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우리 가족은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 버렸다.
가족들은 실종된 엄마를 찾기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나(큰딸)는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엄마는 글을 읽고 쓸수 없는 것을 알게 된 일은 엄마에게
오빠의 편지를 써주고 읽어 주는 때 였다.
그런데 엄마가 부탁한 글을 써달라는 일이 엄마가 나를 의지하는 것임을 몰랐다.
또하나의 심부름으로 여겼다.
엄마가 나를 손님처럼 대접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도시로 떠난 이후였다.
엄마에게 내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엄마가 홀로 있으면서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엄마와 따뜻하게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엄마의 반지가 사라진 것이 나의 중학교 입학때문이었다는 것을 후에 깊이 이해했다.
나는 엄마가 껍질을 안벗긴 홍어를 제사상에 올려놓은 이유를 몰랐다.
나는 엄마가 개를 키우는 방식도 이해하지 못했다.
평생을 부엌에 사는 엄마가 부엌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나의 이런 기억들은 내가 얼마나 엄마를 몰랐는지를 알게 했다.
엄마는 일주일 전에 형철이 삼십년 전에 살았던 용산동에 나타났다.
삼십년전 엄마는 이곳으로 아들을 찾아온 경험이 있다.
형철은 과거에 살던 집 근처를 가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봤다고 한다. 아이들이 본 엄마의 모습은 비참했다.
(형철이 생각하던 엄마는 늘 강건하며 태산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남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이미 늙고 지쳐가는 불쌍한 노인이었을 뿐이었다.)
형철이는 소년때에 검사가 되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아버지 때문에 집을 나간 엄마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형철이의 꿈에 두눈이 반짝였다.
엄마는 형철이가 검사가 될 수 있도록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엄마는 형철이가 대학 졸업후 재벌회사에 취업해도 기뻐하지 않았다.
되려 형철이의 꿈에 대해 물었다.
형철이는 돈을 벌어서 다시 공부한다고 했다.
형철이는 엄마의 실종 이후 매우 날카로워졌다.
아내와 다투기 일쑤였다.
싸우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형철이는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형철이가 검사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물론 이꿈은 형철이가 가진 꿈이지만 엄마의 꿈이 된 것이다.
형철이는 자신이 청년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임을 알지 못했다.
왜 엄마가 형철이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형철이가 검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형철은 자신이 검사가 되지 못한 것이 엄마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어느날 아버지에게 소망원에서 찾아왔다.
이 고아원은 아내가 오랫동안 매월 사십오만원씩을 후원했던 곳이다.
자식들이 준 돈을 모아서 그곳에 보낸 것이다.
아버지는 그 돈이 적금으로 나가는 줄 알았다.
아내는 고아원의 담당자에게 딸의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읽어 달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집을 떠나 살았는지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을 떠나 살고 싶었다.
아내를 잃어 버리기전까지 아버지에게는 아내가 그냥 형철 엄마였다.
실종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아내의 상태를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자각하였다.
아내가 혼자 살기 위해서 어떻게 발버둥 쳤는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왜 자녀들에게 헌신적으로 살수 밖에 없었는지도 생각해냈다
아버지는 빈집을 둘러보았다.
텅빈집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집을 떠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아내가 없어진 후에야 처음 만난 아내를 생각해냈다.
평생을 아내를 돌아보지 않고 언제나 앞만 보고 살았다.
결국 지하철역에서도 아내보다 먼저 가버렸다.
그렇게 아내는 혼자 남겨진 것이다.
아내가 아프다고 해도 한번도 챙겨주지 못한 아내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지금 아버지는 아내를 불러본다.
그러나 불러볼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자신의 과오 뿐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을때도 아버지는 자리에 없었다.
언제나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내였는데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밀었던 기억만 남았다.
아내를 찾는데 가장 열심인 애가 큰 딸이다.
전화가 왔다.
네가 쓴 글을 소망원의 여자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는 구나.
그 여자가 읽어 준 네 글을 읽고 그렇게 행복해했단다.
네 엄마를 부탁한다.
엉엉 우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눈물로 얼룩졌다.
딸은 아버지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는 엄마를 '나'라는 1인칭으로 사용한다.
엄마는 전지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면서 가족들에 대해 두루 회고하듯 한다.
나(엄마)는 너희들이 살고 있는 집이 혼란스럽게 보여.
아파트며 오피스텔은 내눈에 모두 같아 보이네.
나는 그냥 똑같지만 않으면 좋겠다.
엄마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백을 한다.
둘째야 너는 이 에미에게 항상 기쁨이었단다.
너에게 만큼은 다른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해봤단다.
팔개월 넘게 젖을 물리고, 유치원도 보낼수 있었지.
나는 네가 커서 나를 데리고 구경시켜준 것들을 잊지 않는단다.
너 때문에 광화문도 가고, 영화와 음악도 알게 되었단다.
나는 과거의 마음속에 있는 연인(은규)을 생각한다.
내가 어느날 밀가루를 이고 가는데 당신이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나를 불렀지요.
당신은 나의 짐을 자전거로 실어다 준다면서 훔쳐갔지요.
그런 당신이 내 인생에 오랜 동무가 될 줄 몰랐지요.
당신이 사산한 넷째 아이를 묻어주었지요.
당신이 곰소로 도망간것도 아마 나 때문이었지요.
곰소는 당신 때문에 내가 잊지 못할 곳이 되었지요.
가끔 내가 당신에게 해준 이야기는 사실 내 딸에게 물어서 해준 것이오.
내가 실종된 뒤에 당신이 나를 찾아 다닌거를 알고 있지요.
서울역에 한번도 와본적이 없는 사람이 나를 찾아 다닌 것 때문에 당신이 지금 아픈것인가요?
이제 당신을 놔줄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다오.
나는 집에 돌아왔다.
사십년간 살아온 집을 돌아본다.
집이 꽁꽁 얼어있다.
내가 언제나 살았던 곳이다.
당신(남편)은 서울에 갔오?
바람이 불어 먼지들이 몰려다닌다.
자세히 보니 장롱도 꽁꽁 얼어있네.
지금은 얼어있어도 곧 봄이 되면 소란스러울거야.
고모가 대문을 열고 있다.
고모는 나에게 정신 차리고 돌아오라고 한다.
나는 지금 떠돌면서 고모의 말을 듣고 있다.
고모는 살아온 과거를 회상한다.
동생(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말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게 살수 있는가
헛간문도 열려있다.
내가 즐겨앉던 나무 평상에 살얼음이 끼어있다.
집을 이렇게 얼게 두면 안되는데... 헛간에서 혼자 일했던 모습들이 영화처럼 출렁거린다.
나는 이제 이 집에서 갈거요.
지난 여름 지할철에서 혼자 남겨졌을 때 난 세 살적 일만 기억이 났지요.
나는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오직 걷고 또 걸었을 뿐이지요.
나는 지쳐서 주저 앉을 때까지 걷기만 했지요.
내 엄마가 나를 보고 있어요.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나에게도 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를 잃어 버린지 구개월째다.
큰 딸은 이탈리아에 있었다.
여동생의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편지에는 눈물로 만들어진 얼룩이 남아있었다.
엄마에 대한 실종과 회오로 인한 눈물일까?
아니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한계의 눈물일까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대화중에 빈집에서 엄마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실종한 후에 아버지는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수없이 발견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엄마가 코도 아팠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말한다.
"엄마가 꿈에도 보이지 않는단다."
가족들은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단지 엄마의 실종후에야 엄마의 이야기를 수없이 찾아 내었을 뿐이다.
나(큰 딸)는 바티칸에서 장미묵주를 구했다.
그리고 베드로 성당을 향해 나아갔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았다.
엄마를 부탁해...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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