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오늘의 쉼터 2011. 5. 8. 15:59

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서  문

이것은 내가 쓰려고 의도했던 책은 아니다.
세상에는 도덕적 가르침과 개인적 통찰을 담은 수많은 글들로 가득 차있다.
이책에서 나는, 도덕적 가르침과 개인적 통찰로
더 나은 삶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명단에다
내 이름을 또 다시 덧붙이는 위험을 무릅쓰려고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삶의 도정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내 아들의 탄생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삶의 경로에서 부딪치고 싸워왔던 문제들과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들이 갑자기 내 아이의 눈앞에 그대로 되살아났다.
나는 전부터 내 자신이,
그 아이가 발견할 수 있는 만큼의 지혜로 삶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짊어져야 할 임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것이 손쉬운 시기이다.
그 아이의 삶이 아직까지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있는
한계라는 영역 이상으로 넓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고, 또한 그 아이를올 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홀로 서게 될 것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하고
온전히 자신의 가족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생기게 될 그때가 오면
그 아이는 과연 어디에서 자신의 안내자를 발견하게 될까?

주위를 둘러보면 우선 걱정부터 앞선다.
세상은 온통 모순된 전망과 관점,
그리고 끊이지 않은 논쟁의 불협화음으로 얼룩져있다.
위대한 시인 예이츠가 경고했던 불길한 경고,
즉 "최고의 악이 격렬한 여세로 세상을 뒤덮는 동안에도
최고의 선은 모든 신념에서 결여되어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쉽게 간과하여 흘려들은 것만 같다.

선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우리가 만들었던 세상이
곧 우리가 실패한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찬란한 꿈과 우리의 커다란 근심이 뒤섞여
하나의 지평에서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서서, 세상에서 우리의 희망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은
무엇이고 의심으로 묵살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있게 깨달아야 한다.

나는 우리의 의심으로 인해 세상의 진실이 묵살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내 아들이 열린 마음과 고상한 태도로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상과 기쁘게 접촉할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내 아들이 단지 사려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되길 원한다.
나는 내 아들이 자신의 양심적인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자기 성찰의 방법을 항상 계발함으로써, 의식적으로는 물론
무의식적으로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아들은 남자가 되는 문제에 대한
감정적이고 온정적이며 현실적인 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목소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대단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언어에 대한 사랑, 인류의 더 높은 전망에 대한 확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놀라움과 실망에 따른 난해한 고민들,
배움의 나날들, 수 많은 마을과 거리의 여행들,
모든 종교적인 전통의 지혜들에 대한 사랑,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모든 삶의 경험이 드러내는 무진장한 경이로움에 대한 믿음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을 떠올린다.

어느 주말에 예전에 나의 학생이었던 아이 한 명이
도로가 차단되는 곳에서 차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고,
결국 호수 아래의 절벽을 향해 자신을 자동차와 함께 날렸다.
같은 날 나는 한 남자가 인도를 여행하며,
머리에 양손을 얹고 눈을 주시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여인에 대해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저녁에는 구멍가게의 벤치에서 낚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술취한 늙은 남자와 나는 밤늦도록 함께 앉아 있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진실을 시간과 장소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내려진 크나 큰 축복이었다.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 각각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고,
그들 각각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삶에서 겪는 그러한 경험들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서른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며 혼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이웃집 할머니,
종교서적을 들고 문앞에 서서 진리의 전파에 열중하고 있는 훤칠한 키의 젊은이,
마음씨 좋은 선생님, 정직한 전도사, 마약 중독자,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 와이셔츠의 맨 윗단추를 채우는 부자유스러운 직업을 갖지 말고
그가 살아온 지난 날처럼 방황으로 나의 삶을 망치지 말라고 충고하는 공원의 부랑자 -
나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진실들을 귀담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 간단한 진실들을 이해하고
삶에서 자주 부딪히는 하찮은 일화 이상으로 그것들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나는 내 아들과 다른 아버지의 아들들에게
진정으로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순된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살리는 두 가지 일 모두에서
성년에 관한 희망있는 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꿈꾸는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에 대한 증류된 시각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아마 나는 과거에 우리 앞에 놓였던
광대하고 혼란스러웠던 관점들을 비판적으로 조사함으로써
삶의 올바른 입지를 찾으려는 모든 남녀 독자들에게
성년에 대하여 그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아버지의 바램

나는 아버지로서 이 책을 쓴다.
단지 네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네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기 이전까지
너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게다.
너는 일상의 즐거움을 넘어선 아버지의 즐거움,
자기의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공명하는 느낌을 초월하는 사랑에 대해 지금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단다.
현재의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자,
그리고 자기 아들의 손에 선함과 희망을 쥐어 주고자
간절히 소망하는 아버지의 영광을 너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하는가에 따라
자기의 모습을 그와 같이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종종 발생하게 되는 아버지들의 커다란 슬픔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단지 항상 네 앞에 있었던 사람,
혹은 너의 삶에서 이미 떠난 사람,
선의로든 악의로든 너보다는 힘이 훨씬 강했던 사람으로서만 볼 수 있다.
네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에서 결코 벗어날수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개인에게 내려지는 커다란 특권이고 동시에 커다란 짐이란다.
그곳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여러가지 삶의 교훈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결코 몇마디 말로써 명확하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꼭 전해야만 하는 그것은,
우리들 주위 세계에 대한 성인으로서의 감각, 자신의 가치, 책임감 등이란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말로써 다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마음속에 간직한 말을 쉽게 털어 놓기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수 많은 아주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삶을 숨막히게 하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일상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우리의 자유로운 시심을 침묵하게 만든다.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노래, 우리가 함께 부르길 원하는 노래,
사람이 되기 위한 노래, 바로 그것이 침묵한단다.
우리는 신념이라곤 전혀 들어있지 않은
말뿐인 충고로만 가득 찬 우리 자신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뿐인 충고를 또 한 번 반복하지 않기 위해
너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자 한다.
나 역시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드러난 문제만큼은 이해하고 있단다.
네가 삶의 보다 나은 상태를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싶구나.
그리고 나는 너의 눈과 너의 시대에 반영된 나 자신을 보고자 한다.
나는 깊이 있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그곳에서 너와 함께 고민하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의 너처럼 걸음마를 배웠고, 달리기와 넘어지는 법을 배워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을 온통 태워버린 첫사랑도 해 보았다.
또한 두려움, 분노, 슬픔이 어떤 것인지도 역시 알고 있다.
내 마음은 한 때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었고,
신의 손이 내 어깨에 놓여 있다는 걸느끼며 안도하기도 했었다.
나는 삶이 빚어내는 슬픔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을 모두 흘려왔다.
내겐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절망의 시기가 있었고,
춤추고 노래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과 포옹하기를 원했던 희망의 시기도 있었다.
우주의 신비 속에서 작은 점조차도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공허하다고 느꼈던 적과,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경멸을 받고는 크게 분노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나 자신이 걸을 힘이 거의 없을 때조차
다리가 불편한 다른 사람을 도왔던 적이 있는가 하면,
길가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사람을 못본 체하며 그냥 지나치기도 했었다.
어떤 때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느꼈고,
또 어떤 때는 말만 앞세우는 허풍장이 실패자일 뿐이라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 나자신을 채찍질 하기도 했고,
매몰찬 범죄의 수렁에 자신을 빠뜨리기도 했다.
요컨대 나 역시 너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나의 인간이란다.
비록 네가 너의 땅을 걷고 너의 시대를 통해 움직인다 하더라도
나의 시대에 떴던 태양이 똑같이 너의 시대에도 뜰 것이고,
나를 스쳐 지나갔던 계절이 똑같이 너를 스쳐서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항상 다른 시대를 호흡하며 존재하지만
항상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동일한 존재란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책에서 내가 너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요점이다.
그것은 나의 삶에서 배운 교훈을 네가 살아가는
삶의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아버지의 미천한 노력이란다.
그 노력은 아버지의 정신적 영역 내에 한정된 아들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네가 네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 것을 지켜 보는 게 이아버지의 가장 큰 임무다.
그러나 어찌됐든 시간은 이 모든 작업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것이고,
그 진실이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만약 네가 살아가는 시대를 항상 네곁에 머무르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직접 들려 줄 수만 있다면,
그러면 너의 인생은 한결 잘 풀릴 수 있을 텐데.....

너의 아버지가 된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영광이란다.
그것은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순간 순간의 신비들과의 접촉이며,
나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사랑을 더욱 신선하게 만드는 걸 허락한다.

만약 아버지로서 꼭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그건 이 책이 너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거란다.
결국에 삶에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에.    


1 아버지의 그림자

내가 성년에 대한 생각들을 형성하고자 시도할 때는
항상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눈 앞에 유령처럼 떠오른다.
나는 지금 그분의 모습 -
그분의 외모,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들을 거의 잃어버린 모습,
시간을 죽이기 위해 텔레비젼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시며
한가하게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 -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분의 현재 모습을 보고 있지만
내 머리에서는 과거 그분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온 몸이 흥건하도록 많은 땀을 흘리시며 밤늦게까지
풀을 뽑거나 갈퀴질, 혹은 페인트 칠을 하시던 그분의 뒷모습.
상자마다 가지런히 붙어 있던 목록표들과 각종 도구들을 걸어두는 걸이 못이 박힌,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던 지하실의 작업대.
그분이 화내던 모습과 이성문제에 대해 머뭇거리며 내게 무언가를 말씀하시려 하던 시도들.
그분이 보여준 침묵과 근면성, 그리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식을 당신의 관습들을 통해
내게 보여주시려 했던 애매모호한 노력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기억한단다.
당신의 아이들이 자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짝을 찾아 독립했을때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얼굴 가득히 뿌듯해 하시던 그 자부심을.
그분 자신은 이제 그런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분의 기억력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내 앞에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줄줄외우시던 바로 그 분이
이젠 더 이상 그날이 언제였던가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신다.

그분의 작업대는 버려져 수라장이 되었고
오랫동안 잊혀진 계획의 파편들만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지하실 한쪽 구석의 상자 속에서 한무더기로 처박혀 있다.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나를 훨씬 능가했던 - 어깨, 근육, 힘 모두
- 바로 그분이 이제는 골 깊은 주름이 지고, 쪼그라들고,허약해진 몸으로
조심스레 움직이고, 걸을 때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신다.

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껴야만했다.
그러나 그 슬픔에는 두려움과 착잡한 마음의 갈등이 혼합되어 있었다.
지나간 날들, 그 많은 하루하루의 나날들을 지나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분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느끼고 있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이 얼마나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크기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한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비록 그 그림자가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더라도,
비록 그 그림자가 이름도얼굴도 없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으로부터 그 사람의 가치와
그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남겨진 기억을 전부 몰아낸다 해도,
그 그림자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결코 부인할 수가 없는 거란다.

내 경우는 무척 다행스러웠다.
비록 당신이 화가 나 있고 외로움이 가슴을 저밀 때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내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
내가 주눅이 들게 하거나 나쁜 영향이 미치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손은 내가 필요로 할 때 항상 내 어깨위에 있었고,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이 짊어지고 살았던 가난의 고통스런 업보를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평생을 열심히 일하셨다.
그렇게 행운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게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속에는,
폭력과 무자비함과 술냄새와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던 순간들이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버지의 기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가슴저린 슬픈 상처들만이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역시 아버지의 그늘아래서 살아간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성시키는 거란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 그림자가 가지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다.
너도 장차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게 되겠지.
그때에 너와 제 자식간에 갖는 접촉들이 그 아이의 삶의 나날들을
더 좋게도, 혹은 더 나쁘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접촉들이 아이에게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있을 까?
어떤 말, 어떤 모습, 함께 하는 어떤 시간, 떨어져 있는 어떤 시간들-
과연 무엇이 네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대해 판단력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그 아이의 미래를 형성시키게 되는 걸까?

나는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어스름한 불빛에 싸여있는 어떤 아파트의 현관이었단다.
나의 아버지가 그곳에 서 계셨고,수줍음을 잘타는 열살박이 소년이었던 나는
그 현관문을 쳐다보며 아버지뒤에 숨듯이 서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한대 가지고 서 있었지.
그건 핸드브레이크와 기어변속기가 달려 있는 보라색 경주용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는 내가 그때까지 보았던 자전거 중에서도 가장 멋지고 근사한최신형 자전거였지.
우리는 그때 그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있는 중이었단다.

아버지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도시의 해변을 따라 산책하시다가 우연히 그 자전거를 발견하셨다.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가져와 우리집 차고에 집어넣고 담요로 잘 덮어서 보관하셨다.
그리고는 내게 남의 자전거니까 절대로 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몇 주일 동안 그 자전거는 우리집 차고에 틀어박혀 있었고
아버지는 지방신문에다 주인을 찾는 광고를 게재하셨다.
난 그 자전거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길 은근히 고대했고,
그러면 그 자전거가내 소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결국 주인이 나타나고 말았다.
우린 바로 그 주인에게 자전거를 돌려주기 위해서 그 집 문 앞에 서 있었던 거란다.

아버지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그리고 잠시후 문이 열렸지. 안쪽에서 한남자가 밖을 내다 보았고,
그의 시선은 우리를 지나쳐 자전거가 있는 곳에 머물렀다.
이윽고 그는 우리에 대해서는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계속 문밖에서 선 채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자전거에 긁힌 자국이 많군요"라고 그 남자가 말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 남자는 자전거의 바퀴를 돌려보고 손잡이를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는 비난하는 듯한 눈초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자전거를 발견한 즉시 끌어다가 우리집 차고 안에 넣고
담요로 덮어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고장도없을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전거는 반짝거리며 음산한 현관 안쪽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그 남자는 자전거를 집 안으로 더 깊숙이 들여 놓고는,
"그러나 저러나 당신에게 보상을 해야겠지요"라고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몇장 꺼내더니 아버지에게 내던지듯이 불쑥 내밀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받지 않고 다시 돌려주셨다.

그 남자는 우리를 잠깐동안 노려보고는 자전거를 살피러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돌아서서 현관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나는 아버지의 소매에 매달려 울먹이며 말했었다.
"아버지, 왜 저런 사람에게 그렇게 너그럽게 대하세요?
그 사람은 정말로 예의도 없고 비열하잖아요."

아버지는 계속 걸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그 일을 다시 떠올릴지도 모른단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묵묵히 옅은 황혼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론 결코 다시는 그 자전거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 기억이 희미해진 먼 옛날의 그 장면이
다른 사람에 의해 또 다시 떠오르게 되었단다.
그것은 자전거 사건이 있은지 이미 오랜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나는 약간의 사소한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처의 교도소를 방문한적이 있었다.
교도소의 대기실에 않아 기다리는 동안에
죄수들의 명단에서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제자 한 명을 발견했다.
그 아이는 술이 취해 심한 난동을 부리고 기물을 파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 그 아이는 이미 초범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그 아이를 좋아했었단다.
그 아이는 항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환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녔었고,
그 미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친절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이 언제나 그 눈가에 숨어 있는 듯이 느껴졌었지.
그 아이에게는 애초부터 가족이 없었다.
보육원에서 성장하여 떠돌이 여관생활에 이르기까지 항상 소외된 존재로 인생을 보냈었지.
그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필요없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교도관에게 그 아이를 잠시 면회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교도관은나를 데리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단단한 철문들을 통과했다.
그 철문들이 내 등 뒤에서 꽝하고 닫힐 때마다 약간의 공허한 울림이 여운으로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형광등이 활기없이 빛나고 있는 어떤 비좁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요" 하고 교도관이 말했다.
잠시 후 교도관은 그 방에 나의 제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안녕, 크리스." 내가 먼저 인사를 했지만 크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무엇엔가 놀란 듯이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녀석은 좀 거칠기 때문에 깜깜한 독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빛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약간 필요할 겁니다."
나를 안내한 교도관이 말했다.
교도관이 밖으로 나가자 크리스가 나를 쳐다보더구나.
그때, 그 아이의 입술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지.
"제발 부탁이예요, 선생님. 날 그 방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못하게 해 주세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힘좀 써주세요. " 크리스가 말했다.
그 아이의 눈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순수한 어린 아이의 눈이었다.
"제발!" 그 아이는 다시한번 말했다.
나는 이전에 그 애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제발'이라고 말하는 걸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잠시동안 그 아이를 주시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아이의 눈동자뿐이었다.
"그래," 내가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번 힘써 보마."
그 아이의 입술이 다시 한번 부르르 떨리고는, 내게 씩 웃어 보였다.

나는 교도관들과 접촉하여 크리스의 보석을 신청했다.
그들은 필요한 절차를 끝내고는 크리스의 옷을 돌려주었다.
나는 몇 장의 서류에 서명을 한 후에 그 아이를 내 차로 데려갔다.
그 아이한테 햄버거도 사주었지.
그런 후에 그 아이가 머물고 있다는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때쯤에 그아이는 다시
예전의 으시대는 태도와 허세로 가득차 재잘거리고 있었다.
내가 차를 멈추었을 때 그 아이는차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또 봐요."그는 건방지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버렸다.

다음날 나는 크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말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화가 나서 나에게 한바탕 훈계를 시작했다.
"난 자네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넨 그 녀석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칠게 행패를 부렸던 것처럼
자네에게도 거칠게 대하도록 그냥 내버려뒀단 말인가.
그 감옥 안에서 단단히 썩도록 그 녀석을 그냥 내버려 뒀어야만 했어.
도대체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대답했지.
"아마도 그 아인 어느날 갑자기 그 일을 다시 떠올릴지도 모른다네."
나의 친구는 포기했다는 듯 머리를 가로 저었고 자기 일을 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몇 마일 떨어진 집에서는 나의 아버지가 텔레비젼 화면을 멍하니 주시하고 계실테지.

 

2. 사내와 남자

나의 아버지는 결코 나보다 특출한 남자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남자가 아니셨다.
그분의 업적에 대하여 쓰여진 글같은 건 세상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없다.
그렇지만 그 분은 매우 훌륭한 남자란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을 속여 잇속을 챙기거나 한 일이 결코 없었고,
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친절하게 대할 준비를 하고 계셨단다.

나는 지난 십 년 동안 삶에 흥미를 점차 잃어가는 그분을 지켜봐 왔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결코 불행하지는 않으셨다.
불행이란 말은 그분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지금 그분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였고
그 때문에 삶에서 흥미를 잃고 쇠잔해지셨다.
그분에게 맨 처음 찾아온 상실감은 직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나서 그분의 강인한 육체와 땅위의 모든 존재에 대해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시던 유용한 감각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핏줄로 이어진 가족들에게는 매우 슬픈 일이란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그분을 사랑하고 있고 존경하고 있으며
아버지로서 여전히 진심을 다해 받들고 있다.
그렇지만 당신 자신은 더이상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높이거나, 존경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분이 살아온 세계와 그분의 육체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분을 배신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그토록 강인했던 한 남자가 어느날 한 순간에 나약해질 수 있는지?
삶의 지평이 그분 앞에서 여전히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데도 왜 살려는 노력을 포기해야만 했는지?
난 그분이 다른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이상 하나의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단다.

내 아버지께선 당신이 이루어야만 한다고 말씀해 오셨던 남자의 상을 -
가장 빛나고, 가장 강하고, 가장 많이 벌고, 가장 적게 쓰는 -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럭을 다하셨다.
그리고 지금껏 그것을 무척 잘 해내셨다.

아마도 그분이 희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열여섯 살이될 때까지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만 했던 외톨박이 소년이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희망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분은 자수성가하여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굳건한 지위를 찾았고,
명예와 존엄과 보살핌으로써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정성을 다해 가꾸셨다.

그렇게 작은 일의 성취들조차도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고 나를 일깨워주시던
그분의 마음속에서, 도대체 어떤 것이 지금의 무기력에 빠지게 했을까?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무에서 시작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한 그분이,
왜 자신의 성년이 이미 지나갔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그 대답은 듣기 싫지만 명백한 것이다.
그건 그분이 사내와 남자사이의 의미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셨기 때문이란다.

사내라는 존재는 우리를 신체적인 특징으로 표현하는 측면이 있다.
그건 강인함, 통제력, 자기영역, 경제력, 그리고 지배와 경쟁이
인간 생존의 열쇠였던 시대에 필수적인 많은 관습들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남자라는 존재는 이와는 구별되는 다른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남자라는 것은 너를 둘러싼 세상의 요구들과 마주하는 삶 속에서
신체적으로 사내의 몸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한 편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필요에 부응하는 모습을 형성시켜 가는 것이다.
그건 사람들에게 꿈을 전하는 활동이다.
그건 믿음의 땅에 기초하는 한편, 별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란다.

나의 아버지가 태어났던 세계는 사내라는 자연적 본성으로부터 분리된
자신의 남자다움을 찾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단지 생존의 과제로 인해남 자들에게는 오직 공격과 경쟁의 힘과 육체적 강함만이 요구되었다.

그분은 지독히 가난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의 아버지는 일찌기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도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그분은 대공황의 파도 속으로 홀홀단신 내던져 졌다.
먹고 살기 위해선 일해야만 했고, 일하기 위해선 강해야만 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나치즘과 파시즘이 세계무대에 등장했고,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해 무기를 들 것을 강요당해야 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완전히 빈털털이로 돌아왔고, 전혀 새로와진
사회적, 경제적 여건 속에서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한 보금자리를 다시 개척해야만 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분은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경시당하는
풍조 속에서 승리자가 되어야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세계를 살아왔단다.
그러므로 성년에 대한 그분의 생각이 그토록 남성 우월주의와
지배의 감성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못된다.

이제는 그분의 신체가 그분을 쇠퇴시킴으로써
남성 우월주의와 지배의 감성은 의존의 감성으로 바뀌었다.
그분은 삶의 덧없음과 무의미함만을 느낄뿐이다.
직업의 상실과 육체적 힘의 상실, 성적 능력의 상실,
그리고 주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은 그분의 성년의 상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분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이런 모습은 몇가지 중요한 점들을 망각하고 계신 거란다.
나는 그분의 아들로서 그분의 사실적인 남자다움을 보았었다.

화재와 홍수로 하루 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러 날동안 밤을 꼬박 새우며 보내시던 그분의 모습.
당신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해 평소보다 두배 세배씩 일하시던 모습.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먼 길을 새벽부터 걸어 차비를 아끼시며
용돈을 절약하시던 눈물겨운 내핍생활.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하시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식탁에서는 수저도 들지 않고 밖에서 먹었노라며 우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그분을 보았다.
나는, 남자다운 힘을 가지고 그 힘을 남들을 돌보는 일과 서로 나누는 일에쏟아붓던 그분을 보았다.
그 무엇도 나의 눈에 비친 그분의 남자다움을 손상시킬 수는 없을 게다.
그분은 좋은 사람이셨다.
작은 일에서도 그분은 매우 큰사람이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 스스로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신다.
그분은 남자답다는 것이 단지 사내답다는 것을 의미했던 시대를 살아오셨고,
그런 기준으로 당신 스스로를 판단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너는 다른 세계, 다른 재능과 다른 도전들을 제공하는 세계에서 태어났다.
남자다움의 새로운 전망은, 우리 사내들의 특징인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잔여물들에 그리 얽매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너는 강인함을 포현하는 데서, 지배럭을 보이는 데서, 용기를 나타내는 데서,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모색할 필요가 있다.
너는 세계를, 네 앞에 싸우고 지배해야 할 적으로 서게 하지 않고도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넓은 범위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네 스스로가 그런 방식들을 발견해야만 한단다.
과거에는 성년으로 소년을 이끌어가는 통과의 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눔이 필요한 지혜와 책임감을 갖고 그곳을 통과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의식행위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성년으로 인도되지 않는다.
다만 어느날 갑자기 그곳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우리 신체가 우리에게 그곳에 도달했음을 알릴때, 거기엔 욕망과 갈망,
그리고 아무리 채우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욕구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으로 얼룩진 그런 성년은 단지 우리의 사내가 만개 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내로서의 욕망에 이끌린 활동이 인간사회의 도덕적 가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때, 그런 행위는 세상에 해를끼치기만 할 뿐이다.

나는 네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점에 대해 명확히 구별하길 바란단다.
사내가 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자가 되어야 한다.
남자라는 존재는 반드시 획득되어야만 하는 권리이며 소중하게 길러지는 명예란다.

나는 너에게 그 권리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와
과연 그 명예는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단지 남자답게 되는 것은 반드시, 네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상에
뒤따르는 양심적 활동을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정도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네가 스스로 그려낸 그러한 남자의 전망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동안에도,
사내로서의 본성적인 메아리가 항상 너를 유혹할 것이다.
경쟁, 지배, 커다란성적 자극, 그리고 채워질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욕망이
항상 너에게 본능에 따라 행동하라고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런 욕구들을극복하여 건전하고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사내의 자연적 속성들은 남자의 진실한 척도, 즉
강인함과 명예와 도덕적 힘, 용기, 희생, 그리고 자신감으로 전환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너의 사내로서의 특징들을 인식하거라.
그것들을 축복하거라. 그것들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거라.
그리고너의 주변 세계의 기대와 요청에 응답하는 진실한 남자다움으로 전화시키거라.

그러나 그것들이 결코 너를 압도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는 말 것이며,
사내다움과 남자다움을 절대로 혼동하지 말고 네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너 자신만의 고유한 남성다움을 성취하도록 하거라.
무엇보다도, 지배와 파괴가 남자다움과 동의어라는 거짓된 믿음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아버지처럼 되거라.
자신이 태어난 세대의 집사로서 세상에 봉사하는 그런 남자가 되거라.
그리고 결코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자신의 손을 기꺼이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오직 네가 도달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네가 도달할 수 있는 지위로써 너의 위대함의 척도를 삼거라.

오늘 날의 세계는 지배하는 손이 아니라 사랑하는 손을 필요로 한단다.
네 손을 항상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속에 있도록 하거라.

3. 강인함이란 (A)

어느날 나는 구멍가게 밖의 좁은 거리에서 서로 밀치며 다투는 한 무리의 소년들을 보았다.
많은 소년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혼자뿐인 소년은 몸짓으로 주위를 위협하고 있었지.
마치 자신의 공격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라도할 것처럼.

그러나 그 소년이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소년의 주위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은 그를 조롱하면서,
그에게 덤빌테면 한번 덤벼보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그 소년을 덮쳐서 사정없이 때리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마음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날뛰기 위한 첫번째의 구실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 한명이 그들의 곁을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싸움을 말렸다.
소년을 조롱하던 아이들은 그 사람을 보더니 슬그머니 달아났다.
혼자 남은 소년은 비록 그의 공격자들로부터 풀려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전하지는 못하다고 느끼는 듯 했다.
왜냐하면 그의 공격자들은 아마도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그를 기다릴테니까.

나는 그 싸움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단다.
그리고 난 그 원인이란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한단다.
그들이 싸움의 과정에서 보여준 욕지거리와 잘못된 행동들에 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랜 세월의
- 아이들은 그들이 가진 신체적 힘의 크고 작음에 의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한다 -
관행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관행이며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기보다는 슬프게 만드는 통념이란다.

그러나 어찌됐든,육체적 강함을 그런 식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표현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지금껏 잔존해왔고,
심지어 우리는 내부에서 그러한 신체적힘이 용솟음치는 걸 느끼길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했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우리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세대동안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감지되는 강인함 -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위한 강인함,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는 강인함,
우리의 주변 세계를 지배하는 강인함으로 정의된 남자라는 통념과 함께 살아왔다.

다른 사람보다 더높이 오를 수 있는가, 더 많이 운반할 수 있는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가,더 오래 일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남자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강한남자일 수 있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경험할 때, 눈물을 얼마나참아낼 수 있는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강한 남자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상에서는 강인함의 이러한 형식이 더이상 필요치 않다.
우리는 누가 승리할 것인가를 보기 위한 원초적 전쟁에서,
반대 세력에게 힘으로써 대적해야만 했던 생존의 물리적 현상에 더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육체적 강인함의 위대함보다는 정신적 강인함의 위대함을 더욱 필요로 한단다.

내가 여기서 두 가지의 간단한 예를 들어보마.
너는 아마 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지난 주에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단다.
나는 금요일 밤에 잡혀진 실내악단 연주회의 입장권을 두장 갖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주회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은 다들 선약이 있거나 다른 일로 바빴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음악회의 입장권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버릴 수도 있었고, 아니면 혼자서 음악을 들으러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하건 나에겐 가책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날 아침 나절 대부분의 시간을 그 문제를 회피하면서 보냈다.
지갑 안에서 아무런 죄없이 쳐박혀 있는 입장권을 잊어버리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정오가 다가오자 그 입장권은 수천 파운드의 무게로 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차에 올라 탔고 근처의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2층의 간호사 대기실에 가서 수간호사를 찾아냈다.

"여기에 잠깐동안 외출할 수 있고, 음악을 좋아하고,
또 낯선 사람과 함께 연주회에 갈 마음이 있는 요양자가 있을까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내말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요양자들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에드너?, 프로랜스?  죠?  몇 분 후에 그들은 에드너가 제일 적합하다고 결정했다.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에드너에게 연주회에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난 원치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낯선 사람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우리는 프로랜스를 선택했다.
우리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놓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정도였고, 거의 완전한 장님이었으며,
4인치 정도되는 밑창을 가죽끈으로 묶은 무거운 정형외과용 구두를 신고 있었다.

"프로랜스, 이 젊은 청년이 오늘 밤에 있을 음악회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다는 군요.
간호사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당신이 함께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해요."

나는 간호사의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요양원이, 내가 젊은 청년이라는 소리를 듣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장솝니다.

프로랜스는 나를 향해 그녀의 무거운 안경을 돌렸다.
"정말요?"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가겠어요. 나는 한동안 데이트를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잠시 음악회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고,
그녀가 내차에 타고 내릴 때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녀를 데리러 올 시간 약속을 정했고
남겨진 그날의 업무를 마감하기 위하여 그곳을 떠났다.
약속했던 7시30분에 나는 다시 요양원으로 왔다.
프로랜스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어둠 속에서 휠체어에 앉아서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녹색 면장갑을 낀 손으로 지갑을 꼭 쥐고 있었다.
우리는 간호사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연주회 장소를 향해 그곳을 떠났다.

모든 일이 부드럽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프로랜스는 나의 차에 무사히 탈 수 있었고 휠체어는 트렁크에 그럭저럭 집어넣을 수 있었다.
연주회의 안내자 한 사람이 나를 도와 음악관 안으로 프로랜스를 데리고 갔고,
내가 앉을 만한 장소를 찾는 동안 그녀의 곁에 계속 있어 주었다.

프로랜스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그녀의 휠체어에 앉아있기로 결정했다.
나는 통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불이 꺼질때까지 우리는 공통의 화제거리를 꺼내어
각자가 경험한 사람들과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주가 시작될 동안 나는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그녀에게 찬찬히 읽어주었다
- 비발디, 바흐, 드보르작, 베토벤...
그런 다음 음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반 동안 프로랜스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볼 수는 없었지만 몇해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음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음악에 몰두하여 결코 장갑을 벗거나 지갑을 내려놓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박수갈채가 잠잠해진 이후에,
그녀는그 연주회의 프로그램 한 장을 자기에게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물론 그것을 읽을 수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는 더 이상의 에피소드가 없다.
나는 그녀를 다시 요양원에 데려다 주었고, 그녀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간호사들은 휠체어를 밀며 그녀와 농담을 주고 받았고
그녀를 다시 그 어두운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의 녹색장갑은 이제 그녀의 지갑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지갑 아래, 즉 그녀의 무릎 위에는 얄팍한 연주회의 프로그램이 놓여 있었다.

 

3. 강인함이란 (B)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란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두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마.
어느 여름날,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단다.
나는 하애네스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 남자와 그
의 아들 갈버트와 함께 어느 컨트리클럽에서 일했던 적이있었다.
하이네스는 약 60세 가량이 었고 얼굴에는 항상 점잖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갈버트는 20대 중반의 남자로서 머리를 매끄럽게 쓸어올리고 엷게 착색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인종차별이 공공연한 일이었고,
그들은 흑인이었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는 항상 부엌 근처의 계단위에 있는 식당에서
멀리 떨어진 계단 아래의 보일러실까지 가서 식사를 해야만 했다.
나는 음식을 들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보일러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당신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이네스가 말했다.
"당신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저들의 사고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요. 하이네스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이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갈버트는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면서 괜한 애만 쓰고 있어요."
그는 트럼프놀이용 탁자를 끌어당기며 나에게 말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후로 나는 경영자와 다른 종업원들을 설득하러 다니며 매일 매일 하이네스와 갈버트를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하이네스와 갈버트가 그런 차별대우에
약간의 증오심이나 원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결코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묵묵히 점심식사를 했고, 잠깐동안 트럼프 놀이를 즐겼고,
사람들이 외출하면 방을 청소했고, 밖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구두를 닦는 일을 했다.

날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일을 했고 닦아 놓은 구두의 목록을
주인에게 건네주고는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때때로 내가 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하이네스와 갈버트는,
골퍼와 그의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식사중인 방, 또는
위층의 라운지에서 흘러나오는 동안까지 그들의 구두에 열심히 광을 내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할 때에 그 컨트리 클럽을 통과할 기회가 닿으면
언제나 하이네스와 갈버트를 만나러 찾아가곤 했다.

하루는 우연히 우리 지역 신문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기사는 어떤 컨트리 클럽에 강도가 들었다고 씌여 있었다.
그 클럽은 하이네스와 갈버트,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종업원으로 일했던 곳은 아니었다.
기사는 한 흑인이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로커룸에 뛰어들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그 흑인은 다름아닌 갈버트였다.
그를 쏜 경찰관은 나의고등학교 선배였다.
그 자는 학생시절부터 불량배였다.
그는 체인과 쇠파이프로 사람을 때리고 다녔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 기사에 의하면, 총알은 갈버트의 등을 뚫고 들어갔고
그가 총을 들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은 자신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있다는것이었다.
목격자가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관의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분노와 슬픔으로피가 끓었다.
곧장 차를 타고 하이네스를 만나러 갔다.
여전히 컨트리클럽의 벤치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갈버트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 나는 따지듯이 말했다.
"나도 그걸 알아요." 하이네스는 닦은 가죽구두에 다시 끈을 묶으며 내게 대답했다.

"전 그 경찰이란 작자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었어요.
그자는 당시에 불량배였고, 지금도 역시 불량배예요.
그자가 등뒤에서 갈버트를 쏜거예요. 내가 단숨에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요." 하이네스는 계속 무미건조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죠?" 나는 그만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하이네스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맑았다. 그러나 그눈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갈버트는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가 말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인생을 통하여 겪었던 가장 커다란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숨을 거둘 때까지도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커다란 불법과 불공평에도 불구하고,
하이네스는 세상의 모순에 대해 결코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갈버트가 거기 가지 말아야 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를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제복을 입은 불한당의 손에 그의 아들이 불법적으로 총질을 당했다.
그런데 법치국가를 자칭하고 있는 이 사회가 그걸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부당성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이네스는 곧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당신이 화가 나리란건 알아요. 나는 당신보다 훨씬 더 화가 나요.
그자가 우리 아들을 죽였죠. 나는 그 자를 감옥에 처넣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렇지만 갈버트가 당한 일을 다시 되돌리진 못해요.
갈버트는 흑인이면서도 자기가 속해있지 않은 곳에 갔기 때문에 억울하게 총에 맞았어요.
그러나 내가 갈버트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이 사회선 아무것도 없어요. 그앤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나는 아들을 잃어버린 사람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그는 분명 아들의 죽음을 고통스러워했지만,
그의 감정은 매우 심오하여 지극히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는 분노와 복수심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하나도 전개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증가시킬 격한 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는 강인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치미는 분노와 슬픔을 가슴으로 억제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떳떳한 기질을 지킬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가 자포자기하고 무능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네스의 눈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숙명론자나 비겁자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산처럼 강인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분노로 피가 끓었고, 갈버트의 살인자에게 무서운 복수를 꿈꿨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정의파, 혹은 강인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이네스만큼 강할 수는 없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그는 결코 강하지 못했다.
그는 되든 안되든 자기 아들을 죽인 한 낯선 남자를 고소하기 위해 고향에 갈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그는 삶의 가혹함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뿐이었다.
자기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사준 차표를 쓰지 않았다.
내가 그 앞에서 보인 행동에 대한 격려도 없었다. 그건 결코 그의 강한면이 아니었다.

프로랜스와 하이네스, 두 사람이 지닌 두 가지의 강인함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두 사람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강인했다.
너는 그것을 알아야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서로 상이한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혹은 양자역학의 신비를 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사람들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사람의 강인함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독립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부모님을 모시고 친지를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도 미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인함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란다.

너는 네 자신의 고유한 강인함을 찾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무력으로 강인함을 가장하고
커다란 가식으로 둘러싼 치장으로 강인함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높은 산을 정복하거나 집에 침입한 강도를 물리칠 때,
그 사람에게서 강인함을 쉽게 느낀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을 주목한다.
그리고 두려움의 극복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강인함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 존재한단다.
모든 사람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싸움에서 상처를 입는 것을두려워하고, 결혼하는 걸 두려워하고,
곤경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고, 혼자있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나 남자답고 강하다는 것이 단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결코 너를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 규정은 너를 오히려 더 나약하게 만들뿐이다.
진정한 강인함은두려움을 억지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념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자리잡을 수 없는 것이란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환상일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자신의 강인함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할 수있었단다.
"나는 여기에 서 있다. 다른 데에 있을 수는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네가 어떤 일에서 이 표현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거짓된 강인함은 사라질 것이다.
너는 두려움이 신념으로 극복되어지고, 분노가 확신으로 극복되는 걸 발견할 것이다.
너는 하이네스처럼 동요하지 않는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너는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강변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갖지 않는 진정한 강인함을 소유할 것이다.

네 자신의 내부에서 그러한 강인함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거라.
그런 강인함은 물리적인 지배력을 추구하는 분노나 의협심,그리고 추진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네 마음속의 평화로움에 있다.

너는 네 주위의 사람들이 조롱하고 겁장이라고 비난할 때도
싸우지 않고 돌아서서 떳떳하게 걸어갈 수 있겠느냐?
비록 네 자신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더라도,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을 너의 친구로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겠느냐?
자기 조직에 가입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대한 조직에 대항해 싸울 수 있겠느냐?
이러한 것은 특히 젊은이들이 겪는 강인함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너는 네 친구의 여자를 좋아하더라도, 친구를 위해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느냐?
네가 원하지 않는 만남이나 술자리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느냐?
만약 네가 그럴 수만 있다면, 너는 강인한 사람이고,
너를 단지 육체적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강인한 사람이다.
기억하거라, 강인함은 육체적 힘이 아니다. 강인함은 마음의 속성이다.
강인함의 반대는 나약함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의심이고, 자신감의 결여이고, 건전한 긴장감의 결핍이다.

네가 분별력이 있다면,
그리고 너의 길이 순간적인 판단에서 잘못되었다고 느껴질지라도
그 길을 계속따를 수 있는 신념있는 사람이라면, 너는 결국 강인한 사람이 된다.

중국의 성인 노자의 말을 기억하거라.
"가장 진실된 강인함은 결코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다.
육체적 무력에 기초한 강인함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강인함이다.

사랑에 기초한 강인함이야말로 바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열망하는 그런 강인함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