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2.
부활제가 지나고 곧 그 다음 주가 되면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건만 조금도 기뻐하지를 않았으며,
새색시를 만나고 싶어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무작정 휘파람만 불고 있었다.
그가 장가를 드는 것은 다만 아버지와 계모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마을에는 그런 법도, 즉 집안일을 돕기 위하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한다는 법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근무지로 돌아가면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대체로 예전에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와는 거동이 달랐다.
어쩐지 매우 자포자기한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수없이 지껄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시칼로보 마을에는 플레절런트 종파(13-14세기경 주세 유럽에서 시작된
광신적 종파의 하나로, 이 종파의 신도들은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등
가혹한 고행을 일삼음: 역주)를 믿는 자매가 양잠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결혼 의상을 주문받아서
그 가봉을 하러 왔다가 오래도록 차를 마시고는 돌아갔다.
바르바라는 검은 레이스와 유리 구슬 장식이 달린 갈색 옷을 맞추었고,
악시냐는 가슴에 노란 천을 대고 치맛자락에 무늬를 한 초록색 옷을 맞추었다.
두 자매가 옷을 다 만들었을 때,
그리고리 노인은 현찰 대신 자기 가게의 물건으로 옷 값을 지불했다.
자매는 바라지도 않던 양초와 정어리 통조림 꾸러미를
두 손으로 그러안고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을 나서서 들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언덕에 앉아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니심은 결혼식 사흘 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통 새것으로만 치장하고 있었다.
번쩍번쩍한 윤이 나는 고무 덧신을 신고, 넥타이 대신에 구슬 장식이 달린 빨간 끈을 매고,
외투 역시 새로 맞춘 것으로 소매를 꿰지 않고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린 다음,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인사를 하며
1루블짜리 은화 10개와 50코페이카짜리 은화10개를 드렸다.
그리고 바르바라에게도 같은 액수의 돈을 내놓았고,
악시냐에게는 25코페이키짜리 은화 20개를 주었다.
이 선물의 가장 큰 매력은 은화가 모두 새것이라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아니심은 근엄하고 교만한 태도를 취하려는 듯,
짐짓 얼굴표정을 딱딱하게 하고 두 볼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마다 식당으로 쫓아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이 태도에는 어쩐지 자포자기한 듯한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이윽고 아니심은 노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자쿠스카를 들었다.
바르바라는 새은화를 손에얹어 뒤집어 보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덕택에 별탈은 없어요. 모두들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니심이 말했다.
"다만 이반 예고로프네 집에 조그만 불행이 있었습니다.
뭐, 소피아 니키포로브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뿐이에요.
폐병이었지요. 포도주도 나왔더군요.
농부들... 결국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인데...
그들도 2루블 반씩 냈어요. 하기야 그들은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농부들이 소스가 곁들여진 요리를 어떻게 먹겠어요."
"2루블 반이라!"
노인이 말하고는 머리를 저었다.
"물론이지요. 도시는 이런 시골과는 달라요.
뭘 좀 먹으려고 요리 집에 가도 한 접시 두 접시 주문하는 동안에
친구들이 모여들고, 그래서 술판이 벌어지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새벽녘이고, 계산서를 받아보면
한 사람 앞에 3, 4 루블씩 계산이 돌아가는 게 보통이랍니다.
거게에 만약 사모르도프가 자리를 함깨 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져요.
그 녀석은 먹은 다음에는 반드시 코냑이 든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데,
그 코냑이라는 것이 한 잔에 60코페이카 하는 형편이니까요..."
"흥, 바보 같으니!"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허풍만 치고 있군!"
"저는 요즈음엔 언재나 사모로도프와 어울려 다닙니다.
사모로도프가 바로, 집으로 보내는 제 편지를 대신 써주는 바로 그 사람이에요.
아주 글씨를 잘 쓰는 친구입니다. 그렇죠. 어머니?"
아니심은 바르바라를 보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사모르도프가 어떤 사나이인지 이야기를 해봤자 어머니는 곧이듣지도 않으실 거예요.
우리들은 모두 녀석을 므후탈인라고 부릅니다.
워낙 온몸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처럼 새까맣거든요.
저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볼 수 있으니까
녀석이 하는 짓이라면 뭐든지 손에 잡은 듯 훤해요.
그것을 녀석도 눈치채고 있어서 제 뒤만 쫓아다니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녀석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만,
저와 인연을 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제가 가는 곳이면 녀석도 반드시 따라다니지요.
제 눈은요, 어머니, 일단 이렇다 싶으면 절대로 실수가 없어요.
이를테면요, 헌옷 시장에서 농부가 셔츠를 팔고 있습니다.
그 농부를 한 번 보고는 '잠깐만, 그 셔츠를 장물이지!'라고 합니다.
뒤에 조사해보면 틀림없이 장물이거든요!"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내지?' 바르바라가 물었다."
어떻게고 뭐고 없어요.
어쨌든 제 눈은 그렇게 알아보게 되어 있답니다.
무슨 곡절이 있는 셔츠인가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저 어쩐지, 이유없이, 머리에 딱 떠올라서 이건 장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그뿐이에요. 그래서 우리 수사과에는 모두들 이렇게 말한답니다.
'하하, 아니심 녀석. 또 사기꾼을 잡으러 갔군'이라구요.
곧 장물을 찾아내러 갔다는 뜻이지요.
이거야 정말... 훔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숨기기는 아주 어렵거든요!
세상은 넓지만, 장물은 숨길 장소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우리 마을에서는 지난 주, 군트레프네 집에서
숫양 한 마리와 암양 두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바르바라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찾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면 제가 찾아줄까요? 찾는 것이라면 문제없어요"
결혼식 날이 되었다.
쌀쌀하면서도 마음 들뜨게 하는 화창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멍에와 말갈기에 울긋불긋한 리본을 단 쌍두 마차와 3두 마차가,
절렁절렁 방울 소리를 내면서 온 우클레예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찌르레기도 마치 그리고리네 집에 결혼식이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
집 안에는 벌써 여러 개의 테이블 위에 가느다란 물고기와 햄,
내장을 빼내고 대신 양념을 넣어 올리브 기름을 사용하여 요리한 새고기와
만든 엄청나게 많은 보드카와 포도주 병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훈제 소시지와 쉬지근한 대하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리 노인은 테이블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칼을 갈아주고 이었다.
모두들 계속 바르바라를 불러대며 온갖 일들을 부탁했으므로,
바라바라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숨을 할딱이면서 부엌으로 달려가곤 했다.
부엌에서는 리사가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 악시냐가, 삐걱삐걱 소리나는 새 편상화를 신고
드러난 무릎과 가슴패기를 언뜻언뜻 내보이면서
회오리 바람같이 안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와글와글 들끓었고,
욕을 하는 소리도 들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활짝 열어놓은 문 앞에는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무슨 경사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색시를 데리러 간대!"
한동안 방울 소리가 철렁철렁 울려오더니
그 소리도 멀리 마을 밖으로 사라져 갔다.
2시가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갔다.
다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신부가 도착했던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지가 달린 촛대에 불이 밝혀졌고,
성가대는 그리고리 노인의 희망대로 악보에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리파는 등불빛과 화려한 의상 때문에 눈이 부셔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성가대의 높은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난생 초음으로 몸에 댄 코르셋과 편상화가 몸을 잔뜩 죄어,
마치 기절했던 자가 겨우 숨을 돌렸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검은 프락 코트를 입고 넥타이 대신 빨간 끈을 맨 아니심은
한 곳을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한층 높아질 적마다 황급히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죽은 어머니와 성찬을 받으러 왔던 곳도 이곳이었고,
다른 소년들과 함께 성가대석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이곳이었다.
그는 이 교회의 구석구석을 성상 하나하나를 낱낱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결혼식을 올리려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법도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성상을 볼 수도 없었고, 가슴을 꼭 졸라 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기도를 하면서,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의 머리 위에 덮쳐올 불행이,
마치 비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마을을 비켜 가는 가뭄 때의 비구름처럼
무사히 자기 위를 그냥 지나가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빌었다.
그가 여태까지 지은 죄업은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더욱이 용서를 빈다든가 도망친다든가
돌이킨다든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쁜이었다.
그래도 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흐느껴 울기조차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가 과음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그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갑자기 겁이 난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밖으로 나가, 빨리!'
"조용히!"
신부가 소리쳤다.
그들이 교회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뒤에서 졸졸 따라왔다.
가게 주위나 문 앞에나 안뜰에나 창 밑에나 어디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자들이 축가를 부르러 왔다.
신랑 신부가 문턱을 막 넘으려 할 때,
악보를 손에 들고 미리 문간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합창대가
일제히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고,
특별히 시내에서 불러온 악대도 반주를 시작했다.
미리 준비했던 돈 산의 샴페인이 길쭉한 술자에 담겨 나왔다.
그때 눈이 덮일 정도로 눈썹이 길고 짙은,
키가 크고 여윈 엘리자로프라는 목수 영감이 신랑신부에게 말했다.
"아니심과 너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로 정답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니."
그리고 그는 그리고리 영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리, 자, 함께 우세. 기쁨의 눈물을 흘리잔 말이야!"
그는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껄걸 웃다가,
이번에는 굵은 저음으로 말을 계속 했다.
"하하하! 이번 며느리도 틀림없이 좋은 며느리라구!
모든 것이 흠잡을 데가 없어.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려서 막히는 데가 없을 거란 말이야.
말하자면, 기계가 완벽하고 나사못도 제대로 다 있다는 말씀이야."
그는 예고리예프 군 출신이었는데,
젊어서부터 우클레예보 마을과 근처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만 원래 이 마을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곳에 정착해 버렸던 것이다.
그 옛날, 바로 이 고장에 왔을 때에도 이미 늙은이였고,
게다가 바싹 마른 것도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목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40년 이상을 공장에서 기계수리만 한 탓인지, 그는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간에
그것이 견고한지 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따지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을 때에도 으레 의자가 튼튼한가 어떠한가를 살펴보고 나서 앉았고,
음식 같은 것도 미리 슬쩍 만져보는 것이었다.
샴페인을 마시고 나서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손님들은 의자를 움직이기도 하며 서로 지껄였다.
문간방에서는 합창대가 노래를 부르고 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한편 안뜰에서는 여자들이 장단에 맞추어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런 모든 소리들이 함께 뒤섞여 괴상하고도 엄청나게 큰소리가 되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목발'영감은 의자에 앉은 채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집적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훼방놓기도 하고, 울다가 웃기도 했다.
"자, 아가, 아가, 아가들아!"
그는 애칭을 사용하여 악시냐와 바르바라을 부르면서 빠른 말투로 중얼거렸다.
"얘, 악시뉴슈카하고 바르바르슈카야,
우리 모두 평화롭고 사이좋게 살아 보자꾸나. 우리 귀여운 아가들아."
그는 평소에도 술이 약한 편이었으며 지금도 영국산 화주를 마시자,
모두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혀가 꼬부라드는 것이었다.
손님 중에는 성직자도 있었고, 부부 동반해서 온
공장의 사무원과 딴 마을에서 온 상인과 술집 주인도 있었다.
14년 동안이나 함께 근무하면서
그 동안 한 장의 서류에도 서명한 적이 없고,
관청에 온 사람이면 누구 하나 속이거나 모욕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다는 군수와 서기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 다 피둥피둥하게 살찌고 혈색이 좋았다.
둘 다 부정과 사기가 몸에 베어 있어서,
얼굴의 피부조차 어쩐지 유달리 흉물스러워 보였다.
사팔뜨기에다 바싹 말라빠진 서기의 아내는
자기 아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리고 와서,
접시란 접시는 모두 사나운 새처럼 곁눈질하다가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지 접어서 자기 포켓과 아이들의 포켓에 쑤셔 넣었다.
리파는 여기 와서도 교회에서와 똑같은 얼굴로,
마치 화석이 된 것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니심은 첫 대면 이후 지금까지 그녀와 말 한마디 교환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시
종일관 침묵을 지킨 채 영국산 화주만 마시고 있었다.
취기가 돌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내게는 사모로도프라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대단한 놈이지요. 명예공민(어떤 공적이나 교육 자격에 대해서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 주는 칭호: 역주)의 자격이 있어서
이야기를 시키면 참 잘하지요.
그런데 이모님, 나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고,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어떠세요,
한 번 사모로도프의 건강을 비는 뜻으로 함께 건배하시지 않겠어요. 네, 이모님!"
바르바라는 몹시 피곤하고 들뜬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요리를 권하면서 테이블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호화로운 요리가 푸짐하게 나와 있으니까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으나 식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들의 무엇을 먹고 있고
무엇을 마시고 있는지 분간 못하게 되었다.
또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음악이 때때로 그쳤을 때,
어떤 여자가 이런 말을 외쳐대고 있는 것만 뚜렷하게 들렸다.
"실컷 남의 피를 빨아먹다니. 천벌받을 놈, 뒈져 버려라!"
밤이 되자 다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집에서 술을 가지고 왔다.
그중의 한 사람은 카드리유(4명의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추는
프랑스의 사교 댄스. 19세기경 온 유럽에 유행했음: 역주)를 출 때,
양손에 병을 하나씩 들고 입에 술잔을 물고 추었다.
이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웃었다.
카드리유를 추던 그들은 갑자기 몸을 꾸부린 채 러시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악시냐는 어찌나 빨리 추는지,
그 추는 모습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치맛자락에서는 바람이 쌩쌩 일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스커트 단의 레이스를 밟았다.
그러자 '목발'영감이 이렇게 외쳤다.
"야아, 스커트의 허리판이 빠져 버렸단다! 애들아"
악시나는 거의 깜박이지 않는 잿빛의 앳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선 줄곧 아리따운 미소가 가시지를 않았다.
이 깜박이지 않는 눈과, 가늘고 간 목 위의 작은 머리와
날씬한 몸매는 어쩐지 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노란색의 가슴판이 달린 초록색 옷을 입고 생글생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은, 이른 봄에 어린 호밀밭에서 머리를 쳐들고
통행인들을 엿보는 독사와 어딘가 닮은 데가 있었다.
플뤼민네 집안 사람들과 그녀는 아주 친한 것 같았는데,
그들 가운데 제일 나이 많은 자가
그전부터 그녀와 은말한 사이라는 것은 누구나 훤히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귀머거리 스테판만이 아무것도 모른채,
그녀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마치 권총을 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드를 까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리고리 노인이 일어나 방 한가운데로 나서며,
자기도 러시아 춤을 추겠다는 신호로 손수건을 흔들었다.
그러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안뜰에 있던 사람들에게서까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몸소 나오셨다! 몸소!"
그러나 춤을 춘 것은 바르바라였고 노인은 그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양쪽 발을 교대로 하며 구두 뒤축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안뜰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떠밀면서 창가에 매달려 환성을 울렸다.
잠시 동안이긴 하나 그에 대한 모든 불평 불만을 잊고 있었다-
그가 부자라는 것도, 또한 그가 자기들에게 지독하다는 것도.
"잘하는데, 그리고리!"
사람들 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내라! 그정도면 아직 얼마든지 벌어들이겠구나! 하,하!"
밤이 깊어 1시가 지나서야 이 모든 소동이 조용해졌다.
아니심은 비틀거리며 합창대와 악대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 모두에게 50코페이카짜리 새 은화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노인은 한 발로 걷는 것처럼 껑충거리면서 손님들을 배웅했다.
그는 한 사람씩 붙잡고 말했다.
"이 결혼시에 2천 루블이나 들었어."
손님들이 꾸역꾸역 돌아가느 사이에 누군가 자기의 헌 외투를 벗어놓고
시칼로보 술집 주인이 입고 온 소매없는 고급 외투를 대신 입고 간 사람이 있었다.
아니심이 이 사실을 알고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가만 있어!내가 곧 찾아올게! 훔친 자식을 훤히 알고 있어! 기다려!"
그는 거리로 달려나가, 어떤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그를 붙잡아 팔을 끌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취한 데다가 화가나서 빨갛게 상기된 채 땀을 흘리면서,
그때 막 리파가 이모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방 안으로
그를 밀어넣고 철컥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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