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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4. / 켄트 너번

오늘의 쉼터 2011. 5. 8. 16:27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4. / 켄트 너번

 

 

 

8. 술과 마약

나는 혼자서 작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나의 맞은 편 테이블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눈거풀은 무거워 보였다.
그는 잠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몸을 흐느적거렸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가는 머리를 홱 들어올렸다.
그렇게 잠이 몰려오는데도 계속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착한 사람처럼 보였고 얼굴은 비교적 깔끔했다.
아마 고독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떤 개인적인 상처를 달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아마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는 알콜중독자일까....

술을 입에 대고 마실때, 그의 턱은 술에 가득 차 부풀어올랐다.
뺨은 긴장이 풀려 늘어졌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는 주인 여자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또 한 잔의 맥주를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지나치도록 감사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더 말을 꺼내기 전에 귀찮다는 듯이 재빨리 돌아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측은했던지.
비록 이 남자가 현재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 지는 몰라도,
고독이 수의를 입듯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고 술병으로부터 자신의 진실을 들여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나와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될 수도 있다.
너 역시 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단지 커다란 마수 중의 하나인 알콜의 덫에 걸린 사람일뿐이었다.
나는 술과 마약을 커다란 마수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 앞에서 자신들의 진실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기때문이란다.
우리가 자칫 마수에 걸려들 때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과장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결국 삶을 어둠으로 종결짓도록 만든다.

이런 지적이 가공의 허구처럼 들리고 과장된 경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너무 늦게
너무나 많은 교훈을 가져다 주는 분명한 진실이란다.
사실 네가 처음 마약을 사용하고 거기서 깨어나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게될 때,
혹은 약간의 술로부터 부드러운 온기가 자신을 감싸는 걸 발견할 때는
그것들이 숨기고 있는 문제들을 아직 의식할 수 없다.
아마 너의 첫 번째 반응은 이럴 것이다.

"이건 두려워할 게 못된다.
내가 올바르게만 사용한다면 오히려 필요한 약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과용이다.
나는 결코 과용하진 않는다.

그러나 술과 마약은 벗어나기 힘든 커다란 유혹이고 사기꾼이란다.
그것들은 너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지만,
그것들을 흡입하는 첫 번째 순간부터
그들은 네 몸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은
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의 논리를 가지게 된다.

서서히 그것들은 너를 소유하기 시작하고,
네가 자신들의 의지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면 그것들이 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너는 결코 그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술을 보렴. 약간의 술과 취기는 얼굴에 혈색이 돌게 한단다.
너의 의식과 무관하게 긴장이 풀린 네 혀가 속 마음을 말하기 시작한다.
세계는 영광스러운 것이 되고 서서히 열기가 올라온다.
너는 점차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술로 인해 그런 진실성과 정직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너는 결코 그것들이 널속이는 날이 될 때까지는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
알콜이 너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는 순간에 그것이 온다.
그리고 너는 그 명령에 따를 것이다.

아마 너는 운이 좋을 수도 있다.
아마 그것들이 너에게 단지 욕지거리나
혹은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게 하는 것으로서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무척 운이 나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커다란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너의 사랑이 너무 강력하고 현실적이라고 느껴
취중에 처음 만난 한 소녀를 임신시킬 수도 있다.
너는 보다 빨리, 혹은 주의하지 않고도
운전을 잘 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술기운의 부축임에 현혹되어
사고로 네 친구의 생명을 잃게 할런지도 모른다.

어느날 알콜 중독자들의 무리 속에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하면서
잠에서 깰 수도 있고, 매일매일을 술로 시작하거나 또는 
구할 수 있는 최후의 한 병까지 몽땅 마시고야  하루를 마감할 수도 있고,
단지 술이 있어야만 심신의 편안함을 느끼는 네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너는 결코 이런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의 한 가지는 반드시 찾아온다.
음주는 악마의 거래다.
너는 현재 특별한 어떤 것을 얻겠지만
그로 인해 네 미래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결코 그것이 지불되어야 할 때까지
지불해야 할 사실상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 지를 알 수없다.

마약은 술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인 유혹이다.
마약은 네가 그것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사실을 일부러 통제권을 너에게 줌으로써 너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화학적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너를 자신들의 끄나풀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그것들은 알콜보다 훨씬 반역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알콜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제공할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누가 코카인의 스릴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페이요티(환각제)와 메스칼린의 신비함,
메테드린(각성제)이 제공하는 세상의 지배자가 된듯한 느낌,
혹은 그런 마약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을 훨씬 넘어서도록
삶을 끌어올릴 듯이 보이는 환상적 경험의 많은 것들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도 젊었을 때, 한 때는 마약에 빠져 있었고,
그것들이 내 삶을 단조로운 흑백에서
다양한 색상의 칼라풀한 삶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마약이 나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통찰력을 주었다고 느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그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어떤 삶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그 첫 경험이, 나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있는 듯이 만들었고,
주저감이 없어졌다고 느끼게 하였고,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졌고
마음 속에는 환희와 즐거움이 가득 찼었다.

그런데 서서히 그 모든 것이 반전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언어 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빨리 회전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도 알 수 없는 고통을 느꼈고, 알 수없는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그 자유의 시간이 서서히 죽음의 시간으로 바뀌어갔다.
이것들조차 나는 마약으로 치유하려 했는데,
왜냐하면 마약이 없이는 현실이 지겹고
삶이 헛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약을 두려운 존재로 봄으로써
사용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생활은 몹시 따분해 보였다.
그들은 내가 맛보았던 만큼의 환희를 느낄 수없으므로
그들에게 즐거움의 세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단지 마약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공유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윽고 내가 거주하던 곳에서 한 친구가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친구는 피를 토하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또 한명을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을 완전히 상실했다.
마약에 대한 대가로써 지불된 것이었다.
지금 그는 부모의 집에 돌아가 발작과 무
서운 환상에 사로잡힌 채 아직까지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단다.

확실히, 건강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약간의 마약을 계속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분명히 오염되었다.
마약은 그 무엇을 우리에게 주었던 것처럼 그 무엇을 우리로부터 앗아갔다.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우리로부터 빼앗아간
그만한 대가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교훈은 분명 다른 방법으로 얻어졌어야만 했는데....
이 교훈을 네 가슴에 와 닿도록 하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세상은 번지르한 슬로건들로 가득 차 있다.

"단지, 아니오라고 말하라."
이런 슬로건은 간단하고, 위협적이고, 절제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약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네게 멈출 것을 경고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다.

술과 마약은 그것 자체로서 어둠이거나 지옥같은 공포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둠과 지옥같은 공포의 씨앗을 실어 나르고,
네 기억력 속에서, 마음 속에서,
그리고 너의 모든 생리적 작용 속에서 그 씨앗을 경작한다.
비록 그것들이 매우 온화하게 보이더라도,
그것들로 인해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지게 될지라도,
그것들이 너에게 부여한 만큼 너는 다른 것들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은 악마와의 계약이며
- 아직 호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교환 조건으로 한다 -
그리고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곧장 네게로 와서 계약서를 내밀 것이다.

네가 도대체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지 아직은 알 수없기 때문에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이 더더욱 두려운 거란다.
나와 몇몇 사람이 아직 건강하다는 사실이,
우리가 지불해야만 할 대가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런 대가의 지불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진다 해도,
너도 역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네가 그들과 계약을 맺게 되면,
너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위험에 처하게 될것이고,
현재의 환희를 위해 미래를 파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또 다른"진실을 말함으로써 이것을 알려주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 마약은 신성한 것일 수도 있다.
마약은 어떤 때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마약은 진실로 통하는 또 다른 창문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술이 문화적이고 신사적인 방식으로
마셔지는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거나,
혹은 종교에 있어서 정신적 자유의 보다 광범위한 제식의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엔 항상 계약이 뒤따른다.
비록 그것이 말해지지 않았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가 너에게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구나.
과거에 내가 봄이 땅속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바람과 나무가 아름다운 교향악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게 될 때는
항상 페이요티를 맞고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름답게 변모될 수 있을 것 같이 느끼는 순간은
마약의 환희에 빠져서 사랑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나 이런 느낌의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고 단지 씁쓸한 그림자만이 남게 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시도해 봐도 마약이 없이는
나는 진실로 그 순간의 느낌으로 되돌아갈 수가없다.
비록 그 순간들이 내 머리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마음과 기억만으로 알래스카의
부룩크 산맥위의 얼어붙은 땅에 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페이요티를 맞은 그날 밤의 통찰과 진실의 순간,
그리고 땅 아래로부터 봄이 노래하던 광경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다.
마약에 의해 야기되는 그 진실을 마약이 없이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엔 우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마약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까지 포함해서)이 주는
아름다움과 황홀감 때문에 너와 함께 할 단 5분의 시간을 바꾸지 않겠다.
나는 술, 마리화나, 코카인, 페이요티 혹은 LSD가 주는
스릴과 행복감으로 가득 찬 그 시간을 위해
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사랑의 순간들을 교환하지 않으련다.
마약들은 그것들 만의 고유한 유혹과 진실을 갖지만
정신의 강인함에는 결코 당해내지 못한단다.
그리고 바로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진실이 놓여 있는 장소란다.
나는 아직도 마약을 이용해서 진실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지만,
그런 용기는 단지 현실을 부인하려는 병약함에 토대한 용기일 뿐이다.
새로운 경험을 위한 허기와 더 깊고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갈망이
마약의 복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지 세상이 자신에게
고통스럽고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포자기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삶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되며,
인생의 실패인 것이다.

일식을 보거라.
세상은 어두워지고, 새들은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 잠이 든다.
네가 사랑하는 여자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아라.
바람에 노출된 산길에 서서 영원의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
그것이면 충분하다.

술과 마약이 이런 느낌을 더 크게 하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이러한 느낌에서 삶을 더 멀어지게 만들뿐이고
더 큰 몽상에 사로잡히게 할뿐이다.
그것들은 너에게 순간의 쾌락을 주지만
너로부터 네 기억에서 다른 것들을 빼앗아간다.
그것들은 뿌리를 가질 수 없고, 네 정신은 확장시킬 수도 없다.
마수의 손길에 유혹 당하지 말거라.
그것들이 제시하는 온갖 거짓된 약속에 현혹되지 말아라.
건강은 네게 주어진 것이다.
기억의 상쾌함과 신체의 건강함은 너의 것이다.
만약 네가 술과 마약을 선택한다면,
너는 이름없는 어둠의 문뒤에 서게 될 것이다.
나나 너보다도 훨씬 나은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는
그 마수의 손길에 너는 결코 다가가지 말거라.

 

 

9. 재난과 고통

재난과 고통이 언젠가는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너는 그것들로부터 네 자신을 완전히 격리시킬 수는 없단다.
너는 그것들을 회피할 수도 없다.
그것들은,그것들 자신의 계절에 찾아오고 그것들 자신의 시간에 닥쳐온다.
재난과 고통이 너에게 찾아올 때,
그것들은 순식간에 너를 덮치고 꼼짝 못하게 만들것이다.
너는 마치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처럼 그 시간을 느낄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의 보통 인간일 뿐이라면,
네가 지금 경험하는 고통의 크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만약 네가 다른 종류의 특별한 사람이라면,
너의 고통이 스스로 하찮다고 느낄만큼,
다른 사람의 커다란 고통에 비해
매우 작고 보잘것 없는 고통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 양극단 모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성냥불에 그을린 사람이 불에 탄 사람보다
결코 더 작은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니다.
너의 아픔과 고통은 그것들이 네가 직접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축복하고,
그것들이 너의 삶에 어떤 선물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삶의 바깥에서
또 다른 너의 삶을 갖도록 만들고,
한순간이나마, 너로 하여금 손실과 아픔과고통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란다.
그 커다란 교훈은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계 내에 있을 때보다는
큰 사건의 발생에 의해서 훨씬 더 많이 찾아온다.

모든 일이 잘 풀릴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범위는 작아지고,
삶은 우리가 매일 필수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적인 일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범위에 의해 통제된다.
대화를 나누는 것, 원고를 끝마치는 것, 자동차에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것,
어제 나에게 웃어준 소녀가 나를 좋아하는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삶의 모습과 관계된 수준의 삶이란다.

재난과 고통은 원하지 않았을 때, 예견치 않았을 때,
준비하지 않았을 때, 우리를 급작스럽게 덮쳐온다.
그것들은 우리의 허약한 방어선을 덮치고
평화스러운 우리의 세계를 무참히 부순다.
그때에 우리는 사방이 가로막혀
탈출할 길이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비명 속에서 살아간다
(비명은 단지 메아리만 남는다).
이러한 근심들과 그렇게도 소중한 내일이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근심들이 우리의 일상적 생활을
하루하루 연민으로 흘려보내게 만든다.

우리가 마침내 자신을 되찾을 때,
그 결과로써 우리는 그때까지 가졌던 생각들을 하나둘 변화시킨다.
우리는 혼란의 나락으로 떨어졌었고,
과거의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삶을 보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익숙해짐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을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갖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로인해 삶은 더욱 불편하게 변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다시 과거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중요하게 보이는 보다 큰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고,
그리고 그것은 보다 이상적인 삶으로 전환하기 위한
지식을 쌓는 것으로 재난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때의 재난은 삶의 새로운 출발을 생각할 기회로서 주어진다.
우리가 어떻게 재난과 고통에 응답하는가는 우리가 가진 강인함의 척도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침대에 묶인채
심하게 매를 맞으며 자랐던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독방에서 혼자 산다
(그의 구두는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고
모든 물건들은 항상 정해진위치에 정확하게 놓여있다).
그는 그의 질서에 대한 감각 이외에는 다른 친구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아이처럼 그의 주위를 선회하는
무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는 또한 어린시절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보냈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치에게
총살당하는 현장을 직접 보았던 또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고
그 자신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충분히 고통을 당했어요.
이제는 행복을 주장하고 누릴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또한 열여덟 살에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의 지저분한 호텔방에서
눈이 가리워지고 피를 흘리며 옷이 벗겨진 채
부엌의 테이블 위에서 낙태한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는 그 후에 자신의 삶을 암환자를 돕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것보다도 큰 고통의 무게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
그들은 각기 깊고 커다란 고통, 나나 너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가지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고통에 대응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구두와 함께 하는 나의 친구
혹은 돈과 함께 하는 친구처럼,그들의 재난과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미래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뼈아픈 고통을 당해야만 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상처는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런 고통에
또다시 접근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어떠한 일도 영원히 거절할 만큼 그렇게클 것이다.

그러나 암환자를 돕는 나의 친구는 무엇인가?
그녀는 그녀가 당했던 고통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축복했고,
그리고 그것이 아픔과 괴로움을 알고있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녀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의 내부에서 죽음을 느꼈었기 때문에
삶의 내부에서 죽음을 느끼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그녀 스스로를 공유할 것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성장의 순간으로써 이러한 순간들을 볼 필요가 있다.
미래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커다란 기회를 놓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영역 밖에서 성장하는 것을 위해
그들의 고통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보다 큰 것을 승인하는 기회와 자신의 경험을 인류와 공유하는 기회를 놓친다.

아마도 너의 아픔은 여자 친구의 상실, 또는 애완동물의 죽음등일게다.
아마도 더 큰 재난은 양친의 죽음이나 사고로 불구자가 되거나
결코 회복될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하는 것일 게다.
그 고통이 무엇이든,그것은 너의 척도,
그리고 너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물로써 바라볼 필요가 있단다.
명심하거라, 비록 상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크게 보이고
처음에는 매우 비탄스러울지라도, 시간이라는 위안과 함께
그것은 차츰차츰 기억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간이라는 존재는 놀랍도록 탄력성이 있는 조직이다.
인간의 신체는 병이 아니라 건강을 향해 움직인다.
너의 정신력도 너의 신체와 같이 건강해지려는 시도를 할것이다.

네가 스스로에게 반드시 대답해야만 할 질문은
네가 건강할 수 있다면이 아니라 어떻게 건강할 것인가 이다.
비탄과 고통은 그것들 자체의 지속기간을 갖지만,
그것들이 지나기 시작할 때, 너는 반드시 네가 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의 형태를 안내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통스러운 재난들은 혼란으로 우리의 삶을 감퇴시킬 것이지만,
역으로 우리에게 그때까지 무시되어 왔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감각을 재건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재난과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것에서 너의 가장 위대한 창조성이 나올 수 있다.
아무도 그것들을 애써 찾지는 않지만,아무도 재난과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사랑처럼, 그러한 재난과 고통들은
너를 더욱 더 많이 인간 가족의 한 부분이 되게 할 것이다.
현실의 고통으로써 그것들을 경험하지만,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하거라.
그것들은 너의 낡은 껍질을 태우는 신성한 불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