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2. / 켄트 너번
4. 직업 (A)
나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에서 그 사람들이 사실상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나 자신이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삶이란 것은 무한히 창조되는 경험이고,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매번 선택함으써 자신의 모습을 형성해 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안녕을 위해서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비록 네가 네 자신의 일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해도,너의 일이 너를, 즉 현재의 네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네 자신의 시간을 투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는데 전념하기 몇 해 전의 일이 기억나는구나.
그때 나는 택시를 운전하고 있었단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나는 결코 일에 있어서의 전문성으로 인해 삶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직업을 원한다. 라고.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한지 6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택시운전사답게 말하고 있었고, 택시운전사답게 생각하고 있었고,
택시운전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일상적인 화제들이 그 직업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관측의 결과로부터 비롯되었던 거란다.
단지 그 일을 하고 있고, 그일에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 사람들과 기업의 정치판에 자연히 휩쓸렸고,
밤샘 운전으로 생활의 리듬까지 바꿔졌었다.
운전대신 조각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내 머리속에는 아직 택시운전사의 의식이 버티고 있었던것이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하든 말든 어쨌든지 나는 택시운전사였단다.
이런 일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만약 네가 그 직업이 싫어져서 그 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해도,
네가 그렇게 하는 행위 자체에 의해서 그 직업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으로서
네 자신을 정의하게 되는 거란다.
너는 너의 시간을 어떤 직업에 투여함으로써 너의 의식까지도 그일에 쏟아 넣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직업은 사실상 현존하는 너의 삶 전체를 모두 채우는 것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직업이 열정과 흥분을 자아내기 때문에,
혹은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혹은 그들에게 명성을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한다.
그들은 그 일에 자기 자신의 시간과 졍열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그러나 서서히 무관심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에는 오히려 그일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름으로써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곧이어 옥죄임과 덫에 걸려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써로라는 사람이 말한 것처럼 지나치게 절망적인 삶을 -
불충분 하고, 불행하며, 뭘하고 있는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단에 합류하게 된단다.
그러나 재정적 안전에 대한 유혹과 앞길을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절망적인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현재 머무르는 곳을 정당화시키는 데나
혹은 그들에게 의미성을 부여할거라고 생각되는
업무 이외의 활동을 찾는데 모든 정력을 소비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결코 전체적인 성공을 거둘 수는 없단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이 그일의 한부분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삶 자체를 바꾸거나 우리 삶의 기대치를 바꾸는 것뿐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우리의 기대치를 낮추게 되면 그땐 스스로 꿈을죽이는 게 된다.
그리고 꿈과 함께 그 사람은 이미 반쯤 죽은 거나 다를 바없다.
그러므로 네가 직업을 선택할 때는 무척 조심스럽게 대처할 필요가있단다.
너는 체면과 돈, 시시각각 변하는 매력이라는 척도를 초월하여
네가 할일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스스로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기초하거라.
시간은 네 일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네가 그 일을 경험하는 방법인 거란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Vocation)이란 것으로써의 일에 대한 생각이다.
아마 이 단어의 어감이 딱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이 단어는 그 의미에 깊은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는 '부른다(calling)'를 의미하는 라틴어로부터 유래했고,
또 '목소리(voice)'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이 말은 어떤 일이 사실적으로 되어야만 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하고 싶어하는 어떤 일이 너를 부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그 일은 현재의 너 자신과 네가 세계를 향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에
뚜렷한 목소리를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사실상 직업은 그 일을 행하기 위해 너를 부를 것이고,
또한 너에게 목소리를 주어 네 삶에 대해 말할 것을 허락한단다.
이는 일의 형태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라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의미다.
또한 심지어 네가 그 일을 대표한다고까지 인정받게 되는
숙련이라는 영역에서의 전문성과도 다른 의미다.
직업은 네가 불가항력적으로 꼭 해야한다고 느끼는 무엇이거나,
적어도 최소한 네가 의미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무엇이다.
직업은 네게 네 삶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너에게 허락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지.
돈벌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체면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건 결국 네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너는 네 직업을 발견했을 때,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축복하거라.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는게 아니란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목표물을 향한 눈으로 직업을 구하고,
그래서 그들은 그일에서 가차없이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돈이나 위신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그런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자신을 돈으로 바꾸는 상품밖에는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들어 죽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종종 클리브랜드의 거리에서 만났던 한 남자를 생각하게 된다.
그 남자는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노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서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지겹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지겨워하면서도 왜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지를 그에게 물었다.
"저는 은퇴하려면 아직도 13년이나 남아 있습니다."
그는 짧게 대답했고,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
그 남자가 돈벌이를 포기하기 보다는 13년간의 죽음이라는 문장을
더 쉽게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삶은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멀어져 갔던 것이다.
그 남자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나는 약 20세 정도였다.
나는 젊고 자유로왔었지. 그래서 난 그가 말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한 남자가 그것도 자기 손으로 그 일을 꼭 쥐고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죽어가게 내버려 둠으로써 결국 삶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4. 직업 (B)
그렇지만 이젠 너무나 잘 이해하게 되었다.
직업을 찾을 때에, 사람들은 주변의 혼란스러운 관점들에 유혹되어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내적 만족감도 제공하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하곤 했었다.
그런 사람은 봉급날에서 다음 봉급날까지 자신의 육신을 굴리고
항상 꿈꾸어온 근사한 자동차나 보트를 타는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살았겠지.
그는 해가 갈수록 승진했을 거다.
왜냐하면 사업주가 그 사람의 인내를 보상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봉급은 당연히 오르게 되고,
다른 형태의 일을 찾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그리고 그는 이제 유일한 낙인 돈벌이와 판에 박힌 일에만 안주하며 살아간다.
그는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갖고, 중년에 들어서겠지.
그와 함께 그가 젊었을 때에는 무척이나 자유롭게 보였던 그 직업은
점점 더 무미건조하고 무감각한 것이 되어갈 것이다.
해가 갈수록 그는 일에서 점점 더 싫중을 낸다.
일이 결국 그를 질식시킬 것이지만, 그에게는 마땅한 탈출구가 없다.
그는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최소한 지금 벌고 있는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한다면
직업을 바꾸는 일은 아마 고려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세계로,
하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대가나 보수가 없는 세계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은퇴할 때까지 아직도 13년이나 남아 있다"는 것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은
직업이 그를 석방시켜줄 때까지, 그를 자유롭게 놔둘때까지,
그 자유를 위해 연금을 지불할 때까지,만기 출소일을 향해
하루하루 달력을 지워나가는 애타는 죄수의 삶이란다.
사람들의 삶의 양태는 무척 다양하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 자신이 선택할 직업의 사실적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은 적단다.
어떤 직업에 자신의 삶을 허락하는 데 있어서,
그 직업의 함축적인 의미를 고려하거나
사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돈도 없고, 훈련도 없는 그들은 생존의 압력으로 둘려싸여 있는 세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오직 자기 자신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기만 하면 되는
안전한 삶의 방편들 중에서 최선의 교환방식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명백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뒤쫓은 꿈은 거짓이란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만약 직업을 선택할 때 자기 자신의 생각과 관심에
더 근접해서 걱정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덫에 걸려든다.
그렇지만 네가 네 자신의 생각과 관심에 더 근접해서 결정한다고 해도
옳은 선택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사실, 어떤 일에 대한 생각만 가지고는
네가 하고 싶어하는게 정말로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너는 그 일을 직접 경험해 봐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너에게 얼마나 적합한가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 일이 네 자신이 되고, 또 네 자신이 그 일이 될때까지
경험을 통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 너는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안녕과 재산을 보장하는 어떤 일을
그냥 포기해 버릴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경로에서 한두 번,
혹은 더 많은 이직의 경력을 갖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누구든지 자기 적성에 맞지 않은 직업을 과감히 포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어떤 일을 위해,
혹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에 다가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록 그것에 위험이 있고, 손실이 있고, 빈곤이 있다 하더라도.
만약 네가 네 자신의 가치에 입각해서 직업을 구한다면,
그로인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것이 꼭 가치있는 건 아니며,
안전하지 못해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고통이 주는 가치가
오히려 네 꿈을 죽이는 안주와 대별되는 거란다.
너를 고용한 사람들의 눈에 너는 단지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거라.
너는 유용한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봉급이 주어지는 것이다.
만약 네가 제공한 용역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 일이 너에게 명예로울 수 있고,
어떻게 그 일을 부지런히할수 있고, 어떻게 그 일을 위임받을 수 있겠니?
만약 너에게서 더 이상 공헌할만한 무엇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그 일에서 너는 더이상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고,
마음대로 떠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지게 된다.
비록 네가 마음속으로 그 직업을 좋아하고
네 삶의 대부분을 그 일에 바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는 단지 상업적 교환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러한 상업적 교환에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가치가 인정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경제적 거래의 본성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한 사랑을 희생하는 것에 따르는 보수는
너를 얽어매는 직업에선 결코 지불되지 않는다.
그런 직업은 아마 너를 버려야 한다면 그렇게 할게다.
너도 필요하다면 그런 직업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클리브랜드에서 만났던 남자는 아마 은퇴를 1년쯤 냠겨두고 해고 당할지도 모른다.
아마 연금의 권리를 빼앗길 수도 있겠지.
그가 알지 못하는 법조문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완충기계에 볼트가 조여지기를 기다리다가
성급하게 행동한 나머지 조립 라인에 몸이 끼어들어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가 한 번은 콘서트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실패의 가능성을 두려워했던 그는,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고 보수도 든든한 예술학교에 갔다.
하루는 내가 학위논문을 쓰면서 겪은 애로사항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는 건반위를 미끄러지듯이 아름다운 음악을 빠르게 연주하더니,
갑자기 손가락의 동작을 뚝 멈추는 것이었다.
"당신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말했다.
"난 사실 콘서트의 피아니스트가 되길 간절히 원했어요.
지금은 나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일까를 생각하며 매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이런 말로 네 삶의 마지막 묘비명을 장식하지 말거라.
네 마음을 불붙게 하는 것이 뭔지를 찾아내고 그 일을 하거라.
단지 먹고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천직으로서의 직업을 선택하거라.
그러면 너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 것이다.
천직을 발견하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한 직업만을 갖는다면,
결국엔 "저는 은퇴할 때까지 아직도 13년이나 남아 있습니다."라거나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일까를 생각하며
매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그런 직업들 보다는 나은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있단다.
5. 소유물 1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단다.
그렇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일은 오레곤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 난 마을에서 약 40킬로미터나 떨어진 작은 오두막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가진 소유물이라고 해 봐야
내 차의 트렁크에 모두 쑤셔넣을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 전부였지.
그렇지만 거기엔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비길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함이 깃들어 있었단다.
-삶의 행로와 선택과 결정들,
그리고 또한 그것들은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역사였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을 주는 희망이었단다. -
과거의 추억이 깃든 골동품들과 앞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것들.
편지들과 책들, 친구가 만들어준 인형, 타자기, 카메라, 스테레오,
사진 몇장과 원고들과 일기장과 시들,
마음에 꼭 드는 커다란 그릇과 냄비와 프라이팬...
그것밖에, 아니 그렇게나 많이 소유했단다.
그러나 어느 크리스마스 날
내가 2주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오두막에 다시 돌아왔을 땐,
그 모든 것이 매캐한 연기만 남기고 불타버린
잿더미처럼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종이들은 갈갈이 찢겨졌고 타자기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조각나 있었다.
카메라와 스테레오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진들까지도 모두 망가져 있었다.
내 삶의 파편들과 덩어리들만이 쓰레기처럼
그 오두막집 주위에 산산히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인형은 찢기고 헤쳐져 난로에 쳐박혀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 방뇨까지 했더구나.
나는 그만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어댔다.
그건 정만 슬픈 사건이었지.
그러나 때로는 삶이 추악한 형태를 띠고 우리에게 배달되기도 한단다.
누군가가 저지른 그 만행은 그때까지 나에게 발생했던
여러가지 일들 중에서 오히려 가장 좋은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사건이 나를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나 스스로는 결코 그 소유물을 절반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소유물은 곧 나였고, 나는 곧 그들이었다.
그것들 없이는 내 삶은 행로가 없는 삶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그때까지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했단다.
잃어버린 편지 속의 추억들은 여전히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있었고,
인형을 만들어 준 친구의 손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찢겨진 원고들은 나의 머리 속에서 더 높이 질적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치유된 상처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적인 노력을 통해 나에게 열려졌단다.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았고,
결국 새로운 스테레오와 카메라도 얻게 되었다.
삶은 게속되었고, 이제 잃어버릴 것이라곤 조금도 없었단다.
심지어는 전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존재에 대한 고마움조차 느꼈지.
그 도둑은 잔인한 선생이었지만
나에게 재산에 대한 어떤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는 물건들이
나를 결코 소유하지 못하게 할 것을 맹세했다.
반드시 내가 그것들을 소유해야겠다고 말이다.
그것은 어렵게 익힌 교훈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배울 필요가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지난 주에 너는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샀느냐?
네 삶은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가와 어떻게 구별되고 있느냐?
순간의 쾌락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행복을 만들어 내는 데는
얼마나 많은 물품들을 사용하고 있느냐?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고심해 보거라.
너는 네가 가진 것 중에서 얼마나 많은 소유물을 기꺼이 버릴 수 있겠니?
아마 거의 없을 게다.
우리의 소유물은 대부분이 우연한 사고로 없어질 뿐이다.
지갑에서, 선물 꾸러미에서, 점차로 눈이 쌓이듯 늘어나기만 하는 소유물은
우리를 그들의 한 부분이 되게끔 만들 때까지 우리의 주위에 계속 축적된다.
우리는 소유물이 되고 소유물은 우리가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물일뿐이다.
우리의 내적 가치는 우리가 가진 소유물의 가치로 측정된다.
우리가 자신의 소유뮬과 동격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왜 그 물건을 버릴 수없는가 하는 이유를 찾기에 급급해한다.
"그건 누군가로부터 받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년동안 그것을 계속 사용해 왔다."
"아마 그게 필요할 날이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큼 그걸 가치있게 평가하는 삶은 아무도 없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소유물이 쌓이는 동안에도
우리는 왜 그 물건을 팔아치울 수 없는가 하는 이유를 댄다.
"나는 그것이 제값을 받을 만한 곳에 가지 못했다.
"아무도 사길 원치 않는다."
그에 대한 모든 반론에 대해, 결국에 가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그것을 갖고 있고 싶다. 는 궁색한 말로써 변명한다.
5. 소유물 2.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물이 사실
모충에서 자라난 나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가 소유의 욕망에 눈이 멀 때,
바로 그 나비가 환상의 날개짓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자유로서, 그리고 행복으로서 바라본다.
우리는 그것들이 판에 박힌 듯
지루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력과 열정을 투자해 소유를 추구한다.
- 소유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지향점과 의미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뒤를 뒤쫓는 스릴을 만끽한다.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얻었을 때,
그것은 정상에 다다른 것 겉은 순간적인 충족감을 주지만,
그러나 곧이어 산중에 흩어지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감정이 엄습해 온다.
소유욕에서 비롯된 스릴은 손에 들어오자마자
눈이 녹듯이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뒤쫓기를 시작하게 된다.
새로운 목표물에 대한 환상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그 반복되는 싸이클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점차적으로 우리 삶은 우리가 갈구해왔던 물건들의 형상으로 가득 찬다.
우리는 소유물이 많아지는 데에 따라 그에 비해
자기 자신의 삶의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그 소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그것들을 유지하고 도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나누어 줄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낡고 쓸모없어질때는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소유물들은
우리의 정신을 온통 자신들을 향해 쏟도록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한동안 어떤 물건을 소유한 뒤에는,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곤란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우리는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렇지만 던져버릴 수도 없는 것이
온통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은 우리의 보금자리 주변에 굴러와 박힌 돌처럼 삶에서 습관화된다.
우리의 자유는 사라졌다.
그것들이 사라져버린 곳엔 책임과 소유감만이 남는다.
사실상 우리는 흩뜨려진 자기 재산의 관장자가 될뿐이다.
우리는 자유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들은 자유가 아니었다.
우리의 환상의 날개는 무기력으로 변해버린다.
우리의 삶은 육체적인 감각만을 개발해왔기에 돌처럼 땅에 속박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약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을 원치 않는다면,
혹은 지고한 금욕주의 사상에 삶을 헌신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유의 환상에 사로잡힌 것보다
더 깨끗하거나 현명한 삶을 만들어 주지 못하리란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은 단지 우리가
빈곤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도록 만들뿐이며,
그것이 결코 소유욕에 대한 강박 관념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자기연민에 찬 빈곤함도 혹은 부유함도 모두 갖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길이다.
어떻든, 우리는 소유물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발견할 필요가 있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의 올바른 가치를 부인하지 않고도,
우리 자신을 그것들의 무게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시험법이 있다.
그소유물이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게 하는가?
그물건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현재 내 삶의 전망과 일의 전망을 더 높이 끌어올리게 하는가?
그러나 이 시험법은 그렇게 간단 명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양심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척도를 만들어 세상에 도입하려는 노력은
그 의도가 비록 고귀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기에
간단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 절대적인 흠이 되지는 않는다.
가령 젊은 피부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어느 성형외과의사가
조용하고 안락한 메르세데츠 승용차를 몰기 때문에
그의 직무를 보다 더 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복잡한 거리의 한쪽귀퉁이에서 굶주린 위장을 채우기 위해
손을 벌리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을게 무엇인가?
단지 지구상의 자원을 너무 낭비하는 의사의 과소비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덜 비싼 차를 탈 것을 요구하면서도
왜 그의 기술과 능력을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지 않는가?
물론 메르세데츠를 타는 의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결코 베푸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세계에서는 지금의 나의 삶의 방식에도
역시 똑같은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세계라면, 아마도 우리는 더 명백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셰계는 그만큼 완전하지는 않다.
따라서 우리 각각은 우리의 재능과 삶의 번영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희망,
그리고 주변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을 허락할 자애와
자신의 안락을 위한 탐욕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메르세데츠를 타는 그 의사의 동기는
아마도 순수하지 않거나 이타주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 사람들의 눈에 띄는 차를 타고 싶어했을 터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의 상징이고 심지어 그를
직무에 전념하도록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주위에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한 배려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5. 소유물 3.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는 나의 안녕을 위한 내집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그 의사의 양심에 판단을 맡겨두었고,
그 의사도 나의 양심에 맡겨 둔다.
너 역시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자주 양심과 부딪쳐야 할게다.
너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시기를 반드시 겪게 될 것이고,
그때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었는가를 보고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최후의, 최신의, 혹은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더냐?
어떤 자동차를 타는가, 혹은 어떤 옷을 입는가이냐?
아니면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두드러진 어떤 것,
결국엔 현재 네 자신의 욕망보다 훨씬 큰 재물들이더냐?
나 역시 그런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중요할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자기 존중은 삶에 있어서
더 중요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하기 위한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상품의 이미지 창조자나 메이커들에 의해 조종당해선 안된다.
네가 더 새로운 물건들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그 사람들은 네가 소유물에 대해 잘못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그럴듯한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미래에 얻게 될 행복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의 덫에 걸려들게 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는 너의 살아있는 감각을
다음 번에 구입할 소유물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만든다.
네가 좀 덜 가졌을 때 그 소유물들이
더 가치가 있다고 속삭이는 조용한 지혜와
인간에게는 재물의 축적보다는 나눔의 의미가
더 깊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는
지혜가 담긴 과거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너는, 재물이 너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
더 나눌 수 있게 하는가? 더 줄 수 있게 하는가?
더 기꺼이 절망에 찬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만약 값비싼 청바지 한 벌이 그렇게 할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거라.
그렇지만 그것이 있으면 선을 행할 수있을 거라고 말할 때의 그 다짐이
단지 값비싼 청바지 (매번 새로운 스타일로 출현하는)
한 벌을 새로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너는 네 욕망이 비롯되는 실제적 의도를 숨기고
단지 현재의 상태에서 부족해 보이는 청바지 따위에
너의 삶이 조종당하도록 너 자신을 허락하는 것이 된다.
너는 나나 혹은 메르세데츠를 모는 의사처럼,
네 스스로의 동기를 직시하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
너는 네 주위 세상에 공헌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과
네 자신의 이미지의 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 사이의 구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네가 자신을 탐구하고 조사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아들이 되기를 바란단다.
그리고 순전한 욕망의 수준을 넘어 네 시야를 끌어올리거라.
소유물의 가치에 대해 고려할 때에는
항상 네 주변에 대한 생각과 함께 하거라.
나는 네가 최대한의 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단지 '추구'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는 찾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따위 하찮은 것들을 취득하는 활동에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 전에....
재산이 사람을 행복으로 보다는
불행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네 삶의 한계를 임의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그런 제한에서 벗어나 이 땅에 비추어진
순례의 행렬과 함께 오는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길 원한단다.
소유물이란 일단 네 손으로 그것을 잡는 순간에
환상에서 책임으로 변해버리는 카멜레온이라는 것을 알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은 천상을 향한 네 눈을 땅 아래로 끌어내려 붙박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소유물의 가치가 증가한다는 것이
주위 삶들의 가치의 증가와 대조됨으로써
공허하다는 사실을 네가 깨닫길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네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들이 너를 만드는 게 아니라
네가 그것들을 만드는 것이란 것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것들이 네가 꿈꾸고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역량을 증가시킨다면,그것들은 선한 것으로 된다.
반면에 그것들 자체에 관심을 집중케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너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면, 그것들은 악한 것으로 된다.
그것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는 바로 너의 손에 달린 문제이다.
일정한 시기마다 자신을 깨끗이 정화하거라.
쓰지 않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내다버려라.
가방 하나와 함께 오랜 여행을 떠나거라.
스스로를 돌아보거라.
자기 성찰을 통해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유물의 대부분이
사실상 현재 별로 중요치 않은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거라.
그런 것은 네 삶을 조금도 도와주지 못하는,
미세한 조각조차도 아님을 인식하거라.
어떤 물건이 가치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물을 쌓는 다면,
너는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날개를 잃게 된다는 걸 잊지 말거라.
그렇게 되면 너를 얽어맨 소유물들에게서
너를 다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느날 밤의 우연한 도둑의 침입에 의해서 뿐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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