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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7. / 켄트 너번

오늘의 쉼터 2011. 5. 8. 16:46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7. / 켄트 너번

 

 

 

15. 푸른 순간

나는 25살때,
독일 중세대학도시인 마르부르크에 있는 건물의 작은 다락방에서
무일푼에, 혼자서 두려움에 떠는 병약한 나날들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친구 하나도 없었고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단다.
낮에는 심한 알콜중독자가 경영하는
골동품 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밤에는 우리나라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나에게 관심도 보여주지 않는
그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거리를 배회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혼자인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일해주던 가게 주인의 어머니는 매우 현명한 여자였다.
12살의 어린시절에 그녀는
나치가 그녀의 학급에서 유태인 아이들을 잡아가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교실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것처럼 수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밤에서 밤으로,
그녀는 단짝친구들과 반아이들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녀는 목격자임과 동시에 생존자였다.

여러달 동안 그녀는 내부의 혼란과 싸우고 있는 나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녀는 카툰을 그리며 집의 창문을 통해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었다.
그녀는 내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것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내곁에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당신을 쭉 지켜봤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당신의 눈에서 고독함을 봤어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과 똑같아요.
삶이 어려울 때 사람들은 장래에
그 어려움을 극복한 장면을 그려보려고 시도하죠.
혹은 그들은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 현실을 위로하려고 생각해요.
시간은 그들의 적이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의 하루하루는 그들의 적이에요.
그들은 그 순간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원해요.
그들은 단지 미래나 과거를 위해 살아갈 뿐이에요.
그러나 그건 잘못이죠."

"나는 간단한 룰을 가졌어요."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항상 푸른 순간을 찾아요."
그녀는 이제 내곁에 앉아있었다.

"푸른 순간은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건 당신이 진실로 당신 주위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이에요.
그건 공포의 순간일 수도, 사랑의 순간일 수도 있죠.
당신은 단지 기억 속에서만 그걸 알 수 있어요.
나의 어린시절에 학급 친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갔지만,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 볼 때면 나는 푸른 순간을 가졌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윤곽과 친절한 얼굴을 응시했다.
"내 말을 주의깊게 들어요."
그녀가 계속말을 이었다.

"이건 순간이에요.
우리는 결코 그것을 잊지 못할 거예요.
이 순간에 당신 그리고 나는 어떤 다른 사람의 존재보다 더 가까이 있어요.
이 순간을 잡으세요. 그걸 유지해봐요.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리지 말아요.
이 순간은 금방 지나가게 되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는 과거로써 존재할 거예요.
그러나 그게 푸른 순간이에요.
그리고 푸른 순간은 당신이 만들어 나가는 삶을
진주처럼 한 알씩 연결할 거예요.
그건 당신이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당신이그것들을 만드는 거예요.
그건 당신이 다른 이들 속에서 살아있는 그것들을 가져오는 거예요."

그녀는 손으로 내머리를 쓰다듬고는 가볍게 토닥거려 주었다.
"항상 푸른 순간을 찾아요."
그녀가 말하고는 자신의 일을 보러 돌아갔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의 친구 프라우 듀폰트는 죽었다.
암이 그녀의 몸에 퍼진 후에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의 길을 통과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녀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더이상 그 순간이 포함하는 즐거움이나
고통에 의해서 한 순간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마음과 정신을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그 순간들을 극복한다.

내가 만약 나 자신의 비현실적인 요구와 지나친 기대를 포기해 버린다면,
그 푸른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동안에 푸른 순간을 경험했다.
창밖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을 때 그 순간을 느낀다.
나는 낯선 사람과 골치아픈 이야기를 할 때에 그순간을 갖는다.
그 순간들은 나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온정과 진실과 함께 오고,
고통스러운 삶에 예기치 않았고 기대치 못했던 은총이 쏟아지듯 다가온다.
그 순간들은 영혼의 선물이다.

너는 반드시 삶에서 푸른 순간을 찾는 방법을 배워야 한단다.
그것들은 정말로 큰 가치가 있는 진주들이다.
너는 그 순간을 강제로 얻을수는 없다.
그것들을 제조할 수도 없다.
그러나 네 마음이 고요하고 현재의 순간에
자신을 전체로서 맡긴다면 그것들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너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줄 것인가
혹은 네 행복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에따라
벌어진 사건을 판단하거나 측정하기를 원한다면,
그 푸른 순간을 결코 이해하려고 할 것이고,
그 자체는 네 경험과 지식의 한계 내에 가두어지게 된다.
단지 보편의 풍부함에 네 자신을 맡긴다면,
그 자체가 향상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고 단지 그래야만, 그 푸른 순간이 찾아올 수 있는 거란다.

프라우 듀폰트의 충고에 따르거라.
네가 혼자일 때, 집에서 나와 있을 때,그 푸른 순간을 보거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만지기 위해 다가갈때,푸른 순간을 찾아라.
네가 거리에서 눈빛이 난폭함으로 미쳐있는 사람에 의해 앞이 가로막히고
그의 제정신이 아닌 말을 듣게 될때, 푸른 순간을 찾아라.
그 순간이 거기에 있단다.
그 순간이 널 위해 그곳에 머문단다.

나는 선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선에 대한 모든 것이 푸른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건 순간의 충만과 아름다움에 자신을 맡기는 이들에게,
그리고 세계가 얼마나 그들을 위협하는가에 의해서나
혹은 행복과 수입의 척도에 의해서
삶을 판단하거나 구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편의 선물이다.

프라우 듀폰트는 나의 삶을 통해 지나간 선의 순간과도 같다.
그녀는 내게 내 주위의 세계를 밝히는 간단한 교훈을 남겨 주었다.
"항상 푸른 순간을 찾아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전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삶이 제공하는 행복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간단한 열쇠 가운데 하나를 전하는게 될텐데.

 

 

16. 크레이그의 교훈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
그리고 많은 나이든 사람들은 -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동질성의 심각한 위기속에서 살아간다.

약간의 사람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사회적 동질성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희미해질 때까지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의 흥미속에 자신의 흥미를 감추고 산다.

다른 사람들,
자주 젊은 남자들은 그럭저럭 전반적이고 완성되어 보이는
자신을 만드는 일을 시도하는 것에서,
자기 중요성과 성취를 과시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절망적인 시도들을 한다.
더욱이 몇몇 남녀들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의 기대치에 부응하여
자신의 사회적 동질성을 수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러한 경쟁에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덧없이 비판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그들 각자의 마음에는 누군가 그밖의 다른 사람이
그들의 현재 위치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가면이 벗겨지거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내가 좀더 젊었을 때,
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런 풍토와 함께 열병을 앓았을 정도였다.
자주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라는 걱정 때문에 감히 행동하지 못했었다.
어떤 때에는,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확실히 승인받기 위한 눈물나는 시도로서
논쟁의 중심에 내 자신을 강제로 내몰곤 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옳든 그르든 무조건 배제했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힐책했다.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을 보다 낮추어 봄으로써
나를 높일 심산으로 그들의 약점과 모순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었다.
어떤 때는 그걸 깨닫기도 하지만 다른 때는 깨닫지조차 못했다.

그건 내가 성년에 도달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남아있었고,
그런 행위는 내 주위를 둘러싼 불확실성에서
나 스스로를 끌어내기 이전까지
나의 친구들에 의해 비판당하고 책망될 기회를 가졌었다.

크레이그는 나의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그가 들어간 어떤 방이든
그곳에 있는 사람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
말하는 사람에게 완전히 집중시키게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갑자기 그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기 전보다
더 중요하고 책임있게 얘기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대우해준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와 나는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을 많이 지니고 있었지.
우리는 같이 여자와 함께 여행도 했었단다.
우리는 함께 진리를 찾고 진실을 구했었다.
우리는 서로의 좋은 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서로의 결점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정신의 햇빛아래에서 살았던 반면
나는 달빛아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비쳐질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치수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이 서로를 좋아했다.

햇빛이 비추는 가을의 어느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아
우리의 연구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무심코 창문밖을 응시했을 때,
무리를 지어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나의 교수들중 한 명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여름내내 그곳을 떠나 있었고, 나와는 좋게 헤어지지 못했었다.
나는 그가 제기한 어떤 견해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나의 질문에 대해 그는 모욕적인 반발로 되받아 쳤었다.
우리는 그날 이래로 서로를 보지 않았다.

"담이 있어." 나는 크레이그에게 말했다.
"나는 그를 보고 싶지가 않아."
"왜 그래?" 크레이그가 물었다.

나는 지난 봄에 있었던 사건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좋지 않게 헤어졌어." 나는 말했다
."게다가 저 자식이 날 좋아하지 않아."

크레이그는 창가로 걸어와서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나는 자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는 내게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등을 돌리고 떠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자네야.
그리고 자넨 단지 공포심 때문에 그랬던 걸 거야.
그는 아마 자네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고,
그래서 그는 자네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을 거야.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만약 지금이라도 자네가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도 자네에게 관심을 가질거야. 내려가서 그와 얘기해 보렴."

크레이그는 간결하게 말했고,
나는 시험삼아 교수들이 가고 있는 주차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따스한 느낌이 드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면서 그 교수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동안 뭘했는지 물어보았다.
나의 따스한 태도에 그는 놀란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얹었다.
우리는 지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공원을 거닐었다.
나의 한 쪽 눈 모퉁이로 창가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크게이그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했던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평가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때,
사실은 그 사람이 나를 판단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과 함께
모든 관계들 속에서 잃었던 용기를 되찾게 되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판단되는 존재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들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은
정직한 척하는 가식적 행동들로 가득 차게 된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말은 나에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허락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진 나에 대한 판단을 보는 대신,
나는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만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질 정도의
커다란 하품을 대로에서 마음놓고 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행동의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애써 머물지 않는다는 걸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한 어떤 것을
나눌 기회를 위해일부러 기다리지도 않는다.
크레이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햇빛을 쬐듯 사람들을 따스하게 한다.
사람들의 삶이 그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자신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에겐 그를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날부터 나는 내 삶의 주변을 하나 둘씩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건 쉽지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며 헛되이 소비한다.
그리고 아직도, 건방진 사람들이 나의 열려진  모습을 들여다 보고는
그것을 비웃거나 내 가면을 벗기는 데에 이용할 때면,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린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가짐으로써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함으로써 세상이 내 앞에 활짝 열리는 걸 발견한다.

내가 단지 나 자신만의 관심과 흥미속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알 수없었던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발견한다.
자동차 수리공, 출납계원, 미친 사람, 도둑들 -
모두가 할 이야기를 갖고 있다.
부자, 빈자, 강자, 고독한 사람 -
모두가 과거의 나만큼 꿈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다.
농부는 나에게 트랙터에 대해 말하고,
과학자는 나에게 원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마치 호주의 연단에서 자란 것처럼 그곳을 알게 되고,
오랜 동안의 모든 나날들을 하나씩
상자에 포장한다는게 어떤 느낌인지를 배운다.

열차를 타고 캐나다를 여행할 때,
술취한 사람처럼 혀가 꼬부라져 말을 짜내듯이 지껄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피해버린 한 남자와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한 차례의 발작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와 같은 칸에 탄 엔지니어였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그는 나에게 기차 레일에 얽힌 역사를 가르쳐 주었고
우리가 지나쳐온 작은 마을들의 불빛에 감춰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헤어질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방해받기를 싫어하죠."
그는 내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사양했다.
내겐 마음이 뿌듯해지는 즐거움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자주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말할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며 침묵속에서 앉아 있는가.
모두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소녀,
괴상한 차림을 한 버릇없는 소년 -
사람들은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매력적일 만큼 확실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확실히 내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너도 그러하듯이,
그들은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기를 꿈꾼다.

만약 네가 다가선다면, 만약 네가 다른사람을 대단히 좋아한다면,
네 주위에 쳐진 벽들은 쉽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네가 그토록 갈망하는 사람들의 주의와 집중이
자연히 너를 향해 돌아서는 것을
네가 네 주의와 집중을 그들에게 돌렸기 때문이란다.
혼자이거나 정신이 불안정한 이들은
네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삶이 가치있어질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의 삶에 가치를 느끼게 해 줄 수 있기에
스스로가 더욱 가치있는 사람임을 발견하고,
또한 다른 사람앞에 드러내 보이는
자신의 중요성이나 성취를 과시함에 의해서 얻는 것보다도
더욱 존경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건 단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빛을 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 밑에서 너의 가치가 손실되는 것 이상으로
너는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빛에 반영됨으로써
가치가 더욱 증가하는 것이다.

그것이 크레이그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모든 방을 온기와 활기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데,
그가 자기 의견에 대해 다른 사람이 주의를 집중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를 좋아하거나,
그가 그들을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한마디 질문도 없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대화할 기회를 가진다.
그는 분리된 사람들의 비어있는 공간을
선한 느낌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이다.

크레이그가 가졌던 용기를 갖춘 사람이 되거라.
사람들은 나쁜 동기와 잔재주를 가진 너를 책망할 것이다.
그들은 너의 협력을 요청하고 네가 열릴 기회를 갖게 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해도, 단지 주위의 삶과 사람들 속에
네 흥미거리를 확대하고 자기 영향력을 증가시키려는
이기적인 행동에서 탈피하라고 충고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네 삶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 의해
보다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안녕에서 달아나라고 힐책하는 게 아니다.
기회를 가져라.
사람들을 먼저 좋아하고, 질문은 나중에 하거라.
그것이 새로운 방법으로 너의 세계를 여는지를 한번 시험해 보아라.
네가 다른 사람에게 비춘 빛이
백배로 너에게 돌아와 비추지 않는 지를 알아보거라.
때때로 가장 간단한 행동이 가장 커다란 결과를 낳는 법이란다.



17. 예술의 힘

지난 밤은 새해의 전 날밤이었다.
1989년의 새해 전 날밤에 베를린스필하우스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지휘했던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연주가
텔레비전에서 재방영되었다.

나는 당시에 그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건 특별한 때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된 특별한 연주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동유럽 사람들은 우리로선 단지 상상으로만
느낄 수 있을뿐인 환희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분위기는 매우 들뜨고 흥분되어 있었으며,
자유의 전율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음악가는 소련과 미국, 그리고 모든 유럽에서 연주를 위해 모였다.
합창단은 주변 세계로부터 모여졌다.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그가 서있는 곳, 대학살의 어둠의 날들을 통해 살아왔던
유태인이 나치정권과 동서세계의 분리로 상징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회복과 축복의 노래를 위해 세계의 민족들로부터 모여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죽어가고있었다.
인생을 음악의 즐거움과 음악의 위력에 바친 사람을 위한
고별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성원들의 얼굴들,
성가대 속의 어린이들의 미소,
고요, 청중들 속에서 빛나는 조명의 격렬함,
모두가 한 가지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독일인의 자질에 대한 커다란 전망과 명예,
정치의 힘을 극복하는 인간정신의 숭고한 승리.
베토벤의 장엄함. 쉴러의 강력한 자유시.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기억.
너무 오래 분단되어 있던 사람들의 통일.
낡은 해 - 낡은 시대 - 는 마치 분단의 벽이 무너지듯,
그리고 오랫동안 억눌렸던 인간 감정의 거대한 파도가
지구를 휩쓸듯 새로운 해에 자리를 넘겨주고 떠났다.

번스타인이 그의 지휘봉을 들어올렸고,
즐거움과 슬픔, 힘과 장엄함을 모두 쏟아붓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것은 6백만의 죽은 영혼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인간정신을 유배시킨 날들의 고뇌를 떠오르게 했다.
악기들의노래는 마치 하나의 목소리 같았다.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와 퍼져갔고 감정을 쏟아부었다.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없었다.
그건 평소보다 훨씬 더했고,
내가 흘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눈물이었다.
그건 우리의 선과 악에 대한 성서의 회복이었다.
그것은 고백이었고 축복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인간다울수 있는 때였다.

콘서트가 끝날 무렵에나는 변해 있었다.
일상의 삶에 순전한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찾아온 것이다.
비록 공연의 조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 인간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때
그리고 그것을 신에 버금가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으로 나타낼때,
나는 오직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한 순간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술의 힘이며,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삶을 단지 절반밖에 못 산 것이다.

그 힘은 음악속에 살아있고, 연극 속에 살아있고,
미술 속에 살아있고, 건축과 조각 속에도 살아있다.
그것은 시나 소설속의 단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예술이 나를 변화시키는 순간들에 의해 삶을 측정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대성당 피에타 앞에 설 때,
딜런 토머스의 시를 낭송하는 걸 들을 때,
바흐의 첼로곡조를 들을 때, 바로 그런 때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 자욱한 클럽의 테이블에 앉아 악단의 성원들이 뒤에서
서로의 악기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며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
작은 일본 소녀가 소규모의 심포니 콘서트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는 걸 들을 때.
허드슨 베이의 선물가게 앞에 서있으면서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천연의 조각
아뉴잇(북미그린란드의 에스키모족에 대한 공식 명칭)을 응시할 때.
그것은 어떤 장소,어떤 시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너는 위대함에 의해 신성하게 된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것을 결코 얻을 수 없거니와
세계의 명성있는 예술가의 존재로부터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예술은 스스로 자신이 창조하는 것으로 전화되어지는
창조적 활동속에 서있게 되는 때에, 그것의 신비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예술의 신비가 드러날 때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하고,
그때 만약 우리 마음이 그러한 경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의 정신이 고양하고 우리의 상상력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네가 만약 매일의 단조로운 순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순간이 꼭 필요하다.
만약 네가 이 순간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
만약 네가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나 배우가 된다면 -
너는 높은 명성을 수반하도록 노력하거라.
그러나 만약 네가 그것들을 창조할 수 없다면,
너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창조의 힘이
네게서 살아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번 사랑할 때, 네 자신을 그속에 푹 빠지도록 충분히 사랑하거라.
너는 신비롭게 우리 삶에 부여되는위대한 창조적 활동의 메아리를 경험할 것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신에게얻을 수 있는 것에 가장 근접한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