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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오늘의 쉼터 2011. 5. 18. 13:09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5] 오아시스


나는 사막에 대해 이미 많이 이야기했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더 하기에 앞서 오아시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지금 그 모습이 내게 떠오르는 오아시스는 사하라 오지에 숨어 있다.

그런데 비행기의 또 하나의 기적은

당신을 신비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데려다 준다는 그것이다.

당신을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의 개미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다.

당신은 들판에 별 모양으로 벌어져서 동백처럼 논밭의 양분으로 갈리는,

길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 도시들을 냉철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계 위에서 바늘이 한 번 떨자

저 아래에 있는 저 푸른 수풀이 하나의 우주가 되어버린다.

당신은 잠들고 있는 정원 잔디밭의 포로가 된 것이다.

먼 곳을 재는 것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네 어떤 집 정원의 담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도

더 많은 비밀을 둘러싸고 있을 수도 있으며,

한 소녀의 마음이 침묵에 의해서,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모래의 두꺼운 켜로 숨겨지는 것보다 더 잘 감춰질 수 있다.

나는 세계 어느 곳에선가의 짧은 착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꽁꼬르디아 근처에서의 일이었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신비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들판에 착륙했었는데,

내가 동화의 나라를 체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나를 태우고 달리는 그 낡은 포오드 차도,

나를 태워준 그 온화한 부부도 아무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늘밤 우리 집에서 묵으시오...."

그런데 어느 길 모퉁이를 돌아가자,

달빛 아래 숲이 하나, 그리고 숲 뒤에 그 집이 나타났다.

얼마나 이상한 집이었던지! 몽톡하고, 육중한 것이 마치 성과 요새 같았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이 전설의 성은

수도원처럼 평화롭고 안전하고 듬직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 두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들은 금단의 왕국 입구에 서 있는 두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나이 어린 쪽이 입을 뾰족 내밀더니 초록색 나무막대기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소개가 끝나자,

두 처녀는 이상하게 도전적인 태도로 말없이 내게 손을 내밀고는 사라졌다.

나는 재미 있으면서도 매력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이 단순하고 조용하며, 마치 무슨 비밀의 첫 마디처럼 은밀했다.

"이거 참!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요!"

아버지가 간단히 말했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언젠가 파라과이의 수도에서,

포장해 논 돌의 틈바귀로 코끝을 내민 짓궂은 풀잎을 보고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 풀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처녀림의 척후병으로서,

인간들이 여전히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지,

이 돌들을 약간 뒤집어 엎을 때가 되지 않았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큰 풍요함을 나타내주는 이런 황폐의 형태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 집에 들어와서는 감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든 것이 오랜 세월에 다소 금이 간 이끼 덮인 고목처럼,

또한 10세대 전부터 연인들이 앉곤 했던

나무 벤치처럼 아주 매력 있게 황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루바닥은 닳아빠졌고, 문짝은 벌레가 파먹었고, 의자들은 건들거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리는 않는 대신 청소는 깔끔히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했고 밀초로 닦여져서 윤이 났다.

그래서 살롱은 주름살 많은 노파의 얼굴처럼 이상하게 강직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벽의 균열과 천장의 틈새가 모두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마룻바닥에 감탄했다. 여기는 꺼져 들어갔고,

저기는 배의 타랍처럼 출렁거렸지만,

그래도 잘 닦여지고 광을 내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이상한 집은 조금도 소홀히 했다거나,

게을리 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상스런 존경만을 자아내게 했다.

해마다 아마도 이 집의 매력에, 그 모습의 복잡성에,

그 친밀한 분위기의 열정에, 또 응접실에서 식당으로 건너가려면 겪어야 하는

여행의 위험에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보태어져 왔음에 틀림없다.

"조심하십쇼!"
그것은 구멍이었다.

그 집 사람은 내게 주위를 환기시켰다.

보다시피 워낙 큰 구멍이어서 내가 다리 하나 부러뜨리기는 손쉬울 것이라고

이 구멍,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한 일이다.

이 구멍에는 왕자의 품격, 온갖 변명을 아예 경멸하는 위풍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 집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구멍쯤 막을 수야 있죠. 우린 부자니까요.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었지만.

"이 집을 시에서 30년 계약으로 빌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리는 시에서 해야 하는데, 워낙 양쪽이 고집이 세어서...."

그 집 사람들은 설명을 경멸했다.

그 대범함이 내 마음에 들었다.

고작 이런 말을 할 뿐이었다.

"이런! 약간 퇴락해서요."

그것도 아주 가벼운 어조여서,

나는 이 친구들이 그것을 조금도 언짢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생각해 보시오. 미장이, 목수, 가구 수리공,

석고 세공사들의 한 패가 이런 과거 속에 그들의 모욕스런 연장들을 펼쳐 놓고

 1주일도 안돼서 당신이 전혀 알지도 못할 집,

남의 집에 방문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집으로 뜯어 고쳤다면 어떻게 될가를!

그것은 아무런 신비스러움도 없고, 아늑한 구석도 없고, 발 밑에는 함정도 없는,

도시 호텔의 응접실 같은 곳이 되지 않겠는가?

이 요술의 집에서 처녀들이 사라진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집의 처마 밑 방들은 어떨까.

응접실이 이미 다락방만치 풍성함을 보이고 있으니!

응접실의 벙싯 열린 아주 조그마한 장에서도 벌서 누렇게 바랜 편지 뭉치며,

증조할아버지 때의 문서며, 온 집안의 자물쇠 수보다도 더 많은 열쇠들,

그러니 어느 자물쇠에도 맞지 않는 열쇠 꾸러미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우리의 이성을 혼란케 하고, 지하 창고며, 거기 숨겨진 궤짝이며,

그 속의 루비 금화를 연상하게 하는 그 기막히게 쓸데없는 열쇠들.

"어떠세요, 식탁으로 가실까요?"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어느 방에서나 향내처럼 감도는 오래된 서고의 냄새,

온 세상의 온갖 향료보다도 향기로운 그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도 램프 불을 옮겨놓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것은 묵직한 진짜 램프였으며, 나의 소년 시절의 가장 아득한 무렵처럼

그 집 사람은 그것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벽에다 이상한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했다.

그 집 사람은 그 램프 속에 빛의 다발과 검은 종려 잎을 떠오르게 했다.

램프가 자리를 잡고 나자 빛의 해변이 펼쳐지고,

마루바닥만이 삐걱거리는 그 둘레의 널따란 밤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두 처녀가 아까 사라졌을 때와 똑같이 신비롭고 조용하게 다시 나타났다.

그녀들은 정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개와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맑은 밤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저녁바람 속에서 초목의 향기를 맡곤 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들은 냅킨을 펴면서 곁눈으로 조심스럽게 나를 살펴보고 있다.

자기들의 친한 동물들 속에 나를 끼워 줄까 말까 하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그녀들은 갈기도마뱀 한 마리와 망구스 한 마리, 여우 한 마리,

원숭이 한 마리에다 꿀벌까지 기르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들은 한곳에 어울려 살면서 서로 화목하며, 새로운 지상낙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 처녀들은 지상의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그들을 어루만지고, 먹이를 주고, 물을 먹이고,

또 망구스에서 꿀벌에 이르기까지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활발한 두 처녀가 그들의 온 비판력과 예민성을 발휘하여,

마주앉은 남성에 대해서 재빠르고 은밀하며

또한 결정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누이들도 이와 같이

우리 집 식탁에 처음 앉은 손님들에게 점수를 매기곤 했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대화가 중단됐을 때,

침묵을 깨뜨리고 갑자기 이런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11점(프랑스의 학교에서는 대개 20점 만점의 채점법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재미는 누이들과 나밖에는 아무도 몰랐었다.
이런 장난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약간 불안했다.

그리고 내 재판관들이 몹시 영리하다는 느낌 때문에 더욱 거북했다.

그들은 속임수를 쓰는 짐승과 순진한 짐승들을 분별할 줄도 알고,

그들의 여우의 발소리로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도 아는,

속마음의 움직임에 대하여 그렇게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재판관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날카로운 눈과 그렇게 올곧은 작은 마음들을 좋아했으나,

그녀들이 이 장난을 달리 바꾸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굴하게 "11점"에 겁이 나서

그녀들에게 소금 접시를 건네 주고, 포도주를 따라 주기도 했지만,

눈을 쳐들 때마다 그녀들은 이런 것으로는 매수할 수 없을 만큼

얌전하고 의젓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첨은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허영을 몰랐으니까.

그녀들은 허영심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부심에 의해서

내 도움 없이도 자신들에 대해 나의 아첨의 말이 나타냈을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직업의 매력 같은 것을 끌어내어 위신을 세워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지 새 새끼들이 날개가 돋았는가 살펴보거나,

아래를 지나가는 동무들에게 인사나 하기 위해

플라타너스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는 것은 지나친 대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천사들이 말없이 내가 식사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훔쳐 보는 시선과 어찌나 자주 맞닥뜨리는지 나는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무엇인지 마루 위에서 가벼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식탁 밑에서 바스락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이상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자 자기의 시험 결과에 만족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시금석을 써보려는 듯,

그 싱싱하고 야성적인 이빨로 빵을 물어뜯으면서

둘째 소녀가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그것에 놀라는 야만인이라면 놀래 주려는 천진스런 속셈으로.

"살무사들이에요."

그리고 그다지 바보가 아니라면 이 설명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언니가 내 첫 번 반응을 판정하려고 번갯불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둘이 다 더할 수 없이 상냥하고 순진한 얼굴을 접시 위로 숙이는 것이었다.

"아! 살무사로군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내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놈의 살무사가...

다행히도 나는 웃음을 지었다.

아주 예사롭게. 그녀들도 그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즐거웠고, 이 집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살무사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해서.

언니가 나를 도와 주었다.

"구멍 속에 집이 있어요, 식탁 밑에."

"밤 열 시쯤이면 돌아와요."

동생이 덧붙였다.

"낮에는 사냥을 나가구요."

이번에는 내가 두 처녀를 곰곰이 바라보았다.

그 평화로운 얼굴 뒤에 깃들인 그 영리함과 조용한 웃음.

나는 그녀들이 행사하는 임금님 같은 위엄에 감탄했다.

지금 나는 꿈처럼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아득한 옛일이다.

그 두 천사들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아마 결혼을 했겠지. 그렇다면 그녀들은 달라졌을까?

처녀의 위치에서 부인의 위치로 옮겨간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일이다.
새 집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잡초와 뱀들과의 우정은 어떻게 됐을까?

그녀들은 어떤 우주적인 것들과 얽혀 있었는데.
그러나 처녀 속에서 여인이 눈을 뜨는 날이 온다.

그러면 자꾸 19점을 주고 싶어진다.

19점이 마음 속의 무거운 짐이 된다.

그때에 한 바보가 나타난다.

그러면 그렇게도 날카롭던 눈이 처음으로 잘못 보고

그 바보를 아름다운 빛깔로 비춰 준다.

그 바보가 정말 시라도 한 구절 읊으면 그녀는 그를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구멍 뚫린 마루바닥을 이해하고, 망구스를 좋아하는 줄로 안다.

식탁 밑의 제 다리 사이에서

몸을 구불거리는 살무사의 신뢰감을 그가 좋아하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잘 가꾼 정원밖에는 좋아할 줄 모르는 그에게

자연 그대로의 꽃밭 같은 자기의 마음을 줘 버린다.

그러면 그 바보는 공주를 노^36^예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다.

 

[6] 사막에서

(1)

사하라 정기 항공로의 조종사로서 모래밭의 포로가 되어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몇 해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 초소에서 저 초소로 날아다니는 동안에는

이와 같은 따사로움은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이 사막은 그와 같은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다.

정원이니, 처녀들이니, 그 무슨 옛날 이야기란 말인가!

물론 우리가 근무를 끝내고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활할 수 있는

그 머나먼 곳에는 천도 넘는 처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그녀들의 망구스와 책들 틈에서

소녀들은 참을성 있게 달콤한 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정녕 그녀들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독을 알았다.

사막에서의 3년간이 나에게 그 맛을 잘 가르쳐 준 것이다.

거기에서는 광물 적인 풍경 속에서 낡아가는 젊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온 세상이 늙어가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었고, 대지는 밀들을 돋아나게 했고, 여인들은 벌써 아름답다.

그럼에도 계절은 흘러가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계절은 전진하고 사람은 먼 곳에 붙들려 있다.

그래서 땅 위의 재화가 사구의 가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간다.

시간의 흐름은 흔히 사람들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평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목적지에 착륙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역풍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밤중에 요란스럽게 차축의 소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급행 열차의 여객과도 같다.

그는 차창 밖으로 휙휙 던져지듯 지나가는 한 줌의 빛으로

그곳의 번쩍이는 들판이며, 자기 마을의 모습이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짐작할 뿐이며,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가벼운 열기를 띤 채 조용한 착륙장에 서 있으면서도

아직 비행기 소리로 귀가 멍멍하여 비행중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바람의 중역을 뚫고 미지의 미래로 끌려가고 있음을

우리의 심장의 고동으로써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막에다 불귀순민들까지 겹쳐지나.

쥐비의 밤은 15분마다 시계 치는 소리에 의하기나 한 것처럼 토막내어져 있다.

보초들은 차례차례로 규정된 큰 소리로 경보를 전해 준다.

불귀순 지구 속에 고립돼 있는 그곳의 스페인 요새는

이렇게 하여 모습이 안보이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먼 배의 승객과도 같은 우리는 이 외침 소리가 차례차례로 퍼져 나가서,

우리들 위로 해조의 둥근 궤도를 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막을 사랑했었다.
사막이 언뜻 보기에 공허와 침묵뿐인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애인에게는 몸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의 그 하찮은 마을조차도 자기 몸을 감춘다.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일 그 마을의 전통이며, 풍습이며, 경쟁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결국 그 마을이 어째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인지 모르고 만다.

게다가 우리 바로 곁에 자기 수도원에 갇혀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살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티벳의 고독 속에,

어떤 비행기도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없는 외딴 곳에 솟아나 있는 셈이다.

그의 독방을 찾아가 보았자 무슨 소용이랴! 그곳은 텅 비어 있다.

인간의 왕국은 내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막도 결코 모래나, 뚜아렉족이나,

또는 소총으로 무장한 모르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갈증을 겪어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사막이라는 우물이

넓은 공간 위에 빛나고 있음을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인도 이렇게 온 집안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우물이란 사랑처럼 멀리 미치는 것이다.

사막은 처음에는 인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랍인 유격대의 습격이 두려워,

그들이 몸에 두른 큰 망토의 주름들을 모래 위에서 판독해야 할 날이 온다.

이리하여 그들 역시 사막을 변모시킨다.
우리는 놀이의 규칙을 받아들였고, 그 놀이는 우리를 제 모습대로 만들어 버린다.

사하라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이다.

사막에 접근한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샘으로써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일이다.

(2)

나는 첫 비행 때부터 사막의 맛을 알았다.

리겔과 기요메와 나는 누아쇼트 초소 부근에 불시착했었다.

이 모리타니아의 작은 초소는 당시 바다 한가운데

작은 외딴섬만큼이나 모든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이 먹은 중사 하나가 15명의 세네갈 병사들과 함께 거기 갇혀서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하늘에서 온 사자인양 환영했다.
"야아! 이거, 당신네들과 얘기를 하게 되다니...

이 기분을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아아! 정말!"

아닌게 아니라 그는 울고 있었다.

"여섯 달만에 당신네들이 처음이오 식량 보급이 여섯 달마다 한 번씩이니까.

중위님이 올 때도 있고, 대위님일 때도 있죠. 지난번은 대위였지요."

우리는 아직도 정신이 멍해 있었다.

점심 준비를 하고 있을 다까르에서 2시간 거리인데,

연간축받이가 터지니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울고 있는 늙은 중사를 위해 유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 드십시오, 포도주를 드리는 것이 기쁩니다.

생각 좀 해보십쇼. 대위님이 왔을 땐 그분에게 드릴 포도주가 없었거든요."

나는 이것을 어느 책(남방 우편기. 역주)에 쓴 일이 있지만,

그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건배조차 못했단 말입니다.

나는 하도 창피해서 전출신청까지 냈었어요."

"건배!" 땀에 범벅이 되어 낙타 등에서 뛰어내린 사람과

잔을 찰깍 부딪치며 하는 "건배!" 이 순간을 위해 여섯 달 동안을 살아온 것이다.

한달 전부터 이미 무기에 광을 내고, 초소를 지하실에서부터 처마 밑까지 닦아 왔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이 축복 받은 날이 가까워 옴을 깨닫고,

전망대 위에서 끊임없이 지평선을 살펴보며,

아따르의 이동 부대가 뒤집어쓰고 나타날 그 먼지를 발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포도주가 없어서 이 축제를 베풀 수가 없다.

건배를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체면이 깎였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가 다시 오길 몹시 고대하고 있어요. 나는 그를 고대합니다."
"그가 어디 있는데요, 중사?"

그러자 중사는 광막한 모래밭을 가리켰다.
"알 순 없지만, 대위님은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초소의 망대 위에서 별들 이야기를 하며 지샌 그 밤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방 우편기. 역주) 감시할 것이라고는 별밖에 없었다.

별들은 거기에도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 다름없이 가득 차 있었다.

다만 고정되어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별이 무척 아름다운 밤이면,

비행기에서 거의 조종을 하지 않고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기체는 차츰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오른쪽 날개 아래로 마을이 하나 보여도 아직도 비행기가 수평인 줄로만 안다.

사막 속에 마을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바다의 어선 떼겠지.

그러나 사하라 한복판에 고기잡이 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면? 그때서야 착오를 깨닫고 웃음이 난다.

천천히 비행기를 바로잡는다.

그러면 마을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는 떨어뜨렸던 성좌를 그림판에 다시 건다.
저것을 마을이라고? 그렇다. 별들의 마을이다.

그러나 초소 위에서 보면 얼어붙은 듯한 사막과

움직임이 없는 모래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잘 걸려 있는 성좌들. 그래서 중사도 우리에게 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 보십쇼! 나는 방향에는 환해요. 저 별이 있는 쪽이 바로 튀니스죠!"
"튀니스에서 왔소?"
"아아뇨. 내 사촌누이가 있죠"

그는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중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다.

"언젠가는 나도 튀니스로 가겠어요."

그럴 테지. 그러나 그것은 저 별 쪽으로 가는 게 아니 딴 길로 해서일 것이다.
원정하는 어떤 날, 우물이 말라서 그를 정신 착란의 시상에나 붙잡히기 전에는.
그렇게 되면 저 별도, 사촌누이도, 튀니스도 모두 뒤범벅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남들에게는 고통스럽게 여겨질 그 영감에 의한 행진이 시작될 것이다.

"한번은 대위님에게 튀니스로 사촌누이 일로 휴가를 신청한 일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 대답이...."

"그래, 그 대답이?"
"그 대답은 이랬어요.

 "세상에는 사촌누이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더 가깝다면서 다까르로 보내 주더군요"

"그래, 사촌누이는 예쁘던가?"
"튀니스의 누이 말이오? 물론이죠. 금발이었어요."
"아니, 다까르의 누이 말이오."

중사여, 약간은 억울하고 쓸쓸한 듯한 대답을 듣고 우리는 당신을 껴안기라도 하고 싶었다.

"아, 그건 검둥이였어요...."

중사여, 사하라는 당신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당신 쪽으로 끊임없이 걸어오는 하느님이었다.

그것은 또한 5천 킬로 미터의 사막 저편에 있는 금발의 사촌누이의 다사로움이기도 했다.

사막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내부에 생겨나는 그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는 그것이다.

우리 또한 그날 밤에 한 사촌누이와 한 대위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3)
불귀순 지역과 접경해 있는 뽀르 에띠엔은 도시가 아니다.

그곳에는 초소와, 격납고와,

우리 회사의 승무원들을 위한 바라크가 한 채 있을 뿐이다.

둘러싸고 있는 사막이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빈약한 군사 시설에도 불구하고 뽀르 에띠엔은 난공불락이다.

그것을 공격하려면 굉장한 모래와 폭염의 넓은 띠를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아랍인 습격대들은 기진맥진하고 물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그 곳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한 옛날부터,

북쪽 그 어디엔가에서 뽀르 에띠엔을 향해 진격해 오는 습격대들이 항상 있었다.

사령관인 대위가 우리한테 차를 마시러 올 때마다

그는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습격대의 진격로를

마치 아름다운 공주의 전설을 이야기하듯 그려 보여 주곤 했었다.

그러나 그 습격대는 강물처럼 모래에 빨려 들어갔는지 결코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유령 습격대라고 불렀다.

정부가 나누어 준 수류탄과 탄약통들도

밤이면 우리 침대 밑의 상자 속에서 잠을 잔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우리의 비참함에 보호받아,

침묵이라는 적 외에는 싸울 상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행장 주임인 뤼까는 낮이고 밤이고 축음기만 틀어놓고 있다.

그 축음기는 생명의 저 먼 곳으로부터 반은 잊어버린 말로

우리에게 말을 하면서 야릇하게도 갈증과 비슷한

목적 없는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초소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사령관 대위는 그의 정원자랑을 했다.

그는 정말 프랑스에서 보낸 진짜 흙이 들은 궤짝 셋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4천 킬로 미터를 건너온 것이다.

거기에는 파란 잎이 3개 돋아나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보석처럼 손끝으로 어루만진다.

대위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 공원이오."
그리고 모든 것을 말려 벌리는 모래 바람이 불 때면 이 공원은 지하실로 내려간다.

우리는 초소에서 1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

래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달빛을 이고 우리 초소로 돌아온다.

달빛을 받으면 모래는 분홍빛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빈곤만을 느끼는데, 모래는 분홍빛이다.

그러나 보초의 부르짖음이 온 세상에 감동을 되찾게 한다.

우리들의 그림자에 놀란 사하라 전체가 우리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아랍 습격대가 진격 중이니까.

보초의 부르짖음에 사막의 모든 소리가 메아리 친다.

사막은 이제 빈집이 아니다. 모르인의 대상이 밤에 자기를 띄운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가! 질병이니, 사고니, 습격대니,

이 얼마나 많은 위협들이 전진해 오고 있는가!

인간은 보이지 않는 사격수들을 위한 땅 위의 과녁이다.

그리고 세네갈 사람인 보초가 예언자처럼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프랑스인 이다!"라고 대답하고 그 검은 천사 앞을 통과한다.

그러면 숨을 들이킨다.

이런 위협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귀함을 되돌려 주었던가...

오오! 그 위협은 아직 몹시도 멀리 있고,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그 숱한 모래들에 의해 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이미 전과 같지 않다.

이 사막은 다시 사치스러워진다.

어디에선가 전진 중이면서 결코 여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습격대가

이렇게 해서 자기의 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지금은 밤 11시다.

뤼까가 무전 국에서 돌아와 자정쯤에 다까르발 비행기가 도착한다고 알려 준다.

기상에는 모든 것이 이상 없다.

0시 10분이면 우편물을 내 비행기에 옮겨 싣고 나는 북쪽을 향해 이륙할 것이다.

쪽이 떨어진 거울 앞에서 나는 조심스레 면도를 한다.

이따금 수건을 목에 건 채 나는 문 앞으로 가서 발가숭이 모래밭을 바라본다.

날씨는 좋지만 바람이 잤다. 나는 거울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러 달을 불던 바람이 자면 온 하늘을 어지렵혀 놓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복장을 갖춘다.

비상 신호등을 허리띠에 매고, 고도계며, 연필을 챙긴다.

오늘 밤 내 무전사가 될 네리 한테로 간다.

그도 면도를 하고 있다. 그에게 말을 건넨다.

 "어떤가?" 지금으로선 만사 OK이다.

이러한 예비 작업은 비행에 있어 가장 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푸드득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내 램프에 잠자리 한 마리가 부딪친 것이다.

왠지 모르나 그 잠자리가 내 가슴을 죄인다.

다시 한번 밖에 나가서 바라본다. 모든 것이 맑다.

비행장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절벽이 날이 샐 때처럼 하늘에 또렷이 드러나 보인다.

사막 위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깊은 침묵이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록나비 한 마리와, 잠자리 두 마리가 내 램프에 와 부딪친다.

나는 또 다시 야릇한 감상에 싸인다.

그것은 어쩌면 기쁨일지도, 불안감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나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아직은 막연하고, 이제 겨우 드러났을 뿐이다.

누가 아주 멀리서 내게 말한다.

이것이 본능이란 것일까? 나는 또 밖으로 나간다.

바람은 완전히 자 버렸다. 여전히 서늘하다.

그런데 나는 어떤 예고를 받았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렸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 착각일까? 하늘도 모래도 아무런 징후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두 마리의 잠자리가 내게 말해 주었고, 또 초록나비도 그랬다.

나는 모래언덕에 올라가 동쪽을 향해 앉는다.

만약 내가 옳다면 그것은 오래지 않아 올 것이다.

오지의 오아시스에서 수백 킬로 미터나 떨어진

이곳에 잠자리가 무엇을 찾아왔단 말인가?

바닷가에 밀려 온 하찮은 표류 물들이 바다를 휩쓰는 사이클론 태풍의 증거가 된다.

마찬가지로 이 곤충들도 열사의 폭풍이,

멀리 야자나무 숲에서 그 초록나비를 쫓아낸 동쪽으로부터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내게 가르쳐 준다.

그 거품이 벌써 나를 스쳤다.

그리고, 하나의 증거이기에 장엄하게,

중대한 위협이기에 장엄하게,

또한 그것이 폭풍을 머금고 있기에 장엄하게

이 동풍은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가느다란 한숨이 이제 막 내게 와 닿았을까 말까이다.

나는 그 물결이 다가와 핥는 마지막 경계석이다.

내 뒤 20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천막 하나 펄럭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뜨거운 기운은 단 한 번 죽음 같은 애무로 나를 휩쌌다.

그러나 나는 다음 순간에는 사하라가 숨을 돌이켜

두 번째 입김을 내뿜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는 3분도 못가서 우리 격납고의 통풍 통이 떨리기 시작할 것이다.

10분도 못가서 모래가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곧 이 불길, 사막이 내뿜는 불길 속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을 흥분하게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야만적인 기쁨으로 나를 채워 주는 그 것은,

천지의 비밀의 언어를, 귀띔만으로도 내가 알아차렸다는 것이며,

모든 미래가 가벼운 웅얼거림으로 예고되는 원시인처럼,

어떤 발자국을 내가 냄새 맡아냈다는 것이며,

또 그 천지의 분노를 한 마리 잠자리의 날개가 푸덕임에서 읽어냈다는 사실이다.

 

(4)
그곳에서 우리들은 불귀순 모르인들과 접촉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

우리가 비행할 때 넘어 다니는 지역 안쪽에서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빵이나, 설탕이나, 차를 사러 쥐비나 시스네로스 초소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났다가는 다시 그들의 신비속으로 잠겨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가는 그들 중의 몇을 구슬려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유력한 두목일 경우에는 그들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회사 간부의 동의를 얻어 가끔 비행기에 태워주기도 했다.

그들의 오만을 꺾는 것이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포로로 한 백인들을 학살하는 것은

증오에서보다는 오히려 경멸때문이었으니까.

초소 근처에서 우리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들은 욕설조차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외면을 하면서 침을 뱉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만은 자기네들의 힘에 대한 착각에서 오는 것이다.

소총 3백 정의 군대를 전투 준비시켜 놓고는

그들 중의 얼마나 많은 자가 이런 말을 나에게 되풀이했던가.

"당신들은 운이 좋소. 걸어서 백 날이나 걸릴 프랑스에 있으니 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여행시켜 주었고,

그들 중의 세 사람은 그 미지의 프랑스까지 방문했다.

그들은 언젠가 나를 따라 세네갈에 갔을 때

나무들을 처음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 패들과 같은 종족이었다.

내가 그들을 자기네 천막 속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나체의 여인들이 꽃들 가운데에서 춤추는

뮤직 홀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무도 샘물도 장미꽃도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시냇물이 흐르는 정원이 있다는 것을

 "코란"에 의해서만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30년 동안의 비참한 생활 끝에 이교도의 총탄을 맞고

모래 위에서 쓰라린 죽음을 함으로써 그런 천국과,

거기 갇혀 있는 미녀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라신은 그들을 속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보화가 주어져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 신은 갈증의 보상도, 죽음의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 그 늙은 두목들이 생각에 잠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천막 주위에 인적 없이 펼쳐져 있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찮은 기쁨밖에 주지 않는 사하라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신세타령을 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래도... 프랑스 사람들의 신이...

모르인의 신이 모르인에게 해주는 것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더 잘 해주는 것 같아!"

몇 주일 전에 그들을 사보아에 데리고 간 일이 있다.

안내인이 그들을 포효하는 원기둥을 꼬아놓은 것 같은 굉장한 폭포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맛을 보시오"
안내인이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단물이었다.

물! 여기서는 가장 가까운 우물에 가려 해도 며칠을 걸어야 하며,

또 그것을 찾아냈다 해도 그 속에 메워진 모래를 파내어,

낙타 오줌이 섞인 흙탕물이 나오기까지 몇 시간이 걸려야 했던가!

물! 쥐비 곶이나, 시스네로스나, 뽀르 에띠인에서는 모르인 아이들이 돈을 달라지 않는다.

빈 깡통을 손에 들고 그들은 물을 구걸한다.

"물 좀 줘요, 물...."
"얌전하게 굴면 준다."

물 한 되가 금 한 되 값이 나가는 물 한 방울만으로도

모래에서 풀의 초록빛 불꽃을 끌어낼 수 있는 물.

어디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사하라는 대 이동으로 활기를 띤다.

많은 부족들이 3백 킬로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돋아나올 풀을 찾아 내려간다.

그런데 그렇게도 인색하고, 뽀르 에띠엔에서는

10년 내내 한 방울도 떨어진 적이 없는 그 물이

거기에서는 바닥 없는 저 수통에서 온 세계의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울부짖어대는 것이었다.

"이제 갑시다."

안내인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있게 해주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엄숙히 벙어리가 되어,

이 장엄한 신비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의 뱃속에서 솟아나오는 그것은 생명이었고, 사람의 피 바로 그것이었다.

1초 동안에 쏟아지는 물이면, 갈증에 못이겨

소금과 신기루의 호수의 무한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은

저 많은 대상들을 소생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이 여기에 나타나 있었다.

어찌 그에게 등을 돌리고 갈 수 있으랴.

신은 그의 수문을 열고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의 모르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얼 더 보겠다는 거요? 갑시다."
"기다려야지."
"기다리다니, 무얼?"
"끝을."

그들은 신이 자기의 미치광이 짓에 지쳐버릴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워낙 인색한 신이니까 이내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은 천 년째나 흐르고 있는 걸...."

그래서 오늘밤에 그들은 폭포에 대해서는 고집부리지 않는다.

어떤 기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그보다도 그것을 너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네 신을 의심하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의 신은, 아무래도...."

그러나 나는 나의 미개인 친구들을 잘 안다.

그들은 지금 신앙이 흔들리고, 넋이 나가

금방이라도 귀순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있다.

그들은 프랑스군 보급대로부터 보리를 보급 받고,

우리 사하라 부대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순만 하면 물질적 이득을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셋은 뜨라르자의 추장 엘 맘문의 혈족이다.

(이 이름은 틀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우리의 부하였을 적에 알았다.

그 공으로 공적인 명예가 허용되었고 총독에 의해 부자가 되었고,

여러 부족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는 세상의 영화에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어느 날 밤, 그와 사막을 동행하던 장교들을 학살하고,

낙타와 소총을 빼앗아 불귀순 부족들한테로 돌아갔다.

앞으로는 사막에서 추방될 이 한 두목의 영웅적이고도 절망적인

이러한 불의의 반항과 도주, 오래지 않아 아따르의 이동기병대의 탄막 앞에서

봉화처럼 사라져버릴 이 잠시 동안의 영광을 사람들은 배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미치광이 짓에 놀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 맘문의 이야기는 다른 여러 아랍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늙어갔다. 늙으면 사람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자기가 이슬람의 신을 배반했다는 것과,

또 자기에겐 치명적인 계약 조인을 기독교도의 손에 함으로써

자기 손을 더럽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보리나 평화가 그에게 무슨 소용이었던가?

낙오된 무장이 양치기가 된 것쯤인 그는 사하라에 살던 때를 회상하는 것이다.

거기는 모래의 주름마다에 감추어진 위협으로 풍요로웠고,

밤에 전방으로 이동한 야영에서 불침번이 파견되었고,

적의 동정을 알리는 정보들이 화톳불 주위에서 기슴을 뛰게 하던 일들을.

그리고 한 번 맛보기만 하면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저 큰 바다의 맛을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모든 위엄을 잃어버린 평온한 모래 위를

아무 영광도 없이 헤매고 있다.

오늘이야말로 그에게 사하라는 사막이다.
그가 암살했던 장교들을 어쩌면 그는 존경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라신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안녕히 주무시오. 엘 맘문."
"신이 그대를 보호하시기를!"

장교들은 담요를 둘둘 말고, 뗏목 위에서처럼 별을 향해 모래 위에 눕는다.

뭇 별들이 천천히 들고, 온 하늘이 시간을 새겨 간다.

달은 자신의 "예지"에 의해 무에로 이끌려 모래밭 위로 기울어진다.

기독교인 장교들은 이내 잠이 들 것이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별들이 반짝이게 되겠지.

그러면 타락한 부족들에게 지난 날의 영광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만이 모래를 빛나게 하는 그 추격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의 잠 속에 잠겨 들어간 저 기독교들의 조그만 부르짖음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제 몇 초만 더 지나면, 그 돌이킬 수 없는 일에서 하나의 세계가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잠든 훌륭한 중위들은 학살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