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5. / 켄트 너번

오늘의 쉼터 2011. 5. 8. 16:32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5. / 켄트 너번

 

 

10. 싸움

나는 한때 싸우기를 좋아하는 개를 길렀었다.
그 개는 자기에게 달려들건말건 다른 개를 공격하곤 했다.
나는 욕설과 비난을 퍼부으며 상대방 개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애쓰곤 했지만,
그 개는 나를 뿌리칠 정도로 힘이 강했다.
마침내 싸움이 끝나며, 나는 그 개를 앉혀놓고 노려본다.
싸움에 이기든 지든 그 개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비뚤어진 이빨 사이로 화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 개는 싸움을 한바탕 하고나면 다시 혈기가 돌았고
눈은 거의 행복으로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 개는 심지어 물어뜯기고 할켜진 심한 상처를 입기까지 하면서도
평화롭던 자신을 그렇게 깊고 어두운 싸움에 얽매이게 만든다.

인간도 역시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싸우는 존재란다.
싸움은 상처와 손실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지극히 원시적인 종류의 도취감을 유발시킨다.
싸우고 있을 때 우리의 모든 감각은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인류의 가장깊은 부분에서 발생하는
어떤 본능적인 부분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싸우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그들은 싸울 때보다 더 풍부한 인간본성을 결코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상처를 입든 말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포와 분노의 혼합을 좋아하고
싸움을 남자다움의 고결한 시험대로서 바라본다.

너도 아마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게다. 확
실히 너는 그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보다 폭넓은 삶의 전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목적성이 결여된 채,
싸움이 주는 육체적 자극만을 축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싸움이 남자다움을 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하고,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오히려 멸시하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너는 반드시 그런 종류의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시각에서 드러나는
남자다움의 척도를 네게 확신시키고 너와 동지가 되려고 할 것이다.
만약 네가 그 요청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너의 감정을 자극하고 계집애라고 조롱하며 들쑤시고 덤벼들 것이다.
그들은 네 자존심과 가족을 마구 모욕할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든 자기들의 싸움의 장소로 너를 유인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 부릴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은 상대할 적이없다면
그들 사이의 동질성이 결코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너의 대항을 필요로 하는 것이란다.

너는 그런 사람들에게 동조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너의 남자다움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너는 싸움보다 도망을 선택하면 자기들 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단지 공포를 느꼈다고 해서 그들보다 못한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역시 공포를 느끼는 족속들이다.
그들은 신사다움을 나타내는 능력이나
약한 사람을 친절하게 돌보는 능력과 같이,
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싸움에 의해 발생하는
공포를 극복하는 능력으로써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가령 네가 그들과 싸워서 이겼다고 치자.
그러면 너는 싸우기 전보다 더 나은 남자가 되느냐? 물론 아니다.
네가 남자답다는 말의 의미를 상대보다 더 커다란 폭력으로
가해를 입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래서 상대방과 싸울 것을 선택하지 않거나 승리할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며,
너는 못난 남자가 된다는 말인가? 역시 아니다.
너는 그들의 생각이 네 삶의 방식을 규정하도록 허락해선 결코 안된다.
너는 그들이 결코 정복자가 아니며,
그런 사람이 남자를 대표하는 선상에 서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반드시 선이라는 더 높은 인간적 가치로서
남자다움을 평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공포는 약한 것이고 정복자는 강하다는
생각을 올바르게 식별할 줄알아야 한다.
그런 생각들은 네 마음의 내부로부터 싸워내야만 하는 치열한 전생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육체적 대치를 통해선 결코 해결될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싸워야만 할 때가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불합리한 폭력과 주위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방법으로 싸움을 바라보는 형편없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시점에서 그들 중 하나는 반드시 너와 대면하게 될 것이고,
너로 하여금 싸움을 피하지 못하게끔 만들 것이다.
그들은 아마 네가 몸집이 크거나 작기 때문에,
혹은 네가 싸움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자기들의 분노와 비열함,
혹은 불만을 드러내며 싸우길 원하거나 아니면
간단히 네가 우연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싸우길 원할 것이다.

그들은 네가 달아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이성적인 대화로는 도저히 그들을 설득할 수없을 것이다.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행동해야만 할까?
나는, 그런 사람은 병이든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 정신의 타락이라는 병,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가장 밑바닥 수준으로 끌어내려
퇴락시키고, 선과 돌봄을 향한 우리의 추진력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와 싸우길 원하는 때는
세상에 몹쓸 병을 퍼트리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라.
그것을 멈추는 것이 네 책임인 것이다.

만약 네가 싸우지 않고도 그 병을 멈출 수있다면,
네가 그병을 중화시킬수 있고, 사랑으로, 이성과 논리로,
혹은 연민으로 그 사람을 건강하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네가그 병을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정신적 육체적 손상을
입거나 입히는 일 없이 싸움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거라.
그러나 만약 그런 사람이 네게 혹은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어린 아이나 노인들처럼 도와줄 사람이 없는연
약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고 위협하거나 하면, 그땐 기꺼이 싸워야만 한다.
만약 싸우지 않는다면, 너는 병이 퍼지는 것을 사실상 허락하는 것인데,
이는 싸우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상처를 입도록 그대로 방관했기 때문이다.
네가 싸워야 할 때는 결코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말고 싸워야 한다.
반드시 병을 치료하는 내과 의사의 냉정함을 유지하며 싸움에 임해야 한다.
의사는 병을 미워하지만 그것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의사는 냉정하고 불필요한 악의없이
최선의 판단을 이용해서 병을 치료할 줄 안다.

너는 내과의사처럼 단호하고 분명해야 한다.
반드시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함을 유지하고,
싸움의 승부를 결정짓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해야 한다.
승리나 패배에 연연해하지 말아라.
너는 싸운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패한 거란다.
싸움의 순간까지도 싸움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냉정하게 살피고,그렇게 하거라.

만약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너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싸움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네 싸움이 다른 사람이 당하는 손상에 대항한 싸움일 때에만
너는 싸울 수 있고,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싸움이 닥치면 항상 해결의 실마리를 먼저 찾아야 하고,
그렇다고 병의 확대를 방관해선 안된다.

명심하거라.
비록 싸움에는 수많은 선량한 이유가 있을 수있지만,
이미 선한 싸움이란 없는 법이다.
어떤 이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해를끼친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해를 입을 때, 우리 모두가 해를 입는 것이다.
네 열정과 공포를 극복하고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라.
그러나 싸움이 너를 발견할 때는,
결코 그것을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거라.
정신과 육체, 모든 측면에서 싸움을 피하거나 벗어나는 방법을 선택하거라.

노자의 말처럼 행동하거라.
"최고의 싸움꾼은 화를 내지 않는다.
최고의 정복자는 원한을 만들지 않는다.
만약 네가 싸워야만 한다면 이와같은 방법으로 하거라.
결코 두 얼굴을 가진 개가 되지는 말거라.

 

 

11. 전쟁

나는 우리나라가 전쟁터로 너를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전쟁의 발발은 세계가 균형과 조화를 잃었다는 것과
극단주의가 이 땅에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다양화된 이 세계에서는
전쟁이 너를 부르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건 결코 손쉬운 선택이 아니다.

사회는 우리곁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매우 좋은 것이다.
우리는 사회의 은혜를 입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그것의 요구에 따른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공공정책을 결정할 대표를 선출하고,
그렇게 선출된 사람은 일반적으로 신중하고
나나 너보다도 더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지도자들이 싸워야만 한다는 의사를 결정할 때,
그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항상 논리적인 이유가 뒤따른다.
그들은 아마 우리 사회의 존립에 대한 위협이
외부로부터 차츰차츰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아마 우리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믿는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 우리 삶의 필수적인 방식들을 보존하기 위해
전쟁이 꼭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너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의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하는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너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의 핵심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네가 죽는다면 아버지를 잃게 되는 너의 자식들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나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정부는 네가 그런 결정을 하길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네가 "단순히" 전쟁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러한 결정이 옳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들은 네가 단지 지고한 평화주의자일때만 그것을 허락할 것이다.
평화주의자에게는 어떠한 이유이건 싸움의 정당성은 없다.
비록 너의 가족이 위협당하고 있더라도.

그러나, 만약 네가 지고한 평화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전쟁을 회피한다면 -
너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싸우고,
예컨대 어떤 자원의 풍부한 공급에 대한 국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싸우지 않는다면, 정부는 이것을 설득력이 없는 자세라고 간주할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넓은 의미에서 자원의 위협은
너의 삶의 방편을 위협하는 것이고 결국은 너의 가족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때에 전쟁터에 네가 부름을 받으면 나가 싸워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소집을 거절한다면,
너는 국외로 추방당하거나 기피자로서 투옥될 것이다.
네 나라가 너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싸울 것을 요청할 때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종국에 살인은 죄악이라고 믿고,
어떤 일이 있어도 관여해선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사회의 일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지도자들이 보다 현명한 판단으로 어쩔 수없이
싸울 것을 결정했을 때는 그들의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두사람 사이에는 그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길 원하는 사람들에 의한
광범위한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그리고 전술적 찬반론이 있다.
선량한 마음을가진 사람들은 어느 길이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앞서 말했던 너의 개인적 삶에서의 싸움을 다루듯
전쟁을 다룰 것을 너에게 충고한다.
우리의 혹성에 병든 곳이 어딘가를 보아라.
그것이 우리에게 싸울 것을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적에게 있는가?
그것이 우리 나라의 정책과 생활양식에 있는가?
그것이 두 나라 모두, 가령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커질 수 있는 길이라고 전쟁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고 방식에 있는가?
이와 같이 병과 관련하여 네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전쟁에 관련하여 네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행동하거나 쉽게 판단하지는 말거라.
높은 가치를 갖는 길을 평가하는 것과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시작하는 것은,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전쟁은 항상 인간이 살아온 역사의 한 부분이었고,
폭력은 아직도 인간적 특징의 커다란 부분이다.
폭력의 회오리가 그 분을 휩쓸 동안,
그것은 평화주의의 높은 도덕적 원리에 대한
여러가지 합당한 주장들에 싱겁게 승리해 버린다.

아직도 우리 본성의 보다 나은 부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심지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이 종국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선은 결코 형제끼리 대항해 군대를 일으키는
형제로부터는 오지 않는다고 믿고,
그들이일으킨 폭력의 회오리가 우리를 덮치도록 그냥 놔둔다.
이 사람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봄으로써,
짧은 시각에서 선택한 우리의 결정이 잘못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기꺼이 희생하고, 심지어 지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고자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기꺼이 희생한다.

만약 네가 사람들에게 그러한 전망을 갖고 있다고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너의 선택은 명확하다.
너는 평화주의자이고 그것이 죽음의 위협과
짧은 시각에서 선택한 선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 사회의 더 높은 질서를 주장할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가디, 테레사 수녀등 -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위치를 너의 삶에 맞이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거라.
나는 그건 삶을 살 것이고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나의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렇게 행동할 것인가?
그러한 나의 원칙은 깊이가 있는 것인가?
만약 다른 한편에서 네가 너의 나라에 의해 공포된 어떤 전쟁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싸워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면
너는 평화주의보다 더 높은 명령을 따를 수 있고,
나라가 요청할 때 언제든 싸울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은 그렇게 한다.
심지어 고독한 전쟁터에서 이름없는 묘지로
그들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거라.
나는 나의 나라가 값싼 석유를 얻을 수있고
여러가지 다른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면
아버지를 잃게 될 나의 아이들을 버리고 기꺼이 죽을 수 있는가?
내 나라의 안녕에 대한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수용은 과연 얼마나 강한가?
나는 기꺼이 전쟁에 열광한 나라의 의지를 따를것인가
심지어 복수 이외의 다른 동기가 전혀 없을 때에도?
나는 나의 정부가 주장하는 추상적인 원칙을 진척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기꺼이 죽일 수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그 전쟁이 단지 전쟁일 뿐이라면, 너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나는 너에게 몇가지 가능한 조언을 하려한다.

선과 악에 대해 논의하며 둘러앉아 있는
학생들에 대한 중국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들이 이야기할 때 한 늙은 남자가 그 곁을 지나갔다.
"우리 저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도록 하자."
그들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멈춰 세우고
선과 악을 어떻게 구분할 수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 노인은 잠시 생각한 후에 절벽을 가리켰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 절벽 아래로 아이를 던지려 한다면,"
그는 말했다. "너희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세상의 복잡한 환경에서도
이 간단한 법칙은 꼭 필요한 것이다.
사회나 정부가 아이들을 죽일 때, 너는 그게 잘못이란 사실을 안다.
만약 아이들을 어떤 추상적인 목적을 얻기 위해
죽이고 있는 쪽이 우리의 정부라면
그때 우리의 정부는 잘못이고 그 정책에 반대해야 마땅하다.
만약 다른 정부가 아이들을 죽이고 있고 우리의 정부가
전쟁으로 그것을 멈추는 일을 시도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그때 너는 그 전쟁이 정당한 것임을 느낄 것이다.

이와 다른 전쟁들은 많게든 적게든 불합리한 전제에 토대한다.
전쟁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시스템을 넘어서는
논의를 해결하기 위해 벌어지는 것은,
과시하기 위한 아이들의 싸움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전쟁이 나라와 자원과 같은 소유의 지배를 넘어서는 싸움이라면
비참과 공포를 결과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전쟁이 억압의 종식이나 빈곤의 완화를 넘어서
상대국의 멸망이나 재산의 파괴를 위한 싸움일 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쉽게, 그리고 눈에 띄게 잘못된 전쟁임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 잘못도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며,
비록 특정한 전쟁의 추상적 목적이
아무리 고귀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런 전쟁에 대항해서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을 되돌려야 한다.
싸움이라는 것이 순수한 아이들을 죽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너의 손에 그 아이들의 삶이 달려 있다.
너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희생시켜야만 할 것인가?
만약 그 목적이 수백 수천의 사람을 죽이는 미치광이를 제거하는 것이라면
너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미치광이는 자주 우리를 놀라게 만들고,
그들의 백성을 폭력과 기근으로 말살한다.
때때로 미치광이는 우리 모두를 위협한다.
때로는 온전한 민족이 한 명의 미치광이 때문에 폭력의 광란에 젖어 들고,
지구의 한 부분을 삼키기 위해 평화를 위협하는 큰 불길을 일으킨다.
아마도 그런 경우에 너는 약간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주의깊게 보아라.
너의 정부가 그 전쟁의 위상을 올바르게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너의 정부가 너를 위협할 것이고 회유하고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따라 너를 전쟁에 소집하고자 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메세지와 이미지를 제시할 것이다.
진실은 시체들이 땅위에 즐비해지기 전까지 오래도록 감춰지고 희생될 것이다.
이것이 일어날 때, 너는 반드시 너의 진실한 마음을 찾아야만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현명한 상담자를 찾아야 하고,
가장 현명한 상담은 항상 모든 관점의 논의를
가장 주의깊게 듣는 것에서 발견된다.

만약 그것이 싸울 것을 명한다면 명예롭게 싸우거라.
만약  저항할 것을 명한다면 용감하게 저항하거라.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네겐 가혹한 결과가 닥칠 것이며
전쟁 때문이든 정부 때문이든 심지어 모두가 전쟁에 미쳐 있을지도 모른다.
책임의 일반성을 요청하는 것은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커다란 짐이다.
너는 단지 마음의 중심으로만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중심으로 견고히 설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해 존중할 수 있을 뿐이다.
싸움이 끝났을 때 그것의 비극은 끝날 것이고,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되고 그것에 뒤따르는 일반성으로
세계를 관통하는 책임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꼭 기억하거라. 모든 전쟁을 종결하는 전쟁은 없다는 것을!
전쟁은 항상 가장 비천한 방법이며, 항상 죽음을 이끄는 방법이다.
단지 인류의 가장 큰 재난이 이땅에 닥쳤을 때에만 전쟁이 가능하고,
너를 부르는 것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악이 아이들의 죽음을 기꺼이볼 수 있을 만큼 커졌을 때,
너는 기꺼이 싸울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는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