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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오늘의 쉼터 2011. 5. 18. 12:33

 

인간의 대지 - 쌩 떽쥐뻬리

  

 

 

대지는 우리들 자신의 대해 모든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대패라든가 쟁기가 있어야 한다.

농부는 땅을 가는 동안에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내는데

이렇게 캐낸 진리야말로 보편적이다.

이와 같이 항공로의 도구인 비행기도 사람을 모든 옛 문제들로 끌어넣는다.

아르헨티나로 최초의 야간 비행을 하던 날 밤의 들판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깜빡이던 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큰 바다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딴 집에서는 공간의 계측에 애를 쓰고,

앙드로메드좌의 성운에 관한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그 불빛들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불빛 같은 아주 얌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닫혀진 창들이, 꺼진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 간간이 타오르고 있는 이 불빛들의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1] 항공로

1926 년의 일이다.

나는 "라떼꼬에르" 회사의 젊은 정기 항공로 조종사로 갓 들어간 때였다.

이 회사는 나중에 "에르 프랑스" 회사가 된 우편 항공회사가

전에 뚤루즈와 다까르 간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내 직업을 익히고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우편기를 조종하는 영광을 갖기에 앞서

풋나기들이 치뤄야 하는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 비행이며, 뚤루즈와 빼르빼냥 간의 단거리 왕복이며,

썰렁한 격납고 속에서의 쓰라린 기상학 공부 등이었다.

우리는 아직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의 산들에 대한 두려움과

선배들에 대한 존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선배들을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곤 했는데,

무뚝뚝하고 약간 쌀쌀한 그들은 거만스럽게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알리깡뜨나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와서

비에 젖은 가죽옷을 입은 채 뒤늦게 우리들과 합류했을 때,

우리들 중 하나가 조심조심 그의 여행에 대해서 묻기라도 하면

그의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폭풍우가 부는 날이면 덪과 함정과

느닷없이 나타나는 낭떠러지와 삼나무라도 뿌리 채 뽑아버릴 것 같은

돌풍들로 가득찬 우화적인 세계를 우리 눈 앞에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시커먼 용바람이 골짜기 어귀를 가로막고,

번개 뭉치들이 산마루를 뒤덮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 선배들은 교묘하게 우리들의 존경심을 북돋우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 중의 하나가 돌아오지를 않아

영원히 우리의 존경할 본보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중에 꼬리비에르 산중에서 죽은 뷔리가 돌아오던 어느 날의 일이 생각난다.

그 나이 많은 조종사는 우리들 사이에 들어와 앉자

아직도 어깨가 일 때문에 짓눌려 있는 듯이 아무 말없이 무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항공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늘이 썩어 문드러진 듯

장마 비를 뿌리고, 조종사에게는 옛날의 돛단 군선의 대포들이

밧줄이 끊어져서 갑판 위를 마구 굴러다니듯이 모든 산들이

시커먼 구름 속에서 뒹굴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그런 악천후의 저녁이었다.

나는 뷔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번 비행이 힘들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머리를 접시 위에 틀어박고 있던 뷔리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덮개 없는 비행기에서 날씨가 궂은 조종사는 좀 더 앞을 잘 보기 위해서

바람막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게 되는 데

그래서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오랫동안 윙윙거리기 마련이다.

마침내 뷔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제야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았고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갑자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 나를 감탄하게 했다.

왜냐하면 뷔리는 좀처럼 웃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 짧은 웃음이 그의 피로를 밝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승리에 대해서는 그밖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둠침침한 식당 안에서 하루의 초라한 피로를 풀고 있는 하급 관리들 가운데에서

이 묵직한 어깨를 가진 동료가 내게는 이상하게도 고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거친 외모 속에서 용을 정복한 천사의 모습을 엿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내게도 차례도 닥쳐 지배인 실로 불려 가는 저녁이 왔다.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내일 출발하시오."

나는 그의 작별인사만 기다리며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규정은 잘 알고 있겠지?"

그 당시의 비행기 엔진은 오늘날만큼의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엔진은 종종 접시가 깨지는 것 같은 소음 속에

아무 예고도 없이 별안간 우리를 내팽개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조종사는 피신할 데라곤 거의 없는

페인의 바위산을 향해 손을 들 도리밖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늘 말하곤 했었다.

"여기서 엔진이 고장 나는 날에는 유감이지만 비행기도 이제 끝장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바꿔 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이 바위산을 들이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산악지대에서는 구름바다 위로 비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위반하는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고장을 일으킨 조종사가 흰구름층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가는

보이지 않은 산꼭대기를 들이받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지배인의 느릿한 목소리를 끝으로

다시 한번 복무 규정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기야 스페인에서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하는 것도 재미있지.

아주 운치가 있고 하지만...."

그리고는 더욱 느리게 말했다.

"... 하지만 명심해 두시오. 그 구름바다 밑은 ... 바로 저승이라는 것을."

그러자 갑자기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을 때 보게 되는

그렇게도 고요하고 평평하고 단순한 그 세계가

내게는 미지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 고요가 덫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나는 저 내 발 아래 펼쳐져 있는 끝없는 흰 덫을 상상해 보았다.

그 밑에는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북적거림이나, 혼잡이나, 도시의 활기찬 차들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절대적인 침묵과 보다 결정적인 평화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흰 끈끈이가 나에게는 현실과 비현실, 기지와 미지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벌써 어떤 풍경이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문화와 작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산골 사람들도 구름바다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이 우화적인 장막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지배인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 나는 어린애 같은 자랑을 느꼈다.

나도 이제 내일 새벽부터는 승객에 대한 책임,

아프리카행 우편물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고 느꼈다.

스페인에는 피난처가 적다.

위협적인 고장을 당했을 때 구조 받을 만한 곳을 찾아낼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나는 필요한 가르침도 찾지 못한 채 불모의 지도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움과 자랑스러움이 뒤얽힌 가슴을 안고

이 싸움의 전날 밤을 동료 기요메 한테 가서 지내기로 했다.

기요메는 이 항공로를 앞서 왕래한 경험자였다.

기요메는 스페인의 열쇠를 얻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나는 기요메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소식을 들었네. 기쁜가?"

그는 포르투갈산 포도주와 컵을 가지러 벽장 있는 데로 가더니

여전히 빙글거리면서 돌아왔다.

"우선 축배를 드세, 염려 말게. 잘될 테니."

훗날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남대서양 횡단 우편 비행의 기록을 수립하게 될

이 동료는 램프가 불빛을 발하듯이 주위에 자신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보다 몇 해 앞선 이날 저녁,

그는 셔츠바람으로 램프 밑에서 팔짱을 끼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에 참 미소를 띠며 이렇게 간단히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폭풍우니 안개니 눈 따위가 이따금 자네를 괴롭히겠지만,

그럴 때 자넨 자네보다 먼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그리고 자네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게.

남들이 해낸 일은 나도 꼭 해낼 수 있다 라고."

그러나 나는 가지고 간 지도를 펼치고 그렇더라도

나와 함께 항로를 재검토 해보자고 간청했다.

이렇게 램프 불 아래 엎드려 이 선배의 어깨에 기대고 있으려니

나는 학창시절의 평화가 되돌아옴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얼마나 이상한 지리 수업을 받았던 것일까?

기요메는 내게 스페인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는 스페인을 내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수로학에 관해서도 주민이나 가축 임대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 구아디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다만 구아디스 근처에 들판을 둘러싸고 서 있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것들을 조심하게. 자네 지도에다 표시해 두게...."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가 지도 위에서

시에라네 바다의 높은 산맥보다도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롤까 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롤까 시 근처에 있는 하찮은 농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살아 있는 농가에 대해서, 그 농부에 대해서, 그 안주인에 대해서.

그러자 우리로부터 1천 5백 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부부가 엄청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산비탈에 자리잡은 채 마치 등대지기처럼

그들의 별 아래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지리학자들도 모르고 있는 상세한 것들을

그 망각과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거리 속에서 끌어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리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큰 도시에 물을 대주는 에브르강 뿐이지,

모뜨릴 서쪽 숲 속에 숨어서 서른 포기쯤의 꽃을 가꾸어 주는

아버지인 그런 개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개울을 조심하게. 이것 때문에 불시착에 소용이 없으니까....

이것도 자네 지도에 적어 두게."

아! 나는 모뜨릴의 그 작은 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 가벼운 물소리로

개구리 몇 마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고작인 이 실개천 눈만 가리고 있는 격이다.

이 불시착의 낙원 속에 풀숲 밑에 길게 누워,

여기서 2천 키로 미터나 떨어진 것에서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첫 기회에 그놈은 나를 불꽃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조그마한 산 허리에 진을 치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서를 갖추고 있다는 그 서른 마리의 싸움 양에 대해서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대기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이 초원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보게!

자네 바퀴 밑으로 서른 마리의 양들이 굴러든단 밀일세...."

이런 믿지 못할 위협에 대해 나는 다만 감탄의 미소로써 답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내 지도 속의 스페인은 램프불 아래서 차츰차츰 동화의 나라가 되어 갔다.

 

나는 피난처와 함정을 십자표로 표시했다.

그 농부와 서른 마리의 양과 그 개울도 표를 했다.

나는 지리학자들이 등한히 했던 그 양치기 처녀를 정확한 제자리에 놓았다.

기요메와 작별하고 나오자, 나는 이 겨울을 얼어붙은 밤을 걷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는 외투 깃을 세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행인들 틈에 끼어 내 젊은 정열을 산책시켰다.

마음에 비밀을 간직하고 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 야만인들은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새벽이 되어 우편 행낭이 비행기에 실릴 때가 되면

그들은 자기의 격정과 정열을 내게다 맡길 것이다.

그들의 희망도 내 손안에 맡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외투에 몸을 감싸고,

그들 틈에 끼어 보호자 같은 걸음을 옮기고 있는 데도

그들은 나의 심려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내가 이 밤으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메시지들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어디에선가 채비를 차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리고 내 첫 비행을 훼방 놓을지도 모를 그 눈보라가

바로 내 몸에는 중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별들이 하나하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산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별들의 비밀은 나 혼자만이 알 수 있었다.

전투에 앞서 적군의 배치를 내게만 알려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렇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주는 이 암호를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번쩍이는 환한 쇼윈도우 옆에서 받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이 밤에서 땅위의 모든 보화가 진열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단념의 자랑스러운 도취감을 맛보는 것이었다.

나는 협박당한 병사였다.

그러니 밤축제를 위한 이 번쩍거리는 수정 그릇들이며,

저 램프 갓이며, 저 책들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나는 안개 덮인 하늘에 잠겨 있는 것이다.

벌써 나는 정기 항공의 조종사로서 비행하는 밤들의 쓰디쓴 과육을 베어 물고 있는 건이었다.

나를 깨워 준 것은 새벽 3시 였다.

나는 덧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거리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며 신중하게 옷을 입었다.

30분 후 나는 빗물로 번들거리는 보도에서

작은 가방 위에 앉아 내 차례로 회사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나보다 앞서 많은 동료들이 오늘 같은 처녀 출동 날에

가슴을 약간 조이며 이와 똑같은 기다림을 맛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거리 모퉁이에서 구식 차가 고철 같은 소리를 내며 나타냈다.

이번에는 나도 다른 동료들처럼 잠이 덜 깬 세관 관리와

몇몇 사무원들 틈에 끼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자리를 잡을 권리를 가졌다.

이 버스는 곰팡이 냄새와 먼지 많은 관청 냄새와

자칫 사람의 한 평생이 파묻히기 쉬운 낡은 사무실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차는 5백 미터씩 가다가는 멈춰 서기를 하나 더,

 세관리를 하나 더, 주임을 하나 더 태우기 위해서.

차안에서 벌써 꾸벅거리고 있던 사람들은 새로 탄 사람의 인사말에

분명치 않게 웅얼웅얼 대답했고 새로 탄 사람들도

가까스로 자리를 비집고 앉자마자 꾸벅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뚤루즈 시의 울퉁불퉁한 길 위를 실려 가는 일종의 서글픈 짐들이었다.

이렇게 사무원들과 줄을 지어 섞어 있으면

정기 항공의 조종사도 언뜻 보면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가로등이 줄을 지어 스쳐가고 비행장이 가까워 온다.
그러면 진동이 심란 이 낡은 버스도 이제는

변모한 사람이 빠져나올 한낱 회색빛 번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동료들 누구나가 이와 같이 한번은 오늘 아침과 비슷한 아침에

저 주임의 화풀이에 아직도 짓눌려 있는 욕받이 하급 관리에 끼어 앉아 있는 자신 속에서

스페인과 아프리카 간 우편기의 조종 책임자가 태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3시간 후에는 오스삐딸레의 용과 번개 속에서 대결하고

4시간 후에는 그 용을 정복하고 나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완전히 혼자만의 자유 판단하에 해상으로 우회할 것인지

아니면 알꼬아 산덩이를 향해 똑바로 돌진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뇌우와, 산악과 대양과 대결할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동료 누구나가 이렇게 한번을 뚤루즈의 음산한 겨울 하늘 아래

이름 모를 무리들 속에 묻혀서 오늘과 흡사한 아침에 5시간 후면

북극의 비와 눈을 뒤로 하고 겨울을 버리면서 엔진의 회전수를 줄이고

한여름인 알리깡뜨의 찬란한 태양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할

왕자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낡은 버스는 이미 없어졌다.

그러나 그 딱딱하고 불편스러웠던 것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차는 우리들의 직업상 거친 기쁨을 맛보는데 필요한 준비를 잘 상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무치게 검소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난다.

3년 뒤에 그 차 안에서 열 마디도 안되는 대화에서 조종사 레끄리벵의 죽음을 알게 됐던 일을.

그도 안개 짙은 날이나 혹은 어느 밤에

갑자기 영원한 은퇴를 한 이 항로의 1백여 명의 동료들 중의 하나였다.
그 때도 역시 새벽 3시였고, 똑같은 침묵이 흐르고 있다.

어둠 속에 있어 모습이 안보이는 지배인이 감독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레끄리벵이 어젯밤에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다네."

"아! 그래요?"


감독관이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꿈 속에서 끌려 나온 그는

잠에서 깨려고 자신의 근무열을 보이려고 애쓰며 덧붙였다.

"아! 그래요? 통과를 못했군요? 그래, 되돌아 왔나요?"

그 말에 대해 버스 안쪽에서는 다만 "아니"하는 대답뿐이었다.

우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말도 없었다.

그리고 1초 1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아니"라는 말에는

아무런 다른 말도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

이 "아니"라는 말에는 호소할 길이 없다는 것,

레끄리벵은 카사블랑카에만 착륙 못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어떤 곳에도 착륙하지 못하리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그날 아침 나의 첫 우편 비행을 하는 새벽에

나는 또한 이 직업에 따른 신성한 의식을 치렀고

유리창 너머로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하여 번들거리는

돌을 깐 길을 내다보며 자신을 잃어감을 느꼈다.

물구덩이 위로 스쳐 가는 바람이 종려 나뭇잎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 처녀 비행치고는 ... 정말이지... 운이 나쁜데."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죠?"

감독관은 피곤한 시선을 창쪽으로 돌리더니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뭘, 그렇지도 않은데."

그럼, 악천후는 도대체 어떤 징후로 알아낼 수 있는가 하고 나는 자문해 보았다.

 기요메는 엊저녁에 단 한번의 미소로 선배들이 들려주면서

우리를 겁주곤 했던 불길한 전조들을 지워 주었지만,

그래도 그 불길한 징조가 내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했었다.

"항공로를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알고 있지 못한 조종사가

만일 눈보라라도 만난다면, 가엾지...아암! 가엾고 말고...."

그들에게는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간 거북스런 동정의 눈초리로

우리들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천진난만함을 동정하기라도 하듯이.

하기야 이 버스가 이미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피난처 노릇을 해 주었던가?

60명? 80명? 비오는 날 아침, 바로 이 과묵한 운전사에게 이끌려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밝은 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담배가 제각기의 명상에 구두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늙은 월급쟁이들의 하찮은 명상들,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마지막 호상객 노릇을 했을 것인가?

나는 또 그들이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마음속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다.

그것은 병이니, 돈이니, 집안 걱정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우중충한 감옥의 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운명의 보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늙은 샐러리맨이여, 나의 동료여,

아무도 당신들을 해방시켜 준 일이 없고 그것은 조금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저 흰개미들이 그렇듯이 광명으로 빠져나갈 모든 구멍을

한사코 시멘트로 막음으로써 당신의 평화를 건설해 왔다.
당신은 자신의 소시민적인 안전 속에 자신의 습관 속에

시골 생활의 숨막히는 관습 속에 공처럼 움츠려 들어가

바람과 조수와 별을 막기 위해 이 보잘 것 없는 성벽을 쌓아 올렸다.

당신은 세상의 큰 문제에 대해서 근심하려 하지 않았고

인간으로서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다.

당신은 방랑하는 떠돌이 별의 주민이 결코 아니며,

대답이 없을 질문은 던지지도 않는다.

당신은 뚤루즈의 한 소시민이다.

때가 늦기 전에 당신의 어깨를 움켜 잡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을 빚어낸 진흙이 마르고 굳어진 지금은 아무도,

어쩌면 애초에 당신 속에 깃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잠든 음악가를 시인을 또는 천문학자를 일깨워 줄 수는 절대로 없다.

나는 이제 폭풍우를 원망하지 않으련다.

직업의 마력이 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열어준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이제 2시간도 안돼서

검은 용과 푸른 전개의 머리털을 왕관처럼 쓴 산봉우리들과 대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폭풍우에서 해방되어 별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 갈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 직업상의 세례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하늘의 여행은 대개의 경우 무사했었다.

우리는 평온하게, 마치 직업적인 잠수부처럼 우리들 영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 영토는 오늘날에 속속들이 탐사되어 있다.

이제는 조종사도, 기관사도, 무전사도

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

그들은 갖가지 계기의 바늘의 유희에만 순종하지,

풍경의 변화에는 이제 아랑곳하지 않는다.

밖에는 산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그것들은 이미 산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일 뿐,

그 접근만을 계산하면 된다.

무전사는 현명하게 램프불 아래서 숫자를 기입하고

기관사는 지도에 점을 찍고 조종사는 산들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거나,

왼편으로 피해서 돌아가려던 산마루가 작전 준비 때와도 같은

침묵과 비밀 속에서 정면에 나타나거나 할 때만 진로를 수정한다.
지상의 비행장에서 야근을 하는 무전사들로 말하더라도,

그들은 똑같은 시각에 그들의 노트 위에 동료로부터 받은 통보를 슬기롭게 적어 넣는다.

"0시 40분, 방향 2백 30도, 기내 이상 없음"

오늘날 승무원은 이렇게 비행한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바다 위의 밤처럼 모든 목표들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엔진이 이 밝은 실내를 그 본질을 바꿔 놓는 진동으로 채우고 있다.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계기판 속에서, 무전 장치 속에서,

이 바늘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연금술이 행해지고 있다.

1초 1초마다 이 비밀스런 몸짓,

이 가만가만한 말들,

이 주의가 기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가 오면 조종사는 어김없이 바람막이 유리판에 이마를 갖다 댈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황금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기항지의 등불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비행도 겪어 알고 있다.

기항지에 닿기 2시간 앞두고 어떤 특수한 각도에서 비쳐오는 불빛을 보고 갑자기,

설사 인도에 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만큼 우리가 멀리 와 있음을 느끼게 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단념하게 된 그런 비행을.

이를테면 메르모즈가 그랬다.

처음 수상기로 남대서양을 횡단했을 때,

그는 해질 무렵에 뽀또놔르 지방에 접근했다.

그는 전방에 회오리 바람의 꼬리들이 마치 벽을 쌓아올리듯이

시시각각으로 포위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밤의 장막이 이 전투 준비 위에 내려, 그것들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1시간 후에 구름떼 밑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환상적인 왕국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거기에는 바닷물 기둥들이 겹겹이 솟아올라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것들은 신전의 검은 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꼭대기가 부풀어서 컴컴하고 낮은 폭풍우의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천장의 틈새로는 빛의 자락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만월이 기둥 사이로 바다의 싸늘한 포석 위를 비추고 있었다.

메르모즈는 이 사람없는 폐허를 가로질러 빛의 물길과 물길 사이로 비껴가며

바다가 울부짖으며 솟아 올라가고 있음에

틀림없는 그 거대한 기둥들을 피해 돌며 비행을 계속했다.

달빛의 여울을 따라 4시간을 비행한 끝에 그는 마침내 그 신전의 출구를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이 하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메르모즈는 뽀또놔르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는 또 생각이 난다.

내가 현실 세계의 변경을 넘어섰던 때의 일들의 하나가.
그날 밤은 밤새껏 사하라사막의 착륙지에서 보내주는 위치 측정의 무선 유도에

오차가 심해서 무전사 네리와 나를 완전히 궁지에 빠지게 했다.

안개가 갈라진 틈 밑으로 물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나는 급히 기수를 해안 쪽으로 돌렸다.

도대체 몇 시간 전부터 우리가 외양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해안에까지 당도할 수 있을런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가솔린도 떨어질지 모르니까.

그러나 해안에 가 닿는다하더라도 다시 착륙지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는 달이 질 무렵이었다.

각도 보고가 없어 이미 귀머거리가 된 우리는 점점 장님이 되어 갔다.

 

마침내 달은 사위어가는 숯불처럼 눈벌판 같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늘은 우리 머리 위에서 역시 구름에 뒤덮여 갔고,

지금부터는 이 구름과 안개 사이를 모든 빛과 모든 물체가 텅빈 세계 속을 비행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응답해주던 여러 비행장들도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를 보내기를 단념했다.

"위치 측정 보고 없음.... 위치 측정 보고 없음...

왜냐하면 우리들의 목소리가 그들에게는 사방에서 들려왔으므로

결국 아무데서도 들려오지 않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우리가 이미 절망하고 있을 때

전방 좌측 수평선에 반짝이는 점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북받치는 기쁨을 느꼈다.

네리는 내게로 몸을 굽혔고 나는 그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착륙 비행장이며 또 그 등불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하라 사막은 밤이 되면 완전히 빛을 잃고 하나의 광대한 죽음의 영토를 이루니까.

그런데 그 불빛은 잠시 반짝이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우리는 사라지기 직전에 몇 분 동안 안개의 층과 구름 사이의 지평선에 보였던

별 하나를 향해 기수를 돌렸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또다른 불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우리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그 불빛 하나하나에 기수를 돌렸다.
그리고 그 불빛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생사에 관계되는 실험을 시도했다.

"불이 보임. 신호등을 껐다가 세 번 켜라.

네리는 시스네로스 비행장에 명령했다.

시스네로스 비행장에서는 신호등을 껐다가 세 번 켰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보던 그 무자비한 불빛,

지조 굳은 별은 도무지 깜박일 줄을 몰랐다.

가솔린이 점점 없어져 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번번이 금빛 낚시에 덤벼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은 진짜 신호등이었고, 착륙 비행장이었고, 생명이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별을 바꿔야만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백의 손이 닿지 않는 떠돌이 별 가운데에서 단 하나의 진정한 별,

우리의 별, 우리 눈에 익은 풍경과 우리들의 정다운 집들과

우리들의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그 별을 찾다가 길을 잃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만이 간직하고 있는 단 하나의 별...

나는 그때 내 눈앞에 나타난 그 모습을 말해 보련다.

혹시 당신에게는 유치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람은 위험의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걱정거리는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만약 우리가 시스네로스를 찾아내기만 하면 가솔린을 보충 받고

비행을 계속하여 서늘한 새벽녘에 카사블랑카에 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네리와 나는 함께 시내로 들어갈 것이다.

새벽녘에 일찍 문을 여는 작은 술집들이 거기 있다.

네리와 나는 안도감에 젖으며, 전날 밤의 일들을 웃으면서

뜨끈뜨끈한 끄롸상 빵과 커피 잔을 앞에 놓고 식탁에 마주앉을 것이다.

네리와 나는 이 생명의 아침 선물을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농사꾼 할머니는 하나의 화상이나,

하나의 소박한 염주를 통해서 자기의 신과 만나게 된다.

우리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말로 우리에게 말해야 한다.

그래서 삶의 기쁨이 내게 있어서는 이 향기롭고 따끈한 처음 한 모금에,

이 우유와 커피와 밀가루의 혼합물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목장들과,

이국의 농장들, 수확물들과 하나가 되며,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온 대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저렇듯 많은 별 중에서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곳에 자신을 두기 위해,

새벽 식사의 이 향기로운 그릇을 차려주는 별은 단 하나, 이 지구밖에 없다.

그런데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가

우리의 비행기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지 사이에 겹싸여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이 성좌들 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한 알의 먼지 속에 깃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별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천문가 네리는

계속해서 별들에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의 주먹이 내 어깨를 쿡 찔렀다.

그 주먹이 알려준 종이쪽지에서 나는 읽었다.

"됐어. 멋진 통신을 받았어...."

그래서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가 우리를 구해 줄 대여섯 마디의 글자를 마저 써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나는 받았다. 이 하늘의 선물을.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출발했던 카사블랑카에서의 신호였다.

전송이 늦어졌기 때문에 이 무전은 2천 킬로 미터나 떨어진 바다 위의

구름과 안개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 온 것이다.

이 무전은 카사블랑카 비행장 주재의 항공관에서 보낸 것이었다.

나는 읽었다.
"쌩 떽쥐뻬리 씨, 귀하는 카사블랑카 출발시 지나치게 격납고 근처를 선회하였기에

본관은 부득이 귀하의 징계를 파리 당국에 신청함."

내가 격납고 근처를 너무 가까이 선회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이 남자가 화를 내며 직책을 수행하는 것도 틀림이 없다.

나로서도 이 비난을 어느 비행장의 사무실에서 듣는 것이라면

공손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 와서는 안될 곳에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이 너무나도 드문드문한 별들,

안개의 층과 위협하는 듯한 이 바다의 맛 사이에서 폭발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굳게 움켜 쥔 손 안에 자신들의 운명을,

우편물과 탑승기의 운명을 쥐고 있었고,

살기 위해서 많은 곤란을 극복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

이 관리는 자기의 하찮은 불만을 우리에게 내뱉고 있다.

그러나 네리와 나는 분노를 느끼기는커녕

도리어 커다란, 그리고 갑작스런 환희를 느꼈다.

여기, 하늘 밖에 있는 한 우리는 자유였다.

이 사실을 그 조그만 관리는 우리에게 발견시켜 주었다.

그 하사는 우리가 대위로 승진한 것을 우리 소매를 보고 몰랐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우리가 이렇게 북두성과 사수좌 사이를 엄숙하게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우리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유일한 문제는

오직 달의 배반뿐인 절박한 이때에 우리의 명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었다.

절박한 의무,

저 사람이 존재를 표시하고 있는 저 지구의 유일한 의무는 천체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계산의 기초가 되는 정확한 숫자를 알려주는 일밖에 없다.

그런데 그 숫자들이 엉망이다.

그때 네리가 이렇게 써서 보여준다.

"쓸데없는 짓 대신 그들은 우리를 어디로든 이끌어줘야 할 게 아닌가...."

이 "그들"이란

그에게 있어서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

상원과 하원, 해군, 육군, 그리고 황제들까지도 통틀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대들어 보겠다는 이 정신 나간 친구의 통신을 되읽으며

우리는 기수를 수성 쪽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실로 기묘한 우연으로 살아났다.

시스네로스로 갈 생각을 단념하고 해안선을 향해 수직으로 기수를 돌려

가솔린이 다 떨어 질 때까지 방향을 바꾸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순간이 마침내 온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바다 속에 잠겨버리지 않아도 될 약간의 찬스를 남겨둔 것이다.

불행하게도 눈을 속인 그 신호등들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한 불행히도 일이 가장 잘 되어 유지에 당도했다

하더라도 한밤중에 짙은 안개 속을 사고 없이 착륙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황이 지극히 분명한 것이어서 나는 우울하게 어깨를 흠칫했다.

그때 네리가 통신을 건네 주었다.

만약 그것이 한 시간만 일렀더라도 우리를 구해주었을 통신을.

"시스네로스가 우리 위치를 측정하기로 결정.

시스네로스의 지정. 확실치는 않으나 2백 60 도...."

시스네로스는 이제 어둠 속에 파묻혀 있지 않다.

시스네로스는 저기, 우리 왼편에 감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 거리는?

 네리와 나는 잠시 대화했다.

너무나 늦었다.

우리는 같은 의견이었다.

시스네로스는 날아가다가는 도리어 해안에 도달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네리는 답전했다.

"가솔린이 한 시간 뿐이므로 기수를 93도로 고정하겠음."

그러는 중에 비행장이 하나 둘 깨어났다.

우리의 대화에 아가디르, 카사브랑카, 다까르 비행장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각 도시의 무전 국들이 공항들에 급보를 보낸 것이다.

공항의 주임들은 동료들에게 급보를 보냈다.

이리하여 그들은 차례차례로

아픈 사람의 침대맡에 모여들 듯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것은 소용없는 정열이지만,

그러나 정열임에는 틀림없다.

헛된 충고이지만,

 그러나 얼마나 다정스러운가?

그런데 갑자기 뚤루즈가 나타났다.

항공로의 시발점인 뚤루즈가 4천 킬로 미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우리 사이를 헤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묻는 것이었다.

"귀기는 F...."등록표지는 잊었다"가 아닌가?"

"그렇다."

"그렇다면 가솔린은 아직 두 시간 분이 있음.

그 기의 탱크는 표준형이 아님. 시스네로스로 기수를 돌려라."

이와 같이 직업이 강요하는 필요성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뀌게 하고 또한 풍요롭게 만든다.

정기 항공로의 조종사로 옛 풍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와 같은 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승객들의 눈에는 싫증나고 단조로운 풍경도

승무원에게는 색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지평선을 가로막는 저 구름 떼도 승무원에게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고,

승무원들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그에게 여러 문제를 던져주는 것이다.

벌써 그는 그 구름 떼를 고려하고 그것을 자질한다.

그러면 어떤 참된 언어가 되어 그들과 구름 떼를 연결시켜 준다.

여기 산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아직은 멀리 있다.

그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달빛 아래서는 그것은 그것은 편리한 목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종사가 만약 사리 분별에 어두운 안목으로 비행을 할 경우,

또는 기류 때문에 수평으로 밀려 항로에서 벗어났을 때

수정이 곤란하고 자기 위치에 의심이 갈 경우에 그 경우에

그 산봉우리는 폭발물로 변하고, 밤 전체를 위험으로 가득 채우고 만다.
마치 물 속에 잠겨 해류를 따라 표류하는 단 하나의 기뢰가 온 바다를 망쳐 놓듯이.

이와 같이 해양도 변한다.

단순한 여객에게는 폭풍우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높은 곳에서 보면 파도는 전혀 두드러져 보이지 않고,

그 물거품 덩어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엽맥과 얼룩이 보이는 커다란 흰 종려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서리에 얼어붙은 듯이 해면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이런 곳에는 수면에 내리는 게 금지되어 있음을 판단한다.

그러한 종려잎은 그들에게는 커다란 독있는 꽃으로 보인다.

또 비록 그날의 비행이 행복한 것이었을 경우에도

항공로의 어느 한 부분을 비행하고 있는 조종사는

그저 단순한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땅과 하늘의 저 빛깔, 해상의 저 바람의 발자국들, 황혼의 저 황금빛 구름들,

이런 것들을 그는 감탄하지 않고 그것들을 묵상한다.

자기의 논밭을 돌아보는 농부가 천 가지 징조에 의해서 봄이 다가오는 것과,

서리의 위협과, 비가 올 기운을 짐작하는 것처럼

직업 조종사도 또한 눈의 조짐과 안개의 조짐, 다행한 밤의 조짐을 읽어내는 것이다.

기계, 처음에는 그를 자연계의 큰 문제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을 것 같았던 기계가

오히려 보다 더 엄격히 그를 그러한 문제들에 맞서게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이 마련해 주는 광대한 법정 한가운데서

이 조종사는 혼자서 산악과 해양과 번개와 비라는 개벽 이래의

세 가지 신들을 상대로 자기의 우편기를 사이에 두고 겨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