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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3

오늘의 쉼터 2011. 5. 14. 23:12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2 장 카인 - 3

 

 

나는 집으로 왔는데 한 일 년쯤이나 떠돌다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나와 크로머 사이에 뭔가 미래랄까, 희망 같은 것이 끼어든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이제서야 나는 비밀을 안고 몸부림치던 몇 주간 동안
얼마나 무섭도록 외로웠던가를 확실히 느꼈다.
나는 그동안 여러 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던 어떤 일을 다시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내가 부모님께 내 죄를 모두 말하고 용서를 비는 일이
나의 괴로움을 좀 가볍게 해줄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히 구원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로 조금 전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다른 낯선 사람에게 고해를 할 뻔했고,
그러기만 한다면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는
예감의 냄새를 강렬하게 느꼈다.

나의 불안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아직도 크로머와의 기리고도 괴로운 관계를 각오하고 있었다.
만사가 아무 일 엇이 그렇게 평화롭게 진행되어가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날카롭게 들려오던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도 나지 않았다.
나는 감히 그런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다시 나타나지나 않을까 해서 내심 조바심을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집으로 오지도 않았고, 불쑥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놀라운 자유를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유에 대한 불안감은 마침내 어느
날 프란츠 크로머를 우연히 만났던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사일러 거리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피해 그대로 되돌아서가버리는 거이었다.
그런 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나의 적이 내 앞에서 달아나다니!
악마가 내게 겁을 먹다니!
기쁨과 놀라움이 나를 관통해 지나갔다.

그 무렵의 어느 날 데미안이 내게 나타났다.
그는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고 나는 인사를 했다.
”그래. 잘 있었니, 싱클레어.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보고 싶었어.
크로머도 더 이상 널 괴롭히지 않을걸. 그렇지?”

”네가 그랬니?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한 거야?
난 영문을 모르겠어. 그 녀석은 전혀 나타나질 않아.”
”잘 됐군. 만일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나면
그러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 녀석은 워낙 뻔뻔스런 녀석이니까
그럼 그 녀석에게 그저 데미안을 기억하라고만 말해.”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 거니?
그 녀석과 한판 붙어서 실컷 때려 준 거니?”
”아냐. 난 싸움하는 건 과히 좋아하지 않아.
난 그저 너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녀석과 애기했을 뿐이야.
널 가만히 놓아두는 게 그 녀석의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을 뿐이야.”
”설마 그 애에게 돈을 준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방법이라면 이미 네가 시험해보았잖아.”

나는 그에게 좀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는 가버렸고 나는 감사와 두려움, 경탄과 불안감,
호감과 내면적인 반항심 등이 이상하게 뒤엉킨,
옛날부터 그에 대해 느껴왔던 가슴답답함을느끼며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다시 그를 만나 모든 일에 대해서,
더욱이 카인의 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더 많이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진 않았다.
감사의 심정이란 거의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아이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잘못인 것처럼 내겐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데미안에게 보였던
내 자신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그다지 탓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나는 만일 그가 나를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주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병들고 타락해버렸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해방감을 그 당시로서도 내 소년기의 최대의 체험으로 느끼긴 했지만
해방을 시켜준 사람에 대해선 기적을 이루어내기가 무섭게 무시해버렸던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배은망덕이란 내게 있어서 결코 이상스런 일은 아니었다.
이상스러운 일은 내가 그것에 대해 전혀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미안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 건드리게 했던 비밀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어떻게 단 하루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가.
카인에 관해, 크로머에 관해, 독심술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호기심을 나는 어떻게 누를 수가 있었을까?

이 일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러했다.
나는 갑자기 적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밝고 즐거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이미 불안의 발작이나 숨막힐 듯한
가슴의 고동소리에 내 자신을 맡기지 않아도 되었다.
질곡은 풀렸고, 나는 더 이상 가책에 떠는 죄인이 아니었으며,
다시 예전의 학생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나의 본성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전의 균형과 평온 속으로 되돌아오려고 애썼고,
무엇보다도 그 끔찍하던 일들과 고통스럽던 일들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의 죄와 깊고 긴 고통의 역사는 흔적이나 인상 한 남김없이 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잊어버리려 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고 구원해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오늘날에 와서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저주받은 죄의 구렁텅이 속에서,
크로머에게 당한 몸서리치는 수모에서 상처를 입은 영혼이
모든 힘과 노력을 다해 이전의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세계로 도망쳐 돌아온 것이었다.
다시 내게 문을 열어준 잃었던 낙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밝은 세계로, 누나들에게로,
좋은 향기와 아벨에 대한 신의 사랑이 존재하는 곳으로 나는 되돌아왔던 것이다.

 

데미안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 그 다음날,
되찾은 자유에 대해 충분히 확신이 서고
그것이 다시 사라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되었을 때
나는 그렇게도 자주 열렬히 원했던 일을 했다
나는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열쇠가 부서지고 장난감 돈이 들어 있던 저금통을 갖다 보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은 거짓말 때문에
못된 아이에게 시달림을 받아왔는지를 고백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지는 못했지만,
저금통과 달라진 내 눈빛을 보고 달라진 내 목소리를 듣고는
내가 병에서 회복되어 다시 어머니의 아들로 되돌아왔음을 느끼셨다.

나는 극도로 흥분되어 내가 다시 돌아온 것에
축제를 벌이고 방탕아의 귀향식을 거행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아버지께 데리고 가셔서는
다시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질문을 하시고 놀라시더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오랫동안의 난처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모든 건 멋있었고 이야기 같았으며,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려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 조화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평화를 되찾고, 다시 아버지 어머니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는 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모범적인 아들이 되었고, 옛날보다 누나들과도 더 잘 어울렷으며,
기도를 드릴 때에는 구원을 얻은 자와 회개한 자의 감사에 넘친 심정으로,
내가 좋아하던 옛날의 찬송가를 함께 불렀다.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난 일이며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데미안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여기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데미안에게도 나는 참회를 했어야만 했다.
그 참회는 그럴 듯하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테지만
나로서는 참회를 했어야만 더 기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온 힘을 다해 옛날의 낙원에 집착했고
귀향을 해왔고 신선한 자비로써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데미안은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고
이 세계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크로머와는 달랐지만 어떤 미로는 그 또한 유혹자였으며
내가 영원히 다시 알고자 하지 않았던
다른 나쁜 세계와 연관을 맺게 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은 이제 겨우 아벨로 돌아와 있는 상태에서
또 다시 아벨을 버리고 카인을 찬미하는 것을 도울 수는 없었으며
스스로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그러나 내면적인 사정은 달리 존재했었다.
나는 크로머의 손에서 해방되었지만
내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의 좁은 길을 곧바로 걸어가려고 애썼지만 내겐 너무 위험했다.
다행히 어떤 친절한 손이 나를 붙들어 위험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에
지금 나는 더 이상 한눈을 파는 일 없이,
어머니의 품, 경건하고 따스했던
어린 시절의 안락한 보호 속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실제보다 더 어리고 더 순종했으며 더 어린애처럼 굴었다.

크로머에 순종했던 것을 나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야만 했었는데
나는 이미 혼자 걸어가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목적이다 싶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켜주시는
옛날의 익숙한 ‘밝은 세계’에 속하기를 갈망했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세계가 아닌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데미안에게 의지하고
그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 당시의 나에게는 지극히 정당한,
그의 이단적인 사상에 대한 불신임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데미안은 내게 부모님들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극과 경고로써 조롱과 풍자로써
나를 보다 적극적인 인간이 되게 하려고 애썼을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반 년쯤 후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아버지께 많은 사람들이
카인보다 아벨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여쭤보았다.
아버지께서는 대단히 놀라시면서
그러한 견해는 전혀 새로운 점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 견해는 원시기독교 시대 대부터 시작되어 여러 종파에서 전도되어왔는데
그 종파들 가운데의 하나는 ‘카인교파’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적인 사상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악마의 기도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카인이 옳고 아벨이 부정하다고 믿는다면
신을잘못 생각한 것이 되고, 따라서
성서의 신은 올바른 유일신이 아니라 그릇된 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카인교파들은 그와 비슷한 견해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교도들은 먼 옛날에 사라졌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학교 친구가 그런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단연코 배척해야 한다고 엄숙히 경고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