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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1.

오늘의 쉼터 2011. 5. 13. 22:23

 

 

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1.

우클레예보 마을은 골짜기에 묻혀 있어서 큰길이나 정거장 쪽에서 보면
겨우 종루와 면직물 염색공장의 굴뚝이  보일 뿐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대해서 어떤 마을이냐고 묻기라도 하면,
이 고장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마을은요, 장례식 때 교회 집사가 캐비어를 몽땅 먹어치운 바로 그 마을입니다."

언제든가, 공장주인 코스추코프네 집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때 늙은 교회 집사가 자쿠스카(러시아 스낵의 일종: 역주)속에
굵은 캐비어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쿡쿡 찌르기도 하고
소매를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맛에 취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무슨 짓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먹어대고만 있었다.
결국 그는 항아리 속에 들어 잇던 4파운드의 캐비어를 깨끗이 먹치웠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도 이미 몇 년이 지나고
당시의 교회 집사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 캐비어 이야기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을의 생활이 그 정도로 삭막했던가,
아니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10년 전에 일어난
이 하잘 것 없는 사건 이외에는 기억할 만한 재주가 없었던가.
하여간에 우클레에보 마을에 대하여는 달리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다.

이 마을에는 열병이 그치지 않고 돌았으며, 여름철에도 곳곳이 진창투성이였다.
늙은 갯버들이 가지를 드리워서 폭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울타리 밑 같은 데는 더욱 질척질척했다.
공장에서 나온는  쓰레기와 면직물 염색에 쓰이는
초산 냄새가 항상 주위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공장은 면직물  염색공장이 셋, 그리고 피혁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마을 한가운데가 아니라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 작은 공장들로 직공의 수는 전부 합해 겨우 4백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
피혁공장 때문에 개울물은 늘 악취를 풍겼고,
쓰레기는 목초 지대를 오명시켜 농가의 가축들을 탄저병에 걸리게 했다.
그래서 이들 공장에는 폐쇄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지서장과 군의의 묵인하에 모래 조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매월 10루블씩 그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었다.

마을 전체를 통하여 양철로 지붕을 이은 석조 건물은 겨우 두 채뿐이었다.
한 채는 군청이었고, 다른 한 채는 교회 맞은편에 있는 2층 건물로
에피판 출신의 그리고리 페트로비치 치부킨이라는 상인의 집이었다.
그리고리는 식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뒤로는 보드카, 가축, 피혁, 곡물, 돼지,
그밖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취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수출용 부인모에 장식으로 다는 까치 깃털 주무을 맡아
한 쌍에 30코페이카씩 벌기도 하고,
삼림을 사서 목재를 베어내어 팔기도 하고, 고리 대금에까지도 손을 댔다.
어쨌든 빈틈없는 영감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장남 아니심은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고 있어서
집에는 어쩌다 한 번씩밖에 들르지 않았다.
차남 스테판은 그를 도와서 가게 일을 보고 있었는데,
신병이 있는 데다가 귀까지 멀어서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테판의 처 악시냐는 몸매가 날씬한 미인으로,
명절 때가 되면 모자를 쓰고 양산을 바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잤다.
스커트 자락을 살짝 치켜들고 열쇠를 짤랑거리면서,
하루종일 창고에서 지하실로 지하실에서 가게로 뛰어다녔다.
그리고리 노인은 그런 며느리를 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가 장남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통 모르는
둘째의 아내라는 것을 애석하게 생가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원래 가정적인 사람이어서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자기의 가족을 사람했다.
가족 중에서도 각별히 사랑한 것은 형사 노릇을 하는 장남과 둘째 아들의 처였다.
악시냐는 귀머거리 둘째 아들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놀라운 장가 수완을 발휘해서,
어느 손님에게는 외상으로 팔아도 되고
어느 손님에게는 안 된다는 것까지 환히 알고 있었으며,
온 집안의  열쇠를 맡아가지고 남편에게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을 맞추는 것을 보면
농부가 말의 이빨을 들여다보듯 아주 정확했다.
하루종일 그녀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인은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다 신통해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대단한 며느리야! 그래그래, 예쁜 아가..."
 
그리고리는 홀아비였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1년쯤 지나자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재혼을 하였다.
그른 우클레예보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바로바라 니콜라예브나라는 쳐녀를 중매를 통해 아내로 맞아들였다.
나이는 꽤 들었으나 가문이 좋고, 상당한 미인으로 몸매도 고왔다.
그녀가 2층에 기거하게 되자,
온 집안이 마치 창유리를 몽땅 갈아 끼운 것같이 갑자기 훤히 밝아졌다.
성상 앞에는 등불이 켜지고, 테이블에는 눈같이 흰 테이블 보가 쓰워졌으며,
창가와 뜰에는 빨간 봉오리를 맺은 꽃들이 놓였다.

식사 때에도 쭉 해오던 대로 한 그릇에 담아놓고
모두들 다같이 떠먹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각자  자기 몫의 접시가 나왔다.
바르바라가 즐거운 듯 상냥하게 웃으면
온 집안이 그녀와 함께  미소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도 예전에는 일찍이 없었던 일로,
거지나 순례자나 집시 차림의 여자들이 안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클레에보 여자들의 노래하는 듯한 애수 띤 목소리나,
술주정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초라하고
염치없는 사내들의 조심스러운 기침소리도 창가에서 들려왔다.
바르바라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돈과  빵과 헌옷 같은 것을 집어 주더니,
이 집 살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가게의 물건까지 들어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그녀가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집어내는 것을 보고 기가 콱 막혔다.

어느 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그녀가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집어내는 것을 보고 기가 콱 막혔다. 


  "어머니가요,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가져갔는데요..." 


그는 나중에 아버지한테 고자질했다.

" 어느 장부에다 적어놓을까요?" 


노인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2층에 있는 아내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보, 바르바르슈카(바르바라의 애칭), 가게 물건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뭐든지 가져다 써요, 얼마든지 써도 괜찮아."

이튿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안뜰을 뛰어가면서 그녀에게 외쳤다. 

  "어머니,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그녀의 자선행위 속에는 마치 등불이나 빨간 꽃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뭔가 새롭고 상쾌하고 밝은 마음이 배어 있었다.

금육일의 전날이나. 사흘 동안 계속되는 수호 성자의 기념일 같은 때
이 가게에서는, 도저히 통 옆에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냄새가 지독한 소금에 절인 고기를 농부들에게 팔아먹었다.
주정뱅이들에게 큰 낫이나 모자나 프라토크
( 러시아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처럼 생긴 스카프: 역주)
같은 것을 담보로 잡고 외상 거래도 했다.
질이 나쁜 보드카에 곯아떨어진 공장 직공들은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다.

이렇게 해서 겹겹으로 죄업이 쌓여 주위에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한 느낌이 들 때라도, 문득 그런 소금에절인 고기나
보드카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성품이 온화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이 집의 안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선은 이 괴롭고 암담한 나날 속에서 기계의 안전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리의 집에서는 이것저것 항상 바빴다.
악시냐는 해도 뜨기전에 일어나 문간방에서 킁킁 콧소리를 내며 세수를 했고,
부엌에서는 어쩐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사모바르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용모가 깨끗한 그리고리 노인은 기다란 검은 프록 코트를 입고
면직물 바지에 번쩍번쩍 빛나는 긴 장화를 신은 채,
유명한 가극 속에 나오는 시아버지같이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면서 이 방 저 방 거닐었다.

이윽고 가게의 덧문이 열렸다.
날이 샐 무렵 경주용의 사륜 마차가 현관의 출입구에 도착하면,
노인은 커다랗고 차양이 없는 모자를 귀 언저리까지 눌러 쓰고
젊은 사람처럼 날쌔게 마차에 올라탔다.
이럴 때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가 쉰여섯 살 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
아내와 며느리가 그를  배웅해주었다.
이처럼 산뜻한 프록  코트를 입고,
3백 루블짜리의 크고 검은 종마가 끄는 마차에 올라 앉으면,
노인은 여러 가지 청탁이나 하소연을 하러 오는 농부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원래 그는 농부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어떤 농부가 문 앞에 서서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기라고 하면 화를 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왜 그런 데 멀거니 서 있는 거야? 저리 가!"


  또 거지라도 서 있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하느님한테나 받으러 가게!"
 
그가 장사일로 나가고 나면, 그의 아내는 검정 옷에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방을 치우기도 하고 부엌일을 거들기도 했다.
악시냐는 가게를 보았다.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섞여
악시냐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안뜰에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어보면, 가게에서는 이미  보드카의 밀매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귀머거리 스테판 역시 가게에 나가 있는 것이 예사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길을 서성거리며,
멍하니 그 근처의 농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 집에서는 하루에 여섯 번쯤 차를 마셨고,
네 번쯤 뭔가를 먹기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매상을 계산하여  장부에 기입하고 나서야 깊이 잠이 드는 것이었다.

우클레예보에서는 면직물 공장 세군데와 그 공장의 소유주들,
즉 플뤼민 형제의 집과 쿠스추코프네 집에 전화기 가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청에도 전화가 있었지만, 그 전화는 가설된 뒤 곧 불통이 되어버렸다.
전화기 속에 빈대와 바퀴가 번식했기 때문이다.
군수는 무식한 사나이로,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도 단어 하나하나를 그리는 형편이었다.
전화가 불통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전화가 불통이니까 우리들도 여러 가지로 불편해지겠는데." 

플뤼민 형제간에는 송사가 그칠 새가 없었다.
재판을 시작하면 화해가 성립되기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우클레에보 사람들에게는 이 재판이 일종의 기분전환 거리가 되어주었다.
왜냐하면,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와  뒷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기 때문이다.
축제일이면 쿠스추코프네와 플뤼민네는 서로 경쟁하듯 마차를 타고 멀리 돌아다녔다.
그들은 온 우클레예보를 달려다니며 송아지를 치어 죽이기도 했다.
악시냐는 화장을 하고 풀을 잔뜩 먹인 스커트 자락을 와삭와삭 소리내면서
가게  주위의 한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면 플뤼민 아우네 집 사람이 마차를 몰고 나타나
마치 우격다짐하듯 그녀를 끌고 어디론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면 그리고리 노인도 자기 말을 자랑하려고 마차를 타고 외출했다.
언제나 바르바라가 동행했다.

마차 멀리 타기 경쟁도 끝나고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플뤼민 아우네 집 안뜰에서는 누군가 값비싼 아코디언을 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달밤 같은 때에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울렁거려서,
어쩐지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이 우클레예보도 초라한 골짜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장남 아니심은 축제 때 말고는 집에 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그 고장 사람 편에 곧잘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는 언제나 누구 다른 사람이 달필로 대필한 것이었는데,
반드시 편지지 한 장에 청원서와 같은 격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아니심이 평소 이야기할 때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말투로 쓰여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께서 즐겨 드시라고
새싹으로 만든 고급 차 1파운드를 보내드리나이다.'

편지마다 끝에는 다 닳아빠진 펜으로 찍찍 긁은 것같이
'아니심 그리고리'라고 서명이 되어 있고, 그밑에는 달필로 '대필'이라 쓰여있었다.
이런 편지가 올 때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몇 번씩이고 소리를 내어 내용을 읽었다.
노인은 감동해서 으레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아이는 집에서 살기가 싫은가봐,
워낙 학문이 있는 사회에서 출세했으니까 말이야.
뭐 좋도록 하라지! 사람은 각각 제 갈 길이 있으니까."

사육제를 앞두고 어느 날, 우박 섞인 큰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노인과 바르바라는 바깥 형편을 살펴보려고 창가로 갔다가
놀랍게도 아니심이 역에서 썰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아니심은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한 초조한 기색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그뒤에도 계속 변하지 않았고,
어쩐지 자포자기하는 듯한 데가 있었다.
별로 출발을 서두르는 눈치도 없어서,
혹 근무처에서 목이 잘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르바라는 그의 귀가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능청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저었다.

  "어떻게 된 거냐, 아니심?"

 

그녀가 말했다. 


"스물 여덟살이나 되어 가지고 여지껏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ㅉㅉㅉ..."

옆방에서는 그녀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ㅉㅉㅉ...'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노인과 악시냐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두 사람의 얼굴에는 마치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 같은
야릇하면서도 곡절이 있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니심을 장가 보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아, 글쎄!...동생은 벌써 장가를 들었느데..."

 

바르바라가 말했다. 


 "형이 되어서 마치 시장에 내다 놓은 수탉처럼 언제까지 이렇게 짝없이 지낼 셈이야,
제발, 색시만 얻으면 뒷일은 다 잘되게 되어 있어.
아니심은 근무처로 나가고 색시는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면 되잖아.
아니심 같은 젊은 사람이 혼자 있으면 생활에 절도가 없어서 안돼.
아무래도 우리 큰아들은 세상의 순리를 몽땅 잊어버린 사람 같이 보여.
이거야 원, 정말이지 결혼을 하지 않고 늙어가는 건 죄악이라구." 

그리고리 가의 남자가 장가를 들 때에는
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얼굴이 예쁜 색시감을 골랐다.
그래서 아니심의 색시감도 예쁜 처녀가 선택되었다.
아니심으로 말하자면,
그는 볼품없이 생겼을 뿐 아니라 주변머리도 전혀 없는 남자였다.
허약하고 병자 같은 체격에 키도 작았고,
두 볼은 공기가 잔뜩 든 것처럼 볼록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서 눈매만은 날카로웠다.
붉은 턱수염은 거칠게 자라 있었고,
무슨 생각에 잠길 때에는 수염을 이빨로 자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더욱이 그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것이 표정에나 걸음걸이에 역력히 나타났다.

이런 사내인 데도 신부감이 나섰다는 것,
그것도 상당한 미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좋아. 나도 아주 볼 줄 모르는 건 아니니까.
우리 그리고리 가의 남자들은 워낙 풍채가 좋으니까 말이야."
 
시의 변두리에 트루구에보라는 마을이  있었다.
최근 그  마을은 절반이 시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로 편입된 쪽의 땅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어떤 과부가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날품팔이를 하며 살아가는 리파라는 나이 찬 딸이 있었다.
리파가  미인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트루구예보에 소문이 나 있었지만,
집이 너무 가난하여 청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장차 어디 나이 많은 늙은이나 상처한 홀아비가
그녀의 가난을 탓하지 않고 색시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구냥 막 돼먹은 사내에게 시집갈 거라고 사라들은 말했다.
바르바라는 중매장이 여자로부너 이 리파의 이야기를 들은 죽시
마차를 타고 트루구예보에 가보았다.

이윽고 격식대로 리파의 이모네 집에서 자쿠스카와 포도주를 차려 놓고 선을 보았다.
리파는 선을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새로 맞춘 장미빛 옷을 입고,
머리에는 불꽃 간은 느낌을 주는 새빨간 리본을  화려가게 매고 있었다.
화사하고 품위있는 얼굴에 날씬하고 가냘픈 몸매의 처녀였는데,
노천에서 노동을 한 탓으로 얼굴은 햇볕에 그을어 있었다.
얼굴에서 슬픈 듯한 수줍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눈매에는 호기심이 섞인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젓가슴께가 겨우 사람의 눈에 띌 종도로 작은 계집애였다.
그러나 결혼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나이가 들어 있었다.
정말 상당한 미인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장간의 집게처럼 축 늘어진, 사내처럼 턱없이 큰 두 손이었다.

  "지참금이 없다고 하시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바르라라는 리파의 이모에게 말했다.


"우리  둘째 아들 스테판도 가난한 집안에서 색시를 데려다 짝을 지어주었느데.
지금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훌륭한 며느리랍니다.
집안일도 그렇고 장사일도 그렇고, 대단한 일꾼이예요." 


리파는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어째든 좋으실 대로 하세요.
저는 여러분들을 믿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학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날품팔이인 그녀의 어머니 플라스커비야는
겁에 질린 나머지 부엌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젊었을 적에 어느 상인 집에 마루를 청소해 주러 다녔는데,
어느 날 상인이 무슨 일로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그녀를 꾸짖었다.
그때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놀랐었느데,
그후부터 그녀의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혀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공포 때문에 언제나 손발이 떨리고, 볼은 실룩실룩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부엌에 앉아서 손님들이 무슨이야기를 하는지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이마에 대고  때때로 성상쪽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었다.
얼큰하게 취한 아니심이 부엌으로 난 문을 열고 서슴없이 말했다. 


  "어머니, 왜 그런 데에 앉아 계세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우리들이 영 심심하고 지루하군요."

  그러자 플라스코비아는 더욱더 두려워져서
바싹 마른 가슴에 두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어머, 별말씀을... 점말로  너무 과분한 혼담이 되어놔서요."  


맞선을 본 뒤에 곧 결혼식 날이 정해졌다.
결혼날을 잡은 뒤로 아니심은 집에 있을 때면
줄곧 휘파람을 불면서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마치
땅 속까지 투시하려는 것처럼 쏘는 듯한 시선으로 마룻바닥을 응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