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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환 - 1 / 박완서

오늘의 쉼터 2011. 5. 13. 19:56

우황청심환 - 1 / 박완서
가까스로 잠이 좀 오려는데 또 그놈의 소리가 났다.

주우지 니집뿐, 주우지니집뿐……

 

"몇 시라는 소리유?"

 

노파는 물었다.

남궁씨는 되는 대로 대답했다.
기계로 합성 한 음향이면서도 일본말 특유의 교성이 알려주는 시간은
어차피 지금 이 지점의 시간과는 무관할 터였다.
노파의 시계가 친절을 다해 가르쳐 주는 시간이 노파가 떠나 온 여행지의 시간인지도
그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속이었다.
노파는 태엽을 누르면 현재의 시간을 말로 알려 주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백내장 수술후 시력이 밤낮이나 가릴 정도로 떨어지고 나서 아들이 일본에서 사다 준거라고 했다.
시간을 알려 주는 소리도 물론 일본말이었다.
못봄을 못알아들음으로 바꿔 가지고 으스대는 노파가 남궁씨는 지겨웠다.
말하는 시계에 관심을 보이기가 잘못이었다.
남궁 씨는 판촉물(販促物)을 개발도 하고 납품도 하는 회사의 고용사장이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싶은 상품에 대한 유별난 관심은,

그러니까 그의 직업의식이었다.
남궁 씨가 시계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 불현듯 호기심이 동해
노파의 흐물흐물한 손을 끌어당겨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을 때,
노파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앙칼진 힘으로 손목을 빼내면서 말했었다.

 

 "괜히 만지지 말아요, 고장나면 우리 나라에선 고칠 수도 없는 귀한 물건이라우.
  일본에서도 엄청 비싼 거라던데,"

 

그제서야 비로소 남궁씨는 자신의 직업의식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배반감과 싫증을 느꼈다.
그의 유럽 여행은 명색이 포상여행이었다.
그러나 속내는 퇴직을 부드럽고 명예롭게 하기 위한 위로 여행이란걸 그는 알고 있었다.
밀려난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은행에서 밀려난 때도 그랬었다.
부하 행원의 부정을 책임질 상급자가 차장선이었다.
신문에 날 만한 큰 부정이었으면 아마 좀더 높은 상급자가 책임을 졌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때 남궁 씨는 겨우 차장이었다.
하필 자식들 학비부담이 피크에 달했을 때라 아내와 더불어 장삿길로 들어섰다.
돈벌이가 여의치 않아 몇 번씩 업종을 바꿀 때마다

그는 밀려난다는 서글픔과 억울함을 맛보아야 했다.
막내까지 대학을 졸업시키자 문방구와 비디오테이프 대여를 겸한 구멍가게 하나가 달랑 남았다.
아내는 야간상고 다니는 소녀 하나를 거느리고 주인노릇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서글픈 내색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또다시 스르르 밀려났다.
마침 그 무렵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상을 당했다.

그 친구는 생전에 조그만 회사 사장이었는데,
남궁씨는 그의 상속자인 외아들로부터 선친의 회사경영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회사는 친구의 생전의 씀씀이와 사무실 규모로 미루어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취약했다.
판촉물이나 기념품, 답례품을 납품하는 사업은
사무실이나 공장 없이 발과 입심만으로도 가능한 영세한 장사였다.
가내공업 규모의 공장이 있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수금과 재고를 합쳐도 기천만원에 불과했다.
다행히 빚은 없었고 건물을 임대하면 훨씬 편하게 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니 살려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과감한 투자로 회생시켜 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남궁씨가 그렇게 쉽게 그 일을 승낙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이익금을 챙길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현재의 미수금과 재고를 밑천으로
한번 일어나 보든지 다 들어먹든지 마음대로 해 보라는 조건이 되레

그의 소심한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내는 남궁씨가 고용 사장이 된다니까 처음엔 재벌급 회사인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다가 실상을 알고 나서는 한심해 하다 못해 차라리 경멸했다.

 

"이 철없는 양반아, 창피한 줄도 좀 아슈. 그렇게 사장 소리가 듣고 싶으면요,
우리 가계에서 비디오든지 문방구든지 하나 뚝 떼어 드리리다."

 

그러나 연때가 맞았달까,
세상 풍조가 마침 조그만 가게 하나를 개업해도 고사떡을 돌리는 대신

기념품을 돌리게 변하면서 매상을 급신장시킬 수가 있었다.
외판 조직과 손발도 잘 맞았거니와 문방구점을 하면서 생긴 눈썰미를 가미해서
인기를 끈 제품도 적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어가 히트를 친 판촉물들은 거의가 다 상품으로도
살아 남아 꾸준히 주문이 오고 있었다.
오년만에 연간 순이익을 억단위로 셈할 만한 알토란 같은 회사로 키워 놓자
친구의 아들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남궁씨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해외 여행을 시켜 주었다.
그는 지난 날의 거 물 정객처럼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땅을 벗어나는 비행기를 탔다.
처음 삼주는 관광팀에 끼여서 돌고 나서 파리에 처졌다.
출가한 딸이 해외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파리에 살고 있었다.
딸네 집에서의 한 달간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들었다. 딸은 아마 더했을 것이다.
아버지 산책이라도 좀 하세요, 제 소녀적 소원이 뭔 줄 아세요?
파리에 가서 더도 말고 한 달만 시내를 정처없이 어슬렁거리며 지내보는 거였다구요,
그런 짜증스러운 말투에서 남궁씨는 딸이 노골적인 구박을 참을 수 있는 맥시멈을
한 달쯤으로 잡고 있었다.  그가 견딜 수 있는 한계 역시 그 근처였다.
하루에 여삼추로 징역살이와 진배없는 딸네집살이를 견디면서까지 남궁씨가 해외 여행을
한 달씩이나 더 연장한 것은  젊은 회사주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경영에 재미를 붙이든 곤란을 겪든 해 볼 만큼 해본 연후에 나타나야
피차 후회없는 결정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남궁 씨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물론 그가 객지에서 하루하루 지루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동안
젊은 주인 역시 그가 아쉽고도 아쉬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겨우겨우 참으며 그를 기다려 주는 거였다.


 "자매님, 마리아 자매님이 또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비틀린대요, 말도 더듬거리구."


 노파의 일행 중 빨간 잠바를 입은 중노인이 통로에서 창가에 앉은 노파쪽으로
윗몸을 휘면서 미안한 듯이 말했다.
남궁씨는 중노인의 물렁물렁한 젖가슴의 부피를 이마에 느끼기가 싫어서 고개를 잔뜩 뒤로 제쳤다.
노파의 일행은 성지순례단이었다.
근 삼십명은 돼 보이는 일행의 좌석은 일련번호로 불어 있었는데 노파가

창가에 앉고 싶어한다고 가이드인 듯싶은 청년이 창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꿔앉혔기 때문에 노파만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시력이 형편없다면서 남의 신세를 져 가면서까지 창가에 앉고 싶어한 만큼 노파는

응석이 심한 편이었다.

 

 "아, 직효약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유."

 

노파가 발밑을 고이고 있던 배낭을 한 손으로 들썩거리면서 남궁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과는 상관없이 말똥말똥한 눈동자는 명령조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그래서 남궁씨는 그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었다.
배낭에 어이없게도 반 말들이 물통이 들어 있었다. 성지 루우르드에서 길어오는 기적수라고 했다.
젊은 사람도 들기엔 힘겨운 무게여서 순례단은 거의 그런 배낭을 메고 있었다.
물은 화물칸에 실어 주지 않아 서 들고 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남궁씨는 낑낑대며 노파의 배낭을 그의 무릎 위로 들어올려 익숙하게 지퍼를 열고
물통 옆에 든 약주머니를 꺼내 노파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해본 장단의 능숙함에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배낭 속엔 그 동안 기내식에 곁들여 나오는 포도주까지 추가가 되어 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그 동안에 인이 백혔나, 이게 벌써 몇 번째래요?

그 귀한 걸." "걱정 말라니까,
우리 아들이 이럴 줄 알고 넉넉히 챙겨 주었으니까

아픈 자매님 있으면 참지 말고 지딱지딱 갖다 먹으라고 해요."

 

노파가 주머니 끈을 풀고 그 안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냈다.
노파는 그걸 꼭 정육각형의 갑째 건네 주지 않고 밀랍으로 포장된 동그란 내용물을 꺼내
손바닥으로 한번 궁글려 보고 나서 내놓았다.

 

"우황청심환은 뭐니뭐니해도 중국 본바닥 거라야지 요새 나온 국산은 믿을게 못 돼요."

 

노파의 말투로 보아 그게 국산이 아니란걸 스스로 확인해 보면서 대견스러워 하고 싶어 그러는 것 같았다.
노파가 차곡차곡 배낭 속에 챙겨 넣은 것만큼의 포도주를 마셔댔기 때문일까,
남궁씨는 수치감 같기도하고 쓸쓸함이나 슬픔 같기도 한 참을 수 없는 느낌으로 까딱하면 울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뿌리 깊은 열등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궁씨에게도 비로소 우황청심환을 선물로 받아보는 일이 생겼다.
역시 은행에 다닐 적이었는데 큰 돈을 대부받은 고객으로부터였다.
사무적인 절차의 심부름 외에 는 그가 대부를 위해 힘쓴 바는 전혀 없었다.
그때도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사직할 때까지도 그럴 만한 지위에 있어 본 적이 없는 남궁 씨였다.
그만한 액수의 대부라면 대개 어느 선에서 결정이 나게 된다는 걸 알고있는 정도가 고작 그의 관록이었다.
그런데도 그 고객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중국산 우황 청심환 열개들이를 한상자 선물로 놓고 갔다.
사무적인 수고에 대한 가벼운 인사치레로 적당한 물건이라고 여긴듯했다.
그때만 해도 국산 청심환에 대한 신뢰도도 높고, 외국나들이 다녀오는 사람도
부쩍 늘어나 중국산이 별로 귀물이 아닐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씨는 거액의 뇌물을 받은 것처럼 음흉하게 가슴을 울렁거렸다.
그 후에도 그 고객만 나타나면 뭔가 편의를 봐 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으로 비굴하게 웃으며
허둥대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남궁씨는 진저리가 쳐지면서 닭살이 돋곤 했다.
방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행기도 쉬면서 승무원을 교체하고 급유를 받을 모양이고,
탑승객도 두어 시간 땅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내 방송은 연착을 했으므로 방콕까지의 손님만 내리고
계속 여행할 손님은 기내에 머물러 있으리라고 했다.
남은 여비를 물건값이 싸다는 방콕 면세점에서 털어 버리려고

잔돈까지 샅샅이 뒤져내 갖고 벼르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웅성대며 불평을 터뜨렸다.
방콕에서 내린 탑승객들이 거의 외국인이었으므로
서울행 에어프랑스에 남은 손님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청소원들이 들어와 닫힌 공간에 여럿이 십여시간을 붙어 앉아 먹고 마시고 잔 어수선한 자국을
신속하게 지워갔다. 자리가 많이 비어 남궁씨는 노파의 옆자리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시간이나 남았수?"

 

노파가 고개를 빼고 두리번대는 남궁씨의 소매를 당기면서 물었다.
남궁씨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괜히 움찔했다.

 

"글쎄올시다. 두세 시간이면 땅을 밟게 되겠죠. 지루하셨죠?"

 

"아이구, 아녜요. 하나두 안 지루해요.
연착할거 없이 이왕이면 무슨 사고가 나서 오던 길을 되짚어 간다구 해도 끄떡없다우."

 

노파가 고른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남궁씨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무턱대고 땅이 밟고 싶었다.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아 있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갈증처럼 다급하게 발바닥에 땅을 느끼고 싶었다.
남궁씨는 방 콕에서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자기 혼자서 너무 견딜 수 없어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한 외로움을 느꼈다.
노파의 옆자리를 면하긴 틀린 것 같았다.

 탑승한 승객이 꾸역 꾸역 빈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승무원도 교체가 되어 한국인 스튜어디스가

이제부터 여러분을 서울까지 편안히 모시겠다고 인사를 했다.


 "저 계집앤 틀렸어."


노파가 표독하게 말했다.
남궁씨는 노파의 그런 말투가 싫었지만 그 새로운 스튜어디스가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밉상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평균치의 우리 나라 여자들보다 오히려 정돈된 이목구비와 아담한 몸매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을 귀찮아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 표정을 보자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남궁씨는 파리로부터 일행과 자리를 가까이하면서
은연중 생긴 공감대를 통해 감지하고 있었다.
스튜어디스가 칸막이 뒤로 사라지자 누군가가 하품하는 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 보니까 한국 다 온 실감나네, 제기랄." 다들 옳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에게 우황청심환을 가지러 왔던 빨간 잠바가
다시 통로 쪽에서 남궁씨의 어깨를 짓누르면서 노파에게 속삭였다.


 "아까 그 서양 남자는 인물도 좋고 인심도 좋더니만 어쩌면 수인사 한마디 없이

없어져 버렸을까요? 서운하네요, 자매님."

 

 "한국땅 다 왔으니 슬슬 구박맞을 준비를 해야지 어쩌겠수."


귀국할 날을 앞두고 딸이 비행기를 에어프랑스로 예약했다고 했을 때
남궁씨는 암말 안 했지만 속으로는 여간 괘씸하지가 않았다.
그 동안 주리 참듯 참던, 빨리 내 나라 땅을 밟고 내 식으로 퍼지고 싶은 욕망은
우선 내 나라 비행기만 타도 반은 충족될 것 같았다.
타기만 하면 당장 내 나라 같을 우리 비행기 놔두고 에어프랑스라니,

같잖은 것 같으니라구.
그는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딸을 고깝고 아니꼽게 여기면서도 촌스러워 보일 것 같아

애써 내색하진 않았다.
타고 보니 기내 서비스를 맡은 승무원이 아주 잘생긴 백인 미남이었다.
성지 순례단을 비롯해서 함께 무리를 지어 모여 앉은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국여행에 익숙지 않아 뵈는 노년층이었다.

기내 방송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비행기를 탄 긴장감이랄까,
조심성 같은 걸 남궁씨도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남궁씨는 혹시 우리 동포가 무시당하는 꼴을 보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미남 승무원의 친절은 참으로 완벽했다.
처음 기내식이 나왔을 때, 마실 것을 월로 하겠느냐를 물을 적에도 일일이
적포도주 백포도주 맥주 생수 등을 들어서 보여 주면서 환한 미소로 의견을 물었다.
할머니들이 알콜음료를 천부당만부당 하다는듯이 도리질을 하며 거부하고

맹물을 청하는 모습은 남자들의 술자리에 낀 새침데기 처녀가 맥주 한 잔도 못 마시는척

질겁을 할 때처럼 귀엽기조차 해서 남궁 씨는 백포도주를 즐기며 비죽비죽 미소짓곤 했다.

그럴 것 없다고 제일 먼저 아는 척을 한 것은 바로 남궁 씨 옆자리의 노파였다.
노파는 기회 있을때마다 해외 나들이가 처음이 아니라는걸 비치고 싶어했는데
그때도 혼자만 포도주를 청해 마시지 않고 뒀다가
배낭 속에 챙기면서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는 시범을 보였다.
다음 식사때부터 는 너도나도 그대로 했다.
병마개를 따지 말고 그냥 달라고 청할 수 있을만큼 할머니들은 미남 승무원과 쉽게 친해졌다.

포도주를 챙기는 김에 잼이나 버터, 심지어는 일회용 식사도구까지 가방에 쑤셔넣은 이도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처음엔 황송해 하던 백인 미남의 서비스를 마음껏 즐겨보려는 분위기까지 감돌기 시작했다.
자주 물을 청하기도하고 베개나 담요를 더 달라기도 했다.
뭐가 없어졌다고 손짓 발짓으로 흉내를 내어 그로 하여금 발밑을 더듬게 하기도 했다.
남궁 씨가 아슬아슬해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미남 백인의 태도는 한결같이 귀부인에 봉사하는 기사처럼 우러나는 기쁨과 공손함으로 일관했다.
부르지 않아도 잠든 할머니만 보면 흘러 내린 고개를 바로잡아 주고
담요를 양어깨 밑으로 꼭꼭 여며 주는 모습은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거짓없이 자애롭고도 완벽하게

아름다워서 남궁 씨는 제발,
그만 그만하라니까 하는 비명을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곤 했다.
남궁 씨는 자신이 참을 수 없는게 동포들이 주책없는 주접스러움인지

백인의 지고지순한 봉사정신인지도 잘 분간이 안 되었다.
다만 죽자구나 엉겨붙고 싶어하면서도 밥의 뉘처럼 단호하게 고립된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안 오던 잠이 문득 남궁씨를 엄습했다.
자신의 코고는 소리에 놀러 고쳐 앉길 거듭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악몽을 꾸었다.
악몽은 집요하게 연결이 되었다. 노파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좌석벨트를 매라는 기내 방송이 들려 오고 있었다.
노파가 기창 밖을 내려다 보면서 다 왔다고 환성을 질렀다.

남궁씨도 우리의 산천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곧 산천은 바다로 변했다. 노파도 정말 산천을 본 것일까.
같이 오면서 쭉 궁금해하던 생각이 또 있다.
노파의 시력이 겨우 밤낮이나 가릴 수 있을 정도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자주 했다.
뒤에서 웅성웅성 짐을 챙기면서 스튜어디스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콕에서 써 버리지 못한 돈을 기내 쇼핑으로 쓸 요량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 듯했다.
기다리라고만 해 놓고 코빼기도 안 비치다가 나중에서야 물건이 거의 다 팔렸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잘못도 아니련만은 모두를 동족에게 무시당했다고 분개하는걸 들으며
남궁씨는 그간의 부질없는 긴장과 날들이 풍선처럼 쭈그러드는걸 느꼈다.

 

"그러게 내 뭐랍니까? 내 관상은 못 속인다니까."

노파가 일행 쪽을 돌아다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남궁씨는 속이 근질근질하면서 내 관상도 한번 봐 달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할머니, 하고 부르자마자 그런 충동은 열없어졌지만 할머니는 의아한 듯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례단 중에서도 최고령자답게 백발에 쪼그라든 얼굴이었지만
눈만은 의안처럼 부조화스럽게 홀로 말똥말똥했다.
사물을 제대로 분간 못하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고,
사물을 제대로 분간 못한다는게 거짓말일 수도 있으리라.
아무려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남궁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기 얼굴을 뚫을 듯이 바라보는 노파의 눈길이 섬칫했다.
만약 시력이 형편없다는 게 정말이라면 지금 노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애매한 윤곽 속에 이목구비가 두루뭉수리하게 함몰된 괴물의 형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악몽 속에서도 그렇게 생긴 괴물에게 쫓기느라

소리나지 않는 절규로 목구멍을 짐승처럼 헐떡인 생각 이 났다.
공항엔 아내와 맏아들 내외가 마중나와 있었다.

남궁씨는 곁눈질로 열심히 출영객들을 살폈다.
뭘 꾸물대냐고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회사에선 아무도 마중나와 있지 않았다.
하긴 제멋대로 연장한 여행이니 귀국 날짜를 알 리가 없지.
그러나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만약 회사에서 그 동안 그가 아쉬웠으면 집으로 얼마든지 연락을 취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남궁씨는 울 것처럼 그게 허전하고 쓸쓸했다.
빨리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한다면서 아들도 남궁씨가 머뭇대지 못하게 재촉을 했다.
그놈의 자가용 좀 얻어 타려고 아내가 억지로 아들을 마중 나오게 했으리라고 남궁씨는 짐작했다.
아들의 운전 솜씨는 신경질적이었다.

전에도 자주 느낀 일이었지만 꼭 푸대접만 같아서 고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막연히 뭔가를 기다리며 차창 밖을 감회 없이 내다보았다.
비행기에선 뛰어내려도 좋다고까지 여길 만큼 밟고 싶어했던 땅이었다.
마침내 돌아왔다는 느낌은 상상한 것과는 딴판으로 삭막했다.
가슴이 울렁거리기는 커녕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하고도 아무런 교감이 어루어지지 않은 채 붙어 앉아 있다는 것은

숨이 답답한 일이었다.
남궁씨는 차창 유리를 조금 내렸다.
바람이 뜻밖에 찼다.

입고 있는 엷은 베이지색 잠바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이 땅은 옷이 여러 가지 필요한 고장이었다.

사람들마다 따뜻하고 짙은 색깔 옷을 입고 있었다.
같은 기온에서도 봄과 가을 옷이 사뭇 달랐다.

지금은 가을이 깊어 가는 중이로구나.
남궁 씨 는 낯선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딘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참, 당신 안계신 동안에 큰손님들이 왔다우."

 

아내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지만 참고 있다가 내뱉는 말투였다.

 

 "나한테?"

 

앞자리의 며느리가 짧게 웃는 소리가 남궁 씨 귀에 거슬렸다.

 

 "그럼 당신한테지 누구한테겠수. 당신이 초청했다면서요. 왜 있잖아요?
 재작년인가부터 연락이 닿기 시작한 당신하고는 육촌인가 팔촌인가 된다는

 그 연변 동포 말예요.
 초청을 하시려거든 저하고 의논이라도 한마디하시든지,
 갑자기 들이닥치게 하면 어떡해요. 당신도 안 계신 사이에."


남궁씨는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에겐 형님이 한 분 계시다는 것도
아버지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정도지 뵌 적은 없다.
그래도 친할아버지보다 는 종조부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기도 하고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한 것은,
청년 시절 나라를 빼앗기는 걸보고 울분을 참지 못해 독립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갔다고 전해들은 그 분의 이색적 인 생애 때문이었다.
남궁씨의 아버지가 그 일을 그닥 좋게 말 한 건 아니었다.
당대의 풍습대로 조혼을 한 종조부에겐 그 때 이미 처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겐 사촌형뻘이 되는 그 아이가 장성하지 못하고 일찍 죽자,
집나간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남기고 간 혈육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죄 많은 팔자만을 심히 부끄러워하며 시들시들 말라가던
그 애 어머니도 삼십을 넘기지 못하고 아들 뒤를 따라간 모양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큰집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무후(無後)해지는 걸 지켜본 아버지는
그 분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경외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분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는 들쭉날쭉했다.
해방후 한때는 아버지도 선대에나 당대에 별로 이렇다할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가문을
그 분 덕으로 빛내 볼 생각이 없지 않았던 듯하다.
툭하면 그 분을 대단한 독립운동가인양 자랑을 하고 싶어했지만,
남궁씨는 어려서부터 솔직히 말해 그 양반이 독립운동을 하러 갖는 지,
아편 장사를 하러 갔다가 얼어죽었는지 알게 뭐냐는 식의 아버지의 폭언을 들어 왔기 때문에

그 닥 믿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남궁씨의 어렸을 적 기억이고 남궁 씨 역시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어서
종조부의 생사나 정체까지 궁금해할 만큼 편안한 세 월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가족사 속에 한두 사람의 의인이나 지사쯤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더러 자식들 앞에서 그 어른을 적당히 각색해 울궈먹은 적도 있지만 다 지난 일이었다.
귀담아 듣지 않는 얘기를 무슨 재미로 각색을 하겠는가.
남궁 씨 또한 자신이 각색한 예기는 물론 아버지의 엇갈린 주장이
다 종조부의 진짜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허상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런 종조부가 만주에 정착해 살면서 퍼뜨린 자손들이 고국의 친척을 찾아 여러 갈래의 통로로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당도한게 남궁 씨였다.

당초의 뜻은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종조부는 독립운동가도 아편장수도 아니었나보다.
만주에서 만난 조선 처녀와 혼인해서 아들 딸 낳고 농사 짓고 고희의 수까지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고향에 남긴 일점혈육에 대해선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한 듯 임종할 때도 자식들에게

언제고 고국땅과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오거든
제일 먼저 큰형을 찾아가 우의를 나누도록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언을 받든 자식들은 다들 늙어 죽고,
손자들이 늙어갈 무렵에나 겨우 고향땅과 소식을 주고받고 더러 왕래도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트였다.
그들이 바로 종조부의 직계인 남궁씨의 육촌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애타게 찾은 국내 친척은 그들의 큰아버지나 그 후손이었으나

그 집안이 절손 상태이고 보니 마침내 남궁씨한테까지 이른 것이었다.
국내에선 누가 수고를 하고 수소문을 해서 육촌까지 찾아내게 되었는지

그 경로까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아무튼 삼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자세한 자기소개와 함께 친척을 찾은 벅찬 감격으로

다소 흥분한 육촌의 편지를 받은 게 재작년이었다.
연변으로부터였고 한문을 섞어 쓴 한글은 유려한 달필이었다.
직업이 의사라고 했다.

한의사인지 양의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았지만 괜히 한의사일 것 같았다.
최초의 편지에는 남궁씨도 만감이 교차하여 즉각 회신을 보냈으나

다음부터 피차 할 말도 없어지고 하여 일 년에 두세 번씩 안부나 주고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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