을 돌라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무서운 방향 전환을 할 때 나는 파멸로 향한다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비행기 옆에 누웠다.

우리는 60 킬로 미터 이상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액체도 다 마셔버렸다.

우리는 동쪽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고,

또 아무 동료도 이 지역 위를 비행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우리는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벌써 이렇게 목이 마른데...

우리는 박살이 난 날개의 파편을 주워 모아 커다란 분화대를 쌓아 올렸다.
가솔린과 강렬한 흰 빛을 내는 마그네슘 판자를 준비했다.

우리는 불을 붙이기 위해 밤이 아주 캄캄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불꽃이 솟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는 사막 속에 타오르는 신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고요하게 빛나는 우리의 메시지가 밤하늘에 빛나는 것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메시지가 비장한 호소를 싣고 가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많은 애정도 싣고 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물을 마시고 싶지만 또한 서로 통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다른 불이여, 이 밤 속에 켜져라.

사람만이 불을 갖고 있다. 사람이여, 우리에게 대담하라!

내게는 아내의 눈이 보인다.

내게는 그 눈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눈이 묻는다.

수많은 시선들은 떼를 지어 나의 침묵을 나무란다.
대답하지! 대답한단 말야!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대답한다.

밤하늘에 이 이상 더 빛나는 불꽃을 울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거의 마시지도 않고 60킬로 미터를 걸었다.

이제 우리는 더 마실 수도 없다.

더 오래는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잘못일까?

마실것만 있다면 우리는 얌전하게 물통이나 빨면서 여기에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석 컵의 바닥까지 들이마신 그 순간부터 하나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한 방울을 내가 빨아들인 그 순간부터 나는 내리받이 길을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강물처럼 나를 싣고 간다손 치더라도 내가 어떻게 그것을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쁘레보는 운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말한다.

"글렀으면 글렀지, 뭘 그래...."

그가 대답한다.
"내가 뭐 나 때문에 우는 줄 아나?"

그래! 정말 그렇다.

나는 이미 이 명백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견디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도 나는 절반밖에 믿지 않는다.

나는 벌써부터 이런 일을 생각했었다.

나는 한번은 조종실에 갇힌 채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다지 괴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내 머리가 으깨진 줄로 생각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도 튼 사건같이 여겨지지 않았다.

여기서도 지금 나는 별로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이 점에 대해서 더욱 이상한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큰 불을 올렸지만,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어달라는 것은 이미 단념하고 있지 않았던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그래. 그렇다. 바로 이것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눈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당장 일어나서 앞으로 곧바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기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사람들이 난파당하고 있다!

이것은 실로 이상한 주객 전도이지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 왔었다.

다만 나는 완전한 확신을 얻기 위해 쁘레보가 필요했다.

그런데 쁘레보 역시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저 죽음을 앞둔 번민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아, 나는 기꺼이 잠들 생각이다.

그것이 하룻밤 동안이건 여러 세기 동안이건 잠들 것이다.

잠이 들면 그 차이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러나 저 멀리서 사람들이 외칠 그 부르짖음, 그 절망의 크나큰 불꽃들은...

생각만 해도 나는 견딜 수 없다.

이 난파선들은 눈앞에 두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침묵의 1초 1초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학살해 간다.

격한 분노가 내 안에서 부글거린다.

어째서 이 사슬들은 침몰해 가는 사람들을 늦기 전에 구출해 내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일까?

왜 우리의 화롯불은 우리의 외침을 세계의 끝까지 전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참아라! 우리가 간다! 우리가 간다! 우리가 구조대다!

마그네슘은 다 타버렸고 우리의 불은 벌개졌다.

이제 여기에는 우리가 그 위에 구부리고 몸을 쬘 한 더미의 잉걸불밖에는 없다.

우리의 빛의 커다란 메시지도 끝났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무엇을 움직이기 시작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렇다!
나는 그것이 아무것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그것은 귀에 들려지지 못한 하나의 기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