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6.
8월 28일
내 병이 고쳐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쳐 줄 사람은 틀림없이 이들일 걸세.
오늘은 내 생일일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베르트로부터 소포가 배달되었다네.
포장을 끄르자 곧 바로 눈에 띈 것이 분홍색 리본이었네.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가슴에 달려 있었던 것으로
그 후에 몇 번인가 그녀에게 졸라서 내가 얻으려 했던 것이지.
그리고 12절판의 문고본이 2권 들어 있었네.
베트시타인 판의 호메로스로, 산책을 하면서
무거운 에르네스티 판을 들고 다니기가 거추장스러워서 벌써부터 갖고 싶었던 책이지.
이런 식으로 이 사람들은 내 소망을 미리 알고서,
알뜰한 우정을 나타내는 조그마한 선물을 찾아 내어 준다네.
이러한 성의는, 보낸 사람의 허영심에 받는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값진 선물보다는 천 배나 더 귀중한 것이지. 나는 그 리본에 수없이 입술을 갖다 대었네.
그리고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그 즐거웠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짧은 그 시절의 행복한 추억들을 되새겼다네.
빌헬름이여, 그러나 불평은 하지 않겠네.
인생의 꽃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얼마나 많은 꽃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떨어져 버렸는가.
열매를 맺는 꽃은 지극히 적고, 열매를 맺어도 온전히 익게 되는 것은 더구나 더 적은 걸세.
그렇다고 익은 과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네. 그런데도......아아, 친구여!
우리가 그 익은 열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맛도 보지 않은 채 썩여 버려도 괜찮은 걸까?
잘 있게.
멋진 여름일세.
나는 곧잘 과일을 따는 긴 장대를 들고
고테네 과수원 나무에 올라가 높은 가지에 달려 있는 배를 딴다네.
그러면 로테는, 그 아래에 서 있다가 내가 떨어뜨려 주는 배를 받는다네.
8월 30일
불행한 사나이여! 너는 바보가 아닌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닌가?
미칠 것만 같은 이 끝모르는 정열은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나는 이제 그녀에 대한 기도밖에는 모르게 되어 버렸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모습뿐이라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공상에 잠겨 있으면 나는 행복한 몇 시간을 누릴수가 있다네.
그러나 이윽고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려야만 하는 걸세!
아아, 빌헬름이여! 내 마음은 나를 어디로 몰아가려 하는 것일까?
----그녀 곁에서 2시간이고 3시간이 흘러가면, 그녀의 모습, 그녀의 거동,
그리고 그녀의 말의 고상한 표현들에 황홀해져 있다가도
차차 모든 감각이 긴장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며,
암살자의 손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그리하여 내 심장은 숨막히는 감각을 완화시키려고 세차게 고동치는데,
그것이 오히려 감각의 혼란을 더 가중시킬뿐이라네.
아아, 빌헬름!
그러면 나는 자신이 이 지상에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걸세.
때때로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압도되어 있을 때,
로테가 자기 손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어서 가슴 속의 괴로움을 풀어 버리라고
슬픈 위안을 해 주기라도 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와 버리지 않을 수 없네.
그리하여 먼 들길을 헤매고 다닌다네. 길도 없는 숲속을 말일세!
그러다가 도중에서 피로와 갈증 때문에 몇 번이나 쓰러져 눕곤 한다네.
보름달이 하늘높이 떠오르면, 상처입은 발바닥을 잠깐이나마 쉬게 하려고
고요한 숲 속의 구부러진 나무뿌리 위에 앉아 있다가
정신적인 해이와 피로 때문에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서 꾸벅꾸벅 잠들어 버린다네.
아아, 빌헬름이여! 참회의 수도복에 가시덤불의 띠, 그리고 암자 속에서 혼자 거처하는 일,
그것이 내가 마음 속으로 동경하며 갈구하고 있는 위안인 것만 같네. 잘 있게!
이 비참한 상태의 종말은 무덤밖에는 없을 것 같네.
9월 3일
나는 여기를 떠나겠네! 고맙네. 빌헬름.
흔들리는 내 결심을 자네가 굳혀 주었으니 말일세.
벌써 2주일 전부터 그녀 곁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주곧 해 왔으면서도 결단을 못 내렸는데,
이젠 정말 떠나야겠네. 그녀는 시내의 아는 부인 집에 가 있네.
그리고 알베르트는......그리고......어쨌든 나는 떠나야겠네.
9월 10일
안타까운 밤이었네!
빌헬름,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있네.
이제 다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없을 걸세.
아아, 자네 목을 끌어안고 실컷 눈물을 흘리며,
내 가슴 속에서 몰아치는 갖가지 생각을 마음껏 하소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아침이 되기는 기다리고 있다네.
아아, 그녀는 편안히 잠들어 있네.
다시는 나를 만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걸세.
2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내 계획을 발설하지 않았네.
아아, 정말 기막히는 대화였네!
알베르트는 저녁식사를 마치면 곧 로테와 함께 정원으로 나오겠노라고 약속을 했었지.
나는 언덕의 밤나무 아래에 서서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그리운 골짜기,
조용히 흐르는 강물 저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네.
지금까지 나는 몇 번이나 그녀와 함께 이 곳에서 그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곤 했었지.
그러나 지금은......내가 좋아하던 가로수 길을 오락가락해 보았네.
내 마음을 이끄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정취가 어리어 있어서,
아직 로테를 알지 못했을 때부터 나는 곧잘 이 곳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었다네.
그리고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다같이 이 곳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무척이나 기뻐했었지.
확실히 이 곳은 내가 본 곳 중에서는 가장 낭만적인 장소일세.
우선 밤나무들 사이로 전망이 탁 틔어 있다네.
여기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벌써 꽤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군.
너도밤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에 이어져 있는 우거진 나무들로 가로숫길은 더욱더 어두워지는데,
그 끄트머리에 아늑한 장소가 있지. 거기엔 섬뜩할 정도의 정적이 깃들여 있다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어느 날 한낮에 처음으로 이 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었지.
그리고 이 곳이 장차 내 행복과 고뇌의 한 무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었다네.
내가 약 반 시간쯤 이별과 재회의 애달프고 달콤한 상념에 잠겨 있으려니까,
두 사람이 언덕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네.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일종의 전율을 느끼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거기에 키스를 했네.
우리가 언덕 위에 오르자, 때마침 달이 울창한 언덕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하였네.
잡담을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두운 정자에 이르렀네.
로테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 앉았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네.
나는 일어나서 그녀 앞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앉았네.
어쩐지 몹시 불안한 기분이었네.
로테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네.
달은 너도밤나무 숲의 꼭대기에 걸려 우리 앞에 펼쳐진 언덕을 구석구석 비추고 있었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었네.
우리가 있는 장소가 깊은 암흑에 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 있었는데,
이윽고 로테가 말문을 열었네.
"달밤에 산책을 하면, 저는 언제나 돌아가신 분들 생각이 나요.
자꾸만 죽음이라든가 내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도 언젠가는 저세상에 갈 게 아니예요?"
로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네.
"베르테르 씨, 우리는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요?
서로가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테"하며 나는 눈에 눈물이 그득한 채 그녀의 손을 잡았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나 나 다시 만나게 되구말구요!"
나는 그 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네.
빌헬름이여,
내가 애달픈 이별을 가슴 속에 숨기고 있을 때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을 묻다니!
"돌아가신 그리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요?"
로테는 말을 계속하였다네.
"우리가 몸성히 잘있으면서, 변함없이 그 분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아아! 조용한 저녁 무렵, 어머니의 아이들, 곧 제 동생들과 같이 있을 때,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제 둘레에 모여들 때마다 어머니가 임종하실 때
<어머니의 아이들을 어머니처럼 돌보겠어요>하고 약속했던
그 일을 제가 정성껏 지키고 있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셨으면 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중얼거린답니다.
<그리운 어머니, 만일 제가 아이들에게 대하여
어머니만큼 좋은 어머니 노릇을 못 하고 있다면 그 점은 용서해 주세요.
아아!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 주고, 빵을 먹여 주고, 그리고 또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아이들을 잘 다독거려 주며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운 어머니, 우리가 단란하게 지내는 정경을 보신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릴 거예요.
어머니께서는 임종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의 행복을 하느님께 기도하셨으니까요>라구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네!
아아, 빌헬름이여,
그 누가 그녀의 말을 되풀이할 수 있으랴!
생명 없는 차가운 문자로 그 성스러운 정신의 꽃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알베르트는 점잖게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네.
"로테, 그런 생각을 너무 골똘히 하면 해로와요.
당신이 곧잘 그렇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제발 부탁이니......"
"아아, 알베르트 씨"하고 그녀는 말했네.
"잊지 않으셨겠지요,
저녁마다 조그마한 둥근 테이블 둘레에 모여앉아 있었던 일 말이예요.
아빠는 아직 여행에서 돌아오시지 않고, 아이들은 재워 놓은 뒤였지요,
당신은 가끔 책을 갖고 오셨지만, 그것을 펼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그 기품있는 영혼과 접촉하는 일이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름답고 다정하고 쾌활하셨으며, 휴식을 모르는 분이었어요.
하느님은 제 눈물을 알아 주실 거예요.
저는 침대에서 하느님 앞에 엎드려<부디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로테!"하고 소리치며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네.
내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손을 적셨네.
"로테,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있고, 또 어머니의 영혼도 결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베르테르 씨가 저희 어머니를 생전에 아셨더라면"
로테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네.
"어머니는 당신이 인정할 만한 훌륭한 분이었어요!"
나는 까무러칠 것만 같았네. 이토록 자랑스러운 말을 나는 들어 본 적이 없었네.
로테는 말을 계속하였네.
"하지만 어머니는 한창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막내가 태어난지 채 6개월이 되기 전이었어요. 오래끈 병환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운명에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다만 아이들, 특히 막내 일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셨어요.
마침내 임종이 가까워지자 저에게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오너라>하셨어요,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는데,
작은 애들은 아직도 사정을 알지 못했고, 큰 애들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침대 주위에 둘러서자,
어머니는 두 손을 들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시고,
한 아이씩 차례로 입을 맞춰 준 다음 밖으로 내보냈어요.
그리고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다오>.
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맹세를 했지요.
<로테, 이 약속은 지키기가 쉽지 않단다>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였어요.
<어머니의 마음과 어머니의 눈을 지녀야만 하는 거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너는 잘 알고 있을 거다.
때때로 네 눈에 글썽거리는 감사의 눈물을 보고 나는 그걸 알게 됐지.
네 동생들을 위해서 부디 그런 마음과 눈을 가져 주기 바란다.
그리고 아버지에겐 아내와 같은 정성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위로해 드리도록 해라>.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셨으나,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어요.
슬픔을 못이겨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셨던 겁니다.
알베르트 씨, 당신은 그 때 방에 계셨죠.
어머니는 당신 말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묻고는, 당신을 곁에 부르셨어요.
그리고 당신과 저를 보시며, 너희 두 사람은 행복할 거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겠지, 하시고는 안심한 듯이 평온한 눈길을 보내셨어요......"
알베르트는 로테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면서 외쳤네.
"그래, 우리는 행복해!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거요!"
냉정한 알베르트도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있었으며,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네.
"베르테르 씨"로테는 다시 말했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
가장 사무치게 느끼는 것은 아이들일 거예요.
아이들은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엄마를 데리고 가 버렸어>
하며 오래도록 슬퍼했지요"
로테는 일어섰네. 나는 그제야 제정신이 들이 깜짝 놀라면서 로테의 손을 잡았네.
"그만 돌아가요"하고 그녀는 말했네."밤이 늦었어요"
로테는 손을 빼려 했으나, 나는 더욱 힘을 주어 그 손을 잡았지.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하고 나는 외쳤네.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난 가겠어요"그런 다음에 나는 덧붙였네.
"기꺼이 작별하겠어요. 그러나 영원한 이별이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로테! 안녕히 계십시오, 알베르트 씨!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내일 말이지요?"하고 로테는 내 말을 농담으로 돌리며 말했네.
그 <내일>이 어떤 것인지 나는 똑똑히 느꼈다네!
아아, 그러나 로테는 그것을 짐작조차 못하는 걸세.
두 사람은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나란히 걸어갔다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달빛속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 습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고는 땅바닥에 엎드려 실컷 울었다네.
이윽고 나는 벌떡 일어나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네.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보리수나무 아래 정원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로테의 하얀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네.
나는 그 쪽을 향해 두팔을 내밀었지. 그러나 그 모습은 이미 사라져 버렸네.
1771년 10월 20일
우리는 어제 이 곳에 당도했네.
공사는 몸이 좀 불편해서 2,3일 집 안에 들어앉아 있을 모양일세.
그 사람이 좀 불편해 까다롭지만 않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련만,
나는 알고 있네,
운명이 나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리려 했다는 것을
그러나 용기를 내야지! 가벼운 기분을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견디어 낼 수 있는 걸세.
가벼운 기분? 이런 말을 쓰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군. 아아, 좀더 경쾌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되었을 텐데. 기가 막히는 일 아닌가!
다른 녀석들이 보잘것없는 힘과 재능을 갖고
가슴을 쫙 펴고 보란 듯이 으스대며 내 앞을 활보하고 있는데,
나는 내 힘과 재능에 절망하고 있으니 말일세!
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그 절반을 도로 가져가시고
그 대신 자신과 만족감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참아야지! 그러면 잘 되어 갈 걸세.
친구여, 자네 말이 맞네.
세상 사람들 틈에 끼여 날마다 일에 쫓기며,
딴 사람들이 하는 일이며 그들의 행동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나 자신과 훨씬 더 잘 타협할 수 있게 되었네.
확실히 우리네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하게끔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서 결정되는 걸세.
그러므로 고독같이 위험한 건 또 없는 걸세.
우리의 상상력은 그 본질상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며,
또 문학이나 시 같은 것에 쓰여 있는 내용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서열을 매기는데,
그러고 보면 자기 자신은 서열의 가장 아래쪽에 있고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보다 훌륭하고,
누구나 자기보다는 완전한 것같이 보이는 것같이 생각하게 마련이거든.
제다가 자기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첨가하고,
더 나아가서 일종의 이상적인 생활의 즐거움까지를 덧붙이는 걸세.
그리하여 완전무결하게 행복한 인간이 만들어지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에 지나지 않네.
그와는 반대로, 힘이 약하면 약한 대로 전력을 다 기울여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가면,
설령 속도가 느리고 멀리 돌아가는 일이 거듭된다 하더라도,
돛을 올리고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다른 자들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앞지르게 되는 걸세.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가게 되거나,
혹은 앞질러 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자각과 자신이 생겨나는 것일세.
11월 26일
이 곳에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네.
무엇보다도 다행한 것은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일세.
게다가 갖가지 유형의 새로운 인물들이
내 마음 속에서 다채로운 연극을 보여 주고 있다네.
나는 C백작과 알게 되었네.
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넓은 식견을 가졌으면서도 인정이 많은 분일세.
남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우정과 사랑이 넘쳐난다네.
자기가 부탁한 일을 내가 무난히 처리해 준 후로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하고 라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나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어 보기만 하고 알게 된 것 같네.
또한 나로서도, 나에게 보여 주는 그의 허물없는 태도를
뭐라고 칭송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라네.
뭐니뭐니해도 크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가슴을 탁 터놓고 대해 줄 때
가장 참되고 따뜻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걸세.
12월 24일
공사 때문에 이만저만 속이 상하지 않는군. 예상했던 그대로 일세.
그렇게 고지식한 공생원은 다시없을 걸세.
일거일동에 꾀 까다롭기가 노처녀나 다를 바가 없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이 결코 없으며,
누가 어떤 일을 해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위인일세.
나는 일을 간결하게 처리하기를 좋아하고,
일단 처리한 일은 끝난 것으로 돌리고 다시 더 뒤적거리지 않는 성미지.
그런데 공사는 내가 써낸 초안을 되돌려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걸세.
"이만하면 괜찮지만, 좀더 잘 검토해 보게.
좀더 좋은 말, 더욱 적합한 접속사를 찾아 내게 될 테니까"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네.
<그리고>라든가 그 밖의 대수롭지 않는 접속사 하나가 빠져도 안 된다는 걸세.
내 문장에는 때때로 도치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건 그에게 있어서는 불구대천지 원수라네.
복합문을 쓸 경우에는 상투적인 틀에 맞추어 쓰지 않으면,
그는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이런 위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난일세.
C백작이 나를 신뢰해 주는 것이 유일한 구원일세.
최근에 그분은 나에게 매우 솔직하게
공사의 완고하고 까다로운 태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네.
그런 사름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괴롭게 만든다는 거야.
"그러나"하고 백작은 말했네.
"체념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지. 험한 산을 넘는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말일세.
물론 산이 없으면 길을 가기가 훨씬 편하고 거리도 가깝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산이 거기 있으니 넘어가지 않을 수 없거든"
공사 영감도 백작이 자기보다는
나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모양일세.
그게 못마땅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나를 상대로 백작의 험담을 늘어놓는다네.
물론 나는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지. 그래서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는 걸세.
어저께는 몹시 분개하였네.
백작을 헐뜯으면서, 은근히 나까지 휩싸서 빈정거리는 걸세.
"이런 세속적인 사무처리에는 백작도 뙈 유능하지.
일도 빠르고 문장도 괜찮거든. 그러나 기초적인 학식이 결여되어 있어.
이건 모든 문장가들에게 공통된 폐단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어때, 좀 뜨끔하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네.
그러나 나에게 그런 말이 통할리 없지.
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인간을 누구보다도 경멸하니까.
나는 지지 않고 격한 말투로 되받아 주었네.
"백작은 인품으로나 학식으로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자기의 정신을 넓게 펼쳐서 수많은 사물에 작용시키며,
그 위에 이러한 정신활동을 세속적인 생활에 있어도 지속해 나가는 일을
그 분처럼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있는 예를 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해 주었으나, 이런 말은 공사에게는 우이독경일세.
나는 더 이상 그의 잠꼬대를 들음으로써 속을 끓이기 싫었으므로,
그만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네.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자네들 책임일세.
마구 쓰석거려서 나에게 굴레를 씌우고,
활동의 공덕이라는 것을 입을 모아 찬양하며 나를 부추긴 것은 자네들이니까 말일세.
활동이 다 뭔가!
밭에 감자를 심거나, 말을 몰고 도시로 밀을 팔러 가거나 하는 편이
지금의 나보다 오히려 더 나은 활동을 하고 있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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