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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3

오늘의 쉼터 2011. 5. 1. 21:37

사씨남정기 3
 

사부인은 남편 유한림의 태도가 못마땅하였다.

그전에는 이런 문제로 이만큼 말하면 남편이 자기의 말에 따르더니

이렇게 고집하는 남편의 태도가 이상스럽기도 했다.

사실 유한림으로서는 사부인의 신임하는 정도가 전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첩 교씨의 참소로 사부인을 의심하는 마음이 유한림에게 생긴 줄을

사부인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말만 길어지고 결과는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후로 동청은 큰집 살림의 집사로 일을 보았는데

유한림의 비위 맞추기에 노력하였으므로 유한림은 사부인의 충고도

공연한 말이라고 다 잊어버리고 더욱 신임하면서 중요한 가사를 거의 일임 하였다.
첩 교씨는 점점 노골적으로 사부인을 참소하였으나 아직도 총명이 남은 유한림은

그저 못 들은 척하면서 집안에 내분이 없게 되기를 바라는 태도였다.

마침내 질투에 불타게 된 교씨는 무당 십랑을 불러서

자기의 분한 사정을 말하고 사부인을 모해할 계교를 물었다.

재물에 매수된 십랑은 묘한 계교를 오래 생각한 뒤에

교씨의 귀에 입을 대고 이리이리하면 사씨를 절제할 수 있다고 속삭이고

조금도 근심할 것이 없다고 다짐하였다.
"그럼, 지체 말고 빨리 해서 내 속을 편히 해 주게."
"염려 마십시오."
십랑이 신이 나서 사씨를 음해하는 일을 착수하였다.


이때 마침 사부인 몸에 태기가 있어서 열 달이 차서 순산 생남하였으므로

유한림이 인아(麟兒)라 이름짓고 기뻐하고,

상하비복들까지 단념하였던 본부인이 득남하였으므로 신기히 여기고

교씨가 생남하였던 때보다 몇 배로 경축하였다.

교씨가 이런 유한림과 집안의 기색을 보고 질투가 더욱 심해져서

간장이 타오르는 듯 어쩔 줄을 몰랐다.

십랑을 또 불러서 이 사실을 전하고 빨리 사씨 음해의 비방을 행하라고 재촉하였다.

십랑은 곧 요물을 만들어서 서면에 묻고

교씨의 심복 시비인 납매를 시켜서 이리이리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런 간악한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교씨, 십랑, 시비 납매의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유한림이 조정에 입번하였다가 여러 날만에 출번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의 상하가 황황하며 교씨 거처인 백자당으로 달려가니

교씨가 유한림을 보고 울면서 호소하였다.
"아이가 홀연히 발병하여 죽을 지경이니 심상치 않습니다.

병세가 체증이나 감기가 아니고 필경

 집안의 누가 방예를 해서 일으킨 귀신의 발동인가 합니다."
"설마 그럴 리야 있을까?"
유한림은 교씨를 위로하고 아들의 방으로 가서 보니

과연 헛소리를 지르고 가위 눌리는 증세로 위급해 보였다.

유한림이 우려하여 약을 지어다가 시비 납매에게 급히 달여서 먹이게 하고

 동정을 자세히 보았으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유한림은 낙망을 하고 교씨는 엉엉 울기만 하였다.
유한림의 총명도 점점 감하여 갔는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과 같이 교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의심이 늘어서 모든 일에 줏대를 잃게 되었다.

사부인의 부덕은 옛날 현부에도 손색이 없었으나

교씨 같은 요인(妖人)이 첩으로 들어와서 집안을 어지럽히고

천미한 여자가 누명을 만들어서 가문을 욕되게 하니

마땅히 그런 사악한 여자는 엄중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때 교씨가 교활한 집사 동청과 몰래 사통하고 있었으매, 실로 한 쌍의 요악지물이었다.

교씨의 침소인 백자당이 밖으로 담 하나를 격하여 화원이 있었으며

화원의 열쇠는 교씨가 가지고 있었으므로, 유한림이 내당에서 자는 밤에는

교씨가 동청을 화원 문으로 불러들여서 동침하여 음란을 일삼았다.

그러나 엄중한 비밀의 사통이라 시비 납매만이 알 뿐이었다.
유한림이 장지의 병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매우 심통하고 있을 때

교씨마저 칭병하고 식음을 끊고 밤이면 더욱 슬퍼하여 유한림의 마음을 불안케 하였다.

 

하루는 납매가 부엌에서 소세하다가

한 봉의 괴이한 방예를 얻었다고 유한림과 교씨에게 보였다.

그것을 본 교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서 말을 못하고 앉았다가 이윽고 울면서,
"제가 십육 세 때 이 댁으로 들어와서 남에게 원망 들을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모자를 이토록 모해하니 참으로 억울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유한림이 그 방예한 요물을 보고 묵묵히 말을 잇지 못하고 침통해 하고만 있었다.
"한림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하실 생각입니까?"
교씨가 이 기회에 유한림의 결의를 촉구하였다.

유한림은 한참 생각한 끝에,
"일이 비록 잔악하지만 집안에 의심할 잡인이 없으니 누구를 지목하고 문초하겠는가.

이런 요예지물은 아무도 모르게 불태워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교씨가 문득 생각난 듯한 태도를 하다가 참는 척하고,
"한림 말씀이 지당합니다."
대답하자 유한림이 안심한 듯 납매에게 불을 가져오라고 명하여

뜰에서 친히 살라 버리고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자 유한림이 나간 뒤에 납매가 교씨에게 불평스럽게 물었다.


"낭자께서는 왜 한림의 의심을 부채질해서

예정대로 일을 진행시키지 않고 좋은 기회를 잃었습니까?"
"이번에는 한림께 그만 정도로 의심하게 해 두는 것이 좋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도리어 의심을 사고 해로울 것 같아서 그랬다.

다음 기회에 한림께서 더 결심을 굳게 하시도록 할 것이니

너는 너무 조급히 굴지 말아라.

그만해도 한림의 마음은 이미 동하였으니 요 다음에......"
이리이리하자고 납매에게 다음 계교를 말해 두었다.

유한림이 그 방예의 글씨가 교씨의 글씨임을 알았는데

그것이 또한 교씨 부인의 필적같이 모방한 줄로 짐작하고 불에 살라서 증거를 없앴던 것이다.

 

유한림은 전에 교씨가 사부인의 투기를 은연중에 비방하였을 때에도

믿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이런 일까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당초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사부인의 주선으로

교씨를 첩으로 맞아들였더니 지금 와서는 자기도 자식을 낳게 되자

악독한 계교로 교씨 소생을 방예로 저주하여 없애려고 한다고 부인 대접에 냉담하게 되었다.

 

이때 사급사 댁에서 부인의 병환이 위중하므로

딸을 보고자 사돈 유한림 댁으로 편지를 내었다.

사부인이 모친의 위독한 기별을 받고 깜짝 놀라서 유한림에게,
"모친의 병환이 위중하시다 합니다.

지금 가뵙지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되겠으니 친정에 보내주십시오."
"장모님 병환이 위독하시면 빨리 가시오. 나도 틈을 타서 한번 가서 문안하겠소."
사부인이 친정길을 떠날 때 교씨를 불러서 자기 없는 사이의 가사를 부탁하고

인아를 데리고 신성현 친정으로 갔다.

모녀가 오래 떠나 있다가 병석에서 딸을 만나니 모녀가 일희일비하였다.

모친의 노환은 중하였으나 일진일퇴의 증세이므로

사부인은 구호하느라고 빨리 시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연 수개월이 흘렀다.

 

유한림의 벼슬은 본디 한가한 직책이라

때때로 틈을 타서 빙모 문병차 신성현 처가로 왕래하였다.

이 무렵에 산동과 산서와 하남 지방에 흉년이 들어서

백성이 거산하여 사방으로 유랑하게 되었다.

황제가 이 지방의 기황을 들으시고 크게 근심하여

조정에서 덕망 있는 신하 세 사람을 뽑아서 삼도로 나누어 보내어

백성의 질고를 살피라는 분부를 내렸다.

이때 유한림이 세 신하의 한 사람에 뽑혀서 급히 산동 지방으로 나가게 되었으므로

미처 사부인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유한림이 집을 떠난 뒤로는 교씨가 더욱 마음을 놓고

방자하게 동청과의 간통을 마치 부부같이 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하루는 교씨가 동청에게,
"지금 한림이 멀리 지방을 순모하고 있으며 사씨가 오래 집을 떠나서 없으니

계교를 단행할 가장 좋은 시기인데 장차 사씨를 없애 버릴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간부의 꾀를 물었다.
"묘계가 있소. 사씨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으니 걱정할 것 없소."
하고 그 묘안을 귓속말로 설명하자 교씨가 반색하였다.
"낭군의 그 방법이면 귀신도 모를 테니 곧 착수해 주소."
"내게 냉진이란 심복이 있는데 내 말이라면 잘 듣고 꾀가 많으니 감쪽같이 해치울 것이오.

우선 사씨가 소중히 여기는 보물을 얻어야 하겠는데 그것이 어렵군요."
교씨가 한참 생각한 끝에 자신이 있는 듯이 말하였다.
"옳지 좋은 수가 있어요.

사씨의 시비 설매가 우리 납매의 동생이니까

그 애를 달래서 사씨의 보물을 훔쳐 내게 하겠어요."


이런 음모를 한 뒤에 납매가 조용한 틈을 타서

사씨의 시비 설매를 불러서 금은과 보물을 주면서 꼬여 대었다.

이에 귀가 솔깃해서 넘어간 설매가,
"부인의 패물을 넣은 상자는 골방에 간수해 있으나 열쇠가 있어야지.

그런데 그 보물을 무엇에 쓰시려고 그러지?"
"그것은 묻지 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만일 이 일이 탄로나면 우리 둘은 살지 못할 거야."
납매는 그런 위협까지 하고 교씨의 열쇠꾸러미를 주면서

그 중에서 맞는 열쇠가 있을 테니 잘 해보라고 하며

보물 가운데서도 유한림도 늘 보고 소중히 여기는 보물을 꺼내 오라고 부탁하였다.

설매가 열쇠꾸러미를 숨겨 가지고 가서 골방에 간수해 둔

보석상자를 열고 옥지환을 훔쳐다가 교씨에게 주면서 그 옥지환의 내력을 고하였다.
"이 옥지환은 구가(舊家)의 세전지보물이라고 한림 양주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교씨가 기뻐하며 설매에게 후한 상금을 주고 동청과 함께 흉계를 시행시키기로 하였다.

 

마침 이때에 사씨를 모시고 갔던 하인이 신성현 친가에서 와서

사급사 부인이 작고했다는 부고를 전해왔다.
"사씨 댁에 무후(無後)하시고 다음에 가까운 친척도 없어서

우리 부인께서 손수 치상(治喪)하여 장례를 지내시고

교낭자께 가사를 착실히 살피시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이 부고를 받은 교씨는 간사스럽게 시비 납매를 보내서

극진히 사부인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동청을 재촉하여 흉계를 진행시켰다.
이때 유한림이 산동 지방에 이르러서 주점에 들러서

밥을 사먹으려 할 적에 문득 어떤 청년이 들어와서 유한림에게 읍하였다.

유한림이 답례하고 본즉 그 청년의 풍채가 매우 준매하였다.

유한림이 성명을 묻자,
"소생은 남방 태생으로 성명은 냉진이라 하옵는데

선생의 고성대명(高聲大名)을 듣고자 하옵니다."
그러나 유한림은 민정시찰로 암행중이므로 바른대로 밝히지 않고

다른 성명으로 대답하고 민간의 곤궁한 실정을 물었다.

그러자 그 청년의 대답이 영리하고 선명하였으므로 유한림이 감탄하고 계속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인가?

그대가 비록 남방 사람이라 하나 서울 말을 하는군."
"저는 외로운 몸으로서 구름같이 동서로 표박하며 정처가 없는 사람입니다.

서울에도 수년간 있다가 올 봄에 이곳 신성현에 와서 반 년을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다행히 함께 수일 동안

동행하게 됨은 좋은 인연이 될까 합니다."


"그런가? 나도 외로운 길에서 마음이 울적한 참이니 자네를 만나서 다행일세."
하고 주식을 권하니 서로 먹고 동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낮에는 길을 가고 해가 지면 주막에서 자고

닭이 울어서 밤이 새면 또 떠나가고 하였다.

유한림이 밤에 잘 때에 보니 그 청년의 속 옷고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옥지환이 매여 있었다.

유한림이 이상히 여기고 자세히 본즉 아무래도 눈에 익은 옥지환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일찍이 서연 사람에게 배워서 옥류를 좀 분별할 줄 아는데

자네가 가진 그 옥지환이 예사 옥이 아닌 듯하니 좀 구경시켜 주게."

청년이 옥지환 보인 것을 뉘우치는 듯이

머뭇거리다가 마지 못하는 듯이 옷고름을 끌러서 한림에게 내주었다.

유한림이 손에 받아들고 자세히 보니 옥의 색깔과 형태와 새긴 제도가

자기 부인 사씨의 옥지환과 똑같았다.

의심하면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니 더 이상하게 푸른 털실로 동심결이 맺어 있지 않은가.

더욱 의심이 깊어졌으므로 청년에게,
"참 좋은 보배로군. 그대는 그것을 어디서 구하였나?"
청년이 거짓으로 슬픈 모양을 꾸미고 묵묵히 옥지환을 받아서 도로 옷고름에 매었다.

유한림은 그 옥지환의 출처가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그 옥지환에 반드시 무슨 인연이 있을 텐데 나한테 말한들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청년이 오래 있다가 입을 열고,
"북방에 있을 때 마침 아는 사람에게 얻었는데 형이 왜 그리 캐어묻습니까?"
하고 그 출처를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유한림은 어떤 도적이 자기 부인의 옥지환을 훔쳤던 것을

이 사람이 우연히 산 것이 아닐까 하고 그 내막을 알아내려고 기회를 보았다.

 

그럭저럭 여러 날 동행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자연 친근한 길동무가 되었으므로 유한림은 또 물었다.
"자네가 그 옥지환에 동심결을 맺은 이유를 좀체로 말하지 않으니

어찌 그동안 길동무로 친해진 우정이라고 하겠는가?"
그러자 냉진이라는 청년이 마지못한 듯이,
"그동안 형과 정의가 깊어졌으므로 숨길 필요도 없지만

정든 사람의 정표로만 알고 나를 비웃지 말아 주십시오."
"그처럼 정든 사람이 있으면 왜 같이 살지 않고 남방으로 가는가?"
"호사다마하고 조물주가 시기하여 좋은 인연이 두 번 오지 않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옛날 말에 규문에 한번 들어가는 것이 깊은 바다에 들어감과 같다 하더니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소저와의 정사(情事)이매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냉진은 짐짓 자기 사랑의 고민을 고백하는 듯이 슬픈 기색을 하며 탄식하여 보였다.
"그러나 자네 염복(艶福)이 부러워."
하며 두 길동무는 종일토록 통음하고 다음날 오후 각각 길을 나누어 이별하였다.

유한림은 그 냉진이라는 청년과 우연히 길동무가 됐으나

수일 동안 동행한 자의 근본을 알지 못하였다.

더구나 자기 부인 사씨의 옥지환의 행방이 어찌되었는지 궁금하였으나

멀리 떨어진 산동 지방을 암행중이라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도 측은한 일도 많구나.

혹은 집안의 종들이 그 옥지환을 훔쳐 내다가 팔아 버린 것일까?

그러나 그 청년이 사랑하는 의중지인의 정표라던 넋두리는 무슨 관계의 뜻일까?'


유한림의 의심과 걱정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심란스럽기만 하였다.

그런 근심을 하면서 반 년 만에야 국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사부인이 친정에서 돌아와 있은 지도 오래였다.

유한림은 비로소 장모의 별세를 알고 부인과 함께 슬퍼하며 조상하고,

교씨와 두 아들 장지와 인아를 만나서 그립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객지에서 냉진이라는 청년이 가지고 있던 옥지환이 궁금해서 사씨 부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전에 부친께서 내려주신 옥지환을 어디 간수해 두었소?"
"그대로 패물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건 왜 갑자기 물으세요?"
"좀 이상한 일이 있었기로 궁금해서 보고자 하오."
사씨 부인이 이상히 여기고 시비에게 금상자를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상자를 갖다가 열고 본즉 다른 패물은 전부 그대로 있었으나 그 옥지환 한 개만 보이지 않았다.

사씨 부인이 깜짝 놀라서,
"분명히 이 상자 속에 넣어 두었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하고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한림의 안색이 급변하고 말을 하지 않으므로 더욱 당황해서 물었다.
"그 옥지환의 행방을 한림께서 아십니까?"
유한림이 얼굴을 붉히고,
"자기가 남에게 주고서 나한테 묻는 건 무슨 심사요?"


사씨 부인은 이 같은 남편의 뜻밖의 말을 듣고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착잡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시비가 두부인께서 오셨다고 고하였다.

유한림이 황망히 나가서 고모를 맞아들여서 인사를 나눈 뒤에

두부인이 먼 길의 무사왕복을 위로하였다.

이윽고 유한림은 두부인을 향하여,
"제가 출타중 집안에 대변이 생겨서

곧 고모님께 상의하러 가려던 참에 잘 오셨습니다."
"아니, 집안에 무슨 대변이 생겼기에?"


유한림이 흥분을 진정하면서 냉진이라는 청년을 만나서

옥지환을 보고 또 그에게 들은 말이 이상해서

집에 와서 옥지환을 찾아보았으나 과연 없으니

이 가문의 큰 불행을 장차 어찌 처치할까 하고 상의하였다.

사씨 부인이 유한림의 그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첩의 평일의 행색이 성실치 못하였기 때문에

주인이 의심하고 지금 이런 누명을 쓰게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하겠습니까?

첩의 입으로는 변명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으니 죽이든지 살리든지 한림의 뜻대로 하십시오.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군자는 참언을 신청(信聽)하지 말고

참소하는 자를 엄중히 다스리라 하였으니 한림은 살피셔서 억울함이 없게 하십시오."
두부인이 변색을 하고 유한림을 꾸짖었다.
"너의 총명이 선친과 비교하여 어떠냐?"
"소질이 어찌 선친께 따를 수 있습니까?"
유한림이 황송해 하면서 대답하였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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