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6. / 켄트 너번
12. 정신적 여정
우리는 모두 신의 은총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다.
신은 아마 이름이나 얼굴을 갖지는 않을 게다.
너는 신을 볼 수는 없지만, 그러나 신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응시할 때 갑자기
그곳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껴져 놀랄 때처럼 너를 엄습해오는 것이다.
그것은 상쾌한 날 아침에 풍족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켤 때 느끼는 개운함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시간의 시작 이전에 무엇이 존재했는가에,
혹은 공간의 저편에는무엇이 존재하는가에 의아해하며
묻게 되는 질문 뒤에 숨겨져 있는 신비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떤 사람은 네게 신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신이란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의 버팀목이고,
삶에서 미신을 필요로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고의적인 거짓일 뿐이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나
완전한 자연운동의 과학적인 설명을 논의할 게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나약함이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의 발발에 이용된 종교나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해친 종교들의 예를 인용할 게다.
너는그런 사람들과는 진지하게 논의할 수 없고, 또 논쟁해서도 안된다.
장자라는 중국의 철학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만약 네가 세계의 신비에 대한
어떤 의식을 갖고자 한다면, 바다의 속삭임을 듣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은 우물을 떠나는 것이고,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코앞의 벽만을 보고 전체의 규모와 모양을
논하려고 하는 사람과 논쟁하는 일에서 벗어나거라.
그러나 우물에서 떠나기를 선택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다.
신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의문을 설명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들, 다른 모습들,그리고 다른 진실들을 드러낸다.
자주 그들은 순진하거나, 기괴하거나,
혹은 다른 종교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바다에 이르는 그 길들이
흰 수염을 기른 신의 이야기로 끝날 때,
또는 여자를 예속시키고 아이들을 겁먹게 하고 우리에게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 해야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그 중 하나의 길로 어찌 나아갈 수 있겠느냐?
신화에 둘러싸인 그 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떻게 사랑보다는 판단으로써 우리가 충만해질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네가 먼 바다의 속삭임을 들은 사람이라면,
네 믿음들을 부인하는 행위와 언동에 현혹되지 말거라.
믿음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들만의 장소를 갖는다.
바다에 이르는 길은 많이 있을 수 있고,
바다는 그들 각자에게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너의 임무는 바다에 이르는 다른 길들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갈 길을 발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의 길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길을 엄격하게 규정한 전통속에서 태어나거나,
혹은 단일한 길을 힘있게 제시하기에는 좀 불확실한 양친들 밑에서
스스로 자기자신의 길을 찾아나설 수도 있다.
첫번째 방법으로 자란 사람들은 최소한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안다.
그렇지만 그들은 찾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아마 바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그것으로 통하는 바깥 기점의 길을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 멈추어 서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두번째 방법을 취하는 사람은 찾는 것에서는 자유롭지만
아직 믿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모른다.
그는 그것에 도달하는 많은 길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응시할 수는 있지만 형상화 시키는 단계의 능력은 사실상 없다.
찾는 사람에 대해서는, 찾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 둘러싸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들거나,
쉽고 빠르게 길을 찾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자기 길을 강요하거나,
미스테리의 끝없는 속삭임이 괴롭히는 등, 모두가 그를 그냥두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현재 서 있는 곳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출발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독특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는 연민을, 다른 이는 웃음을, 또 다른 이는 인내력을 축복받았다.
어떤 이는 인간미로 채워졌고, 다른 이는 자연미로 채워졌다.
약간의 사람은 예리한 정의감을 가졌고,
다른 사람은 선행으로 주위의 칭찬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이 각자의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에게서 부여된 각자의 믿음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너는 반드시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해야만 하고
- 그것이 네 믿음의 원천이다 -
그 재능을 풍성하게 경작할 방법을 발견해야만 한다.
나는 때때로 신을 위대한 교향악으로 생각하고,
신에 이르는 다양한 정신적 길을
오케스트라의 구성악기로써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너의 재능은 연주되기를 기다리는 악보와 같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할 수있는 악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너는 결코 모든 악기를 혼자서 연주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네 음악은 아마 모든 악기들 속게 묻혀
자기만의 고유한 소리를 찾지 못할 게다.
너에게 가장 적합한 악기를 찾고, 위대한 심포니의 신성한 창조성에
네 음악을 더하는 일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나는 한 때 영국령 콜롬비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수도사들을 위한 조각을 만들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정신적 전망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노동의 정신적 리듬에 자신을 몰두함으로써
이를 실행하는 사람을 신이 데려간다는 엄격히 계산되어진 전망이었고,
오랜 세대 동안에 믿음의 운율이 만들어낸
외피같은 베네딕트회의 영성에서 기도자들은
자신이 산화해버릴 때까지 기도를 드렸다.
그곳은 마치 위대한 신들과 직면하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더이상 들리지 않게될 때까지 한없이 울 것처럼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베네딕트회의 영성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 영성의 재료들은 너무 어두웠다.
그러나 엄격한 수도원장이 한 번은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 "이 조직에 머물러 보십시요. 당신을 깨끗하게 할겁니다."
그의 말은 옳았다.
비록 외국 땅을 지나쳐 가는 여행자처럼
단지 그런 믿음의 표면에 접근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진실속에 살아있는 위대한 신에 대해 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캠프의 불빛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단지 거대하지만은 않은 평안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정신적 연대의 광활함에 닫혔던 마음이 열려졌다.
내 귀에는 베네딕트회 영성의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완전한 화음이 깃든 천상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계속 머문다면, 나는 곧 그 음악의 일부가될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베네딕트회의 기독교 신앙은 나의 악기가 아니었다.
나는 곧 수도원에서 보낸 추억들과 함께 그곳에서 돌아왔다.
나의 정신적 음악은 그것과는 달랐고,
나에겐 연주해야 할 다른 악기를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진실을 엿보았고,
그 진실은 정신을 위해 아름답게 공예된 악기였다.
내가 그 악기의 연주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악기의 아름다움이 덜하거나 현실성이 적어지는 건 아니다.
그 악기는 신의 교향악에서 자기 자신의 부분을 가진다.
만약 오케스트라에서 베네딕트회의 높은 악기음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 곡은 좋지 못한 음악일 것이다.
만약 너의 정신적 악보에 소리를 줄것 같아 보이는 전통을 만난다면,
너는 그것을 따르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종교적 전통이 존재할 수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정신적 진실의 목소리가 내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서 말한 바다로 통하는 길을 제공하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위해 길 위에다 이정표까지 만들어 두었다.
만약 너의 정신을 확장할 수 있는 전통을 발견한다면,
그것에 네 마음과 함께 너의 전부를 주거라.
그 전통의 성서를 읽어라. 그들의 예배에 참가하거라.
그것이 정신을 형성하는 방법에 네 자신을 맡기거라.
그러나 신에 대한 믿음이 단지 마음의 고독에 기초한
조용하고 개인적인 종교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그 길로 들어서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자신의 신을 직접 만나는 예언가들과 환상가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지혜를 구하고,
매일 신의 경험에 더욱 접근하도록 허락하는 마음의 습성을 기르거라.
그러나 항상 다음을 기억하거라.
정신적 성장은 단지 실행을 통해서만 연마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도구처럼, 그것은 사용해야만 녹슬지 않는다.
길처럼, 그것은 걸어야만 하는 것이란다.
기도를 통해서든, 묵상을 통해서든, 예배를 통해서든, 선행을 통해서든,
반드시 자신을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신적 통찰력은 너의 믿음을 실행하는 훈련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는 더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네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너는 그 길을 계속 가기에 너무 지쳤거나,
혹은 다른 일이 그 보다 더 중요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아마 네 믿음이 단지 순간적 감상이었다고 믿기 시작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할 때, 네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거라.
너의 삶 전체가 정신적 여정이고,
너는 지금 가능성이 풍부한 땅과 마찬가지로 불모의 땅에 와있을 뿐이다.
네가 시작한 길을 되돌아가려고 하지 마라.
단지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신념과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의 길에 충실해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 길을 가거라.
그리고 반드시 방향을 바꾸어야만 할 때가 오면 그때 발길을 돌리거라.
그러나 바다를 찾는 것만은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네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갈 때, 바다의 속삭임은 더 커지고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이 더욱 자라날 것이다.
네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길에 있게 될 것이다.
아마 너는 자각함으로써 혹은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신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너는 인간적 존재로서 혹은
많은 사람의 동질적 경험의 통일체로써 신에게 이끌릴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로 이끌리든 간에, 중요한 건 네가 어디론가 이끌린다는 점이다.
불교인들은 장님들이 자기들이 각각의 부분에 대해
만지고 느낀 바에 의해 하나의 코끼리를 묘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각각은 자신이 만져본 부분에 따라 코끼리를 묘사한다.
바로 이것이 신에 대해 알기를 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만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을 찾는 것을 거부하지는 말거라.
우리는 다원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고, 진실들은 -
정신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그밖의 진실들은 -
다른 사람에겐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낯익은 냄새와 희망으로 풍족한, 태양이 비추는 날들처럼
자라나는 길을 발견하거라. 그 길을 따라가거라.
오직 바보만이, 눈이 따갑다는 이유로
태양이 비추는 길을 걸어가지 않는 거란다.
13. 고독과 외로움 a
너는 혼자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내가 말하는 혼자있는 시간이란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이 아니라 며칠,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 주일간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거란다.
혼자 있는 시간은 정신의 수련장이기 때문에
너에게 몇 백 배의 가치있는 시간을 돌려 줄 것이다.
너는 스스로가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지,
혹은 생활의 의미가 단지 일상의 표면적 일들에서만
찾아지고 있는지를시급히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생활의 의미가 단지 일상의 일들에 만머물러 있다면,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는 일은 스스로를 돌아다 볼 기회를 제공하여
너로 하여금 지혜를 성숙시키고 내적인 힘을 성숙시킬 수 있게 할것이다.
이것을 결코 쉽게 간과해버릴 만큼 작은 발견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거나,
한가롭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사고팔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에겐 언제나 해놓은 일보다 해야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을 생활의 사소한 문제들로 채우는
끝없는 늪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곰곰히 생각하고 주의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의미있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기 생활의 모든 시간을 일에서 일의 연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잠깐 동안의 고요함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을 자극하여 그들을 숨막히게 한다.
그리고 항상 못다한 일이 남아 있을 것이기에,
그런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해야 할 일을 남기고 죽게 될 것이다.
바쁘게 사는 생활 속에서는 일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이 없다.
세상 일에는 끝이라는 게 없다.
비록 큰일이 앞에 놓여있더라도, 생활의 리듬을 찾아
한숨 돌리기 위해 과감히 일을 멈추는 시간이있어야 한다는 걸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주에는 사람들 개개인의 탄생이나 죽음과는
무관하게 불러지는 무한한 노래가 있다.
너에겐 이 말이 낯선 말이거나, 또는 추상적인 말로 여겨질는 지도 모른다.
우주의 소리는 일상 생활과 밀접한
크고 작은 소리를 통해서는 듣기 어려운 작은 콧노래이다.
우주의 소리는 우리 모두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통일성의 표현이다.
그리고 우주의 소리는 사람들을 죽음과 필연에 조화되도록 만든다.
우주는 사람들을 큰 물체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
그러한 우주에 대한 지식은
단지 고독속에서만 충분히 경험되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독은 혼자라는 시적 단어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혼자있는 것 그 자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혼자 있다는 것은 고독의 실험장이 되기 쉬운 만큼
외로움의 실험장이 되기도 쉽다.
그러나 고독은 외로움과는 정반대에 있는 평화를 위한 조건인 것이다.
외로움은 텅빈 방에 혼자 앉아 아무도 방해하는 이 없는
주위의 공간을 인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분리의 조건이다.
고독은 네 주위에 혼자만의 사색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외로움이 분리의 조건인데 반해, 고독은 화합의 조건이다.
외로움은 편협하다. 그러나 고독은 관대하다.
외로움은 네 주위를 차단하지만, 고독은 무한을 향하여 네 주위를 확장한다.
외로움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내적 대화에 뿌리를 두지만,
고독은 끝없는 영원의 침묵에 뿌리를 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외로움을 경험할 뿐이기에
혼자있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응답하는 다른 사람의 형상을 비추는
거울을 세상이 제시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무시되는 걸 두려워한다.
자신에 대한 반영이 없다면 그들은 두려워하고 심지어 미쳐버리기까지 한다.
자신들이 가깝게 느끼고 이해하는 일 속에 있을 때에만,
세상은 그들을 편안하게 한다.
그들이 혼자있을 땐, 아무도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확증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처음부터 평안한 가운데에 존재의 바탕을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고독은 네 사상의 중심으로부터
삶의 다른 부분들을 풍족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자아'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과 희망과 기억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
그리고 우리의 자유로운 생각들을 제한하지 않는,
조용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공간에 이미 친숙하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했던
일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이 공간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활동으로
그들의 삶을 보내왔기 때문에 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그 공간에 온전히 이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아무도 다가 올 수 없고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발동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과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네가 어른이 되어 가족과 생활의 의무감에 얽매여 있게 되면,
그런 시간을 갖는다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아직 젊기때문에 그 자체로써 의의를 가지는
혼자있는 시간을 요구하고, 공허만이 되돌아 오고
침묵만이 노래하는 장소로 과감하게 떠나는게 필요하단다.
그런 장소는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은 가장 친숙한 고독의 제공자이다.
심지어 그곳에서 혼자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더라도,
자연의 위대함은 우리의 일상에서 들려오는
대부분의 무의미한 소음들을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혼자 자연으로 돌아갈 용기와 지혜를 가진다면,
보다 큰 율동과 무한한 콧노래의 실체를 금방 깨닫게 될게다.
그리고 네가 자연을 발견할 때,
자연은 항상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너는 언제든 자연속에 있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란다.
외부의 평화는 내부의 평화를 만든다.
그리고 너는 마음의 평화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를 알기 때문에
평화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평화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고독에의 탐구는
그들에게 존재하는 장애로 인해 조바심, 조용함, 평온함,
그리고 평화로움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진행된다.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시간이 무거운 짐처럼
매달려 있게되는 외로움의 한 시기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를 구속하는 일상의 제한된
울타리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투쟁해야만 한다.
그런 투쟁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천천히 단호하게 고독의 완전한 정적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꽃과 향기가 있는 거대한 정원으로 발을 내딛는 것과도 같다.
사람들은 삶을 거칠게 할퀴는 일상적인 일들과
생활이라는 날카로운 울타리들에서 잠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삶은 새롭게 호홉한다.
사람들은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들로 채워지는 장소에 있게 된다.
그들은 갖가지의 소리를 듣고, 갖가지의 숨결을 느끼는 장소,
그리고 땅에 내리쬐는 태양빛이 갖가지로 변화하는 장소에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생활의 진행 과정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인식에 의해 세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변화된다.
나무는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끝없는 춤을 출 때,
우리는 나무의 풍요로운 냄새를 맡고,
바스락거림을 듣고, 율동을 감지할 수 있다.
투쟁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던 시간이라는 개념은
별의 리듬을 따르는 상처없는 몸짓으로 변화된다.
외로움은 시들고, 사색하는 고독이 만개한다.
그리고 현재 생활의 진행과정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은
생명의 맥박과 시간의 윤택함을 가지는 사람이 된다.
그런 인식은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돈으로는 값을 매길 수가없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관계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만들기 위한 열쇠이기도 하다.
현재 생활의 진행 과정에 대한 인식이 사람들 사이의 일부가 될 때
모든 관계는 더욱 견고하고 확실하게 된다.
그리고 혼자있을 때에도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선과 자기 가치로 채워지는
은밀한 공간들을 갖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과 동일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타인의 삶 구석구석을 캐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의 존재로서 자신의 내적 공허함을 채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고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러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들은 삶의 내부에서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거라고 보기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요구들을 한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필요와 기대로 주위 사람들을 숨막히게 만든다.
고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관계에서
자신과 같이 있는 사람이 다른 모든 관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완전히 전념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허한 형상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공간들은 풍족할 수 있고, 각별히 존중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쓸데없는 기대들로 가득 채워질 뿐이다.
그들이 주는 사랑은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순수한 의도가 자신의 최고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침체시킨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진실로 행복한 생활을 원한다면, 너는 고독의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그 교훈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배움을 지속시키는게 더 중요한 일이다.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갈망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자유롭게 될때까지,
너는 배회함과 쓸데없는 잡담과 혼란스러움을 물리쳐야만 한다.
인내하거라. 받아들이거라.
고독은 네가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 네가 도달해야할 장소란다.
항상 네 주위의 세계를 바라보거라.
산은 쓸쓸하다고 해서 움직이진 않는다.
하늘을 선회하는 매는 태양과 합칠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없는 현재의 평화 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평화이다.
네 자신 안에서 그 평화를 찾거라.
고독이 지배하는 장소로 가거라.
큰 침묵의 교훈을 마시거라.
그러면 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14. 여행
나는 지금껏 길이 유혹하는 소리와 먼 곳이 부르는 소리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더 루스트는 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모험심과 욕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전혀 볼 수없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고 말했단다.
이 메아리들의 대부분은 멀리서 희미하게 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활과 가정과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이 메아리들을 쉽게 제쳐 놓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메아리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바다의 철썩거림과도 같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려는 욕망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점점 커져간다.
나는 네가 젊을 때 이 메아리들을 들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기회를 잡거라. 그리고 먼 곳이 너를 부르는 소리를 따르거라.
그것은 네가 항상 소중히 하고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다.
나는 나의 삶 가운데 있었던 어떤 순간을 너에게 말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게다.
그날은 아침부터 계속 눈이 내렸다.
우리가 마지막 산장에 도착했을 때,
주위는 폭설로 인해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 전방에는 거대한 검은 벽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므루크 산맥이 안개와 연무, 그리고 눈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저기 산꼭대기는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고 산장지기가 말했다.
그 사람은 손이 시려워서인지 팔로 엽총을 감싸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산꼭대기를 쳐다 본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우리가 과연 오늘같이 추운 겨울 날 저 산을 정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산장에서부터 안개 속으로 나 있는 좁은 자갈길을 바라다 보았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길은 페어뱅크와 프루드호 베이 사이에
알래스카 송유관을 건설하는 인부들을 위해서 급조된 길이었다.
그길은 톱니모양의 알래스카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산등성이를 따라 낸 자갈길로, 버려진 길을 복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유조차 운전수들이 차를 제어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빠져든
길 안쪽으로는 임시로 세워진 하얀 십자가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브루크 산맥 전방의 마지막 기점인 디재스터 크리크에 서 있었다.
그곳을 얼어붙은 땅이었다.
브루크가 험한 바위산이기 때문에,
데드호스와 프루드호 제이에 산재된 이동가옥들과
반추형 오두막까지의 150마일 이내에는 거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길을 막 통과하여 산장에 도착한 탱크트럭 운전수에게 걸어갔다.
그의 트럭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저 길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요?"
"당신 체인은 가지고 있소?"
"아니요."
"나 같으면 가지 않겠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운전수와의 대화 내용을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이 먼 곳까지 왔어. 결코 되돌아가진 않을 거야."
마지못해 나는 차에 올라탔고 우리는죽음의 동정을 시작했다.
우리가 자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차가 미끄러지며 속력이 떨어졌다.
우리는 곧 폭설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좁은 자갈길에는 오른쪽 난간이 아예 없었다.
만약 뒷바퀴가 미끄러진다면,
혹은 하얀 세계를 뚫고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는 다른 트럭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절벽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될 것이다.
여섯명의 죽음, 여섯개의 하얀 십자가. 그것으로 끝장이다.
운전자는 다시 속력을 내었고 헤드라이트의 희미한 불빛을 뚫고 앞으로 달렸다.
그는 차가 멈춰버린다면 이 얼어붙은 자갈 위에서
다시 출발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빙판 위에서도 속력을 늦출 수 없었다.
만약 우리 차가 멈추었다면, 길이 너무 좁고
차가 불안전했기 때문에 후진 시킬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회색곰들이 바위로 된 비탈길을 돌아다니는,
그리고 150마일 내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산길에서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운전자는 커브길에서 여러번 실수할 뻔했고
차가 잠시 멈추듯하다가 다시 출발할 때는 바퀴들이
눈덮인 어둠속으로 삐져나온 자갈들을 툭툭 튕겨냈다.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좌석 모퉁이를 꼭잡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우리가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공포심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때 나는 내가 실수한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차가 폭설을 뚫고 나왔다.
산들이 우리의 양편으로 뻗어있고
멀리 전방에는 내 생전에 결코 보지 못했던 광대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하얀 천상의 광경처럼 지구의 만곡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광활했다.
우리는 그 길을 벗어나 이 끝없는 광활한 공간을 달렸다.
공포는 어느새 흥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이 끝없는 땅을 달려 휴게소까지 다다랐다.
세찬 산바람은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우리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침묵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땅은 눈으로 덮여진 거대한 파도처럼 물결이 일고 굽이쳤다.
하늘은 때 맞추어 새빨간 황혼으로 뒤덮여
마치 땅이 꽁꽁 얼어붙은 듯이 보이게 했다.
그 장관의 규모나 율동이 우리를 현기증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현기증을 느꼈다.
다음에 펼쳐지고 있는 계곡은 100피트 혹은10마일가량 멀리 펼쳐져 있었다.
나의 오른쪽 멀리, 시야의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아
치형으로 된 기다란 산의 행렬이 서 있었다.
그 산은 눈으로 덮힌 봉우리들이 우유빛 하늘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왕관처럼 지평선 위에 씌워져 있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침묵이 천국처럼 보일 만큼 고요했다.
그 광경은 바위들이 조약돌로 보일 만큼 광대했다.
옅은 자주색으로 물든 구름들의 물결은 북극의 땅거미지는
하늘 속에서 우뚝솟은 산들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땅의 끝이 어디며, 하늘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척이나 커다란 꿈의 세계에서 있었다.
나는 그곳의 모든 것과 대화하길 원했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 광경이 너무나 장대했다.
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 아름다운 광경을 보리라고는 기대했지만,
이처럼 아름다우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었다.
나는 이 경험을 말로써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경험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었다.
새로운 진실들이 세찬 바람처럼 나에게 돌진해 왔다.
내가 결코 볼 수 없었던 색조들과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공간들이
나의 모든 것을 씻어냈고,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정신의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흥분했고 어리둥절했다.
나의 옛 자아는 인공의 피부처럼 허물을 벗었고,
그 자리엔 내가 알 수 없는 새롭고 더욱 커다란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나는 또 다시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여행의 신비이다.
어떤 여행이든 신비스러움이 있다.
너는 네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범주에서 안주하게 하는 가정에서 떠난다.
그러나 여행을 할때,
너는 여행의 모든 풍부함 속에 있는 세계와 만나고 대화하게 된다.
너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네가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본다.
전 생애를 투자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느껴지던 네 자신의 세계가
시간과 공간속에서 하나의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점점 더 작아진다.
너는 다른 사람이 된다.
너는 그저 알 수 없는 세계에 너를 맡겨두면 된다.
그 세계가 반드시 꿈같이 느껴지는 북극의 평야처럼 광대할 필요는 없다.
그 세계는 위스콘시크 숲을 거니는 차분한 산책일 수 도 있고,
나이로비의 구석진 거리일 수도 있다.
네가 익숙한 것에서 받는 위안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네 자신의 세계와 전혀 동떨어진 세계에
자신을 개방했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천천히 일상에서 친근한 것들에 대한 기억이 네 마음속에서 멀어져 간다.
그리고 너는 네 주위의 낯선 세계의 경험에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너의 생각들과 관심이 변한다.
너의 감정들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건에 집중된다.
세상의 요구가 네 머리와 가슴에 새겨지고,
적어도 순간적으로 나마 너는 일상의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진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자가 되는 것을 원치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표면은 대충 훑어보는 관광자이길 원한다.
그들은 결코 자신을 떠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자신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가져가려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들이 떠나온 세계를 그곳에서 재창조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안전한 세계를 위태롭게 만들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들이 실제로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제한된 것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광자들은 호텔에서 호텔로 움직인다.
돈과 신용카드로 보호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여행하는 세계를 진정으로 만날 수 없다.
진짜 여행자가 되려면, 기꺼이 순간에 네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단다.
스스로를 네 세계의 중심으로부터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네가 뒤에 남기고 떠난 생활에 대한 믿음을 잃게되는 근원이 될지라도,
네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장소와 사람들의 생활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너는 그들과 함께 만나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식탁에 앉거라. 그들의 거리로 가거라.
그 나라 말을 알기 위해 노력하거라.
그들에게 네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라.
어떻게 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어떻게 서로 싸우는가를 지켜보거라.
그들이 무엇을 가치있게 보고 있으며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아라.
그들이 삶을 유지하는 공간을 몸으로 직접느껴 보거라.
그들의 일상생활의 구성에 한 부분이 되거라.
그러면 너는 그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감각을 얻게될 것이다.
그들에게 네 자신을 맡기거라.
그들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들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너는 그들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세계가 네 세계의 일부가 된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너는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삶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인식하게 될 것이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꿈,
그리고 삶 속에서 슬픔보다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희망찬 꿈들을 나누며 산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큼
로맨틱하고 흥미롭지만은 않단다.
친근한 사람들이 항상 머리속에 떠오르고
불안정한 감정이 너를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네 감정들은 때론 보금자리를 잃었다고 느낄 정도로 불안해질 것이다.
만약 네가 혼자 여행한다면 남겨두고 온
가족과 연인들의 따뜻함이 네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겪게 될 외로움은 네가 사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깊은 수렁으로너를 빠뜨린다.
그런데 여행에는 이보다 더 큰 위험성들이 존재한다.
너는 생활에 관계된 풀기 어려운 문제들과
복잡성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이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어떤 곳에서도 어떤 사람에게서도 더 이상의
아무런 관심의 대상도 된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도 있다.
너는 길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었노라고 후회하게 될 수도 있고,
자신이 한 장소에 너를 묶어둔 생활에
불만이 쌓인 사람일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판에 박힌 생활의 틀속에 꿈을 묻어버린 사람이 된다는 건,
그리고 더 이상 지평선 너머의 광경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않는
무감각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더 슬픈 일이냐?
나는 모험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외에 어떤 방법으로 고대시대에 서 있다는 느낌과
텅빈 공간 속에서 들리는 침묵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떤 방법으로 교육받지 못했고 결코 그 마을을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너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연구할 수 있으며,
너와 그 사람이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 지를 알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제각기 가치가 있고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가 각기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삶에서 큰 변화와 재난을 만났을 때,
살아가는 데에 수많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사실과
삶이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되리라는 것과
삶의 모든 단편들이 네가 뒤에 남겨두고 온 삶만큼이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달리 어떻게 이해할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교훈들, 그리고 더 많은 교훈들이
너의 인격에 새로운 요소를 불어넣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너는 두려움이 모험과 만나고
외로움이 흥분과 만나는 삶의 교차점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그것이 정지하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거의 달리는 듯한 느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너는 벼랑끝에 서게 될 것이고 거기서 건너 뛰게 될 것이다.
그로인해서 너는 다른 어떤 건너뜀이
삶의 기복 가운데서 네 앞에 놓이게 될 때,
'그래' 혹은 '아니야'라고 말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알게 될 거란다.
이러한 수 많은 교훈과 기억들이 항상 너에게 남게 되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의 위로자나 안내자로서 봉사할 것이다.
비록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있지만
북알래스카에 있는 꿈같은 평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나는 이탈리아의 대리석 석공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태양빛처럼 느껴지는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나는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자주빛으로 된
유모차를 끌고 있는 부인들이 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몬태나 사막 고지에서 9월의 어느날 밤에
땅으로부터 솟아 올라가는 불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는 여행을 했기 때문에
외부인의 눈에 비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단다.
여행을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판단하고 부정해야할 부분과
단순히 선택해야만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는 내 식탁의 축복과 내 침대의 따스함을 안다.
나는 삶의 많은 부분들이 완전한 기회라는 것을 안다.
단순히 현재의 나를 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선물이 주어졌는가를 안다.
내가 늙었을 때, 그래서 나의 몸이 서서히 나를 무너뜨리기시작할 때,
나의 기억들이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나를 들뜨게 하고, 나를 산과 바다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듯 그 기억들을 더듬을 거란다.
기억들은 나의 상상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나는 아마도 부유하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나는 너도 역시 그런 평화를 갖기를 원한다.
하루하루의 삶을 공허한 노력으로 보내는 사람과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 사람,
그런 식으로 아까운 나날을 허비하는 사람보다 더 슬픈 사람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만약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의 시각은 점점 더 우둔하게 되어 갈 것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세계는 보잘것 없이 작아질 것이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물들과의 만남속에서 발생하는
경이로움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들의 눈은 광활한 초원위에 펼쳐진 지평선을 보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귀는 자기 삶의 영역밖에 있는 주위의 소리들을 들을 수 없을 거란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되겠지.
그리고 그들은 일상의 나날을 보호하기 위하여
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네 스스로 이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되지 않도록 경계하거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편안함에 대한 유혹은
여행자만이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하도록 너를 방해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약 그 기회를 잡는다면,
너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을 가지거라.
차가운 비가 내리는 텅빈 거리에서 우산도 없이 홀로 서있을 때,
혹은 빌린 침대에서 간호해 주는 이 하나 없이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을 때,
의심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순간의 고통들은 빨리 온 것처럼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거란다.
결국 너는, 모든 모험과 어려움이 네가 이전에 획득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식이라고 여길 수 있는 훨씬 더성숙한 사람,
훨씬 더 강한 사람, 훨씬 더 현명한 사람,
훨씬 더 행복한 사람,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거란다.
나는 한 때 여행자의 축복이라는 글을 썼었다.
거기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포근한 신발들, 부드러운 베개 하나, 그리고 마른 옷가지들을 챙겨라."
그것이 전부다.
이 간단한 물건들에 친숙함을 가진 사람은 별들의 꿈을 꿀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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