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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5

오늘의 쉼터 2011. 5. 2. 00:06

사씨남정기 5 


 

사씨의 아우는 자기 누님의 고집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노복 한 사람과 시비 두 사람을 보내서 사씨 신변을 보살피게 하였다.

사씨는 아우의 정의에 고마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친가에 본디 노복이 적은데 어찌 여러 비복을 내가 거느리겠는가?"
하고 노복 한 사람만 두어서 외부와의 연락하는 데 쓰고 시비들은 도로 친정으로 보내었다.

이 묘지가 있는 근처에는 유씨 종중과 노복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사씨가 시부 묘하에 묘막을 짓고 살게 된 사실에 동정과 감격을 하고

모두 위로하여 쌀과 야채를 끊임없이 공급하여 주었다.

그러나 사씨는 그런 친척과 노복들의 신세만 지는 것이 송구하여서

되도록 사양하고 바느질과 길쌈을 하여 근근이 연명하며 외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사씨를 태우고 갔던 가마꾼들이 유한림 댁으로 돌아와서

사씨가 유한림의 부친 묘소 밑으로 가서 거처를 삼으련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교씨는 그 소식을 듣고 사씨가 신성현의 제 친정으로 가지 않고

유씨 묘소로 간 것은 유씨 가문에서 축출한 명령을 거역하는

방자스러운 소행이라고 분하게 생각하고 유한림에게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사씨는 누명으로 조상께 죄진 몸인데 어찌 감히 유씨 묘하에 있을 수 있습니까?

빨리 거기서 쫓아 버려야 합니다."

 

유한림이 침울한 마음으로 더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이미 우리 집에서 쫓아 버렸으니 제가 어디 가서 살든 죽든 상관할 것 없지 않소.

하물며 산소 부근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는데

그만 금할 수도 없으니 모른 척하고 잊어버립시다."
교씨는 더 주장은 못하였으나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다 하루는 동청에게 의논하자 동청이 후환을 염려하고,
"사씨가 제 친정으로 가지 않고 유씨 묘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행동으로 앞으로 옥지환 행방 등

우리 계교를 발명하고 복수하려는 저의가 분명하고

제가 유가의 자부로 자처하면서 후일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겠소.

더구나 그 근처에 있는 유씨 종중의 인심을 사려는 간교가 또한 분명하오.

그뿐 아니라 한림이 춘추로 성묘를 다니시다가

그 처량한 모양을 보시면 철석간장이라도 옛날 정의를 생각하고

마음이 다시 어떻게 동요할지 모르니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곧 사람을 보내서 암살해 버릴까?"
교씨가 성급하게 최악의 수단을 말하였다.
"그것은 도리어 평지풍파를 일으킬 염려가 있으니 안 됩니다.

지금 갑자기 죽이면 역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는 한림이 우선 의심합니다.

나한테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냉진이 아직 가속이 없고

그전부터 사씨를 흠모해 왔으니 그에게 사씨를 속여서 꼬여다가 첩을 삼게 하면

나중에 한림이 듣더라도 변절해 버린 여자라 여기고 아주 잊어버릴 것입니다."
"호호호 그렇게만 되면 냉진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잘 될 수 있을까?"
"냉진의 수단으로는 되고말고요.

사씨가 유씨 묘하에 뿌리를 박고 있으려는 계획은

아까 말한 것 외에도 장차 두부인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그 힘을 빌려서 한림과 인연을 다시 맺으려는 계획입니다.

사씨가 두부인을 하늘같이 믿고 있으니

이제 두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여 장사로 인부를 차려 오라면

반드시 그대로 할 것이니, 도중에서 냉진이 데려다가 겁탈하여

첩으로 삼으면 사씨가 아무리 절개를 지키려 하더라도

연약한 몸으로는 욕을 당하고 단념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소위 독 속에 든 쥐라, 별수 없을 것입니다."


교씨는 간부(間夫) 동청의 계략을 듣고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당신의 계교는 정말로 신출귀몰하니 와룡선생의 후신인가 보구려."
동청은 몰래 냉진을 불러서 그 계교를 일러주었다.

냉진은 총각인데다가 사씨의 높은 평판을 알고 있었으므로

기뻐하면서 두부인의 필적을 청하였다.

동청이 염려 말라 한 뒤에 교씨에게 그것을 구하게 해서 냉진에게 주었다.

냉진은 그 두부인의 필법을 모방한 똑같은 글씨로 사씨에게 서울로 오라는 사연을 썼다.

즉 유한림의 무상한 태도를 탄식하고, 당분간 서울로 와서 함께 지내다가

사가(謝家)로 복귀할 시기를 기다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교자와 인마를 차려서 보내니 곧 타고 오라는 재촉이었다.

냉진은 이러한 두부인의 편지를 교묘하게 위조한 뒤에 교자와 말을 세내고

가마꾼 등의 인부 십여 명을 매수하여 보내면서

사씨에게 장사에서 온 것같이 잘 행동하라고 교사하였다.
냉진은 사씨를 유괴할 인부들을 보낸 뒤에

집으로 돌아가서 화촉을 갖추고 사씨가 유괴되어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사부인이 창가에서 베를 짜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문득 들렸다.
"문안드립니다. 이 댁이 유한림 부인 사소저 계신 댁입니까?"
노복이 나가서 그렇다 하고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서울 두총관 댁에서 왔소."
"두총관이 마님을 모시고 임지로 가셨고

그 후로 그 댁이 비었는데 누구의 명으로 왔소?"
"아직 두총관 댁 소식을 모르는군.

우리 주인께서 장사총관으로 계시다가 나라에서 한림으로 제수하시고

조정의 내관으로 부르셨으므로 마님께서 먼저 상경하시고

사씨 부인께서 여기서 고생하신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놀라서 우리를 보내어 문후하라고 편지를 가지고 왔소."
하고 찾아온 전갈꾼이 사씨 부인의 노복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노복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사씨 부인에게 알렸다.

사씨 부인이 그 편지를 받아서 봉을 떼어 본즉

그 사연은 이별한 후로 염려하던 말로 위로하고

아들의 벼슬이 승진하여 곧 임지를 떠나서 상경하리라는 것과

그에 앞서서 자기가 먼저 상경하여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리고 또 유한림의 오해로 쫓겨나서 산중 산소 밑에서 고생하다가

강포한 무리의 침노를 당할까 두려우니

당분간 자기 집으로 와서 있으면 모든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일 이런 자기 뜻에 찬성하면 곧 교자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이 두부인의 편지를 본 사씨 부인은 두부인이 장사에서

아들의 내관 전직으로 먼저 상경한 것을 기뻐하고

곧 두부인한테로 가겠다는 답장을 써서 전갈 온 사람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되,
'이곳이 비록 산골짝이지만 선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위로해왔었는데

이제 이곳도 떠나게 되니 서울 두부인 댁으로 가면

몸은 편할지라도 마음은 더욱 허전할 터이니 내 신세가 처량하다.'


그런 생각중에 홀연히 잠이 와서 조는데 비몽사몽간에 전에 부리던 시비가 와서

시아버님 유공께서 부르신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청하였다.

사씨 부인이 곧 시비의 뒤를 따라서 어느 곳에 이르니 시비 수명이 나와서 맞아들였다.

사씨 부인이 시아버님의 침전에 이르러서 보니 완연히 그전 시아버님의 생시 모습이었다.

 

사부인이 반가워서 흐느껴 울었다.

유공이 가깝게 끌어서 슬하에 앉히고 무애하여 위로하고,
"어리석은 아이가 참언을 듣고 너 같은 현부를 내쫓아서 고생을 시키니 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오늘 불러가겠다는 두부인의 편지가 진짜가 아니니 속지 말라.

네가 그 글씨의 자획을 다시 자세히 보면 위조편지임을 알 것이니 결코 속지 말라.

그리고 내가 세상을 이별한 뒤로 너를 다시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눈을 들어서 나를 다시 봐라.

비록 유명의 세계가 다르나 자부가 아이와 함께

사당에 분향하고 잔을 올리더니 지금 와서는 천첩이던

간악한 교씨가 제사를 받들매 내 어찌 흠향하겠는가.

이런 해괴하고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현부가 집을 떠난 후에 이곳에 와 있으니

나도 너의 정성을 기쁘게 여기고 의지하여 왔는데

네가 이제 멀리 떠나가면 또한 외로워서 어찌하랴."


사부인이 시부 유공에게 울면서 대답하되,
"두부인께서 부르시더라도 어찌 묘하를 떠나겠습니까?"
"정말로 두부인 옆으로 간다면 나도 말릴 생각은 없다마는 그 편지가 위조물이요

그렇다고 여기 오래 있으면 또 박해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자부에겐 칠 년 재액의 운수이니 마땅히 남방으로 멀리 피신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지금 박해가 급하니 빨리 피신하라."
"외롭고 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찌 칠 년 동안이나 사고무친한 타향을 유리하겠습니까?

앞으로 겪을 길흉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천수를 낸들 어찌 알겠느냐?

다만 내가 일러두거니와 지금으로부터 육 년 후의 사월 십오일에

배를 백빈주에 매어 두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이 말을 명심불망하였다가 꼭 그래야만 네 운수가 대통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또다시 뵙겠습니까?"
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 잠꼬대의 울음에 놀란 유모와 노복이 몸을 흔들기로

사씨 부인이 놀라서 눈을 뜨니 꿈결이었다.

사씨 부인이 그 신기한 꿈 이야기를 한즉

유모와 노복도 신기하게 여기고 소홀히 여길 꿈이 아니라고 아뢰었다.

사부인이 꿈에서 가르친 대로 두부인이 보냈다는 편지를 꺼내서

글씨의 자획을 자세히 살피면서,
"두총관이 홍(洪)자를 은위하는데 두부인 편지라면 어찌 홍자를 썼을까?

아무리 필적을 비슷하게 흉내냈어도 이것만으로도 위조가 분명하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렇게까지 악랄한 수단으로 나를 모해하려는가."
하고 흉흉한 의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중에 어느덧 날이 훤히 밝기 시작하였다.

사씨가 유모에게 은근히,
"어젯밤 꿈에 시부님의 영혼이 분명히 남방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마침 장사가 남방이라 두부인이 가실 때에 수로 수천 리라 하시더니

이제 시부님 영혼이 남방으로 피신하라신 것은

필경 장사로 두부인을 찾아가서 의탁하라는 뜻이니 어찌 빨리 떠나지 않으랴."
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으나 배를 얻지 못하여 초조하게 배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에 노복이 안으로 달려들어오면서

서울 두부인으로부터 교자가 와서 사부인을 맞아 가려고 하니 어찌하랴고 물었다.
"내 어젯밤에 찬바람에 촉상하여 일어나지 못하니

몸이 나으면 수일 후에 갈 테니 교자를 가지고 온 하인들을 보내라."
라고 노복에게 전갈시켰다.

그래서 냉진이 유괴하려고 보낸 인부들은 어리둥절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돌아갔다.

냉진은 그 경과를 동청에게 보고하고 앞으로 취할 방법을 의논하였다.
"사씨는 본래 지혜가 있는 여자라 두부인의 초청을 의심하고

칭병으로 거절하였을 것이리라. 이러다가 만일

두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여 유괴하려던 계략이 탄로나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동청도 당황해서 실패를 자인하였다.

그러나 냉진은 아직도 실망하지 않고 강경한 방법을 취하고자 하였다.
"기왕 내친 걸음이니 힘으로 해치웁시다."
"무슨 방법이냐?"
"힘센 사람 십여 명과 교꾼을 데리고 산소 근처에 가서 잠복하였다가

밤이 되거든 사씨를 납치해 오는 것이 좋을까 하오."
"그 방법으로 빨리 실행하라.

그 여자가 우리 눈치를 알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빨리 납치해다가 네 계집으로 삼아라."
냉진은 동청의 동의를 얻자 곧 강도 수십 명을 인솔하고 사씨를 납치하려고 달려갔다.


이때 사씨는 남방으로 가는 선편을 얻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마침내 남경으로 가는 장삿배를 발견하고

노복과 함께 달려가서 태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 장사꾼이 일찍이 두부인 댁에서 사씨 부인을 본 일이 있었으므로

사씨 부인의 곤경을 동정하고 잘 태워다 줄 것을 약속하였다.

 

사씨 부인이 시부님 묘전으로 가서 하직 배례를 하고

유모와 시비와 노복 세 사람을 데리고 배에 올라 일로 남방으로 향하여 먼 길을 떠났다.

사씨가 배를 타고 떠난 직후에 냉진이 강도 수십 명을 데리고

유씨 산소 밑에 있는 사씨의 집을 밤중에 습격하였으나

텅빈 집에 주종의 인적은 묘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냉진이 놀라서 어이가 없는 듯이,
"사씨는 과연 꾀가 많은 여자다. 우리의 계교를 벌써 알아채고 달아났구나."
하고 도리어 탄복하고 돌아와서 또 실패한 경과를 동청에게 보고하였다.

 

동청과 교씨는 사씨를 잡지 못하고 놓친 것을 분하게 여겼다.
이때 사씨 부인은 배를 타고 남방으로 향하여 갈 제

만경창파에 바람이 일어서 파도가 하늘에 닿을 듯이 거칠어서

배를 나뭇잎처럼 희롱하였다.

이렇게 위험해진 풍랑 속을 가던 장삿배들은

새벽달 찬바람에 한사코 닻 감는 소리는 물 깊이를 짐작시켰고,

양자강 양안의 산협에서는 원숭이떼가 우는 슬픈 소리가

조난한 선객들의 마음을 더욱 산란케 하였다.

이런 조난선 가운데서 사씨는 자기의 불행만 계속되는 신세를 한탄하여 마지 않았다.

규중 열녀의 몸으로 더러운 죄명을 쓰고 시집을 쫓겨난 사람이 되었다가

박해를 피하여 장사로 도망치다가 이제 만경황파의 일엽편주에 운명을 맡겼으니

오장이 뒤집히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사씨는 마침내 통곡하고 하늘에 호소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런 인생을 내시고 명도의 기구함을 이처럼 점지하셨습니까?"
유모도 따라서 슬프게 울다가 먼저 울음을 그치고,
"하늘이 높으시나 살피심이 밝으시니 부인의 앞길도 멀지 않아서 트일 것입니다."
"내 팔자가 기박하여 너희들까지 고생을 시키니 마음이 아프다.

나는 내 죄로 당하는 고생이지만 유모와 차환은 무슨 죄랴.

이것은 나 같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이니 내가 어찌 민망하지 않으랴.

규중 여자의 몸으로 일엽편주로 이 풍랑이 심한 물 위에 표류하니 장차 어찌될 신세랴.

두부인이 이런 사정을 알고 기다리시는 바도 아닌데

시집을 쫓겨난 사람이 구차하게 살아서 장사로 구원을 바라고 가니

이 신세가 어찌 가련하지 않으랴.

차라리 이 물 속에 몸을 던져서 굴삼려의 충혼을 따를까 한다."


이처럼 주종이 서로 울고 서로 위로하면서 표류하던 배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더욱 심해지고

사씨의 토사병이 급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자

배를 뭍에 대고 어떤 집에 들러서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 집의 여자가 매우 양순하여 사씨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였으므로

사씨가 감격하고 그 여자의 나이를 물었더니 이십 세라는 처녀의 대답이었다.

사씨 부인은 그 여자의 용모가 곱고 마음의 의기가 장함을 사랑하는 동시에

병으로 고생하는 과객에 대한 지성을 고마워하면서 친형제같이 수일 동안을 지냈다.

그 집 처녀의 덕택으로 병이 나아서 이별할 적에는

주객의 정의가 헤어짐을 여간 슬퍼하지 않았다.

사씨는 주인 여자에게 사례하려고 손에 끼었던 가락지를 주면서 치하하였다.
"이것이 비록 미미하지만 그대 손에 끼고서

나의 마음으로 보내는 정을 잊지 말아요."
"이 패물은 부인이 먼 길을 가시는데

노비가 떨어졌을 때도 긴요하실 터인데 제가 어찌 받겠습니까?"
"여기서는 이미 장사가 멀지 않고

그곳에 가면 비용도 별로 들 것 같지 않으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 두오."
사씨가 굳이 주었으므로 그 여자는 감사하게 받고 이별을 안타까워하였다.

사씨 부인도 그 여자와 이별하기를 슬퍼하면서 그 집을 떠났다.

 

수일 후에는 노복이 노독과 풍토병에 걸려 마침내 객사하고 말았다.

사씨 부인은 충성스럽던 노복의 죽음을 슬퍼하고

배를 머물게 한 뒤에 그의 시체를 남향 언덕에 정성껏 안장하고 떠났다.

그러나 거기서 얼마 가는 동안에 또다시 폭풍이 일어서

파도가 집동같이 솟아서 배를 덮어 버리려고 몰려들었으므로

배는 위험을 피해서 동정호의 위수를 따라서 악양루에 이르렀다.
이곳은 옛날 열국시대의 초나라 지경이었다.

우의 순 임금이 순행하시다가 창호 땅에서 붕거하시자

아황과 여영의 두 왕후가 순 임금을 찾지 못하고 소상강에서 슬피 울었을 때

그 피로 화한 눈물을 대숲에 뿌린 것이 대나무에 점점의 얼룩이 졌다는데

그것이 유명한 소상반죽(瀟湘班竹)이 되었다는 전설을 남겼던 것이다.

그 후에 나라의 신하 굴원이 충성을 다하여 왕을 섬기다가

간신의 참소를 받고 강남으로 축출되자

이곳에 와서 수간 모옥을 짓고 지내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 버렸으며

또 한나라의 가의(賈誼)는 낙양재사(洛陽才士)였으나

당의 권신에게 쫓겨서 장사에 와서 제문을 강물에 던져서

여기서 억울하게 빠져 죽은 굴원의 충혼을 조문한 고적으로서

옛날부터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심회를 비창하게 감동시켰다.


그러므로 그 슬픈 전설에 흐린 구름이 항상 구의산에 끼고

소상강에 밤이 오고 동정호에 달이 밝고 황릉묘에 두견새가 울 때는

비록 슬프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탄식하게 되었으므로 천고의 의기가 서린 영지였다.

슬프도다.

사씨는 대가집 주부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정성을 다하여 장부를 섬기다가

음부 교씨의 참소를 입고 일조에 몸이 표령하여 이곳에 이르러서

옛날의 충의 인사들의 영혼을 조상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어찌 슬프고 원통하지 않으랴.


악양루 밑에서 배를 내린 사씨 부인은 밤이 새도록 강가에 머문 배에서 기다리다가

날이 밝은 후에야 비로소 인가를 발견하고 유모와 시비를 거느리고 배에서 내렸다.

뱃사람들은 갈길이 바쁘기 때문에

사씨에게 몸조심하라는 당부와 슬픈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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