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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오늘의 쉼터 2011. 5. 18. 13:24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5)

쥐비에서 오늘 케말과 그의 동생 무얀이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들의 천막에서 차를 마신다.

무얀이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그는 입술 위까지 덮는 남색 베일을 벗지 않는다.

그것은 미개인의 경계의 표시다.

케말만이 나에게 말을 하며 경의를 표한다.

"내 천막도, 낙타도, 아내들도, 노예들도 모두 당신 것이오."

무얀은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 형에게 몸을 숙여 몇마다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문다.

"뭐라고 하는 거요?"
"보나푸가 게이바네 낙타를 천 마리나 강탈해 갔다는군요."

아따르의 낙타부대 장교인 이 보나푸 대위를 나는 모른다.

모르인들 사이에서의 그의 전설같은 이름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이 형제들은 그에 대해서 분개하며 말하자면,

 마치 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의 존재가 사막에 가치를 부여한다.

오늘도 그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남쪽으로 진격중인 아랍인 습격대의 배후에 나타나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재물을 구하기 위해

되돌아가도록 만들고는 수백 마리의 낙타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사장과도 같은 이 출현으로 이따르를 점령하고는

석회암 고지에 야영하면서, 잡으러 오라는 불모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위력은 대단해서 부족이 그의 군도를 향해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얀이 더 거칠게 나를 바라보며 또 뭐라고 지껄인다.

"뭐라고 하는 거요?"
"우리도 내일 보나푸에게 진격한다. "소총 3백 자루로,"라고 하는군요."

나도 무엇인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미 사흘 전부터 뻔질나게 우물가로 끌고 가는 낙타들이며,

그 수군거림과 그 열정. 눈에 보이지 않는 범선을 채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밀고 갈 바닷바람은 벌써 일고 있다.

보나푸 때문이 남쪽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영광에 가득 찬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출발이 증오를 품은 것인지,

사랑을 내포한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암살해야 할 그렇게도 훌륭한 적을 가졌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그가 모습을 나타내면, 그 근처의 부족들은 정면으로 맞닥뜨릴까봐 겁이 나

천막을 걷고 낙타들을 끌어 모아 도망치지만,

극히 먼 데 있는 부족들은 사랑과도 비슷한 현기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들은 천막의 평화에서, 여인들의 포옹에서,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와,

두 달 동안이나 남쪽으로 기운 빠지는 행군을 하고,

타는 듯한 갈증을 참고, 모래바람 밑에서 웅크리고 기다리고 하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아따르의 이동 부대를 만나,

신이 허락한다면 거기서 보나푸 대위를 죽인다는,

그 일만큼 훌륭한 일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보나푸는 힘이 세오."
케말이 고백한다.

이제야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겠다.

그것은 마치 한 여인을 욕망 하는 뭇 남자들이,

여인의 냉담한 산책의 발걸음을 꿈꾸면서,

그들의 꿈속까지 따라와 괴롭히는 그 냉담한 산책에 속 태우거나

몸이 달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듯이,

먼 곳에서의 보나푸의 발걸음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덤벼드는 습격대를 교묘히 비켜가면서, 이 모르인 차림의 기독교도는

2백 명의 모르인 역적들 선두에 서서 불귀순 지구로 침입해 들어갔다.

그곳은 프랑스의 속박을 벗어난 그의 부하들이 제일 하급자조차도

벌 받지 않고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기의 신을 위해

돌상 위에 제 몸을 제물로 바칠 수 있으며,

또 거기서는 이 신의 위력만이 그들을 제지 할 수 있으며,

그의 약점조차도 그들을 떨게 한다.

그래서 오늘 밤도 모르인의 어설픈 잠 속을 멋대로 오락가락하면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사막 복판에까지 울리는 것이다.

무얀은 천막 안쪽에서 푸른 화강암에 새겨진 그림처럼

여전히 꼼짝도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오직 두 눈과, 이제는 장난감이 아닌 은제 단도만이 번쩍인다.

습격대에 가담한 뒤로 그는 얼마나 변했던가!

그는 그전과는 달리 자신이 고귀하다고 깨닫고, 그의 경멸로써 나를 압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보나푸를 향해 진격할 것이고,

사랑과 아주 흡사한 증오에 부추김을 받아 내일 새벽에는 진격할 것이니까.
그는 다시 한번 형에게로 몸을 숙이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뭐랍니까?"
"요새에서 떨어진 데서 만나면 당신을 쏘겠다군요."
"왜요."
"당신은 비행기와 무전기와 보나푸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무얀은 조각과 같은 주름이 달린 푸른 베일 속에서 꼼짝도 않고 나를 재판한다.

"당신은 염소처럼 샐러드를 먹는다. 당신은 돼지처럼 돼지를 먹는다.

당신네 여자들은 수치심 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많이 봤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도무지 기도를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비행기도, 무전기도, 보나푸도 무슨 소용인가?

진리도 없으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나는, 자유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

(사막 안에서는 사람이 항상 자유로우니까),

눈앞의 재화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사막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지 남모를 왕국만을 지키고 있는 이 모르인들을 감탄한다.

모래 물결의 침묵 속에 보나푸는

늙은 해적 모양으로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 덕택으로 쥐비 곳의 이 야영지는 이제 한가로운 목자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보나푸라는 폭풍이 그 옆구리를 위협하고,

그 때문에 밤이면 사람들은 천막들을 밀집시키고 잔다.

침묵이 남쪽에서는 얼마나 가슴을 조이게 하는가!

그것은 보나푸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늙은 사냥꾼 무얀은 바람 속을 걸어오는 보나푸의 발자국에 귀를 기울인다.
마침내 보나푸가 프랑스로 돌아간다면, 그의 적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울 것이다.

마치 그의 출발이 그들의 사막에서 한쪽 끝을 빼앗아 갔거나,

그들의 생활에서 위신의 한 부분을 빼앗아 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왜 가버렸소, 당신에 보나푸는?"
"글쎄요...."

그는 자기 생명을 그들의 생명에 걸고 지내 왔다.

그것도 여러 해 동안이나, 그는 그들의 규율을 자기의 규율로 삼아 왔다.

그는 그들의 돌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끊임없는 추격 속에서 그도 또한

그들과 같이 별과 바람으로 된 바이블(코란)의 밤을 알았다.

이제 그는 떠나면서 그가 꼭 필요해서

이 도박을 해온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는 시원스럽게 자리를 뜬다.

그래서 그 노름판에 혼자 남겨둔 모르인들은,

이제는 사람들을 피와 살과 함께 끌고 들어가게 했던

이 생명의 도박에 대한 신념을 잃고 만다.

그들은 아직도 그를 신뢰하고 싶어 한다.

"당신네 보나푸 말이오. 꼭 돌아오겠지요?"
"글쎄요."

그가 돌아올 거라고 모르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유럽의 도박만으로는 그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장교클럽에서의 브리지도, 승진도, 여인들도 잃어버린 고귀함을 잊지 못해

한 걸음 한 걸음이 사랑을 향해 가는 발걸음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이 사막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여기에는 다만 모험으로 살았을 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고향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일하고 진정한 보화는

이곳 사막에서만 가졌었다는 것을 그는 환멸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사막의 매력이며, 이 밤, 이 침묵과, 이 바람과 별들의 나라를.

그리고 어느 날 보나푸가 다시 돌아오면,

그 소식은 첫 밤부터 불귀순 지구에 퍼질 것이다.

사하라의 어딘가에 2백 명의 부하들 한가운데서

그가 자고 있다는 것을 모르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침묵 속에 낙타들을 우물가로 끌고 갈 것이고,

저장 보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총 놀이 쇠를 검사할 것이다.

그 증오 또는 그 애정에 부추김 받아서.

 

 

(6)
"비행기에 숨겨서 마라께시로 데려다 주시오...."

매일 저녁 쥐비에서 모르인들의 이 노^36^예는 이런 짧은 기도를 내게 올리곤 했다.

그러고는 살기 위해서 가능한 일을 다했다는 듯이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내 차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를 고쳐 줄 수 있는 유일한 의사에게 내맡겼고,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신에게 청원했다고 생각하고

하루 동안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주전자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자기 생애의 단순한 모습들과,마라께시의 검은 땅들과,

장미빛 집들과, 몽땅 빼앗긴 하찮은 재산들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는 내 침묵도, 그에게 생명을 주기를 지체하는 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며,

언젠가는 자기 운명 위에 불게 될 순풍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개 조종사일 뿐이고, 쥐비 곶에서 몇 달 동안 비행장 주임 일 뿐이며,

재산이라고는 스페인 요새에 기대 세운 바라크 하나와

그 안의 대야 하나, 짠물이 든 주전자 하나, 짤막한 침대 하나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나로서는 내 능력에 대해서 환상을 가질 수 없었다.

"바르끄 영감, 좀 두고 봅시다...."

노예들은 모두 바르끄라고 불린다.

그래서 그도 바르끄다.

붙잡힌지 4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 체념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임금이었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바르끄, 자네는 마라께시에서 무얼 했나?"

그의 아내와 아이 셋이 아직 살고 있을 마라께시에서 그는 훌륭한 직업을 가졌었다.

"나는 가축 몰이꾼이었읍죠. 이름은 모하메드였구요!"

거기서는 높은 사람들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었다.

"모하메드, 팔 소가 있다. 산에 가서 끌고 와라."

아니면,

"들판에 양 천 마리가 있다. 그걸 더 높은 목장으로 몰고 가라."

그러면 바르끄는 올리브 나무 지팡이를 들고 그들의 이주를 지휘하는 것이었다.

많은 양들의 유일한 책임자로서,

새끼 가진 어미 양을 위해서 빠른 놈들의 걸음을 늦추고 게으른 놈들은 재촉하면서,

그는 모든 양들의 신뢰와 복종 속에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어떤 약속의 땅을 향해 그들이 올라가고 있는지를 자기만이 알고,

별들을 보고 길을 찾는 것도 자기만이 알고,

 양들에게는 나누어 줄 수 없는 지식들을 무겁게 몸에 지닌

자기의 지혜로써 쉴 시간이며 샘터로 가는 시간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그들의 잠 속에 홀로 서서 그 많은 무지와 연약함을 측은히 생각하면서

무릎까지 양털에 묻힌 채, 의사이며, 예언자이며, 왕이기도 한 바르끄는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 드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랍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가축을 찾으러 우리와 함께 남쪽에 가자."

그를 오랫동안 걸리더니 사흘 후에 산 속 깊이 불귀순 지구 경계로 접어들자,

그는 간단히 붙잡혀서 바르끄란 이름으로 팔리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노예들도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차를 마시기 위해 천막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맨발로 푹신한 양탄자 위에 누워 나는 하루가 지나갔음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그 양탄자는 그들 유목민들의 사치품이며,

그들은 그 위에 그들의 잠시 동안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역력히 느껴진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는 짐승들도 사람들도 죽음을 향해 가는 것만치나

확실하게 저녁이라는 커다란 물구유를 향해 걸어간다.

이러한 무위함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온종일 바다로 가는 길처럼 아름답다.

나는 그 노예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주인이 보물상자에서 풍로니, 주전자니, 컵들을 꺼내 놓으면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그 상자 속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물건들이 묵직하게 들어 있다.
열쇠 없는 자물통이니, 꽃 없는 꽃병이니, 서푼짜리 거울이니, 낡아빠진 무기들,

이런 것들 이 사막 한가운데 밀려 와 있어 난파선의 조각들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 노예는 묵묵히 풍로에 마른 가지를 얹고 불씨를 붙이고 주전자를 채우고 하며,

어린 계집애면 될 일에 삼나무라도 뽑을 수 있는 근육을 움직인다.

그는 온순하다. 그는 차를 끓어내고, 낙타를 돌보고, 밥을 짓고 하는 일에 열중한다.

찌는 듯한 태양 아래서는 밤을 향해 걸어가고,

얼음같이 찬 벌거숭이 별들 아래에서는 찌는 듯한 태양을 그리워하면서.

4계절의 변화가 여름이면 눈의 전설을,

겨울이면 태양의 전설을 이루어주는 북쪽 나라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한증막 속에서 별다른 변함이 없는 열대지방은 불행하다.

그러나 낮과 밤이 사람들을 이 희망에서

그렇게도 간단하게 오가게 해주는 이 사하라는 역시 행복한 곳이다.

가끔가다 검둥이 노예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 바람을 맛보고 있다.

이 포로의 둔중한 육체 속에는 이제 추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유괴되던 때의, 지금의 어둠 속으로 그를 거꾸러뜨린 사나이의 팔이며,

고함소리며, 주먹질 따위가 겨우 생각날 뿐이다.

그때 이후로 그는 소경처럼 세네갈의 느린 강물도,

남부 모로코의 흰 암석의 도시들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처럼 그리운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이상한 잠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이 흑인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병들었다.

어느 날 이 유랑민들의 생활 속에 굴러들어, 그들의 이동에 매이고,

그들이 사막에 그리는 궤도에 평생동안 붙들려버린 그가,

그때부터 그의 과거니, 그의 집이나, 그의 처자식이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런 것들과 무슨 공통된 것을 간직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위대한 사랑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그것을 잃고 나면

자기의 고독하고 높은 신분에 싫증이 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겸손하게 삶에 접근하여 평범한 사랑으로 자기들의 행복을 만든다.

그들은 체념하고 몸을 굽혀 평온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음 편함을 깨닫는다.

노예는 주인의 불씨로 자기의 자랑을 삼는다.

"자아, 마셔라."

가끔 주인이 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모든 피로와, 모든 심한 더위에서 놓여나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저녁의 시원함 속에 들어가고 있으므로

주인이 노예에게 어질어졌을 때다.

그래서 주인은 차 한 잔을 노예에게 준다.

그러면 노예는 감격에 겨워, 그 차 한 잔 때문에 주인의 무릎에 입을 맞추게까지 된다.

노예가 쇠사슬에 매여 있는 일은 없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도 충실한데!

그는 현명하게도 박탈당한 검둥이 왕을 자기 속에서 배척한다.

그는 이제 행복한 포로일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그는 해방될 것이다.

그가 먹는 식량이나 입는 옷에 알맞은 값어치가 없을 만큼 너무 늙으면

그는 분에 넘치는 자유를 허락 받는다.

사흘 동안 그는 이 천막에서 저 천막으로 다니며 헛되이 사정할 것이다.

하루하루 몸은 더 허약해진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끝날 무렵,

언제나 그렇듯이 얌전하게 모래 위에 드러누울 것이다.

나는 쥐비에서 알몸으로 죽어 가는 노예들을 본 일이 있다.

모르인들은 그들의 죽을 때의 오랜 괴로움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있지만 잔인성은 없다.

모르인의 아이들은 그 검은 표류물 옆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날이 새면 그것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지 보기 위해 달려가지만

늙은 종을 조롱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극히 자연적인 질서였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너는 일을 잘했다. 그래서 잠들 권리가 있다. 자아, 이제 자거라."

그는 여전히 누운 채 현기증과도 같은 배고픔은 느끼지만,

괴로움을 주는 바르지 못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조금씩 조금씩 흙에 동화되어 갔다.

태양에 말리고, 대지에 받아들여져서. 30년 동안의 노동,

그래서 얻은 잠과 대지에 대한 이 권리.

내가 처음 만난 노예는 신음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기야 신음해 보일 상대도 없었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힘이 다 빠져 눈 속에 누워, 꿈과 눈에 파묻혀 들어가는

길 잃은 두멧사람과도 같은 일종의 체념을 느꼈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고통을 느낀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하나 죽어 가는 것인 만큼,

그의 안에서 꺼져가는 영상들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세네갈의 어떤 농원이,

남부 모로코의 어떤 백악의 도시들이 차츰차츰 망각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일까?

이 검은 덩어리 속에서, 차를 준비한다던가,

가축들을 우물가로 몰고 가는 따위의 하찮은 걱정만이 꺼져가는 것일까...

즉 노예의 한 영혼이 잠들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추억의 소생으로 다시 살아난 이 인간이

그 본래의 위대함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것일까.

그 단단한 두 개골이 나에게는 오래 된 보물상자처럼 보였다.

어떠한 빛깔 고운 비단들이, 어떠한 잔치의 추억들이,

이 사막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 유물들이

난파를 모면하여 거기에 들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상자는 단단히 채워진 채 무겁게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며칠의 그 커다란 잠을 자는 동안에,

세계의 어떤 부분이 이 사람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것인지,

차츰차츰 밤과 뿌리로 되돌아가는 그 의식과 육체 속에서

분해되어 가는 것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는 가축 몰이꾼이었읍죠. 이름은 모하메드였구요!"

검둥이 노예 바르끄는, 내가 알기로는 그의 운명에 저항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모르인들이 그의 자유를 하루아침에 빼앗고,

그를 이 땅 위에서 갓난아기보다 더한 발가숭이로 만든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수확을 삽시간에 짓밟아 버리는 신의 폭풍도 있으니까.

그러나 모르인들은 그의 재물보다도 그의 인격을 깊이 상처 입혔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다른 포로들이 1년 내내 먹을 것을 벌기 위해 일을 했던

불쌍한 가축 몰이꾼을 자기들 속에서 죽어가게 내버려 두었지만

바르끄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바르끄는, 남들이 기다리다 지쳐 보잘 것 없는 행복에 자리잡듯이

그렇게 노예살이에 정착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선심을 노예의 기쁨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없는 모하메드를 위해,

그 모하메드가 살았던 집을 자기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텅 비어 쓸쓸하긴 했지만, 다른 아무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바르끄는 오솔길의 풀과 침묵의 권태 속에서 충실하게 죽어간

그 백발의 정원지기와도 같았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오."라고 그는 말하지 않고

 "나는 모하메드였었죠"라고 말했다.

그 소생만으로도 자기의 노예의 모습을 쫓아내어 줄,

그 잊혀진 인물이 되살아날 날을 꿈꾸면서. 이따금 밤의 고요 속에서

그의 모든 추억들이 어렸을 적의 노래처럼 완전하게 되살아나기도 했다.

우리들의 모르인 통역이 이런 말을 했다.
"밤중에, 한밤중에 그가 마라께시 얘기를 하고 울었어요"

고독 속에 있으면 누구나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기가 예고 없이 깨어나 자기 팔다리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여자라고는 한 번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이 사막에서 자기 곁에 여인을 찾는 것이다.

또 샘물이라고는 일찍이 흘러본 적이 없는 그곳에서 샘물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끄는 눈을 감고 하얀 집에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거친 천으로 엮은 집에 살면서 바람만을 쫓고 있는,

매일 밤 같은 별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신비스럽게도 생생하게 되살아난 옛 애정을 품고,

마치 그 끝이 가까이에 있기라도 한 듯이 바르끄는 나에게 왔었다.

그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의 애정도 모두 준비돼 있고,

그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내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눈짓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 비결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내가 그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기나 한 것처럼.

"내일이지요, 우편물이 떠나는 게...아가디르로 가는 비행기에 나를 감추고...."
"불쌍한 바르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불귀순 지구이다. 어떻게 그의 탈주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내일이면 모르인들은 이 도둑질과 모욕을 무서운 학살로써 보복할 것이다.

나는 공항 기관사인 로베르그, 마르샬, 아브그랄의 도움을 받아 바르끄를 사려고도 해보았지만,

모르인들은 노예를 사려는 유럽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므로 배짱만 퉁긴다.

"2만 프랑 내쇼,"
"우리를 놀리는 건가?"
"그놈의 억센 팔을 보슈."

이렇게 해서 여러 달이 지나갔다.
마침내 모르인들의 달라는 값이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편지로 호소한 프랑스의 친구들의 도움도 얻어서

늙은 바르끄를 살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것은 굉장한 흥정이었다. 그것은 여드레나 걸렸다.

열 다섯 명의 모르인과 나는 모래 위에 빙 둘러앉아 흥정을 진행했다.

소유주의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한, 산적 진 울드 라따리가 은근히 나를 거들었다.

"팔아 버려라. 어차피 그놈은 없어진다.

그놈은 병들었어. 병이 처음엔 보이지 않지만, 속에 들어 있다.

언제고 갑자기 불거져 나온다. 얼른 저 프랑스 사람한테 팔아 버려라."

그는 내가 권한대로 자꾸 주인에게 말했다.
또 하나의 산적인 랏지에게는 흥정을 도와주면 커미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랏지는 주인을 구슬렸다.

"그 돈으로 낙타하고 총하고 탄환을 사라.

그러면 너는 습격대를 만들어 프랑스 사람들과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따르에서 새 노예를 셋이고 넷이고 끌고 올 수 있다.

이런 늙다리는 팔아 치워라."

이리하여 바르끄는 내게 팔렸다.

나는 우리 바라크 속에 그를 쳐 넣고 엿새 동안 자물쇠를 잠가 두었다.

비행기가 지나가기 전에 그가 문밖에서 어정거리다가는

모르인들이 그를 다시 잡아 먼데로 팔아버릴까 봐서였다.

어쨌든 나는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것은 또한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회교의 중이 오고, 그전 주인과, 쥐비의 추장 이브라힘도 왔다.

보루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라면,

나를 골려 준다는 재미만으로도 서슴없이 바르끄의 목을 잘랐을

이 세 산적들이 그를 열렬히 껴안았고, 서명했다.

"이제 너는 우리 아들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그의 여러 아버지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는 출발할 때가 오기까지 우리 바라크에서 유유한 포로 생활을 보냈다.

그는 하루에도 스무 번씩이나 그 쉬운 여행에 대해 설명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가디르에서 비행기를 내리면 그 비행장에서 마라께시로 가는 버스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탐험가 놀이를 하고 놀 듯이 바르끄는 이렇게 자유인 놀이를 하는 것이다.

삶으로 향하는 그 첫걸음, 그 버스며 그 군중, 그가 다시 보게 될 도시들....

로베르그가 마르샬과 아브그랄을 대리해서 나를 찾아왔다.

바르끄가 차에서 내린 후 배를 곯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르끄를 위해서 내게 천 프랑을 주었다.

이리하여 바르끄는 일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프랑을 주고는 감사를 요구하는

"자선을 하시는"사회 사업체의 노부인들을 생각했다.

비행기 기관사인 로베르그와 마르샬, 아브그랄의 세 사람은

천 프랑을 주면서도 자선을 하지 않고, 더구나 감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한 행복을 꿈꾸는 그 노부인들처럼 동정심으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한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되돌려주는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바르끄가 귀향의 흥분이 일단 지나면,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할 충실한 친구는 곤궁이라는 것과,

석 달도 못가서 그가 그 근처 철로 위에서

침목을 뽑느라고 애쓰고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막에 있을 때보다 덜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 가족 사이에서 그 자신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

"자아, 바르끄 영감, 가시오. 그리고 사람이 되시오."

출발 준비가 된 비행기는 떨고 있었다.

바르끄는 마지막으로 쥐비 곳의 끝없는 황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비행기 앞에는 2백 명의 모르인들이 삶의 문턱에 선 한 노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보기 위해 떼지어 모여 있었다.

비행기가 조금 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그들은 그를 도로 빼앗아 갈 것이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려고 약간 얼떨떨해 있는 이 쉰 살 먹은 갓난애에게 작별의 손짓을 했다.

"잘 가게, 바르끄!"
"아니오."
"아니라니?"
"아닙죠.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인 걸요."

아가디르에서 바르끄를 돌봐주라고 우리가 부탁해 둔

아랍인 아브달라로부터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버스는 저녁 때에야 떠나게 되어 있었다.

바르끄는 온종일 마음대로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맨 먼저 그 조그만 도시를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쏘다녔다.

아브달라가 보기에는 그가 불안해하고 감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러나?"
"아무 것도 아냐."

바르끄는 갑작스런 휴가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자기의 부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렴풋한 행복을 느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어제의 바르끄와 오늘의 바르끄 사이에 아무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저 태양을 나누어 받을 권리도,

여기 이 아랍인 카페의 정자 밑에 앉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남쪽으로 진격중인 아랍인 습격대의 배후에 나타나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재물을 구하기 위해

되돌아가도록 만들고는 수백 마리의 낙타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사장과도 같은 이 출현으로 이따르를 점령하고는

석회암 고지에 야영하면서, 잡으러 오라는 불모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위력은 대단해서 부족이 그의 군도를 향해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얀이 더 거칠게 나를 바라보며 또 뭐라고 지껄인다.

"뭐라고 하는 거요?"
"우리도 내일 보나푸에게 진격한다. "소총 3백 자루로,"라고 하는군요."

나도 무엇인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미 사흘 전부터 뻔질나게 우물가로 끌고 가는 낙타들이며,

그 수군거림과 그 열정. 눈에 보이지 않는 범선을 채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밀고 갈 바닷바람은 벌써 일고 있다.

보나푸 때문이 남쪽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영광에 가득 찬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출발이 증오를 품은 것인지,

사랑을 내포한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암살해야 할 그렇게도 훌륭한 적을 가졌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그가 모습을 나타내면, 그 근처의 부족들은 정면으로 맞닥뜨릴까봐 겁이 나

천막을 걷고 낙타들을 끌어 모아 도망치지만,

극히 먼 데 있는 부족들은 사랑과도 비슷한 현기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들은 천막의 평화에서, 여인들의 포옹에서,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와,

두 달 동안이나 남쪽으로 기운 빠지는 행군을 하고,

타는 듯한 갈증을 참고, 모래바람 밑에서 웅크리고 기다리고 하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아따르의 이동 부대를 만나,

신이 허락한다면 거기서 보나푸 대위를 죽인다는,

그 일만큼 훌륭한 일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보나푸는 힘이 세오."
케말이 고백한다.

이제야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겠다.

그것은 마치 한 여인을 욕망 하는 뭇 남자들이,

여인의 냉담한 산책의 발걸음을 꿈꾸면서,

그들의 꿈속까지 따라와 괴롭히는 그 냉담한 산책에 속 태우거나

몸이 달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듯이,

먼 곳에서의 보나푸의 발걸음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덤벼드는 습격대를 교묘히 비켜가면서, 이 모르인 차림의 기독교도는

2백 명의 모르인 역적들 선두에 서서 불귀순 지구로 침입해 들어갔다.

그곳은 프랑스의 속박을 벗어난 그의 부하들이 제일 하급자조차도

벌 받지 않고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기의 신을 위해

돌상 위에 제 몸을 제물로 바칠 수 있으며,

또 거기서는 이 신의 위력만이 그들을 제지 할 수 있으며,

그의 약점조차도 그들을 떨게 한다.

그래서 오늘 밤도 모르인의 어설픈 잠 속을 멋대로 오락가락하면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사막 복판에까지 울리는 것이다.

무얀은 천막 안쪽에서 푸른 화강암에 새겨진 그림처럼

여전히 꼼짝도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오직 두 눈과, 이제는 장난감이 아닌 은제 단도만이 번쩍인다.

습격대에 가담한 뒤로 그는 얼마나 변했던가!

그는 그전과는 달리 자신이 고귀하다고 깨닫고, 그의 경멸로써 나를 압도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보나푸를 향해 진격할 것이고,

사랑과 아주 흡사한 증오에 부추김을 받아 내일 새벽에는 진격할 것이니까.
그는 다시 한번 형에게로 몸을 숙이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뭐랍니까?"
"요새에서 떨어진 데서 만나면 당신을 쏘겠다군요."
"왜요."
"당신은 비행기와 무전기와 보나푸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무얀은 조각과 같은 주름이 달린 푸른 베일 속에서 꼼짝도 않고 나를 재판한다.

"당신은 염소처럼 샐러드를 먹는다. 당신은 돼지처럼 돼지를 먹는다.

당신네 여자들은 수치심 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많이 봤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도무지 기도를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비행기도, 무전기도, 보나푸도 무슨 소용인가?

진리도 없으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나는, 자유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

(사막 안에서는 사람이 항상 자유로우니까),

눈앞의 재화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며(사막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지 남모를 왕국만을 지키고 있는 이 모르인들을 감탄한다.

모래 물결의 침묵 속에 보나푸는

늙은 해적 모양으로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 덕택으로 쥐비 곳의 이 야영지는 이제 한가로운 목자들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보나푸라는 폭풍이 그 옆구리를 위협하고,

그 때문에 밤이면 사람들은 천막들을 밀집시키고 잔다.

침묵이 남쪽에서는 얼마나 가슴을 조이게 하는가!

그것은 보나푸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늙은 사냥꾼 무얀은 바람 속을 걸어오는 보나푸의 발자국에 귀를 기울인다.
마침내 보나푸가 프랑스로 돌아간다면, 그의 적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울 것이다.

마치 그의 출발이 그들의 사막에서 한쪽 끝을 빼앗아 갔거나,

그들의 생활에서 위신의 한 부분을 빼앗아 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왜 가버렸소, 당신에 보나푸는?"
"글쎄요...."

그는 자기 생명을 그들의 생명에 걸고 지내 왔다.

그것도 여러 해 동안이나, 그는 그들의 규율을 자기의 규율로 삼아 왔다.

그는 그들의 돌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끊임없는 추격 속에서 그도 또한

그들과 같이 별과 바람으로 된 바이블(코란)의 밤을 알았다.

이제 그는 떠나면서 그가 꼭 필요해서

이 도박을 해온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는 시원스럽게 자리를 뜬다.

그래서 그 노름판에 혼자 남겨둔 모르인들은,

이제는 사람들을 피와 살과 함께 끌고 들어가게 했던

이 생명의 도박에 대한 신념을 잃고 만다.

그들은 아직도 그를 신뢰하고 싶어 한다.

"당신네 보나푸 말이오. 꼭 돌아오겠지요?"
"글쎄요."

그가 돌아올 거라고 모르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유럽의 도박만으로는 그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장교클럽에서의 브리지도, 승진도, 여인들도 잃어버린 고귀함을 잊지 못해

한 걸음 한 걸음이 사랑을 향해 가는 발걸음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이 사막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여기에는 다만 모험으로 살았을 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고향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일하고 진정한 보화는

이곳 사막에서만 가졌었다는 것을 그는 환멸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사막의 매력이며, 이 밤, 이 침묵과, 이 바람과 별들의 나라를.

그리고 어느 날 보나푸가 다시 돌아오면,

그 소식은 첫 밤부터 불귀순 지구에 퍼질 것이다.

사하라의 어딘가에 2백 명의 부하들 한가운데서

그가 자고 있다는 것을 모르인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침묵 속에 낙타들을 우물가로 끌고 갈 것이고,

저장 보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총 놀이 쇠를 검사할 것이다.

 


그는 거기 앉았다. 아브달라와 자기를 위해 차를 주문했다.

그것이 양반으로서의 첫 행동이었다.

그 권력으로 하여 그의 얼굴모습조차도 달라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급사는 그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고 그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급사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 차를 따름으로써 한 자유인을 예찬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 다른 데로 가보세."

바르끄가 말했다.
그들은 아가디르를 굽어보는 가스 바로 올라갔다.
베르베르족의 춤추는 소녀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길들여진 친절을 잔뜩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르끄는 다시 살아난 것만 같이 여겨졌다.

그녀들은 자기네들도 모르게 그를 인생 속으로 맞아들여 준 것이다.

여자들은 그의 손을 잡고 친절하게,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차를 권했다.

바르끄는 자기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자들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가 만족해하니까 소녀들도 그를 위해서 만족해했다.

그는 그녀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이름이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먼 데서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는 아브달라를 다시 시내 쪽으로 끌고 갔다

그는 유태인의 노점 앞에서 서성거렸고,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과 자기는 자유롭다는 것을...

그런데 이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어떤 점에 있어서 그가 이 세계와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자유가 더욱 뚜렷하게 그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지나가기에 바르끄는 그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이는 방긋 웃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첨하는 주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바르끄가 쓰다듬어준 아이는 연약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래서 이 아이가 바르끄를 깨워 주었고,

자기에게 미소지었던 이 연약한 아이 때문에

바르끄는 자기가 이 지상에서 좀더 중요해진 것 같이 여겨진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어떤 것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발걸음을 크게 떼어 놓는 것이다.

"뭘 찾지?"
아브달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바르끄가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떼와 마주치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였던 것이다. 그는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유태인 노점 쪽으로 가더니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아브달라는 화를 냈다.

"바보같으니, 돈을 아껴야지!"

그러나 바르끄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점잖게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작은 손들이 장난감이니 팔찌니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 위로 뻗쳐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보물을 손에 들고 버릇도 없이 달아나 버렸다.

아가디르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로 달려왔다.

바르끄는 그들에게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그러자 아가디르 근방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일어서서 환성을 지르며

이 검은 신을 향해 달려 올라와서,

그의 낡은 노예옷에 매달리며 저의들 몫을 요구했다.

바르끄는 파산하고 말았다.

아브달라는 그가 "기뻐 미친"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르끄로서는

넘치는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였기 때문에 사랑 받을 권리도,

북쪽이든 남쪽이든 마음대로 걸어갈 권리도, 자기가 일해서 빵을 벌 권리도,

이런 모든 본질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돈이 무슨 소용이랴...

그러자 그는 사람들이 심한 허기를 느끼듯이 인간들 속의 하나의 인간,

인간들과 연결된 하나의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것이다.

아가디르의 춤추는 소녀들은 늙은 바르끄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 가볍게 헤어질 수가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그가 필요치 않았으니까.

그 아랍인의 노점 상인도, 길을 오가는 통행인들도 모두

그의 속에 있는 자유인을 존경했고, 그와 함께 태양을 나누어 가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상 자기에게 그가 필요하다고 알려 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땅 위에 자기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에게는 서로의 걸음걸이를 방해하는 인간 상호 관계의 무게가 없었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사람들이 쓰다듬기도 하고 짓찧기도 하는 모든 것,

저 눈물이며, 이별이며, 책망이며, 기쁨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그를 다른 사람들과 결합시켜 주고, 무게를 갖게 해주는

그 숱한 관계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바르끄 위에는 벌써 아이들의 천 가지 희망이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바르끄의 왕국은 아가디르 위에 저무는 태양의 영광 속에서,

또 그렇게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유일한 다정함이었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저녁의 시원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바르끄는 옛날에 양떼들에게 둘러싸였던 것처럼

어린이들의 물결 속에 파묻혀 세상에 첫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이면 가난한 자기 가족들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노쇠한 팔로는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의

생명들의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기에서 자기의 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몸이 가벼운 천사가 속임수로

허리띠에 납덩어리를 꿰매 넣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끄는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갖고 싶어 하는 그 숱한 어린이들에 의해

대지 쪽으로 이끌려 가면서 고달픈 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