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3장 도 둑 - 1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하에 있던 안전한 내 유년 시절의 생활에 관해,
또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온화하고 밝은 환경 속에서
만족스럽고도 즐겁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생활에 관해서는
아름답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온갖 단어들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흥미있는 것은 내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걸어왔던 그 발자취뿐이다.
물론 유년 시절의 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온갖 아름다운 휴식처와 행복의 섬과 낙원들은 아득한 빛 속에 남겨두고
나는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직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었던 그때의 경험,
나를 내몰고 나를 휘몰아쳐간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런 충동은 언제나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불안과 강요와 양심의 가책을 가져다주었고
놀랍도록 혁신적이어서 내가 머물고자 애썼던 평화로운 상태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나 있는 세계에서는
어딘가 숨을 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원시적인 충동이
내 속에서도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에 대한 호기심의 감정이
나의 적이며 파괴자로서, 금지된 유혹과 원죄로서 나를 찾아왔다.
이러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꿈과 쾌락과 불안이
내게 가르쳐준 사춘기의 비밀 같은 것은 어린 시절의 아늑한 평화와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으면서도 아이인 것처럼 행동하는 이중성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의식은 허용된 밝은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희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를 완강히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비밀스런 꿈과 본능과 갈망 속에서 살았으며
그런 비밀과 의식적인 생활과의 사이에 갈수록 위태로와지는 다리를 걸쳐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내부의 어린이의 세계는
이미 모두 허물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나의 부모님들도
공개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사춘기의 생명의 충동을 도와주지 않으셨다.
단지 현실을 거부하고 갈수록 비현실적이며 허위일 수밖에 없는
어린이의 세계에 머물려고 하는 헛된 노력을 도와주실 뿐이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과연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내 부모님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처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대부분의 소위 명문가의 자삭들처럼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하고 말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라면 특히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살아갈수록
자기의 생의 욕구와 주위의 세계가 곳곳에서 대립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전신의 힘을 다해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라는
교훈을 배우는 인생의 한 기점이 되는 것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전에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우리를 떠나려 하고
고독과 죽음과 같은 차가운 공간이 우리 주위에 다가온다고 느낄 때,
유년 시절은 점차 허물어져 없어지고
숙명적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그러한 경험은 평생을 통해 단 한 번 가능한 것이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올바로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못되고 가장 살인적인
실락원의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가자.
내게 있어서 유년 시절에 종말을 고하게 해준 감정과 환상은
별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그 ‘어두운 세계’와 ‘다른 세계’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때 프란츠 크로머였었던 것이 지금은 내 자신의 내부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다른 세계’는 외부에서부터 다시금 나에게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크로머와의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어린 시절의 그 극적이고 죄악에 가득 찬 추억은
아득히 먼 곳으로 물러가 짧은 악몽처럼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프란츠 크로머는 오래 전부터 내 생활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와 마주치게 되는 경우에도 거의 주의를 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 비극의 또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인 막스 데미안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간혹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영향을 끼치진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의 데미안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던 바를 전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일 년쯤, 아니 더 오랫동안 나는 한 번도 그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급적 그를 피했고, 그는 결코 내게 추근거리지 않았다.
한 번인가, 우리가 서로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는 나에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나서부타 나는 그의 친절에는
어떤 조소나 비꼬는 듯한 비난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간혹 하였는데
어쩌면 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경험했던 그 사건과 그 당시에 그가 내게 끼쳤던 영향은
내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도 거의 잊혀진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가 정말로
거기에 있어서 내 눈에 자주띄었음을 잘 알겠다.
나는그가 학교에 가는 모습을,
혼자서나 혹은 다른 큰 아이들 틈에 끼어서 학교에 가는 것을 본다.
그가 진기하게 고독하고 조용하게 그들 사이에 끼어서
자기의 특별한 분위기에 싸여 독특한 법칙 아래에 살면서
마치 별과 같이 그렇게 걸어가는 것을 본다.
누구 하나 그를 사랑하지도,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그의 어머니만은 예외였지만 그는 아이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으로서 어머니를 대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될 수 있는대로 그를 내버려두었는데,
그 역시 좋은 학생이긴 했지만 누구의 마음에도 들려고 애쓰진 않았다.
우리는 종종 그가 선생님에게 했다는 심한 도전이나
풍자로 생각되는 어떤 말이나 비평이나 항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어디였을까? 이젠 그곳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곳은 우리 집 앞 골목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손에 노트를 들고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우리 집 대문 위에 붙어 있는 새 모양의 낡은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창의 커튼 뒤에 숨어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예민하고도 차갑고 밝은 얼굴이
문장을 향해 있는 것에 대해 깊은 경탄을 느꼈다.
그것은 어른의 얼굴이었고, 연구자나 예술가의 그것처럼 보였다.
탁월하고 의지에 가득 차 있으며
이상할이만치 밝고 차가고 총명한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를 본다.
그것은 며칠 후 거리에서의 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쓰러진 말 주위에 붙어서 있었다.
말은 아직도 수레채에 묶인 채 농부용 마차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무엇인가 애원하는 듯이 비참하게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허공을 향해 헐떡거렸고
보이지 않는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말의 옆구리와 거리의 먼지에 서서히 검붉게 배어들고 있었다.
매스꺼움을 참으며 그 광경에서 고개를 돌리다 나는 데미안을 발견하였다.
그는 앞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하지도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맨 뒤쪽에서 지극히 안정되고도 여유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말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여전히 깊고 고요하면서도 거의 열광적으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놀랄 만치 냉담하게 느껴지는 집중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그때 나는 선명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독특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본 것은 단지 그가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더 많은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얼굴이 단순한 어른의 얼굴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거나 아니면 느꼈다고 확신했다.
마치 여자의 얼굴과도 같은 무언가를 그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어른이니 아이니, 늙었거나 절었거나를 넘어선,
어쩌면 천 년쯤 되었거나 아니면 시간을 초월한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시간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짐승들이 그렇게 보이는 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혹은 나무나 별들이---
지금에 와서 어른으로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그때엔 정확히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었지만,
무언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느낄 수는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나는 그를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조차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우리들과는 아주 다르고,
어쩌면 짐승이나 아니면 영혼이나 환상과도 같은 존재라고 느꼈는데
확실히 알 순 없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었다.
이것 이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조차도 어느 부분은 그 후의 인상에서 보태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와 나는 다시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데미안은 그의 동급생과 같은 시기에 교회의 견신례를 받지 않았었는데
그러한 일은 당시의 관습에 어긋난 것으로 또 곧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선느 그가 본래 유대인이라는 등, 이교도라는 둥, 소문이 파다했으며
어떤 아이들은 그와 그의 어머니는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했고
터무니없는 사교를 믿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소문은 한층 과장되어 그는 자기 어머니와 마치
애인 같은 관계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나돌았다.
아마 이제껏 그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자라났으나
그것이 그의 미래에 어떤 지장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2년이나 늦게서야 견신례를 받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 몇 달 간의 견신례 수업 동안 그는 나와 동급생이 되었다.
얼마 동안 나는 그에게서 아주 멀어져 있었는데
그와는 되도록 어울리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는 무성한 소문과 비밀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크로머의 사건 이래로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채무감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또한 나로서도 나 자신만의 비밀로 인해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견신례 수업의 기간은 나의 성적인 문제의 결정적인 성숙의 시기와 일치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 무척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건이나 교의 따위는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목사님의 이야기는 아주 멀고도 고요하며
성스러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나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현실적이고 자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다른 일은 지극히 생생한 바로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 상태가 나로 하여금
수업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데미안에게 접근해가도록 만들었다.
그 무엇인가가 우리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회상의 실마리를 되도록 정확히 따라가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아직도 교실에 불이 켜져 있던 이른 아침 시간의 일이었다.
목사님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거의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졸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목사님은 좀 어조를높이시면서 카인의 표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일종의 영감이랄까, 경고 같은 것을 느꼈다.
시선을 들자 앞쪽 줄에서 데미안이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은 밝게 빛나며 말을 걸고 있는 것같이,
또는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인 여운을 담은 것같이 보였다.
아주 잠깐 동안 그는 나를 쳐다보았을 뿐이었지만 내 마음은 갑자기 긴장되어
목사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가 카인의 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엔 영혼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
그 가르침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그것을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순간 데미안과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우리의 영혼이 다시 어떠한 연관을 갖게 되었다고 느끼자마자
그것이 마술처럼 공간 속으로 전파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그의 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 후 데미안은 견신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를 바꾸어 내 앞 줄에 와 앉았다
(빽빽이 들어찬 교실의 빈민 병원 같은 냄새 속에서
아침마다 그의 목에서 풍겨나오는 비누 냄새는
얼마나 부드럽고 신선하게 느껴졌던가를 나는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내 곁에 앉았고 겨울과 봄 내내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지겨운 아침 수업은 전혀 달라졌다.
수업은 더 이상 졸리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자주 무섭게 집중하여 목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옆에 앉은 그는눈짓 한 번만으로도 주의해서 들어야 할 이야기나
말을 내게 일러주었고 나는 기꺼이 그이 지시에 따랐다.
다른 아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그의 집중된 시선은 내게 어떤 경고를 주었고
내 마음속에서 의혹과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하였다.
때로 우리는 학과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충실치 못한 학생노릇을 하였다.
데미안은 언제나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에 대해서 정중하게 행동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적도 전혀 없었고
크게 웃거나 떠들어대지도 않았고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나직이, 속삭인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손짓이나 눈짓만으로도 나를 그 자신의 일로 끌어들일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은 때로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그는 나에게 어떤 아이가 그의 흥미를 끄는지,
그러면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아이를 관찰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에 관해 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너에게 신호를 하며
누구누구가 우리를 돌아다보거나 목덜미를 긁적거릴 거야.”
수업이 시작되어 내가 그 일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막스는 갑자기 눈에 띄는 몸짓으로 엄지손가락을 나에게 보였다.
내가 급히 지적했던 그 아이를 보면 그 아이는 으레
무슨 철사줄에라도 끌려오듯이 우리를 쳐다보거나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엇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한 번 시험해보자고 막스를 졸랐지만
그 부탁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과제를 복습해 오지 않은 날
목사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막스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목사님은 문답 교과서 한 절을 암송시킬 아이를 찾다가
마침내 그의 시선이 나의 죄지은 듯 불안해 하는 얼굴에 멎었다.
목사님은 천천히 막스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내 이름을 막 부르려고 하셨는데---
그때 그는 마음이 산란해진 듯 옷깃을 만지작거리더니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데미안에게로 시선을 옮겨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하다가는 갑자기 몸을 돌리고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다른 학생을 지적했다.
이 장난은 대단히 재미있었는데 막스가 번번이
나에 대해서도 같은 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 갑자기 데미안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돌아다보면 정말로 그는 거기에 있곤 하였다.
”정말로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도록 할 수 있는 거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흔쾌히 친절하고 조리있게 어른처럼 설명을 해주었다.
”아냐." 그는 말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왜냐하면, 목사님은 그렇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은 자유 의지 같은 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생각하게 할 순 없듯이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생각하게 할 순 없어.
그러나 우린 사람들을 잘 관찰할 수는 있단 말이야.
그러면 때때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제법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게 돼.
그렇게 되면 대개는 그 사람이 다음 순간엔
무엇을 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아주 간단해. 단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지. 물론 연습이 필요하긴 해.
예를 들면, 나비 중에는 수컷보다는 암컷의 수가 훨씬 적은 종류의 부나비가 있어.
이 부나비도 역시 다른 곤충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번식을 하지.
수컷이 암컷을 수정시키면 암컷이 알을 낳는 거야.
만약 네가 지금 이 부나비 암컷을 한 마리 가지고 있다면---
이런 실험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주 하는데---
밤에 이 암컷을 찾아 수컷들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몇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에서 날아 온 거야. 몇 시간이나 되는!
생각해봐. 수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도
수컷들은 그 부근에 있는 유일한 암컷을 아아차리는 거야.
사람들은 그 사실을 해명해보려고 애쓰지만 어려운 문제야.
일종의 냄새나, 그 비슷한 무엇이 있긴 할 거야.
사냥개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흔적을 추적해내는 것처럼 말이야.
알아듣겠니? 그것도 바로 이런 중류의 일이지. 자연계에서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이 정도는 설명할 수 있겠지.
만일 그 부나비의 암컷이 수컷만큼 많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그렇게 예민한 후각을갖게 되진 않았을 거야.
그것들은 짝을 찾는 일에 여러 대를 걸쳐 훈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후각을 갖게 된 거야. 짐승이나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의 모든 주의력과 온 의지를 어느 한곳에 모은다면 그것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거야.
그게 전부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
어떤 사람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보렴.
그럼 그 사람 자신보다도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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