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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1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40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 1


내가 그린 꿈의 새는 여행을 떠나 나의 친구를 찾았다.
그 회담은 아주 신기하게 내게 왔다.

어느 날 수업중의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책갈피 사이에 종이쪽지가 한 장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종이는 우리들이 종종 수업 시간중에 편지질을 할 때 접는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누가 그런 편지를 내게 보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어느 친구와도 그런 짓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학교에서 성행하는 어떤 장난을 권유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을 뿐,
그런 짓에 참가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심히 종이쪽지를 읽지도 않은 채 책의 앞쪽에다 꽂아두었다.

그러다 수업중에서야 다시 그것을 손에 잡게 되었다.
종이쪽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생각없이 펼쳐본 나는
거기에 몇 귀절이 적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을 읽자마자 그 귀절에 온 몸과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었다.
놀란 심정으로 재차 읽어보는 동안 내 마음은 몹시 추울 때처럼
떨며 운명 앞에서 움츠러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나는 여러 번 이 귀절을 읽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데미안으로부터의 회답이었다.
그와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그 새에 대해서 알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나의 그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 그림을 이해했고 나의 해석을 도와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의 정체였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이름을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었다.
“그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수업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그시간이 끝났다.
그날 오전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수업은 젊은 보조 교사 담당이었는데 그는 대학을 갓 나온 사람으로
매우 젊고 공연히 잘난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었다.

우리는 폴렌스 박사의 지도로 헤로도투스를 읽었다.
이 강독 수업은 내가 흥미있어 하는 극소수의 과목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날만은 수업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책을 펼쳐든 채 그의 수업은
귓전으로 들어넘기며 내 생각의 뒤를 좇고 있었다.

나는 pealdks이 이전의 견신례수업 시간에 내게 이야기했던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여러 번 느껴왔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강력히 원하면 그것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말이다.
만약 내가 수업중에 아주 강하게 내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으면
선생님들은 나를 내버려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산란하거나 졸릴 때면
갑자기 선생님이 옆에 와서 서 있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정말로 깊이 생각에 몰두해 있다면 안전했다.
나는 강한 시선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실험도 해보았는데,
그것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 당시, 데미안과 함께였던 시절에는 성공할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시선과 깊은 생각으로
매우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간에도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앉아서
헤로도투스와 학교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의식을
번갯불처럼 내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내 곁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나는 다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분명하게 아프락사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첫머리는 듣지 못했지만 폴렌스 박사는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대의 그 교파와 신비적인 교단의 견해를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파악되는 것만큼 소박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의미하는 바의 과학적 기준으로는
도대체 고대를 바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철학적 신비적 진리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일부는 때로 사기와 범죄에 닿는 마술과 유희로 진행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술이라는 것도 원래에는 필연적인 이유와 깊은 사상을 지녔던 것입니다.
내가 앞서 예로 든 아프락사스의 교의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의 주문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대게 야만족들이 믿고 있는
어떤 악마의 이름이라고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뜻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개괄적으로 이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가진 일종의 신의 이름으로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몸집이 작은 이 젊은 학자는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설명을 계속했다.
크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이 다시 거론되지 않게 되자 나도 다시 내면적인 생각으로 주의를 돌렸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
이 설명의 여운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이것을 예전의 어떤 일과 결부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이 우정을 나누던 최후의 시절, 데미안과의 대화로 내겐 친근한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존경하는 하나의 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신은 단지 인위적으로 구분된 세계의 절반만을 포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공적이고 허용된 ‘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사람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악마까지도 겸한 새로운 신을 갖거나 아니면
신에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데미안은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
그렇다면 지금 이 아프락사스가 신인 동시에 악마인, 바로 그 신인 것이었다.

얼마 동안 대단히 열심히 그 신에 대해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나는 아프락사스에 대한 것을 찾기 위해 온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나의 천성은 손에 쥐고 보면 돌맹이에 불과한 그런 진리를 발견해내는 일 같은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탐구에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 그렇게 몰두했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서서히 관심 속에서 멀어져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자처럼 아슴하고 희미해졌다.
그것은 이미 나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못했다.
내 자신의 내부에 틀어박혀서 몽유병자처럼 살아온
내 생활 속에 기이하게도 새로운 형태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했다.

생활에의 동경, 아니 사랑에의 동경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것과,
베아트리체를 예배하는 동안 잦아들어져 있던 성적인 충동이
다시 나의 내부에서 솟구쳐 왔고 새로운 영상과 목적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내겐 어떤 충족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경을 부인한다거나 아니면 내 친구들이 충족을 채우는
그러한 소녀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 심하게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밤에보다 낮에 더 많이 꾸는 형편이었다.
표상, 영상, 혹은 소망이 나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 마음속의 그러한 영상들과 함께, 꿈과 그 그림자와 함께,
현실적인 일상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생명력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갔다.

어떤 일정한 종류의 꿈,
항상 되풀이하여 떠오르는 환상이 나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내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을 크게 미쳤던 꿈은 대략 이러했다.

나는 고향의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
현관 위에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문장 속의 새가 황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러나 내가 막상 어머니를 포옹하려고 하자
그는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변했는데,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힘이 세었으며 막스 데미안이나
내가 그린 초상과 닮았지만 또 막상 보면 다른 모습이기도 했으며
힘차 보이면서도 극히 섬세한 여성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를 끌어당겨서 깊고 몸이 떨릴 정도의 사랑의 포옹을 해주었다.
희열과 공포가 뒤섞여 다가왔는데 그 포옹은 신에의 예배인 동시에 죄악인 것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너무나 많은 추억과
데미안에 대한 너무나 많은 추억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 여인의 모습 가운세서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져갔다.
그녀의 포옹은 엄숙한 경건성에는 위배되는 것이었으나 희열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이 꿈에서 때로는 깊은 행복감을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고,
때로는 무서운 죄를 범한 것 같은 죽음의 공포와 양심의 가책에 떨며 깨어나기도 했다.

아주 내적인 이 영상과 외부에서 찾아든 탐구해야 할
신에 대한 암시 사이에 어떤 무의식적인 관련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점점 일정하고 친밀하게 결속되었다.
나는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아프락사스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감지하게 되었다.
희열과 공포, 남성인 동시에 여성인 것의 혼합, 성스러움과 전율의 뒤엉킴,
다감한 천진성을 뚫고 지나가는 깊은 죄악에의 예감---
이것이 내 사랑의 꿈의 영상이었고 아프락사스 역시 그러했다.
사랑은 이미 내가 불안스럽게 여겼던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고,
동시에 내가 베아트리체의 초상에게 바쳤던 경건학 정신화된 숭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양쪽 다였다. 양쪽 다였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천사인 동시에 악마였고 남성과 여성이 합일된 것이었으며
인간적인 것과 동물적인 것, 최고의 선과 극단의 악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이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에 대해 깊은 동경을 품음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것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실재로 존재해서는 수시로 나에게 덮쳐왔다.

다음 해 봄에 나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를 정할 수가 없었다.
내 입술 위에는 콧수염이 자리기 시작했으니 나는 이제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으며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나의 내부의 소리, 즉 꿈의 영상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이끄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날마다 그것에 반항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것일까?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역시 할 수 있었다.
조금만 주의와 노력을 집중시키면 플라톤을 읽어낼 수도 있었고
삼각법의 문제도 풀 수 있었으며 화학적인 분석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목표를 끄집어내어 내 앞에다 확실히 그려보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교수나 법관, 의사가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루려면 얼마만한 기간이 필요하고
거기엔 어떤 현실적인 이점이 있는지를 잘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직업을 갖게 될 것이겠지만
지금은 내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몇 년을 찾고 또 찾아왔지만 아무것도 된 일은 없었고,
어떠한 목표에 도달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역시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정말 난처하고 위험스러우며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나는 때때로 내 꿈속에 나타나는 힘찬 사랑의 자태를 그려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만일 그것에 성공했다면, 나는 그것을 데미안에게 보냈을 것이었다.
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을 뿐이었다.
언제나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 시절의 그 몇 주, 아니 몇 달간의 고요한 정적은 옛날에 사라져버렸다.
당시에 나는 하나의 섬에 도착하여 평화를 발견해 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같은 상태였다---
어떵 상태가 내 마음에 들기가 무섭게,
어떤 꿈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가 무섭게 그것는 벌써 퇴색해버리고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나를 완전히 야성적이고 미치광이처럼 만들고 마는,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과 긴장된 기대의 불꽃 속에서 살고 있었다.

꿈속에서 보는 그 여인의 모습을 나는 때때로 너무도 생생하게,
내 자신의 손을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저주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어머니라 부렀고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
그를 애인이라고 부르며 모든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깊은 입맞춤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그를 악마, 매춘부, 흡혈귀, 살인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나를 다정스럽기 그지없는 사랑의 꿈으로 유인하기도 했고
이를 데 없이 철면피한 행위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에게는 지나치게 선량한 것도, 존귀한 것도 없었으며
동시에 지나치게 사악한 것도 비천한 것도 없었다.

그해의 온 겨울을 나는 표현하기 힘든 내적 폭풍우 속에서 지냈다.
고독하다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으므로
새삼스럽게 고독이 나를 압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덥루어, 새매와 더불어,
나의 숙명인 동시에 나의 애인인 커다란 꿈의 영상과 더불어 살았다.
그것들 속에서는 살아가기에 충부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위대한 것,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고,
또 모든 것들이 아프락사스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꿈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생각의 한 조각도 내게 복종하지는 않았으며,
나는 그것들 중의 단 하나도 내 임의로 불러들일 수가 없었으며
단 하나도 내 마음대로채색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내게로 와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며,
나는 그것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그것들로써 살아갔던 것이었다.

분명히 나는 외부에 대해서는 안전했을 것이었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같은 반의 친구들도 그것을 느끼고는 은근히 나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때가 있어서
나를 실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대부분을 잘 꿰뚫어볼 수가 있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나는 거의, 아니 전혀 그렇게 하려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일, 나 자신만의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생명의 작은 부분이나마 살아 보고
내 자신 속에서 무엇인가를 끌어내어 그것을 세상에 주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싸움을 시작하게 되기를 열렬히 원했다.
여러 번 저녁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끝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한밤중까지 헤매고 다닐 때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의 애인과 마주치리라,
다음 골목 모퉁이에서는 그와 만날 수 있으리라,
저 다음 창문에서 그가 나를 부르리라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때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나를 옥죄어 와
언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까지 하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피난처를 나는 당시에---‘우연히’ 발견했다.
그러나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더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그곳으로 그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인가 세 번쯤 시내를 걸어다니다가
교외의 조그만 교회에서 울려나오는 풍금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엔 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나는 또
다시 풍금 소리를 들었고 바하의 곡이 연주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문으로 가 보았지만 문은 닫혀져 있엇다.
골목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외투깃을 올리고 교회 옆에 있는 길가의 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과히 크지는 않았지만 좋은 풍금인 것을 곧 알 수 있었고,
연주는 묘하게, 독특하고도 고도의 개성적인 의지와 인내를 표현해내는
훌륭한, 거의 대가의 솜씨로서 마치 기도처럼 울려왔다.
풍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는 자여서
마치 생명을 얻으려는 자처럼 이 보물을 얻기 위해 애쓰고
두드리고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교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음악에대해 그다지 전문적인 안목을 갖추지 못했지만
진실한 영혼의 표현은 아주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음악의 본질을 아주 분명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