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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3.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34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3.


꿈속에서는 자주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얼굴이
생기를 띠고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왔으며
아주 친한 듯이, 혹은 적대적인 태도로, 때론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한히 아름다우며 조화된 고귀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어느 날 아침 역시 그러한 꿈을 꾼 후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나는 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얼굴은 말할 수 없이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내 이름이라도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만큼이나 나를 잘 알고 있는 듯,
옛날부터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흥분을 억누르며 나는 그 그림 속의 얼굴을,
숱이 많은 갈색 머리칼과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입술,
그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밝음을 지닌 억센 이마를 바라보았다
(그 그림은 저절로 말라 있었다).
나는 차츰 마음 속에서 눈에 익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뛰어 일어나서 그 그림 앞에 아주 가까이 다가서서
크게 뜬 초록빛이 감도는 눈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을 응시하였다.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약간 치켜져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이 오른쪽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주 가볍게 그러나 분명히 그 눈은 움직였고,
이 작은 움직임으로 나는 이 그림이 누구의 얼굴인지를 알아차렸다‥‥‥.

어쩌면 이렇게 늦게서야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던 것인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그 후 나는 종종 내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그 그림을 비교해보았다.
닮기는 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미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어느 초여름 석양 무렵, 서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기울어져가는 태양빛이 붉게 비쳐들었다.
방안은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나는 베아트리체의 초상, 아니 데미안의 초상을
핀으로 창틀 가운데에 고정시키고
석양이 비쳐드는 모양을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얼굴은 윤곽이 흐려져 몽롱해 보였지만
붉게 그늘진 눈과 이마의 밝음과 유난스레 붉은 입술은
더욱 생생하고 깊게 타올랐다.

석양은 곧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앞에 마주앉아 있었다.
그러자 점차 그 얼굴은 베아트리체나 데미안이 아니라 ---
내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그림은 나와 닮진 않았다 ---
그럴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렇지만 극서은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나의 마음, 나의 운명 혹은 나의 데몬이었던 것이다.
언제라도 내가 다시 친구를 구한다면 그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이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의 삶과 나의 죽음 역시 그러할 것이엇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운명의 울림이었고 율동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이제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
한층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을 한 권 읽었다.
훗날에도 니체를 제외한다면 그러한 감동을 준 책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시간과 금언이 수록되어 있는 노발리스의 책이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을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 귀절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을 이끌어주고 나를고무시켜주었다.
지금 그 금언의 한 귀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나는 그 귀절을 펜으로 초상의 아래에 적어두었다.
‘운명과 마음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이름들이다.’
그 말을 나는 그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베아트리체라고 이름 지은 소녀와 나는 여전히 자주 마주쳤다.
나는 이미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늘 부드러운 화합과 감정의 어떤 예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대와 나는 맺어져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실체가 아니라 그대의 영상만이 그럴 뿐이다,
그대는 내 영혼의 일부분인 것이다 라고.

막스 데미안에 대한 동경이 다시 강렬하게 타올랐다.
나는 그의 소식을 수년 내에 한 번도 듣지 못했었다.
단 한번 방학 때 그를 만난 적이 있긴 했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이 잠깐 동안의 만남을이 기록 속에 숨겨두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이 수치와 허영심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나는 그것을 만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내가 술집에 드너들던 시절의 어느 방학 때
언제나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단장을 휘두르면서 옛모습 그대로,
멸시하고 싶은 얼굴을 한 거리의 건달들을 구경하면서
건들건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나는
그 옛날 친구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몸이 오싹해졌다.
번갯불처럼 프란츠 크로머가 생각났다.
제발 데미안이 그때의 일을 잊어버렸다면 좋겠는데!
그에게 신세 갚아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불쾌했다.---
사실, 어리석은 아이 때의 일이었긴 해도 신세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는 내가 인사를 하려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태연하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옛날과 똑같은 그의 악수였다!
꽉 움켜쥐는,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남성적인 악수!
그는 주의깊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싱클레어, 너 많이 컸구나.”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아 보였다.
이제껏과 똑같이 늙어 보였고 동시에 똑같이 젊어 보였다.
우리는 함께 산책을 하며 순전히 딴 이야기만 했는데
그 당시의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몇 번이나 답장도 받지 못한 편지를 보냈던 일이 생각났다.
아, 제발 그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으면 좋겠는데.
그 바보 같은, 바보 같은 편지를!
그는 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아직 베아트리체도 초상도 없었고
나는 황량한 시기의 한복판에 있었던 참이었다.
교외로 나가자 나는 주막집에 가자고 제의를 했다.
그는 함께 갔다. 나는 잔뜩 멋을 부리며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해 잔에 채우고
그와 잔을 부딪치고는 학생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첫 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술을 자주 마시니?”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응, 물론.” 나는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것 외에 무슨 할 일이 있니?
아직까지는 제일 재미있는 일이니까.”
”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제법 근사한 점도 있으니까 말이야.
---도취의 황홀감과 바커스적인 요소가 말이야.
그러나 주막집에서 시간을 낭비해버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멋이 쉽게 사라져버릴 거라고 생각해.
술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진짜 건달 같은 짓이라고 생각된단 말이야.
어떤 때는 하룻밤 내내 타오르는 관솔불 곁에서
진짜 아름다운 도취경과 흥분을 맛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러나 언제나 같은 식으로 자꾸 술잔을 기울여댄다는 것이 정말 잘하는 짓일까?
매일 밤 단골 주막 술상을 보고 있는 파우스트를 상상할 수 있겠니?”

나는 술을 마시며 적의에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누구나가 다 파우스트는 아니니까.” 나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는 다소 놀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전처럼 싱싱하고도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웃음을 웃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그 따위 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거지?
하여간 술꾼들이나 건달의 생활이 어떻게 보면
모범적인 시민의 생활보다 훨씬 더 생기있는 것이기도 할 거야.
그리고---언젠가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이야기인데---
방탕하 생활은 신비주의자가 되기 위한 최선의 준비활동이란 말이야.
예언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성 어거스틴 같은 그런 인물이거든.
그도 예언자가 되기 이전에 향락가였고 방탕아였었거든.”

나는 은근히 미심쩍은 심정이 되어
그에게서 훈계조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나는 냉담하게 말했다.
“그렇지. 누구나 다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거니까.
솔직이 말해서 나는 예언자 같은 건 될 마음이 전혀 없어.”
데미안은 눈을 지그시 내리깐 채 알아들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봐 싱클레어.”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너에게 잔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말이야---
무슨 목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지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있어.
하지만 너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
너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네게 도움이 될 거야.
---자, 이만 양해를 구하네. 나는 집으로 가야겠어.”

우리는 짤막하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몹시 마음을 상해서는 그대로 혼자 앉아서 남아 있는 술을 다 마시고
집으로 가려고 했을 때 데미안이 벌써 술값을 치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일이 더한층 마음의 울화를 돋우었다.

이 사소한 사건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가 그 교외의 주막에서 내게 한 말들을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게 한 마디도 잊지 않고 기억해낼 수가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네게 도움이 될 거야.”

아직도 창틀에 고정되어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그 그림에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아직도 두 눈만은 생생히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눈초리였다.
아니면 나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눈초리였다.
온갖 것을 알고 있는 눈초리였다.

나는 데미안에게 얼마나 깊은 동경을 품고 있었던가!
그러나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나에겐 도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아마 어디에선가 공부를 계속하고 있을 터이고,
그가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그의 어머니도 우리 고장을 떠났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크로머의 일을 포함해서 나는 데미안과 관련된 온갖 일들을 다시 생각해내었다.
그가 일찍이 내게 이야기해주었던 것들이 생생하게 지금 다시 울려왔고,
그 말들은 오늘에 있어서까지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나와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가 별 기쁘지 않은 해후를 했을 때
방탕자와 성자에 관해 이야기를 했던 뜻도 갑자기 마음속에서 분명해졌다.
나에게도 그가 이야기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새로운 생에대한 충동과 함께 청순함에 대한 욕구와
성스러움에 대한 동경이 나의 마음속에서 솟구쳐오르기까니
나 역시 술주정과 더러움과 마비와 방탕 속에서 헤매고 다니지 않았던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 동안 밤이 깊어갔고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밤나무 아래에서 그가 프란츠 크로머에 대해 캐묻고
그와 관련된 나의 비밀을 알아맞히던 때의 빗소리였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 나누었던 대화, 견신례 수업 시간,
이렇게 한 가지의 기억이 끝나면 또 다른 기억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스 데미안과 맨 처음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무슨 문제가 있었던가?
그 기억은 당장에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시간을 두고 그 기억을 되살리기에 열중했다.
그러자 그 생각도 다시 떠올랐다.
그가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뒤 우리들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현관 아치 밑의 초석 안에 새겨져 있는
낡고 퇴색한 문장에 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흥미를 느꼈으며
누구나 그런 물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었다.

잠자는 동안 나는 데미안과 그 문장의 굼을꾸었다.
데미안이 그것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조그맣고 잿빛이 되었다가도
때로는 굉장히 커져서 여러가지 빛깔을 띠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그것은 언제나 한가지고
똑같은 문장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나에게 그 문장을 삼키라고 명령했다.
그것을 삼키자 나는 질겁을 했다.
삼킨 문장 속의 새가다시 살아나서는
내 배를 채우고 뱃속을 쪼아대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죽은 듯한 두려움을 느끼며 나는 놀라서 잠을 깼다.

정신이 말똥해졌다.
한밤중이었고 방 안으로 비가 들이치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닫으려고 일어났을 때 방바닥에 놓인 무언가 흰 것을 밟았다.
아침에서야 그것이 내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림은 물에 젖은 채로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잇었다.
나는 그것을 말리려고 흡수지 사이에 끼워 두터운 책 속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다시 보니 잘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림은 변해 있었다.
붉은 입술은 다소 파리해지고 얼마간 가늘어져 있었다.
이제야말로 정말 데미안의 입 그대로였다.
나는 그 문장의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본래의 그 새 모양을 나는 똑똑히 알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것은 너무 낡아서 때때로 다시 색칠을 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가까이에서조차도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새는 서 있었거나 아니면 무엇인가의 위에 앉아 있었는데
한 송이 꽃이었는지, 바구니나 둥우리였는지 또는 나무 꼭대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소한 것에 마음쓰지 않고 마음속에서
분명히 영상이 떠오르는 부분부터 그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분명치 않은 욕구에서 나는 곧 강한 색깔을 쓰기 시작했다.
새의 머리는 내 그림에서는 황금빛이었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그려나가 그 그림은 며칠 안에 완성되었다.
그려진 것은 날카롭고 겁없어 보이는 새매의 머리를 한 한 마리의 커다란 새였다.
그 새의 반신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어두운 지구에 박혀 있었고
마치 커다란 알에서 깨어나오려는 것처럼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그림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에게는 꿈속에서 보았던 아롱진 문장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데미안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부칠 곳을 안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무슨 일을 할 때나 느끼던 꿈과같은 예감으로
그것이 그에게 전해지거나 그렇지 못하거나가에 그
에게 그 새의 그림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나는 그 위에다 아무것도, 내 이름조차도 적지 않고 가
장자리를 조심해서 오래내고는 커다란 봉투에 데미안의 옛날 주소를 썼다.
그리고는 그것을 부쳤다.
시험이 다가왔고, 나는 옛날보다는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나의 행실을 바로잡은 이후로 선생님들은 나를 너그럽게 대해주셨다.
지금도 역시 나는 썩 선량한 학생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선 어느누구도 반 년 전의 퇴학 처분 경고에 대한
기억을 들추어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이제는 비난이나위협조가 아닌 옛날의 어조로 편지를 보내셨다.
나는 그에게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이유로
내게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이 변화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기대와 일치되었다는 것은 우연이었다.
이 변화로 나는 다른사람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남이 나에게 접근해오는 것을 허용치도 않았으며
단지 나를 한층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어느 곳인가를, 데미안을, 멀고 먼 운명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사실상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지도 못했으면서 그 한복판에서 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베아트리체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 속의 초상이나
데미안에 대한 생각으로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베아트리체는 완전히 내 시선과 생각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누구에게도 나는 꿈에 관해, 나의 기대와 내적인 변화에 관해
한마디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설사 그렇게 하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원할 수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