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환 - 2 / 박완서
그 쪽 역시 할 말이 없어서 였겠지만 편지 사연은
죽기 전에 고국땅 한번 밟아 보고 싶다는 절절한 소원으로 일관했다.
남궁씨도 자연히 언제든지 오기만 하면 환영한다는 의례적인 답장을 쓴 적은 있어도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 쪽에선 그 정도의 편지가 초청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남궁씨는 속으로 의아했지만 초청한 일이 없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발뺌 같아서였고 연변 친척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 식구들의 냉담한 태도가
울컥 밉살스럽기도 해서였다.
"언제 왔는데?"
"한 달포는 됐을 걸요."
"그럼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했소. 내가 영애네 가 있을 적인데."
"연락했으면요?
연락했으면 생전 처음 나간 외국 여행 걷어치고 달려오실려구요? 정성이 하늘에 닿았구랴."
아내의 말투는 비꼬는 투였고, 또 몹시 공격적이었다.
남궁씨는 자기가 없는 동안 식구들이 마음껏 친척들을 푸대접한게 눈에 보이는 듯해
와락 역정이 치밀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고약하게 하는 거요?
생전 시집식구 치다꺼리라고는 모르고 살더니만 버르장머리하고는……."
남궁씨는 며느리하고 함께 라는 것도 잊고 언성을 높였다.
아들과 나란히 앞에 앉은 며느리가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킬킬댔다.
"내가 시집 식구 치다꺼리를 안 했다구? 아이구 기가 막혀."
할말이 너무 많아 되레 말문이 막혀
입술만 떠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남궁씨는 비로소 아차,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야 사년 동안이나 노모의 뒤를 받아 낸 시집살이를 생각하고 분개하고 있다는게 뻔했지만,
남궁씨는 우황청심환으로 하여 겪은 모멸감마저 떠올랐다.
"아버님, 우리도 하느라고 했어요. 어머님은 저녁 초대도 하고 여관에 김치도 나르시고,
아범도요 바쁜 사람이 일요일도 못 쉬고 롯데월드랑 육삼빌딩이랑 모시고 다닌 걸요.
차가 있으니 어쩌겠어요."
단지 차 때문이라는 말투였다. 이까짓 똥차 하나 굴린다고 유세하는 말투가 마뜩찮아
남궁씨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화살은 만만한 아내 쪽으로 돌렸다.
"아니 그럼 그 먼데서 온 친척을 여관에서 묵게 내버려뒀단 말이오?"
"그래요. 그러니 어쩔 테요.
당신이 이렇게 공 모르는 사람이란걸 모르고 나도 처음엔 집으로 모실려고 했다우.
그 쪽에서 마답니다. 한두 식구라야죠.
당신 육촌이 달고 온 식구가 도대체 몇인 줄이나 아슈?"
"그럼 육촌 혼자가 아니란 말이요?"
남궁씨의 언성이 슬그머니 누그러졌다.
"마나님하고 동부인을 한데다가 처제에다 처조카까지 안동을 하고 왔습니다.
무슨 살판이 난 줄 아는지, 자그만치 네 식구예요."
몽매에도 그리던 조국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저런 말투를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남궁씨가 뭐라고 하기 전에 며느리가 먼저 참견을 하고 나섰다.
"어머님, 지금 그 식구들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양반이 하도 남의 화를 돋우니까 초점이 흐리게 되지 뭐냐?
그 사람들이 여럿인건 문제도 아니라구요.
그 여럿이 제가끔 얼마나 큰 한약 보따리를 들고 왔는지 알아요?
우황청심환만 해도 네 사람걸 한데 모아 논게 이불 보따리 만 합니다."
남궁씨는 우황청심환 소리에 정신이 번쩍났다.
중국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그걸 몽땅 쓸어 사는 바람에
지방에 따라서는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다 는걸 신문에서 읽은 생각이 났다.
그 좋은 게 저절로 굴러 들어왔는데 모두들 귀찮아 하는 걸 남궁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황청심환이라면 현금과 마찬가질텐데 무슨 걱정이란 말이요?"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수, 이 답답한 양반아.
글쎄 중국산 우황청심환이 함량미달의 가짜라는 게 밝혀졌지 뭐유.
우리 기술로 분석한 결과 그렇게 밝혀졌다고 신문에서 떠들고 나자 청심환 인기가 뚝 떨어질밖에요.
하필 고때를 맞추어 그 사람들이 들이닥칠게 뭐람."
아내의 말에 추연한 동정심이 어렸다. 요는 우황청심환이 문제지,
아내가 그 사람들을 특별히 귀찮아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 사이에 그런 변화가 있었던가? 겨우 두달 상간이었다.
용궁의 사흘이 이 세상에선 삼십 년이더라는 옛날이야기 속을
들어갔다 나왔으면 모를까, 남궁씨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안 팔리면 도루 가져가면 될 거 아뉴? 절대로 가짜일 리는 없으니 우리라도 좀 팔아 주든지."
"좀 팔아 줘서 될 일이 아니라니까요.
이 기회에 생전 살걸 벌어 보자고 작정을 한 사람들 같더라구요."
"그럴리가 있겠소. 의사라던데. 사회주의 나라니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될테고."
"사회주의가 물욕에 눈뜬건 더 못 봐 주겠더라구요.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약장사 한탕 잘하면 팔자를 고치는 걸로 소문이 나 있고,
실제로 초기에 다녀간 동포들은 생전 벌어도 못 만져 볼 큰 돈을 번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니 너도나도 올려고 안 하겠어요?
그 쪽 정부에서도 나가서 요령껏 딸라 좀 벌어 오라고 부추기는 인상이거든요.
여행은 허락하면 여비는 한푼도 못 갖고 나가게 하고
물건은 얼마든지 괜찮다니 음성적인 수출장려지 뭐예요.
거의가 다 빚을 얻어서 그렇게들 약재를 사 온다니
정부나 개인이나 그런 식으로 딸라에 환장을 해서 어쩌겠다는 건지,
참 그 사람들 큰일이에요."
처음으로 운전석의 아들이 참견을 했다. 냉정한 말투였다.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너는 맏이니까 그런 생각이 없을 줄 안다만
우린 아직 젊고 앞으로 결혼시킬 애들도 남아 있으니
일년만 같이 살고 내보내 주겠다고 크게 인심쓰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들은 망설이지 않고 딱 잘라 말했었다.
우린 처음부터 나가 살겠습니다. 그 때도 그렇게 냉정한 말투였다.
남궁씨는 그 때 오만정이 떨어지던 걸 어제 일처럼 떠올리면서
일부러 입을 꽉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뭐가 큰일이냐?
이까짓 똥차 하나 유지하려고 삭신을 혹사하는 너는 뭐가 좀 낫냐? 하고 비꼬고 있었다.
"아버님도 이제 만나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사람들 어쩌면 그렇게 후진지요,
꼭 우리의 오십년대말 같은 궁상이라니까요."
며느리의 이런 말에도 남궁씨는 속으로만, 본데없는 것 같으니라고,
시집 어른들한테 그 사람들이 뭐냐?
그래도 들은 풍월은 있어서 뭐 오십년대말? 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어.
너 따위가 그 시절의 의미를 뭘 안다구. 이러면서 자기만이 오십년대를,
그 신산한 세월을 부둥켜안은 것처럼 느꼈다.
아들 내외는 문지방도 안 넘고 집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아들은 회사로 급히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며느리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라고 했다.
남궁씨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트렁크를 메다꽂으면서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걔들은 왜 불렀소? 그까짓 자가용 얻어 타자고? 공항엔 버스도 택시도 동났답디까?
도대체 영감을 어떻게 보고, 외국 한번 나가는걸 무슨 벼슬인 줄 알고
공항엔 꼭 자가용으로 들락거리고 싶어하는 족속 취급을 하는게요?
남도 아니고 자식한테 그까짓 똥차 한번 얻어타고 이런 수모를 겪게 하니."
"걔들이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리구 똥차 아녜요.
이번에 새로 뺐어요. 쏘나타루다. 보태 준 거 없이 그만큼 사는걸 대견해 해야지 어쩌겠수."
아내가 불붙는데 키질을 삼가고 심란한 목소리로 다둑거렸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구, 얼마나 기다렸으면 때도 잘 맞추네.
보나마나 연변동폴걸. 이렇게 중얼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예, 예, 방금 들어오셨어요. 예, 예, 바꿔드릴게요."
얼떨결에 수화기를 받아든 남궁씨는 여봅쇼,
아, 성님이요? 나요 나, 령이가 왔소,
날래 보십시다. 하는 소리가 하도 우렁차서 수화기를 약간 떼면서 자기도 모르게 피곤한 목소리가 나왔다.
장장 스무 시간을 비행기만 탔다는 얘기와 그 동안에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으니
지금 누우면 내일까지 못 깨어날 것 같다는 변명을 두서없이 하면서
아내를 행해 곱지 않은 눈을 떴다. 도착할 시간을 그렇게 정확하게 가르쳐 줄게 뭐였을까 싶어서였다.
남궁씨는 자기도 연변 동포를 귀찮아하고 있다는걸
상대방이 눈치 챌까봐보다는 아내가 알까봐 더 신경이 써졌다.
래일이요? 래일 두 일없구말구요. 육촌아우뻘 되는 영의 못소리는 여전히 명랑 하고 씩씩했다.
건강하고 감정이 섬세하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에 남궁 씨는 친화감을 느꼈다.
아내가 밥상을 차리는것 같았다.
구뜰한 된장국 냄새가 났다.
딸네 집에서도 우리 식으로 먹었지만 아내의 된장국 맛은 그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맛이었다.
만 하루를 기내식으로만 견딘 속은 그득한데도 식욕이 동했다.
그러나 남궁씨는 토라진 마음 때문에 꾹 참고 오로지 잠이 급한 것처럼 자리 먼저 깔고 길게 누웠다.
허리와 사지를 마음껏 뻗는 쾌감이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게 황홀했지만 잠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주무시우? 아마 못 주무실 거유. 시차라는 게 그렇답니다."
아내가 머리맡에서 이렇게 운을 떼고 나서 계속에서 구시렁거렸다.
또 연변 동포들 얘기였다. 남궁 씨는 못 듣는 척했지만,
수면을 갈망하면서도 잠들지 못할 때의 불유쾌한 각성 상태를 아내의 목소리는 마냥 끌고갔다.
차내에서 못다한,
연변동포들이 얼마나 못살고 조야하고 억척스럽다는 얘기를 아내는 지치지도 않고 하고 싶어했다.
가짜로 판명이 난 청심환을 진짜라고 우기면서 연줄을 통해 억지로 떠맡기는 것도
한계에 달한 동포들이 직접 거리로 나앉아서
덕수궁 돌담길이 중국산 약종상 길로 변했 다는 얘기도 했다.
설마 그럴리가. 남궁 씨는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아 제 집,
제 잠자리로 돌아왔다는 실감까지 잡치는 걸 느꼈다.
아내도 이상했다.
남궁 씨의 친척을 꼭 집어 지칭하지 않고 일반론처럼 말하면서도
아내의 말투엔 지나친 관심과 혐오감이 배어 있었다.
다음 날 아내가 가르쳐 준대로 찾아간 여관은
광화문 근처의 중심가였지만 재개발 지역이라 환경이 구질구질했다.
그 금싸라기 땅에 빈집도 더러 눈에 띄었다.
여관은 버젓한 오층 건물이었지만
마지막날까지 제 몸 안 아끼고 돈만 버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접수창구가 달린 현관방에 여러 식구들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접객업소의 무신경이 못마땅하여
남궁씨는 적당히 거만하게 삼백오호실 손님에게 인터폰을 넣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 그 연변서 온 사람들 말이죠. 올라가 보슈. 그냥 올라가 봐요."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던 주인이 퍼질러앉은채 턱주걱으로 이층으로 난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궁씨는 그런 불손한 태도에서도 주인이 연변 동포를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지
짐작할수가 있었다. 우중충하고 눅눅한 복도 구석방이었다.
노크를 하면서 문을 밀어 봤더니 쉽게 열렸다.
남궁씨보다 훨씬 늙어 보이면서도 낙천적인 동안의 남자가 누구냐고 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고,
성님 하면서 와락 달겨들더니 남궁씨를 껴안고 볼을 부볐다. 완전 서양식이었다.
그의 힘찬 가슴의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남궁씨는 비로소 감동이 벅차 오르는걸 느꼈다.
한편 그가 울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 때 하필 친척 아니라도 동포만 만났다 하면 눈물을 철철 흘린다는 이북 사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남궁씨는 그것만은 따라 할 자신이 없었다. 남궁씨를 풀어 준 연변 아우는 그러나 활짝 웃고 있었다.
우리 친척 중에 저런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이가 있다니, 싶을 만큼 눈부시고 너그럽고 대륙적인 웃음이었다.
하긴 의인 아니면 기인이었을 종조부의 직계 후손이니까.
그는 소년처럼 종조부의 혈통이 자랑스러워지면서
아직도 속에서 보깨던 소인스러운 오만가지 잡념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걸 느꼈다.
늙은 여자 중 한 사람이 아이고 아지바니,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뵙기요, 하면서 남편에게 눈짓을 했다.
남궁씨더러 먼저 자리에 앉길 권했지만 엉거주춤하고서 있다가 그들의 절에 맞절로 답했다.
육촌 계수하고 생긴 거나 연령이 비슷해 보이는 부인이 처제라고 했다.
식구들한테 들은 처조카는 보이지 않았다.
"한 분 더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남궁씨는 그이들과 금세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으나 역시 할말은 없어서 그것부터 물었다.
"련희 말인갑다. 글씨 갸아가 어제 남대문시장 귀경갔다가 기름튀기가 먹음직하다고
한 보따리를 사다가 밤새 쉬엄쉬엄 다 처먹드니만 리질을 만났나, 저리 뒷간을 들락날락해싸니."
처제라는 노부인이 말했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고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한창 나이에 활짝 핀 아가씨가 상냥하게 인사를 하면서 나타났다.
방에 화장실이 딸렸다는게 여간 다행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젊다는건 좋은 일이었다.
아가씨는 얼굴도 곱고 아무렇게나 입은 평상복도 세련돼 보였다.
남궁씨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방안을 살펴보았다.
장판 비닐이 주글주글 낡은 방은 부모 자식간이라 해도 네 식구씩이나 기거하기엔 협소한 방이었다.
게다가 한쪽 벽엔 우황청심환을 비롯한 각종 약재가 장롱 하나 부피는 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녹용이 한대 통째로 우아하고도 신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 씨 눈엔 우황청심환만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가족사 속의 한 기인이 만들어 낸 불가사의한 거리를 뛰어넘어 간신히 상봉한
후손들의 감회를, 우황청심환의 값어치가 떨어진 것만큼의 무게가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량하고도 고약한 느낌이었다.
만약 저 아우가 한낱 환약 따위의 값어치에 따라 인격까지 격하시키는 이 땅의 인심을 안다면
어떤 마음일까 자괴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서로 기억의 족보를 대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면서
남궁가의 틀림없는 후손이고 육촌간이라는 걸 확 인하는 절차를 끝내자마자 육촌은 약 얘기를 꺼냈다.
"운수가 나빴든기라요.
집 떠난 건 구월인데 남들은 일 주일 만에 받는 비자를 우리는 미운 털이 박혔는지 차일피일하는
바람에 홍콩에서 한 달이나 지체를 했으니. 하필 그 동안 여기서 그 가짜 소동이 나지 않았겠소.
날은 자꾸 추워지고 반값에라도 후딱후딱 파는 게 수라고 어찌나 성화들을 하는 지,
래일부터라도 당장 거리로 나앉아 딴 동포들처럼 좌판을 벌이고 싶은데
그 전 에 성님하고 의논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 말이지."
"도와달라는 게 아니야요. 성님한테도 리가 될 것 같아 하는 소리지요. 정말 반값이라니까요.
우린 그저 본전치기나 하자는 게지요. 금세 오를테니 두고보시라우요.
앞으로 들어오는 량이 줄 건 뻔한 리치구요."
육촌이 돈 아쉬운 사람다운 궁기나 조바심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느긋하고 명랑하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남궁 씨 보기엔 매우 신기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쉽게 달고 쉽게 식는 이 쪽 풍토를 충분히 알고 있다는 태도도 조금도 냉소적이거나
업수이 여기는 투가 아니고 마냥 너그러워 보였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온 자네가 더 장삿속에 밝으니 놀랍구만.
여기서 눌러 살아도 한밑천 잡고 살겠어."
남궁씨는 그런 말로 완곡한 거절을 대신했다.
"아이구 성님, 누가 죽을 때까지 호강을 시켜 준대도 못살 뎁디다."
"왜요? 왜 못살아요?"
여기가 마음에 들었음이 역력한 계수가 쳐닿듯이 물었다.
"왠 왜야 그 소리를 어케 믿고 살아, 살긴"
이렇게 핀잔을 주고나서 여편네들은 시장으로 백화점으로 쏘다니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고 남궁씨에게 설명을 했다.
남궁씨도 그 기회에 여자들에게 말로 수인사를 치렀다.
"어렵고 먼 길을 오셨는데 이런 누추한데 계시게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식구들 불찰도 있지만 제힘이 워낙 딸려서요."
"성님도, 이 호텔이 어드래서요. 우린 여행사 잘 만나서 얼마나 호강인지 몰라요.
몰아다가 짐짝처럼 부려만놓고 나 몰라라 해서 당장 잠자리 때문에 고생하는 동포가 얼마나 숱하다구요."
듣고 보니 여행사가 초청장은 물론 어떤 약재를 들여오면
가장 수지가 맞는다는 정보까지 제공해 주면서 적극적으로 여행 알선을 한만큼
여관비등 최소한의 경비는 조달할 수 있도록 약재 판매에도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리야 없지만 자기가 정식 초청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남궁씨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못 말릴 소심증이었다. 방값만 내면 되고 식사는 방에서 지어먹는다고 했다.
현관서부터 여관 전체에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여인숙과 민박을 혼합한 것 같은 더러운 여관방을 꼬박꼬박 호텔이라 부르는
아우에게 남궁씨는 연민을 느꼈다.
개운치 않은 연민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의 연장선상에서 돌연 생겨난 우월감 때문에
남궁씨는 적지 않은 양의 우황청심환을 팔아 보겠다고 떠맡았다.
거리에 나선 남궁씨는 촌스러운 보자기 사이로 비죽비죽 비져 나오는 청심환갑을 내려다보이면서
왜 하필 허구많은 약재 중에서 우황청심환이었을까?
하고 자신의 미련한 선택에 쓴웃음을 지었다. 갈 데가 없었다.
집에 가긴 싫었다. 연변 친척에 대한 아내의 혐오감만 돋울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회사로 향했다.
그까짓거 이판사판이다 싶었다. 그 동안 회사에선 집으로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출근해 봤댔자 자신의 입지가 남아 있으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그러나 오백만원도 안되는 포상여행비만 받고 떨어질 순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공로를 그렇게 과소평가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은 소심한 그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이었고,
전엔 감히 꿈도 못 꿔 보던 생각이었다.
그 동안 사장실을 어찌나 잘 꾸며 놨는지
한때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데라는 느낌이 조금도 안 났다. 다행이었다.
그 대신 뒤쪽으로 조그맣게 회장실이란 구석방이 하나 새로 생겨난 게 눈에 띄었지만
안은 집기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가 거기라도 붙어 있으려는 눈치면 그 때 가서 책상 하나 걸상 하나 놔주려는 속셈이 뻔했다.
그는 보따리를 놓고 사장실에 버티고 앉아 출타중인 젊은 주인을 기다렸다.
돌아온 사장은 그를 깍듯이 대접했고
그는 덕택에 좋은 구경 많이 한 사례와 앞으로는 슬슬 여행이나 하면서 지낼 생각이라는
사의를 동시에 표현했다.
"회장님으로 모실 생각이었습니다만 ……"
젊은 사장이 말끝을 흐렸다. 자네 호의는 받은 셈치겠네, 하면서 남궁씨는 약보따리를 끌렀다.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나서 덧붙였다.
"하필 가짜라고 소문난 물건을 가져와서 안 됐네만 속내 아는 자네가 갈아줘야지 어쩌겠나?"
"가짜는요. 그건 사회주의 나라의 경제체제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소리지요.
공장이 다 국영인데 어떻게 가짜를 만듭니까.
함량 기준이 우리하고 좀 다르다고 가짜라고 단정을 해 버리니,
국교를 목말라하면서 그런다는건 암만 생각해도 경솔한 짓이에요."
이렇게 적극 청심환을 두둔하면서 그걸 몽땅 인수해 주었다.
"고맙긴 하네만 그걸 다 얻다 쓰려구?"
"두고두고 해외에 나갔다 올 적마다 선물로 쓰죠 뭐. 나갈 때마다 선물 챙기기도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내친 김에 하나 더 청을 하겠네. 꼭 들어 줘야 하네.
안 들어주면 퇴직금 달라고 데모할지도 모르니 알아서 하게."
"설마 제가 퇴직금 안 드릴까봐 이리 엄포를 놓으십니까? 말씀해 보세요."
남궁씨는 녹용을 사 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는 가져와 보라고 반승낙을 했다.
남궁씨에겐 연변 아우에게 여기선 보통 부자가 어느 만큼 사나 보여주고 싶다는 허영심이 있었고,
젊은 사장에겐 골치 아픈 공로자를 몰인정하지 않게 제거하고 싶다는 아량이 있었다.
만사가 그들의 뜻대로 형통하여, 아우는 녹용을 통째로 삼백만원에 팔고,
돈으로 쳐 바른 육십평짜리 아파트 속도 샅샅이 구경할 수가 있었다.
이제 그만큼 해줬으면 흡족한 마음으로 남은 약보따리를 걸머지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청앞 지하도로 쫓겨 들어간 거리의 약방을 따라 남궁씨의 친척 네 식구도
좌판을 벌였다.
날은 하루하루 추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얇은 초가을 옷과 아무리 도와줘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욕심이 보기 싫어 모르는 척하려도 갈 데가 없어진
남궁씨의 발길은 매일 그 곳으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평화 시장에서 싸고 보기 좋은 두툼한 겨울옷을 사다가 그들의 어깨에 슬그머니 걸쳐 주기도 하고,
유행 지난 옷을 아내와 며느리에게 구걸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그들의 궁상에 욕지거리를 퍼붓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친척들 곁에 우두커니 앉아서 흥정에 끼여들기도 하고 말동무도 하면서
소일을 했다.
자연히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할 적도 많았다. 아우도 계수도 소주를 좋아했다.
화장품이랑 꽤 괜찮은 옷이랑 잔뜩 갖다 준 날이었다.
마누라가 아무리 좋은걸 줘도 감지덕지할 줄 모르고
넙죽넙죽 받기만 하는 게 미안 했던지 아우가 거나한 술김에 이렇게 말했다.
"성님도 자식 길러 봤으니 부모 맘이 어드렇다는걸 알죠.
조선도 가보고 여기도 와 보니까 부모 맘을 닮아갑디다.
자식 중에 못사는 자식이 있으믄 그저 개져다 보태 주고 싶구,
잘사는 자식한테는 조금이라도 덕을 보고 싶은 리기심이 생기구.
성님이 리해하시라우요."
그러고 나서 그들이 북조선에 처가 친척을 만나러 갔을 때 얘기를 했다.
마누라는 준비해 가지고 간 것을 다 털어 주고도 신고간 신,
입고간 옷까지 동생의 헌 것하고 바꿔입고 왔다고 했다.
그럼 그들의 기죽을 줄 모르는 뻔뻔스러움은 부모 의식의 당당함이었단 말인가.
남궁씨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그들이 싫어지거나 미워지지 않았다.
체류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그들은 가져온 걸 다 처분하고서야 떠났다.
아내는 앓던 이가 빠진 것보다 더 시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남궁씨는 이제부터 혼자 월로 소일을 하나,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막막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였다.
아내가 조용히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내는 자주 그랬고 또 왜 그런 다는걸 남궁씨는 알고 있었지만
근래에 그런 눈치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
아내가 그 버릇을 고친 게 아니라 그 동안 연변 친척한테 정신이 빠져 아내의 설움에
너무 소홀했었나 보다.
그는 하던 버릇대로 아내를 돌아 눕혀 조용히 안아 주려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돌아누우며 그의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격렬한 오열 사이사이로 아내가 울부짖었다.
"현이 자식 나쁜 자식. 망할 놈의 새끼야,
그 새낀 정말. 아 아, 당신 말짝으로 그 새낀 망종이야. 고작 그게 사회주의라니?
그 거렁뱅이 근성이. 그 자식은 그게 뭐가 좋다고 신세를 망치고. 엉, 엉, 엉."
아내는 막무가내로 울부짖었다.
남궁씨는 비로소 그 동안 그들 부부가 사이에 끼고 엇갈린 게 연변 동포가 아니라
둘째아들 현이였다는걸 깨달았다.
연변동포에 대한 미움도 호의도 실은 그들의 실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낯선 친척을 보는 시각의 차이는 현이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현이는 대학 일학년 때부터 운동권이었다.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남궁 씨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엉망으로 밟고 지나간 육이오의 기억으로 운동권은 다 좌익으로 보았고,
좌경의 소지라면 이를 갈았다.
집안 망칠 망종 취급을 했다. 아내는 그가 말끝마다 아들을 망종이라 부르는 것을 제일 듣기 싫어했다.
아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테니 들어 보고 이해해 주자고 아무리 애걸을해도 남궁 씨한테는
먹혀들지 않았다.
아들 또한 아버지하고는 한자리에서 입을 어울리기도 싫어했다.
부자지간은 점점 원수처럼 돼갔고, 현이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때려치우고
노동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겠다며 아주 집을 나가 버렸다.
가끔 옷도 가지러 오고 전화로 안부도 묻고, 즈이 애미하곤 그런대로 연락이 되고 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남궁 씨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 았다.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올 겨울엔 어떻게 된게 옷도 안 가지러 오고 전화도 없구, 엉 엉 엉,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엉 엉 엉."
어떻게 아내를 위로할 것인가. 남궁씨는 첫 포옹처럼 가만가만 아내를 안았다.
그리고 가슴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맞댔다.
나에게도 같은 상처가 있다오. 그걸 확인시켜 주는 것밖에 위로의 방법이 없었다.
<끝>
'종합상식 >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2. (0) | 2011.05.13 |
---|---|
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1. (0) | 2011.05.13 |
우황청심환 - 1 / 박완서 (0) | 2011.05.13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0) | 2011.05.13 |
카프카를 읽는 밤 / 구효서 (0) | 2011.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