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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3.

오늘의 쉼터 2011. 5. 13. 22:39

안톤 체홉 -  골짜기 (In the Ravlne)3.

 

 

그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아니심은 떠날 채비를 끝내고
바르바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등이란 등에는 모조리 불이 밝혀져 있고,
주위에서는 향내가 자욱했다.
바르바라는 창가에 앉아서 빨간 털실로 양말을 짜고 있었다.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느데..." 그녀가 말했다.
"아마 답답한 모양이지. 뭐...
우린 부족한 것 없이 마음 편히 잘 살고 있지.
결혼만 해도 그래, 훌륭하고 실수 없이 치렀지.
아버님은 2천 루블이나 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뭐, 그 한 마디로 버젓한 상인답게 사는 걸 중명하는 셈이야.
다만 이 집은 어쩐지 답답해. 그야 물론 탐욕스런 짓만 하니까 그럴 거야.
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려 못 견디겠어.
그 악랄함이란 것을 좀 생각해 봐.
말 한 마리를 바꾸는 데나, 뭔가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사들이는 데나,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도 다 그렇단 말이야.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사기만 치고 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속임수 투성이야.
우리 가게에서 팔고 있는 금육일에 쓰는 기름 같은 것은,
맛이 쓰고 썩어서 다른 가게에서 파는 송진보다 못할 정도야.
도대체 왜 좋은 기름을 못파느냔 말이야."

  "어머니,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답니다."
  "너는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
그러니, 정말 네가 한 번 아버지께 말씀드려보는 게 어떨까!"
  "어머니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말이야, 나도 말씀을 드리기는 하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단한 마디, 아니심이 지금 말한 그대로 말씀하실 뿐이야...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 하지만
저 세상에 가면, 그야말로 사람은 각기 어떤 길을 걸었는가 
반드시 조사를 받게 돼.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나 올바르시니까."
  "설마 그런 것을 누가 조사하겠어요."
아니심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어머니, 어차피 하느님 같은 건 없으니까요.
조사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바르바라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웃으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녀가 그의 말에 너무나도 놀라  매우 별난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으므로, 그는 당황해 버렸다.
  "그야 하느님은 있을지 모르지만 다만 믿음이 없단 말입니다.
요전 결혼식 때에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을 보면 속에서 병아리가 삐약삐약 울고 있을때가 있지요,
꼭 그와 같이, 제 마음 곳에서도 양심이 울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식이 거행되는 동안 내내 하느님은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그런 생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저희들은 아주 꼬마 적부터 그런 것을 배워왔어요.
어머니 젖을 빨고 있을 때부터 배우는 것은 단 한 가지,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첫째, 아버님도 하느님을 믿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가 언젠가는 군트레프네에서 양을 도둑 맞았다고 말씀하셨지여...
전 범인을 찾아주었습니다.
그것을 훔친 것은 시칼로보의 어느 농부였어요.
그런데 도둑질은 그놈이 했는데,
그 양의 털가죽은 놀랍게도 우리 아버지한테 있지 않겠어요...
이러고도 믿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니심은 한쪽 눈을 깜박거리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군수도 하느님을 안 믿어요." 그는 계속했다.
"서기도 그렇습니다. 교회 집사도 그렇구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거나 금육일을 지키는 것은
남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또 어쩌면 정말로 최후의 심판날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장담살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요즘 항간에서는 뭐 인간이 나약해졌다든가,
또는 양친을 공경하지 않게 되었다든가,
그런 이유로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들어대지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저는요, 어머니,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요, 어머니, 어떤 것이라도 속까지
꿰뚫어보는 사람이니까 환히 알고 있어요.
딴 데서 훔쳐 온 셔츠를 입고 있는 녀석이 있으면,
제게는 곧 그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음식점에 앉아 있다고 합시다.
어머니 같으면, 그저 차를 마시고 있나보다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차도 차지만,
그밖에 그자식은 양심이 없는 자식이라는 것을 환히 알아봅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자
양심 있는 인간 같은 건 하나도 발견할 수 없어요.
이게 다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렇고, 어머니, 전 이만 물러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저를 나쁘게 생각지 마세요"
아니심은 바르바라의 다리께까지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저희들은 만사에 있어서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한테는 우리 집안 사람 모두가 큰 은혜를 입고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저는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심은 매우 감동한 태도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사모르도프 때문에 어떤 사건에 말려들었습니다.
부자가 되느냐 아니면 파멸이냐, 양단간에 하나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에는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잘 위로해 드리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저... 하느님은 자애로우셔.
그보다도 아니심, 노는 아내를 더 귀여워해 줘야 되네.
너희들은 둘 다 입을 꼭 다문 채 눈싸움만 하고 있잖아.
하다 못해 서로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주어야지." 
"예, 그런데요, 그 사람은 좀 별나요..."
아니심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나 입을 꼭 봉하고  있어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 겁니다. 좀도 어른이 되어야겠어요."

  현관 앞 계단 께에는 벌써 키가 크고 살찐 흰 수말이 마차에 매여서 있었다.
그리고리 노인은 몸의 리듬을 조절해서 달려가
기운차게 마차에 뛰어 올라 고삐를 잡았다.
아니심은 바르바라와 악시냐와 아우에게 키스를 했다.
현관 앞 계단에는 리파도 나와 있었지만,
그녀는 몸도 까딱 않고 서서 마치 배웅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저 우연히 거기 있게 된 것처럼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심은 리파에게 다가가서 볼에다 가볍게 입술을 댔다.
  "잘 있어요."하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쩐지 애매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을 떨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녀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니심도 마차에 뛰어올라 허리에 손을 대고 의젓한 태도를 취했다.
자기가 미남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골자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아니심은 계속 마을 쪽을 돌아다 보고 있었다.
맑게 갠  따뜻한 날이었다.
가축들은 이 해 들어 처음으로 들에 나와 있었고,
그 가축들 주위에는 나들이 옷으로 곱게 단장한
처녀들과 부인들이 거닐고 있었다.
들에 나온 것이 기쁜지 누런 황소가 음매음매 울면서
앞발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위아래 곳곳에서 종다리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심은 아름답게 흰 칠을 한 교회 - 그 교회는 최근에 하얗게 칠을 했다.- 
쪽을 자꾸 돌아다 보고,
닷새 전에 자기가 거기서 하느님께 기도까지 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또 초록색 지붕의 학교를 바라보거나
그 옛날에 멱을 감고 낚시질하던 작은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즐거운 생각이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순간에,땅 위에 갑자기 벽이 솟아올라와
자기가 가는 길을 막고, 자기를 과거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 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졸을까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거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셰리 주를 한 잔씩 마셨다.
노인이 돈을 치르려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제가 낼께요!" 아니심이 말했다.
  노인은 감동해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애가 바로 내 아들이오!' 하는 듯이 식당 주인 영감에게 눈짓을 했다.
"아니심, 너는 집에서 장사일을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만..." 노인이 말했다.
"넌 워낙 장사 솜씨가 좋으니까!
그러면 내가 너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돈으로 싸줄 텐데."
  "그렇지만 아버지, 아무래도 그건 곤란해요."
  세리 주는 시큼하고 봉랍 냄새가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잔씩 더 마셨다.
  정거장에서 돌아왔을 때,
노인은 처음에 자기 집 새 며느리를 전혀 몰라보았다.
리파는 남편이 집에서 떠나자마자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갑자기 명랑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낡은 스커트를 입고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리고,
맨발로 현관의 계단을 닦으면서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걸레를 빤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녀가 곧잘 짓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띠고 태양을 우러러볼 때에는,
그녀 역시 종다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현관의 계단 앞을 지나가던 늙은 고용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해 했다.
"정말이지, 당신네 며느리들은 하나같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나 봐.
그리고리! 정말 색시들이 모두 보물 덩어리야!"

7월 8일 금요일,
'목발'이란 별명이 붙은 엘리자로프와
리파는 카잔스코예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카잔의 성모를 예배하기 위해 교회 미사에 참례하러 갔던 것이었다.
그들의 훨씬 뒤에서는 리파의 어머니 플라스커비야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이 아픈데다 숨이 가빠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목발' 노인은 리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저는요, 아저씨, 잼을 무척 좋아해요." 리파가 말했다.
"혼자 방구석에 앉아 잼을 섞어서 차를 마셔요.
그렇지 않으면 시어머니하고 마셔요.
그러면 어머니는 뭔가 뜻 있는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우리집에는 잼이 엄청나게 많이 ... 네 항아리나 있어요. '
자, 먹어요, 리파, 얼마든지'라고 말한다구요.
  "그래? .... 네 항아리씩이나!"
  "굉장한 살림이에요.
휜빵과 함께 차를 마시고 쇠고기도 먹고 싶은 대로 양껏 먹을 수 있어요.
잘 살긴 하지만, 전 어쩐지 무서워요,
아저씨, 무서워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뭐가 그렇게 무섭지?" 
목발노인이 묻고는 플라스코비야가 얼마나 뒤처졌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맨 처음에는요, 결혼식 뒤에 아니심이 무서웠어요.
뭐 야단치거나 하지 않는데도, 그저 그이가 옆에 오기만 하면
전 온몸이 오싹해져서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그래 저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벌벌 떨면서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요즈음에는 악시냐가 무서워요,
아저씨. 그 사람도 특별히 어떻게 하는 건 아니예요.
악시냐는 줄곧 웃고 있지만 때때로 창문 쪽을 바라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 눈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마치 외양간에 있는 양처럼 초록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나요,
플뤼민 아우네 사람들은 그분에게 이상한 짓을 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 시아버지는 부초키노에 40헥타르의 땅이 있지'하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곳에는 모래도 있고 물도 있으니까, 악슷시(악시냐의 애칭),
거기에다 당신 돈으로 벽돌공장을 세워요.
우리가 한몫 낄 테니까'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벽돌은 지금 1천 개에 20루블이나 하니까 이익이 많은 사업일테죠,
어제 점심 때도 악시냐가 시아버님께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저는 부초키노에 벽돌 공장을 세워서 제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라구요.
그리고 방글 방글 웃는 거예요.
그러자 시아버님은 싫은 얼굴을 하셨어요.
틀림없이 악시냐의 말이 마음에 안 드신 것예요. '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뿔뿔이 헤어지면 안돼.
모두 함께 살아야지'라고 시아버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분은 눈을 부릅뜨면서 이를 갈지 않겠어요...
튀김을 내왔는데 먹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말예요, 전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인데,
그분은 도대체 언제 자는지 몰라요!" 리파는 말을 계속했다.
"그분은 30분쯤 잤나 싶으면 갑자기 발딱 일어나서
그 근방 일대를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거예요.
농부들이 어디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나,
뭘 훔치러 오지나 않나 걱정스러운 거지요.
전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 무서워요, 아저씨!
그리고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난 다음부터 밤잠도 자지 않고 재판하러 도시로 쏘다니고 있어요.
그게 모두 악시냐 때문이라고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해요.
세 형제 중에서 두 형제는 악시냐에게
공장은 세워주마고 약속했는데. 막내가 성을 냈다나 봐요.
이래저래  공장은 한 달이나 쉬어버렸어요.
그 바람에 우리 프로홀 아저씨는 일자리를 잃고
이 집 저 집으로 빵부스러기를 얻으러 돌아 다니는 형편이예요.
'아저씨, 들일을 나가시든지 산판에라도 가서 일하시면 어때요?
그러고 다니시는 게 수치스럽지 않으세요?'
라고 제가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하지만 리퓌니카, 나는 농사일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되어서
이젠 아무 일도 못해!...' 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싱싱한 당버들숲 앞에 멈추어 한숨을 돌리면서
플라스코비야가 다라오기를 기다렸다.
엘리자로프는 수년 동안 도급을 맡아 목수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말 한 필 장만하지 못해서 언제나
빵과 양파를 담은 작은 자루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녔다.
그는 두 팔을 흔들며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때문에
함께 나란히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경계표가 하나 서 있었다.
예리자로프는 그것이 든든한가
어떤가 보려고 손으로 만져보았다.
플라스커비야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다가왔다.
주름살투성이에 항상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도 오늘만은 행복하게 빛났다.
오늘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에도 나갔고,
교회에서 오는 길에는 장터에 들러서
배를 넣은 크바스까지 마시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즐겁고 보람있게 산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쉰 다음에 세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해가 막 지려는 참이어서,
그 지는 햇빛이 숲 속에 비껴들어 나뭇가지들을 붉게 물들였다.
수풀 앞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계속 울려왔다.
그들보다 훨씬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우클레예보 마을 처녀들이 숲 속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버섯이라도 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야. 이 처녀들아!" 예리자도프가 소리쳤다.
"야, 이쁜이들아!"  곧 이어 웃음소리가 그 말에 응수했다.
  "'목발'이 왔다.'목발'할아범!"
그러자 메아리도 거기 따라서 웃었다.
이윽고 수풀을 지나왔다.
공장의 굴뚝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종루의  십자가가 반짝 빛나 보였다. 

거기가 '장례식 때에 교회 집사가 케비어를 몽땅 먹어치운' 바로 그마을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벌써 집에 다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는 다만 이 넓은 골짜기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맨발로 걷고 있던 리파와 플라스코비야는 신발을 신으려고 풀 위에 주저앉았다.
도급 목수도 나란히 앉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갯버들숲과흰 칠을 한 교회와 작은 시내가 있는 우클레예보는
아름답고 평화롭운 마을로 보였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구 새까만 색으로 칠해놓은, 공장의 지붕  정도였다.
건너편의 바탈진 곳에는 호밀밭이 보였다
- 노적가리로 쌓아 올린 것과 다발로 묶어 놓은 것은
마치 폭풍에 불려 흩어진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금방 베어 놓은 것은 가지런히 줄을 지어 누워 있었다.

귀리도 완전히 여물어서 진주조개같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추수는 이제  한창이었다. 오늘은 축제 일이지만,
내일 토요일에는 호밀을 거두어들이고 건초를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다음 날은 또 휴일이다.
매일같이 먼 곳에서 우뢰가 우르릉 우르릉 울렸다.
무더워서 금방이라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모두들 들판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서든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추수를 마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즐겁고 들뜬 기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불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요새는 보리 베는  인부들 품삯이 비싸지요."
플라스코비야가 말했다.
" 하루 1루블 40코페이카나 한데요!'

  카잔스코에의 장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줄을 이었다.
부인네들, 차양 없는 새 모자를 쓴 직공들, 거지들, 아이들...
짐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 다음에
장에서 팔리지 않고 돌아오는 말이 달려왔다.
마치 자기가 팔리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심술이 난 암소가 뿔을 잡힌 채로 끌려왔다.
그뒤를 또 짐마차가 따랐다.
술취한 농부들이 그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떤 노파가 커다란 모자를 쓰고 긴 장화를 신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아이는 더위와 무릎을 급힐 수 없는 무거운 장화 때문에 지쳐 보였는데,
그래도 장난감 나팔을 입에서 떼지 않고 열심히 그것을 불고 있었다.
노파와 아이가 언덕길을 다 내려가서
한길 쪽으로 돌아가 버린 뒤에도 나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이곳 공장 주인들은 모두 나쁜 녀석들뿐이어서 말이야..." 
예리자로프가 말했다.
"한심한 일이라구! 요전에도 코스추코프 녀석이
'차양을 다는 데에 송판을 너무 많이 썼어'하고
성을 내고 야단이어서 내가 이렇게 말해주었지.
'천만의 말씀! 필요한 만큼만 썼을 뿐입니다.
코스추코프씨. 그럼 송판으로 죽이라도 끓여 먹은 줄 아시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러잖아.
'나한테 그따위 소리를 할 수 있어? 멍청이! 얼간이!
주제를 알아야지! 자네를 청부업자로 만들어준 게 바로 나란 말이야!'
이렇게 악을 쓰더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이거, 생색 좀 작작 내시라구요.
청부업자가 되기 전에도 지금처럼 차 한 잔쯤은 마셨단 말이에여'하며 대들었더니
'자네들은 모두 사기꾼들이야'어쩌고 하면서 주둥이를 놀리잖아...
나는 잠자코 있었지만 속으로 '
흥 이 세상에서는 우리들이 사기꾼으로 몰릴지라도,
저 세상에 가보면 바로 너희들이 사기꾼들이야, 하하! 하고 웃어주었지.
그러나 그 이튿날이 되니 녀석이 얌전해져서 말이야,
이따위 소리를 하지 않겠어. '
에리자포르, 내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너무 회내지 말게.
설사 내가 좀 심한 소리를 했다 해도 그건 당연한 거야. 
원래 난 일 상인이고 자네보다는 신분이 위니까 말이야...
그러니 자넨 내게 말대꾸하면 안되는 거야' 어쩌고  하면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야 당신은 일등상인이고 나는 목수지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러나 말이오. 요셉 성자님도 목수였다고요.
우리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실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꼭 위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코스추고프씨'라고 말해주었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바로 생각해보았어.
일등 상인하고 목수하고 도대체 누가 더 높을까를 말이야.
그러나 물론 목수가 위였지.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이상해지지 않겠어.
그렇지, 애들아!" 목발은 잠시 생각해본 뒤에 덧붙였다.
"그렇지 얘들아. 일하는 사람이나 고통을 참는 사람 쪽이 언제나 위에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