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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1.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28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4 장 베아트리체 1.  


방학이 끝나자 나는 내 친구를 다시 만나보지도 못하고 성○○시로 출발했다.
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나를 따라오셔서는 온갖 일에 세심히 염려 해 주시면서
김나지움의 선생님이 경영하는 소년 기숙사에 내 거처를 정해주셨다.
그렇지만 부모님들께서 나를 어떤 곳에,
어떤 아이들 사이에 넣어주셨는지를 아신다면 아마 기절할 만큼 놀라셨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착한 아들이 되고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의 천성이 다른 길로 뻗어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아버지의 세계와 아버지의 정신적인 영향력 아래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내 마지막 노력은 오래 계속되었고
한때는 거의 성공할 것 같기도 했었으나 결국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견신례를 받은 이후 방학 동안 최초로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과 고독감은
(나는 이 공허감과 희박한 공기를 후일 또 얼마나 진하게 맛보게 되었는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고향에 이별을 고하는 일은 이상스러울이만큼 쉬웠고
전혀 슬프지 않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누나들은 끝없이 울었지만 나는 전혀 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러한 자신에 대해 무척 놀랐다.
나는 꽤나 감정이 풍부한 편이었고 근본적으로는 제법 선량한 아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는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냉담한 태도를 취하며
온종일 나의 내부에 귀기울였었는데 결국은 가장 내면적인 곳에서 흐르고 있는
금지된 어두운 냇물 소리를 듣는 데 온 정신을 빼아시고야 마는 지경이었다.

지난 반 년 동안 나는 급격히 자라나 후리후리하고 야윈 모습으로
불완전하나마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소년다운 귀염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져
내 자신조차도 이런 모습으로서야 남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더구나 나 자신조차도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자주 막스 데미안을 깊이 동경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를 미워하기도 하였으며
내 자신이 짐어진 추악한 병과 같은 생활의 빈곤함에 대해
은연중 그 책임을 그에게 전가시키고 있었다.

학생 기숙사에서 나는 귀여움을 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존중을 받지도 못했다.
처음엔 놀림을 받았고 다음엔 경원당했으며
음울한 녀석, 불쾌한 별난 녀석으로 취급되었다.
나는 그 역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한층 더 과장하기까지 했는데
표면적으로는 가장 사나이답게 세상을 멸시한다는 듯이
고독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남몰래 비애와 절망감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집에서 쌓아두었던 지식을 조금씩 파먹었는데
지금의 학급이 이전의 학급에 비해 다소 뒤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나이가 같은 또래를 어린애라고 얕보는 습관마저 생겼다.

일 년쯤,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아무런 새로운 변화는 없었다.
나는 기꺼이 집을 다시 떠나왔다.
11월 초순의 일이었다.
나는 어떤 날씨에도 생각에빠져 정신없이 산책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그렇게 걸으면서 나는 일종의 즐거움을,
우울과 염세와 자기 모멸감에 가득 찬 뒤틀린 기쁨을 맛보곤 하였다.
어느 날 나는 축축히 안개가 내리고 있는 해질녘에
교외에 있는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공원의 넓은 가로수 길은 텅 빈 채 나를 맞아들였다.
길에는 낙엽이 겹겹이 깔려 있었고
나는 어두운 쾌감을 느끼면서 발로 그 낙엽을 헤적거렸다.
축축하면서도 쓴 냄새가 공기 속을 떠돌았고
먼 곳의 나무들은 안개 속에서 도깨비처럼 그림자를 지으며 서 있었다.
긴 가로수 길의 끝에서 나는 망설이는 심정으로 멈춰서서
검은 나뭇잎을 쳐다보며 그것들이 바스라져 사라져가는
축축한 냄새를 탐욕적으로 들어마셨다.
나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그 냄새에 응답하며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 인생의 무의미함이여!

누군가 옆길에서 바람에 외투의 높은 깃을 펄럭이며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자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
”이봐, 싱클레어.”
다가운 사람은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알폰스 베크였다.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내게도 다른 애들에게 하는 것처럼
언제나 비꼬듯이 이야기하며 어른인 척하는 태도를 제외하면
별달리 그에 대해 반감을 갖진 않았었다.
그는 곰처럼 힘이 세고 기숙사의 사감을 꼼짝도 못하게 하고 있다는
김나지움 학생들간의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넌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니?”
그는 어른들이 때로 우리 또래의 학생들을 어른처럼 대해줄 때와
같은 어조로 상냥하게 말을 했다.
“어디, 내기를 해볼까. 너 시를 짓고 있지?”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무뚝뚝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

그는 낄낄거리고 웃으며 내게로 다가와서
전혀 익숙치 않은 태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계할 건 없어, 싱클레어.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니?
이렇게 안개가 내리는 가을 저녁에 사색에 잠겨 거닐 때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법이거든.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시를 쓰지. 그런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물론 사라져가는 자연에 대해서나 아니면
그것과 비유되는 사라져간 청춘에 대해서 .
하인리히 하이네를 봐.”
”난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 말에 항의했다.
”그래, 좋도록 생각하렴!
그런데 이런 날씨에는 한잔의 포도주나 아니면 비슷한 것이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때 잠깐 나를 따라올래?
나도 마침 혼자니까. ---생각이 없니?
네가 모범생이 되겠다고 한다면 굳이 권하진 않겠다만.”

우리는 곧 조그만 교외의 주막집에 마주앉아
다소 미심쩍은 맛의 포도주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언지 새로운 맛이 느껴지긴 했다.
나는 술을 마셔본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곧 취하여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나의 내부의 창문이 활짝 열린 것 같았고 세계가 그 속에 비쳐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참으로 무섭게도 오랫동안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지껄였고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까지 멋지게 해치웠다!

베크는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마침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내 어깨를 치며 아주 근사한 녀석,
재주있는 녀석이라 불렀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켰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
그것도 나이많은 선배에게서
제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날뛰었다.

나는 독창력있는 녀석이라고 한 그의 말은
내 마음속에 감미롭고도 독한 포도주처럼 스며들었다.
세계는 새로운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사상은 수백의 세찬 샘처럼 솟구쳤으며 영혼과 불이 나의 내부에서 불타올랐다.

우리는 선생님과 급우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적어도 내게는 우리가 멋지게 의기투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리스인과 이교도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베크는 나로 하여금 정사에 대한 고백을 들으려 애를 썼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야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할 만한 경험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에서 혼자서만 느끼고, 만들어내고,
공상해온 것은 나의 내부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술의 힘으로도 불가능했다.

여자에 대해서라면 베크 자신이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듣고 있자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온 일들이
사실에 있어서는 아주 평범하고 분명한 것이었다.
알폰스 베크는 열 여덟살쯤 되었을 뿐이지만 벌써 경험이 많았다.
모든 경험 가운데서도 베크는 특히 처녀들이란
아름다운 일이나 은근한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경험을 하였는데
물론 그것은 좋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었다.

부인네들에게서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는데
그네들이 훨씬 그 점에 대해 영리하다는 것이었다.
가령 문방구 주인인 야크겔트 씨의 부인 같은 여자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고
그 가게의 카운터 뒤에서 이제까지 있어온 일들을
어떤 책에도 적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넋을 잃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멍청히 앉아 있었다.
물론 내가 야크켈트 부인을 사랑하게 될 리는 없을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이먹은 사람들에게는 나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어떤 샘이 흐르고 있는 것이리라.
그 이야기에는 약간의 거짓말도 섞여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했고
그가 말한 것은 내 생각 속에서의 사랑의 맛보다는
보잘것없고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모두 사실이었고 생활이며 모험이었던 것이고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모두 실제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아주 일상적인 일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내 곁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다소 뜸해지고 활기를 잃었다.
나는 더 이상 천재적인 어린 녀석이 아니었으며
단지 어른의 말에 혹해 귀기울이고 있는 소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수개월 동안의 나의 비참한 생활에 비한다면 천국에서의 일처럼 감미롭게 들렸다.
주막에 앉아 있는 일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 속에서 미흡하나마 정신적인 어떤 것을 맛보았고 혁명의 징후를 감지했다.

나는 그날 밤의 일을 뚜렷이 기억한다.
우리가 희미하게 타오르는 가스등의 곁을 지나
차갑고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귀가를 재촉했을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취해 있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고 사실 몹시 괴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 외에 무엇인가 매력과 감미로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반란과 방종이었고 생명력과 정신이었다.
베크는 나를 보고 새파란 풋나기 녀석이라고
투덜거리며 욕하긴 했지만 나를 끝까지 책임졌다.
그는 나를 반즘 떠매다시피 하여 기숙사까지 데리고 왔고
어찌어찌해서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
무사히 들키지 않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극히 짧은 동안의 죽은 듯한 잠에서 깨어나자
마음은 괴로왔고 발광할 듯한 고통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낮에 입었던 샤쓰는 형편없이 구기어졌고
웃옷과 구두는 방바닥에 팽개쳐진 채로 있었으며
땀내와 토사물의 냄새가 풍기고 두통과 구토증과
미칠 듯한 갈증이 나를 휩싸고 있는 동안
홀연 내 마음의 거울에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한 영상이 비쳤다.

나는 고향과 부모님의 집,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정원을 보았고,
조용한 고향 집의 내 방을 보았으며
학교와 시장을 보았고, 데미안과 견신례의 장면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모두 아름답고 경건하고 청순하게 보였다.
이 모든 것은 그렇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어제까지도, 아니 몇 시간 전까지도 나의 것이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사라져버리고 저주를 받고 더 이상 나에게 속해 있지 않으며
나를 거부하고 증오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옛날 가장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의 정원에서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친근함,
어머니의 다정한 입맞춤과 매번의 성탄절,
경건하고도 명랑했던 주 일요일 아침과 정원에 피어 있던 온갖 꽃---
이 모든 것들은 황폐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내 스스로 짓밟아버린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사자가 와서 나를 묶어 쓸모없는 인간,
신성 모독자로 취급하여 교수대로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따라가며 그 일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나의 내면은 이러했다.
천지를 헤매어 다니며 세상을 얕잡아 본 자여!
외람된 정신으로 데미안의 사상에 공명하던 자여!
쓸모없는 인간이며 추잡하고 술에 취하고 더럽고 구역질이 나며
저열하고 거칠어진 짐승 같은 자이며,
추악한 충동의 노예가 된 내가 이럴 수밖에 더 있을까!

온갖 청순함과 빛과 사랑스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던 정원에서 자란 나,
바하의 음악과 시를 사랑했던 나, 이런 내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니!
내 자신의 웃음소리가, 술에 잔득 취해 자제력을 상실한 채
충동적이고도 바보처럼 낄낄거리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으며
나는 심한 구역질과 분노를 느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운 가책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는 것은 거의 향락에 가까웠다.
내 마음은 너무나 오랫동안 맹목적이고도 미련스럽게 움츠러들어 있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소리를 죽인 채 쇠잔하게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이런 가책과 고통의 전율과 영혼의 어떤 추악한 감정조차도 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는 분명 감정이 있었고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나는 이렇듯이 해방이나 봄과 같은 그 무엇을 느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거칠게 타락해가고 있었다.
최초의 주정은 얼마 되지 않아 최초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폭주가 성행했고 난행이 속출했었고
나는 그들 가운데 최연소자 축에 끼었는데 얼마가지 않아
한몫 거드는 축이나 풋나기가 아니라 우두머리며 샛별 같은 존재였고
유명하고도 거침없는 주막집의 단골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어두운 세계, 악마의 세계 속으로 투신했고
이 세계에서는 아주 근사한 녀석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켜가는 미치광이의 소굴에서 살고 있었던 것인데
친구들에게는 대장이니, 근사한 녀석이니,
비상하게 날카롭고 재치가 번득이는 녀석이라고 인정받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불안에 갇힌 찬 영혼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엔가 주일 예복차림으로 명랑하고 즐겁게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을 때 돌연 눈물이 흘러내렸던 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누추한 주막의 더러운 탁자에 기대어 맥주에 취해 낄낄거리면서
터무니없이 방탕한 풍자로 친구들을 웃기고 때로는 놀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의 나는 남몰래 내가 조롱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경심을 품고 있었으며
나의 영혼 앞에, 나의 과거와 어머니 앞에,
그리고 신 앞에 울면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나의 패거리들과 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과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고독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렇게도 괴로와했던 것에는 근거가 있었다.
나는 가장 난폭한 패의 마음에도 드는 주막집의 호걸이며 독설가였다.
나는 선생, 학교, 부모, 교회에 대한 생각이나
이야기에서는 재치와 용맹을 떨쳤다
나는 음담패설조차도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했으며, 한 가지쯤은 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패거리들이 여자에게 갈 때만은 한 번도 끼지 않았던 것인데
그것으로 미루어 나는 철면피한 탕자임에 틀림없는 척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외로웠고 사랑에 대한 격렬한 동경과
가망없는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 이상 상심하기 쉽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은 없었다.
때로 젊은 처녀들이 아름다고 말쑥한 차림으로
명랑하고 우아하게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근사하고 깨끗한 꿈처럼 느껴졌고
나보다 천 배나 선량하고 청순하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